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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Jul 09. 2022

(32) 선고가 내려졌다

자세하게 쓰고 싶었을 뿐인데 분량이 또 엄청 길어져버렸습니다

선고가 예정된 건 6월. 6월이 시작될 때, 나는 의욕(?)에 가득 차 있았다. 전의라고 이름 붙여도 될 것 같은, 조금은 살벌한 마음이었다. 

"남편이여, 니가 뭘하든 나는 잘 살 것이다." 

"가정법원이여, 당신이 뭐라 선고를 하든 나는 내 갈길을 가리다."


그런 마음이 선고가 다가올수록 작고, 작고, 작아졌던 것 같다. 

와 씨, 이혼기각 나오면 어쩌지. 

기각이 나오면 당장 남편이 쳐들어올 것만 같은 불안감이 자꾸 고개를 들었다. 선고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불안과 걱정에 잡아먹힐 것 같은 날들을 보냈다. 

'그래, 불안할 만하지. 괜찮아. 괜찮을 거야'

무너지려는 찰흙덩이들을 두 손 가득 움켜쥐고 모양을 잡아가는 그런 느낌의 날들이었다. 마음이 형체가 있는 것이라면 좋을 텐데. 무너지고 주저앉는 녀석을, 손으로 다시 일으켜세울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럴 재주는 없었기에 일상이 위태롭다고 느껴지는 날들을 보냈다. 일과 육아, 그 둘을 문제없이 해내기 위해 날을 바싹 세우고 하루하루를 흘려보냈다. 





선고는 6월 넷째주 수요일 오후 1시 55분에 내려진다고 했다. 2시도 아니고, 1시30분도 아닌 애매한 시각이 지금도 궁금하다. 뭘까, 5분 단위로 선고를 내리나? 아무튼 그것은 가정법원의 사정이었으므로 알 길은 없었다.  

6월 둘째주 주말. 아이는 남편집에 다녀왔고, 다녀오자마자 "다음 주말에는 아빠가 시간이 안된대"라고 말을 했다. 다음주 주말 스케줄을 미리 알려주는 이런 경우는, 굉장히 낯선 것이었다. '웬일로 이렇게 계획을?'하고 생각하다가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셋째 주말에는 아이를 보내지 않는다' 입력-기억. 그에 따른 이유나 숨은 의미 같은 건, 알고 싶지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저 스케줄로만 남편의 일상을 대하게 된다. '아이를 보낸다 혹은 아이를 보내지 않는다' 아이의 스케줄에 영향을 주는 사람. 이제 남편의 존재는 그 정도로 내게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셋째주 주말을 앞둔 금요일 퇴근 시각. 선고가 5일 앞으로 다가와 있던 그날에, 변호사 사무실에서 pdf 파일 하나를 보내왔다. 예상치도 못한, 남편의 자필 진술서였다. 

"존경하는 재판장님"으로 시작하는 문서는 a4용지 4장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변하고 싶습니다. 이제야 알게 된 아내의 아픔들, 노력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 받아들이기 힘이 듭니다."

"제가 아내에게 하였던 실수들을 조금이나마 만회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볼 수 있는 한 번의 기회를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

"아직 아무 것도 모르고 밝기만 한 제 아이에게 정신적인 고통과 마음의 아픔을 결코 주고 싶지 않습니다."

"부디 변한 제 모습으로 노력하며 살아볼 수 잇는 기회를 단 한 번만 가질 수 있게 선처를 고개 숙여 부탁드립니다."


........................ 한 줄씩 읽어가며 가장 처음 떠올랐던 문장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아주... 똥을 싸고 있네.'

이유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 떠오른 건 똥이었다. 뭐 이런 개풀 뜯어먹는, 뭐 이런 정성스런 헛소리가?! 아주 똥을 싸고 있네, 허 참. 


이런 진술서가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칠까? 영향이 있다면 나도 써야 할까?

그게 가장 궁금했기에 변호사님께 물었고,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으나 '혼인을 지속할 수 없는 이유'를 담은 진술서를 하나 쓰면 좋을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다. 

하.. 아이가 없는 주말이었다면 정성 들여 쓸 수 있었겠지만, 이번 주말은 남편이 스케줄이 있어서 아이를 보내지 못하는 그 주말이었다.... 언제 이걸 쓰지?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 사람 일부러 이번 주말에 일정 있다고 한 거 아니야? 답변 진술서 못 쓰게 하려고?'하는 생각이 연이어 들었다. 상대 사정이야 알 길은 없으나, 이런 식의 추측이 성립되자 깊은 곳에서 승부욕(?)이 활활 타올랐다. 


하? 이놈봐라? 애랑 주말 보내게 하면, 내가 진술서 하나 못 쓸까봐? 겁나 잘 써주지! 엄청나게 잘 쓰고 말테다!!! 


금,토,일. 아이를 재우고 밤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고치고 또 고쳐 a4 3장을 가득 채우는 진술서를 완성했다. 승부욕에 불타서 쓰는 글이라니. 이런 건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다. 남편의 진술서를 읽고 또 읽으며, 밤마다 혼자 불타올랐다. 하? 당신은 모르겠지만 내가 책을 냈어. 하? 이런 거 나도 쓸 수 있거든?

이 진술서의 독자는 단 한 명, 판사였다. 판사가 가장 듣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 같다. 내가 판사라면, 무슨 이야기가 가장 듣고 싶을까. 아무래도 아이의 양육에 관한 다짐을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상대와 혼인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이유를 쓰고, 이혼을 한다 하더라도 현재의 양육태도가 전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판사에게 주고 싶었다. 


처음 쓴 진술서의 시작은 "재판장님"이었다. 하지만 상대의 진술서를 다시 한 번 읽고는, 나 역시 "존경하는 재판장님"으로 글을 시작했었다. 이런 건 대체 어디서 가르쳐준 걸까. 재판장님 앞에는 왠지 '존경하는'이 붙어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남편처럼 '납작 엎드린' 어투를 쓰고 싶진 않다고 생각하며 글을 시작했지만, 쓰다보니 나 역시 '부탁드립니다', '간곡히 청합니다' 등의 문장을 쓰고 있었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전하, 성은이 망극하나이다'같은 말을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무엇을 잘못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판사에게, 이렇게 엎드려 호소하는 신세가 되었나. 자괴감도 문득문득 들었던, 그런 진술서였다. 


"왜 이혼을 원하냐는 숱한 질문들. 제가 한 문장으로 내린 결론은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앞으로의 삶에 대한 막막함에, 아이에 대한 미안함에, 많은 밤을 울면서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한 발 한 발 하루하루 지금까지 남편과 시댁에서 멀어지려 최선을 다한 것은 정말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결혼생활 동안 제가 깨달은 것은, 정신적 폭력 또한 육체적 폭력 못지 않게 사람을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결혼생활을 거치면서 저는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지'라는 생각을 매일 하는 사람으로 변해있었습니다."

"남편은 반성을 이야기하고 기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남편의 '후회없는 삶'을 위해 제 삶을 희생할 생각이 저는 전혀 없으며, 그가 말하는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위해 제 삶을 내던지고 싶지 않습니다."

"남편은 아이의 아버지이기에, 그 역할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혼과 무관하게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워갈 것이며, 아이의 감정, 대인관계, 학업 등 모든 것을 진심을 다해 지켜보고 돌봐줄 것입니다."

"엄마로서 직장인으로서 아내로서 최선을 다해 살다가, 더이상은 정말 더이상은 버틸 수가 없어서 소송을 시작한 저의 삶을 지지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남편과 멀어진 현재의 생활에 크나큰 안정감과 행복을 느끼는 이 일상을 지켜주시길 간곡히 청합니다."


주말이 지난 월요일. 자필로 쓴 진술서를 변호사 사무실에 넘겼다. 남편은 글씨를 예쁘고 큼직하게 잘 쓰는 사람이었고, 나는 초3 아들과 비슷한 필체를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재판장이라 하더라도, 남편의 진술서를 더 열심히 볼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아, 40년 살면서 글씨 쓰기 연습이나 좀 해둘걸, 하는 생각을 진술서 덕에 처음으로 해봤다. 

판사가 이 진술서를 읽기나 할까. 읽을 시간이나 있을까. 

선고는 2일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선고 D-day. 

며칠 전부터 선고날에 연차를 내야 하는지를 고민했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으리란 확신은 도무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의 방학이 다가오고 있었고 하나의 연차라도 아끼는 게 낫겠다는 합리적인 판단이 연이어 들었다. 1시즈음부터 안절부절하며 몸만 사무실에 앉아있는 상태였다. 선고 시각인 1시 55분이 되었을 때는 핸드폰만 노려보고 있었다. 언제 알려줄까. 언제 결과가 나올까. 

2시 11분. 카톡이 울렸다. 변호사 사무실이었다. 


사건에 관하여 오늘 선고내용 말씀드리겠습니다. 

1. 원고와 피고는 이혼한다. 
2. 피고는 원고에게 위자료로서 10,000,000을 지급하라. 
3. 사건본인에 대한 친권자 및 양육권자로 원고를 지정한다. 
4. 피고는 원고에게 사건본인에 대한 양육비로 2022.6.부터 성년이 되기 전날까지 월 금 900,000씩을 매월 말일 지급하라. 
5. 소송 비용은 각자 부담한다. 


'이혼한다'는 1번 항목만 읽었을 뿐인데,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드디어, 이혼하래. 와, 이혼하래. 세상에. 

벌떡 일어나 다급하게 화장실로 향했다. 사무실에 앉아 질질 우는 일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화장실 문을 닫고, 변기 위에 앉아 카톡을 다시 열었다. 승소하면 기쁠 줄만 알았는데, 한줄 한줄 읽어가면서 웃음보단 눈물이 나왔다. 그냥 눈물, 이라고 쓰기엔 부족한, 그런 울음이었다. 누군가 화장실에 들어올까 걱정해야 할 만큼, 깊은 곳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왔다. 

읽고 또 읽으며, 꺽꺽 대며 울고 또 울었던 것 같다. 누구를 향한 것인지도 모를 감사도 절로 나왔다. 가정법원 욕을 그렇게나 해대고도, 이 순간엔 그저 감사했었다. 판사님 감사합니다, 가정법원님 감사합니다, 변호사님 감사합니다, 하느님 부처님 온갖 모든 신들이여 감사합니다. 

마침 아버지의 기일이었으므로, 아버지를 향해서도 감사인사를 드렸다. 

'아빠, 보고 있어요? 도와준 거예요? 감사해요. 만세!'


선고를 받은 순간엔, 온전히 기뻤다. 2년 여의 소송이 끝났다는 기쁨과 나의 고통을 누군가에게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꽤나 크게 마음을 흔들고 지나갔었다. 그리고 화장실 거울을 마주하며 눈물을 닦고 진정을 하고 났으 땐, 의아할만큼 기분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지인들에게 선고 결과를 알릴 때마다 그들은 되물어왔었다. 

"축하할 일 맞는거지? 엄청 기쁜데 이혼을 축하한다고 하려니,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들에겐, "당연히 축하해야지. 엄청 기쁜 일이지. 승소한 거잖아!"하고 활짝 웃으며 말도 했었다. 100% 진심이었다. 하지만, 온전한 기쁨이라기엔 뭔가 찝찝한(?) 감정이 느껴졌다. 슬픔? 화? 회한? 

감정에 이름을 붙여, 부정정인 것과 긍정적인 것으로 딱 나누어 설명할 수 있을까. 분명 기쁜 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꼬리가 긴 슬픔같은 것이 함께 느껴졌었다. 


선고 당시에 글을 쓰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완전히 기뻐!라고 쓰기엔, 내 안에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기가 어려웠다. 

'뭐야, 나, 이혼하기 싫었던거야?' 스스로 되물어야 했을 정도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간절히 이혼을 원했었다. 그리고 재판 결과는 기쁨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기쁨이라 이름 붙일만한 감정은 정말 짧고 빠르게 스쳐 지나갔고, 그 후에 남은 감정이 무엇인지를 스스로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혼자 길을 걸을 때, 혼자 멍하게 앉아있는 깊은 밤에는 자꾸 눈물이 났다. 왜 이래? 싶으면서도,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던 날들.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일까. 머릿속에 있는 단어들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온갖 감정에 짓눌려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 이틀 후, 판결문 전문이 전송되어져 왔다. 선고날에는 핵심적인 결과만이 내게 전해졌고, 판사가 직접 쓴 판결문을 전달받은 건 이틀 후였다. 

판결문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 "혼인관계 파탄경위에 비추어 보건대, 원-피고의 혼인관계 파탄에는 피고의 책임이 크다"는 문장. 

뒤로는 "피고의 위와 같은 잘못으로 혼인관계가 파탄됨으로써 원고가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라는 문장이 이어졌다. 

천천히 천천히, 여러 번 이 문장을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매우 간절하게 누군가에게 연락이 하고 싶어졌었다. 그건 남편이었다. 

"거 봐. 당신 때문이잖아. 당신이 잘못했다고 법원에서도 그러잖아!!"

.............. 연락하고픈 마음을 잘도 참아냈다. 그리곤 눈물을 흘리게 한 감정의 이름이 무엇인지 깨달았던 것 같다. 그건, 너무 깊고 깊은 '원망'이었다. 


결혼생활 내내, 나는 남편 앞에서 두려움에 떨었었다. 하고 싶은 많은 말들을 참고 참으며, 아이 앞에서 싸우지 않으려 정말 최선을 다해 감정들을 내리 눌렀었다. 그렇게 눌러놓은 감정이 내 안에 그대로 쌓여있음을 판결문을 보고서야 절실히 깨달았던 것 같다. 너무 꾹꾹 눌러버려 눈물이 흐르는 데도 스스로 이유를 모를 만큼, 그렇게 꽉꽉 담아놓은 감정이 무섭도록 터져나왔다.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나도 온전한 가정을 갖고 싶었어, 나도 행복한 가정이라는 거 이뤄보고 싶었어. 내 새끼가 온전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하게 된 건 너 때문이야. 내가 이혼소송을 시작해서 이 가정이 파탄난 게 아니라, 당신이 잘못해서 그것 때문에 이 가정은 깨진 거야. 니가 너무 했잖아. 나한테 너무 했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니. 


소송이 진행되는 지난 2년 여 동안, 나는 원망을 품는 스스로를 의심했었다. 

내가 예민해서, 내가 못 견뎌서, 무책임하게 뛰쳐나와버리고 소송까지 시작한 주제에 남을 원망할 자격이 있을까? 내가 이 가정을 깨어버렸다는 죄책감. 그 감정이 너무 커서, 스스로의 원망은 '내 주제에 품어서는 안되는 것'이라 여겼던 것 같다. 판결문을 보고서야, '혼인 파탄의 책임이 피고에게 있다'는 깔끔한 문장을 보고서야, 상대를 향한 원망이 마구잡이로 터져나왔다. 이렇게 덩치 큰 미움이 내 안에 있었다니, 하고 스스로 놀랄 정도였다. 무슨 짓을 벌일지 걱정이 될 만큼. 진정해, 지난 일이야. 외치고 또 외치며 매일을 보내고 있다. 


부부상담 당시 상담사는 내게 그런 말을 했었다. 

"남편분을 마음껏 미워하세요. 미워하는 건 나쁜 게 아니에요. 그래야 편해져요."

당시에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 말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었다. 아니었다. 정말, 아니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내 안에 괴물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만큼 뾰족하게 날 서 있는 덩치 큰 미움과 원망을 마주하고 있다. 쌍욕을 하면서 남편을 마구잡이로 패버리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


나는 얼마나 왜곡된 감정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덩치 큰 감정을 눈치도 채지 못했었다. 판결문을 보고서야, 제3자가 '남편 탓'이라고 말해주는 걸 읽고 나서야, 이제야 온전한 내 감정을 느낄 수 있다니. 남편을 욕하고 때린다고 이 덩치 큰 녀석이 사라질까. 막말로 남편을 죽여버린다고 이 미움이 없던 것이 될까. 그렇지는 않으리라. 나는, 이 감정을,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걸까. 






판결문을 본 날, '남편'이라 저장되어 있던 상대의 번호를 다른 이름으로 바꿨다. 

'○○아빠'

남편이라는 단어는 나와 연결된 관계에 붙여진 이름이었으므로, 아이의 아빠로만 존재하도록 그렇게 이름을 새로 저장했다. 

누군가 왜 지금까지 바꾸지 않았냐고 그 이유를 묻는다면, '남편'의 참의미를 알려주고 싶다. 과거 한때, 그의 번호는 애칭으로 저장되어 있었다.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떤 때에는 하트도 붙어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트를 지웠고, 애칭을 지웠고, 그와 나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 '남편'만으로 저장을 해 뒀었다. 남편으로 이름을 바꾸던 날, 사실 저장하고 싶었던 진짜 이름은 '남의 편'이었다. 아아, 저 사람은 죽어도 내 편은 아니구나, 싶었던 그 어떤 싸움의 끝에 나는 핸드폰을 들고 그의 이름을 남편으로 바꿨었다. 남의 편,으로 저장해두면 그걸 본 상대가 화를 낼 수도 있었으므로. 그렇게 조사 '의'를 숨기고, 관계를 나타내는 단어로 그의 이름은 저장됐었다. 

내 핸드폰에서 10여 년 동안 자리를 차지했던 남의 편은, 이제 사라졌다. 아이의 아버지로, 그는 이제 그 역할로만 내게 남았다. 


남편이 보내왔던 카톡이 떠오른다. 선고가 내려지던 날. 선고 내용을 보고 질질 울고 있던 그 무렵에 카톡 알람이 울렸었다. 

"자기, 결과 들었지? 

축하해. 1심일 뿐이지만 마음 고생 많았을 텐데 축하해주고 싶어. ( ... ) 오늘만큼은 자기가 기분 좋기를 바랄게."


정말, 굉장한 사람이었다. '자기'라고 꾸준히 부르는 그 꿋꿋함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고, 문장력 또한 정말 배우고 싶은 것이었다. '축하해'와 '1심일 뿐이지만'을 저렇게 연결할 수 있다니. 그 다음은 어떤가. 오늘은,도 아니고 오늘'만큼은' 이라고 한정지어 버리다니. 오늘만 기분 좋고, 내일부터는 어쩌자는 말이지? 천재 문장가였다. 정말, 대단했다. 


예상은 했지만, 항소는 이어질 것 같았다. '1심'이라는 단어는 2심 3심을 이어가겠다는 것으로 들렸으니까. 

2주. 선고 후 2주 이내에 항소장을 가정법원에 제출하면, 이 재판은 다시 시작된다. 바꿔 말해, 2주만 무사히 보내면 이 선고는 '확정'된다. 2주를 무사히 보낼 수 있을까. 


그리고 때마침 장마가 시작됐다. 내가 사는 곳의 장마는 흐리다가 비가 쏟아지다가 또 어느 순간엔 햇볕이 쨍쨍 내리쬐곤 했다. 그 순서는 마구잡이로 바꼈다. 어떤 날엔 아침부터 비가 쏟아지다가 오후엔 햇볕이 쨍쨍했고, 또 어떤 날엔 하루 종일 흐리다가 자려고 누우면 비가 쏟아졌었다. 예측하기 어려운 날씨처럼 마음도 일렁인다. 

흐린 하늘을 보고 있으면 '2주 안에 항소를 할까?'하는 궁금증이 일었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있을 때면 '에이, 2심 가도 새롭게 제출할 증거도 없을텐데? 포기하겠지?'하는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고, 

비가 죽죽 쏟아지는 걸 보고 있으면 '그래... 남의편이라면, 그 사람이라면, 충분히 항소를 할 것 같아'하는 부정적인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가뜩이나 힘든 여름이었다. 아버지의 기일에 선고가 내려졌고, 20일이 채 못되는 날들을 지나면 어머니의 기일이 다가온다. 그 사이에 항소라니. 그런 건 정말 생각하기도 싫었다. 

땀과 끈적함과 열기가 가득한 이 여름이 나는 싫다. 매년 싫었었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엔 더 싫었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엔 더더더 싫었었다. 매년 여름을 버티며 가을을 기다렸었다. 청명한 하늘과 맑은 바람이 얼른 다가오면 좋겠다. 그런 상쾌함이 가득한 날들이 펼쳐지길. 예년처럼 나는, 그저 기다리고 있다. 






혹시나, 선고 결과를 궁금해하셨던 분들이 계셨다면 사과를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글이 너무 늦었습니다. 글에도 썼듯, 제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정말 몰라서, 무어라 표현해야할지를 몰라서 글쓰기를 계속 미뤄왔었습니다. 

처음 썼던 글은 정말 기쁨에 가득차 썼었고, 이후엔 자꾸 눈물이 난다는 걸 썼었고, 그 모든 걸 썼다 지웠다 하면서 발행을 미루다, 모조리 다 때려 넣은 길고긴 글로 마무리를 해버렸습니다;;


이 매거진 '이혼은 처음입니다만'은 90여 명이 구독을 눌러주셨습니다. 이 매거진만 읽겠다고 구독을 누르시는 데는 각자의 이유들이 있으시리라 짐작하면서, 나름은 꽤나 책임감을 가지고(?...... 이번처럼 꽤나 미룬 적도 많았지만;;;;) 글을 써 왔습니다. 

이대로 선고가 확정되어도 아이와의 이야기 등을 써 나갈 예정입니다. 부디 선고가 확정되어, 더이상 소송이니 가정법원이니 하는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기를 저도 꽤나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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