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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Oct 01. 2022

(35) 방학이 지나갔다, 만세!

8월에 썼던 글인데.. 마무리를 이제야.....합니다....

으악! 다음주가 방학이라니! 

달력을 보다 소리를 지를 뻔 했다. 항소와 기일시즌 등을 보내며 둥가둥가 정신을 놔 버렸었고, 정신줄을 붙잡으려 달력을 보니 방학이란 놈이 정말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모든 학부모에게 방학은 버거운 것이리라. 나 또한 방학이 다가오면 불안초조해졌고, '시간아 빨리 가라!!'를 외치며 방학들을 보내곤 했었다. 이번 방학은 특히 무게감이 달랐다. 2학년 때까지는 이용할 수 있었던 학교 '돌봄교실'. 가기 싫다는 아이의 말을 못들은 체하고 보내면, 그래도 오전 시간은 어떻게든 '돌봄'이 해결됐었다. 지금 아이는 3학년. 올해 여름방학엔 그마저도 이용이 불가능했고, 아이의 오전시간은 돌봄이 없는 공백상태로 완전히 비어버렸다. 8시20분에 내가 출근을 하고 나면, 학원이 문을 여는 시각인 12~1시까지 아이는 혼자 있어야 했다. 10살 아이를 매일매일 혼자 두고 나가기엔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점심은 어쩔텐가. 대책이 필요해보였다. 


매주 야근 때 와주던 이모님께 말씀을 드려보려 했었다. 오전에도 혹시 와 주실 수 있는지를. 그런 마음을 먹은 게 방학 일주일 전이니 너무하다 싶긴 했었다. 그런데 웬 걸. 내가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이모님이 먼저 할 얘기가 있으시다며, 매주 1회 오는 것마저 그만 두셔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꺼내셨다. 아? 이모님을 붙잡을 수도 없었다. 그만 두셔야만 하는 집안 사정을 듣고 있자니, 도와달라는 이야기조차 꺼내기가 힘들었다. 방학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 새로 사람을 구한다 한들, 월~금 매일의 비용을 계산해보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출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월~금 오전시간과 월요일 야근까지.. 아이를 케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과 불면과 망설임 끝에 내가 택한 방법은 아이 아빠에게 연락해보는 것이었다. 그 집엔 할머니와 삼촌들이 계시니, 어떻게든 해결이 되지 않을까 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 월화 1박2일만 그쪽에서 아이를 맡아준다면, 야근도 해낼 수 있었고 시터 비용도 아낄 수 있었다. 다른 모든 방안보다 가장 '이성적'인 선택지인 건 분명했지만 정말 망설여지긴 했다. 별거 초기였다면 절대로 택하지 않았을 방안이었다. 지출이 얼마가 되든, '흥! 나 혼자 다 할 수 있거든. 니 도움따위 필요없거든!'하는 마음을 내세워 연락하지 않았을 터였다. 오기인지 자존심인지 고집인지 이름 붙이기도 애매한 그런 내 감정들을 앞세워 어떻게든 버텼을 테지만, 이제 그런 건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일단 물어보자. 물어보고 안된다고 하면 그때 다른 방법을 찾자. 그게 합리적이야.'


괜한 오기에 기운 빼기도 싫었다. 아이를 혼자 두거나, 돈을 쓰거나, 아이 아빠에게 연락하거나 하는 선택지들 사이에서 현실적으로 아이 아빠보다 나은 선택지는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마음같은 건 꾹꾹 밟아 누르고 연락을 해보는 게 맞으리라. 그리고 남편은, 생각보다 흔쾌히 시간조율에 응해왔다. 

"방학인데 방법이 없지, 혼자 있는 것보단 내가 데리고 갈게."

'정말? 정말 그래줄 수 있어?'라고 날뛰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짐짓 태연한 척 연기를 했다. 

"그래? 괜찮겠어? 안되면 빨리 말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니까."

나는 감정을 매우 티내는 호들갑스러운 사람이지만, 남편 앞에서는 의아할만큼 모든 감정을 누르게 되는 것 같다. 결혼생활 당시와는 또다른 상태의 억누름. 상대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상대에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불편한 느낌이다. 내 감정을 드러내는 건 어떤 '교류'의 문을 여는 느낌이랄까. 기쁨도 슬픔도 모두 누른 채 오로지 일정과 시간표만을 말한다. 회사 업무로 만난 관계도 이렇게 대하지는 않는데, 가끔 통화를 할 때마다 기계음같은 내 목소리에 스스로도 놀랄 정도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그때 시간이 되는 거야 안되는거야? 애매하게 말하지 말고 다음주까진 알려줘."


이따위 태도로 누군가를 대한 적이 있었을까. 길다면 긴 40 평생을 돌아봐도 그런 적은 없었다. 그랬기에 이런 태도를 취할 때마다 스스로가 괴롭고, 짐작컨대 이따위로 행동하는 나를 바라보는 남편 또한 충분히 언짢으리라. 그럼에도, 그럼에도, 결국 이런 대화를 택하게 된다. 기대따위 주고 싶지 않으니까. 양육에 대한 협조, 그리고 '그 다음' 무언가를 기대하는 상대에게 희망의 여지를 주기는 싫었으니까. 내 감정이, 내 웃음이 어떤 긍정적인 시그널이 될까봐 무표정과 싸가지없음을 억지로 장착하게 된다. 기대감이 있는 상대에게, 기약없는 희망이란 오히려 고문이 될 수 있으니까. 그런 희망고문을 하느니 차라리 이 세계의 나쁜 년, 더럽게 싸가지 없는 인간쯤이 되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나는 당신과 절대로 절대로 가까워지지 않을거야. 충분히 아팠으니까. 우린 여기까지야.'

단어 하나와 말투에 이 모든 '마음'을 담아낸다. 과거의 기억들을 소환해, 현재의 대화에 끌어다 쓰는 기분이랄까. 누군가를 이렇게 대할 자격이 내게 있을까. 아이 아빠인 사람을 이렇게까지 매몰차게 대해도 되는 것일까. 마음의 불편함따위 모른체하며, 참 한결같이 꾸준히 이런 태도를 취하고 있다. 


어쨌든 일요일 밤에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가고, 월요일 종일을 함께 보내고, 화요일 낮 학원으로 아이를 데려다 주는 것으로 스케줄이 정리됐다. 야근 때도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최상의 스케줄이자 도우미 비용도 아낄 수 있는 방법. 아이는 방학동안 매주 2박3일을 남편 집에서 보내게 됐다. 

이런 식으로 방학을 보내고 있다고 말하면 주위 반응이 극과 극으로 나뉘곤 했다. 


"애 아빠니까 당연히 봐줘야지. 혼자 둘 수는 없잖아. 당연한 거 아니야?"

VS

"그 사람이 안 도와줬으면 어쩔 뻔 했어? 거절해도 되는 건데, 진짜 고맙다."


고백건대, 내 마음은 후자에 가까웠다. 매우 엄청나게 고마웠다. 이혼가정의 면접교섭은 2주에 1회 1박2일, 방학 때는 2주에 1회 2박3일인 것이 일반적이라고 들어왔던 터였다. 일반적인 그 기준들과 무관하게 아이를 봐준다는데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소송을 질러버린 내가 도움을 청하는데, "모르겠거든"하며 거절한다해도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남편의 호의(?)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었다. 


이 무렵, 마음이라는 게 참 도시락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칸막이가 잘 나뉘어져 있는 반찬통. 한 칸에서는 상대를 향한 뿌리깊은 미움과 원망이 여전히 달달달달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다. 그럼에도 다른 한 칸에는 '고마움'이라는 마음이 자리를 잡게 됐다. 신세를 진 기분이랄까. 아이를 데리러 온 남편을 마주했을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싫어! 나 저 사람 싫어!'하는 마음과 '아아, 2박3일이나 아이를 맡아주시고 야근도 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분'하는 마음이 함께 들었다. 그건 진짜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다. 중간은 없는 극단의 감정들이 한 사람을 향하고, 나는 늘 그래왔듯 그저 퉁명스럽게 그를 대할 뿐이다. 

어쩌면 '일반적인' 부부사이란, 이 모든 것이 뒤범벅된 상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함께 지낸 세월이 쌓이고 쌓여가면 극단적인 감정들도 무뎌지고 합쳐지지 않을까. 그래서 정(情)이니 의리니 이런 것으로 퉁쳐지는 게 아닐까. 마구 흔들려 뒤섞여 처음의 맛을 알 수 없게 된 도시락반찬처럼, 그렇게 상대를 바라보게 될 것 같다. 

나는 일반적이지 않은, 이혼과정의 부부관계에 있으므로 이 감정들이 섞일 일은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움은 여전했고, 고마움도 그대로였다. 확실한 건, 단지 고마움만으로 함께 살아버릴 수는 없다는 것. 고마운 이 상황이 지나고 나면 또 미움이 가득하게 되지 않을까? 무슨 감정이 들어앉든 상대와 '함께' 뭘 어쩌고 싶다는 생각은 정말 눈꼽만큼도 들지 않았다. 미움은 미움대로, 고마움은 고마움대로 간직한 채, 양육협조자로만 그렇게 자리를 잡아갔으면 좋겠다.......................... 항소 좀 취하해라. 나쁜놈아! 






아이는 월화를 남편집에서 보내고, 수요일엔 연차를 낸 나와 함께 집에 머물렀다. 목금요일에는 친구의 친정부모님이 도움을 주셨다. 하하...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은 정말 진실인 것 같다.  아이의 오전 시간을 채우기 위해, 나의 월급을 지켜내기 위해, 모든 인맥을 탈탈 털어넣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빚을 지며 살아가는 기분도 들었다. 어쨌거나, 방학은 그렇게 흘렀다. 


평일 일정을 맞추고는, 낯선(!!) 열정에 마구 불타오르기도 했었다. 

“방학!! 추억을 만들어주고야 말겠다!!!!!”

내 유년시절을 돌아보건대, 여행을 간 기억이 전혀 없었다. 자라는 내내 스스로가 안타깝게 여겼던 부분. 아이에게는 강제로라도 추억을 쌓아주고 싶었다. 아이는 집에서 뒹굴거리며 게임을 하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그렇게 아이를 집에 두는 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쩌면 이제야 '제 정신'이라는 것이 돌아오는지도 모르겠다. 작년까지의 방학? 어떻게든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내 시간'을 가지려 용을 쓰고 애를 썼었다. 에너지가 있다면 글을 쓰고 말래, 애는 모르겠고, 일단 내가 좀 살래. 그런 마음에 사로잡혀있던 날들이었다.

이혼판결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시간이 흘러 힘이 생긴 것인지,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번 방학은 좀 '알차게' 보내고 싶었다. 남편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은근히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 나름 열심히 여기저기 다녀! 모두 아이를 위한 거야! 나 멋지지! 이 정도면 좋은 엄마 아니야?!”

아이를 위한 것인지 자기 증명을 위한 것인지, 자격지심인지 어린시절 한풀이인지, 아무튼 알 수 없는 이유로 어디로든 가려고 애를 썼다. 더위도 질색이고 사람이 붐비는 것도 질색인 내가, 더위와 사람이 뒤섞여 있는 여름휴가 같은 걸 열심히 계획하고 있다니. 거 참, 엄마란 위대하구나, 하는 생각도 새삼스레 들었다. 


그럼에도, 단 둘의 여행은 두려웠다. 바야흐로 방학시즌. 어디를 가든 가족단위가 많을 텐데, 가족적인 분위기가 넘쳐나는 숙소에서 무엇을 해야할지가 두려웠다. 낮시간이야 놀면 될 일. 밤을 어쩌나,가 걱정이 됐었다. 누군가가 볼 것 같고, 누군가가 수근거릴 것 같은 기분이랄까. '어머, 아빠가 없나봐. 단 둘이 여행을 왔나봐' 누군가가 그런 상상을 하며 우리를 볼까봐, 우리가 초라해보일까봐, 그런 게 너무 두려워서 단 둘만의 여행은 아직 용기가 나지 않는 것 같다. 


이럴 때 도움을 청할 건? 친구였다. 친구1+아이와는 수영장이 있는 펜션으로 여행을 다녀왔고, 친구2+아이와는 바닷가로 1박2일 여행을 다녀왔다. 이만하면 멋진 여름계획이지 않은가! 스스로 뿌듯해하며 친구들과 다녔다. 

여행을 가서 확실히 느낀 건, 내 안의 자격지심(?)이 생각보다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이었다. 전혀 꿀릴 것 없는(?) 이런 멤버로 여행을 가서도, 결국 남편의 빈 자리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만났다. 


남편과의 여행이 익숙할 친구들이, 남편 없는 이런 여행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기를 나는 바랐다. 남편이 할 만한 짐들기 같은 것들은 모두 내가 도맡아서 불편하지 않게 해야지, 떠나기 전부터 생각했었다. 친구가 '역시 남편 없는 아이들과의 여행은 힘드네'하고 느낀다면, 다음을 기약하기 어려울 테니까. 즐거운 기억이 남아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테니까. 이런 글을 써두면, 무슨 그런 생각을 해!하고 말을 할 사람들인 걸 잘 알면서도, 스스로가 작아지는 건 사실이었다. 나와 내 아이를 위해 함께 여행을 떠나준 고마운 친구와 그 아이까지, 어떻게든 불편하지 않기를 바랐었다. 


친구와 아이들을 방에 두고 짐을 옮기러 나선 길. "별 거 아냐. 내가 할게" 큰소리쳤고, 힘도 세다고 자부했었지만, 딩동- 눈앞에서 열리는 엘레베이터 안을 보고는 주춤거리게 됐었다. 펜션의 입실시간. 그곳엔 나처럼 짐을 옮기기 바쁜 '아빠'들이 가득했다. 엄마가 짐을 옮길 수도 있는 것이고, 엄마들끼리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오는 것도 흔한 풍경일텐데, 나는 혼자 움츠러들고 있었다. 수영장에서도, 아빠와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절로 내 아이의 표정이 신경쓰였다. 아이는 물놀이에 정신이 팔려 아빠니 엄마니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지만, 나는 홀로 아이의 눈치를 살폈다. 어떻게든 아빠들을 바라보지 않기를. 빈 자리를 느끼지 않기를. 혼자서 동동거리며 휴가들을 보냈다. 아이가 별 생각이 없으면 나도 별 생각이 없어지면 되는 것인데, 그게 참 어려웠다. 이런 마음이, 아이에게도 전달될텐데. 남편 없는 나만 즐거운 것일까봐, 아빠없는 아이의 기분을 자꾸 살피게 된다. 한해 한해 경험이 쌓이면 나아질까. 어쩌면 아이는 이미 받아들여버린 이 '부재'를, 나만 못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여름이었다. 펜션과 바다를 다녀오고, 미술관과 과학관과 놀이동산을 다녀온 그런 여름. 그 중간 어디쯤에선가 저질체력의 내가 몸살이 날 정도의 일정이었지만, 어쨌거나 그런 여름을 무사히 보냈다. 아이에게 이 여름은 추억으로 남을까. 언젠가 어른이 되어서도, 거기 갔었는데, 엄마 진짜 애썼네, 하며 기억해 줄까. 

아이를 재운 밤. 아이가 써둔 일기장을 펼쳐봤었다. 


"나는 **해수욕장에 갔다. 놀다보니까 파도를 잘 타게 됐다. 바다를 돌아다니다 보면 나뭇가지, 미역, 모자반, 쓰레기(비닐봉지, 마늘 등)이 떠밀려오는데 엄청나게 거대한 모자반을 찾기도 하고, 바닷물을 실수로 마셨는데 너무 짰었다. 엄마랑 바다에 있는 경계선을 넘어 3걸음 갔는데 큰 파도가 왔지만 엄마가 나를 들어줬다. 너무 기뻤다."


이 일기를 읽고는 눈물이 찔끔 났다. 특히 '나를 들어줬다. 너무 기뻤다' 부분을 여러 번 읽었다. 아이의 일기 대부분이 '너무 기뻤다' 혹은 '너무 슬펐다' 둘 중 하나로 마무리 되는 걸 잘 알지만, 그럼에도 이 일기의 '너무 기뻤다'는 다르게 다가오는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엄마가 들어줘서 기뻤다고 쓰여 있는 문장을 보니, 하하, 내가 너무 기뻤다. 

해수욕장. 아이가 일기에 적어둔 큰 파도 앞에서 나는, 사실, 아이를 들어주느라 휘청거렸고 '이놈이 엄청 크고 무거워졌구나' 놀라며 겁을 먹기도 했었다.

'내가 이 아이를 가뿐히 들어, 보호해 줄 수 있는 날이 정말 별로 안 남았구나'가 체감이 됐달까. 내가 자칫 균형을 잃으면 함께 넘어질 수 있겠구나, 너는 계속 자랄테고 나는 더 버거워질텐데 앞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을까,가 두려웠었다. 얼마나 더 강하고 얼마나 더 튼튼해져야, 너를 안전히 보호해줄 수 있을까.  아무리 큰 파도 앞에서라도 너를 보호해줄 수 있으면 좋을텐데. 아무튼 나는 지금보다는 좀 더, 강해져야 할 것 같았다. 








"와, 역시 집이 최고다."

여행 후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운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불쑥 말이 나왔다. 이 말이 지금까지도 계속 생각이 난다. 집이 최고, 역시 집이 최고. 

결혼 당시의 기억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결혼 생활 내내 나는, 집을 매우 싫어했었다. 출근하면서 기뻐했고, 퇴근하면서는 시무룩해졌었다. 친구집이나 다른 곳에 다녀올 때면 늘 진심으로 '진짜 집에 가기 싫다'고 생각했었다. 가출청소년의 마음을 절절히 이해했던 날들이랄까. 나가고 싶다, 불편해, 이곳에서 나가고 싶어, 매일같이 생각했었다. 여름휴가 같은 건 사라지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회사에 출근해야 살 것 같은데 회사가 문을 닫는다니. 아악, 계속 집에 있어야해. 으악, 남편도 같이 있어. 나 어떡해. 남편과 여행을 가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여행지에서의 좋은 기억도 별로 없었다. 싸우고 싸우고 싸웠던 날들. 그런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다한들, 눈치를 보는 매일이 이어졌었다. 그 시절 나에게 최악의 공간은 집이었다. 


참, 새삼스러웠다. 시간이 지나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은 기분. 무의식중에 툭 "집이 최고다"라는 말을 뱉을 수 있는 상황이 오다니. 편안한 집이란 정말 중요한 거구나, 깊이깊이 느꼈다. 베개에 머리를 부비적거리며 충전이 되는 듯한 순간. 놓치고 싶지 않은 편안함, 안락함, 집 만세, 침대 만세.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평화로움을 마음껏 가득가득 느꼈다. 집은 그냥 '사는 곳'이 아니라, 충전을 하는 곳이었구나. 세상사가 아무리 고되어도, 아아, 저곳에만 가면 쉴 수 있어 하는 공간이 있다는 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 


그 순간, 내 곁에는 아이가 쿨쿨 잠들어 있었다.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아이에게 이 집은 어떤 공간일까,가 궁금했다. 너는 아마도 자라는 내내, 아빠집 엄마집 두 집을 오가며 지내게 되리라. 각각의 집 모두가, 양쪽 모두가 너에게 충전의 공간이 되면 좋을텐데. 양쪽 집 모두가 너에게 불편하면 어쩌지. 나와 지내는 이 집이 아니어도 좋으니, 둘 중 한 공간이라도 편안한 곳이 있기를.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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