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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Feb 08. 2023

(37) 우린 끝까지 참 달랐다-2

앞글과 이어집니다

남편도, 이렇게나 다른 우리를 깨달아야 했다. 

언제까지 “우리가 어떻게…” 같은 말을 하고,  언제까지 그따위 아련함을 품고 있을 텐가. 무책임했던 당신을 내가 얼마나 미워했는지, 미워하는 마음마저 버리려 얼마나 용을 쓰고 있는지 남편도 알아야 했다. 말랑말랑한 남편의 감정에 절대로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무려 2심을 겪고 있는 원고와 피고인 우리에게, 아련함 따윈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나는, 결혼생활이 전혀 그립지 않아. 떠오를 때마다 끔찍해. 내 인생에서, 나를 가장 미워했던 시간이었어. 그런 시간을 준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야. 미워하고, 미워하고….”

그렇게나 마음을 다잡았지만, 바보같이도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왜, 그 시절 이야기를 하면 이렇게나 쉽게 울어버리게 되는 걸까.

“내 30대를 쏟아부은 가정은 너 때문에 망가졌고, 아무 죄도 없는 애가 피해를 입었어. 내 말을 이해했다면 양육에 최대한 협조해줬으면 좋겠어.”


북적이는 한낮 커피숍에서 우리는 마주 앉아 울었다.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울었고, 나는 원망을 쏟아내며 울었다. 이 나이에, 이 덩치에, 참 어울리지 않는 짓이었지만…, 우리는 그랬다. 잠시의 침묵 뒤 나는 나가자고 말을 했다. 아이의 하원 시각이 다가오고 있었다. 문 앞에서는 남편이 말할 틈도 주지 않은 채 돌아서며 말했다. 

“나는 이쪽으로 갈게.”

그렇게 우리는, 각자 삶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후 항소를 취하했다는 남편의 연락이 왔다. 

“… 아프지 말고 잘 살아. 미안했어. 진심으로 미안해. 당신에게 지키지 못한 많은 것들이. 당신을 끝까지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옮긴 문장 앞뒤로 더 길고 긴 문장들이 이어졌다. 역시 그는, 나보다 더 문과형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덜 문과형인 나는 짧게 답을 보냈다. 

“항소 취하 약속 지켜주신 덕분에 더 스트레스 안 받게 되어 좋습니다.”

……. 사실, 남편에게 하고픈 말은 따로 있었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어서 전하지 않았을 뿐. 


‘우리는, 자기 자신을 지켜야 했어.’


돌아보니 그랬다. 남편은 본인을, 나는 나를, 그렇게 각자 자신을 지켜냈어야 했다. 남편은 자신의 책임감과 의무를 놓아서는 안 됐고, 나 역시 내 생각과 의견을 버려서는 안 됐다. 나를 지켜야 하는 건, 바로 나였다. 내 생각을 말해야 했고, 남편의 위협 앞에 겁내지 말았어야 했고, 움츠러 들어서는 안되는 거였다. 나는 남편의 강함을 핑계 삼아 나를 방치해 버렸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외면해 버렸다. 자신을 놓아버린 이들의 관계가 온전할 리 없었다. 본인이 아닌 다른 것이 되어버린 상태로 관계를 정상적으로 이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니 우리는, 불행했던 거였다. 


그래서 이혼을 택했던 것 같다. 나라는 인간을 지켜내기 위해서. 강함 앞에 굴복하는 내 모습도 싫었고, 나를 옥죄려고만 하는 당신도 싫었다. 나는 나를 싫어하게 됐고, 당신도 더 피하게 됐었다. 그렇게 사는 게, 정말 싫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을 지키며 살아야 했다. 




2년 1개월 만에 길고 긴 소송이 마무리됐다. 결혼한 지는 11년째, 별거는 3년째, 아이는 3학년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다. 1심의 원고였던 내 입장에서는, 상대의 항소 취하로 이 과정에 마침표가 찍히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했었다. ‘승소’를 했다기보단, 상대의 허락을 받은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으로 끝을 내느니 소송을 다시 이어가겠냐, 누군가 묻는다면…. 어우, 무슨 그런 말씀을요. 그건 절대 아니었다. 더이상은 그놈의 우편물을 받지 않아도 되고, 반차를 쓰며 법원을 들락거리지 않아도 되고, 명령이니 선고니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현실적인 장점들이 훨씬 더 컸다. 


작은 다짐을 하나 덧붙이자면…, 앞으로의 인생에 법원과 엮이는 일은 정말 만들지 않으리라. 죄도 저지르지 않고, 소송에도 엮이지 않으며, 법원이라는 곳에서 멀리 멀리 떨어져 내 삶을 살아가고 싶다. 아…, 어쩌면 가정법원은 이런 깨달음을 주려 그런 절차를 운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절대 죄를 짓지 않겠다는 다짐을 이렇게나 굳건하게 하는 나를 보며, 가정법원의 깊고 깊은 뜻을 헤아려본다. 





아이를 남편에게 보낸 주말. 나는 홀로 조촐한 파티를 했다. 선고가 나왔을 때 했던 그대로, 4개 11000원짜리 맥주를 편의점에서 사서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비웠다. 캔 하나에 추억과 캔 하나에 사랑과 캔 하나에 원망과 캔 하나에 쓸쓸함과…. 아무튼 그런 것들을 곱씹고 곱씹으며 술을 마셨다.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햄을 안주로 곁들였다. 그 햄이, 마치 우리 사이 같았다. 주어진 기간이 다 끝나버린 관계. 유통기한 안에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한 그런 관계. 


술에 취해 잠든 그 밤, 꿈을 꿨다. 꿈 같은 건 잘 기억하지도 못하는 내가, 그날은 팔을 퍼덕거리는 바람에 놀라 눈을 떴고, 꿈의 잔상을 떠올리며 꽤 오래 멍하니 누워있어야 했다. 이 상황에 이런 꿈이라니 신기하다, 싶은 기분. 


꿈 속의 나는, 별거 전 살던 집에 가 있었다. 지금의 집으로 옮긴 가구들이 예전 자리에 그대로 있었지만, 이상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나는 서랍에서 내 물건들을 꺼내 쇼핑백으로 옮겨 담는 중이었다. 남편은 옆에서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울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나는 매우 신이 나 집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다이어리(심지어 올해 사용 중인 다이어리였다. 그게 왜 그 집에 있었을까)와 어린 시절 사진들을 쇼핑백에 담았다.


그리고는 온 방 이런저런 가구의 서랍들에서 브래지어를 마구 꺼내 쇼핑백으로 옮겼다. 그 개수가…, 진짜 엄청났다. 여러 개 쇼핑백에 가득가득 나눠 담아야 할 만큼. 왜 하필 브래지어였을까,는 지금도 궁금하다. 글쎄. 부부란 것이 서로의 속옷 사정까지 다 아는 그런 사이라는 의미였던 걸까. 이제는 내 브래지어를 볼 일이 없는 사람의 집에서 내 물건을 몽땅 다 싸들고 나와 버리는 그런 이상한 알뜰살뜰함이 참 나답게 느껴지기는 했다. 


아무튼 꿈 속의 나는 그것들을 양손 가득 챙겨 들고, 그 집 문을 나섰다. 캄캄한 문 안에서 환하디 환한 바깥으로 한 발 내딛었을 때, 꿈에서도 어찌나 홀가분한지 밝게 웃어버렸다. 옆에서 남편이 “그렇게 좋냐” 물었고, 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몇 걸음 걷던 나는, 문득 돌아서서 남편 쪽을 바라봤다. 문 앞에 멈춰선 남편은 어깨쯤으로 팔을 들어 작게 작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잘 가라는 듯이. 나는 쇼핑백이 주렁주렁 걸린 팔을 머리 위로 쭉 뻗어 신나게 흔들어댔다. 팔을 흔들며 정말 진심을 다해, 여러 번 인사했다.

 


“안녕-, 잘 살아. 나도 잘 살 거야.”

“안녕-, 이제, 진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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