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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Feb 22. 2023

(38)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

드디어, 드디어 !!!! 

이혼 후 구청에 신고를 해야 한다는 걸, 어디선가 들은 기억은 있었다. 협의이혼이든 소송이혼이든 가족관계 처리를 위한 절차가 따로 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항소 취하 후 며칠이 지나서는 법원에 전화를 걸어 묻기도 했었다. 

“구청에 신고를 해야 한다는데, 필요한 서류를 어디서 받을 수 있나요?”

법원에서는 “항소 취하가 접수된 직후라서 처리가 안 끝난 것 같은데, 며칠 지나서 받아가실 수 있을 거예요”하고 말을 했었다. 


며칠 후가 언제인지 나는 알 수 없었고, 처리라는 것이 다 끝나면 또 우편물 같은 걸 보내주겠지, 하고 혼자 생각했었다. 그리고는 법원의 우편물을 기다리다가…, ‘신고해야 해’하는 생각을 놓아버렸었다. 그리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신고를 반드시 해야 한다면 누군가 연락을 주겠지. 이혼하는 사람들 모두가 절차를 꿰뚫고, 알아서 구청에 갈 리가 없잖아?’


거 참, 안이한 생각이었다. 연말이 다가오고서야 문득 구청을 떠올렸다. 깊은 밤, 올 한해를 돌아보며 야심차게 새해 계획을 세우던 중이었다. ‘아아…, 올해 드디어 소송이 끝났지, 수고했다. 나 자신!’하는 생각을 하자마자, ‘어라? 나 구청 안 갔는데’하는 깨달음이 왔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소송이혼 신고시 필요한 서류는 두 가지였다. 판결문 원본과 확정증명원. 둘 모두 가정법원에 가야 받을 수 있는 서류라고 했고, 단지 서류를 받기 위해 반차를 쓰기는 망설여졌기에 고심 끝에 변호사 사무실로 연락을 했다. 아아…. 처음 변호사 선임비를 낼 때만 해도 ‘400만 원이라니! 너무 비싸!’ 생각했었지만, 2년 동안 소송이 이어지면서 낸 돈의 두 배 세 배쯤의 일을 맡기는 기분이 컸었다. 심지어 항소까지 이어지며 자꾸 연락을 해야 했기에, 변호사님께는 미안한 마음이 가득해 연락하기가 꺼려졌었다. 하지만,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 반차를 아끼려는 소박한 욕심은, 미안함마저 누를 수 있는 것이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우편으로 서류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서류를 받아들고 구청을 찾았다. 혼인신고 때 와보고 처음이니, 1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거였다. 그때는 둘이 왔고, 이제는 혼자 온 곳. 이런저런 표지판을 아무리 훑고 다녀도 ‘이혼 신고’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다 눈에 띈 것이 ‘가족관계 등록증명’. 그 글씨만 보고 화살표를 따라갔지만…, 의아할 만큼 사람이 많았다. 가족관계 신고를 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고? 하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사람들이 북적였다. 

“여권 만들러 오셨어요?”

너무나 친절한 분이 웃으며 말을 걸어주셨기에, 별 고민 없이 나도 질문을 던졌다. 

“이혼 신고는 어디로 가야 하죠?”
 “아…, 이혼, 이혼은…. 자…, 잠시만요.”

여권 신청을 안내해주던 분께, 본의 아니게 너무 심각한 단어를 던져버린 것 같아 미안할 만큼의 반응이었다. 그분은 창구에 앉아 계신, 좀 더 나이가 드신 분께 다가가 나를 보며 속닥속닥 귓속말을 하셨고, 앉아계시던 분은 벌떡 일어나 “이혼은, 저- 반대쪽 창구로 가시면 됩니다”하고 알려주셨다. 여권을 신청하던 분들이 나를 바라보는 기분이 드는 건…, 분명 기분 탓일 것 같다. 




그분이 알려주신 저- 반대쪽 창구는 역시나 한산했다. 뭔가를 신고하려면 서류가 있을 것 같았기에 앞쪽에 비치되어 있는 서류들을 하나씩 살폈다. 4종류의 서류가 나란히 누워있었다. 


출생신고서, 사망신고서, 혼인신고서, 이혼신고서. 


출생신고는 이미 완료했고, 혼인신고도 이미 완료했고, 언젠가는 사망신고도 하게 될 테고…. 주루룩 서류들을 보고 있자니, 나는 가족관계 분야의 4종 서류를 다 쓰는 그런 존재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모든 사람이 출생-사망은 할 테니 2장, 결혼하면 3장, 이혼까지 거치면 4장….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하지. ‘그랜드슬램 달성’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혼신고서를 꺼내 들고 하나씩 채워갔다. 내 개인정보만으로 채울 수 있는 서류가 아니었다. 나와 남편의 주민등록번호와 함께 양측 부모님의 주민등록번호까지 기재해야 했다. 문득 의아함이 들었다. 이혼 때만 이걸 적나? 혼인신고 때도 부모님 주민등록번호를 적었었나? 옆 칸에 있는 혼인신고서를 스윽 훑었다. 역시나. 혼인신고서에도 부모님 주민등록번호를 적어야 했다. 결혼이란 두 집안의 결합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서류에서부터 뉘집 자식인지를 적도록 해두다니…. 궁금하긴 했다. 본인 인적사항만 써도 충분히 처리가 될 것 같은데, 굳이? 싶은 마음이랄까. 


내 부모님의 주민등록번호를 써야 하는 자리는, 심하다 싶게 깔끔도 했다. 뭘 찾을 필요도 없었다. 사.망, 사.망. 네 글자 한글을 적는 것으로 끝. 

문제는 남편 부모님의 주민등록번호였다. 그런 걸 내가 알 리가…, 없었다. ‘연락을 해야 하나, 안 알려주면 어떡하지’를 고민하던 그 순간. 문득 옛날 옛적 연말소득공제를 위해 핸드폰에 두 분의 주민등록번호를 저장해뒀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게 언제였더라, 아직 남아있나? 와, 세상에. 그게 지금 딱 떠오르다니. 나 천재인가봐. 정말 ‘찐’으로 감탄하며 핸드폰을 뒤적였더니 놀랍게도 남아있었다. 그 메모가. ‘목 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속담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는 정말 목 마른 놈이었나보다. 얼마나 급하면, 얼마나 진심으로 원했으면 이 기억을 찾아냈단 말인가. 


그 아래로 이어지는 건 ‘친권자 지정’란이었다.  1.부  � 2.모  �3.부모 중 선택하게 되어 있었기에, 나는 �를 택해 그 위로 정성껏 브이표를 그렸다. 그깟 브이표가 뭐라고 대충 그려버리면 될 것 같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스윽 그려지지는 않았다. 힘주어 꽈악. 잘 키워보려 최선을 다할게, 나름은 노력할게, 하는 다짐을 절로 하며 브이표를 그렸다. 


애써 채운 서류들을 직원에게 건넸다. 서류를 받은 직원은, 이 서류에 매우 익숙한 듯 보였다. 꼼꼼히 서류를 살펴본 후에 “저-기에 가서 앉아 계세요”하고 말을 했다. 멍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을 때, 직원이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뭐지? 뭐가 잘못됐나? 직원의 눈동자가, 아까와는 다르게 매우 흔들리고 있었기에 덩달아 나도 불안해졌다. 아직 안 끝났나요, 항소 취하가 또 취하됐나요, 뭔데요? 뭐가 더 남은 건데요?

직원분이 “저…”하고 어렵게 말을 꺼내길래, 나 역시 “네에…?”하고 귀를 기울였다. 


“확정 날짜에서 3개월 지난 거…, 알고 계시죠?”

“아…, 소송이혼도 신고 기한이 있나요?”

“네. 소송이혼도 3개월 내에 신고를 하셔야 하는데, 기한을 넘기셔서 과태료가….”

과태료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뭐랄까. 절대로 곱게 보내주지는 않겠다는 가정법원의 마음처럼 느껴졌달까. 녀석, 끝까지 이러네. 거 참, 깔끔하게 바이바이를 못하네. 


신고기한이 있다는 이야기 역시 어디선가 주워들은 기억은 있었다. 협의이혼에만 해당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건…,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것 같다. 직원의 설명에 따르면 소송이혼도 최종선고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구청에 신고를 해야 하고, 이후부터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했다. 소송을 하고, 선고를 받고, 이후 반드시 신고를 해야 하는데 법원이 기한을 알려주질 않았네? 그리고는 과태료를 내라네? 


심지어 나는 항소를 당했었고, 항소 취하 날짜에서는 아직 3개월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1심 확정날짜를 기준으로 3개월을 계산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건, 뭔가 이상하긴 했다. 항소 중일 때 구청에 와서 이혼신고를 해야 한다는 건가…? 확실히 좀 이상했지만, 그런 걸 따지고 들만한 의지도 기력도 없었다. 그저 이놈의 신고라는 걸 1초라도 빨리 끝내고 싶었다. 제발 좀 끝냅시다! 네? 가정법원님, 저 좀 놔 주세요…. 


직원의 요청대로 3만 2천원을 현금으로 건넸다. 직원이 건네는 매우 밝은 톤의 “감사합니다”를 듣자니, 이 과태료 부과 과정에서 실랑이가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는 예상도 들었다. “감사합니다”하는 인사에 내가 묻고 싶은 건 단 하나였다. 

“이제 끝난 건가요? 가도 되나요?”

구청 직원은 답했다. 

“네. 며칠 후에 신고 완료 연락이 갈 거예요.”





직원분이 말씀해 주셨던 대로 며칠 후, 구청에서 카톡이 왔다.

“가족관계신고가 처리되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전 과정이 끝난 듯했다. 처리가 되었다니, 이대로 완료라는 말이겠지. 이 모든 과정을 거쳐서…, 우린 ‘남’이 됐다. 나의 법적 남편은, 정말로 사라졌다. 마침내 나는 대한민국 가정법원의 ‘허락’을 받은 한부모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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