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림 Feb 28. 2023

(39) ‘나도 이혼할까?’ 물어보는 이들에게

가끔, 메일이 왔다. 

이혼과정에 대한 글을 온라인에 꾸준히 쓰고 있었고 그 글들이 2년여간 이어졌기에 그걸 보고 메일을 보내오는 이들이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보내는 메일들. 신기하게도 그 메일들은 약속이나 한듯 똑같은 질문을 내게 던졌다. 


“이혼 소송 시작한 거, 후회하지 않으세요?”


아직 소송 중인 상황이긴 했지만, ‘소송 끝나고 답해드릴게요’ 할 수는 없었다. 이혼에 대해 검색을 하고 내 글을 읽고 메일을 쓰기까지…, 그들이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었으니까. 쉽지 않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 짐작했고, 가능한 한 빨리 답을 보내려 애썼었다. 그들의 질문이 비슷했던 것처럼, 내 답변도 늘 꽤나 비슷했다. 


“아직 단 한 번도, 후회는 안 했던 것 같아요.”


그건 정말 100%의 진심을 담은 답이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보내면서 늘 고민은 됐었다. 내 답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봐 두려웠다. 그런 사람이야 없겠지만, ‘오, 이혼하고도 후회가 없구나. 그럼 나도 이혼을 해볼까?’하고 누군가가 생각할까봐 걱정됐었다. 




‘이혼 후 후회가 없냐’는 질문과 ‘남에게 이혼을 권할 수 있냐’는 질문. 그 둘은 완전히 다른 의미의 문장인 것 같다. 후회는 내 안의 감정을 묻는 것이지만, 권하는 건 타인의 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거니까. 나는 이혼을 후회하지 않고 있고, 과거 결혼시절에 비해 현재 생활에 대한 만족도도 아주 높다. 그럼에도, 이혼을 권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주변에 이혼을 고민하는 이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 말린다. 이 좋은 건 나만 누리고 싶은 욕심……에서 그러는 건 결단코 아니고, 뭐랄까, 과정과 결과의 무게가 너무, 너무, 무거웠다. 


지금도 나는 아이 문제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진다. 아빠 없는 가정에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나는 잘 하고 있는 걸까.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데는 정말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이혼하니까 편하다며? 하…, 나도 이혼할까?” 누군가 내게 물으면, 나는 정색하며 답한다. 

“웬만하면 그냥 살아. 그냥 살아도 힘들고 이혼해도 힘들어. 이혼한다고 즐겁기만 하겠니.”

참 아이러니한 대답인 걸 잘 알지만 다른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스스로 만족은 하지만, 남에게 절대 권할 수는 없는 과정. 내가 겪은 이혼은 그랬다. 


아직도 내게 남아있는 몇몇 장면들이 있다. 남편이 아이와 놀아주던 순간들의 기억. 아이의 웃음소리와 남편의 목소리가 좁은 집을 가득 채우면, 가슴 깊숙한 곳이 ‘뭉클’하며 따뜻해졌었다. 그토록 바라고 꿈꿨던 가정 안에 내가 있구나, 하는 실체적인 행복감. 지금 돌아봐도 그건, 나 혼자서는 채울 수 없는 무언가였다. 아빠-엄마-아이, 삼각형이 이뤄내는 울림 같은 것을 분명히 느꼈던 몇 안되는 순간들. 여전히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이 찰나의 순간을 아이의 기억에 남겨주고 싶었기에 이혼을 그렇게나 망설였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하겠다고 결심하는 과정은 정말 아팠다. 죄책감에도 시달렸다. 솔직히 말해, 지금도 두렵긴 하다. 아이가 나를 원망할까봐. 가정을 깨버린 나에게 원망을 쏟아낼까봐. 


그러니, 아직 선택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좀 더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내가 이혼을 권하지 않는 이유는 그런 것 같다. 나는 다시는 갖지 못할 그 ‘울림’의 순간들을 다른 이들은 가능하면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이 지난한 과정을 누군가가 겪지 않기를 바라고, 이혼 아닌 다른 해결책을 찾아보길 바라기 때문에. 나는 못 해낸 그 과정을, 다른 누군가는 해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혼은 내게, 일종의 ‘낙오’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남들 다 가는 과정에서 혼자 이탈해버리는 것 같아 두려웠다. 나는, 정말, 무난하고 평탄하게 살아가고 싶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입학했고, 취업을 위해 노력하다 입사했고, 모두가 “이제 결혼해야지” 말을 할 때쯤 결혼을 했다. “이제 애 가져야지?” 누군가 말할 때쯤 임신과 출산도 했다. 삶의 여정에서 남들이 말하는 단계들을 하나씩 ‘미션 완료’한 느낌이랄까. 그렇게 ‘남들 사는 대로’ 흘러가다, 나 홀로 ‘STOP’을 외치는 건 힘든 일이었다. “제 상황이 나쁩니다”를 주변에 알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건, 괴로움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벗어나고픈 괴로운 날들이 꾸준히 이어졌기에, 고통을 벗어나려 선택을 해야만 했었다. 모든 선택이 그렇듯, 좋은 것만 쥘 수는 없었다. 괴로움을 벗어나려던 그 선택은, 꽤 외로운 것이기도 했다. 주변 대부분은 안락한(?) 가정을 이뤄 사는 상태였기에, 나 홀로 기를 쓰고 버둥거리며 머물 곳을 찾아 헤매는 그런 느낌. 괴로움을 피하려 외로움의 무게를 택한 것 같은 시간이었다. 


그 모든 시간이 흘러갔음에도, 이혼이 내 삶에 미친 영향을 한 단어로 정의 내리기는 여전히 어렵다. 장점과 단점들이 극단적으로 섞여 있는 것이 내가 겪은 이혼이었다. 나만 다르게 사는 듯한 외로움, 낙오된 것 같은 두려움, 아이에 대한 죄책감, 책임감, 그러나 자유로움, 편안함, 평화로운 일상…, 이 모든 것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그런 것. 그럼에도, 후회하지는 않는 그런 선택. 




이혼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이 모든 시간을 돌아볼 때 후회되는 건 있었다. 결혼시절, 나를 방치하고 외면했던 그 시간들. 당시에는 참고 참는 내 행동이 가정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했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건 문제를 회피하려는 행동에 불과했다. 시간이 갈수록 문제는 더 커졌으니까. 그때 내 모습에 대한 후회는 깊다. ‘어쩔 수 없었잖아’ 하고 나를 품어주려 해도, 당시의 나에게 미안한 마음은 든다. 그건 삶을 책임감 있게 살아가는 방식은 분명 아니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며, 그때의 나를 찾아가고 싶어서. 내 생애 한 번밖에 없었던 그 시절에 대한 뒤늦은 책임감이랄까. 


오랜 방치 끝에 벗어나기를 택한 나는,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며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든 책임을 지고 있다는 점에서, 전보다 훨씬 ‘내 삶’을 살고 있다는 확신은 든다. 이혼을 하든 가정을 지키든, 무엇이 옳은지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정답은 없는 문제니까. 하지만 단 한 가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놓아서는 안됨을, 나는 배운 것 같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내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 그런 질문들. 그건 아이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아니라, 평생을 살아가며 꾸준히 자신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들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관계에 대해 고민할 수도 있는 거니까. 


자신을 방치하지 말 것. 스스로를 돌볼 것. 

이혼이 내게 준 가르침이 있다면 단 하나, 그거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38)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