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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날엔 Nov 25. 2020

가정방문

3차례의 가사조사 후엔, 가정방문이 이어졌다. 가사조사관이 두 양육자의 거주지를 직접 방문해 어느 쪽이 아이에게 더 나은 환경인지를 살핀다는 그 순서. 이혼을 준비하면서 계속 궁금했던 것이 가정방문이었다. 뭘 살펴보는지도 궁금했고, 아이와 나, 가사조사관 셋이 마주 앉아 무엇을 하는지도 의문이었다. 가정방문 날짜가 잡히고는 무척 신경이 쓰였다. 


무려 법원에 고용된 가사조사관이 집에 온다는데, 아무 준비도 없이 맞이할 수는 없었다. 가정방문이 일주일쯤 앞으로 다가오자 매일매일 집을 살펴봤다. 아이가 늘 쓰기에 책상 위에 펼쳐둔 채 사용했던 사인펜과 색연필. 그것들이 자꾸 눈에 거슬려 결국 작은 트롤리 하나를 구매해 그곳에 모두 정리해 버렸다. 어느 날은 피아노 위에 쌓인 먼지가 거슬려 닦아냈고, 욕실 청소와 냉장고 정리까지 했다. 가정방문 하루 전날은, 정말 열심히 청소했다. 아이를 재우고 이 방 저 방을 훑으며 최종 점검도 했다. ‘공부도 시키는 엄마’임을 알리려 책상 위에 학습지를 어색하게 펼쳐두고, 거실 한쪽 잘 보이는 곳엔 부자연스럽게 육아 책도 몇 권 가져다 뒀다. 


편안함은 무슨. ‘나 애한테 신경 쓰는 엄마예요’를 알리고 싶어 용을 썼다. 내가 별생각 없이 방치한 어떤 것이 ‘양육 부적격자’로 낙인찍히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무엇이 단서가 될지 알 수 없었기에, 구석구석을 자꾸만 살펴보게 됐다. 




가사조사관이 약속한 시각은 오전 11시. 10시 58분에 벨이 울렸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너무 정확한 시간에 맞춰 오니, 새삼 긴장이 됐다. 인터넷을 찾아봐도 가정방문 시 하는 일들에 대한 뚜렷한 소개가 없었다. 그저 두루뭉술하게 ‘양육환경을 조사한다’는 설명뿐. ‘1시간 동안 무얼 하는 걸까?’ ‘아이에게 이상한 걸 질문하면 어떡하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아이를 앞에 앉힌 가사조사관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아이에게 물었다. 학교 가고, 학원 가고, 하는 일은 뻔했다. 


그리고 이어진 질문은 “집에 있을 때는 보통 뭘 하니?”였다. 아이가 클레이를 만든다고 하면 “한번 보여줄래?” 하셨고, 아이가 피아노를 친다고 하면 “한번 보여줄래?” 하셨다. 내 새끼에게 숨겨져 있던, 엄청난 자랑 욕구를 남김없이 펼쳐 보인 시간이었다. 


아이는 잔뜩 신이 나서 클레이 작품들을 보여줬고, 외우고 있는 피아노 연주곡 두어 개를 선보였다. 딱딱한 느낌의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던 가사조사관의 이미지도 완전히 바뀌었다. 조사관은,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리액션의 여왕’이었다. 마치 아이와 놀아주러 온 사람처럼 즐겁게 웃으며 아이의 말과 행동에 반응해 주었다.“와- 우와- 대단하다!” 조사관의 칭찬은 내 아이를 춤추게 했다. 아이는 급기야 조사관의 손을 덥석 잡고 이 방 저 방으로 끌고 다녔다. 완성 그림을 넣어두는 액자를 보여주고, 최근에 산 블록으로 집짓기도 보여주며 아주 신이 나 있었다. 옆에서 계속 지켜보며 처음엔 함께 웃다가, 점점 의아해졌다. 


‘가정방문이 원래 이런 건가? 이렇게 그냥 노는 게 다야?’


한 시간이 흐르고 집을 나서는 길. 가사조사관은 망설이는 듯하다가 한마디를 작게 덧붙였다. “이 아이는 정말, 사랑 많이 받고 지내는 티가 나요.” 역할 혹은 상황의 특성상, 가사조사관이 본인의 생각을 말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 말이 진실인지 알고 싶었던 걸까. 나는 가사조사관을 바라봤고, 눈이 마주치는 순간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혼자 오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의 눈빛에서 진심을 느꼈다. 조사 내내 아이 걱정을 하는 걸 지켜봐 온 상황이었기에,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던 걸까. 눈에 담긴 따스함이 그대로 전해져, 나는 그 자리에서 울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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