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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날엔 Nov 25. 2020

상담을 명 받았습니다

판사가 부부 상담을 ‘명령’하셨다고 했다. 일상생활 중에 접하기 어려운 ‘명령’이라는 단어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거부권을 행사하는 건 소용없다는 얘기 같았고, 명령받은 자는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듯 느껴졌다. 판사로부터 명령 같은 걸 받는 일이 내 인생에 펼쳐지고 있음이 낯설었다. 무엇을 느끼든, 아무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매우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조금이라도 빨리 일을 진행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임을, 나는 배워가고 있었다.


며칠 후엔, 상담센터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가정법원과 연계된 상담센터가 여러 곳 있고, 남편과 나 각각의 거주지에서의 거리를 고려해 가장 가까운 곳으로 상담센터가 배정된다고 했다. 집에서 차로 10분 남짓 걸리는 곳. 전화를 걸어온 상담사는 보통 8~10회 정도 상담이 진행된다고 이야기하며 앞으로의 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부부 각자의 개인 상담 후에는 ‘함께’ 몇 차례의 부부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이어졌다. 지금까지의 소송 과정이 거의 한 달에 한 번 간격으로 진행됐기에, 상담 횟수를 듣고는 뜨악했었다.“8번의 상담이면 8개월이 걸린다는 이야기인가요?”라는 내 질문에 상담사는 “최대한 일정을 당겨서 빠르게 진행하겠습니다.” 대답했고, 구체적 일정은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살면서 한 번쯤, 경제적 여유가 허락된다면 더 많이, 상담이라는 것을 받아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결혼 초, 남편과의 싸움을 이어갈 땐 제발 누구라도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랐었다. “당신 정말 말이 안 통해!”라는 말을 서로를 향해 쏘아댈 즈음에도, ‘제삼자의 객관적인’ 눈으로 봐도 정말 내가 이상한 것인지를 묻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날들이 흐르고 포기와 체념이라는 단어까지 모두 습득한 후, 뜬금없이 부부 상담을 받게 됐다. 


상담 전 가장 뚜렷이 떠오르는 걱정은 딱 하나였다. ‘이혼하지 말라는, 길고 긴 설득을 듣는 게 상담이면 어떡하지?’소송 과정 내내 나는, 형체가 없는 법이라는 것이 나의 이혼을 말리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건방지게 혼인제도에서 벗어나려 하다니! 너의 인내심을 시험해 주겠어!’ 하는 느낌이랄까. 그렇기에 8~10회라는 어마어마한 횟수로 다가오는 상담은, 이미 결심한 이혼을 번복하게 하려는 법원의 노력쯤으로 느껴졌고, 절대 번복하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다지며 상담 날을 기다렸다.그래서였을까. “안 좋은 일로 뵙게 되어 유감이네요.”라는 상담사의 첫인사에도 잔뜩 날을 세우며 대답했다. “제 인생에서 최고로 잘한 결정이라서, 안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나는 웬만한 상황에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었으나 이날만은 그게 잘 안됐다. 나는 방어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로 말을 이어갔고, 그런 스스로가 매우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저는, 이혼을 번복할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이 상담의 목적이 그것이라면 협조하고 싶지 않습니다.” 경력이 많아 보였던 상담사는 웃으며 말했다. “뭔가 오해하고 계세요. 상담은 목적이라는 게 없습니다. 이혼을 막을 생각도 없고 부추길 생각도 없어요. 좀 더 편안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게 도우려는 것뿐이에요. 그 도움이 아이가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거고요.”


할 말이 없었다. 내 삶과 아이의 생활을 돕겠다는 의도라면 협조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날이 선 감정들을 일단 내려놔야 할 것 같아서, 물을 마시며 숨을 골랐다. 상담은 어린 시절의 것부터 진행이 됐다.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셨죠?”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땠나요?” “그런 어머니(혹은 아버지)를 볼 때 어떤 감정을 느끼셨나요?”


‘부부 상담’이었기에 부부의 시작부터를 물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내 돈 내고 개인 상담을 받으러 온 것도 아닌 주제에, 인생을 돌아보는 귀한 시간을 갖길 바라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의외로 상담은, 내 삶 전체를 돌아보는 것으로 진행됐다. 상담사는, 상담까지 명령받아 이곳에 온 대부분의 부부는, 원가정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씀하셨다. 자신들의 부모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으면서도 인지하지 못하는 일이 많기에, 그 부분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상담의 시작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스스로 인지해왔던 나의 문제를 제삼자의 해석으로 듣는 것도 신기했고, 내가 남편의 원가정에 대해 품어왔던 생각들을 제삼자에게 듣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엄청난 횟수인 건 사실이었지만, 지금 이 타이밍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는 생각을 상담 내내 했었다. 분명, 앞으로의 삶에 도움이 되리라. 대물림과 극복. 스스로를 괴롭히던 오랜 고민을 이렇게 또 마주하게 됐다. 올해 내 나이 39살. 아무래도 39세 내 인생의 가장 큰 과제는 ‘대물림과 극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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