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왜 그따위로 되어있는가?
(원래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Part2를 염두에 두었다가, 원 취지대로 다양한 주제를 작성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법률용어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실, 법률용어인지 인식하지 못할 만큼 한자어나 외래어, 그리고 불교용어 등 다양한 단어들을 사용하는데, 그러한 용어들은 순우리말이 아닌 것이 더 많다 보니 요즘 젊은이(MZ)들은 축약어에 더 익숙하고 영어권 문자에 더 많은 도출이 되어 있는 듯합니다.
저도 한참 반항기인 사춘기에는, '왜 수학시간 기호를 영어로 쓰는가, 우리도 자음이 많지 않던가?' 하는 마음에 ㄱ, ㄴ, ㄷ을 a, b, c 등으로 고쳐서 수학문제를 풀었습니다. 당연하게도 해당 시도는 금방 끝이 났는데, +, -, = 과 같은 90도로 꺾인 부호 때문에 엄청나게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애국심만으로는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고, 거기엔 다 이유가 있으며, 주된 이유는 효율성인 것입니다.
법률용어도 사실 그러한 괴에 닿아있습니다. 세상 모든 일을 다 법률로 써 내려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치 우리의 모든 사랑을 다 노래와 시로 담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래된 인류의 역사를 반영해서 법의 기본 원리를 담았으나, 세상은 생각보다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그래서 결국 법규정은 형식성, 대표성, 포괄성을 가지며, 해석과 적용에서 법기술(law-technic)이 빛을 발하며, 그러한 법률 기술은 변호사를 포함한 대부분의 법조인에게 갖추어야 할 소양입니다.
로스쿨을 다닐 무렵, 굴이(掘移)라는 조항을 만났습니다. 지금에서야 다양한 제가 처음 법학을 공부할 때만 해도 법조문과 교과서는 한자가 많았으며, 조어를 빼면 모두 한자로 된 공부하기 고통스러운 과정으로 시작했습니다. 조항을 읽으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 이... 리?...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굴이, 처음 "구리"로 듣고 구리가 뭔데 하며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굴이는 '무덤을 파서 옮기다'는 뜻으로, 통상 분묘를 옮길 때 쓰는 용어이며 분묘굴이 라고 자주 말합니다.
아주 최신은 아니나, 최근에 본 드라마 중에는 '감사합니다'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여기서 감사는 통상 고마움을 표현하는 감사(感謝)가 아니라 업무나 사무의 집행이나 회계를 검사하며 정당성 여부를 가르는 업무인 감사(監査) 업무를 수행하는 건설회사의 감사팀 드라마인데, 두 단어의 중의적인 표현을 담아서 부정 없이 회사를 위해 노력하는 직원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식으로 연출된 느낌이 있었습니다.
법을 공부하다 보면, 법률용어에 익숙해지기 마련입니다. 다만 익숙해지는 방향은 마치 같은 음식을 '맛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염분이 어떻고, 재료가 어떻고, 플레이팅이 어떻고 그래서 종합적으로 음식이 어떻다고 평가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만 있다고 전제해 봅니다. 그리고 일반인에게 법적인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을 죽였으니 살인죄 아니냐?'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법을 공부하면 아래와 같은 점을 살펴보게 됩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였는지, 동물이 죽였는지, 우연히 사고로 죽었는지
사람이 사람을 죽일 의도로 죽였는지, 실수로 사람을 죽였는지
사람이 사람을 시켜서 죽였는지, 직접 죽인 게 아니라면
사람이 사람을 죽였는데, 만약 부모 거나 자식이라면
사람이 죽었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인지
사람이 A를 죽이려고 했는데 B를 죽였는지
사람이 마네킹인 줄 알고 사람을 죽였는지
사람이 사람을 죽였는데, 미성년자인지
사람이 사람을 죽였는데, 그 사람이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건 아닌지
사람이 사람을 죽였는데, 강도(또는 강간)한 다음에 죽였는지
이러한 점들은 각각 살인죄, 과실치사, 살인방조 또는 교사 등등 다양한 이야기로 퍼져나갈 수 있으나, 우리 형법 제250조는 아래와 같이만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는 상황이 너무너무 다양한데, 저 조문 하나로 전부 커버가 되지 않고 실제로 방조, 강도, 강간, 자살 등 다양한 상황과 함께 놓이는 사람이 죽음은 여기저기 퍼져있는데, 이걸 한데 모아서 누구나 봐도 알 수 있게 정리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살인사건 하나에도 고려하고 생각해봐야 할게 이렇게나 많고, 경우의 수를 나누면 정말 다양한데, 과연 저렇게 한두 줄의 조항으로 세상 모든 살인을 다 정리하는 게 과연 맞을지.
심지어 계약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물건을 사는 계약을 했다고 한들, 우리는 부동산을 사는 것 외에는 계약서를 써가면서 계약을 체결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것도 물건을 사는 계약이며, 이건 매매계약이라고 쉽게 부른다. 그러나 부동산은 계약서를 쓰고 볼펜은 쓰지 않아도, 큰 틀에서 많은 법률적인 효과를 공유합니다.
'물건 A를 사기로 한 계약'이라고 하여도, 이러한 상황에도 많은 것 논의가 필요합니다
물건 A를 사기로 하였는데, 얼마인지
물건 A는 언제 상대방에게 전달하면 되는지
물건 A를 받기로 하기 전에, 누가 물건 A를 훔쳐갔다면?
물건 A는 사실 거의 비슷한 물건 100개 중에 한 개인데, 100개 중에 내가 사기로 한 A를 구분할 방법이 있는지?
물건 A를 전해주러 가던 중에, 불이 나서 물건 A가 타버렸다면?
물건 A를 전달해 줬는데, 알고 보니 B라면?
물건 A를 받고 잘 사용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서로 모르던 하자가 있었다면?
우리는 저러한 내용을 결국 법률로 해결하거나, 아니면 계약서를 통해서 저런 상황이라면?(WHAT IF?)를 놓고 한참을 싸우고 계약서를 쓰거나, 아니면 길 가다 자판기에서 물건을 뽑아먹는 느낌으로 물건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콜라를 시켰는데 솔의 눈이 나오면, 옆에 편의점에서 콜라를 사거나, 그냥 솔의 눈을 먹거나, 자판기 관리자에게 전화해서 솔의 눈 줄 때까지 1시간 정도 기다리는 여러 선택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주로 기타 등등이라는 말로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기도 합니다. 법률에서도 계약에서도 '등'을 넣어서, 자세한 설명을 제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악마는 디테일에 있으며, 우리는 '등'때문에 분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A, B, C 등이라고 하면, 나머지 쓰지 않은 D, E, F,... X, Y, Z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A, B, C 니까 1, 2, 3 아니면 ㄱ, ㄴ, ㄷ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세상은 다양하고, 관점도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저 '등'의 해석을 잘못하면, D과 ㄱ, 1 들은 매우 혼란스럽게 됩니다. 내가 저 등에 포함되는지 안되는지가 중요한 상황이라면, 당연히 목숨걸만 한 상황이 됩니다.
말장난 같지만, 상당히 큰 사건이었는데,
옛날 부가가치세법에는 "김치·두부 등 기획재정부령으로 정하는 단순가공 식료품"은 부가가치세를 납부할 의무가 없었습니다. 시장에서 파는 김치나 두부에도 부가가치세를 내도록 하면, 영세한 농민들이나 식품제조업자에게 부담을 전가한다는 취지입니다.
당연히 '영세한' 농민들을 위한 조항일 것이나, 결국 대기업들은 김치도 팔고 두부도 팔기 시작하자, 법은 "제조시설을 갖추고 판매 목적으로 독립된 거래 단위로 포장해 공급하는 것을 제외하되 단순하게 운반 편의를 위해 일시 포장하는 경우를 포함한다"라고 하여, 대기업은 세금 내라는 식으로 규정을 했습니다. 물론 포장을 잘못 해석하면 김치를 비닐봉지에 담는 순간 적용되지 않으므로, 조심했어야 했습니다.
그러자 여기서 등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김치, 두부를 명시한 것은 김치, 두부에게 과세를 하지 않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냐!라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규정을 보면 김치, 두부 등이고, 이러한 규정은 단순 식료품을 예시한 것이지 김치, 두부만 지칭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였습니다. 영세 식료품 제조업자들의 단순식료품은 과세하지 않게 하려고 했는데, 대기업이 공장에서 만들고 포장하면 세금 내라는 취지이니, 그에 맞게 해석하자는 취지입니다. 이처럼 세법도 고민 끝에 '등' 한글자를 넣었고, 그 '등'의 해석은 영세업자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해준 것입니다.
법률에는 등이라는 한글자로도 싸우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복잡해질수록, 법률도 더 복잡해지고, 해석은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기존의 관습을 따라가며, 판례를 보며 지금 사건에 적용하는 것에 만족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사람은 '등'한 글자에도 김치, 두부에 대한 조항인지, 그저 단순식료품에 대한 조항인지 싸우려고 노력합니다. 법률이 세상을 담지 못하면, 기존 법률의 실효성은 계속하여 위협받게 됩니다.
정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