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동물은 언제부터 반려동물이 되었는가?
제가 공무원이 되기 전에는 '반려'라는 말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로스쿨에서도 한두 번 들어봤을 수 있으나, 실제로 서류의 결재를 거부하는 등의 행위를 당하거나 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 기른 동물은 큰 강아지였는데, 처음 만남이 조금 특이합니다. 저는 특별히 동물을 기르는 것에 관심이 없는 아이로 자랐으며, 한번 정도 학교 앞 병아리를 사서 집에 가져온 적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치원 때, 주택에 살던 저는 어느 날 집에 와보니 커다란 흰 개가 마당에서 누워있는 것을 발견하였고, 놀라지도 않고 태연하게 "엄마, 집에 강아지가 있는데?"라고 하고 물어봤던 것입니다.
들어보니, 장을 보고 들어가던 어머니가 대문을 열자 갑자기 그 개가(강아지라고 하기엔 너무 컸습니다) 들어왔는데, 허벅지가 크게 찢어진 채로 헥헥거리며 구석에 숨었다고 합니다. 집에 음식은 가져다주니 잘 먹었는데, 아버지가 오시기 전까지 병원에 데려가기는 어려워서 마당에 두었다고 합니다. 그게 저의 첫 '애완'동물인 '아롱이'와의 만남입니다.
당시 수의학과학생과 사귀던 이모가 남자친구와 놀러 와서 아롱이의 품종을 알려줬는데, 일단 혼혈 같다고도 하고, 지금은 거의 못 보던 품종이라 품종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 이후로 이상하게 저희 집에는 그렇게 강아지가 동일한 방법으로 2마리가 더 들어왔습니다. 한 마리는 검은색 작은 강아지였고, 다른 한 마리는 아롱이와 비슷한 품종의 흰색 강아지였습니다. 저는 두 번째로 들어온 검은색 강아지는 '다롱이'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세 번째로 들어온 흰색 강아지는 그때 빠져있던 로봇만화 '로봇수사대 케이캅스'를 보고 '듀크'라고 지어주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적부터 펫샵을 운영하던 큰 이모의 영향으로 다양한 동물을 길러보기도 했는데, 잉꼬, 문조, 거북이, 햄스터, 거북이, 토끼(실제로 집에서 경주도 시켜봤습니다) 등 다양한 동물을 길러주고, 주변에 나눠주기도 하고, 돌려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리기도 하고, 죽기도 하였습니다.
잉꼬와 문조는 발에 색깔 플라스틱을 달고 주인을 구별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잠시 새장을 정리하다가 새장 문을 잠그지 않았는데, 그 사이 똑똑한 아이들이 문을 열고 날아가버린 것입니다. 온 가족이 열심히 찾다가 포기하고 만 무렵, 동네 애완동물 가게에서 잉꼬와 문조를 새장에 넣어두었습니다. 플라스틱발찌를 보고 우리 아이들이라고 확신하였으나, 사장은 뒷동네에서 잡은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며 돌려주기를 거부했고, 저희는 당시 경찰을 부르거나 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포기한 것입니다.
30년 전 당시에는 지금처럼 동물에 대한 권리나 양육법에 대한 정보가 없던 시절로, 정말로 사료뿐만 아니라 사람 밥을 먹고, 큰 성견에게는 닭뼈를 먹여도 문제가 되는 줄 모르던 시기였습니다. 듀크는 자기 이름처럼 누군가를 구하러 집 문이 열린 사이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고, 아롱이는 집에 도둑이 들면 짖어서 내쫓던 우리 가족의 수호천사였으나, 병원에 입원해서는 개는 닭뼈를 먹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오히려 어린 저는
"우리 아롱이는 다른 개들이랑 달라요! 얼마나 튼튼한데! 닭뼈도 다 소화시키고 안 아프고 절대 안 죽어요! 맞죠? 조금 아프다가 돌아오는 거 맞죠?"
라고 의사 선생님에게 울며 소리친 기억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롱이가 조금 더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해서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분간 만나면 치료에 방해가 되니 나중에 만나러 가자고 했습니다.
아롱이는 지금은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편안한 곳에서 행복하게 잘 있을 것입니다.
남은 다롱이는 시골로 보냈습니다. 아마 아버지 어머니는 시골에 보내면서 더 이상 동물을 안 기르겠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 할머니는 생각보다 다롱이를 잘 기르셨고, 다행이게도 다롱이는 너무나 작고 정말 인분도 먹는 강아지였기에 아무도 보신탕거리로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롱이는 시골에서 잘 크다가 운 나쁘게도 옆동네에 가족과 함께 온 도사견에게 물려 죽었다고 합니다. 다롱이를 이뻐하던 친척형들과 저는 BB탄총을 들고 동네 모든 도사견을 다 죽이자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 도사견도 죽이지 못하고 결국 다롱이의 복수도 하지 못하고 만 것입니다.
그 이후로 두 마리였던 햄스터는 30마리가 되어 교회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족보가 있는 진돗개 한쌍도 다시 큰 이모에게 돌려주었으며, 변호사가 되기 전까지 동물을 기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가 변호사가 되고 공익법무관으로 변호사업무를 시작하고 나서 만난 친구는 고양이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기르고 싶어 했는데 집에서 고양이를 반대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와 몇 번 고양이카페를 갔다가, 그 고양이 카페가 폐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카페에서 '파즈'라는 아이와 '하울'이라는 아이를 데려가기로 하였고, 바로 병원에서 검진을 했으나 하울이라는 아이는 너무나 긴 기간 동안 병원을 가지 못해서 치료 중에 죽었고, 지금은 메모리스톤으로 제가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파즈는 검사 결과 이후 방광에 결석이 생기는 증상이 있다고 하여, 음수량을 늘려서 방광을 치료하고, 저와 7년가량 함께 살다가 췌장염이 발발해서 치료하다가 고양이 별로 가버렸습니다
파즈가 살아 있을 적엔, 비 오는 도시 한가운데서 울며 소리 지르며 파즈를 껴앉고 있고, 파즈는 인간말로 "아빠 고마워요 먼저 가서 미안해요"라고 말하고 죽는 꿈을 종종 꿨습니다. 그런 꿈을 꾼 아침에는 온몸이 저리고 아프고 눈물도 흘리다가 깼기에 하루 종일 회사생활도 쉽지 않았습니다.
애교가 참 많고 저를 좋아하는 걸 항상 표현하던 동물이었기에, 저에겐 단순히 기르는 동물, 애완동물이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말 그대로 제 아들처럼, 동생처럼, 내 몸처럼 아끼다가도 말을 안 들으면 속상하고, 혼내고, 조금이라도 아프면 걱정하고,
그러다 재정상태가 안 좋아서 간식을 조금 더 좋은걸 못 사주고, 양을 줄이면서 맘 한편으로 미안해하고,
더 빨리 병원에 가볼걸, 더 내가 가진 걸 쏟아부어서 챙길걸..
하는 후회만 남습니다.
반려동물이라는 말의 기원은 해외에서는 Companion animal이라는 말에서 나왔다고는 합니다. 정확한 일자는 모르나 대부분 서울올림픽 즈음이거나 혹은 2011년 이후로 보고 있습니다.
기존 애완동물을 지칭하는 pet이라는 용어가 다소 동물기준 '모욕적'이라는 판단에서 시작했다고는 하나, 한국이나 일본에서만 이를 '반려동물'로 번역했다고 합니다. 애완동물이라는 단어 또한 마치 동물을 장난감처럼 취급한다는 한자 완(玩)을 사용하기에, 동물은 장난감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입장에서 반려라는 단어를 쓰게 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는 반려자라는 단어를 배우자에게 보통 쓰나, 더 넓게 자주 사용하는, 애용하는 전자제품이나 가전제품 혹은 필수적이어서 평생 필요한 물건들에게 반려 OO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하는 듯합니다.
지금은 띵동이라는 금색 페르시안 고양이와 함께 있고, 18년간 강아지를 기르던 아내와 결혼해서 셋이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띵동이 또한 제 딸처럼 기르며 이뻐하고 있는데, 아내가 이 글을 쓰기 전날 '우리 딸이 만약에 직업도 변변찮고 못나 보이는 남자애랑 결혼한다고 하면 어떡해?'라고 물어보고, 저는 '인간(?)인데 알아서 잘하겠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띵동이가 저기 길에 다니는 품종도 없는 스트릿이랑 결혼한다고 생각해 봐 괜찮겠어?'라고 물었습니다. 사실 우리 띵동이는 중성화가 되어있고 길에서 고양이를 데려올 가능성도 없어서 크게 걱정은 하지 않으나, 오히려 '인간(?)이 아니니 우리가 관리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동물보호법의 제정과 동물의 권리가 신장되는 것에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동물이 아무리 소중해도 인간보다 하겠느냐는 입장에서, 저는 사람과 동물이 동등하냐는 질문에는 사람이 우선한다고 말할 수는 있으나, 나의 반려동물과 모르는 사람을 비교하라고 하면 저는 저의 띵동이를 구할 사람입니다. 사람을 못 구해서 비난받느니 제 딸을 지키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겐 너무나 소중한 존재인건, 그 존재가 나를 너무나 소중한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동물을 기르면서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하는 존재를 만나고, 이는 자식과는 또 다른 절대적 사랑이기도 합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하고 나서 자신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며 오히려 신도 인간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인간에겐 인간이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신의 존재가 있듯이, 저 반려동물들에게는 함께 사는 인간이 자신의 삶의 처음이자 끝이며, 전부입니다. 어떤 존재가 나를 단순히 같이 사는 존재를 넘어선 무언가로 바라보면, 그러한 존재를 소중하게 대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려동물은 너무 과하고, 애완동물은 경박하다는 주장도 이해는 합니다. 틀렸다고 말하기도 좀 그렇습니다. 다만 우리는 함께 사는 동물을 반려동물로 부르고 가족으로 대하기로 언어로써 약속하고 나서, 우리는 함께 사는 이 친구들을 가족의 구성원처럼 생각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가고, 결국 가족을 유기하고 학대하는 사람을 처벌하듯이 동물을 유기하고 학대하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게 바뀌었습니다.
아롱이를 보내고, 다롱이를 시골에 보내고, 듀크를 찾으러 나가지 않았을 때에도 저는 그런 마음을 몰랐습니다. 그 아이들이 과연 나를 사랑했고, 내가 그 아이들을 사랑했을까 하는 고민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준 사랑은 사실 나도 동물을 사랑하는 법을 몰랐고, 심지어 기르는 방법도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제가 파즈를 만나고 지금의 띵동이를 기르면서 제가 줄 수 있는 사랑 이상을 받고, 제가 그 사랑에 보답하여 주지 못한 마음만 기억에 납니다.
나중에 제가 자식을 낳으면, 파즈와 띵동이에게 베푸는 것 이상으로 양육하겠지만, 아이들이 과연 파즈나 띵동이처럼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 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제가 저의 부모님에게 한 행동들을 비추어볼 때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걸 쉽게 바라는 것도 잘못이지만, 그냥 그럴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저에게 애완동물이 반려동물로 바뀌게 된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여러분에게는 함께하는, 혹은 함께했던 가족과 같은 그 친구들을 통해서 사랑을 배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