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기까지

아이와 버틴 시간

by 줄무늬 바퀴

이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웃음이 났다.


울 아들이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엄마는 이제 병원을 즐기는 것 같아.”



처음 들었을 때는 웃으면서 넘겼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처음 입원을 했을 때는
병원이라는 공간 자체가 너무 무서웠다.


보호자 침대는 불편했고, 낯선 기계 소리는 긴장을 만들었고,

새벽마다 들리는 카트 소리에 괜히 심장이 먼저 내려앉았다.


아이보다
내가 더 겁을 먹고 있었던 시간이었다.


입원생활을 몇 번 겪고 나니, 그때부터는 준비물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수면 안대,
목베개,
얇은 담요,
슬리퍼,
가벼운 겉옷,
수분크림,
마스크팩,
물병,
체온계,
약봉지,
처방전
기록지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허둥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입원 가방을 싸는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한 일이 되어 버렸다.


병원마다 분위기도 조금씩 다르다.


어떤 병원은 보호자 침대가 유난히 불편했고
어떤 병원은 보호자 휴게실이 있어서, 잠깐이라도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입원을 오래 하다 보면, 병원 안에서의 생활 방식도 생긴다.


세탁기 있는 병원,
건조기 있는 병원,

편의점이 가까운 병원,
밤에 조용한 병원,
소아 환자가 많은 병원.
중증 환자가 많은 병원


이런 것들을 몸이 먼저 기억하게 된다.


입원실에서는 밤이 유난히 길다.


아이들은 낮에는 괜찮다가, 저녁이 되면 아파하고, 새벽이 되면 더 힘들어한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조용히 처치 카트를 끌고 들어오는 소리,
복도에서 들리는 발걸음,
모니터 기계 소리


처음에는 그 모든 것이 무서웠는데


이제는 그 소리가 들리면
아, 밤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입원생활을 하면서 의사 선생님들과 간호사 선생님들을 가까이에서 보게 된다.


드라마처럼 멋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현실은 훨씬 더 바쁘고,
훨씬 더 긴장되어 있고,
훨씬 더 치열하다.


한 번은
같은 병동에 있던 아이 상태가 갑자기 나빠진 적이 있었다.


순간 분위기가 바뀌었다.


각자 있던 자리에서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말하지 않아도 움직였고,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역할을 나눴고
짧은 시간 안에
아이를 안정시키고 중환자실로 옮겼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병원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돌아가는지.


그날 이후로
병원이 조금 덜 무서워졌다.


입원생활을 반복하면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졌다.


처음에는
왜 우리 아이만 아플까,
왜 이렇게 힘들까,
왜 끝이 안 보일까


그 생각만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오늘 하루만 잘 지나가자!

지금 이 순간만 버티자!

이번 검사만 잘 끝내자!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가 아프면 보호자는 강해질 수밖에 없다.


강해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이 옆에 서 있으려면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어느 날 아들이 웃으면서 말했다.


“엄마는 이제 병원을 즐기는 것 같아.”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즐긴다기보다는, 견디다 보니 익숙해졌고
익숙해지다 보니 덜 무서워졌고
덜 무서워지니, 조금은 웃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병원은 여전히 편한 곳은 아니다.


그래도


이제는 그 안에서 버틸 수 있고,,그 안에서 숨을 고를 수 있고, 그 안에서 아이 손을 잡고
조용히 기다릴 수 있다.


아들 말처럼


나는
병원을 조금은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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