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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Jeon Sep 12. 2022

나는 과학자입니다.

CVPR @ New Orleans

들어가면서.



I'm nothing special, in fact I'm a bit of a bore
If I tell a joke, you've probably heard it before
But I have a talent, a wonderful thing
'Cause everyone listens when I start to sing
I'm so grateful and proud
All I want is to sing it out loud


So I say
Thank you for the music, the songs I'm singing
Thanks for all the joy they're bringing
Who can live without it? I ask in all honesty
What would life be?
Without a song or a dance, what are we?
So I say thank you for the music
For giving it to me


ABBA-'thank you for the music' 가사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그 진심에 나는 작아지고는 한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학문에 깊이 빠져본 적이 어쩌면 단 한 번도 없었을지 모른다는 망설임 때문이다. 트렌디한 학문이라며 부러워하는 친구들과 종종 받는 기업의 offer에도, '오랜 시간을 몸담은 이 학계가 나에게 큰 의미가 없다면, 그래서 연구가 뜻대로 되지 않거나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했을 때 계속해서 나아갈 용기가 없다면'이라는 걱정이 신기하게도 꽤나 자주 머리를 맴돈다. 누구나 하는 그 고민, '이렇게 살아도 될까'를 나 역시 되뇌고 있었던 것이다. 운이 좋게도 최근에 참여했던 한 학회에서 그 대답을 찾은 듯하며, 운이 좋게도 그 대답은 'Yes'인 듯하다.



내 삶.

 

    8시, 눈을 뜬다. 8-9시에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준비하여 연구실을 나가면 10-11시이다. BOSE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또는 경제 방송을 들으며 설렁설렁 아침을 보낸다. 아침을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보내는 여유도 얼마 남지 않은 내 대학원 생활과 함께 끝이 난다니 새삼 아쉽다. 학교에서 운행하는 무료 서틀 버스를 5분가량 타고 가면 학교에 도착한다. 다섯 명이 사용하는 1층의 내 연구실에 들어가 전 날 돌려놨던 실험의 결과를 확인하고, 메일함과 구글 캘린더를 훑어본다. 매주 있는 미팅에서 결과를 논의, 분석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남은 시간은 논문을 읽거나 실험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20-21시가 되면 운동을 하고 집에 와 잘 준비를 하면 하루가 끝이 난다. 연구실을 나오고도 이론대로, 생각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은 날이면, 씻으면서도 누워서도 산책을 하면서도 고민을 하게 된다. course work (교과 과정)을 끝내고 내가 지내고 있는 연구년은 여유롭자면 정말 한 없이 여유롭고, 욕심을 내자면 한 없이 바쁠 시간이다. 지금의 나는 바쁜 쪽을 택하고 있는 듯하며, 이런 삶이란 가만히 생각해보면 쉽지만은 않은, 아니 꽤나 고단한 일상이다. 


Accept.

여섯 글자를 보는 순간 교수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저희 Accept 되었네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나의 눈이 실수로 믿고 싶은 것만을 보았을 수도 있으리라는 걱정이 내려앉으면서. 세계적인 무대에 서는 첫 기회이자 몇 달간 내 삶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던 노력의 마침표였다. 그 뒤로 몇 주는 여섯 글자를 떠올리며 피식거리다가 잠에 들고는 했으니 연구자로서 CVPR에 논문을 투고한다는 것은, 최소한 나에게는 크나큰 영광이었나 보다.



IEEE Conference on Computer Vision and Pattern Recognition에 실린 내 애증의 논문

    인공지능 모델은 우리의 일상에서 수집되는 많은 정보를 '학습'하여 아직 알지 못하는 미래를 예측하는데 활용된다. Youtube를 연상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A 영상을 보았을 때 B 영상을 본다는 지금까지의 case들을 참고하여 어떤 사람이 A 영상을 보면 B를 추천해주어야겠다는 논리를 만드는 것이 '학습'이라고 볼 수 있다. 내 애증의 논문은 과거의 데이터에 의존하는 이 과정이 만약 데이터에 편견이 있더라도 그것을 곧이곧대로 '학습'한다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검은 강아지와 흰 고양이만으로 학습한 모델이 '검으면 전부 강아지고, 희면 전부 고양이다'라는 편견을 가진 나머지 흰 강아지를 고양이로, 검은 고양이를 강아지로 판단하는 오류가 재밌어 시작한 연구였다.


    논문 데드라인 직전 새벽에 자주 불이 켜져 있던 내 연구실을 보셨는지 지도교수님이 LA에서 휴가를 보내고 학회에 참석하겠다는 나의 뻔뻔함을 흔쾌히 허락해주시면서, 어렸을 때 이후로 큰 가족행사가 아니면 보기 어려웠던 이모, 이모부, 형, 누나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Griffith 천문대와 가까운 막내 이모집 동네를 아침저녁마다 산책하며 LALAland 감성을 느끼고, Moorpark에 있는 둘째 이모네서 지내며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다 마음 내키는 곳이 있으면 사진을 찍다 보니 금세 일주일이 지났다. 

    휴가를 마무리하고 학회가 있는 New Orleans로 떠났다. Jazz의 도시, 미국의 작은 프랑스라고 잘 알려져 있지만, 한편으로는 살인율 2위 도시라는 악명 때문에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걱정이 앞섰다. 장소가 공개되자 왜 이런 도시에서 학회를 하냐는 아쉬움이 앞섰지만, 또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살인율 2위의 도시에서 지내보겠는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지낸 Airbnb가 있는 Street에서 얼마 전 총격전이 일어났었다고 한다. 그 일을 모른 채로 보낸 일주일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인율 2위'는 금방 잊어버린 채 천진난만하게 여기저기를 쏘아 다녔던 나는 프랑스 해산물 요리와 아프리카 전통 요리를 먹으며, Bourbon Street의 버스킹과 jazz를 들으며, 80 mph로 30분이 넘게 달려야 가로지를 수 있는 Ponchatrain 호수를 건너 이웃 마을을 놀러 다니며, 신나게 도시를 즐겼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에 대해 아는 듯하다. 나에게는 참 반가운 일이다. '저는 작가예요'라는 한 마디에 그 사람이 어떤 글을 쓰고 어디서 글을 쓰는지, 글을 쓸 때는 어떤 음악을 듣는지를 상상하게 되고, '저는  인권 변호사예요' 한 마디에 재판을 준비하고 법원에서 약자를 위해 이의를 제기하며 검사에게 삿대질하는 모습을 그릴 수 있듯이, 나도 조금은 더 친근하게 나의 직업을 소개할 수 있다는 의미일 테니까. 그럼에도 학회를 올 때면 고향을 온 것만 같은 편안함을 얻는다. 이곳은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는 물론, 내 연구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학회가 시작되면 비슷하지만 매일이 새로운 하루하루가 반복된다.

아침에 일어나 Walmart에서 미리 사두었던 식료품으로 요리를 해 먹고 학회장에 가기 - 학회에 참석해 논문 발표를 듣고, 쉬는 시간에는 커피와 차를 마시며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기 - 학회 일정이 끝난 후, 동료들과 도시를 구경하고 뒤풀이하기 - contact 받은 기업들과 면담하기

    나름 괜찮은 삶이다. 일상이 힘들지만 이렇게 종종 긴 노력의 보답을 받고 즐기다 보면 이 삶도 살아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마냥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지만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병철 교수님의 저서 '피로사회' 따르면, 과거의 우리는 타인의 감시와 구속, 억압으로부터 고통받았고,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으로 자유사회를 쟁취하였다. 그러나 현대의 성과사회는 '나는   있다' 긍정성에 의해,  스스로에 의해 여전히 구속당한다.  삶은 '피로사회'  단면일지도 모른다. 조금만  하면 결과가 나올  같다는 희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은 하루 종일 논문을 쓰는 날이 많고,     논문이 완성될 때마다 받는 학계의 관심이 다시금 내가 연구하게 만든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과학자가 되었고, 지금의 일상이 아마 오랜 시간  일상이  것이다. '나는   있다' 관성으로  삶이 흘러가게 두기에 내게는 낭만적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너는 별이다.


    학회에 열심히 참석하고 있는 와중에 가족들과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서울대 '인공지능' 논문 표절 의혹‥"모든 연구자 조사"라는 뉴스가 며칠간 아침마다 보도되고 있다며, 그게 나는 아닌지, 아니라면 나는 귀국 후의 검증에서 떳떳할 수 있는지를 묻기 위해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웃음이 나왔다. 표절이라는 말은 최소한 글을 쓰는 데 있어서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안심이 되었다. 나의 많은 일상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대하는 자세'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삼성역 코엑스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보았던 바닥에 새겨진 나태주 시인의 시, '너는 별이다'가 떠올랐다.


남을 따라서 살 일이 아니다

네 가슴에 별 하나

숨기고서 살아라

끝내 그 별 놓치지 마라

네가 별이 되어라.


뚜렷하지 않아도 좋다. 내 머리에, 내 마음에 있는 것들을 종종 써 내려가고, 그 시간 속에서 내가 기분 좋은 자유를 느끼며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내가 바라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 별 놓치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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