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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Nov 20. 2020

에피소드 05. 빛이나

빛이 나는 순간

세상의 모든 빛이 사라진다면 캄캄한 어둠은 어떻게 보일까. 그 날의 어둠은 눈부시게 낭만적이었다. 

에메랄드 호수가 반짝이는 ‘테카포’에 도착했다. 동화가 있다면 배경화면은 꼭 이런 것이리라 생각했다. 아직까지도 기억이 생생한 설렘을 꺼내 이 글을 쓴다. 


에메랄드 호수를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눈에 봐도 엄청난 인파다. 아 사람 많은 거 싫어하는 거 어떻게 알고 또 이렇게나 한꺼번에 모이셨는지. 벌써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다. 하지만 에메랄드 빛을 내는 호수와 그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그림 같은 설산을 보고 있으면 그 정도쯤이야 뭐 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도착해서 호수 바로 코앞에 자리한 ‘YHA’라는 호스텔에 체크인을 했다. 자리가 없어서 겨우 4인 혼성 도미토리를 잡았는데, 방에 도착해서 보니 일찍이 들어와 있던 축구복을 입은 외국인이 누워있다.  

    

“하이 나이스 미츄”     


 간단한 인사를 하고 나니, 잠들어 있던 코의 감각이 깨어나며 순간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것이 도대체 어디서 나는 냄새인가. 근원지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던 중 가장 강력해 보이는 한 사람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축구복을 입은 그 녀석이다. 하루 동안만 코가 막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후 오늘 잠은 다 잤다. 마음을 비우고 밖으로 나가보기로 한다. 사실 눈앞에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이 사진에 제대로 안 담긴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프긴 했다. 나만 보기 아까운 풍경이랄까 아직도 그곳을 뉴질랜드의 선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혹시 뉴질랜드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곳을 추천하고 싶다. 


 에메랄드 호수 저 건너편에는 손에 닿지 않을 꿈 같은 하얀 설원이 펼쳐져 있고 이름 모를 황홀한 보랏빛 갈대 들이 각자의 걸음에 맞춰 살랑 인다. 영화 촬영장으로 만들면 CG를 썼나 싶을 정도로 믿겨지지 않는 풍경에 침을 뚝뚝 흘린다. 일단 침 닦고 보도록 하자.     


해와 달이 자리를 바꾸고 있다. 어느새 어둠이 깊게 내려오고 세상 모르게 뛰어다니던 토끼들은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어느새 어둠이 완벽하게 하늘을 뒤덮었다. 이제 하늘의 조명이 빛을 밝힐 시간이다. 살면서 황홀하다는 말을 잘 안 쓰는데 이럴 때 쓰려고 아껴놨나 싶다. 아마 그들은 계속해서 빛을 내고 있었을 거다. 다만 모두가 빛이 날 때는 잠깐 자취를 감췄을 뿐.

모든 게 다 때가 있나 보다. 어둠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나는 이렇게 빛이 나는 그들을 보지 못 했겠지.


고맙다 꾸준하게 지치지 않고 빛나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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