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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Nov 16. 2020

에피소드 02.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공짜 좋아하면 탈 나는 세상


혼자 콘월파크에 갔을 때의 일이다. 뉴질랜드는 항상 마른하늘에 비가 억수같이 내리곤 했는데 그 날도 역시 그랬다. 영화 속 사연 있어 보이는 주인공처럼 처연하게 맞아볼까 하는 상상도 했지만 무슨 궁상인가 싶어 근처 오두막에 앉아서 비를 피하기로 했다. 


누군가 도시락을 들고 터벅터벅 오두막으로 걸어오고 있다. 대충 구겨 신은 슬리퍼를 질질 끌고 오는 걸 봐서는 이 동네 사람인가 보다.     

 

“여기 앉아도 되니?”

“응 물론이지”     


그렇게 어색하게 자리를 내주고는 다른 곳에 집중하는 척 고개를 잽싸게 돌렸다. 급하게 돌린 고갯짓에 내가 배가 고파 보였던지 그는 자기가 가져온 도시락을 쓱 내밀며 함께 먹자고 제안했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며 멋쩍은 웃음으로 답했다. 하지만 갓 구운 난과 고기가 잔뜩 들어간 커리를 보고 있자니 슬슬 배가 고파온다.


연한 갈색 눈동자와 노란 머리를 가진 그는 뉴질랜드에서 나고 자랐으며 한국이라는 나라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사실 나도 뉴질랜드는 이번이 처음이야. 각자에게 너무나 익숙한 곳이 누군가 에게는 미지의 세상이라는 사실이 새삼 흥미로웠다.


하늘도 무심하다. 야심차게 혼자 버스타고 왔건만

벌써 30분째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둘 다 꼼짝없이 오두막에 갇혔다. 그때 그가 솔깃한 제안을 한다.     

“내가 차를 가지고 왔는데 혹시 괜찮으면 저 위까지만 태워다 줄게”     

이건 마치 생판 모르는 아저씨가 사탕줄게 잠깐 따라올래? 와 맞먹는 속삭임이었지만, 미친듯이 퍼부어대는 비바람을 맞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긍정의 신호가 튀어나와 버렸다.


무언의 끄덕거림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거 조금만 신세 좀 집시다. 키위들은 다 친절하다더니 사실인가 보다. 라는 판단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차를 얻어 타고 콘월파크를 둘러 보기로 했다. 하얀 양들과 나무들의 푸르름으로 가득 채워진 이곳은 위에서 보는 풍경 또한 예술이다. 멍하게 감상하고 있으니 그가 이곳의 역사에 대해 줄줄 읊기 시작한다. 아주 가이드가 따로 없다. 덕분에 눈과 귀가 풍요로워진다. 입구로 내려가기 위해 다시 차를 타니, 이번에는 박물관을 구경시켜 준단다. 이 정도면 정말 가이드 비를 줘야 하나 순간 고민했다. 


 어느새 정신차려보니 박물관에서도 가이드 역할을 자처하고 계신다. 그 짧은 시간 안에 뉴질랜드 역사 공부를 진하게 한 것 같아 괜히 뿌듯해졌다. 감사의 인사를 나누고 다음번에 기회가 된다면 꼭 차를 대접하겠노라 약속하며 그렇게 헤어졌다. 모르는 외국인과 이렇게 길게 대화를 나눠본 게 오랜만이라 나도 모르게 어깨가 하늘로 치솟아서 버스 타기가 여간 힘들었다.      



이렇게 끝이 나면 참 훈훈한 인연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모든 친절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타지에 와서 잠깐 망각했던 것 같다. 그 만남 이후로 그는 주기적으로 연락이 와서 드라이브를 가자고 제안하곤 했다. 


자기 딸 모르게 가야 한다며 신신당부를 하면서. 이건 뭔 신박한 개소리일까. 남자 친구가 있다는 거짓말에 불같이 화도 냈다. 이거 한국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 소재가 아니던가. 아빠뻘 되는 그에게 받았던 친절이 이유 있는 친절임을 깨달았다. 경험쟁이는 또 경험치 +1을 획득 하였습니다. 그때의 가이드 비용은 공짜가 아니었나 보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공짜 좋아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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