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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Nov 18. 2020

에피소드 03. 1000불 짜리 호떡

세상에서 제일 비싼 호떡


그 날은 유난히 호떡이 먹고 싶은 날이었다. 추울 때 호호 불며 먹던 호떡이 뉴질랜드에서 어찌나 생각나던지. 뉴질랜드에서 무슨 호떡이냐고? 그래서 직접 만들어 먹기로 했다.


머나먼 이국땅에 호떡 믹스가 있을 줄이야.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나 보다.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호떡 믹스를 한가득 품에 안고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얘들아 호떡 먹자”     


어릴 적 아빠가 퇴근하고 사 온 통닭 한 마리처럼 호떡 믹스는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오랜만에 추억놀이를 시작해보기로 한다. 먼저 한 손에 기름 살짝 묻히고 반죽을 이리저리 굴려서 자그마한 공을 만들고, 속을 파서 달달한 설탕을 넣어준다. 양이 엄청 작을 줄 알았는데 요놈 생각보다 양이 제법 된다.


이제 각 맞춰 동그랗게 만들었다면 진짜 호떡을 만들어 볼 차례다. 기름을 잔뜩 머금은 후라이팬에 하나씩 자리를 잡아준다. ‘지글지글’ 소리 한 번 기가 막히다. 벌써 온 집안에 퍼지는 달달한 냄새에 침이 길게 흐르다가 씁 하고 다시 멈춘다.


이게 또 은근히 굽는 재미도 있다. 하나둘씩 완성되어가는 호떡을 보고 있자니 얼른 집어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지글지글지글’

‘위이이이잉’

‘지글지글’

‘위이이이이이잉’     


이게 무슨 귀를 후벼 파는 소리 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천장에 붙어 있는 경보기가 미친 듯이 파열음을 내지르고 있다. 

세상에 모두 동작 그만. 일제히 하던 행동을 멈추고 창문을 열었다. 그 녀석의 울부짖음은 어느새 공기를 통해 옆 건물까지 흘러 들어간 모양이다. 큰일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나는 급하게 기름 위에서 눈치 없이 신나게 춤을 추던 호떡들을 일제히 꺼냈다.


다들 어찌할 바를 모르던 이때 창문 밖을 보니 소방차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괜히 도망이라도 가야 할 것 같은 이 초조함은 뭐지. 그때 문득 집주인 부부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혹시 경보기가 울려서 소방차가 출동하면 1000불이에요. 

근데 그런 일은 한번도 없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     


걱정이 현실화가 되는 순간이다. 역시 세상에는 예외가 존재한다. 제발 소방차가 오기 전에 경보기가 꺼지길 바라며 죽어라 부채질을 해댔다. 제발 그만 울어 이 자식아. 그렇게 10분이 흘렀을까 어느새 귀를 찢는 듯한 파열음은 다행히 꺼지고 이내 밖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해졌다. 하지만 하나의 걱정거리가 남았다. 소방관이 올라오면 뭐라고 해야 할까.     


‘호떡이 너무 먹고 싶어서 그만 흑흑 죄송해요’

‘호떡 좀 먹을 수도 있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한 번만 봐주세요. 저희 돈 없는 워홀러인데 흑흑’     


혼자만의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남아 있는 호떡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래 니가 무슨 잘못이 있으랴 얄밉게도 참 맛있어 보이긴 한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또 그새를 못 참고 한 입 베어 물었다. 바삭. 맛있기는 또 엄청 맛있네 요놈     


다행히도 타이밍 좋게 달려오던 소방차는 우리를 위해 출동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걱정은 눈 녹듯 사라졌다. 


1000불짜리 호떡이 될 뻔한 그 날의 달콤 오싹했던 호떡의 맛을 잊지 못한다.      

1000불짜리 호떡은 오직 뉴질랜드에서만 맛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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