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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Nov 19. 2020

에피소드 04. 여행다운 여행

여행다운 여행은 뭘까


누구나 그렇듯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다운 여행을 꿈꾼다. 어떤 이는 화려한 야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또 다른 이는 평화로운 경치를 보며 마음 편히 쉬는 것. 뭐 어찌 됐든 살면서 각자가 원하는 여행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나 역시 그랬다. 나에게 맞는 여행다운 여행을 하기 위해 여러 곳을 떠나보기로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뉴질랜드 남섬 여행을 하기로 했다. 첫 목적지는 ‘퀸즈타운’. 이곳은 뉴질랜드 하면 생각나는 대표 여행지 중 하나로 설산과 그 주위를 둘러싼 풍경이 가히 예술이다. 그 말은 즉 항상 관광객들로 넘쳐 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퀸즈타운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보니 사람들이 참 많기도 하다. 일단 도착하면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퍼그버거’를 먹어줘야 한다. 원래 아무리 맛있어도 웨이팅을 정말 안 하는 타입인데 눈 딱 감고 한 번 기다려 보기로 했다. 세상에 시장통도 이런 시장통이 없다. 가게 안에는 자기 순서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과 쉴새 없이 구워지는 소고기 패티의 향으로 가득했다.      


 주문한 버거를 받아 들고 “익스큐즈미”를 열댓 번 외치고 나서야 겨우 가게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건 마치 출근길 만원 지하철을 뚫고 밖을 나온 기분이랄까. 오랜 기다림 끝에 베어 문 퍼그버거의 첫인상은 참으로 강렬했다. 불 향으로 가득한 소고기 패티에 바삭한 빵까지 더해지니 이건 뭐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조합이다. 뭐 나름 기다린 보람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여유롭게 버거를 먹으면서 한가로이 풍경을 즐겼다면 더할 나위 없는 만족스러운 식사가 되었겠지만, 사실 앉을 자리가 없어서 매연이 가득한 도로 옆 벤치에 쭈구려 앉아서 먹게 되었다. 버거 한입 매연 한입.


 하지만 뭐 이런 것도 하나의 추억거리로 곱씹을거라 생각하니 나름 운치까지 느껴진다. 여행 오면 웬만한 건 다 용서가 되는 타입이다.     


어둠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어느새 햇살이 빈자리를 다시 채워갔다. 일어나자마자 보이는 바깥 풍경이 ‘내가 여행을 왔구나’를 온 마음으로 느껴지게 해준다. 하이킥의 마지막 회 명대사가 생각난다.      


“지금 이 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내 마음과 다르게 야속하게 흘러가는 시간 덕에 어느새 이곳을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어쩌면 다시 오지 못할 이곳의 풍경을 오래도록 눈에 담아 둬야겠다. 


 다음 목적지는 ‘더니든’. 이곳은 뉴질랜드의 유럽이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그만큼 건축물들이 화려하고 웅장하다. 또한 ‘퀸즈타운’과 전혀 상반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이곳의 첫인상은 화려하고도 고요하다. 

관광지치고는 사람이 어찌나 없는지 거리가 휑하다. 금방 비가 쏟아질 거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저녁이 되니 어딘가 모를 스산함이 거리를 채운다. 이제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인가 보다.    

  

다음날 스산함은 걷히고 전혀 다른 분위기의 더니든을 만났다. 어제의 고요함이 오늘의 따스함으로 바뀌면서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혹시 더니든을 가신다면 꼭 날씨 체크를 하고 가시길. 날씨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의 두 곳을 만날 수 있다. 내가 유럽에 온 것인가 하는 착각에 들 게 하는 건물들이 눈만 돌리면 거리에 가득하다. 보이는 대로 셔터를 눌러대다 보면 어느새 카메라에는 이국적인 풍경들로 가득 찬다.    

 

사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이 있다. 이곳은 더니든에서 테카포로 가기 위한 경유지로 많이 오곤 하는데, 그 누구도 관광지로는 잘 안 가는 곳이기도 하다. ‘크롬웰’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한적한 마을은 정말 아무것도 없다. 긴 여행으로 잠깐 쉬는 일정을 추가하려고 크롬웰에서 하루를 머물기로 했는데, 이 여행지가 생각보다 내 마음속 깊이 추억으로 자리 잡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크롬웰에서 뭐했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정말 아무것도 안 했다. 일부러 관광지를 찾아 지도앱을 켜서 찾아다니지도 않았고 맛집을 가기 위해 긴 웨이팅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던 이곳이 왜인지 모르게 마음에 깊이 남았다. 발길 닿는 곳에 영롱한 빛을 띄는 강이 있고 그곳에서 유유자적 수영을 즐기는 오리들을 보니 괜히 미소가 지어진다.


그 근처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여유롭게 책을 읽기도 하고 낚시를 하기도 한다. 나도 옆에 슬그머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무를 찰싹 때리는 바람 소리가 기분 좋게 귓가에 맴돌았다.      

내가 생각한 여행다운 여행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기대하지 않고 갔던 여행지에서 예상치 못한 만족감을 나에게 줄 때 철저하게 계획했던 여행보다 더 깊게 마음속에 남는다.



정말 여행다운 여행은 뭘까 일상에서도 그런 기분을 다시 느껴볼 수 있을까 익숙한 향으로 가득한 일상에서 낯설고 설렘이 가득했던 이 날들의 향을 잊지 못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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