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면 삶이 달라질 줄 알았지 (3)

퇴근 후에야 뜬 알림 하나가, 나를 현실로 데려왔다

by 써니

퇴사 후 한 달이 지났다.

월급날이 되었고, 월급은 그날 들어왔다.
다만 퇴근이 끝난 한참 뒤에야.


이미 회사를 나왔는데도 나는 그날 저녁까지 입금 알림을 기다렸다.
출근은 끝났는데, 불안은 퇴근을 못 했다. 이상했다.

회사 밖에 있는데도 여전히 회사의 리듬으로 하루가 흔들렸다.


‘퇴근 전에는 들어오겠지’와
‘혹시 오늘 밀리면 어쩌지’ 사이에서 몇 시간을 왔다 갔다 했다.


결국 들어온 건 월급이었는데, 마음에 남은 건 그 시간이었다.

퇴근 이후에야 도착한 알림 하나가 회사라는 곳을 다시 보게 했다.

회사는 떠나도 회사의 기준은 한동안 몸에 남는다.
퇴사 후에도 우리는 종종 ‘회사에서 배운 방식’으로 불안해한다.

그날의 나는 그걸 그냥 넘기지 못했다.

아, 이제는 내 삶을 누군가의 시간표에 맡기면 안 되겠구나.


퇴사하면 자유로워질 줄 알았다. 대신 질문이 늘었다.


“그래서 이제 뭐 해?”
“수입은?”
“안 불안해?”


질문은 늘 정확한 타이밍에 온다. 내가 제일 흔들리는 날, 내가 제일 대답하기 싫은 방식으로.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비교하게 된다.

누군가는 퇴사하자마자 길이 생긴 것 같고, 누군가는 금방 안정된 것 같고.

근데 나는 어떤 날은 괜찮고, 어떤 날은 모르겠고, 어떤 날은 그냥 하루만 무사히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날이 더 많았다.


나는 원래 진득하게 무언가를 오래 붙드는 사람이 아니다.

계획을 세워도 마음이 먼저 흐트러지고, 의지가 단단한 날보다 흔들리는 날이 더 많다.

그래서 퇴사 후에는 자주 ‘강제성’이 있는 일을 만들었다.


마감이 있는 일, 중간에 그만두기 어려운 구조, 크라우드 펀딩이 그랬다.

“언젠가”가 아니라 “이번 달” 안에 끝내야 하는 일.

그 구조 덕분에 나는 움직일 수 있었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한다.

의지가 부족한 게 아니라 의지를 지켜주는 장치가 필요한 사람도 있다는 걸.


그때는 그게 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나는 자꾸 흐트러지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스스로를 붙잡을 장치가 필요하다고만 생각했다.

근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보니 내가 붙잡고 싶었던 건
사실 ‘일’이 아니라 ‘나’였다.


나는 원래 노션남매라는 브랜드로 시작했다.

노션 강의를 했고,

노션으로 사람들의 일을 정리해주고,
노션으로 사람들의 하루를 가볍게 만들어주는 일을 했다.


처음엔 그게 그냥 일이었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다 보니 그게 일이 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나는 다시 익숙한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서포터.

누군가의 프로젝트를 도와주고,
누군가의 방향을 정리해주고,
누군가의 문장을 대신 잡아주는 자리.

나름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오래 그 자리에 있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그 자리에 오래 있을수록 내 안에는 무력감이 쌓였다.


“나는 왜 늘 남의 일을 돕고 있지?”
“내 건 언제 하지?”
“내가 하고 싶은 건 대체 뭐지?”


그 질문은 바쁜 일정 사이에 끼어들어 조용히 나를 갉아먹었다.


그 무력감이 제일 컸던 때, 신기하게도 원하던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약간 겁이 났다.

‘내가 이걸 해도 되나?’
‘이것도 또 잠깐 하고 마는 거 아닐까?’
‘또 여기저기 흩어지는 건 아닐까?’


근데 막상 해보니 툴이 바뀌었을 뿐 내가 하는 일은 비슷했다.

나는 결국 정리하는 사람이었고, 설명하는 사람이었고, 누군가가 “아” 하고 이해하는 순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노션이든, 피그마든, AI든 중요한 건 도구가 아니라 그 도구로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는 장면이었다.


그걸 알게 되니 조금 마음이 놓였다.

‘내가 흩어진 게 아니라 같은 일을 다른 언어로 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어느 날 부산의 한 대학교에서 겸임교수 제안을 받았다.

‘내가 잘 가고 있나?’라는 질문에 처음으로 바깥에서 온 대답 같았다.


신기했던 건 그게 내가 애써서 끌어온 결과라기보다, 내가 하던 것들이 어느 순간 한 줄로 이어진 느낌이었다는 점이다. 그때 확신이 조금 생겼다. 애쓰지 않아도 될 일은 애쓰지 않아도 된다.

내가 힘줘서 붙잡던 것들은 대부분 손에서 빠져나갔고,
‘지금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고 생각했던 일들이 조용히 이어졌다.


퇴사 후에 배운 건 불안을 없애는 법이 아니라 불안과 같이 움직이는 법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내 삶의 알림이 누군가의 퇴근 이후에 뜨게 두지 않겠다는 마음.

거창한 선언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됐다.


“그럼 오늘은 뭘 만들 수 있지?”
“내가 만들 수 있는 작은 기회가 뭐지?”


거대한 기회 말고, 오늘 하루를 덜 흔들리게 만드는 정도의 기회.

그게 쌓이면 언젠가는 ‘브랜드’라는 이름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모든 일은 목적지로 가기 위한 직선이 아니라 방향을 찾기 위한 곡선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곡선 위에 있다. 그런데 예전만큼 두렵지는 않다.


오늘은 입금 알림 대신,
내가 만든 하루를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한다.

작가의 이전글퇴사하면 삶이 달라질 줄 알았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