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꺼내본 날
퇴사를 하면 삶이 한 번에 바뀔 줄 알았다.
성향도, 태도도, 말하는 방식도 전부 새로워질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달라진 건 시간의 구조뿐이었다.
아침이 조금 길어졌고, 누군가의 기준이 아니라 내 기준으로 하루를 나누게 된 것.
그 정도였다.
여전히 나는 말수가 적은 쪽에 가까웠고,
앞에 나서는 것보다는 옆에서 돕는 역할이 더 편했다.
그래서 퇴사 후에도 한동안 나는 늘 서포터의 자리에 있었다.
누군가의 기획을 도와주고,
누군가의 브랜드를 정리해주고,
누군가의 방향을 함께 고민했다.
정작 내 이야기는 꺼내지 않은 채로.
그러다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크라우드 펀딩에 관한 강의였다.
“어떻게 시작했고, 왜 계속하게 됐는지 이야기해 주세요.”
그 문장을 읽고 한참을 멈춰 있었다.
내가? 내 이야기를?
나는 진득하게 무언가를 오래 붙드는 사람이 아니다.
금세 다른 생각을 하고, 새로운 걸 기웃거리고, 한 가지에 오래 몰두하지 못하는 편에 가깝다.
그래서 오히려 강제성이 있는 프로젝트를 자주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크라우드 펀딩이었다.
마감이 있고, 약속한 날짜가 있고,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그 구조가 나를 붙잡아줬다.
게으른 성격을 인정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해달라는 연락이 '어푸어푸 출판사'에서 왔다.
강의는 부산의 '무사이 독립서점'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원래부터 강의는 익숙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조금 달랐다.
자료를 정리하다가
‘이건 누군가를 위한 내용이 아니라, 나를 위한 기록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의 나는 툴을 설명하고, 방법을 정리하고,
누군가가 바로 쓸 수 있는 정보를 건네는 데 익숙했다. 그런데 그날의 강의는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보다 ‘왜 그렇게 하게 되었는지’를 말하는 자리였다.
어색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좋았다.
내가 왜 자꾸 새로운 걸 시작하는지,
왜 하나의 길로 곧장 가지 못하는지,
왜 프로젝트를 만들어야만 움직일 수 있었는지.
그동안은 단점이라고만 생각했던 문장들이 그날은 그냥 나의 방식처럼 느껴졌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대단한 걸 해낸 건 아닌데, 조금은 정리된 느낌.
내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퇴사를 하면 삶이 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달라진 건 삶의 형태보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에 가까웠다.
누군가를 돕는 자리도 여전히 좋지만, 가끔은 나를 설명하는 문장도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 문장을 입 밖으로 꺼내보는 날이 생각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것도.
아직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찾는 중이고, 여러 갈래의 프로젝트 사이를 오가고 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그 과정도 기록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삶이 달라진다는 건 환경이 바뀌는 일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조금 더 자주 꺼내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