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과 투자 이야기 (4)
제2부 새로운 암흑시대
1500년대 신대륙으로 향하는 스페인 정복자들의 머릿속에는 황금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끝내 황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제 500년이 지난 이후 새로운 정복자들은 16세기 전사들처럼 무시무시한 약탈자의 모습이 아니라, 팔꿈치에 가죽을 댄 트위드 재킷을 입고 학구적인 풍모를 풍겼다.
이들은 그동안 투자 세계가 일찍이 보지 못했던 가공할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바로 첨단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탄생한 고등 수학과 통계학이다. 그리고 이들의 발견은 투자 세계를 압도했다.
그렇지만 이들의 주장을 듣다 보면 윈스턴 처칠이 러시아에 대해 한 말이 생각난다. ‘수수께끼 속 신비에 싸인 수수께끼’ 이들의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지 이해하려면 수많은 사람이 효율적 시장 가설의 타당성을 납득하게 된 경위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파격적인 신 금융 이론
새로운 정복자들이 내세운 바이블은 ‘효율적 시장 가설’이었다. 효율적 시장 가설은 수십 년 동안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한 금융 이론이다. 이 이론은 최근 몇십 년 사이 학계를 뛰쳐나와 전 세계 금융계에서 최대 다수의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으며, 구석구석 영향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효율적 시장 가설과 사촌뻘인 '자본자산 가격결정 모형'(Capital Asset Pricing Model, CAPM)*과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Modern Portfolio Theory, MPT)(일명 마코비츠-샤프-린트너-모싱 (Markowitz-Sharpe-Lintner-Mossin) 이론)*은 어떻게 투자 업계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을까? 효율적 시장 가설의 폐해를 예방하려면 반드시 이 이론의 허점부터 파헤쳐야 한다.
[자본자산 가격결정 모형]
기업의 가치를 계산하거나 자산에 대한 투자 결정을 보조할 때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재무 모델. 위험-수익의 상충관계가 완벽하게 성립(소위 "High Risk, High Return")하는 시장에서는 각 자산은 그에 투자하기에 딱 정확한 만큼의 리스크로 가격 딱지를 붙일 수 있다. 즉, 일정한 가정 하에서, 시장이 자율적으로 리스크-리턴의 균형을 맞추고 각 자산의 최적의 가격을 공시한다.
CAPM은 개별 주식 가격이 그 포트폴리오에 대하여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정확히 말하면 개별주식수익이 시장 전체 수익에 대하여 어떻게 변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공식에 가깝다. 따라서 이를 개별기업에 적용할 경우 위험-수익의 관계를 베타(β)가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출처: 나무위키]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
해리 마코비츠(Harry Max Markowitz, 1927년~2023년)가 1952년 발표한 재무관리 이론. High Risk, High Return이란 말이 의미하듯이 어떤 자산으로 높은 수익을 얻고 싶다면 높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고 낮은 리스크를 원한다면 낮은 수익밖에 얻지 못한다. 즉 일반적으로 리스크와 수익은 비례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 자산을 섞어서 투자하게 되면 동일한 수익률을 유지하면서도 리스크를 특정 하한선까지 줄이는 것이 가능하다.
이 이론에 따라 자산들에 일정비율 투자해 시장과 동일한 수익 / 위험을 얻게 만든 것이 인덱스 펀드이다. 이후 포트폴리오 이론에서 자본시장선이 개발되었고, 위험과 수익 간의 관계가 효율적 포트폴리오에 한정된다는 문제점을 다시 극복하기 위해 증권시장선이 개발된 것처럼 포트폴리오 이론을 떼놓고는 자본자산가격결정모형의 이론적 배경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출처: 나무위키]
가공할 위력의 새로운 가설의 탄생
프랑스에서 수학을 연구하던 루이 바슐리에(Louis Bachelier, 1870년~1946년)는 1900년 박사학위 논문("The Theory of Speculation)에서 20세기 초 상품가격 변동을 조사했다.
바슐리에는 상품가격은 일정한 패턴 없이 무작위로 움직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에 따르면 최근의 가격 데이터는 미래의 가격 변동을 예측하는 데 아무 쓸모도 없다. 바슐리에의 연구 결과는 ‘랜덤워크(Random Walk) 가설’의 첫 번째 기여다.
어떤 연구에 의하면 주가 움직임은 1827년 스코틀랜드 식물학자 로버트 브라운(Robert Brown)이 처음 관찰한 현상인, 물리학의 ‘브라운 운동’(입자의 무작위 운동)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고 한다.
1960년대 전반기에는 주가 변동의 무작위성을 입증하는 증거가 발표되었는데, 사실상 모든 통계가 현재의 주가 동향은 과거의 주가 동향과 무관하다는 가설을 지지했다(폴 새뮤얼슨의 1965년 논문).
근본적으로 랜덤워크 이론에 의하면 주가 변동과 거래량의 역사에서는 주식을 매수 후 보유하는 전략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즉 시장을 이길 가능성이 없다. 시장은 과거에 대한 ‘기억’이 없다. 잔뜩 취한 친구가 오른쪽으로 휘청거렸다 해서 다음 발걸음에도 또 오른쪽으로 휘청거린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주식 가치와 시장 가치를 측정하는 데 가장 널리 쓰이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가 기술적 분석이다. 그런데 기술적 분석을 활용하던 사람들은 랜덤워크 이론을 거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가 움직임을 예측해서 먹고사는 사람들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기술적 분석가들은 지지 수준, 저항 수준, 고도의 차팅 기법 등 정밀한 기법들을 총동원했다. 또한 수십 가지의 주가 패턴과 방식을 이용하는데, 각자 판단에 따라 적절히 조합해서 활용했다. 이들은 최선을 다했고,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덕분에 컴퓨터 성능이 점점 좋아지면서 전에 없었던 그래프와 차트, 데이터 히스토그램이 완성돼 과거 주가 동향을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진격의 교수들
그러나 학계에서 엄청난 화력을 과시하면서 반격에 나섰는데, 기본적으로 두 가지 기법이 사용되었다. 첫 번째는 주가가 무작위로 움직인다는 증거였다. 1960년대 초반 정밀한 연구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기존 연구 결과들을 보완하고 주가 동향의 무작위성을 입증했다. 한편 기술적 분석가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추세’의 존재를 입증할 만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기술적 분석가들은 학자들에게 주가 움직임을 뭉뚱그려 보지 말고, 기술적 분석에 사용되는 시스템으로 테스트해 보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학계 연구자들이 테스트한 결과는 참담했다. 모든 실험을 통해 기계적인 규칙이 단순한 매수 후 보유 전략보다 나을 게 없음이 입증됐다.
그럼에도 차트 분석가를 비롯한 기술적 분석가들은 계속 번창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시스템은 다르다“고 말하며 학계의 연구 결과를 무시한다. 또한 투자자들 역시 학계의 연구 결과를 무시했으면 하고 바란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이제는 사라진, 병을 고치는 주술사나 예언자 보듯 기술적 분석가들을 무심하게 바라본다.
계속되는 학계의 기습 공격
1960년대 중반부터 연구자들은 대다수 월스트리트 전문가들이 신줏단지 모시듯 떠받드는 기본적 분석이 시장평균 대비 초과 수익을 얻는 데 과연 도움이 되는지 물었다. 기본적 분석 추종자들은 매출, 수익, 배당 전망, 재무 건전성, 경쟁력 등을 면밀히 분석하면 기업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다고 믿었다.
증권거래위원회는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투자사들의 실적을 조사하였고, 보고서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전체 투자관리 회사(폐쇄형 펀드)의 실적은 모두 수익 상위 주식의 지수보다 낮았으며, 1927~1935년의 지수보다 낮았다. 이는 상당한 확실성을 부여할 수 있는 결론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 학계에서는 펀드매니저의 초라한 실적을 폭로하는 연구가 쏟아졌다. 그중 가장 자세하고 충격적이었던 연구는 1970년 와튼스쿨의 어윈 프렌드, 마셜 블룸, 진 크로켓의 연구였다.
유진 파마, 리처드 롤 같은 저명한 학자뿐 아니라 노벨상 수상자 마셜 블룸, 머튼 밀러, 윌리엄 샤프, 마이런 숄즈를 비롯해 저명한 금융학자들이 효율적 시장 가설을 무기로 당시 통념이었던 기본적 분석에 대한 공격을 진두지휘했다. 요약하면 뮤추얼 펀드가 시장 실적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이 학계 보고서의 결론이다.
당시 펀드매니저들은 마치 무시무시한 대포로 무장한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기병대(당시 아메리카 대륙에는 말과 기병이 없었다)로부터 도망치는 잉카 군대처럼 볼썽사납게 퇴각했다. 효율적 시장 가설은 컴퓨터라는 기병대를 앞세워 원주민 통치자의 이론을 퇴치했지만, 이론 세계를 완전히 장악할 수는 없었다.
효율적 시장의 군대, 세력을 확장하다
학계 연구자들은 효율적 시장 가설을 통해 시장 사정에 밝고 지식을 갖춘 투자자들 사이의 경쟁으로부터 주가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주가를 결정하는 모든 요소가 합리적이고, 똑똑한 수많은 투자자에 의해 분석되었기 때문이다. 기업의 수익 전망이나 배당 전망 같은 새로운 정보가 생기면 빠르게 흡수되어 즉각 주가에 반영된다.
효율적 시장 가설의 핵심 전제는 시장은 새로운 정보에 거의 즉시 (그리고 정확하게) 반응하며, 따라서 투자자는 수익을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수행했고, 연구 결과가 이 명제를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액면분할과 관련하여 주식이 분할되어도 주주의 지분은 동일하기 때문에, 학자들은 어리석은 투자자들이 주가를 끌어올리면 현명한 투자자들이 매도해서 주가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이로써 시장의 효율성이 증명된다고 주장했다. 연구자들은 실제로도 그렇다고 주장했다.
이 실험들이 정말 학자들의 주장을 입증하며, 시장이 새로운 정보에 신속하게 반응한다는 명제를 확증하는 것일까?
자본자산 가격결정모형 : 효율적 시장 가설의 승리인가, 트로이의 목마인가
주식시장이 효율적이라고 선언하자 이론가들은 투자자들에게 공정한 보상, 즉 특정 주식을 매수하는 위험에 정확히 상응하는 수익만 기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효율적 시장 가설의 동생뻘인 ‘자본자산 가격결정모형’이 개입한다. 여기서 위험(자본자산 가격결정모형이 정의한 대로)은 변동성이다. 시장 대비 주식 또는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이 클수록 위험은 커진다.
이론가들은 장기적으로 위험과 수익은 언제나 비례한다고 주장한다. 이 논리에 따르면 위험이 큰 주식이나 포트폴리오가 고수익을 제공하고, 위험이 작은 포트폴리오는 수익도 작아야 한다.
만약 효율적 시장 가설이 옳다면 이 새로운 명제는 기본적 분석을 근본부터 발기발기 찢어발긴다. 월스트리트 증권가에서 비싼 수업료를 치르며 진이 빠지도록 복잡한 기본적 분석을 아무리 배워도 투자자는 절대로 우위에 설 수 없다. 새로운 정보를 정확하게 평가할 매수자와 매도자가 시장에 충분히 존재한다면 저평가 주식과 고평가 주식은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효율적 시장 가설에 따르면 시장에서 매매를 자주 하는 것보다는 매수 후 보유하는 것이 좋다. 자주 매매해 봐야 지불할 수수료만 늘어나기 때문에 수익이 늘지 않는다.
준강형 효율적 시장 가설은, 어떤 뮤추얼 펀드도, 수백만 달러 수익을 올리는 펀드매니저도, 아무리 정교한 지식과 기술을 겸비한 개인 투자자라도 공개된 정보를 이용해서는 시장을 이길 수는 없다. 오늘날 널리 수용되는 효율적 시장 가설이 바로 준강형이다.
효율적 시장 가설의 ‘강형’은 한 발 더 나아간다. 강형에 따르면 어떤 정보도 시장을 이기는 데 도움을 줄 수 없다. 기업 내부자만 아는 정보나 해당 기업의 주식을 거래하는 전문가(회계장부에 아직 집행되지 않은 지시에 관한 기밀 자료를 갖고 있는 전문가)가 아는 정보 역시 마찬가지다.
효율적 시장 가설에 대한 학계의 지지
효율적 시장 가설 학파의 우두머리인 유진 파마(Eugene Fama, 1939년~) 교수는 1991년 12월 27일과 1998년에 효율적 시장과 관련된 문헌들을 검토했다.
파마는 20년 전에도 광범위한 연구에 착수한 바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 이후 발간된 수백 편의 논문을 망라해 철저히 연구했다. 파마가 검토한 논문들은 준강형 효율적 시장 가설을 확고하게 지지했다.
파마는 1998년 논문에서 시장 효율성은 여전히 타당하다고 덧붙이면서, 오랜 시간을 들여 효율적 시장 가설에 어긋나는 이상치(anomalies)는 우연한 결과라고 논박했다(저자는 파마가 역발상 전략이 시장에서 통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발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본자산 가격결정모형 이론이 발전하면서 학계와 컨설턴트는 포트폴리오의 실적을 결정하는 공식에 ‘위험 측정’을 도입하게 되었다. 포트폴리오 수익률이 시장 수익률과 동일한데 위험이 더 크면 위험 조정 후에는 시장보다 수익률이 낮은 것으로 간주하고, 위험이 작으면 시장보다 수익률이 높은 것으로 간주된다.
효율적 시장 가설이 전문 투자 영역과 학계를 완전히 압도하자, 이 이론의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한 마이클 젠슨조차 몇 해 전에 이렇게 말했다. “어느 정도인고 하니, 감히 이 가설을 비판하는 논문을 발표하려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또한 슬프게도 펀드매니저들은 스스로의 가장 큰 존재 이유, 즉 고객에게 더 나은 수익을 제공한다는 목표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게 되었다.
아킬레스건
하지만 효율적 시장 가설에는 꺼림칙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앞에서 살펴본 심리적 요인들로 인해 투자자는 거듭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데, 학자들은 이런 심리적 요소를 계산에서 완전히 배제했다. 이것만으로도 효율적 시장 가설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또한 효율적 시장 가설은 다른 많은 난제를 풀지 못했다. 예를 들어 수십 년 동안 투자자의 수익률이 시장 수익률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결정적인 시장 전환점에서 많은 전문가의 의견이 터무니없이 계속 빗나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투자자들이 그토록 이성적이라면 앞선 장들에서 보았듯 희열과 패닉이 그토록 자주 시장을 지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효율적 시장 가설의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교리를 잘 숙지해야 한다. 효율적 시장 가설, 자본자산 가격결정모형,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에는 정부 인증 경고 라벨 따위는 없기 때문에 그것을 모르면 덫에 걸리기 쉽다.
투자 이론의 결함은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즉 투자 이론에 결함이 있으면 일반 투자자와 전문 투자자 모두 자본을 잠식당한다. 성공 투자로 가는 길을 찾으려면 이런 이론을 피해야 한다. 하늘만 애타게 쳐다본다고 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성공 투자의 진짜 열쇠는 어디에 있을까?
효율적 시장 가설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보면 영국 코미디 영화 <몬티 파이튼과 성배>에 나오는 명장면이 떠오른다. 아서 왕과 시종이 의기양양하게 나무와 수풀을 헤치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때 흑기사가 길을 가로막더니 아서 왕에게 이 숲을 지나가려면 자신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싸움이 벌어지고 아서 왕이 흑기사의 두 팔을 모두 자르지만 흑기사는 항복하지 않는다. 아서 왕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보라고! 팔이 하나도 남지 않았어.” “뭐? 이 정도 상처쯤이야.” 흑기사가 반박한다. 싸움이 계속되고 아서 왕은 흑기사의 양다리를 모두 자른다. 상체와 머리만 남은 흑기사는 그래도 굴복하지 않는다. “흑기사에게는 승리뿐!”이라며 호기롭게 외친다. “돌아와서 이거나 받아라. 네 놈 다리를 물어뜯어 주마!”
효율적 시장 가설은 아무리 큰 타격을 입어도 항복하지 않으려는 흑기사를 닮았다. 다음 시장의 세 가지 사건을 자세히 살펴보자. 이 사건들은 효율적 시장 가설 신봉자들이 보기에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사건 1. 1987년 주식시장 폭락
1987년의 주식시장 폭락은 당시로서는 1929~1932년 이후 최악의 패닉이었다. 불행의 씨앗은 1980년대 초반 시카고에서 뿌려졌다. 밀, 콩, 소 선물, 가축 등을 거래하던 시카고상품거래소(Chicago Mercantile Exchange, Merc)는 사업을 확장하려고 했다.
한바탕 쇼의 스타는 시카고상품거래소가 1982년 4월 도입한 S&P500 선물이었다. 1987년 상품 증거금은 주식 증거금의 약 10분의 1 수준이었다. 1929년 대폭락 당시에도 낮은 증거금이 원흉으로 지목되었지만 그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었다.
1929년 폭락 이후 증거금거래를 규제했던 의회 개혁의 상당 부분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교수들은 시장 유동성에 집착해 높은 레버리지의 위험성을 철저히 무시했고, 상품거래는 학계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달걀과 돈육을 거래하던 시카고거래소는 세계 최대 금융시장으로 떠올랐다. 시카고상품거래소는 주식 지수시장의 75%를 쥐락펴락했다. S&P500 선물거래는 금융상품으로 영원히 승승장구할 것 같았고, 이런 현상을 반영하듯 푼돈이었던 회원권 가치는 11년 만에 19만 달러로 껑충 뛰었다.
그리고 지수차익거래가 있었다. 지수차익거래란 S&P500 주식과 S&P 선물가격에 괴리가 생길 때 어느 한쪽을 팔거나 사는 동시에, 다른 한쪽을 사거나 파는 매매 기법이다. S&P 인덱스 펀드를 비롯해 수많은 거대 기관이 지수차익거래에 참여했다.
여기에 포트폴리오 보험(Portfolio Insurance) 상품도 등장했다. 이는 기관투자자가 상승장에서 수익을 취하고, 하락장에서는 자본을 보호하도록 고안된 상품이다.
이 상품의 목적은 시장이 하락하고 있을 때 S&P500 선물을 공매도해 기관투자자의 포트폴리오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시장이 하락하면 할수록 선물의 매도량이 늘어 기관의 주식 보유에 따른 위험은 점차 낮아진다.
포트폴리오 보험에 사용되는 수학적 연산의 토대는 블랙-숄즈 옵션가격결정모델(Black-Scholes Option Pricing Model)로, 피셔 블랙과 노벨상 수상자 마이런 숄즈가 고안한 이 모델은 금세 스톡옵션 가격결정모델로 부상했다.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캠퍼스 금융학부의 헤이니 릴랜드(Hayne Leland)와 마크 루빈스타인(Mark Rubinstein)은 이 모델을 포트폴리오 보험에 적용했다.
효율적 시장 이론자들은 지수차익거래, 포트폴리오 보험, 지수옵션, 주식옵션이 시장 변동성을 줄일 것이라고 규제 당국과 대중에게 장담했다. 하지만 정반대 현상이 벌어졌다.
학자들은 증권사와 선물 거래자를 비롯하여 시장 참여자들이 얼마나 악랄한지 계산에 넣지 않았다. 물론 효율적 시장 가설에서도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게임 참여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포트폴리오 보험 매니저들이 선물을 팔지 못해 쩔쩔매고 있다는 것을.
다른 증권사나 트레이더가 월요일 아침 재빨리 대량의 선물을 매도하거나 주식을 공매도한다면, 포트폴리오 보험회사보다 한 발 앞서 아주 싼값에 선물을 매수해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멍석은 깔렸다.
파멸의 날, 하루 종일 포트폴리오 보험과 프로그램 매매는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그리고 패닉상태에서 기관과 개인이 서로 빠져나가려고 아우성치면서 매도 물량은 더 늘어나 상승 작용을 부추겼다. 처음 보는 폭락 사태였다.
사건 2.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 파산 사태
1998년 시장은 새로운 위기가 닥치기 직전이었다. 초대형 헤지펀드의 투자 전략 때문이었다. 이 헤지펀드 회사는 ‘대마불사(too big to fail)’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에 이미 몸집이 너무 커졌다.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ong-Term Capital Management, 이하 LTCM)는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였다. 1994년 3월에 출발한 LTCM이 1998년 초에는 펀드 자산이 1,000억 달러가 넘었고, 파생상품은 1조 달러가 넘었다.
존 메리웨더 사장이 이끄는 LTCM이 일류라는 평가를 받은 데에는 트레이더들의 수준이 유난히 높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로버트 머튼과 마이런 숄즈를 필두로 효율적 시장 가설의 슈퍼스타들을 영입했기 때문이었다. 마이런 숄즈는 블랙-숄즈 모델을 개발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학자들과 트레이더들이 주목하지 못한 것은 레버리지와 유동성이었다. 이들에게는 변동성만이 유일한 위험이었기 때문에 변동성만을 완전히 통제했고, 유동성과 레버리지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1997년 중반 아시아 경제가 몰락하기 시작했다. 캄보디아를 필두로 필리핀, 말레이시아, 대한민국에 이어서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까지 무너졌다. 어마어마한 물량의 주식이 투매되었다. 시장이 붕괴되고 통화 가치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했다. 아시아의 호랑이들은 겁먹은 새끼 고양이가 되었고, 이 사태는 남아메리카와 동유럽, 러시아까지 번졌다.
머튼과 효율적 시장 이론가들은 변동성이 정상 수준으로 회귀한다고 강력하게 믿었다. 하지만 최악의 폭락이나 약세장에서 변동성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오려면 6개월이 걸릴까, 12개월, 아니 몇 년이 걸릴까? 효율적 시장 가설은 이에 대해 어떤 답도 내놓지 않았다.
시장이 곤두박질치자 LTCM이 보유한 어마어마한 매도 포지션들은 엄청난 손실을 보았다.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증가하면서 LTCM이 보유한 위험이 큰 채권은 페어 스왑으로 매도한 고등급 채권들보다 훨씬 더 낙폭이 컸다.
게다가 머튼과 그의 팀은 변동성이 지나치게 높다고 생각하고 변동성 스왑을 다량 매도했다. 손실이 속속 쌓이자 증거금 납부 요구가 빗발쳤고, 회사의 자본금은 급속도로 빠져나갔다.
1998년 9월 당시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유능한 은행장인 윌리엄 맥도너(William Joseph McDonough, 1934년~2018년)가 이끌고 있었다. 맥도너는 궁지에 몰린 LTCM 사태를 우려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장에게 헤지펀드 회계장부를 조사할 권한은 없었지만, LTCM의 조사는 허용됐다. 회계장부를 본 맥도너는 경악했다.
당시 LTCM이 보유한 포지션을 모두 인수하려면 월스트리트에 있는 거의 모든 주요 은행과 투자 은행들의 동의를 구해야 할 판이었다. 결국 실랑이 끝에 결국 16개 주요 은행에게 각 2억 6천만 달러씩 포지션들이 매각되었다. LTCM 주주들은 5개월 만에 투자금이 92% 폭락하는 상황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에 비해 LTCM이 존재한 4년 동안 S&P 500은 배로 뛰었다.
사건 3. 2006~2008년 주택 버블과 주택시장 붕괴
1987년 폭락과 LTCM의 파산에도 투자기관들은 여전히 변동성이 유일한 위험 척도라는 맹목적인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서브프라임을 비롯해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증권(RMBS)의 레버리지가 지나치게 높았다.
하지만, 효율적 시장 가설과 자본자산 가격결정모형 이론으로 무장한 포트폴리오 매니저들이나 위험 통제를 담당하는 기관 부서들은 레버리지 따위는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다. 유동성 역시 문제 삼지 않았다.
은행과 투자 은행들은 많은 채권을 소유한 복잡한 투자 회사뿐만 아니라, 유동성이 낮은 파생상품을 보유한 투자회사에게도 자금을 지원하였다. 대부분의 대출담보부 증권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사실과 투자 은행들이 자본금에 비해 엄청난 규모의 레버리지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조리 무시되었다.
연방준비제도 의장 앨런 그린스펀과 후임 벤 버냉키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는 모든 게 순탄하다고 확신했지만, 미국의 광적인 주택시장 버블은 끝을 향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레버리지와 유동성 부족이 치명타였다.
표 5-1은 주택담보대출 증권 등에 투자한 업체들이 무너진 원인을 설명해 준다. 이들 업체들은 레버리지 비율이 높았다. 투자자가 자본금의 30배에 달하는 금액을 차입한다고 가정했는데, 주택담보대출 증권의 가격이 3.3%만 떨어져도 투자자는 원금을 전부 날리게 된다.
엄청난 레버리지를 활용해 부실 채권에 투자했던 베어스턴즈, 리먼브라더스, 워싱턴 뮤추얼이 모두 사라진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행크 폴슨 장관 시절 재무성이 은행과 투자 은행을 구제하기 위한 부실자산 구제 프로그램 기금으로 7,000억 달러가 필요했던 것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파마 교수는 버블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왜? 합리적인 투자자는 언제나 가격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블은 합리적인 투자자에게 정상적인 가치보다 10배, 100배가 넘는 값을 주고 주식을 매수하도록 한다. 그런데 이는 증권분석가나 펀드매니저 또는 합리적 투자자들이 널리 추종하는 기본적 분석 방식에 따라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효율적 시장 가설 때문에 수백만 명이 잘못된 투자결정으로 재앙을 맞았다. 그러나 더 좋은 방법이 있다. 흑기사도 지나갔고, 효율적 시장이라는 최악의 숲도 통과했으므로 더 나은 길이 멀리 있지 않았다. 장담컨대 시장에는 아직도 좋은 기회가 남아 있다. 식별하는 방법만 배운다면 말이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오랜 세월 우주를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태양과 행성의 움직임을 설명했고, 행성들의 과거와 미래 위치를 계산할 수 있는 간편한 도표를 제시했다. 기본 전제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행성, 태양, 별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것이었다.
천동설은 유용한 과학적 가설이 갖추어야 할 두 가지 기준을 충족했다. 첫째, ‘예측적’으로 천동설은 다양한 천체들이 미래에 어느 지점에 위치할지 정확하게 예측했다. 둘째, ‘설명적’으로 행성의 운동체계를 하나의 법칙으로 정리한 ‘설명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틀린 이론이었다.
변동성, 최후의 결판을 앞두다
변동성을 유일한 위험 요인으로 정의하면 복잡한 금융 모델 구축에 활용하기가 쉬웠는데, 바로 이것이 교수들이 원하는 바였다. 이 논리를 토대로 교수들은 단순하고 명쾌한 이론을 확립할 수 있었다. 이들은 과거에서 변동성과 위험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듯한 정보만 취해서 미래에도 똑같은 현상이 반복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위험과 수익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도 없다는 것이 수십 년 전부터 확인되었다. 변동성이 높다고 결과가 좋은 것도 아니며, 변동성이 낮다고 결과가 나쁜 것도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변동성 척도들이 장기적으로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일관성은 CAPM과 MPT의 핵심 요소였다.
변동성 이론은 오랫동안 ‘미국’이라는 기업이 오판하는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좋은 기업’은 언제든 시장에서 성장을 위한 자본을 구할 수 있다고 들었고, 이 말에 고무된 기업들은 유동성을 줄여나갔다. 효율적 시장에서 가격은 언제나 적정 수준을 유지하므로 CEO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기업뿐만 아니라 경제를 위해 주가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주가를 극대화하면 CEO는 자본시장에서 돈을 더 쉽게, 더 싸게 구할 수 있게 된다. 메시지는 크고 분명해졌다. 바로 장기적인 생존 가능성과 수익성을 해치더라도 물불 가리지 말고 주가를 끌어올리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2009~2008년 금융위기 때 기업의 유동성이 대폭 감소하는데 한몫했고, 이는 경기 하락을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릇된 이론이 어떤 피해를 입히는지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이다.
베타, 황천길을 떠나다
변동성을 측정하는 데 가장 널리 쓰이는 척도는 베타이다. 하지만 학자들은 처음부터 미래의 변동성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베타를 찾지 못했다. 윌리엄 샤프, 존 린트너, 잰 모신이 구축한 초기 베타들에는 예측력이 없었다.
투자자는 누구나 위험을 회피한다는 것이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의 초석이자 효율적 시장 가설의 명확한 가정이므로, 학자들에게는 내세울만한 베타가 없다는 것이 처음부터 심각한 문제였고, 효율적 시장가설의 ‘블랙홀’이었다.
1992년 유진 파마는 베타와 수익 사이에는 뚜렷한 상관관계가 없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베타로 측정한 위험은 믿을만한 수익 예측 지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파마는 “베타를 유일한 변수로 삼아 주식의 수익을 설명하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선언했다.
시카고 대학의 케니스 프렌치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PBR이 가장 낮은 주식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높은 수익률을 제공한다고 지적했다. 중소형 종목 역시 마찬가지다. 파마는 “투자자들은 베타를 넘어서, 가치 측정 등 다양한 척도를 포함하는 복수의 요인을 통해 위험을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1993년 파마와 케네스 프렌치는 베타의 장례식을 치른 지 1년도 못 돼 새로운 위험 이론을 개발했다(‘3요소 이론’(Three factor theory)). 그 공식에는 베타 외에 시가총액이 작은 소형주와 자본금이 시장가치 대비 장부가치가 낮은 가치주가 포함되었다. 그러나 이 이론으로 인해 효율적 시장 가설의 대들보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과학적 방식이 꽈배기처럼 꼬여버린 듯한다.
금융학 교수인 게오르그 프랑크푸르터(George Frankfurther)는 파마와 프렌치의 연구 결과를 논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의 금융은 마치 잉카나 마야 문명의 종교처럼, 대사제가 추종자들뿐 아니라 교단 자체를 희생 제물로 삼고 있다. 금융계는 철저히 세뇌되고 교조화되었기 때문에 창시 당시 선도적인 모델의 부흥을 이끌었던 교주들만이 이 종교를 무너뜨릴 수 있다.
파마 교수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변동성 이론의 원조인 자본자산 가격결정모형의 실패를 인정하고 폐기했다. 망원경의 정밀도가 높아져 천체의 움직임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발견되면서 천동설이 무너졌듯이, 강력하고 새로운 통계학 정보가 대량 유입되면서 오늘날 변동성 척도는 통하지 않게 되었다.
효율적 시장 가설 - 자본자산 가격결정모형 변동성 이론의 허점
한물 간 자본자산 가격결정모형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렇다면 자본자산 가격결정모형보다 결과도 더 좋고 시장에 통할 수 있는 새로운 위험 변수들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3인의 독립된 펀드매니저가 운용하고, 100만 명이 넘는 주주로 구성된 630억 달러 규모의 마젤란 펀드(피터 린치)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시장 수익률을 상회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존 템플턴과 존 네프는 또 어떤가? 존 네프는 20년 이상 수십억 달러 규모의 윈저 펀드(Windsor Fund)를 운용해 시장 수익률을 웃도는 실적을 올렸다. 어떻게 공개된 정보만으로 이런 휘황찬란한 실적이 가능할까?
1969년부터 효율적 시장 가설의 4대 학자인 유진 파마, 로렌스 피셔, 마이클 젠슨, 리처드 롤(앞으로 FFJR로 통칭함)은 주가가 새로운 정보에 따라 재빨리 조정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연구를 내놓았다.
그렇지만 이 연구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연구자들은 정보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면서 정보 공개 시점이 아니라, 정보가 공개된 뒤 몇 달 동안을 조사 기간으로 삼았다. 이것은 마치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과 다름없다.
또한 공개 매수 발표 이후 주가는 거래 수준보다 상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새로운 소식에 대한 초기 시장 반응이 정확하다는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이를 전제로 엄청난 자본 수익을 거두는 위험 차익거래자가 생겨났다. 이 연구는 인수합병에 대한 지식이 정교하지 않기 때문에 활용 가능한 증거를 통해 최종 인수가격에 비례하여 최초의 공모가격을 판단할 때 시장은 효율적이라기보다는 비효율적이다.
효율적 시장 가설 신봉자들은 시장에 정통한 투자자들이 주가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효율적 시장 가설의 가장 중요한 원리가 사라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효율적 시장 가설 신봉자들은 가장 중요한 의문 한 가지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 바로 전문 투자자들이 가격을 가치와 어떻게 일치시키는가이다.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가 거품이 잔뜩 낀 주식이나 지나치게 고평가 된 주식을 산다면, 오랜 기간의 경험과 훈련 그리고 계속해서 사용했던 가치평가 방법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행위는 버블이나 천정부지로 물가가 치솟는 기간 동안에 반복해서 일어난다.
전문적이며 시장에 정통한 투자자들이 가격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없다면 어떻게 시장이 효율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대답은 시장은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버블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주가가 천문학적으로 치솟다가 패닉이 이어지면서 가격이 폭락하는 이유는 시장이 효율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효율적 시장 가설의 검은 백조들
에드워드 선더스 주니어(Edward Saunders Jr.)는 20세기 후반 학문적 방법론을 정립한 중요한 이론가인 칼 포퍼(Karl Popper)의 업적을 활용해 효율적 시장 가설의 접근법을 비판하였다.
포퍼는 유명한 비유인 ‘백조는 모두 희다’라는 이론을 증명하려면 하얀 백조를 발견하는 데 주력할 것이 아니라, 검은 백조를 찾아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검은 백조가 단 한 마리라도 발견된다면 이 이론은 무너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효율적 시장 이론가들은 포퍼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다.
효율적 시장 가설의 규범들을 테스트한 결과, 군대의 충격적인 패배와 같았다. 학자들이 합리적 투자자에게 부여한 어떤 위험 측정법도 시간이라는 시험대를 통과하지 못했다.
효율적 시장 가설의 세 가지 핵심 전제들도 깊이 있게 살펴보았다(세 가지 믿음은 다음과 같다. 첫째, 투자자가 꾸준히 시장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 시장은 새로운 정보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반응한다. 셋째, 노련하고 시장 상황에 밝은 투자자들이 주가를 타당한 수준으로 유지한다). 효율성 시장 가설을 반박하는 아주 강력한 증거들은 물론이고, 세 가지 핵심 전제들은 ‘증거’로 추정되는 것들의 상대적 취약성과 오류에 의해 불신당했다.
마지막으로, 앞서 입증한 것처럼 투자자들이 방대한 데이터를 해석할 수 있다는 효율적 시장 가설의 전제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제2부를 마치며 : 현대 경제학의 위기
토마스 쿤은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패러다임 변화 문제에 대해 관대한 접근법을 취했다. 쿤은 이 책에서 과학자에게는 작업을 진행하는 출발점이 되는 패러다임이 필수라고 말한다. 정상 과학의 목표는 지배적인 패러다임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을 통해 세상을 보고 설명하는 것이다.
효율적 시장 가설이 아직도 이렇게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는 이유에 대해 쿤은 핵심을 찌르고 있다. 과학자들은 낡은 패러다임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 대부분을 해결해 줄 더 강력한 패러다임을 손에 쥐지 않는 한, 아무리 비판이 거세도 기존 패러다임을 결코 버리지 않는다.
자본자산 가격결정모형의 논리가 무너지자 효율적 시장을 주창한 원로들은 새로운 위험 측정법이 무대 뒤에서 꿋꿋하게 대기하고 있으며, 아직 발견되지 않은 측정법도 있다고 주장했다.
또는 역발상 가치투자 방법이 시장을 능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을 때 효율적 시장 조사자들은 역발상 가치투자 방법이 더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효율적 시장 가설은 쿤이 예견한 과학의 발견 과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