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과 투자 이야기 (5)
《코스톨라니의 투자노트》는 유럽의 ‘워런 버핏’, 주식의 신으로 불리는 앙드레 코스톨라니(André Kostolany, 1906년~1999년)가 1983년에 쓴 베스트셀러 투자 지침서이다.
이 책은 데이터나 차트를 동원해 설명하는 주식 투자에 관한 전문 서적이 아니다. 코스톨라니가 자신의 일상생활의 에피소드를 비롯하여 투자 철학과 주식 시장의 작동 원리 등을 쉽고 재미있게(하지만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그리 가볍지는 않다) 써 내려간 에세이 성격의 글이다. 그래서 오히려 나같은 주식 투자의 비전문가들도 쉽게 읽을 수 있고 충분히 인생의 교훈으로 삼을만한 내용들도 많다.
코스톨라니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 책의 내용은 그때마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나 묘안을 손에 잡히는 종잇조각, 식당 영수증, 종이 냅킨, 티켓 뒷면 등에 기록해 놓은 메모를 모아 편찬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중간중간 나오는 <비망록> 코너에는 주식 투자에 참고할 만한 좋은 내용들이 함축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고, 중간쯤 나오는 <코스톨라니 주식 지침서>에는 실제 주식 투자를 할 때 고려할 만한 금과옥조 같은 조언들이 담겨 있다.
전체적으로는, 2장에 나오는 표현처럼 코스톨라니는 “주식 시장의 경향을 판가름하는 핵심 요인은 금리보다 심리학이란 점을 잊은 사람이 많았다“고 말하면서, 주식과 투자에서 대중들의 심리와 투자자로서의 자세 및 투자 마인드에 관해 조언하고 있다.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1906년 헝가리의 푼타아레나스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유대인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철학과 미술사를 배웠으며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강압에 의해 학업을 중단하고, 1924년 아버지의 주식중개인 친구가 있는 프랑스 파리에 유학하여 주식투자를 배웠으며 주식중개인으로 일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점령 직전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미국 뉴욕으로 이주해 1941년부터 1950년까지 살았다. 이후에 헝가리는 공산화되어 유태인 부모는 모든 재산을 빼앗겼지만, 부자인 막내아들 코스톨라니가 풍족하게 살게 해 주었다. 전후 독일 재건 사업에 뛰어들어 막대한 이익을 올렸다. 93세에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했다.
그는 35세에 부자가 되어, 은퇴를 결정했다가 우울증을 얻었다. 그 후 작가와 저널리스트로 인생 2막을 살았다. ‘투자는 심리게임이다’, ‘투자 세미나’ 등 총 13권의 책을 펴내 전 세계적으로 300만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그가 죽기 직전 쓴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 역시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장에서는 자신이 어떻게 투자자가 되었는지 소개하면서 직업인으로서의 투자자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있었던 1920년대 프랑화 폭락 사태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한다.
코스톨라니는 1920년대 초 부친의 지인이며 파리에서 금융업을 하고 있던 무슈 알렉산더 K.의 권유로 파리 증권계로 뛰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무슈 알렉산더 K.는 프랑화의 폭락을 예견하고 코스톨라니의 부친에게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코스톨라니는, 당시 어떻게 프랑화가 폭락하게 되었고 프랑스가 이를 어떻게 극복하였는지에 관한 과정은, '특정 사건의 진행 상황을 예측하는 투자자의 방식과 실제로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그 과정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실사례'였다고 회고한다.
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패하고 나서 두 나라의 통화가 폭락한 후 투기꾼들은 새로운 먹잇감의 냄새를 맡았다. 바로 프랑스 화폐, 프랑의 붕괴였다.
당시 이미 오스트리아의 인플레이션으로 큰 수익을 거둔 카미오 카스틸리오니(Camillo Castiglioni)와 독일 슈투트가르트 출신으로 대담한 투자자였던 프리츠 만하이머(Fritz Manheimer)가 이를 주도하였다.
그들은 먼저 암스테르담의 여러 은행가와 투자자들을 규합하여 신디케이트를 설립한 뒤, 프랑으로 막대한 대출을 일으켜 그 자금을 런던, 취리히, 암스테르담 등의 모든 금융가에 제공한 다음, 활용 가능한 과대 선전, 신문 기사, 입소문 등을 전부 동원하여 프랑화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을 퍼뜨렸다고 한다.
그러자 우선 통화가 (초반에는) 서서히 하락하며 대중 사이에 비관론이 퍼졌고, 그 연쇄반응으로 공포감이 조성되어, 결국 프랑 예금을 던져 버리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한다.
이에 채권자는 공황 상태에 빠진 환경을 이용해 몹시 낮은 시세로 해당 통화를 매입해 들였다. 이렇게 되어 결국 프랑화의 가치는 더욱더 나락으로 떨어지고 프랑스 재정은 완전히 고갈되었다고 한다.
이후 프랑스의 국무총리 겸 재무장관이 된 레몽 프앙카레(Raymond Poincaré)가 극적으로 뉴욕 금융권의 JP 모건(John. P. Morgan)에서 1억 달러 차관을 성공시켜 상황을 급반전 시켰다고 한다(이를 프랑스 재정 역사에서는 '프랑화의 마른(Marne) 전투'라고 부른다고 한다).
결국 프랑화는 빠르게 가치를 회복하였고 프랑스는 전후 재건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으며, 처음 프랑화의 폭락을 도모했던 카르틸리오니와 만하이머 그리고 여기에 참여했던 많은 금융자본가들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투기꾼으로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homo speculator).”
코스톨라니는 자신의 직업을 주식투자자라고 한다. 주식투자자는 투자자와 주식시장 게임꾼 사이에 위치하며, 근본적으로 두 성향이 혼합되어 있다. 즉 유동자금을 가지고 시세 혹은 차트의 주기적 변동에 따라 항상 투자를 조정한다.
투자자의 행동양식은 판사와 유사하다. 판사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현장에 있지도 않고 총기 전문가도 아니지만 증인을 심문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한 뒤 판결을 내린다.
투자자 역시 전자, 항공, 석유, 철도, 자동차 등 각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타인의 감정서와 여러 분석을 통해 주식매수 혹은 매도 결정을 내린다. 즉 투자자는 '모든 분야에 손대는 사람(touche-à-tout)'인 것이다.
물론 투자자가 모든 내막을 읽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최소한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는 옛 철학이 투자자에게 적용된다.
주식투자자를 위한 최고의 학문은 단연 대중심리학일 것이다. 주식시장과 경제발전에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가 바로 대중의 심리이기 때문이다. 라틴어로 '모든 것을 조금씩 아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같다(Omnibus parvum, ex toto nihil).'는 말은 증시에 결코 해당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라 하겠다. 설령 얼마되지 않더라도 모든 분야를 두루 섭렵한 투자자는 주식시장에서 많은 것을 깨닫는다. 배우고 듣고 직접 보거나 경험한 내용은 모험적인 발상을 가로막는 경영학과 달리 투자자의 실무에 유용하다.
카스톨라니는 자신의 내적 성향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낙관론자와 비관론자가 날마다 팽팽히 맞선다고 한다. 이는 주식시장의 전형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증시에 새로운 뉴스, 이벤트가 등장할 때마다 가장 부정적인 면만을 보는 사람들(맹목적으로 증시 하락을 확신하며 무작정 파는 사람)도 있고, 몹시 참담한 상황에서조차 그들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만 해석하는 ‘호황-머저리들’도 있으니 말이다.
특정 사안에 대한 내 감정과 반응 역시 매번 두려움과 용기 사이를 둥둥 떠다닌다. 비관론자가 되었다가도 상황에 따라 재빨리 낙관론자가 되어야 하는 주식투자자에게는 몹시 유용한 성향이다.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를 상징하는 소설이자 누가 뭐래도 세계문학 유산에 손꼽힐 명작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평생 내 인생에 동반하며 항상 나를 매혹시켰다. 앞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한 가슴에 두 영혼이 공존한다고 고백했던 만큼, 자아분열 문제를 이렇게나 탁월하고 정밀한 방식으로 그려 낸 이 불멸의 걸작에 어찌 내가 매료되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전문적 비관주의는 직업의 일종이자 타락한 소명이 되어 버렸다. 이 부류에는 얼토당토않은 주장과 비교를 서슴지 않는 이가 몹시 많다. 두려움에 이성이 마비된 것처럼 보이는 이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이면에는 정치 · 사업적으로 계산한 치밀한 행동이 숨겨져 있다.
1929년 금융계를 강타한 대공황은 소위 ‘불간섭(laisser-faire)’ 그리고 ‘방종(laisser aller)’ 정신의 결과물이었다. 당시에는 엄격히 준수되던 금본위제도 체계의 메커니즘만이 이 험준한 정글을 감시하던 유일한 경찰이었다.
이제 금본위제도는 죽었다. 그렇게 경제라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석에 선 경영자는 오케스트라를 때로는 훌륭하게, 때로는 엉망으로 지휘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미국 경제를 움직인 지휘자들이 한때 악성 비관주의 배포 세력이 주장하고 예견했던 것만큼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아니다.
이들의 프로그램은 두 가지 목적을 지향했다. 인플레이션 그리고 무엇보다 인플레이션에 관한 강박관념을 멈추고 실업에 맞서는 것이었다.
향후 몇 년간 세계정세에 부정적인 심각한 변화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지금껏 부정적인 악성 예측을 남발하던 비관론자들이 곧장 “mea culpa!”, 즉 “내 탓이로소이다!”*라고 외치며 변명할 모습에 실소를 머금게 될 것이다.
'메아 쿨파'(mea culpa)란 '내 잘못을 통해서'라는 뜻의 라틴어로, 가톨릭교회의 고해성사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 자체로 '내 잘못이었다' 또는 '사과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사과나 반성의 의미를 뜻한다.
금융시장에서도 '메아 쿨파'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IB)이 투자자를 상대로 '메아 쿨파'를 발표하기도 한다. 지난해 6월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메아 쿨파'라는 보고서를 발행하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의 목표 가격을 기존보다 상향 조정했다. [출처 : 연합인포맥스]
1929년 같은 대참사는 더는 발생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크고 작은 기업의 파산 가능성은 있어도 전부 문을 닫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소유주의 자본은 사라지겠지만 기업은 새로운, 어쩌면 국가에서 임명할 새 경영진이 계속 경영을 이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신용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방식이 그러하다.
‘파산(bankrupt)’이라는 말이 ‘은행(bank)’에서 유래되긴 했지만 오늘날의 대형 은행은 이런 파산과 전혀 관련이 없다. 때때로 소규모 개인 금융의 경우 재정 악화에 처하기도 하지만 그런 가능성은 평상시, 호황기 할 것 없이 언제나 동일했다.
베니스의 성 마르코 광장은 물속에 잠겼다가도 그다음 날 아침이 되면 차올랐던 물은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베니스는 1971~85년 사이에는 무려 45차례나 피해를 입었고, 1993~2002년에는 50회나 침수됐다고 한다.
은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시적으로 각종 수치가 ‘물밑’에 잠겼다가 일정 시간이 흐르면 회복을 넘어 더 높은 이익까지 실현하기도 했다. 그러면 그 이후 ‘금융 위기’를 언급하는 사람은 사라진다.
대형 은행의 손실은 국유화되고, 수익은 민영화로 남는다. 누가 이를 반대하겠는가? 주주, 예금자? 확실한 건 난 아니다. 무엇보다 쇼는 계속되어야 하니까!”
지난 수년간 경제, 통화 및 재무 부문에 관한 예측도 전부 이런 식이었다. 증권시장 경향분석 전문가뿐만 아니라 정치인, 경제전문가, 심지어 독일 중앙은행 총장의 입에서도 예측이 아무렇게나 흘러나왔다. 예상대로 예측은 전혀 맞지 않았다.
대중매체와 더불어 (무려 10, 20만 명에 달하는)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활동하는 투자 자문가들이 발표한 돈, 가격, 주식시장 경향은 언제나 예측을 비껴갔다.
"증권시장의 경향을 판가름하는 핵심 요인은 금리보다 심리학이라는 점을 잊은 사람이 많았다." 상황이 좋지 않은데도 주식 차트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경우 극도로 낙관적인 투자자들은 이를 주식을 평가하는 지표로 삼아 버렸다.
베르디(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의 오페라 〈가면무도회〉에서 시종 오스카는 매혹적인 소프라노 아리아를 부른다.
“오스카는 알지만, 소리 내어 말하지 않지!”
나는 이 아리아를 투자자문계의 테너들에 맞춰 이렇게 개사하고 싶다.
“전문가들은 그리 말하지만 사실 아는 게 없지!”
많은 주식시장 게임꾼은 과학적 방식, 차트 형식, 스스로 개발한 지표 혹은 고정 가격비교 상황(상품 x가 100이라면 상품 y는 120으로 표시되어야 한다 등등)을 중시한다.
이렇게 끝없이 더하고, 나누고, 곱하던 주식꾼들은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거의 참혹한 대재앙과 마주하곤 했다. 그동안 증권시장에서 수치와 곡선에 집착하다 땡전 한 푼마저 잃어버리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봐 왔던가!
한때 세계적인 명성을 누린 미식가이자 요리연구가인 브리야 사바랭(Anthelme Brillat-Savarin)에게 막상 본인은 소박한 식단으로 식당을 운영하면서 왜 산해진미에 대한 글을 쓰느냐고 물었다.
“아주 간단해요.”
브리야 사바랭이 대답했다.
“독자들보다 오래 살고 싶거든요.”
석유시추와 같은 대형 프로젝트는 아무 성과를 내지 못해도 오랫동안 대중을 기만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저 계속 파 내려가면 그만이다. 더 깊게 시추할수록 더 큰 비용이 투여된다. 창업자들은 말한다. 언젠가, 언젠가는 석유 사업에서 꼭 수익이 터져 나올 거라고.
자본주는 내 오랜 친구, 그륀이 기한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고객에게 회계사를 보냈을 때와 똑같은 이야기를 들어야 했을 것이다. 채무자에게 보낸 그륀의 직원이 금방 되돌아왔다. 그륀은 말했다.
“그래, 어떻게 고객이 지불했습니까?”
“상환한 것만큼 마무리가 잘되긴 했습니다.”
회계사가 말했다.
“잘되었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우선 설명을 드리고 싶군요. 그 고객에게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습니다. 박사 과정까지 밟을 예정이라더군요. 박사 학위를 얻고 나면 분명 부자 아내를 얻을 겁니다. 그래서 지참금을 받으면 그 돈을 곧장 아버지에게 줄 것이고, 그 돈을 우리에게 지불한다고 합니다.”
<비망록 (1)>
‘Fluctuat nec mergitur.’ 라틴어로 파도에 흔들릴지언정 침몰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프랑스 파리의 상징물에 새겨진 이 표어는 증권시장에서도 좌우명으로 삼아야 한다.
증권시장은 다채로운 세계이며,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패자(敗者)는 무참하다! 영원한 전쟁터이자 최적화되어 있는 두 집단으로 이뤄진 체제가 이 전문가들의 세계를 지배한다. 그 두 부류는 바로 하락장 투자자(Bears)와 상승장 투자자(Bulls)다.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증권시장 전문가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각각의 이벤트를 주식 계약 관점에서 바라본다. 따라서 그 이익에 해가 되면 관련 규정 및 정부의 결정은 전부 어리석고 비윤리적이라 설명한다. 반면 그들의 실리에 맞으면 가장 영리하고 윤리적인 것이라 거듭 칭송한다.
주식투자자의 발전 과정이 어떻든 그 처음은 거의 동일하다. 흡사 무고한 소녀가 때때로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직업에 이르게 되듯 말이다. 호기심에서 시작했을지라도 곧 즐거움과 열정을 지나 종국에는 돈에 대한 탐욕만이 남는다.
오늘날 대부분의 투자자는 물론이고 증권가의 동료들마저 주식시장을 명확히 파악하기 힘들어졌다고 종종 불만을 토로한다. 정말 터무니없다. 주식시장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불투명했다.
- 아무 생각도 없고 자기주장이나 동기조차 없는 주식투자자는 룰렛 게임을 하는 사람과 다름없다. 그런 투자자는 도박꾼에 불과하다.
- 자신만의 의견을 내고 결정을 내릴 능력이 없는 사람은 주식시장에 절대 발을 들여놓지 말아야 한다.
- 소위 증권시장의 일반적인 견해라는 말은 동전 한 푼의 가치도 없다.
- 뉴스를 읽고 사건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뉴스와 사건이 몰고 올 여파를 파악하는 것이다.
- 난 증권 혹은 경향에 관한 내 견해를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건 그들에게 한 푼도 허락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도 내 생각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아버지의 친구인 한(Hahn) 교수가 말했다. “내 어리석음을 조금도, 절대 주지 않으리라.”
- 만약 당신이 5퍼센트의 하락에도 ‘벌벌 떠는 사람’이라면 부동산 투자로 만족하는 것이 낫다!
토스칼로니는 원래 피나이니스트가 되려는 꿈이 있었을 정도로 상당한 음악 애호가였던 것 같고, 치열한 투자 세계에서 음악을 통해 큰 영감과 안식을 얻었던 것 같다. 이 장에서는 토스칼로니가 선호하는 음악가들과 오페라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 바흐: 깊이 생각하거나 철학적 고찰이 필요할 때, 엄격한 논리로 내 사고를 유지해야 할 때 최고의 선택
• 모차르트: 사랑하는 신과 대화해야 할 때
• 베토벤: 나 자신에 몰두해야 할 때
• 하이든: 식사할 때
• 슈베르트: 따라 부를 때
• 쇼팽: 꿈꾸고 싶을 때
• 바그너: 나 자신에 심취하고 싶을 때
• 〈돈 조반니〉의 처음부터 끝까지
• 〈마이스터징거(Meistersinger)〉의 처음부터 끝까지
• 〈폴스타프(Fallstaff)〉 전체
• 〈카르멘〉 전체
•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Ariadne auf Naxos)〉
• 〈오텔로〉 1막
•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특정 부분
• 〈장미의 기사(Rosenkavalier)〉 중 마르샬린이 옥타비안을 떠나며 부르는 3중창
• 〈발퀴레〉 보탄의 작별
이 장에서는 예술 작품 수집가들의 진정한 열정과 애착을 소개하며 예술 작품 투자에 관한 그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돈은 덧없지만 예술은 영원하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한 획을 그은 미술상, 조셉 듀빈(Joseph Duveen) 경이 미국 백만장자들을 미술계로 이끌며 늘 입버릇처럼 달고 살던 표어다. 수많은 대규모 컬렉션과 박물관이 미술을 위해 듀빈이 벌인 이 캠페인의 결과물이다.
그의 표어는 지금도 유효할까? 오늘날까지도 미술은 허무한 돈의 가치에서 예금을 지켜 줄 수단인 걸까? 나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고 대답하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이 어떤 미술인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리고 그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정해진다.
1940년대 무렵 뉴욕에 사는 친구가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스페인 백만장자 호세 라자로(Jose Lazaro)로 정말 열정적인, 수집가의 표본 같은 친구였다. 그림, 오래된 크리스털, 귀중한 도자기 등등 가리지 않고 수집했다. 그런 그의 수집품은 피에르 호텔(Hotel Pierre) 투룸 스위트에 전부 쌓여 있었다.
수집품에 보험을 제대로 들었는지 묻는 내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뭐 하러 말인가? 보험은 기껏해야 돈을 되돌려줄 뿐이지, 이 물건을 대체하지는 못하는데 말일세.” 지금 그의 컬렉션은 그의 이름을 딴 마드리드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라자로는 그가 모은 컬렉션을 스페인 정부에 기부했다.
또 다른 수집가로 내 친구 페렌츠 하트바니(Ferenc Hatvany) 남작이 있다. 그가 아꼈던 작품에는 마네 전시회(1983년 여름/가을) 중 가장 돋보였던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Die Bar der Folies Bergères)〉도 포함되어 있었다.
금과 다이아몬드처럼 예술 작품은 수요와 공급을 기준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오직 심리적 동기가 작용한다. 예술 작품의 가격은 그것을 매입할 능력을 지닌 제3자, 즉 박물관이나 미술상 또는 수집가에 의해 정해진다.
나도 지금껏 살면서 값진 예술품의 가격 동향과 관련해 최고로 극단적인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컬렉션 중 하나일 마르셀 폰 네메스(Marcel von Nemes) 컬렉션은(뮌헨/베니스) 1930년대에 경매에 부쳐졌지만 당시의 판매 수익은 그의 채무를 변제하기에도 부족했다. 하지만 오늘날 그 작품들은 그 값어치를 숫자로 평가하기 힘들 수준으로 올랐다.
조셉 듀빈 경은 거대한 미술품 창고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닥치기도 전에 재정적인 곤란을 겪었다. 당시만 해도 잘 안 팔리던 것들 중 일부는 현재 천문학적 금액의 가치에 이르렀다.
오늘날 투자 품목으로 선전되는 현세대의 그림이 정말로 ‘영원한’ 예술이자 좋은 투자처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여기에는 윤리 · 이론적인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탁자 위의 현금(cash on the table)’으로 인정받게 될 50년, 100년 후의 후대만이 확인 가능하다는 문제가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헝가리 출신의 극작가이자 재치와 유머 넘치는 소설가인 페렌츠 몰나르와 나는 몹시 끈끈하고 친밀한 우정을 나눴다(이 책 전체에서 몰나르가 자주 등장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처음으로 유럽을 방문한 내게 몰나르는 유럽 순회 후 내가 본 유럽 경제 상황을 짧지만 정확하게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난 유럽을 한 바퀴 순회한 후 그에게 그가 요청한 내용을 간략히 보냈다.
“프랑스에는 돈이 넘치지만 재화가 없고, 이탈리아에는 재화는 많지만 돈이 없다. 스위스에는 돈도 많고 재화도 많다. 독일에는 돈도 없고 재화도 없다.”
당시 프랑스는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었다. 밤낮으로 돈을 찍어 냈으나 약삭빠른 독일 점령군이 재화를 모조리 소비해 버린 탓이었다. 이탈리아는 재화를 교묘히 숨겼지만 돈을 찍어 내는 중앙은행이 인색했다. 스위스의 상황은 논평을 미뤄 두겠다. 그리고 독일은 모든 것이 바닥이었다.
<비망록 (2)>
애초에 신은 돈을 벌라고 남자를, 돈을 지키라고 여자를 창조하셨다.
페렌츠 몰나르는 증권거래 기술에 대해 많은 지식이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언젠가 공매도를 일삼는 투자자들에게 “다른 사람들을 빠트리려다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사람”이라고 일침을 놓은 적이 있다.
프랑스의 위대한 작곡가 자크 이베르(Jacque Ibert)는 예술이란 10퍼센트의 영감과 90퍼센트의 땀으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거래에서 땀이란 곧 ‘경험’을 뜻한다.
현명한 여자라면 하락장 투자자를 한 명쯤 곁에 둬야 한다. 그러면 평생 그녀의 행복이 보장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돈을 필요로 하는 건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시하기 위해서다.
큰돈은, 그것이 설령 바보의 주머니에 있을지라도 효력을 발휘하며 인정받기 마련이다. 돈의 힘은 막강하다!
부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독립적이어야 한다!
이 장에서는 금융권에서 발생한 많은 사건들이 엉뚱한 이유로 덮어지기도 하고, 정치와 같은 외부 상황 논리에 의해 실제 의도와 다르게 결론이 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다.
교활한 변호사
카를 에외트뵈스(Karl Eötvös)라는 헝가리의 유명한 변호사가 있었는데, 그는 은행 자금을 횡령한 은행원의 상담을 받았다.
당시 은행원은 횡령한 자금으로 경마를 하여 돈을 모두 날렸는데, “이길 가능성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 잃는 것은 필연적이지만, 한 번 잃은 돈을 되찾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는 격언을 기억하지 못했던 것 같다.
에외트뵈스 변호사는 은행원에게 추가로 자금을 횡령해 오라고 시킨 다음 그 돈을 가지고 은행 이사진을 찾아가 은행원의 가문에서 명예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마련한 자금이라고 하면서 결국 이 사건을 덮도록 설득했다고 한다;;;
핀 자국이 없어 발각된 헝가리인들의 프랑 위조 사건
1920년대 중반 헝가리의 전직 고위 공무원과 경찰청장, 대주교가 가담하여 프랑화를 위조하였다가, 프랑스 중앙은행이 프랑화 지폐 10장을 고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핀 자국이 없어 발각된 사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들은 정치적인 목적에서 프랑화 위조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조장함으로써 프랑스 경제의 파탄을 꾀했다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했고, 조사 결과 그들의 엄청난 도박 빚이 낱낱이 밝혀졌지만, 결국 재판에서 그들의 정치적 행보로 결론이 나면서 그만큼 그들의 형량도 줄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는 영국을 무너뜨리려는 속셈으로 이와 동일한 수법을 사용했다. 나치는 영국에 인플레이션을 선동하기 위해 파운드 지폐를 위조했다. 정말 진짜 같은 고품질의 위조지폐였다. 그러나 앞서 본 것처럼 이런 계략은 다른 무모한 시도처럼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로 돌아갔다.
이 장에서는 수수료만 중시하는 선물거래소 중개인들의 행태와 시세 조정이 횡행하는 선물 거래 시장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부다페스트 선물거래소 중개인 모리츠 코브라흐 이야기
고객이 파산한 상황에서도 중개 수수료를 위해 마지막까지도 선물 거래를 권유한 사례.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풍금은 계속 풍악을 울려야 하죠. 얻는 사람이 있으면 잃는 사람도 있는 거니까요.”
부다페스트의 귀리 링 이야기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부다페스트 선물거래 곡물거래소였다. 당시 부다페스트가 중부유럽의 곡물창고였기 때문이다. 선물거래가 있는 곳이면 시세 조작을 꾀하는 작전이 늘 존재했다.
당시 종종 이러한 시세 조작의 대상이 된 건 귀리였다. 군대의 이동 수단이던 말의 사료가 바로 이 귀리였다. 지금의 기름과 역할이 같았다.
세기가 전환되던 그 무렵 몇몇 투자자는 작황 통계, 일기예보,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의 예상 소비 추정치를 기반으로 귀리 가격이 오를 거라 예측하고 신디케이트를 결성하여 시세를 조정하였으나, 잘못된 정보와 헝가리 정부의 개입으로 결국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고 한다.
헌트 형제의 실버 링 사건
악명 높은 헌트 형제의 정신 나간 활동을 미국에서는 코너(Corner)라고 불렀고, 독일에서는 독일 전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매개체인 링(Ring, 반지)이란 아름다운 단어를 선택했다.
헌트 형제는 신디케이트인 실버 링(Sliver ring)을 조직하여 통계적인 수치를 근거로 다량의 은을 마구 사들였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인내심이 바닥난 헌트 형제는 가격 견인을 시도하며 곧바로 이익을 실현하려 했다.
그들은 대규모 선전과 전 세계 언론을 발판 삼아 계속 선물계약서를 사들이며 은 시세를 천정부지로 끌어올렸다. 당시 그들이 내건 슬로건은 “엄청난 수요에 비해 은 공급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였다.
어느 순간 실버 코너 전체가 카드로 쌓은 성처럼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 버린 것이었다. 부분적으로는 신용 대출 규정을 뽑아 든 관계 당국의 개입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시장 전체를 통제하는 데 실패했다. 그리고 또 어느 한편으로는 헌트 형제가 무한한 자금을 동원하는 데 실패했다.
코스톨라니는 언론의 역할과 그들의 교만함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일화를 언급하면서 일침을 놓는다.
인구가 3,000명밖에 되지 않는 어느 지방 소도시의 지역 홍보신문 편집장이 어느 날 저녁 단골 술집을 찾았다. 술집에서 그는 격정적으로 열변을 토했다.
“러시아 황제는 곧 권좌에서 물러나게 될 겁니다. 그리될 게 틀림없어요.”
“무슨 일이 생겼나요?”
단호한 그의 장담에 사람들이 입을 모아 질문했다.
“우리 신문에 황제에 관한 신랄한 논설을 썼거든요.”
식객은 어디에나 필요한 법
안톤 쿠우는 가히 구걸꾼계의 왕이라 할 수 있었다. 빈에서 출생한 그는 주로 베를린에 거주했다. 쿠우는 스스로를 ‘저널리스트’라고 칭했지만 실제로 집필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한 번은 친구한테 1,000마르크를 빌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친구는 그 자리에서 그에게 500마르크만 빌려줬다. 그대로 친구의 손에서 돈을 휙 가로챈 쿠우가 말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이제 자네가 나한테 아직 500마르크를 빚진 건가, 아니면 내가 자네한테 갚아야 하는 건가?”
채무국에 대한 금융 원조의 문제
코스톨라니는 위 구걸꾼 이야기와 함께 서유럽 정치인들의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무분별한 지원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6000억 마르크에 해당하는 물자를 산업 국가에서 수출하고, 외상 거래를 한다는 것은 수출 국가에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야기한다.
물론 채무국의 어려운 처지를 넓은 마음으로 포용하고 더 많은 선물을 계속 보내는 방안도 있다. 좋다, 하지만 그러려면 그 누구도 인플레이션과 그에 따른 결과에 한탄도 하지 말고 각자 허리띠를 단단히 조여야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친구 그륀 이야기를 한다. 그는 빌린 돈은 갚지도 않으면서 계속 돈만 더 빌려 달라고만 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콘, 여기 좀 보게나. 어차피 자네가 나중에 갚지도 못할 텐데 우리가 이렇게 싸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럴 바에야 그냥 우리 둘 다 나쁜 사람이 되고 말지. 난 그냥 한 푼도 주지 않겠네!”
<비망록 (3)>
현명한 투자자는 바보의 말도 이해한다.
주식시장은 음악 없는 몬테카를로라는 옛 격언도 있지만 나는 주식시장이 음악으로 가득한 몬테카를로라고 주장하고 싶다. 다만 그 음악의 올바른 음률을 알아들으려면 안테나가 필요하다.
주가가 오르면 대중이 모이고, 주가가 하락하면 대중도 떠난다.
인생에서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주식시장과 금융계에서는 유독 그렇다. 금리가 너무 높거나 낮든지, 통화량이 적거나 많든 지 또는 달러가 저평가 혹은 고평가 되어 있는지처럼 결국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
투자자에게 있어 충분히 고민하기 전에 행동하는 것보다는 깊이 고민하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
철두철미한 투자자는 서너 배의 수익을 기대하는 주식만을 매수한다. 그러다 보면 10배의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상인이 물건을 팔아 100퍼센트의 이윤을 남기면 사람들은 그것을 사기라고 부른다. 그러나 나는 주식투자자가 2배 오른 시세에 주식을 팔아 시세 차익을 보는 행위를 정상적인 수익이라 부른다.
투자자가 어떤 조언에 “예”라고 말한다면 그건 “아마도”라는 의미이고, “아마도”라고 말한다면 “아니요”라는 뜻이다. 만약 즉흥적으로 “아니오”라고 말한다면 그는 진정한 투자자가 아니다.
은행 직원이 어떤 제안에 “아니오”라고 대답한다면 그건 “아마도”라는 뜻이다. 또 “아마도”라고 대답한다면 그건 “예”라는 뜻이다. 만약 그가 즉흥적으로 “예”라고 대답한다면 훌륭한 은행가라고 할 수 없다.
오늘날의 진실은 은행의 부채가 실질적으로 국유화된 반면, 자산은 민영화되어 버렸다. “사업? 그거야 몹시 간단하지, 그냥 다른 사람들의 돈으로 하는 걸 의미하는 거잖나”라고 말하던 프랑스의 소설가, 젊은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er Dumas)가 옳았다.
거짓되고 의뭉스러운 이론은 명확한 지식과 확고한 의지로만 맞서 싸울 수 있다.
넌 천재로구나, 아들아!
국제 금 시장에서 시세를 견인하는 건 주로 소련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역할이었다. 그들은 종종 금보다 돈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귀한 물건을 충분히 비축해 둔 국가에서는 금이 다른 물건처럼 상품이라는 걸 깨달았다.
금 시장을 좌우하는 건 이성적인 고찰이 아니라 심리적 요인이었다. 금 시세와 더불어 ‘표준 금 시세 vs 유연한 환율’에 관한 뜨거운 논쟁이 이어졌지만, 결국 장기간에도 답이 나오지 않는 힘겨루기의 대상으로 등극하고 말았다.
특히 미국과 남아공 간 마찰이 각별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승리를 점치던 이들은 결국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미국은 끝내 경제 위기를 극복했고, 오늘날 자유세계의 ‘단단한 성’을 다시 구축했다.
미국의 달러화는 프랑스인들이 프랑스 은행(Banque de France) 벽에 화폐로 벽지를 바르려던 것처럼 무가치한 종잇조각이 아니었다. 진실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오늘날 곳곳에 들리는 황금에 눈먼 열광자들의 한탄―특정 출판물, 증권가 소식, 전문가 인터뷰 등―은 우습기만 하다. 그들은 금 시세를 끌어내리려는 배후 세력의 조작이 추정된다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와 재무부의 책임감 넘치는 개입을 호소했다. 그렇지만 첫째, 그것은 범죄가 아니었고 둘째, 말 그대로 터무니없는 주장이었으며 셋째, 가장 큰 조종자는 항상 남아공에 있었다.
유대인들은 이런 전말에 걸맞은 우스갯소리를 건네곤 했다(세계 금 시세의 안정화를 위해 다년간 금을 사들이던 남아공이 연상되었다). 멈추지 않고 금 시세의 상승을 주도하다 얼굴이 시퍼렇게 멍투성이가 되어 버린 이들에게 꼭 맞는 이야기였다.
그륀이라는 젊은이가 돈을 벌기 위해 대도시로 이주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그륀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장사가 잘되고 있어요. 100을 주고 염소 가죽을 샀는데 오늘 시세가 130이 되었어요.”
“잘했구나, 아들아.”
한 주가 지나고 그륀은 다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염소 가죽 시세는 150이에요.”
“넌 천재로구나, 아들아!”
몇 달이 지난 후 다시 연락이 왔다.
“아버지, 오늘은 시세가 드디어 200이 되었어요.”
“굉장한데?”
그륀의 아버지가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이제 어서 염소 가죽을 팔고 수익을 챙기려무나.”
“가능하다면 저도 그러고야 싶죠.”
다소 시무룩해진 아들이 말했다.
“누구에게 팔죠? 제가 가장 큰 구입상이었는데요.”
마티아스는 주인으로서 제 자격을 입증하지 못했지
조상 대대로 투자가 가족의 핵심 의사결정인 가문에서 주식시장에서 성공한 일원은 천재 대우를 받고, 운이 따르지 않은 일원은 바보라고 불리는 건 그리 새삼스럽지도 않다.
옛 부다페스트에 세인의 존경을 받는 폴리처라는 가문이 있었다. 이 가문은 부다페스트의 증권거래소와 상품거래소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가문의 자제들 중 마티아스라 불리는 한 아들은 유능한 투자로 가문에서 인정받았고, 그 후 자신의 돈으로 투자를 하기 위해 독립했다. 어느 날 마티아스는 잘못된 투자로 보유한 재산 전체를 날리고 빈털터리 신세가 되어 버렸다.
마티아스의 투자를 상세하게 검토한 가문은 최종적으로 “마티아스는 주인으로서 제 자격을 입증하지 못했기에 앞으로 하인이 되어 책임을 진다”라는 엄격한 명령을 내렸다. 여기서 ‘주인(Herr)’이란 자산으로 독립적인 투자를 허용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하인(Subjekt)’이란 가문이 소유한 기업의 작은 바퀴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이후 비록 많지는 않아도 마티아스는 다시 자신의 능력으로 재산을 일궈 나갔다. 그리고 결산을 마친 마티아스는 다시 자신의 능력으로 직접투자를 해 보겠다고 선언했다. 다시 소집된 가족회의에서 오랜 토론 끝에 “마티아스가 하인으로서 제 능력을 충분히 입증했기에 다시 주인이 될 수 있다”라는 새로운 결론이 내려졌다.
사랑에 빠진 경제부 편집장
헝가리의 최대 신문사 부다페스트 신문에서 명망 높은 경제 부문 편집장이었던 벨라 피알라-되리(Béla Fiala-Döri)는 경솔하게도 한 매춘부와 사랑에 빠져 버렸다.
벨라의 열정은 그가 이 사랑을 위해 부인과 다섯 아이를 버리려고 결심할 정도로 심각해졌다. 정계와 경제 분야에서 존경받는 유명 인사인 친구들이 그를 붙들고 격렬하게 다그쳤다.
“자네 지금 힌츠와 쿤츠와도 한 침대에 있던 그런 ‘여인’을 위해 아내와 가족을 버린다니, 설마 미치기라도 한 건가?”
“그럴지도.”
피알라-되리가 대답했다.
“하지만 이제는 돈 때문에 나랑만 잔다네!”
유로 달러 채권
증권시장에서 수년을 보냈지만 그 어디에서도 진실된 말 한마디가 들리지 않는다. 국가에 각종 외환 규정이 도입되어도 숙련된 조작 세력이 막대한 이윤을 남길 만한 허점은 언제나 존재한다.
사실 화폐가 아닌 유로 달러는 채무로 표기한다. 즉 미국이 아닌 국가들에게 달러를 보유하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미국이 아닌 국가(채권자)는 징수한 이자에 세금을 낼 의무가 없다. 이것이 바로 유로 달러 체제의 골자다. 즉 유로 달러 채권은 경우에 따라 대출이 발생해도 손에 현금이 쥐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전 세계에 ‘융통되는’ 1000억 유로 달러에 대해 말하는 걸까? 아주 간단하다. 이 달러가 제공되면 누군가에게 전혀 뜯기지 않을 거라는 맹랑한 주장으로 달러화 공황을 선동하기 위함이다.
도대체 이런 유로 달러화는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 영국 은행에서 미국에 100만 달러를 차관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 금액을 다시 프랑스 대형 은행에 일본 상품을 위한 자금 조달 명목으로 빌려준다. 처음에 100만 달러였던 금액은 이제 300만 달러로 늘어난다.
하지만 일본은 이 상품을 중국―중국은 상품 대금에 채무가 있다―에 공급하고, 중국은 이것을 다시 태국―태국에도 지급 의무가 남아 있다―에 공급한다. 그렇게 100만이었던 금액은 이제 500만 달러가 되었다.
달러 시세의 추이는 달러 채권자와 달러 채무자 중 누가 먼저 두려움에 빠지는지에 달려 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당시 공황에 빠진 주인공이 채무자였다는 걸 알고 있다. 미국 대통령에 레이건이 당선되자 모두가 달러 거래에 맹렬히 달려들었다. 앞으로의 달러 강세를 우려해 어떻게든 서둘러 채무를 상환하기 위해서였다.
코박스와 스자보의 파산
청년, 코박스는 부유한 기업가의 아들로 엘리트 고등교육을 받은 후 아버지의 기업에 입사했다. 그는 쉬지 않고 계속 기업을 확장하며 재벌 기업의 대열에 올려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기업이 파산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달 뒤 그 친구가 파산 문제로 여전히 심한 곤궁에 빠져 있으면서도, 파산한 덕분에 프랑스 칸에 자리한 고급 빌라에 살며 롤스로이스를 타고 다닌다는 소문이 내 귀에 흘러 들어왔다.
한편 스자보라는 친구는 겸손한 학교 선생님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유능한 실력과 밤낮 할 것 없이 성실히 일한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기업은 제법 규모가 커졌다.
그렇지만 이 친구 역시 특정한 이유로 파산선고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그의 기업은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사정해야 할 정도로 파산으로 인한 여파가 심각했고, 끝까지 그 늪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국가 파산, 재앙적인 금리, 이 모든 것이 전부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서유럽은 코박스, 동유럽은 스자보의 파산 상황에 가깝다. 파산을 한다고 해도 제각각의 이유가 존재한다. 평소 프랑스인들이 주로 입에 달고 사는 “달라서 좋다(Vive la différence)!”라는 격언처럼.
내 지인 중 수천 에이커에 달하는 땅을 소유했지만 평소 주머니에 1,000크로네도 없던 헝가리 고위 귀족도 있었다(하물며 몬테카를로에서 잃었다면 수중에 10만 프랑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탁자에 칩을 수북이 쌓아 놓는 룰렛 도박꾼도 있다. 그 위에 있는 것이 전 재산일 텐데도 때때로 돈을 뿜을 정도로 펑펑 써 대기도 했다. 그들을 보며 내가 내린 결론은 ‘현금과 자산은 항상 동등하지 않다’이다.
그저 첫 번째 시도에 불과했을 뿐
향후 끔찍한 금리 재앙이 올 거라 선동하는 내용과 관련해 몇 가지 소견을 덧붙이겠다. 사람들은 금리가 오를수록 화폐가치가 하락한다며 핏대를 세웠다. 이는 1) 예금자들이 하락한 화폐가치에 높은 보상을 요구하기 때문이고, 2) 중앙은행이 찍어 내는 화폐량을 크게 줄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항하는 중앙은행의 무기는 '고금리' 단 하나뿐이다. 끝내 주머니에 돈이 떨어져야 죽을 때까지 술 퍼 마시기를 멈추는 알코올중독자처럼 말이다. 값비싼 대출을 토대로 미국은 인플레이션 효과를 억누르고, 그것으로 추가 대출을 방지할 수 있었다. 이를 달성한 이후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에는 ‘금리의 책임 때문에 금리는 하락할 수 있다’라는 신조가 등장했다.
인플레이션과 맞서는 데 성공하면 그다음은 경제 부흥이라는 사실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여기에 독일의 시인, 빌헬름 부쉬(Wilhelm Busch)의 시구를 인용하고 싶다. “그저 첫 번째 시도에 불과했을 뿐, 곧바로 두 번째 시도가 이어지리라.”
<코스톨라니 주식 지침서>
주식투자자는 카드 게임 플레이어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자신의 조합과 결정을 조율해야 한다. 플레이어에게 카드를 분배할 때처럼 특정 이벤트는 주식투자자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할 수 있다. 좋은 투자자는 능숙한 카드 플레이어처럼 곤경에서 벗어난다. 좋은 카드가 주어지면 많이 벌고, 나쁜 경우에도 손해를 최소화한다. 주식 거래는 운과 경험이 혼합된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 행운이 플레이어에게 전달될 카드를 결정한다. 즉 이벤트가 발생하는 방식이 주식시장의 방향을 결정한다.
주식투자자와 가장 가까운 직업은 무엇일까? 의사다. 주식투자자처럼 의사도 우선 진단부터 내린다. 그다음에 다른 추가 고려 사항이 시작된다. 의사와 투자자는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에 모든 상황을 한 번 더 검토한다. 그 후 잘못된 방향이라고 판단하는 순간 곧바로 결정을 번복해야 한다. 많은 의사가 의학을 학문이 아니라 의술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학문이 아니라 예술이다.
주식의 매수 혹은 매도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유념해야 한다. 전반적인 주식 동향은 모든 주가에 결정적이다. 최고의 주식이라도 전체 주식시장이 급락할 때 상승하는 경우는 드물다. (혹은 매우 힘겹게 상승한다.) 반면 하락장에서는 평소 수익률이 좋지 않은, 변변치 않은 주식이 우량주보다 더 크게 상승하며 쾌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주식투자자는 보유한 주식의 매입 금액이 아니라 그날의 시가로 주식을 평가해야 한다. 추가 매수 혹은 보류 결정을 해야 한다면 기존의 구입가는 잊어야 한다.
성공한 투자자는 무엇보다 겸손해야 한다. 아둔한 이들조차 주식장에서 수익률을 올리는 경우도 있기에 절대로 함부로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주식시장의 가능성은 주식이 오르거나 내리는 것 이 두 가지뿐이다. 즉 둘 중 제대로 선택했다고 무엇이라도 된 것처럼 자만하지 말자. 그저 그날의 운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다. 주식투자자는 미래에 관한 확신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낙관적인 전망이 떠오르면 희망도 생기기 마련이지만 좌초할 가능성도 온전히 배제할 수 없기에 회의적 시선도 다소 필요하다.
아무리 최고의 우량주를 보유했더라도 잘못된 시기에 매수 혹은 매도하면 돈을 잃을 수 있다. 반대로 거짓 주식일지라도 적절한 시기에 매수와 매도를 한다면 수익 실현이 가능하다.
단기 주식시장 동향을 좌우하는 두 가지 핵심 요소는 시장 심리와 기술적 구성이다. 즉 증권이 자본과 멘탈―당신이 강한 멘탈을 지닌 투자자인지, 두 손을 벌벌 떠는 투자자인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뜻이다.
중기 주식시장 동향의 결정적인 요소는 금리다. 이자, 즉 자본시장의 유동성은 수요 또는 공급이 강세를 보일 지를 결정한다.
장기적 동향 측면에서 심리란 거의 무의미하다.
주식을 매수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는 (과거의) 매수가와 완전히 별개로 생각해야 할 뿐만 아니라 (향후 있을 미래의) 개발 가능성에 달려 있다. 즉 주식을 예측하고 그런 예측을 예견하는 일이라 예측의 제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객관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 객관적인 판단을 거쳤다면 때로는 손실을 보더라도 매수해야 한다. 다만 그날의 결산에서 손실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보편적이라 대부분의 투자자는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매수하지 않는다.
주식이 하락하거나 상승했는지 그 여부만으로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매수 결정을 내릴 때는 그 밖의 다른 근거가 있어야 한다.
‘거의 파산’에 이른 기업과 ‘회생한’ 기업의 차이는 ‘거의 파산한’ 기업과 결국 ‘파산한’ 기업의 차이보다 크다. 이는 부실 채권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일반적으로 채무자가 기업, 국가 혹은 지방자치단체라면 재정적 균형을 되찾을 때, 다시 말해 회생한 후 이자 혹은 원금 지급을 개시할 경우 부실 채권도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사례별로 객관적인 특별 조사와 검토가 필요하다.
신용으로 주식을 매수하는 건 몹시 민감한 문제다. 자신이 지려는 부채보다 더 큰 자산을 소유한 경우에만 신용으로 주식을 매수해야 한다.
시세가 바닥을 친 후 적은 거래량으로 상승하는 시장은 몹시 유익하다. 이 경우 약세장에 매수한 주식이 확고한 투자자의 손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세가 오르고 거래 물량이 많다면 대량의 주식이 자본력이 강한 손에서 자본력이 약한 손으로 넘어간다. 이는 시장에 그리 이롭지 않다.
거래 물량이 몰리며 시세가 하락한다면 이는 증권시장에 유익하다. 약자의 손에서 다시 강자의 손으로 건너가기 때문이다. 상승장에서 매수하는 사람들은 분위기의 압박에 따라 움직인다. 약세장에서 주식을 매수하는 투자자는 강한 손으로 충분한 고민 후에 행동으로 옮긴다. 하락하는 시세의 거래 물량이 많을수록 시장에는 이롭다.
호재에도 곧바로 시세가 오르지 않는다면 이는 주식시장에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기에 매우 좋지 못한 징조다. 시장의 기술적 상태가 약세인 거라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주식이 약자들의 손에 있다는 의미다.
장기투자 수단으로 유가증권을 매수한다면 오늘, 내일 혹은 모레 조금 더 가격이 하락하거나 상승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특정 종목의 경우 개별 주식 차트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예컨대 특정 차트가 전반적인 주식시장 동향을 거스른다면 해당 기업의 대주주에게 알려야 한다.
옵션에 관한 한 매수나 매도가 흥미롭다고 할 수 있는 건 그 옵션을 발행한 기관과 기간에 달려 있다. 자본가에 옵션 판매(옵션 발행)를 하는 것은 일종의 수익률 사업이다.
옵션에서는 기간이 가장 중요하다. 옵션 매수자의 입장에서 최적인 옵션은 기간이 긴 경우이고, 옵션 매도자(옵션 발행자)의 입장에서는 짧을 때가 유리하다.
옵션 게임은 경마와 비교할 수 있다. 옵션 매수자와 옵션 매도자(옵션 발행자)의 차이는 경마에 베팅한 두 게임꾼의 차이와 비슷하다. 옵션 매도자는 경기장에서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에 베팅하는 반면, 옵션 매수자는 승리에서 가장 동떨어진 말에 베팅한다.
실제 선물 시장이 없는 옵션거래의 경우 콜 옵션에 공매도할 수 없기에 그리 재미가 없다.
주식시장은 경기 침체인 상황에서도 상승할 수 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상황이 어떻든 경기 활성화를 촉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우선순위에서 혜택을 보는 것이 바로 주식시장이다.
주말에는 시장에 관련된 문제를 천천히 고민해 볼 시간과 여유가 충분하기에 월요일부터 해야 할 계획을 찬찬히 세울 수가 있다. 따라서 한 주가 시작되는 초반에 주식 주문을 하는 것을 선호한다.
투자자에게 가장 필요한 특성 두 가지는 직감과 유연한 사고이다. 직감이란 상상력이 혼합된 무의식적 논리를 말한다. 그렇지만 상상력에만 의존하는 것은 몹시 위험하다.
미래의 주식투자자에게 유용한 학문은 철학과 수학이다. 투자란 일종의 철학이다. 올바른 결론을 내리기 위해 항상 찬반을 저울질해야 한다. 수학적 두뇌는 주식투자에 있어 몹시 유익하다.
특정 대기업의 주식이 강력히 추천된다면 특히 유의하라. 금융기관에서 그 주식을 처분하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금융 매니저의 거래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
내부자가 추천하는 자사주는 고려하지 않는 것이 좋다.
경제전문가들은 주식시장의 동향 분석에 있어 무능력하다.
전문가라도 이론을 전공하지 않은 고수의 의견에 더 큰 비중을 두는 편이다.
비록 성공하지 못했어도 경험이 많은 주식투자자의 견해를 중하게 여긴다.
국제적 정세 또한 증권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
경험은 주식투자 시 상황에 따라 즉흥적인 결론이 최고란 걸 가르쳐 준다.
보유한 증권 계약이 뭔가 잘못된 배를 타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가? 그렇다면 주저하지 말고 뛰어내려라.
잃어버린 돈은 잃어버린 것이다. 새로운 사업만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또한 이미 지난 과거와는 아무 연관도 없다.
주식투자란 오직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깨달음을 얻는다
투자와 투기의 차이는 상대적이다. 사고방식에 달렸다.
장기적 관점에서 부정적인 평가와 큰 위험이 예견되는 주식을 단기적인 목적만으로 매수하는 일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투자자는 최대한 본인의 정치적 성향이 투자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주식투자자에게 가장 위험한 일은 정확한 정보를 잘못 해석하는 것이다.
지나간 이벤트를 정확히 분석하는 것은 몹시 중요하다.
주식투자자는 매일 결산하는 걸 삼가야 한다.
군중심리에 의한 반응은 전염병과 비슷하다. 극장에서 누군가 하품을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 있는 모두가 하품하게 된다. 누군가 기침을 하면 그 즉시 모두가 기침한다. 주식시장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불이야!"라고 외치는 순간 모두가 이성을 잃고 허둥된다.
배당금, 수익, 대차대조표 수치 등 모든 정보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은 주식투자자에게 특별히 중요하지 않으며 상황에 따라 오히려 해가 되기도 한다. 세부사항을 과도할 정도로 파악하고 있으면 나무에 정신이 팔려 숲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필요한 내용은 최소한으로 파악하되 전체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변동이 심한 시기에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주식시장이 붕괴된 후 일어날 징후에 대해 떠든다면, 장기 투자 목적으로 해당 주식 카테고리에서 그들이 주장하거나 근래 들어 폭락한 주식을 매수하자.
진정한 주식투자자는 그 어떤 상황이든 자신의 판단이 옳았을 때 가장 기뻐한다.
주식시장의 움직임은 언제나 논리적이다. 다만 그 메커니즘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몰케 장군(Helmuth von Moltke, 프로이센 왕국 제4대 장군참모총장)은 전쟁에서 4G, 즉 돈(Geld), 인내심(Geduld), 생각(Gedanken), 행운(Glück)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식시장에서도 전부 중요하지만, 가장 먼저 행운이 따라야 한다.
이 장에서는 글로벌 금 투기 시장에서의 시세 조종과 심리적인 요인에 따라 급변하는 해당 시장의 변동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황금 투기꾼, 소련
오늘날까지 이어진 금융 투기 역사를 살펴보면 특정 표적물의 가격 인상 혹은 하락으로 몰아가는 거대 세력과 막강한 신디케이트가 여럿 존재했다. 그렇지만 이들 전부 당대 투기꾼의 정점이라 할 수 있던 소련과 비교하면 그저 작은 피라미에 불과했다.
황금 투기꾼과 그 배후의 조종 세력은 악재가 보도되기만을 노심초사하며 기다렸다. 이윽고 폴란드에 경제 위기가 닥쳤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금 시세는 오르기는커녕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폴란드의 금융 위기를 바라보는 서유럽의 태도는 명확했다.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채무가 행여 묶여 버릴까 우려하는, 지극히 정당한 근심이었다.
소련은 결국 폴란드를 위해 최저 이자 비용을 지불하고, 파산으로 인한 연쇄반응을 피하기 위해 보유한 금을, 그것도 불과 3년 전에 비해 두 배가 넘는 물량을 처분해야 했다.
미국의 황금 룰렛
소련이 관여하는 곳에 미국 역시 손 놓고 가만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접근 방식은 아예 달랐지만 미국도 그곳에 매번 있었다.
금 시세를 부추기는 건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골드러시(gold rush)다. 수백 명에 이르는 전문 투기꾼과 중개인이 자기 부담 혹은 수십만 명에 이르는 홍콩, 중동 및 미국 전역의 고객들을 위해 이 황금 대란에 가담했다.
황금 게임판에는 노련한 게임꾼도, 컴퓨터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의 기술적 조건, 다시 말해 초조해진 투자자가 게임꾼처럼 베팅금을 매수 혹은 매도 계약서에 거느냐 또는 냉철한 경제전문가가 되어 이 전체를 찬찬히 통찰하느냐가 전부인 상황이었다.
시세는 조작마저 불가능했다. 설명 가능하다고 해도 기껏해야 최고 몇 분에 불과했다. 오늘날 투자자는 매입이나 매도 과정에서 직접 나서며 조종을 시도한다. 현재의 급격한 시세 변동을 설명할 유일한 근거이기도 하다.
중개인들은 의사, 건축가, 과부 등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에게 향후 금이 계속 오를 수밖에 없으며 대란이 반드시 올 거라 강조하며 투자를 부추겼다. 금을 모으는 이가 늘어나면서 생길 끝없는 인플레이션, 세계의 종말, 금 부족으로 빚어질 공황 상태는 중개인에 몹시 이상적인 중개수수료 기계나 마찬가지였다.
금이 500달러까지 치솟은 이후 잇따라 무의미한 뉴스가 흘러나왔다. 멕시코와 브라질의 파산, 은행 붕괴 그리고 그 밖에 금과 전혀 무관한 ‘재앙 소식’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옛말에 ‘뉴스가 시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세가 뉴스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일 정도로 물량에 집착했던 금 투기꾼의 대다수가 결국 제 몸에 걸칠 바지까지 다 잃고 말았다.
이 장에서 코스톨라니는 옛 부다페스트의 낭만을 보여 주는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매우 부유한 유대인 은행가와 국회의원, 즉 모리츠 바르만(Moriz Wahrmann)과 오토 헤르만(Otto Hermann), 또 한편으로는 유명 학자와 악명 높은 반유대주의자 간 결투였다.
바르만은 심한 근시였지만 권총으로 하는 결투에 동의했다. 반면 헤르만은 시력이 좋았지만 청력은 거의 들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결투장에서 등을 지고 선 후 “시작”이라는 신호가 울려 퍼지고 돌아선 후 몇 초가 흐르자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헤르만이 주변에 물었다. “사팔뜨기 놈이 총을 쐈는가?” 그러자 바르만도 지지 않고 되물었다. “이단 민족 놈은 어디 있지?”
아주 잠시 그들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그런 뒤 너나 할 것 없이 공중에 총을 쏜 두 사람은 화해하고 친한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비망록 (4)>
주식회사는 자유 시장경제의 기초이며 자본 이윤을 기대하는 투자는 그 동력이다.
주식시장에서 잘 쓸리는 빗자루는 새것이 아니라 낡은 것이다.
언젠가 몰리에르는 ‘너무 많은 것을 아는 바보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보다 두 배나 어리석다’라고 썼다. 이는 증시에도 적용되는 진리다.
투자자들은 언제나 자신의 사정에 최선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상승장을 예상하는 투자자는 항상 시세 상승을 뒷받침할 근거만 찾고, 하락장 투자자 역시 시세 하락을 암시하는 근거만을 찾는다.
그러나 주식시장에는 경계해야 할 함정과 숨은 속셈이 난무한다. 근거 없는 소문, 왜곡된 뉴스, 가짜 정보 그리고 무엇보다 진짜 정보를 잘못 해석하는 경우는 몹시 위험하다.
그러나 순진한 투자자, 이재에 능통한 투자자 할 것 없이 모든 주식투자자가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가장 위험한 함정은 반만 사실인 정보다. 앞서 말했듯 그런 정보는 거짓 정보만큼이나 위험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는 외환 보유고 부족 사태로 외국 통화와 주식에 엄격한 규제를 시행했다. 외국 유가증권의 반입과 반출도 엄격히 통제했는데, 반드시 동등한 금액의 유가증권을 해외로 반출해야 외국 유가증권을 파리로 반입할 수 있었다.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유망한 유가증권 종목은 석유 증권, 특히 로열 더치(Royal Dutch)사의 주식이었다. 로열 더치 주식을 반입하려면 동등한 금액의 외국 유가증권을 반출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차익거래상들이 반출을 위한 외국 유가증권으로 '일본 채권'을 선택하여 스위스 거래소로 반출하고 다시 암거래상들이 불법적으로 프랑스 거래소로 다시 가져오는 일이 반복되었다.
여기에 확인되지 않은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뭔가 일본과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문까지 무성해지면서 일본 채권의 가격이 폭증하였다. 결국 나중에 소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면서 해당 증권의 금액이 액면가의 50퍼센트까지 추락하였다.
이 사건은 다른 증권거래소에서 활동하는 동료들이 적어도 나보다는 더 많은 정보를 알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좋은 교훈이 되었다. 원래 이웃집 잔디가 더 푸르다고 착각하기가 쉬운 법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새로 형성한 파리 분가의 1세대 가주의 사촌이었던 모리스 로스차일드(Maurice Rothschild)는 상원의원일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부자였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1957년 사망한 그가 남긴 재산은 당시 10억 마르크를 상회했다고 한다.
1982년 사회주의자인 미테랑 정권 하에서 프랑스 로스차일드 은행(Banque de Rothschild)은 프랑스의 다른 민간 은행 38곳처럼 국유화법 아래 무너졌다.
1817년에 세워진 프랑스 로스차일드 가문의 은행인 로스차일드 프레르(Rothschild Frères)의 이니셜 R.F.가 곧 République Française(프랑스 공화국)를 상징하던 그런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끝나 버렸다(1967년에 Banque de Rothschild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가이 드 로스차일드' 남작(Baron Guy de Rothschild)은 무모하게도 “페탱의 집권하에선 유대인, 미테랑의 집권하에선 파리아(인도의 최하층 천민계급)!”라고 불평했지만 그들은 그 와중에서도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당시 주식 시세는 100프랑 아래였지만 보유한 주식마다 280프랑을 보상받았다).
또한 로스차일드 가문의 개인자산은 모두 그대로 유지되었고, 로스차일드 가문의 신세대들은 1940년 히틀러에게 핍박을 받은 그들의 조부모 세대와 달리 굳이 망명이라는 카드를 쓰지 않아도 되었다. 대신 콩코드 여객기를 타고 날아가 우아하게 월 스트리트에 입성했다.
<비망록 (5)>
언젠가 몰리에르는 “사람들 대부분은 질병이 아니라 잘못 처방된 약 때문에 죽는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최근 몇 년만큼 그 말이 적중한 적이 또 없었다. 많은 예금자가 고이 저축해 놓은 예금을 날려 버렸다. 그들은 화폐가치의 하락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을 이용해 수익을 올리려 했던 것이다.
볼테르는 “상황이 아무리 나빠도 좋은 결과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주식시장에도 적용되는 명언이다.
볼테르는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훨씬 쉽다”고도 했다. 나는 달리 말하고 싶다. 우선 돈을 벌어 봐야 돈을 쓸 수 있다.
은행가는 솔로몬처럼 현명하고,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똑똑하고, 삼손처럼 강하고, 므두셀라처럼 나이가 지긋해야 한다.
프랑스의 위대한 작가 스탕달(Stendhal)의 묘비에는 ‘삶을 사는 동안 글을 썼고 그리고 사랑했다’라고 적혀 있다. 불운한 투자자의 묘비라면 ‘삶은 사는 동안 투자했고 다 잃었다’라고 적힐 것이다.
미국 방법론을 분석할 때면 무의식적으로 프랑스의 시인, 장 드 라 퐁텐(Jean de la Fontaine)의 우화 『토끼와 거북이』가 떠오르곤 한다.
내 눈에는 거북이를 상징할 미국이 그렇게 보였다. 여기서 토끼는 국방 분야이든, 기술 혹은 경제 분야이든 각각의 부문에서 미국과 경쟁하는 상대를 상징한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오래 걸려도 끈질기게 노력한다’를 모토로 세운 미국은 지금까지 그들에게 도전장을 내민 경쟁자들에게 승리를 거뒀다.
과거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했다.
“끈질긴 자가 전투에 승리한다.”
결국 고집스레 버텨 낸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완승했다.
숫자가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달러 붕괴 위기에 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불필요하고, 인플레이션도 마찬가지다. 에너지 문제에 관해서도 거북이는 압승을 거뒀다.
나는 미국뿐만 아니라 서유럽 전체에 낙관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향후 다가올 미국의 호경기로 수혜를 입을 독일 또한 그것을 발판으로 새로운 정치적 방향을 수립할 것이다. 나는 그런 음울한 경제전문가에 맞설 낙관론 양성학교 설립을 공표하는 바이다.
1688년 주식 거래에 처음으로 등장한 책의 이름은 ‘호세 드 라 베가’의 『혼란의 혼란(Verwirrung der Verwirrung)』이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몇 년 후의 일을 결정할 수 있겠는가? 단순한 공론이라면 주식시장도 그렇지만 경제를 바라보는 실용적 관점 측면에서도 기회는 유일하다. 시시각각 등장하는 위험을 헤쳐 나가려면 스캣이나 포커 게임처럼 즉흥적인 대응이 필수다.
카드 게임에는 꼭 지켜야 하는 룰이 있지만 진행 경과는 어떤 카드를 받느냐에 달렸다. 경제의 방향을 틀어야 하는 사람의 경우 우선 카드의 패를 받는 것을 팩트라 부르고, 그 후 게임 과정에서 그가 취하는 조치를 결정이라 부른다.
<비망록 (6)>
정치인이 지닌 가치를 사들이고 그가 직접 부여한 가치를 그에게 되파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투자다.
한 정부가 폭력 없이 국가를 운영하면서 금융 질서마저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우 교활해야 한다.
언젠가 프랑스의 유명한 정치인이자 언론인이었던 조르주 클레망소(Georges Clemenceau)는 “전쟁은 몹시 심각한 사안이라 군인에게만 맡겨 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경제 역시 몹시 심각한 사안이기에 교수와 경제학자들에게만 맡겨 놓을 수는 없다.
자본주의 서구의 정세는 위태롭지만 절망적이진 않다. 반면 공산주의가 이끄는 동구의 정세는 위험하지는 않지만 절망적이다. 그런 소련의 동맹국에는 에스파냐 출신의 이탈리아 귀족 집안 보르자가(Borgia家) 시대에 주로 쓰던 말 “교황의 부엌에서 먹는 사람은 죽는다(Qui mange du Pape en meurt)!”를 인용할 수 있다.
가치가 영원히 지속되는 통화는 없다. 항상 최고일 것만 같은 돈조차 언젠가는 초라해진다. 루블화는 단지 그렇게 선택되었기에, 애초에 태어났을 때부터 초라하다.
국가 파산? 금융 위기? 그에 대한 답변은 단 하나뿐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시끄럽게 유난을 떠는 것!”
인플레이션은 민주주의,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선동정치로 인해 치러야 하는 대가다. 그 어떤 국회도 인플레이션에 맞설 엄격한 조치를 과감히 시도하지 못한다.
프랑스 작가인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가 살면서 두 번이나 작성했다던 이 설문지는 특히 프랑스 살롱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유희였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주간지 매거진에 이 칼럼을 연달아 게재했다. 그리고 1983년 6월 16일, 마침내 나의 차례가 되어 내가 성심껏 작성한 답변과 내 사진이 신문에 수록되었다.
Q. 당신에게 가장 큰 불행은 무엇인가?
A. 서서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는 일
Q. 당신에게 완전한 지상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A. 내면의 평화
Q. 당신이 가장 빨리 인정하는 실수는 무엇인가?
A. 금전 문제에 관한 무책임한 행동
Q. 역사에서 좋아하는 위인은?
A. 소크라테스, 키케로, 탈리랜드, 테오도르 헤르츨
Q. 현실에서 당신이 존경하는 인물은?
A. 페넬로페, 헬렌 켈러, 골다 메이어(Golda Meir)
Q. 가장 혐오하는 것은?
A. 협박꾼, 허풍쟁이, 졸부
Q. 당신이 가장 감탄을 금하지 못한 개혁은?
A. 절대 실현되지 않을 통화개혁
이 장에서 코스탈로니는 먼저 자신이 2차 세계대전 중에 프랑스에서 탈출하여 미국에 건너갔을 때 프랑스에서의 화려한 경력을 바탕으로 자신만만하게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이 책에서 '월가의 대형 증권사'라고만 말하고 있다)에 지원했다가 탈락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면서 "회사 입장에서 보면 (매달 중개수수료를 얼마나 벌어들이는지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냉혹하고 무자비한 월 스트리트에서) 내가 경제 및 금융 전체의 판세를 판단할 능력을 갖췄는지 아닌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아무리 동시대 사람들 중 증권거래 경험이 풍부하고, 정치 · 경제적 사건들과 주식시장에서 벌어지는 상관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시세 흐름을 판단하는 예리한 감각의 소유자라 한들 그들에게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라고 자신의 진가를 몰라 본 골드만삭스와 월가를 엄청 디스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학문을 수학한 곳은 (정글이란 표현을 피하자면) ‘인생이란 대학’이었다. 그 어떤 컴퓨터도, 그 어떤 학문의 공식도 지난 몇 십 년간의 경험을 대체할 수는 없기에 우리가 직접 나서서 책임져야 할 부분이 조금씩 발견되고 있다.
많은 은행가와 학계, 공식 증권 분석가들이 내 이론을 거부하는 정도는 아니라 해도 혹독하게 비판한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렇기에 난 내 이야기를 우리 자본주의 체제와 증권시장에 맞서는 주적, 마르크스가 『자본론』이라는 대표 저서를 집필하도록 영감을 준 13세기 이태리의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의 말을 인용하며 끝맺으려 한다.
‘너의 길을 걸어라, 남이 뭐라고 떠들든 그냥 내버려 둬라(Segui il tuo corso, e lascia dir le genti)!’
이것이 마르크스와 이 코스톨라니의 생각이 일치하는 유일한 지점일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