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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강성 Jun 11. 2024

행운에 속지 마라 (1)

주식과 투자 이야기 (10)

《행운에 속지 마라(원제: Fooled by Randomness)》는, 《블랙 스완(The Black Swan)》으로 유명한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가 2001년에 쓴 책이다.


그가 처음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사람들은 ‘세상사의 대부분은 운에 좌우된다’라는 그의 견해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후 그가 2007년에 쓴 《블랙 스완》에서 미국 금융 위기를 예측하였는데, 그 내용과 같이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발생하자 그는 일약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경제학자로 떠올랐다.


탈레브는 2009년에는 경제지 <포브스> 발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 전문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탈레브와 저서 출처 구글 이미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 1960년 9월 23일~), 미국의 경제학자]

레바논 아미눈(Greater Amyoun) 출생한 레바논계 미국인이다. 대대로 부유하고 영향력 있으며, 레바논에서는 드문 정교회 집안 출신이다. 할아버지와 증조부는 레바논 부총리를 지냈고,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오스만 제국 하 레바논 산 주 총독을 지낸 선조도 있다.

파리 제9 대학 Universite Paris Dauphine(파리 도핀)에서 과학 학사와 석사를,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에서 MBA를 취득했다. 이후 파리 제9대학교에서 파생상품 가격 계산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월가의 파생상품 투자자로 활동했으며 이 기간동안 현대 금융 시스템이 시한폭탄과도 같은 위험한 시스템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블랙 스완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다.

현재는 뉴욕대학교 폴리테크닉연구소에서 리스크 공학 특훈 교수로서, 분야와 관련된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나무위키]


탈레브는 2006년부터는 본격 철학 에세이리스트로 전향하며 다양한 저서들을 집필했다.


그의 저서 중 유명한 책들로는 이 책과 《블랙 스완》외에도, 《안티프래질(Antifragile)》,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The Bed of Procrustes)》, 《스킨인더게임(Skin in the Game)》 등이 있다.


[출처 구글 이미지]
[블랙 스완]

18세기 오스트레일리아 남부에서 흑고니가 발견되면서 생긴 용어이다. 17세기 말까지 수천년 동안 유럽인들은 모든 백조는 희다고 생각해왔으나 네덜란드의 한 탐험가가 흑고니를 발견한 후 일반적인 통념이 깨지는 충격을 받은 데서 유래한다. 관찰과 경험에 의존한 예측을 벗어나 예기치 못한 극단적 상황이 일어나는 일을 일컫는다.

탈레브는 '블랙 스완'을 과거의 경험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관측값이라고 정의하면서, 경제공황이나 미국의 9·11테러를 예로 들었다. 이 책을 통해 그는 예기치 못한 위기상황으로 글로벌 경제가 휘청거릴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고, 월가에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의 경고처럼 2008년 국제 금융위기가 닥치자 이 용어는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고, 《블랙 스완》은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엄청난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프롤로그

하늘로 솟은 모스크


이 책에서는 실력으로 위장한 행운, 다시 말하면 결정론으로 위장한 우연을 다룬다. 그 대표적인 형태는 운이 좋아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명확히 드러난다. 그들은 자신의 부를 실력의 결과라고 착각한다. 우리는 매사에 작용하는 운의 비중을 과소평가한다.


우리는 사바나 지역을 떠돌던 조상과 매우 닮았으며, 특히 신념 체계는 여전히 미신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혼동은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하는데, 문학가들은 단지 우연히 나타난 단어 패턴에 심오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특히 상징주의는 운을 거부하는 태도와 무능에서 비롯되었으며, 매사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19세기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는 잉크 얼룩을 보고 “나는 하늘로 솟은 모스크(이슬람의 예배당)를 보았다”고 말한 뒤 곧장 아비시니아(abyssunia, 에티오피아의 예전 국명)로 갔는데, 그 곳에서 기독교인 레바논 상인에게 심한 학대를 당하고, 매독에도 걸렸으며 괴저로 다리 하나를 잃은 뒤 마르세유로 돌아와 겨우 30대에 병원에서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채 죽었다.

[젊은 시절의 랭보와 그의 동성애자 시인 폴 베를렌 출처 구글 이미지]

내 경험과 과학 문헌에 비추어 보면, 경제적으로 위험을 감수한 사람들은 성공한 경우보다 자신의 착각에 희생된 경우가 많았다(그들은 불리한 결과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하여 과도한 낙관주의와 과신으로 치우쳤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아래 표1의 왼쪽 열을 오른쪽 열로 착각해서 발생하는 상황에 대한 설명이다(대개 비극으로 끝나는 코미디다). 이렇게 운을 실력으로 착각하는 습관이 널리 퍼져 있는 세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증권시장'이다.


인간을 바라보는 현대 사상은 다음 두 가지로 양극화되어 있다. 하나는 유토피아적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비극적 관점이다.


루소(Rousseau), 고드윈(Godwin), 콩도르세(Condorcet),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규범경제학자(자신에게 이로울 테니 합리적인 선택을 하라고 권유하는 사람들) 등은, 이성과 합리성을 믿으며, 문화적 장애를 극복하고 더 나은 인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행복과 합리성에 도달하기 위해서 단지 명령만으로도 우리의 본성을 마음대로 통제하고 변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드윈, 콩도르세, 토마스 페인 출처 구글 이미지]

다른 쪽에서는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원래부터 한계와 결함이 있으며, 개인 및 집단적 행동에 앞서 이런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칼 포퍼(Karl Popper),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와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애덤 스미스(Adam Smith),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와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투기꾼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등이 있다.

[하이예크, 허버트 사이먼, 트버스키와 카너먼 출처 구글 이미지]

결정론을 잘못 믿어 행운에 속는 현상이 사물의 특성을 단순화하는 과정에서 빚어질 수 있다는 시각에 나는 매료되었다. ‘바보도 이해할 만큼 단순화시켜야 한다’고 믿는다면, 단순화야말로 위험하기 짝이 없다고 지적하는 바이다.


이 책의 첫 부분은 솔론의 경고에 대한 자기 성찰이다(그가 겪은 희귀사건은 나의 평생 좌우명이 되었다). 이 사례를 통해서 우리는 보이는 역사와 숨은 역사, 그리고 희귀사건의 포착하기 어려운 속성에 대해 성찰한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내가 직업상 겪은 '확률편향'들을 제시한다(이런 편향들이 계속해서 나를 속이고 있다). 세 번째 부분에서는 나 자신과의 싸움에 대해서 설명하고, 끝으로 몇 가지 실용적이고 철학적인 조언을 덧붙인다.


‘계몽’과 '이성'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인간의 결함을 극복하고 운을 뒤집어보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역사는 지금도 이런 기법들을 우리에게 제공해줄 수 있다.


Part 1 솔론의 경고
- 비대칭, 불균형, 귀납법 -


리디아(Lydia) 왕 크로이소스(Croesus)는 당대 최고의 부자로 통하는 인물이었다. 오늘날에도 로망스어로 엄청난 부자를 “크로이소스 같은 거부”라고 표현한다.


하루는 현자로 유명한 그리스의 '솔론(Solon)'이 그를 방문했다. 크로이소스는 자신의 엄청난 재력을 과시하며 자신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니겠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솔론이 대답했다.

[크로이소스와 솔론, ‘Hoecke’작 출처 위키백과]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불행한 일을 생각해 보면, 지금 즐겁다고 해서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또 언제든 상황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감격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 미래는 매우 다양한 형태로 불확실하게 전개될 테니 말입니다. 그러니 임종하는 그 순간까지 신이 행복을 허락한 사람에게만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이후 크로이소스는 페르시아 왕 키루스(Cyrus)와의 전쟁에서 패한 뒤, 화형을 당할 참이었다. 그는 솔론의 이름을 부르며 외쳤다. “솔론, 당신 말이 맞았소.”


이 모습을 보고 키루스가 왜 그렇게 절규하는지 묻자, 크로이소스는 솔론이 경고한 내용을 말해주었다. 깊이 감동한 키루스는 크로이소스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자신도 같은 운명에 처할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은 생각이 깊었다.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키루스 대제 출처 구글 이미지]


01 당신은 부자인데도 왜 그리 멍청한가?


태도가 정반대인 두 인물을 통해서, 운이 사회의 서열과 질투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 이는 잘 드러나지 않는 매우 보기 드문 희귀사건이다. 현대 생활의 모든 양상은 얼마든지 빠르게 바뀔 수 있다.


트레이더 네로 튤립과 존


탈레브는 먼저, 대학에서 수학과 통계학을 공부하다가 월스트리트의 트레이더로 뛰어든 '네로 튤립'과 그와 상반되는 운용 방식을 구사하던 트레이더 '존'의 이야기를 꺼낸다.


네로는 처음 계량금융상품 트레이더로 성공했지만 시간 여유와 독립성을 갖기 위해 고유계정거래로 분야를 전환했다. 이후 그는 트레이더로서 운용업계에서 누구보다도 더 보수적으로 거래한다. 지금까지 실적이 좋은 해도 있었고 나쁜 해도 있었지만, 정말로 ‘나쁜’ 해는 거의 없었다.


1994년 가을에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갑자기 통화를 긴축하자 세계 채권시장이 붕괴했다. 실적 경쟁을 벌이던 트레이더들이 한꺼번에 큰 손실을 보았다. 그들은 현재 모두 시장을 떠나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네로는 그들과 달랐다.


네로는 미리 정해놓은 손실한도에 도달하면 즉시 거래를 청산한다. 절대로 ‘무방비 옵션(naked option)’을 매도하지 않는다. 막대한 손실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것이다. 확률이 아무리 낮더라도, 예컨대 100만 달러 이상 손실이 발생할 위험은 절대로 감수하지 않는다.


네로는 위험을 충분히 인식하고 자제력을 유지하면서 열심히 일한다면 누구나 넉넉한 인생을 살아갈 확률이 매우 높다고 믿는다. 그 수준을 넘어서는 것은 단지 운에 불과하다. 엄청난 위험을 떠안든가, 아니면 이례적으로 운이 좋아야 한다.


1990년대 네로의 집 건너편의 화려한 저택에 존이 살고 있었다. 존은 하이일드채권 트레이더였지만, 네로와는 거래 스타일이 달랐다.


분명히 존은 네로만큼 많이 배운 것도 아니고, 예의 바르지도 않았으며, 몸매가 근사한 것도 아니고, 똑똑해 보이지도 않았다. 게다가 네로만큼 세상 물정에 밝은 것도 아니었다.


존이 집을 계속 증축하며 잘 나가는 것을 보고 시기심을 느낀 네로는, 존이 자신이 떠안은 엄청난 위험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그것은 시장 경험이 너무 짧은 탓에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파산 위험이었다(생각이 얕아서 역사를 공부하지 않은 탓도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천박하기 짝이 없는 존이 무슨 수로 돈을 벌었겠는가? 정크 본드(하이일드채권) 사업을 위해서는 ‘승산’을 알아야 하는데, 이는 희귀사건의 확률을 계산하는 일이다. 존 같은 바보들이 승산에 대해서 무엇을 알겠는가?"라고 생각하면 위안을 삼았다.


반면 존은 네로가 패배자이며, 그것도 높은 학벌만 자랑하는 속물근성의 패배자라고 생각했다. 네로는 사양 산업에 속해 있었다. 존은 네로의 전성기가 이미 지났다고 믿었다. 그는 늘 말했다. “고유계정 트레이더들은 사라지고 있어. 자기들이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한물갔다고.”


1998년 여름, 네로는 마침내 명예를 회복했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하려던 그는 평소와 달리 존이 저택 앞뜰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았다. 정장 차림도 아니었고 초췌해 보였다. 평소의 으스대던 모습도 사라졌다. 네로는 존이 해고당했음을 즉시 눈치챘다. 그러나 존이 거의 전 재산을 날렸다는 사실까지는 짐작하지 못했다.


세로토닌과 운


실적과 재산만으로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까? 그럴 때도 있지만, 항상 그럴 수는 없다. 어느 시점에 보면 실적이 탁월했던 사업가 대부분이 단지 운이 좋았던 것으로 드러난다.


운 좋은 바보일수록 자신이 운 좋은 바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이들이 운 좋은 바보인 것이다. 잇단 성공 덕에 세로토닌(Serotonin)이 다량으로 분비되면서, 자신에게는 돈 버는 실력이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지경에 이른다(호르몬 시스템은 성공이 운에 좌우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은 인간 행동에서 많은 부분을 지배한다. 세로토닌은 긍정적 피드백을 일으켜서 선순환의 고리를 형성하지만, 우연히 어떤 외부 자극을 받게 되면 반대로 악순환을 일으킨다.

인간도 (실력 덕분이든 행운의 여신 덕분이든) 개인의 실적이 향상되면 세로토닌이 증가하고, 이 때문에 이른바 ‘리더십’ 능력이 향상된다. 침착하고 자신감 넘치는 말투 등 태도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사람들에게 더욱 신뢰감을 주게 된다. 마치 부자가 되어야 마땅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침내 운이 다시 고개를 쳐들면서 그는 한순간에 파산하고 만다.


마찬가지로, 트레이더에게도 돈을 벌었는지 절대 묻지 않도록 하라. 그의 몸짓과 걸음걸이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투자업계 종사자들은 트레이더가 돈을 벌고 있는지 잃고 있는지 쉽게 알아차린다.


치과의사는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부자다 - '운에 대한 저항력'


갑과 을 두 이웃이 살고 있다고 가정하자. 갑은 경비원인데, 로또에 당첨되어 부촌으로 이사 왔고, 이웃에 사는 을은 지난 35년 동안 하루에 여덟 시간씩 치아를 치료하면서 살아온 평범한 의사다.


치과의사라는 직업은 단조롭기 짝이 없으므로, 을이 치대 졸업 후 인생을 수천 번 다시 산다고 해도 그 결과는 비교적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적절하게 보험에 들었다고 가정한다). 반면 갑은 인생을 100만 번 다시 산다고 해도 거의 전부 경비원으로 살아갈 것이고(로또 구입에 수없이 헛돈만 쓰면서), 100만 번에 한 번 로또에 당첨될 것이다.


02 이상한 회계 기법


대체역사, 세계를 보는 확률적 관점, 지적 기만, 규칙적으로 목욕을 즐기는 프랑스인이 운을 보는 지혜. 언론인들이 우연한 사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 빌려온 지혜를 경계하라. 우연적 결과와 관련된 위대한 아이디어들은 거의 모두 전통적 지혜와 상반된다. 정확함과 명확함의 차이.


대체역사와 러시안룰렛


한 분야의 실적은 결과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며, 역사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을 경우의 대체비용도 고려해야 한다(이렇게 다른 사건들로 대체하는 것을 대체역사(alternative history)라고 부른다).


대체역사라는 생소한 개념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한 괴짜 재벌이 러시안룰렛을 하여 살아남으면 1,000만 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한다고 가정하자. 러시안룰렛은 6연발 권총에 총알을 한 발만 넣어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게임이다.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역사 하나가 실현되며, 여섯 개의 역사 모두 발생할 확률이 같다. 여섯 개 가운데 다섯 개는 돈을 버는 역사이고, 하나는 난감한 부고 기사를 신문에 올려야 하는 역사다. 이때 확인할 수 있는 역사는 단 하나뿐이라는 것이 문제다.


나머지 대체역사 다섯 개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지혜롭고 사려 깊은 사람은 그 속성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러시안룰렛을 하려면 어느 정도 생각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게임을 계속한다면 결국 불행한 역사를 만나게 될 것이다. 현실은 러시안룰렛보다도 훨씬 험난하다.


첫째, 현실에서는 총알이 발사되는 경우가 더 드물다. 6연발이 아니라 수백 수천의 연발 권총에 총알 한 발이 들어 있는 것과 같다. 방아쇠를 수십 번 당겨도 아무 일이 없으므로, 사람들은 안전하다는 착각에 빠져 총알의 존재를 망각한다.


둘째, 러시안룰렛은 정확한 확률 게임이라서 6을 곱하고 나눌 줄만 알면 누구나 쉽게 위험을 계산할 수 있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총구가 보이지 않는다. 맨눈으로 잠재된 위험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끝으로, 추상적인 위험에 대해 경고해주어도 사람들은 고마워할 줄 모른다(일어나지 않은 일은 모두 추상적이다).


현실 세계의 룰렛에서는 총구가 보이지 않지만, 총구를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려면 독특한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현실주의는 고통스럽다. 확률론적 회의론은 더 고통스럽다. 확률론의 안경을 쓰고 인생을 바라보면, 착각에 단단히 빠져서 운에 대해 모르고 살아가는 바보들을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토론에서 받는 굴욕


대체역사라는 개념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에서부터 재미있는 일들이 시작된다. 우리는 확률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두뇌 연구자들의 말에 따르면, 평범한 사람들은 수학적 진리를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임의적 결과를 분석할 때 더욱 그렇다. 확률적으로 나타나는 결과들은 전적으로 우리의 직관을 거스른다.


언론의 표현은 단지 세상을 비현실적으로 묘사하는 정도가 아니라 감정 기관을 통해서 관심을 사로잡음으로써 사람들을 철저히 속인다. 이것이 가장 싼 값에 대중의 관심을 얻는 방법이다.


2001년 9월 11일을 기준으로, 이후 18개월간의 하락 변동성은 이전 18개월의 상승 변동성보다 훨씬 작았다. 그러나 투자자들의 마음속에서는 하락 변동성이 매우 컸다. 언론에서 보도한 ‘테러 위협’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시장 변동성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지는데, 언론은 갈수록 우리의 생각을 단순화시키고 있다. 정확함과 명료함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일반 통념은 즉시 ‘아주 간결하게’ 설명되는 것을 좋아한다.


빌려온 지혜는 틀리기 쉽다. 그럴듯한 논평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상식은 18세까지 습득한 오해의 종합체에 불과하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이 떠오른다. 게다가 대화나 회의, 특히 언론의 똑똑해 보이는 말은 더욱 의심스럽다.


03 역사에 대한 수학적 고찰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으로 무작위 역사적 사건들을 이해한다. 운과 가상역사. 경험 많은 노인이 낫다. 역사 교수는 기초 표본 이론을 배워야 한다.


몬테카를로 수학


몬테카를로 기법이란, 간단히 말해서 다음 개념을 사용해서 가상역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첫째, 표본경로를 생각한다. 대체역사의 과학적 명칭은 대체표본경로(alternative sample paths)인데, 이는 확률 과정이라는 확률 수학의 한 분야에서 빌려온 이름이다.


경로는 결과의 반대 개념으로서, 단순히 MBA 스타일의 시나리오 분석이 아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나리오가 발생하는 현상을 조사한다는 뜻이다.


표본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실현된 하나만 본다는 뜻을 강조한다. 표본경로는 임의적이거나 결정론적이다.


임의표본경로(random sample path)는 임의실행이라고도 하는데, 특정 시작일부터 종료일까지 일어나는 가상역사 사건을 뜻하며 불확실성 수준은 변동될 수 있다.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 기법은 로스앨러모스(Los Alamos) 국립연구소에서 원자폭탄을 준비하던 기간에 개발되었다. 이 기법은 1980년대 금융수학에서 유행했는데, 특히 자산 가격의 랜덤워크 이론에 활용되었다.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와 입구 출처 구글 이미지]

역사가 주는 교훈을 무시하다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한다. 경험은 문화적 방법으로는 전달되기 어려운 법이다. 아이들은 잘못을 저지르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다. 불에 데어봐야 다시는 불에 손대지 않는다.


역사는 매우 강력해서 중장기적으로 시나리오 대부분을 실현하여 결국 악당들을 땅속에 파묻어버린다. 시장에는 나쁜 거래를 하면 대가를 치른다는 말이 있다.


확률을 연구하는 수학자들은 이를 우아하게 ‘에르고딕성(ergodicity)’이라고 부른다. 표본경로가 아주 길어지면 결국 서로 닮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의 사고는 세상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기보다는 재빨리 곤경을 모면하면서 결과를 얻도록 설계되어 있다. 우리의 사고가 세상을 이해하도록 만들어졌다고 가정하면, 머릿속에는 VCR처럼 과거 역사를 재생하는 장치가 들어 있고, 이 장치의 부하 때문에 작동이 느려져서 애를 먹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후에 얻은 정보 때문에 사건 당시 자신의 지식을 과대평가하는 현상을 심리학자들은 후견지명편향(hindsight bias), 즉 “나는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어” 효과라고 부른다.


정제된 생각


정제된 생각이란 의미 없는 소음은 제거하고 제대로 된 정보를 바탕으로 하는 생각을 뜻한다. 소음과 정보를 구분하자면, 소음은 언론에 비유할 수 있고 정보는 역사에 비유할 수 있다.


정보의 문제는 사람의 관심을 딴 곳으로 돌리게 하거나 쓸모없다는 점이 아니라, 그것이 유해하다는 점이다.


귓전을 때리는 ‘긴급’ 뉴스에서 소음 이상의 가치를 찾아내려 한다면, 이는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행동과 같다. 사람들은 대중매체가 그들의 관심을 끌어 돈을 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사회에 유통되는 정보의 가치가 전반적으로 마이너스라는 생각은 로버트 실러(Robert J. Shiller)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1981년의 논문에서 처음으로 수학 공식을 이용해서 사회가 정보를 다루는 방법을 분석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시장 변동성을 분석하여 이름을 떨쳤다. 그는 주가가 ‘무엇(예컨대 기업의 현금 흐름)’에 대한 추정 가치라면, 시장가격은 변동성이 매우 커서 ‘무엇(대용으로 배당을 사용했다)’을 확실하게 나타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서 실러는 시장이 금융 이론에서 주장하는 것만큼 효율적이지 않다고 발표했다.


실러가 이렇게 결론을 내리자, 효율적 시장 가설의 사제들은 배신한 이단을 처단하라고 지시했다. 실러를 본격적으로 비판한 사람은 로버트 머튼(Robert C. Merton)이었다. 하지만 바로 이 로버트 머튼이 후에 시장의 비효율성을 노리는 헤지펀드의 ‘설립 파트너’가 되었다.

[로버트 실러와 로버트 머튼 출처 구글 이미지]

대다수의 유명 언론은 단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무심코 소음을 제공하고 있으며, 소음과 정보를 구분하는 메커니즘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정제된 생각을 선호한다는 말은 나이 든 투자자나 트레이더, 즉 가장 오랜 기간 시장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들을 선호한다는 뜻이다. 희귀사건을 가장 오랜 기간 경험했으므로 이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몬테카를로의 필로스트라투스


현자는 의미에 귀를 기울이고, 바보는 소음만 듣는다. 현대 그리스 시인 카바피(C. P. Cavafy)가 1915년 “신은 미래의 일을 인식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현재의 일을 인식하며, 현명한 사람들은 곧 일어날 일을 인식한다”는 필로스트라투스(Philostratus, 그리스 철학자들)의 격언 뒤에 이렇게 덧붙였다.


길거리 사람들이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동안, 현명한 사람들은 깊이 명상하면서 다가오는 사건들의 숨은 소리에 경건하게 귀를 기울인다.
[카바피와 필로스트라투스 출처 구글 이미지]

시간 단위에 따른 투자의 성공확률을 계산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a) 시간 단위가 짧으면 실적이 아니라 변동성을 보게 된다. 다시 말해서, 편차만 볼 뿐이다. 그래서 기껏해야 편차와 수익이 뒤섞인 모습을 보는 것이지, 수익을 보는 것이 아니다(하지만 우리의 심리는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b) 우리 심리는 이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 치과의사는 더 빈번하게 확인하는 것보다 매월 거래명세서를 확인하는 편이 더 낫다. 아마도 1년에 한 번만 명세서를 확인한다면 훨씬 나을 것이다.


무작위 사건을 너무 깊이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육체적으로도 탈진하게 되고, 잇달아 겪는 고통 때문에 감정도 메말라버리게 된다.


사람들이 어떤 주장을 하든, 손실 때문에 겪게 되는 고통은 이익에서 오는 기쁨으로 상쇄되지 않는 법이다(일부 심리학자의 분석에 따르면, 손실에서 오는 부정적 효과는 이익에서 얻는 긍정적 효과보다 강도가 2.5배나 크다). 따라서 심리적으로 적자 상태에 이르게 된다.


내가 합리적이지도 않고 운에 휩쓸려 심리적 고통을 받는다는 점이 문제다. 나는 공원 벤치나 카페에서 숙고해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정보로부터 떨어져 있어야 한다.


나의 유일한 장점은 나 자신의 약점을 안다는 사실이다. 뉴스를 보면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맑은 정신으로 실적을 보지도 못한다. 내게는 침묵이 훨씬 낫다.


04 운, 허튼소리, 과학적 지성


몬테카를로 엔진으로 만든 인공 사상을 엄격한 실제 사상과 비교하다. 과학 전쟁이 사업 세계에 시작되다. 심미적 감각이 운에 속고 싶어 하는 이유.


무작위로 만들어 낸 문장


시간이 갈수록 과학적 지성과 인문학적 지성이 구분되고 있다. 이른바 ‘과학 전쟁’이 극에 달하면서, 인문학적 비과학자들과 비인문학적 과학자들 사이에 파벌이 형성되고 있다. 둘 사이를 구분하는 논쟁은 1930년대 빈에서 시작되었다. 포퍼, 비트겐슈타인, 카르납(Carnap) 외 다수의 아이디어가 개발되어 빈학파(The Vienna Circle)를 형성했다.

[칼 포퍼, 비트겐슈타인, 카르납 출처 구글 이미지]

과학적 지성과 인문학적 지성을 구분하는 그럴듯한 방법이 하나 있다. 과학적 지성은 다른 과학자가 쓴 글을 대개 인식할 수 있지만, 인문학적 지성은 과학자가 쓴 글과 엉터리 비과학자가 쓴 글을 구분하지 못한다.


특히 인문학적 지성이 문맥에 벗어나서든, 과학과 정반대의 의미로든, ‘불확정성 원리’, ‘괴델의 정리’, ‘평행우주’ 같은 당시 유행하는 과학 용어를 사용하면 구분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나는 이런 행태를 설명한 앨런 소칼(Alan Sokal)의 몹시 재미있는 책 《지적 사기(Fashionable Nonsense)》를 읽어보라고 추천한다. 책의 내용은 인문학적 지성이 과학 참조자료를 마구잡이로 인용한 결과 그것을 과학 논문으로 착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앨런 소칼과 저서 출처 구글 이미지]

역 튜링 테스트와 모든 사이비 사상가의 아버지


수다쟁이와 사상가를 구분하는 훨씬 재미있는 방법이 또 있기 때문이다. 몬테카를로 엔진을 이용하면 인문학적 담론으로 착각할 만한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과학적 담론은 만들어낼 수가 없다. 화려한 문장은 무작위로 만들어낼 수 있지만, 진정한 과학 지식은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인공지능에 대한 튜링 테스트(Turing test)를 역으로 적용했다.

[앨런 튜링과 50파운드 화폐 출처 구글 이미지]

몬테카를로 엔진을 이용하면 그럴듯한 논문을 만들어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문장을 동원해서 순환적 문법이라는 기법으로 문구들을 무작위로 배열하면, 문법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전혀 의미 없는 문장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기업인들의 연설도 사용하는 어휘가 다르고 품위가 떨어진다는 점만 제외하면 위의 부류에 속한다. 회사 CEO의 연설을 모방해서 무작위로 연설문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우리는 고객의 이익을 추구한다 / 앞에 놓인 길 / 직원은 회사의 자산 / 주주 가치 창조 / 우리의 비전 / 우리의 역량은 ~에 있다 / 우리는 쌍방향 솔루션을 제공한다 / 이 시장에서 우리의 포지션은 ~다 / 우리의 고객을 더 잘 섬기는 방법 / 장기 이익을 위한 단기 고통 / 장기적으로는 보상을 받을 것이다 / 우리는 강점을 활용하고 약점을 개선한다 / 용기와 결단이 승리할 것이다 / 우리는 혁신과 기술에 헌신한다 / 행복한 직원이 생산성이 높다 / 탁월성을 향한 몰입 / 전략 계획 / 우리의 근로 윤리


가상역사에 대해서 논할 때, 모든 사이비 사상가의 아버지 헤겔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헤겔이 쓰는 용어는 자유분방한 파리의 카페나, 현실 세계와 완전히 격리된 대학의 인문학부를 제외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몬테카를로 시

  

가끔 운에 속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보통 장황한 허튼소리를 혐오하지만, 예술과 시를 대할 때는 달라진다. 한편, 나는 스스로를 운의 역할을 찾아내는 진지한 초현실주의자처럼 생각하고 처신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 거리낌 없이 온갖 미신에 탐닉한다.


이것에 어떻게 선을 긋는가? 답은 미학이다. 아름다운 형태는 우연히 만들어졌든 순전한 착각이든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우리 유전자의 일부는 모호한 언어에 깊이 감동한다. 굳이 저항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아름다운 시체’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 폴 엘뤼아르(Paul Eluard) 등 초현실주의 시인들이 카페에 모여 다음과 같이 시도했다(현대 문학비평가들은 이들이 전후 침울한 분위기의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둘러앉아 다른 사람이 쓴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접힌 종이 위에 각자 맡은 문장 성분을 적었다. 첫째 사람은 형용사를 쓰고, 둘째 사람은 명사를 쓰며, 셋째 사람은 동사, 넷째 사람은 형용사, 다섯째 사람은 명사를 쓰는 식이다. 이렇게 무작위로 만들어낸 시 문장은 다음과 같다.


"아름다운 시체가 새 와인을 마실 것이다(Les cadavres exquis boiront le vin nouveau)"

[앙드레 부르통과 폴 엘뤼아르 출처 구글 이미지]

몬테카를로 엔진으로 만든 시든 소아시아 장님이 지은 시든, 언어에는 기쁨과 위안을 가져다주는 강력한 힘이 있다. 시를 단순한 논리적 주장으로 해석해서 지성적 타당성을 시험한다면, 이는 시가 지닌 영향력을 강탈하는 셈이다. 해석한 시처럼 김빠진 것도 없다. 언어의 역할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는 성스러운 종교언어가 일상적인 실용성에 오염되지 않은 채 보존돼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 있어서까지 합리적이고 과학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해를 입히고 생존을 위협하는 경우에만 합리적이면 된다. 현대 생활은 우리를 정반대 방향으로 몰고 가는 듯하다. 종교나 개인적 행동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지성적이 되는 반면,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처럼 운에 지배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지극히 비합리적이 된다.


빈학파는 헤겔 스타일의 장황한 철학을 과학적 기준으로 보면 순전히 쓰레기이고, 예술적 관점으로 보면 음악보다 못하다고 깎아내렸다. 나는 CNN 뉴스나 조지 윌의 프로그램보다 보들레르가 훨씬 재미있다.


“어쩔 수 없이 돼지고기를 먹어야 한다면, 최고급으로 먹는 편이 낫다”는 유대인 속담이 있다. 나도 운에 속아야 한다면, 아름답고 해롭지 않은 운에 속는 편이 낫다.


05 부적자생존, 진화도 운에 속을까?


두 희귀사건에 대한 사례 연구. 희귀사건과 진화. ‘다윈주의’와 진화론 개념을 오해하는 이유. 인생은 연속이 아니다. 진화가 어떻게 운에 속게 될까? 귀납법 문제에 대한 서론.


신흥시장의 마법사 카를로스


탈레브는 신흥시장 채권 트레이더이자 이코노미스트로 승승장구하던 카를로스의 이야기를 한다. 그는 채권 가격이 하락했을 때에도 매입을 해서 상승 시에 큰 수익을 얻었고 자신의 타고난 경제적 직관력 덕분에 트레이딩 판단이 뛰어나다고 믿었다.


그러나 카를로스를 파산시킨 것은 1998년 여름의 폭락이었다. 이 마지막 폭락은 상승으로 반전되지 않았다. 이 시점까지 그의 분기 실적을 보면 나빴던 때는 마지막 분기 딱 한 번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는 전년도까지 누적해서 은행에 거의 8,000만 달러를 벌어주었지만 1998년 여름철 단 한 분기에 3억 달러를 잃었다.


돈 많은 신흥시장 트레이더들로부터 수없이 굴욕을 당했던 이웃 부서의 노련한 트레이더 루이는 명예를 회복했다. 루이는 당시 52세의 브루클린 토박이 트레이더로서 시장의 온갖 부침 속에서도 30년 넘게 살아남은 베테랑이었다. 생포된 병사가 투기장으로 끌려가듯 경비원에 둘러싸여 문으로 향하는 카를로스를 그는 조용히 지켜보았다. 브루클린 억양으로 그가 중얼거렸다.


“경제학은 무슨 얼빠진 경제학. 모두 시장 역학이지.”


하이일드채권 트레이더 존


(1장에 나왔던) 트레이더 존의 팀이 수행한 주력 사업은 ‘하이일드채권’ 거래였다. 회사의 차입 금리가 5.5%일 때, 예컨대 수익률이 10%인 ‘저가’ 채권을 매입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이른바 금리 차이에 해당하는 이익 4.5%가 떨어졌다. 얼핏 작아 보이지만, 레버리지를 동원하면 이익을 몇 배로 늘릴 수 있었다.


그는 여러 나라에서 현지 금리로 차입해서 ‘위험’ 자산에 투자했다. 여러 대륙에 걸쳐 이런 거래로 액면가 30억 달러의 자산을 구축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미국, 영국, 프랑스, 기타 정부 채권 선물을 매도하여 위험을 분산시킴으로써 위험을 두 상품의 금리 차이로 한정했다. 그는 이 헤지 전략(hedging strategy)으로 세계 금리의 힘겨운 변동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는 기분이었다.


컴퓨터와 방정식을 아는 퀀트 • 이들의 공통점


존은 외국인 퀀트(quant, 계량분석가) 헨리를 부하 직원으로 거느렸다. 그의 영어는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위험관리 기법에 대해서만은 실력을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존은 수학에 문외한이었다. 그래서 전적으로 헨리에게 의존했다. 존은 “헨리의 두뇌와 내 사업 감각이면 돼”라고 말하곤 했다. 헨리는 전체 포트폴리오의 위험 평가를 담당했다.


카를로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사건도 1998년 여름 하이일드채권 가격이 폭락하면서 발생했다. 시장 변동성이 높아지면서, 이 기간 그가 보유한 증권의 가격이 대부분 동시에 하락하기 시작했다. 걸어놓은 헤지는 이제 아무 효과도 없었다. 그는 이런 사건의 가능성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헨리에게 화를 냈다. 아마도 프로그램에 오류가 있었던 모양이다.


존이 영웅이 되는 데는 7년이 걸렸지만, 실패자로 전락하는 데는 단 7일이 걸렸다. 존은 자신을 고용한 뉴욕 투자은행에 7년 동안 2억 5,000만 달러를 벌어주었다. 하지만 그는 단 며칠 만에 6억 달러가 넘는 손실을 입혔다.


운 좋은 바보들에 대한 검토


이들은 표1 오른쪽 열과 왼쪽 열을 혼동했다. 운에 속은 것이다. 아래에 간략하게 설명한다.


• 경제든(카를로스) 통계든(존) 자신의 판단이 정확하다고 과신했다.

• 미국 달러는 1980년대 초에 과대평가 상태였다 : 자신의 경제 직관에 따라 외환을 매입한 트레이더들은 파산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이렇게 한 사람들이 돈을 벌었다. 시장은 임의로 움직인다.

• 포지션과 결혼했다 : 무능한 트레이더는 포지션 정리하기가 이혼하기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다.

• 스토리를 멋대로 바꿨다 : 트레이더와 투자자의 차이는 투자 기간과 투자 규모에 있다. 단기 트레이딩과 섞어서 하지만 않는다면 장기 투자는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 문제는 손실을 본 뒤에 장기 투자자가 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매도 결정을 미루는 것이다.

• 손실에 대한 대응 방안을 사전에 수립하지 않았다.

• 비판적 사고가 부족해서 ‘손절매’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못했다.

• 현실 부인 : 손실이 발생했을 때, 이들은 손실을 분명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순진한 진화론


카를로스와 존의 사례를 보면, 불량한 트레이더도 단기나 중기적으로는 유능한 트레이더보다 우위를 나타낼 수 있다. 다음에는 이 논의를 한 차원 높여 일반화시켜 보자. 다윈 이론의 자기 선택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안목이 없거나 어리석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개념이 단순하다 보니 일부 아마추어들은 다윈주의가 경제학을 포함해서 모든 분야에 절대적이고도 지속적으로 적용된다고 맹목적으로 믿기도 한다.


수십 년 전 생물학자 자크 모노(Jacques Monod)는 모든 사람이 스스로 진화론의 전문가라고 믿는다며 탄식했다. 다윈의 아이디어는 생존이 아니라 번식 적합성에 관한 것이다. 문제는 결국 운이다.


얼핏 진화로 보이던 것이 전환에 불과하거나 퇴화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스티븐 제이 굴드(Steven Jay Gould)는 이른바 ‘유전적 소음’, 즉 ‘부정적 돌연변이’의 증거를 많이 발견했는데, 부정적 돌연변이는 생식 적합성 면에서는 열등한 존재인데도 살아남는다. 그러나 이들은 몇 세대밖에 지속되지 못한다.

[자크 모노와 스티븐 제이 굴드 출처 구글 이미지]

게다가 국면 전환처럼 운의 형태가 바뀌는 경우에는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도 있다.


다윈의 적응성은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발전하는 종에 적용되는 것일 뿐 단기간에 대해서는 해당되지 않는다. 시간이 축적되면 운이 미치는 영향이 대부분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때 장기적으로는 상황이 균형을 이룬다고 말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희귀사건이 갑자기 발생하므로, 상황이 ‘수렴’하면서 지속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 게다가 인생에서 벌어지는 상황도 전혀 연속적이지 않다. 연속성에 대한 믿음은 18세기 초까지 우리 과학 문화에 깊이 배어들었다.


사람들은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발음도 멋진 라틴어로 이 말을 인용했다. "Natura non facit saltus." 이는 주로 18세기 식물학자 린네(Linnaeus)의 영향이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잘못 알고 있었다.


진화도 운에 속을까?

  

어떤 사업에서 성공한 사람도 다행히 희귀사건이 없는 표본경로를 잘 만나 생존했을지도 모른다. 한 가지 고약한 점은, 이러한 동물들이 희귀사건을 만나지 않고 지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들은 희귀사건에 취약해진다는 사실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시간을 무한대로 연장하면 에르고딕성에 의해 사건이 확실히 발생하게 되며, 그 종은 전멸할 것이다. 진화는 시계열時系列의 한 시점에 적합하다는 뜻이지, 모든 환경에 평균적으로 적합하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06 편향과 비대칭


중앙값은 의미가 없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40대에 악성 위암 진단을 받았다. 그가 생존 확률에 대해 처음으로 얻은 정보는 이 암의 생존 기간 중앙값이 약 8개월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기댓값과 중앙값이 전혀 다른 뜻임을 깨닫게 되었다.


중앙값은 환자의 50%는 8개월 전에 죽고, 50%는 8개월 뒤에도 생존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8개월 뒤에도 생존하는 사람들은 상당히 오래 살기 때문에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보험 사망률 표에 나오는 73.4세를 채우는 경우가 많았다.


결과가 비대칭이라면, 평균값은 생존 기간 중앙값과 전혀 관계가 없다. 이 사건을 계기로 편향의 개념을 어렵사리 깨달은 굴드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역작 《중앙값은 아무 의미도 없다The Median Is Not the Message》를 집필하게 되었다.


확률도 비대칭적이면서 결과도 비대칭적인 사례를 제시하여 개념을 설명하고자 한다. 확률이 비대칭적이라 함은 두 사건의 확률이 50%가 아니라, 한 사건의 확률이 다른 사건의 확률보다 높다는 뜻이다. 결과가 비대칭이라 함은 그 사건에 대한 보상 수준이 같지 않다는 뜻이다.


내가 1,000번 가운데 999번은 1달러를 벌고(기댓값은 0.999달러이다), 1,000번 가운데 1번은 1만 달러를 잃는(기댓값은 -10달러이다) 도박을 한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나의 기댓값은 9달러 손실이다(확률에 결과를 곱하면 나온다). 손실의 빈도나 확률은 그 자체로는 전혀 의미가 없고, 결과의 규모와 연계해서 판단해야 한다.


왜 사람들은 이런 요점을 간과할까? 왜 확률과 기댓값, 즉 확률에 결과를 곱한 값을 혼동하는 것일까? 아마도 사람들이 동전 던지기처럼 대칭적 성격의 사례로부터 확률을 배우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이른바 정규분포곡선(bell curve)도 전적으로 대칭적이다.


황소와 곰은 동물 이름


대중매체에서는 ‘황소(시장에 대한 낙관)’와 ‘곰(시장에 대한 비관)’이라는 용어를 홍수처럼 쏟아내는데, 이는 증권시장이 상승한다거나 하락할 것으로 전망한다는 뜻이다.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의 황소와 곰 동상 출처 구글 이미지]

다음 주 시장이 상승할 확률이 70%, 하락할 확률이 30%라고 가정하자. 하지만 상승한다면 그 폭이 평균 1%인 반면, 하락한다면 평균 10%라고 가정하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은 낙관적인가, 비관적인가?


투자자나 사업가가 받는 보상은 확률이 아니라 돈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아니라, 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얼마를 버느냐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자주 이익이 발생하느냐가 아니라, 그 결과 발생하는 이익 규모다.


희귀사건


내가 시장에서 평생 벌여온 사업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편향에 대한 베팅’이다. 다시 말해서, 자주 발생하지는 않지만 한 번 발생하면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는 희귀사건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사업이다.


내가 가급적 드물게 돈을 벌려는 이유는, 희귀사건은 공정하게 평가되지 않으며 사건이 더 희귀할수록 가격이 더 저평가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렇게 직관에 반하는 트레이딩은 분명히 내게 이점을 제공한다(우리의 심리 구조는 반직관적 현실에 순응하지 못한다).


‘전설적인’ 투자가 짐 로저스(Jim Rogers)는 "자신은 SEC의 분석에 의하면, 옵션의 90%는 만기에 손실로 끝났기 때문에 옵션을 매수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탈레브는 그가 나머지 10% 매수 포지션에서 발생한 이익 규모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매수 포지션의 90%에서 손실이 발생했다는 통계빈도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면서 그를 확률과 기댓값도 구분하지 못한다고 비난한다.

[짐 로저스와 한국을 방문한 조지 소로스 출처 구글 이미지]

비대칭과 과학


대부분 학문에서는 비대칭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른 학문에서는 대부분 표본에서 극단치를 제거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금융 분야에서도 이런 기법들을 빌려와서 희귀사건을 무시하는데, 희귀사건이 회사를 파산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실물 세계의 과학자 중에도 이런 어리석음에 빠져서 통계를 잘못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 가지 명백한 사례가 지구 온난화 토론이다. 과학자들은 급등한 기온을 표본에서 제거했기 때문에 초기 단계에 지구 온난화 문제를 파악하지 못했다.


휴가 계획을 짤 경우에는 극단치를 제거하고 평균 기온을 계산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기후의 물리적 속성을 연구할 때에는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특히 누적 효과를 고려할 때 문제가 된다.


과학자들은 이런 기온 급등이 드물기는 하지만 만년설의 누적 용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초기에 무시했다. 금융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희귀한 사건이라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라면 무시해선 안 될 것이다.


거의 모두가 평균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중앙값과 평균을 착각하는 전통적 오류를 짐 로저스만 범하는 것이 아니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사상으로 먹고사는 로버트 노직(Robert Nozik) 같은 유명한 철학자도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게다가 노직은 훌륭하고도 예리한 사상가였다. 요절하기 전에 그는 아마도 당대에 가장 존경받는 미국 철학자였다).

[로버트 노직과 저서 출처 구글 이미지]

저서 《합리성의 본성(The Nature of Rationality)》에서 그는 다른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아마추어적인 진화론에 빠져 다음과 같이 썼다. “기껏해야 개인의 50%만이 평균보다 부자가 될 수 있다.” 물론 개인의 50% 이상이 평균보다 부자가 될 수도 있다.


지극히 가난한 사람이 극소수이고, 나머지가 중산층에 몰려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평균은 중앙값보다 낮아진다. 모집단이 10명인데, 9명의 순자산이 3만 달러이고, 1명이 1,000달러라고 하자. 평균 순자산은 2만 7,100달러가 되고, 10명 가운데 9명이 평균을 넘어서게 된다.


우리가 운이 사라진 결정론적 세상에 살고 있고 만사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면, 세상일이 한층 쉬울 것이다. 시계열 패턴에서 상당한 예측 정보가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을 차트로 잘 그려낼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렇게 과거 속성을 분석해서 내린 판단이 옳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엉뚱하게도 반대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


우리는 미래 예측을 위해서 과거 정보를 받아들일 때 지나치게 느슨해지거나 엄격해질 수 있다. 문제는 역사 전반이 아니라 최근의 역사에만 지나치게 몰두하면서 “전에는 이런 일이 전혀 없었다”라고 주장하는 데 있다(한 분야에서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이 결국에는 일어나는 법이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도 반드시 일어난다는 사실을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시계열을 넓게 확장하면 우리는 훨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희귀사건 오류


모든 기만의 어머니


희귀사건은 본래 눈에 띄지 않으므로, 갑자기 온갖 형태로 나타난다. 희귀사건이 처음 발견된 곳은 멕시코였는데, 학계에서는 이를 페소 문제(peso problem)라고 불렀다.


계량경제학자들은 1980년대 멕시코 경제변수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곤혹스러워했다. 통화 공급, 금리, 기타 변수들이 변덕스러운 행태를 보이는 바람에 모델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표들이 안정기와 혼란기 사이에 아무 사전 경고도 없이 변덕스럽게 오르내렸다.


멕시코 통화는 오랜 기간 안정세를 유지했으므로, 은행 환 트레이더와 헤지펀드 투기꾼들이 페소라는 고요한 바다로 떼 지어 몰려들었다. 이들은 페소를 보유하면서 높은 이자 수익을 거두어들였다.


그러다가 '에상하지 못한' 강타를 맞고 투자자의 돈을 날렸다가 다시 안정기가 찾아오자 다기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었다. 희귀사건은 과거 시계열을 너무 좁게 해석하여 위험을 오해하는 데서 비롯된다.


심리학자들의 최근 발견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극의 규모보다는 존재 여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즉, 손실을 처음에는 단순히 손실로 인식하지만, 나중에는 다르게 인식한다는 뜻이다. 이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주식중개인은 전체 실적을 최적화하기보다는, 손실 횟수는 줄이고 이익 횟수를 늘리는 쪽을 선호한다.


시장에는 역逆 희귀사건 트레이더라는 부류가 있는데, 이들에게 변동성은 반가운 소식이다. 이들은 소액으로 자주 잃지만, 드물긴 해도 벌 때는 거액으로 벌어들인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위기 사냥꾼이라고 부른다. 다행히도 나 역시 그런 사람이다.


통계학자들은 왜 희귀사건을 감지하지 못할까?


일반 통계 기법은 신뢰 수준을 꾸준히 증대시키고 있지만, 신뢰 수준이 관측치 증가에 비례해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즉, 표본 규모가 n배 증가하면 지식은 n의 제곱근만큼 증가한다.


특히 항아리 예처럼 분포가 대칭이 아닐 때 통계학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항아리 속에 검은 공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빨간 공을 찾을 확률이 매우 낮은 경우에는, 꺼내는 횟수가 증가해도 빨간 공이 드물다는 지식이 증가하는 속도는 매우 느려진다.


반면, 일단 빨간 공 하나가 발견되면, 빨간 공이 존재한다는 지식이 극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이러한 지식의 비대칭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의 중심 주제이다. 또한 흄이나 칼 포퍼와 같은 사람들의 핵심적인 철학 과제이기도 하다.


투자자의 실적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직관에 의존하지 않는 기법을 사용하든지, 아니면 사건의 빈도에 관계없이 판단할 수 있는 상황에서만 평가해야 한다.


못된 꼬마가 공을 바꿔놓는다면  


더 나쁜 소식도 있다. 빨간 공의 존재 자체가 임의로 결정된다면, 우리는 공의 구성 비율을 절대로 알 수 없다. 이것을 ‘정상성(stationarity)의 문제’라고 부른다.


나는 항아리의 공 가운데 50%가 빨간 공일 거라고 말하지만, 내 말을 들은 꼬마는 재빨리 빨간 공을 모두 검은 공으로 바꿔놓는다. 이렇게 되면 통계로부터 추론한 지식은 몹시 위태로워진다.


1990년대 유럽시장에 대한 연구는 역사가들에게는 확실히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기관과 시장의 구성이 크게 바뀐 지금에 와서, 이 연구를 통해 도대체 무엇을 추론할 수 있겠는가?


경제학자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는 과거의 정보가 미래 예측에 전혀 쓸모없다는 주장으로 계량경제학에 일격을 가했다. 합리적인 사람들은 과거로부터 예측 가능한 패턴을 파악해서 그것을 변형하여 적용할 것이기 때문이다(그는 이 주장을 수학 형식으로 전개하여 1995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로버트 루카스 출처 구글 이미지]

합리적인 트레이더들이 월요일마다 주가가 상승하는 패턴을 감지하면, 이들은 이런 효과를 기대하고 금요일에 주식을 매입할 것이다. 그러면 월요일 상승 패턴은 곧 사라지게 된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패턴이라면, 그런 패턴을 찾아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그 패턴은 발견되는 순간 스스로 소멸되기 때문이다.


과학 만능주의는 마르크스주의를 거쳐 금융 분야로 이어졌고, 몇몇 전문가들은 수학적 지식을 이용하면 시장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금융 공학(financial engineering)이야말로 사이비 과학이 잔뜩 첨가된 분야다.


이런 기법에서는 과거 역사를 미래 예측의 수단으로 삼아 위험을 측정한다. 과거 분포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법이 없으므로, 이런 개념 전체가 매우 값비싼 실수를 야기한다. 여기서 귀납법의 문제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07 귀납법의 문제


백조의 색역학. 솔론의 경고를 철학 영역에 적용하다. 내게 경험주의를 가르쳐준 니더호퍼. 연역법을 덧붙이다. 과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야 과학적이다. 포퍼를 홍보한 소로스. 5번가 18번 거리의 서점. 파스칼의 내기.


베이컨에서 흄까지


이제 과학 철학이라는 더 폭넓은 관점에서 문제를 논의해보자. 귀납법 문제로 잘 알려진 추론의 문제가 있다. 오랜 기간 과학을 괴롭혀왔던 문제다. 이것은 자연과학보다는 경제학 같은 사회과학에 더 피해를 주었고, 금융경제학 분야에는 더욱 큰 피해를 줬다. 이유가 무엇일까? 운이라는 요소가 효과를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검은 백조 • 니더호퍼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인성론Treatise on Human Nature》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백조를 아무리 많이 관찰했더라도 모든 백조가 희다고 추론할 수는 없다. 단 한 마리의 검은 백조가 발견되더라도 이 결론을 충분히 반증할 수 있다.”

[데이비드 흄과 인성론 출처 구글 이미지]

당시 베이컨은 실제적 성과도 없는 ‘학습의 거미줄’을 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당시 과학은 신학과 비슷했다). 이로 인해 과학은 실증적 관찰을 강조하게 되었다. 문제는 적절한 기법이 없는 실증적 관찰은 길을 잃기 쉽다는 점이다.


흄은 이러한 지식에 대해 경고했고, 지식을 수집하고 해석할 때 엄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이 이른바 인식론이다. 흄은 최초의 현대적 인식론자였다(응용과학 분야에서 활동하는 인식론자들을 과학 철학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빅터 니더호퍼(Victor Niederhoffer)의 이야기는 한 사람이 극단적인 실증주의와 논리를 겸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동시에 슬프다.

[빅터 니더호퍼 출처 구글 이미지]

니더호프를 예로 드는 이유는, 그가 베이컨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시카고 대학의 학습 거미줄에 맞섰기 때문이다. 1960년대는 시카고 대학에서 효율적 시장에 대한 믿음이 절정에 달했던 시점이었다. 그러나 니더호퍼는 일반적인 금융 이론과는 대조적으로 이상異常 현상을 찾아내기 위해 데이터를 뒤졌고 일부 찾아내기도 했다.


그는 편견, 논평, 이야기를 제거한 과거 데이터로부터 세상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 이후 통계적 차익거래자(statistical arbitrageur)라는 사람들이 금융 산업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초기에 성공한 사람들 일부는 니더호퍼의 제자였다. 그의 삶은 실증주의가 방법론과 분리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니더호퍼 방식의 핵심적 신조는 ‘검증 가능한’ 주장은 모두 검증하라는 것이다. 막연한 인상에만 의존하면 실증적으로 수많은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검증 가능한 주장도 좀처럼 검증하지 않는다. 검증한 결과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다음의 귀납적 주장은 방법론이나 논리 없이 과거 데이터를 곧이곧대로 해석할 때 발생하는 문제를 보여준다.


나는 부시 대통령의 인생에 대해 철저한 통계조사를 완료했다. 58년 동안 약 2만 1,000회 관찰했는데, 그는 한 번도 죽지 않았다. 따라서 높은 통계적 유의도로 그가 불사신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니더호퍼는 옵션을 매도했다가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그는 과거 데이터를 검증한 뒤, 바로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가정했던 것이다. 그는 “시장이 과거에 이러이러한 적이 전혀 없다”라는 주장에 의지했다.


그래서 풋옵션을 매도했는데, 그 주장이 옳다면 약간의 이익을 얻을 것이고, 틀리면 커다란 손실을 입을 터였다. 결국 그는 겨우 몇 분간 벌어진 단 한 번의 희귀사건으로 인해 수십 년 동안 모았던 이익을 모두 날리고 파산했다.


대형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이런 사람들은 “사상 초유의 사건”이라고 말한다. 이런 반응은 과거에 없었던 일이 일어나면 망해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어째서 과거에 발생한 최악의 사례를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가능성으로 보아야 하는가? 어떤 사건이 그 이전의 사건과 달라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미래 사건은 과거와 다르면 안 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시장에서 손실의 대가는 승리에서 얻는 보상과는 전혀 다를 수도 있다. 단순히 승리와 패배의 문제가 아니다. 승리 확률을 극대화한다고 기댓값도 극대화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작게 이길 확률이 높고 크게 잃을 확률이 낮을 때 더욱 그렇다.


만일 러시안룰렛처럼 낮지만 대형 손실 확률이 있는 전략을 사용한다면, 거의 모든 경우 승리를 거두다가도 어느 순간 결국 파산하고 말 것이다.


칼 포퍼를 알려준 트레이더


포퍼는 과학을 문자 그대로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포퍼에 따르면 이론에는 두 가지 유형만 존재한다.


  (a) 검증 과정에서 오류가 드러나 기각된 이론.

  (b) 아직 오류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언제든지 오류가 발견되어 기각될 가능성이 있는 이론.


왜 이론은 절대 옳지 않은가? 백조는 모두 희다는 사실을 우리는 절대 알 수 없다(포퍼는 칸트로부터 우리 인식 체계에 결함이 있다는 사상을 빌려왔다). 검증 체계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은 백조가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는 있다. 가설을 주장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론을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시 야구 코치 요기 베라식으로 표현하자면, 과거 데이터에는 좋은 정보도 많이 있지만, 나쁜 정보도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론은 잠정적으로만 수용할 수 있다. 위 두 가지 유형에 포함되지 않는 이론은 이론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틀렸음이 입증되지 않아서 기각할 수 없는 이론은 사기詐欺라고 불러야 한다.


포퍼는 통계학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보가 증가하면 이에 따라 지식도 항상 증가한다는 개념(통계적 추론의 기초)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경우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언제가 그런 경우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존 메이너드 케인스 같은 통찰력 있는 인물들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포퍼의 거짓 입증은 열린 사회라는 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열린 사회는 영원한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다. 그래서 대항 아이디어의 등장이 허용된다. 포퍼는 모든 유토피아 사상이 자신에 대한 반박을 억압하므로 필연적으로 닫혀 있다고 믿었다. 이처럼 거짓 입증의 길을 열어두지 않은 사회 모델은 전체주의다.


귀납법과 기억


인간의 기억은 귀납적 추론을 수행하는 커다란 기계와 같다. 기억에 관해 생각해보면, 임의적 사건보다는 인과관계가 있으면 기억하기가 더 쉽다. 귀납법은 수많은 개별 사항들로부터 일반론을 도출한다.


일반론은 개별 사항들의 집합보다 기억 공간을 훨씬 적게 차지하므로, 다르기도 매우 간편하다. 그러나 이러한 압축의 결과 우연을 감지하는 능력도 감소한다.


귀납법을 다루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면, 통계라는 과학이 이득이 된다면 주저 없이 사용하되, 위협이 된다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즉 아무 위험 없이 과거를 최대한 이용하거나 통계학과 귀납적 기법들을 위험을 관리하는 용도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장기간 생존한 트레이더들은, 어떤 사건을 기준으로 추측의 정확성을 판단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며, 그 기준이 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거래를 중단, 즉 손절매(stop loss)를 한다. 희귀사건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미리 탈출 기준을 정해놓는 것이다.


솔론에게 감사를


솔론의 천재적인 통찰에 관해 글을 쓴 덕에 나의 생각과 사생황 모두 엄청난 영향을 받았다. 현재 나는 고전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이후 느껴보지 못한 전율을 즐기며 다음 단계를 생각하고 있다. 예컨대 19세기처럼 정보가 적고 더 결정론적인 시대를 재창조하되, 몬테카를로 엔진과 같은 기술적 혜택, 의료 기술의 혜택, 우리 시대의 사회정의의 혜택을 모두 누리는 것이다. 이런 것이야말로 진화라고 불러야 한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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