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과 투자 이야기 (10)
Part 2 타자기 치는 원숭이
- 생존편향, 우연의 일치, 비선형 -
셀 수 없이 많은 원숭이를 튼튼한 타자기 앞에 앉혀놓고 멋대로 타자기를 두들기게 한다면, 그중 하나는 분명 《일리아드》와 같은 작품을 똑같이 찍어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다지 흥미로운 개념이 아니다. 그런 작품이 나올 확률이 터무니없이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단계 더 추론해보자. 《일리아드》를 찍어낸 영웅적인 원숭이를 발견했다면, 그 원숭이가 다음번에는 《오디세이》를 찍어낼 것이라는 내기에 평생 모은 재산을 걸 사람이 있을까?
누군가 과거에 뛰어난 실적을 올렸다면, 나는 그가 미래에도 뛰어난 실적을 올릴 가능성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능성은 너무도 미미해서 의사 결정에 아무 소용이 없을 정도다.
왜 그럴까? 두 가지 요소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두 요소는 그 활동에서 우연이 차지하는 비중과 원숭이의 숫자(*모수가 아주 많은 중에 발생했다면 우연성이 크다는 의미)다.
비즈니스 세계는 운에 크게 좌우되므로 이런 문제가 더 심각하게 발생한다. 사업가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그중 한 사람이 우연히 탁월한 실적을 올릴 가능성도 커진다.
2부에서는 희귀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의 편향적 관점에 대해 다루는데, 이러한 편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a) 우리는 승자만 보기 때문에 확률을 보는 관점이 왜곡된다.
(b) 엄청난 성공의 원인은 대부분 운이다.
(c) 인간은 생물학적 장애 탓에 확률을 이해하기 어렵다
생존편향에 대한 설명. 파크 애버뉴에서 살면 안 되는 이유. 누추한 옷차림의 이웃집 백만장자들. 넘쳐나는 전문가들.
뉴욕시 변호사인 마크는 아내, 세 자녀와 함께 뉴욕 시 파크 애버뉴에 살고 있다. 불황이든 호황이든 매년 50만 달러를 번다. 그는 호황이 지속되리라 기대하지 않으며, 최근 갑자기 늘어난 소득에 대해서도 아직 심리적으로 적응되지 않은 상태다.
마크의 부인인 재닛이 가깝게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자녀가 다니는 맨해튼 사립학교의 학부모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이었다. 물질적 관점에서 보면, 마크 부부는 지역 공동체에서 하류에 속했는데, 아마도 이웃들 가운데 가장 돈이 없을 터였다.
마크와 재닛이 사생활에서 겪는 딜레마를 너무 깊이 다루지는 않겠지만, 이들의 사례는 생존편향에서 아주 흔히 나타나는 심리적 효과를 보여준다. 재닛은 남편이 상대적으로 실패자라고 느낀다. 그러나 이는 전반적으로 확률을 잘못 계산한 결과다. 잘못된 표본을 사용해서 순위를 도출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실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사회적 쳇바퀴 효과에서도 벗어나기 어렵다. 즉, 부자가 되어 부자 동네로 이사하고 나면, 또다시 상대적 빈곤감에 시달리게 된다. 여기에 심리적 쳇바퀴 효과가 가세한다. 풍요로운 생활에 익숙해지면 만족의 기준이 높아진다.
베스트셀러 《이웃집 백만장자》를 읽은 적이 있다. 공동 저자인 두 ‘전문가’는 부자들의 공통 속성을 추론했는데, 재미있기는 했지만 독자들을 엄청나게 오도하는 책이었다.
저자들은 현재 부유한 사람들을 조사했고, 이들이 사치스럽게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재산을 모으려고 소비를 기꺼이 미루는 사람들이었으므로, 저자들은 이들을 ‘축적하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이 책의 가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표본에 생존편향이 이중으로 들어가 있다. 다시 말해, 두 가지 중대한 결함이 있다.
첫 번째 편향은 표본에 포함된 부자들이 운 좋은 원숭이들로만 구성되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결함은 더 심각한데, 이 책은 역사 속의 이례적인 일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가정을 받아들인다면, 자산의 현재 수익률이 영원히 지속된다고 인정하는 셈이다.
표본에 포함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산 가격 상승으로 부자가 되었다. 다시 말해서, 1982년 이후 시작된 자산 인플레이션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는 수많은 대체역사 가운데 실현된 사건 하나를 보고 이를 가장 대표적인 사건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생존편향은 실적이 가장 좋은 사건이 가장 눈에 잘 띈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패배자는 모습을 감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낙관주의가 성공의 전조라고 말한다. 성공의 전조라니? 실패의 전조가 될 수도 있다. 낙관적인 사람들은 승산을 과신하기 때문에 분명 위험을 더 많이 떠안는다. 성공한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유명해져서 전면에 등장하지만, 실패한 사람들은 분석에서도 사라진다. 슬픈 일이다.
생존편향에 대한 추가 분석. 인생에 나타나는 ‘우연의 일치’의 분포. 실력보다 운이 낫다. 생일의 역설. 사기꾼들. 부지런한 분석가는 데이터에서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찾아낼 수 있다. 짖지 않은 개.
실력 있는 치과의사, 뛰어난 피아니스트, 카노바(Canova) 조각상의 균형잡한 몸매를 만든 탁월한 솜씨가 운의 덕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금융업계와 관련해서는 그렇게 말하기 곤란하다.
내일 투자 전문가를 찾는 내 친구를 위해 펀드매니저를 만날 예정인데, 내가 추정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증권 거래를 할 줄 안다는 정도다. 그리고 증권 거래는 계란 프라이보다도 쉽다. 물론 그가 과거에 돈을 벌었다는 사실이 실력의 근거가 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너무도 미약하다.
9장에서 논의하려는 주제는 "실적과 역사적 시계열의 반직관성(counterintuitive)"이다. 즉, 관찰자가 운의 중요성을 잘못 인식하기 때문에 실적을 과대평가하는 오류를 범한다는 것이다.
가공의 펀드매니저
몬테카를로 엔진을 사용해서 가공의 펀드매니저 1만 명으로 모집단을 구성하자. 몬테카를로 엔진은 동전 던지기를 실행한다. 앞면이 나오면 펀드매니저가 1만 달러를 벌고, 뒷면이 나오면 1만 달러를 잃는다.
매년 한 번씩 하다 보면 돈을 번 사람이 반씩 줄어들고 다섯째 해에는 313명이 될 것이다(모집단의 3% 정도). 이제 공정한 게임을 거쳐서 다섯 해 연속 돈을 번 펀드매니저가 313명 탄생했다. 순전히 운이 좋았던 사람들이다.
이렇게 해서 좋은 실적을 올린 펀드매니저 한 사람을 현실 세계에 내보내면, 그는 매우 흥미로운 평가를 받게 된다. 스타일이 독특하다느니, 두뇌가 명석하다느니, 기타 성공에 도움이 되었던 요소들을 열거하면서 우호적인 평가가 쏟아진다.
그러나 이듬해 우수한 실적이 행진을 중단하면(그의 승률은 항상 50%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근무 자세가 흐트러졌다거나 생활이 방탕해졌다고 비난을 시작한다. 그리고 성공할 때 했던 몇몇 행동을 중단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단지 운이 다했을 뿐이다.
유능한 사람은 필요 없다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만들어보자. 우리는 무능한 펀드매니저들로만 구성된 집단을 만들어낸다. 무능한 펀드매니저를 기대수익률이 마이너스인 사람으로 정의하자. 이제 몬테카를로 엔진으로 항아리에서 공을 꺼내는 작업을 수행한다.
항아리에는 검은 공 45개와 빨간 공 55개로 모두 100개가 들어 있다. 꺼냈던 공을 다시 집어넣으므로, 빨간 공과 검은 공의 비율은 항상 일정하게 유지된다. 검은 공이 나오면 펀드매니저가 1만 달러를 벌고, 빨간 공이 나오면 1만 달러를 잃는다. 이 경우, 펀드매니저는 평균적으로 매년 1,000달러를 잃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평균이 그렇다는 말이다.
첫해 이익을 내는 펀드매니저가 4,500명 나올 것이고, 다섯째 해에는 184명이 나올 것이다. 생존한 펀드매니저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정장을 입혀보자. 물론 생존자는 원래 모집단의 2%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것이다. 사라진 98%에 대해서 언급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 첫 번째 반직관적인 결론은 무능한 펀드매니저로만 모집단을 구성해도 소수는 뛰어난 실적을 올린다는 점이다.
두 번째 반직관적인 결론은 실적의 최대 기댓값이, 개별 펀드매니저의 승률보다, 초기 표본 규모에 더 좌우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실적이 우수한 펀드매니저의 숫자는, 개별 펀드매니저가 이익을 내는 실력보다, 업계에서 활동하는 펀드매니저 숫자에 훨씬 크게 좌우된다는 뜻이다.
평균회귀
‘농구의 연속 슛’도 사람들이 운에 대해 잘못 인식하는 사례다. 선수 숫자가 매우 많다면 그중 한 사람이 행운의 연속 슛을 길게 이어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실생활에서도 평균으로부터 편차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것은 실력이 아니라 운 때문일 확률이 높다. 개인의 키나 개의 몸집에도 이런 원리가 적용된다.
극단치의 이러한 ‘회귀’ 현상은 역사에서 관찰된 사실인데, 이를 '평균회귀(Regression to the Mean)'라고 부른다. 편차가 클수록 그 효과가 중요하다는 점에 유의하라.
에르고딕성
사람들은 표본을 보면 분포의 속성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실적 좋은 사람들의 최대치가 중요한 경우에는 분포의 속성이 전혀 달라진다.
그래서 평균적인 분포와 생존편향이 개재된 무조건적 분포(앞의 사례에서 5년 연속 돈을 번 펀드매니저는 초기 모집단의 3%에 불과했다)는 다르다고 말한다. 게다가 이런 사례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운의 효과가 사라지는, 이른바 '에르고딕성(Ergodicity)'이 나타난다.
실패는 운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공을 운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깨달았다. ‘위대한 트레이더’ 반열에 오르는 사람들은 자만심이 잔뜩 부풀어 올라, 자신이 성공을 거둔 이유를 사업 아이디어, 통찰력, 뛰어난 지성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가혹했던 1994년 겨울에 모두 파산했다(앨런 그린스펀이 금리를 기습적으로 인상하자 채권시장이 붕괴됐기 때문이다). 설사 파산하지 않았더라도 이들 중 트레이딩을 계속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신비로운 편지
1월 2일에 당신은 익명의 편지를 받는다. 편지에는 1월에 주가가 오른다고 쓰여 있다. 편지 내용대로 1월에 주가가 오르지만, 당신은 잘 알려진 1월 효과(역사적으로 1월에는 주가가 상승한다)로 치부하고 편지를 무시한다.
이어 2월 1일에도 편지를 받는다. 편지에는 2월에 주가가 내린다고 쓰여 있다. 이번에도 편지가 옳은 것으로 밝혀진다. 3월 1일에도 편지를 받게 되고, 이번에도 편지의 예측이 들어맞는다.
7월이 되자 이 통찰력 넘치는 익명의 존재가 특별한 해외 펀드에 투자하라고 권유한다. 당신은 저축을 몽땅 털어 펀드에 투자한다. 두 달 뒤 투자 금액이 사라진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사기꾼은 전화번호부에서 1만 명의 이름을 고른다. 표본의 절반에게는 시장을 낙관하는 편지를 보내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비관하는 편지를 보낸다.
다음 달에 사기꾼은 편지 예측이 맞았던 5,000명에게만 마찬가지 방식으로 편지를 보낸다. 그다음 달에도 사기꾼은 나머지 2,500명에게 같은 방식으로 편지를 보낸다.
마침내 명단은 500명으로 줄어든다. 이들 가운데 200명이 사기에 희생된다. 사기꾼은 우표 값 수천 달러를 투자해서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인 것이다.
테니스 경기 광고
TV에서 테니스 경기를 시청하다 보면, 일정 기간 탁월한 실적을 올렸다는 펀드 광고가 줄줄이 쏟아지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진짜 실력으로 올린 실적이라면 왜 굳이 광고를 할까? 실적 좋은 펀드가 당신을 찾아간다면, 실적은 순전히 우연의 산물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경제학자나 보험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역선택'*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나를 찾아오는 투자 기회를 평가할 때에는, 내가 주도적으로 찾는 투자 기회를 평가할 때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역선택(adverse selection) : 의사결정이나 위험관리에 필요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서 시장에서 저품질 상품이 많아지고 고품질 상품은 시장에서 사라지는 문제를 말한다.
역생존자
실력이 좋아서 승산이 매우 높은데도 결국 탈락해버린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이들은 생존 확률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존이나 카를로스처럼 위험을 떠안는다. 그러면 대개는 좋은 실적을 올리게 되지만, 동시에 파산할 위험도 떠안게 된다.
생일의 역설
통계학을 모르는 사람에게 데이터 마이닝의 문제점을 인식시키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이른바 '생일의 역설'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것은 역설이 아니라, 인식상의 착각이다.
한 방에 23명이 모여 있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그중 아무나 두 사람의 생일이 일치할 확률이 얼마라고 생각하는가? 약 50%나 된다. 특정인과 생일이 일치해야 한다고 제한하지 않았으므로 확률이 높아진 것이다.
세상 참 좁다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우연히 친척이나 친구를 만났을 때에도, 확률에 대해 이와 비슷한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우리가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특정인과 만날 확률을 계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 시점, 아무 장소에서나 과거에 만났던 사람 누구를 만나더라도 모두 해당 사건으로 인식했다. 후자는 전자보다 아마도 수천 배나 확률이 높아진다.
데이터 마이닝, 통계 그리고 사기
마이클 드로스닌(Michael Drosnin)은 저서 《바이블 코드The Bible Code》에서 성경 주석에 데이터 마이닝을 적용하기도 했다.
통계에 문외한으로 보이는 전직 언론인 드로스닌은 수학자의 도움을 받아 성경의 비밀을 해독함으로써 전직 이스라엘 수상 이츠하크 라빈(Yitzhak Rabin)의 암살을 ‘예측’했다.
《바이블 코드》는 성경에서 통계적 불규칙성을 찾아낸다. 그러면 이런 사건을 예측할 수 있다. 음모론이 구성되는 메커니즘도 마찬가지다. 《바이블 코드》처럼 이들의 논리가 완벽해 보이므로, 똑똑한 사람들도 빠져들기 쉽다.
나도 그림 파일 수백 점을 내려받아 이들의 공통점을 찾아내어 음모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그림에 숨어 있는 공통 메시지를 중심으로 음모를 엮어내면 된다.
사후 검증
나는 한 프로그래머의 도움을 받아 사후 검증 프로그램을 구축했다. 이는 과거 주가 데이터베이스에 연결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인데, 보통 수준으로 복잡한 트레이딩 규칙(예를 들어 1.8% 기준)을 적용했을 경우 과거에 어떤 실적이 나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 실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트레이딩 규칙의 기준을 1.8%에서 1.2%로 바꿀 수 있고 더 복잡한 규칙으로 바꿀 수도 있다. 좋은 실적이 나오는 규칙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해서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효과가 나타날 만한 규칙들 가운데 생존할 수 있는 규칙을 찾고 있다. 이는 규칙을 데이터에 맞추는 작업이다. 이것을 '데이터 스누핑(Data Snooping)'이라고 부른다.
사실은 더 심하게 적용 대상을 확장하는 경우도 있다. 설리번(Sullivan), 티머만(Timmerman), 화이트(White)가 최근 발표한 탁월한 논문을 보면, 오늘날 성공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규칙들도 생존편향의 결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투자자들이 수천 개의 변수를 동원하여 매우 광범위한 방식으로 기술적 트레이딩 규칙을 도출한 뒤 장기간 실험한다고 가정하자. 시간이 흐르면서 실적이 좋은 규칙들은 투자업계의 관심을 끌어 ‘유력한 후보’로 간주될 것이고, 실적이 나쁜 규칙들은 잊힐 것이다. (…)
실험 대상 트레이딩 규칙의 수가 아주 많다면, 실제로 자산 수익에 대한 예측력이 없어도 순전히 운이 좋아 탁월한 실적을 내는 규칙도 나올 것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생존하는 규칙만으로 추론한다면 이는 사람들을 오도하는 것이다. 실적이 나쁜 트레이딩 규칙은 대부분 제외되었으므로 초기 모집단이 전체 규칙을 대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심란한 현실
역사적으로 의학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발전했다. 다시 말해서 통계를 활용했다. 우리는 이제 증상과 치료 사이에는 순전히 우연한 관계만 존재해서, 일부 치료는 단지 우연히 나타난 효과라는 사실을 안다.
최근 의학 연구에서는 흡연이 유방암을 줄여준다고 언급하면서, 이전의 모든 연구와 갈등을 빚고 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의심스러운 주장이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보인다.
실적 발표에 속지 마라
월스트리트에서, 투자 검토 대상 기업들 중 어느 회사의 이익이 한 번 증가할 경우, 그 회사가 즉시 관심을 끄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두 번 증가하면 회사 이름이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세 번 증가하면 회사 주식에 대한 매수 추천이 등장한다.
“어느 시점에서든 20년 동안 투자하면 시장이 반드시 상승한다”라고 멍청한 말을 하는 ‘전문가’들이 이런 문제를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상대적 행운
두 사람 이상의 실적을 서로 비교하는 경우에는 훨씬 민감한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는 단일 시계열을 분석할 때에도 분명 운에 속지만, 두 사람을 비교하거나 한 사람과 벤치마크를 비교할 때에는 더 큰 착각에 빠지기 일쑤다. 왜 그럴까? 둘 다 임의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암 치료
작고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은 비과학적 사고를 배척하고 과학적 사고를 촉진하는 일에 헌신했던 인물이다. 그는 프랑스 루르드 지방에 찾아가서 성수에 손을 대면 암이 치료된다는 이야기를 조사했다.
그가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에 따르면, 루르드 지방을 방문했던 전체 암 환자의 치료율은 일반 환자의 자연 치유 확률보다도 낮았다. 루르드 지방을 방문하지 않은 환자들의 평균 치료율보다도 낮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통계 전문가들은 암 환자가 루르드 지방을 방문하면 생존 확률이 떨어진다고 추론해야 할까?
피어슨 교수의 몬테카를로 연구
칼 피어슨(Karl Pearson) 교수는 비임의성(非任意性) 검증 기법을 처음으로 개발하였다(실제로는 정상으로부터의 편차를 조사하는 방법이었다). 그는 1902년 7월에 이른바 몬테카를로(룰렛 바퀴의 옛 이름이다)를 수백만 번 돌려가며 조사했다.
그가 매우 높은 통계적 유의성으로(오차율이 10억분의 1 미만이었다) 발견한 바로는, 룰렛 바퀴를 돌린 결과는 순수하게 비임의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룰렛 바퀴가 우연이 아니라니! 피어슨 교수는 자신이 발견한 사실에 매우 놀랐다.
그러나 이 결과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순수한 임의 추출 따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추출 결과는 장비의 품질에 좌우된다. 아주 자세히 조사하면 어딘가에서 비임의성을 찾아낼 수 있다(예컨대 바퀴 자체가 완벽한 균형을 이루지 않거나, 공이 완벽한 구가 아닐 수도 있다).
통계철학자들은 이를 준거 사례 문제(reference case problem)라고 부르는데, "진정한 임의성은 이론으로만 존재할 뿐 실제로는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짖지 않는 개, 편향된 과학 지식
과학도 치명적인 생존편향 문제를 안고 있다. 언론과 마찬가지로, 과학 연구도 특별한 결과가 도출되지 않으면 발표되지 않는다. 문제는 아무것도 없다는 발견과, 발견 사항이 없다는 사실을 혼동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도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 명탐정 셜록 홈스는 실버 블레이즈(Silver Blaze) 사건에서 개가 짖지 않은 사실이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정보를 제공하는데도 통계적 유의성이 낮다는 이유로 발표되지 않는 과학 연구가 많다는 점이야말로 더 큰 문제다.
결론이 없다
운을 다루는 직업 중에도 실적이 운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카지노는 운을 관리한다. 금융 산업은 어떤가? 아마도 일부가 해당될 것이다. 트레이더들이 모두 투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시장 조성자(market maker)라는 집단도 있는데, 이들은 소매상처럼 거래할 때마다 이익을 남기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전문화된 소매상 같은 직업을 제외하면, 누가 운이 좋고 누가 운이 나쁘냐는 질문에 솔직히 대답할 수가 없다. A보다 B가 운이 더 좋은 것 같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확신도가 너무 낮아서 아무 의미가 없을 정도다. 그래서 회의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인생은 직선이 아니다. 베벌리 힐스로 이사해서 부자들의 악습을 배우다. 빌 게이츠는 업계 최고가 아닐지도 모른다. 당나귀의 먹이를 빼앗다.
먼저 비선형을 정의하겠다.
모래를 계속 쌓다보면 마지막 모래 한 줌이 모래성을 모두 무너뜨렸다고 말할 수 있다. 모래성에 가해진 힘은 선형적이었지만, 모래성을 무너뜨린 것은 비선형적 효과였다. 여기서 모래 한 톨에 해당하는 아주 작은 추가 입력이 이른바 바벨탑 붕괴라는 엄청난 결과를 일으켰다.
이런 비선형 역학은 《카오스 이론》이라는 책 제목으로도 등장한다. 카오스 이론은 주로 자그마한 입력이 엄청난 반응을 일으킨다는 내용이다. 시작 시점의 아주 작은 차이에 따라 인구 모델이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나타낼 수도 있고 인류의 멸종을 나타낼 수도 있다.
역시 운이다
명성을 얻어 수영장 딸린 호화 저택을 장만한 배우들에게는 남다른 능력과 매력, 신체적 특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 물론 성공한 배우들은 능력이 있겠지만, 떨어진 배우들도 능력이 있을 것이다.
심사위원이 오디션 전날 비슷한 이름의 사람과 사랑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어떤 배우는 지금도 인근 음식점에서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타자기 자판
분석가들은 잘못된 역학이 승패를 결정하게 되어 당찮은 상품이 최종 승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하는데, 이때 자주 인용되는 사례가 쿼티(QWERTY) 자판이다.
쿼티 자판은 사실 타자를 불편하게 만들어서 타자 속도를 늦추는 방식에 불과했다. 사람들이 쿼티 자판에 너무 익숙해져서 습관을 바꾸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배우가 스타의 위치에 오르는 과정이 나선형으로 진행되듯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방식을 따른다. 이런 과정을 억지로 합리화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것을 '경로 의존적 결과(path dependent outcome)'라고 부르는데, 이 때문에 행동을 계량 모델화하려는 시도가 번번이 좌절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엄청난 행운으로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다. 게이츠가 탁월한 능력, 근로 윤리, 지성을 갖췄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가 과연 최고인가? 그런 대성공을 거둘 자격이 있는가? 분명히 아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윈도를 사용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순전히 순환 효과이며, 경제학자들은 ‘네트워크 외부 효과(network externalities)’라고 부른다.
산타페 인스티튜트(Santa Fe Institute)에서 비선형성을 연구하는 경제학자 브라이언 아서(Brian Arthur)는 기술적 우위가 아니라 우연한 사건과 긍정적 피드백이 결합하여 경제적 성공을 결정한다고 저술했다.
현실 세계와 수학
아서는 폴랴(Polya) 프로세스 같은 모델을 제시하면서,(재무관리에서 사용하는 브라운 랜덤워크 같은) 전통적 모델에서는 성공 확률이 점진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폴랴 프로세스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처음에 같은 수의 검은 공과 흰 공이 담긴 항아리가 있다고 가정하자. 당신은 공을 꺼내기 전에 매번 어떤 공을 꺼낼 것인지 추측해야 한다(공을 다시 넣지 않는다). 여기에 함정이 숨어 있다.
일반적인 통계 추론과는 달리, 추론이 맞을 확률이 과거 추론의 성공 여부에 좌우된다. 따라서 과거 추론이 맞은 뒤에는 추론이 맞을 확률이 높아지지만, 과거 추론이 틀린 다음에는 추론이 맞을 확률이 낮아진다. 이런 프로세스로 시뮬레이션을 시행하면 그 결과에 커다란 차이가 발생하여, 놀라운 성공과 참담한 실패가 모두 나타날 수 있다.
경제학을 과학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 단지 자신의 사고 과정이 엄격했음을 입증하기 위해 억지로 수학을 이용한 학자들이 많았다는 점이 문제다.(레옹 발라(Leon Walras), 제라르 드브뢰(Gerard Debreu),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 등)
일부 학자들은 너무 급히 수학적 모델링 기법을 도입했는데, 자신이 사용하는 수학의 종류가 너무 제한적이어서 문제를 다루기에 부적합하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못했거나, 정밀한 수학을 사용하면서 마치 해결책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오도한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포퍼는 과학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비싼 대가를 치른다고 말했다). 운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수학은 단지 생각하고 명상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네트워크의 과학
네트워크 역학에 대한 연구가 최근 발전하고 있다.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이 저서 《티핑 포인트The Tipping Point》에서 소개한 다음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 그는 유행과 같은 변수들은 어떤 임계 수준을 넘어서면 지극히 빠른 속도로 퍼진다고 설명한다(예를 들면 도심 아이들 사이에서 운동화가 유행한 현상, 종교의 확산 등이 있다. 책 판매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서, 입소문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폭발적으로 팔려나간다).
용량에 제한이 없는 경우, 네트워크는 더 많이 연결되어 있을수록 누군가 방문할 확률이 높아지고, 그래서 더 많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임계점’을 찾으려 한다면 어리석은 짓임을 유념하라. 임계점은 불안정해서, 사전에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
인간의 두뇌
인간의 두뇌는 비선형성을 이해하기에 부적합하다. 두 변수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을 때, 사람들은 한 변수에 꾸준히 입력하면 다른 변수에 반드시 결과가 나오리라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의 심리가 인과관계를 선형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매일 공부하면 이에 비례해서 무엇인가를 배운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매일 장시간 피아노 연습을 했음에도 간신히 <젓가락 행진곡>만 연주할 수 있었는데, 갑자기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게 된다고 상상해보라. 바로 이런 비선형성 때문에 사람들은 희귀사건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운에 좌우되지 않고 성공하는 길이 많음에도 끝까지 끈기를 발휘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남들보다 더 노력하는 사람은 보답을 받는다.
뷔리당의 당나귀
비선형적인 운이 교착 상태를 깨뜨려주기도 한다. 갈증과 허기를 느끼는 당나귀의 좌우에 물과 먹이를 똑같은 거리를 두고 놓아둔다고 가정하자. 이런 상황이라면 당나귀는 무엇을 먼저 먹을지 선택하지 못한 채 갈증과 허기를 동시에 느끼며 죽을 것이다.
이번에는 이 상황에 운을 개입시켜서, 물과 먹이 가운데 어느 하나가 당나귀에게 더 가까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즉시 교착 상태가 해소되어, 당나귀는 먹이를 먹은 다음 물을 마시든지, 물을 마신 뒤에 먹이를 먹든지 둘 중 하나를 하게 될 것이다.
‘뷔리당의 당나귀’는 14세기 철학자 장 뷔리당(Jean Buridan)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뷔리당이 죽은 방식도 흥미롭다(그는 자루에 담긴 채 센 강에 던져져 익사했다).
파리 휴가와 카리브 해에서의 휴가를 선형적으로 조합해서 생각하기 어려운 이유. 네로 튤립이 다시는 알프스에서 스키를 못 탈 수도 있다. 관료에게 질문을 너무 많이 하지 마라. 브루클린에서 만들어진 두뇌. 우리에게는 나폴레옹이 필요하다. 스웨덴 국왕에게 절하는 과학자들. 언론의 오염에 대해 한마디 더. 당신은 지금쯤 죽었어야 한다.
3월의 짧은 휴가에 당신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첫째는 파리이고, 둘째는 카리브 해이다. 불확실성 속에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려면 두 곳에 대해서 각각 50%씩 상상해야 한다. 이를 수학적으로는 두 지역에 대한 선형적 조합(linear combination)이라고 부른다. 당신의 두뇌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아주 공정한 조건으로 직장 동료와 1,000달러 내기를 한다고 가정하자. 내일 밤 당신 주머니는 텅 비거나 2,000달러가 채워지는데, 각각의 확률은 50%이다.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내기의 공정한 가치는 두 상태에 대한 선형적 조합이며, 여기서는 수학적 기댓값이라고 부른다. 당신은 1,000달러의 가치를 수학적 계산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그릴 수 있는가? 0달러든 2,000달러든 우리는 한 번에 단 하나만을 생각할 수 있다.
건설적 사고
인간은 수학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망 확률 28%의 경우, 네로는 자신이 죽은 모습과 성가신 장례 절차를 떠올린다. 반면 생존 확률 72%의 경우에는 쾌활한 기분이 된다. 완치된 뒤 알프스에서 스키를 즐기는 모습이 떠오른다. 암 선고를 받고서 네로는 자신이 72%는 살고 28%는 죽는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철학적 관료를 조심하라
관료가 존경받는 철저한 사회주의 국가에서 당신이 정부 관료 앞에 서 있다고 가정하자. 당신은 잘 팔릴 것으로 예상되는 뉴저지 지역에 초콜릿을 수출하기 위해서 서류에 도장을 받으려고 한다. 정부 관료의 기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거래와 관련된 일반 경제 이론에 관료가 관심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는가?
그가 맡은 업무는 담당 부서로부터 10여 개의 서명을 받았는지 확인한 뒤 서류에 도장을 찍어주는 일이다. 그래서 규정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우리가 규정을 따르는 것은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유용하고 시간과 노력을 절감해주기 때문이다.
제한적으로 합리적
우리 두뇌는 작용할 때 항상 지름길을 찾아낸다. 이 사실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으로 다양한 경력을 갖춘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의 아이디어는 ‘충족(Satisficing)’이었다(satisfy와 suffice를 결합한 단어). 충족에 가까운 답을 얻으면 사람은 최적화를 중단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주 사소한 결론이나 행동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합리적이지만 그 방식은 제한적이다. 즉, 인간은 ‘제한적으로 합리적’이다. 그는 우리 두뇌가 어느 지점에서 중단되도록 설계된 최적화 기계라고 믿었다.
카너먼과 트버스키
지난 200년 동안 경제학적 사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인가?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앨프리드 마셜(Alfred Marshall)도, 폴 새뮤얼슨도 아니고, 밀턴 프리드먼도 분명 아니다.
답은 두 신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다. 이들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인간은 확률적 사고와 최적화된 행동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밝혀냈다.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사이먼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하여 인간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인간의 비합리성을 밝힌 원리들을 어림법(heuristics)이라고 불렀다.
이는 합리성 모델을 단순화한 것이 아니라, 그것과는 방법론 자체가 전혀 달랐다. 이들은 이 방법을 ‘빠르고 더러운’ 어림법이라고 불렀다. 더럽다고 표현한 것은 이런 지름길에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연구 이후 행동재무학과 행동경제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크게 발전했다. 이들은 경영대학원과 경제학과에서 효율적 시장, 합리적 기대 등의 개념을 가르치는 이른바 정통 신고전주의 경제학을 공개적으로 부인했다.
당시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비합리성에 관한 이야기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가 규범적 개념이었던 시대다. 경제학자들은 인간이 완벽하게 합리적이지는 않지만 최적에 가깝다는 사이먼의 주장은 쉽게 받아들였지만, 인간이 불완전한 정도가 아니라 결함투성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동기부여를 해도 사람들의 편향성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들은 다른 방식으로 추론했으나 확률 개념은 약했다.
나폴레옹은 어디 있는가
소련 붕괴 후 러시아에서 활동하던 서구 사업가들은 법률 시스템에서 짜증스런 사실을 발견했다. 각종 법률이 상충하면서 모순이 발생했던 것이다. 어느 조항을 참조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졌다.
법률 체계가 누더기처럼 된 것은 각종 법률을 산발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항상 기준이 되어 전체적으로 일관성을 유지해 주는 중심 체계 없이, 새 법을 여기저기 덧붙여서 너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나폴레옹은 프랑스에서 하향식 법전을 만들어서 완벽하게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했다. 인간의 사고에도 같은 문제가 있지만, 아직은 낡은 체계를 무너뜨리고 중심 체계를 만들어낼 나폴레옹이 등장하지 않았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조항을 참조하느냐에 따라 당신 두뇌의 반응이 달라진다고 가정하자. 중앙처리시스템이 없으면 우리의 결정은 서로 충돌을 일으킨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동시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편향이 발생하는 것이다. 어림법의 중요한 속성 중 하나는 추론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나는 마지막 거래만 기억한다
트레이더들은 오랜 기간 행동재무학을 전혀 알지 못했으므로, 이상한 규칙성이 나타나면 단순한 확률 추론과 사람들의 인식을 이용했다. 그래서 트레이더들은 나름대로 각종 이름을 붙였다.
인식은 전체보다 부분에 좌우되며, 행복감도 이런 방식으로 영향을 받는다. 100만 달러를 거저 얻었다고 가정하자. 다음 달에 30만 달러를 잃는다. 이제 재산이 감소하였으므로 심리적으로 고통을 받게 되는데, 아예 처음부터 70만 달러를 받았거나, 더 좋게는 35만 달러씩 두 번 받았다면 이런 고통도 없을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사물을 어떤 기준과 비교하는 효과를 ‘기준점 효과’라고 부른다. 이 논리를 극단적으로 확대하면, 사람들은 항상 기준을 재설정하기 때문에 재산 자체로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재산이 꾸준히 증가하는 것처럼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때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호텔 접수계 직원에게 공항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었다. 내가 “40분 걸리나요?”라고 묻자, 직원은 “35분 정도 걸립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어서 프런트 여직원에게 공항까지 20분이면 갈 수 있는지 물었다. 여직원은 “아니요, 약 25분 걸립니다”라고 대답했다. 내가 소요 시간을 재보니 31분이었다.
바로 이런 기준점 효과 때문에 사람들은 순자산 총액 대신 어떤 기준 금액으로부터의 증감에 반응한다. 경제학자들은 어떤 사람이 50만 달러를 보유했을 때보다 100만 달러를 보유했을 때 더 만족한다고 주장하므로, 이런 기준점 효과는 경제학 이론과 중대한 갈등을 일으킨다.
어림법을 몇 가지 더 열거해 보겠다.
(a) 가용성(availability) 어림법 : 사람들은 전국에서 발생하는 지진보다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하는 지진이 잦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는 그 사건을 떠올리기 쉬우면 그 사건의 발생 빈도가 높다고 예측하기 때문이다.
(b) 대표성(representativeness) 어림법 : 어떤 사람의 특성이 ‘전형적인’ 집단 구성원과 비슷하면, 그 사람도 그 집단 구성원일 확률이 높다고 평가한다.
(c) 시뮬레이션 어림법 : 실제 사실을 무시하고 대체 시나리오를 생각하는 경향으로, 사람들은 기차를 놓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상상한다.
(d) 감정 어림법 : 현재의 감정이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이 확률적 추론에 취약하다는 카너먼-트버스키 학파의 주장에 동의한다. 다만 그 이유가 사물을 현재 상황에서 표현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진화심리학계를 대표하는 과학 지성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는 “인간의 두뇌가 진실을 찾기보다는 적응을 잘하도록 만들어졌다”라고 말했는데, 이 말에 진화심리학의 관점이 요약되어 있다.
인지과학자 게르트 기거렌처(Gerd Gigerenzer) 같은 사상가는 카너먼이나 트버스키와는 전혀 다른 관점을 고수한다. 그가 ABC(Adaptive Behavior and Cognition, 적응 행동 및 인지) 그룹 동료와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합리적이며 진화를 통해서 이른바 ‘생태적 합리성’이라는 합리성을 낳는다.
또한, 인간은 배우자나 식사를 선택하는 상황에서도 확률을 최적화하여 행동하도록 고정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주식을 정확하게 설명할 때는 주식도 적절하게 선택하도록 고정화되어 있다고 믿는다.
신경생물학자들도 나름의 관점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있다. 이들은 인간의 두뇌가 세 가지라고 본다. 가장 오래된 것은 파충류의 뇌로서 심장박동을 관장하며, 다른 동물도 모두 갖고 있다. 변연계(邊緣系)는 감정의 중심이 되며 포유류도 갖고 있다. 신피질(新皮質)은 인지뇌라고도 하는데, 영장류와 인간을 구분해준다(다행히 기관투자가들에게도 신피질은 있는 것 같다).
이에 관해서 쉽게 쓴 주요 작품 둘을 소개하겠다. 다마지오(Damasio)의 《데카르트의 오류(Descartes' Error)》와 르두(LeDoux)의 《느끼는 뇌(Emotional Brain)》이다.
《데카르트의 오류》는 매우 단순한 가설을 제시한다. 누군가의 뇌에서 일부를 제거하여 감정만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다마지오의 보고에 따르면, 완전히 비감정적인 사람은 아주 단순한 결정조차 내릴 수가 없었다.
르두가 감정의 역할에 대해 제시하는 이론은 더욱 강력하다. 그는 감정이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그는 감정 시스템으로부터 인지 시스템으로 가는 결합이, 인지 시스템으로부터 감정 시스템으로 가는 결합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우리가 감정변연계을 느끼고 나서 설명신피질을 찾아낸다는 뜻이다.
불합리한 세상
카프카의 예언적 소설 《심판》은 아무 이유도 듣지 못한 채 체포당한 요제프 K라는 사람의 곤경을 그렸다. 그는 미래에 관료제가 내부 논리에 따라 자동으로 규정을 만들어내면서 스스로 성장하여 인류를 구속한다는 무서운 예측을 했다.
나는 어떤 변호사를 보면 겁이 난다. 심프슨 재판 변론을 들은 뒤 어떤 가능성 때문에 정말로 겁이 났다. 내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체포당해, 확률을 전혀 모르는 배심원 앞에서 입심 좋은 변호사와 싸워야 하는 상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입담만 좋고 과학을 거부하는 엉터리 변호사의 말에 귀 기울이거나, 과학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경제학자의 잘못된 이론을 적용하게 된다는 뜻이다. 과학의 장점은 두 가지 오류를 어느 정도 허용한다는 점이다. 다행히 중용의 길이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 길을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확률에 대한 오해 사례
의사들이 다음과 같은 유명한 퀴즈를 풀게 되었다(드보라 베넷(Deborah Bennett)의 탁월한 저서 《확률의 함정Randomness》에서 인용했다).
어떤 질병 검사의 양성오류(실제로 정상인데 환자로 진단하는 경우)율이 5%이다. 인구의 1,000분의 1이 이 질병에 걸렸다. 감염 의심 여부에 관계없이 무작위로 표본을 추출하여 질병 검사를 시행한다. 양성오류만 존재한다. 환자가 실제로 질병에 걸렸을 확률은 얼마인가?
대부분 의사는 검사의 정확도가 95%라는 사실만 고려해서 95%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대상자가 실제로 질병에 걸린 동시에 검사에서 환자로 판정한 경우의 결합확률이 되어야 하므로, 답은 약 2%이다.
음성오류(실제로 환자인데 정상으로 진단하는 경우)가 없다고 가정한다. 검사 대상자 1,000명 가운데 감염자는 1명이다. 검사의 정확도가 95%이므로, 나머지 999명 가운데 약 50명이 환자로 판정된다. 정확한 답은 실제 감염자의 수를 환자로 판정된 사람의 수로 나눈 비율이다.
* 실제 감염자 수/환자로 판정된 사람의 수 = 1/51
사람들은 옵션에 장님이다
옵션 트레이더로 활동하면서, 사람들이 옵션을 과소평가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이는 옵션의 수학 공식을 다 알더라도, 불확실한 보상 속성을 머릿속으로 정확하게 평가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옵션 트레이더를 프리미엄 매도자와 프리미엄 매입자의 두 부류로 나눈다. 프리미엄 매도자는 앞에 등장했던 존처럼 옵션을 팔아 대개는 꾸준히 수입을 올린다. 옵션 매입자는 그 반대다. 옵션 매도자는 벌 때는 새처럼 조금씩 먹고, 잃을 때는 코끼리처럼 크게 싼다. 내가 만나본 트레이더들은 대부분 옵션 매도자였다. 이들은 파산하면서 대개 남의 돈을 날렸다.
어느 쪽이 더 고통스러운가? 1달러씩 100번 잃는 쪽인가, 100달러를 한 번에 잃는 쪽인가? 분명히 첫 번째가 더 고통스럽다. 따라서 쾌락의 관점에서 보면, 경제적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더라도, 1달러씩 매일 장기간 벌다가 한꺼번에 모두 날리는 편이 낫다. 그래서 사건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이런 전략을 추구할 유인誘因이 생긴다.
옵션에 대한 착각을 보여주는 사례가 또 있다. 다음 중 어느 쪽이 더 가치가 높은가?
(a) 내년의 어느 날, 주식시장이 10% 하락하면 100만 달러를 주는 옵션.
(b) 내년의 어느 날, 테러로 주식시장이 10% 하락하면 100만 달러를 주는 옵션.
사람들은 대부분 (b)를 선택할 것이다.
증권 방송의 호들갑
언론인들은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일보다 멋지게 표현하는 일에 능하다. 증권 방송 역시 존경받는 인물이 출연해서 주식시장의 속성에 대해 그럴듯하게 들리는 가소로운 소리를 할 때도 많다. 그런 말 가운데 확률의 법칙을 무참히 짓밟는 이야기도 있었다.
"주가지수는 고점에서 10%밖에 안 떨어졌지만, 일반 주식들은 고점에서 거의 40%나 하락했습니다.” 이는 커다란 곤경이나 이상 현상을 알리는 약세장의 전조라는 뜻이다.
그러나 일반 주식들이 고점 대비 40% 폭락하는데도 주가지수가 10%만 하락하는 현상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우선 주식이 모두 동시에 고점에 도달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주식 A와 B의 상관관계가 마이너스여서 주식 A가 고점에 있을 때 B가 저점에 있다면, 주가지수가 고점을 기록할 때 두 주식 모두 고점에서 40% 하락할 수도 있다. ‘확률 변수 최댓값의 분포’라는 확률의 법칙에 따르면, 평균의 최댓값은 최댓값의 평균보다 변동성이 반드시 작다.
당신은 지금쯤 죽었어야 한다
유명한 금융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실수를 자주 저질렀다. “일반 미국인의 기대수명은 73세입니다. 따라서 당신이 68세라면 5년 더 살 것이므로, 이에 따라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전문가는 5년을 기준으로 투자하는 방법을 정확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당신이 80세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의 기대여명이 마이너스 7년인가? 이런 전문가들은 무조건 기대여명과 조건부 기대여명을 혼동한 것이다.
블룸버그 해설
내 책상에는 블룸버그 단말기가 놓여 있다. 내 단말기에 다음과 같은 머리 기사가 올라온다.
금리하락에 다우 1.03 상승 일본 뭉겨수지 흑자 증가로 환율 0.12엔 하락
이런 내용을 제대로 옮기자면, 언론인들의 설명은 완벽한 소음이다. 11,000 수준인 다우지수가 1.03 움직인 것은 0.01%에도 못 미친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서는 설명할 근거가 없다.
설사 통계적 유의성이 있다고 해도,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그 사건이 원인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인과관계가 매우 복잡한 때도 있다. 변수가 많은 경우에는 한 가지 원인을 찾아내기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을 '다변량 분석'이라고 부른다.
나는 세상에서 실제로 중요한 일이 일어나는지 찾아내는 방법을 고안했다. 블룸버그 화면에 통화, 주식, 금리, 상품 등의 가격 변화가 백분율로 표시되게 만들었다. 요령은 백분율 변화가 큰 변수만 보는 것이다. 일상적인 하루 변동률을 넘어서지 않는 사건은 소음으로 간주한다.
우리는 신뢰 수준을 이해하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예측치보다 신뢰 수준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이제 투자 활동은 시장 예측보다, 허용할 수 있는 오차 범위에 훨씬 크게 좌우됨을 알 수 있다.
나는 트레이더로 오랜 세월을 보냈지만, 여전히 실수를 저지르기 쉬운 어리석은 존재다. 나의 인간적 속성이 끊임없이 좌절시키려 한다. 그래서 항상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 운에 속도록 타고났기 때문이다.
Part 3 귀를 틀어막아라
- 운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 -
운을 다루는 직업을 통해서 나 자신이 감정을 다스릴 만큼 똑똑하지도 강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아이디어를 체계화시키고 실행하려면 감정을 사용해야 한다. 단지 내가 운에 속기 쉽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감성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만큼만 똑똑하다. 나는 감정에 지배받는다.
도박꾼의 미신. 택시 기사 덕에 얻은 횡재. 나는 바보 중의 바보지만 이 사실을 알고 있다. 부적합한 유전자 길들이기. 내 책상 밑에는 초콜릿이 없다.
도박꾼들은 베팅 결과와 신체 움직임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병적으로 믿기 때문에 대부분 이상한 행동 습관을 갖고 있다. ‘도박꾼’이라는 말은 파생상품 트레이더에게는 가장 경멸적인 표현이다.
덧붙이자면, 도박이란 확률이 유리하건 불리하건 무작위 결과를 맞이할 때 흥분을 느끼는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확률이 분명히 불리한 경우에도 도박꾼은 운명이 자기편이라고 믿으면서 확률을 거슬러 돈을 건다.
스키너의 비둘기 실험
하버드 대학의 유명한 심리학자 스키너(B. F. Skinner)는 쥐와 비둘기를 상자에 넣어 실험했다. 그 상자에는 비둘기가 부리로 쪼아 조작할 수 있는 스위치가 달려 있었고, 전기 장치를 통해 먹이가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스키너는 다양한 동물들의 일반적인 행동 속성을 연구하려고 이 상자를 설계했는데, 당시는 1948년이었으므로 복잡한 장치는 무시하고 먹이 전달에만 집중했다. 그는 굶주린 비둘기에게 먹이가 무작위로 전달되도록 설계했다.
스키너는 비둘기들의 행태를 관찰하고 매우 놀랐다. 먹이를 무작위로 공급했는데도 비둘기들이 이에 반응해서 매우 정교하게 기우제 춤을 추듯 행동했기 때문이다. 한 마리는 상자 구석을 향해 머리를 규칙적으로 흔들었고, 다른 비둘기들은 머리를 반시계방향으로 돌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비둘기들은 모두 어떤 의식을 치르듯 행동했는데, 이는 자신의 행동이 먹이 공급과 관계가 있다고 믿었다는 뜻이다.
돌아온 필로스트라투스
태평스럽고 무관심한 생활을 옹호했던 그리스 철학자 피론(Pyrrho)도 위태로운 상황을 맞았을 때 평정을 유지하지 못했다고 비난받았다(그는 황소에 쫓기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인간적 본성을 억누르기 어려울 때가 간혹 있다고 대답했다.
피론도 이럴진대, 어째서 나머지 사람들이 경제학 이론에서 말하듯 불확실성 속에서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행동해야 하는가?
나는 감정이 두뇌와 따로 놀기 때문에, 트레이딩에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확실하게 조처를 해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실적이 사전에 정해둔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 실적 보고서를 절대로 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초콜릿에 대해서도 두뇌와 식욕을 원천적으로 막아놓았다. 내 책상 밑에는 군것질거리가 하나도 없다. 소음을 무시하려면 우리가 단지 동물에 불과하므로 설교가 아니라 저급한 요령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카르네아데스를 내쫓은 감찰관 카토. 자신의 과거 주장을 잊는 노르푸아 후작. 과학자를 조심하라. 아이디어와 결혼하다. 로버트 머튼 덕에 유명해진 저자. 과학은 장례를 치르면서 발전한다.
확률은 승산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代替 결과, 원인, 동기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수학이 계산 도구가 아니라 명상 도구라는 사실도 기억하라. 또다시 옛 현인들을 찾아가 한 수 배워보자. 이들은 확률을 항상 주제, 유동체, 신념의 척도로 다루었다.
로마에 온 카르네아데스
기원전 155년경, 키레네 출신 그리스 철학자 카르네아데스(Carneades)가 로마를 방문했다. 그는 로마 원로원에 정치적 배려를 간청하려고 아테네에서 보낸 세 명의 대사 가운데 한 사람이다. 로마는 아테네 시민에게 벌금을 부과했는데, 이들은 그 부당성을 호소하고자 했다. 카르네아데스는 아카데미Academy를 대표했다.
고대했던 연설의 날이 오자 그는 일어서서 정의를 찬양하는 탁월한 열변을 토했다. 정의를 물려주는 일이 최우선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마 시민이 대부분 연설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그가 전달하려는 요점은 그것이 아니었다.
다음 날에도 카르네아데스는 연설장에 등장해서 지식의 불확실성을 논하는 학설을 매우 설득력 있게 펼쳤다. 어떻게 했을까? 바로 전날 자신이 그토록 설득력 있게 펼쳤던 주장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반박했다. 결국, 그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청중에게 정의가 인간의 최우선 목적이 아니라고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카르네아데스는 회의론자일 뿐만 아니라 논리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제시한 전제나 결론조차 지지하지 않았다. 진리가 하나뿐이라는 거만한 신념에 평생 저항했다. 회의론자들은 아무것도 확실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가르치며 다양한 확률로 결론을 제시했고, 이런 방식이 일종의 지침이 되었다.
확률적 사고를 처음으로 사용한 인물을 찾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우리는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시칠리아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에서 최초의 수사학자가 확률 개념을 법체계에 적용했는데, 고소할 때 의혹이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시러큐스인 코락스(Korax)로서 사람들에게 확률을 이용해서 논쟁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가 가르친 기법의 핵심은 최확(最確, most probable)이라는 개념이었다.
확률은 회의론의 산물
진리가 하나뿐이라는 믿음을 퍼뜨린 일신교가 지중해를 지배하기 전까지만 해도, 회의론은 주요 사상가들 사이에서 널리 인정받았으며, 세계 곳곳에 스며들었다.
이 생각의 근거를 제공한 사람이 고대의 수다스러운 작가 키케로(Cicero)다. 그는 확실하게 주장하기보다는 확률을 따르려고 했다. 모순된 말이 허용되었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포퍼로부터 자신에게 비판적이어야 한다고 배운 우리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키케로를 더 존경하게 된다. 과거에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의견을 고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에 와서야 자신의 과거 발언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이 분출되었다. 이런 욕망이 가장 우아하게 표현된 곳이 폭동을 일으킨 파리 학생들의 낙서다. 1968년 프랑스에서 학생운동이 일어났다. 지성적이고 일관된 말을 하라는 압력에 오랫동안 억눌렸던 젊은이들이 마침내 다음과 같은 주장을 내세웠다.
모순된 말을 할 권리를 달라!
노르푸아 후작의 견해
현대인은 우울하다. 모순된 말을 하면 문화적으로 수치를 당하며, 과학 분야에서는 재난을 당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비상근 외교관 노르푸아 후작은 팩스가 등장하기 전의 모든 외교관과 마찬가지로 살롱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교계 명사였다. 프루스트는 그를 매도한다.
노르푸아 후작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잊었을 뿐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뱉은 말은 금방 잊게 된다. 상황이 바뀌면 기억도 바뀐다. 정치인은 외교관보다 한 술 더 뜨는데, 한때 자신이 제시했던 견해나 거짓말을 망각하는 이유는 기억력 부족이라기보다는 과도한 야망 때문이다.
노르푸아 후작은 다른 견해를 내세웠다는 이유로 수치를 당한다. 프루스트는 그가 생각을 바꿨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원래 의견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배신자가 된다. 이제 나는 노르푸아 후작이 트레이더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특성을 타고난 유명한 인물이 조지 소로스다. 그가 지닌 강점 중 하나가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순식간에 자신의 견해를 뒤집는 것이다.
소로스 같은 진정한 투기꾼들의 특징은 경로에 전혀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과거 행동에 전혀 구속받지 않는다. 하루하루가 백지상태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경로에 얽매이는지를 간단하게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경제학자들은 이것을 '보유 효과'라고 부른다). 당신이 2만 달러를 주고 그림을 샀는데, 미술시장 전망이 밝아진 덕분에 지금은 4만 달러로 가격이 올랐다.
만일 당신에게 이 그림이 없다면, 현재 가격으로라도 이 그림을 사겠는가? 사지 않을 생각이라면, 당신은 이 그림에 얽매였다고 말할 수 있다. 현재 가격에 사지 않을 그림이라면 계속 보유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디어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처음 얻은 신념이 너무 강해서 계속 유지될 때, 그 신념에 "얽매인다"고 말한다.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얻은 자신의 과거 업적에 해가 될 만한 말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카르네아데스나 키케로와는 다른 방식으로 확률을 다루는 사람들도 있다. 확률은 도박 이론을 통해 수학에 도입되고 나서 단순한 계산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다.
최근 '위험 측정' 산업이 부상하고 있는데, 이 산업은 사회과학에 이러한 확률 기법을 적용해서 위험을 평가한다. 저자는 오래 전부터 유명한 금융경제학자들과의 사기에 맞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한다(해리 마코위츠, LTCM, 모버트 머튼, 마이런 숄스 등을 언급한다).
그들은 트레이딩을 하다가 파산하면, 자신이 틀렸다고 당당히 이야기하지 못하고 시장의 거래 상대들이 독수리 때처럼 달려드는 바람에 무너졌고, 원인을 희귀사건 탓으로 톨리며 임시변통으로 변명을 늘어놓는다.
과학자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반박당했을 때 보이는 이런 행동을 이른바 귀인 편향(attribution bias)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성공하면 자기 실력이고, 실패하면 운 탓이라고 말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이 과학자들은 자신의 실패를 ‘텐 시그마’ 희귀사건 탓으로 돌렸다. 자기 생각이 옳았는데 운이 없었다는 말이다. 왜 이런 반응을 보일까? 자존심을 지키면서 계속 역경을 이겨나가려면 그렇게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제 실적과 자신에 대한 평가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1954년부터 알고 있었다. 미국의 심리학자 밀(Paul E. Meehl)은 전문가들이 인식하는 자신의 능력과 실제 통계로 나타나는 능력을 비교했다. 이들의 객관적인 예측 실적과 이들이 생각하는 예측 능력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나타났다.
귀인 편향은 다른 영향도 미친다.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남보다 낫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보통 80~90%가 자신을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과학과 과학자
사람들은 과학과 과학자를 혼동한다. 과학은 위대하지만, 과학자 개개인은 위험하다. 과학자도 인간이라서 편견투성이다. 박사학위 청구자는 자신의 논문을 방어해야 한다.
그러나 과학은 과학자보다 낫다. 과학은 장례를 치르면서 발전한다고 한다. LTCM이 붕괴하고 나서 새로운 금융경제학자가 나타나, 관련 지식을 과학에 통합시킬 것이다. 이번에도 늙은 과학자들이 저항하겠지만, 장례를 먼저 치르게 되는 사람은 늙은 과학자들일 것이다.
몽테를랑의 죽음. 스토아 철학은 의연함이 아니라 인간이 운을 이긴다는 착각. 영웅 되기가 너무도 쉽다. 운과 품위.
프랑스의 고전주의 귀족 작가 앙리 드 몽테를랑(Henry de Montherlant)은 퇴행성 질환에 걸려 시력을 잃게 되리라는 말을 듣자 자살을 선택했다. 고전주의자에게 어울리는 최후였다. 왜 그랬을까?
스토아 철학은 무작위 사건을 맞이했을 때 자신의 운명을 최대한 통제하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인간은 운명이 부여한 삶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다. 결국 불확실성에 대항하는 선택권이 항상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아무리 정교하게 선택하고, 운을 잘 지배할 수 있다고 자만해도 결국 최후는 운이 결정할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해결책은 품위뿐이다. 품위란 환경에 직접적으로 얽매이지 않고 계획된 행동을 실행한다는 뜻이다. 그 행동은 최선이 아닐 수도 있지만, 분명히 최상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행동이다.
콘스탄틴 카바피(Constantine P. Carafy)는 20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활약한 그리스 시인이다. 거의 100년 전에 고대어와 현대 그리스어를 결합해서 15세기 이전의 서구 문학 같은 간결한 시를 지었는데 그리스인들은 그를 국보처럼 소중히 여긴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마지막 배우자 모리스 템펠스먼이 재클린의 장례식에서 카바피의 고별의 시 <신께서 안토니우스를 버리시네>를 낭송했다고 한다.
이 시는 바쿠스에게 버림 받아 옥타비아누스에게 막 패배한 안토니우스를 그렸다(전설에 따르면, 말까지도 그를 버리고 옥타비아누스에게 갔다고 한다). 시는 멀어지는 알렉산드리아에 담담하게 작별을 고하라고 권한다. 불운에 슬퍼하지도 말고, 현실을 부인하지도 말며, 자신의 눈과 귀를 속이려 하지도 말라고 조언한다.
감정에 휘둘린다면 잠자코 듣기만 하라.
비겁한 자의 탄원과 불평은 삼가라
감정 때문에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무 잘못이 아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래 모습이다. 잘못은 품위 있는 길을 따르지 않는 데에 있다. 이것이 스토아 철학이 진정으로 뜻하는 바다. 스토아 철학은 확률에 맞서려는 인간의 시도다.
스토아 철학은 고대 페니키아 키프로스 섬 키티움(Citium)의 제논(Zeno)이 일으킨 지성 운동을 시작해서, 로마 시대에는 덕 체계에 바탕을 둔 생활로 발전했다. 고대에는 덕 그 자체가 보상이라고 믿었다.
스토아 철학자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신사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모델로 발전했다. 여기서 스토아 철학자란 훌륭한 지혜, 올바른 행동, 용기를 고루 갖춘 사람을 뜻한다. 따라서 그는 더러운 속림수에 넘어갈 일이 없으므로 인생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는다.
감정이 활동을 시작하면 지성은 뒤로 물러난다. 따라서 현실 세계에서는 우리의 합리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자기계발서들은 대개 무익하다. 아무리 현명한 조언이나 감동적인 설교라도 우리 본성과 어긋날 때는 곧바로 묻혀버리고 만다.
스토아 철학이 흥미로운 점은, 우리의 본성인 품위와 탐미주의를 바탕에 둔다는 사실이다. 이제부터 불행을 만나게 되면 개인적 품위에 초점을 두라. 어떤 상황이 닥쳐도 지혜롭게 사는 모습을 보여라. 자신의 운명에 대해 남을 비난하지 말고, 불행이 발생하더라도 자신을 동정하거나 불평하지 마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