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1)

소개와 제1권 제1부

by Andy강성

《전쟁과 평화((Война и мир, 보이나 이 미르)》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러시아 문학의 양대 문호(文豪)이자, 세계 문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레프 톨스토이'(1828~1910)의 대표작 중 하나로, 러시아 문학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다.


[좌: 전쟁과 평화 출간 당시 톨스토이, 우: 말년(1908년, 80세)의 톨스토이]


이 작품은 톨스토이가 결혼하여 시골 영지에 정착한 해인 1863년(그의 나이 35세)부터 씌여지기 시작해서, 1865년부터 'The Russian Messenger(러시아 통보)'에 “1805년”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고, 1866년에 2부가 연재되면서 “전쟁과 평화”라는 제목으로 결정되었으며, 나머지 부분은 1868~1869년에 단행본으로 일괄 발표되었다.


[좌: 전쟁과 평화 톨스토이 필사 원고 우: 전쟁과 평화 최초 단행본]


《전쟁과 평화》의 표준 러시아어 텍스트는 총 4권(volume)으로 나뉘어 있으며, 총 15개의 부로 이루어진 본 소설과 2개의 부로 이루어진 에필로그가 들어 있는데, 에필로그 부분 중 특히 제2부는 톨스토이 자신의 역사관에 대한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나타난 톨스토이의 역사관은 요약하자면 당시 주류인 영웅 중심의 역사학의 한계를 비판하고 역사를 움직이는 힘의 유래를 다수의 참여자들과 그들의 관계에게서 찾으며, 인간의 자유 의지 뿐만 아니라 공통된 필연 법칙을 찾아야 한다는 새로운 역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힘이 민족들을 움직이는가? 전기(傳記)를 다루는 일부 역사가들과 각 민족을 연구하는 역사가들은 이 힘을 영웅과 군주만이 가진 권력으로 이해한다. (......)
여러 민족의 움직임을 일으키는 것은 역사가들이 생각하듯 권력도, 지적 활동도, 심지어 두 가지의 결합도 아닌, 사건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활동, 사건에 가장 직접적으로 참여할수록 가장 덜 책임을 지고 그 반대도 성립하는 형태로 언제나 서로 연결된 모든 사람의 활동이다. (......)
"사실 우리는 우리의 종속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자유를 가정하면 터무니없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반면 외부 세계, 시간, 인과 관계에 대한 자신의 종속성을 인정하면 우리는 법칙에 이르게 된다." 인식되는 자유를 부정하고 우리에게 감지되지 않는 종속성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에필로그 제2부 중)


국내 최초의 완역은 1960년대 정음사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된 함일근 역본이고, 이후 1988년에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박형규 교수의 번역으로 범우사에서 나왔으나 현재는 절판되었다. 2016년 문학동네에서 박형규의 번역(1988년 범우사)을 개역하여 다시 펴냈고, 2018년에는 민음사에서 연진희 번역으로 출간했으며, 2019년 말에는 을유문화사에서 3권짜리 박종소, 최종술 번역으로 나왔다(이 번역본이 내가 읽은 책이다).



이 작품은 워낙 유명해서 서구와 러시아에서 영화나 드라마로도 여러 번 제작되었는데, 그 중 유명한 것은 1956년 오드리 헵번이 나타샤 로스토바로 출연한 미국 영화와 1967년 구 소련에서 만든 4부작 영화(원작에 가장 충실하고 작품 전체의 느낌과 피에르, 안드레이, 나타샤 등 주인공들을 통해 톨스토이가 반영하고 싶어하는 인물상을 가장 잘 반영한 것 같아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2016년에 영국 BBC에서 만든 드라마 등이 유명하다(이번 글에서 중간에 인용하는 장면들은 위 1967년 구 소련 영화의 화면들이다).


[1956년 영화, 2016년 BBC 드라마]
[1967년 구 소련 영화]
제1권 제1부


제1권은 총3부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는 1805년 나폴레옹과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간의 아우스터리츠 전투가 발생하기 직전 시점으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그 전쟁에 참전하려는 러시아 귀족 청년들의 (주인공 안드레이 공작의 경우는 나폴레옹을 흠모하면서도 귀족으로서 황제의 명을 따라야 하는) 복잡한 심리 상태와 러시아 귀족 사회의 분위기 그리고 극렬 나폴레옹 지지자인 사생아 피에르가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아 베주호프 백작이 되는 과정을 총 25개의 장으로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이 다룬 주로 1805년부터 1812년 프랑스의 러시아 침공(러시아에서는 '조국전쟁'이라고 부른다)까지의 시기는, 당시 황제인 알렉산드르 1세(1825년 사망, 직후 '데카브리스트의 난' 발생)의 조모인 여제 '예카테리나 2세'가 러시아 상류층으로 하여금 프랑스어를 말하고 프랑스 문화를 이해하도록 사회적 공용어로 만든 정책이 유지되고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귀족들간의 대화는 프랑스어가 많이 등장하며 톨스토이는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프랑스어를 그대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1 [1805년 7월 상트페테르부르크]


첫 장면은 알렉산드르 1세의 어머니인 '마리야 페오도로브나' 황태후의 측근인 유명한 시녀 '안나 파블로브나 셰레르'의 야회(soirée)로 시작한다. 그녀는 처음 도착한 '바실리 쿠라긴' 공작을 맞으며 나폴레옹에 대해 비난하는 이야기를 한다(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코르시카섬 출신이라고 당시 러시아 귀족들은 그를 폄하하여 이탈리아어식으로 '부오나파르트'라고 부른다).


"공작, 제노바와 루카는 '부오나파르트' 가문의 소유지예요. 아뇨, 미리 말해 두겠어요. 우리가 전쟁 중이라고 당신이 나한테 말하지 않으면, 이 적그리스도의 (나는 정말 그자가 적그리스도라고 믿어요) 온갖 추악하고 끔찍한 짓을 당신이 계속 옹호하면, 나는 더는 당신을 몰라요. 당신은 더 이상 내 친구도 아니고, 당신이 말하는 내 충실한 종도 더 이상 아니에요. 자, 어서 와요, 반가워요. 내가 당신을 놀라게 한 모양이네요. 앉아서 이야기해요.”



그리고 그녀는 러시아와 반 나폴레옹 전선에 같이 서 있는 오스트리아, 영국, 독일이 패배주의에 빠져 있고 러시아를 배신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당시 러시아 왕궁과 귀족들의 의식을 보여준다.


"오스트리아는 결코 전쟁을 원치 않았고, 지금도 원하지 않아요. 오스트리아는 우리를 배신하고 있어요. 러시아 홀로 유럽의 구원자가 되어야 해요. ...... 저 장사치 근성의 영국은 알렉산드르 황제의 숭고한 정신을 다 이해하지 못할 테고, 이해할 수도 없어요. ...... 프로이센은 이미 선언했어요. 보나파르트는 이길 수 없고, 온 유럽이 그에 맞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요……. 나는 하르덴베르크든 하우그비츠든 그들이 하는 말은 한마디도 믿을 수 없어요. 프로이센의 이 악명 높은 중립주의는 함정일 뿐이에요. 내가 믿는 건 하느님 한 분과 사랑하는 우리 황제의 지고한 운명이에요. 그분이 유럽을 구원하실 거예요!"


“내 생각에는…….” 공작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의 친애하는 빈친게로데 대신 당신을 파견했더라면, 당신이 돌격해서 프로이센 왕의 동의를 받아 냈을 텐데 말입니다. 당신은 대단한 달변가십니다.”

그녀가 다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덧붙였다.

“오늘 우리 집에 두 명의 흥미로운 인물이 올 거예요. 한 명은 모르테마르 자작이에요. 훌륭한 프랑스 망명자들 중 한 사람이에요. 또 한 명은 모리오 수도원장인데, 이 심오한 지성을 아세요? 그는 폐하를 알현했어요.”


“그건 그렇고, 당신 가족에 관한 얘기인데요…….” 그녀가 말했다. “아시나요? 따님이 사교계에 나오고부터 온 사교계의 즐거움이 되고 있어요. 사람들은 따님이 대낮처럼 아름답다고 해요. 때로는 삶의 행복이 참 불공평하게 분배된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무엇 때문에 운명은 당신에게 그토록 훌륭한 두 아이를 주었을까요? 작은아들 아나톨은 빼고요. 나는 그 아이는 좋아하지 않아요." 그녀는 단호하게 덧붙였다.


"왜 당신 같은 사람들에게 자식이 생기는 걸까요? 당신이 아버지가 아니라면 비난할 게 없을 거예요."

"아이들은 내 존재의 짐입니다. 내 십자가예요. 난 그렇게 스스로에게 해명합니다. 어쩌겠습니까…….”

"당신은 당신의 방탕한 아들 아나톨을 혼인시키는 것에 관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내 주위에 아버지와 불행하게 살고 있는 처녀 아이가 하나 있어요. 친척인 공작 영애 볼콘스카야예요." 바실리 공작은 대답 대신 머리를 끄덕여 그 정보를 고려해 보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이놈의 아나톨한테 내가 1년에 들이는 돈이 4만 루블이나 됩니다.”

“이런 식으로 가면 5년 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아버지가 된다는 이점이란 게 이런 겁니다. 당신의 공작 영애 말입니다, 부유한가요?”

“아버지는 대단한 부자지만 인색해요. 시골에 살아요. 알지요? 그 유명한 볼콘스키 공작 말이에요."


"선제 시대에 벌써 은퇴했고 ‘프로이센 왕’이라는 별명을 얻은 분이지요. 아주 똑똑한 사람이지만, 별난 면도 많고 괴팍하지요. 그 가여운 처녀는 돌처럼 불행해요. 얼마 전에 리즈 메이넨과 결혼한 오빠가 있어요. 쿠투조프의 부관이에요. 오늘 우리 집에 올 거예요.”

“들어 봐요, 사랑하는 아네트. 날 위해 이 일을 성사시켜 주십시오. 그러면 난 언제까지나 당신의 가장 충직한 종으로 남겠습니다. 그 처녀는 훌륭한 가문 출신에 부유하네요. 나한테 필요한 것을 다 갖추었어요.”


2


안나 파블로브나의 응접실이 어느 정도 차기 시작했다. 페테르부르크의 상류층 귀족들이 도착했다. 나이와 성격은 아주 다양했지만 몸담고 살아가는 사회는 모두 같은 사람들이었다. 바실리 공작의 딸인 엘렌이 공사의 축하연에 함께 가기 위해 아버지를 데리러 왔다. 그녀는 기장(紀章)이 달린 무도회 의상을 입고 있었다.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인으로 이름난 자그마한 젊은 볼콘스카야 공작 부인(리즈 메이넨)도 왔다.


그녀는 지난겨울에 결혼해서 지금은 임신한 탓에 사교계의 큰 모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조촐한 야회들에는 드나들고 있었다. 작은 공작 부인은 일감이 든 손가방을 팔에 낀 채 종종걸음으로 탁자를 빙 돌아서 즐겁게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며 은제 사모바르 근처의 소파에 앉았다. 마치 그녀가 무엇을 하든 그것은 그녀에게,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모두에게 즐거운 일인 듯했다.



“이거 봐요, 아네트, 심술궂은 장난 좀 치지 말아요.” 그녀가 여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나한테는 정말 작은 야회라고 써 보냈잖아요. 내가 뭘 걸쳤는지 봐요.”

그리고 그녀는 넓은 리본과 레이스 장식을 단 우아한 회색 드레스를 보여 주기 위해 두 팔을 벌렸다.

“진정해요, 리즈, 그래도 당신이 제일 예뻐요.” 안나 파블로브나가 대답했다.


“그거 아세요? 남편이 절 버리려고 해요.” 공작 부인이 한 장군을 향해 같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죽으러 가는 거예요. 말씀해 보세요, 이 혐오스러운 전쟁을 왜 하는 거지요?” 그녀는 바실리 공작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대답을 채 기다리지도 않고 공작의 딸인 아름다운 엘렌에게 말을 걸었다.

“참으로 사랑스러운 부인이네요. 저 작은 공작 부인요!” 바실리 공작이 안나 파블로브나에게 나직이 말했다.


작은 공작 부인에 뒤이어 곧 우람하고 뚱뚱한 젊은이가 들어왔다. 그는 짧게 깎은 머리에 안경을 쓰고 있었고, 바지는 당시 유행을 따른 밝은 색이었고, 불룩한 자보를 달고 갈색 연미복을 걸치고 있었다. 이 뚱뚱한 젊은 남자는 예카테리나 여제 시대의 유명한 고관으로, 지금은 모스크바에서 죽어 가고 있는 '베주호프' 백작의 사생아 피에르였다.



“무슈 피에르, 불쌍한 병든 여인을 이렇게 방문해 주다니 정말 친절하군요.” 피에르를 '나의 아주머니'(안나 파블로브나가 그렇게 불렀는데 아무도 그녀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다)에게 데려가던 중에 안나 파블로브나는 두려움이 깃든 표정으로 그녀와 눈짓을 주고받으며 그에게 말했다. 피에르는 무언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대면서 눈으론 무언가를 계속 찾았다. 그리고 작은 공작 부인을 보자 가까운 지인을 대하듯 인사를 건네며 기쁘고 즐거운 미소를 짓고는 아주머니에게 다가갔다.


안나 파블로브나도 응접실을 돌아다니다가 말없이 조용히 있거나 지나치게 떠드는 무리를 보면 다가가서 한마디 던지기도 하고 사람들의 자리를 바꾸기도 하면서 일정한 속도로 적절히 돌아가는 대화의 기계를 다시 가동하곤 했다. 그러나 그렇게 애쓰는 중에도 여전히 그녀에게는 피에르에 대한 특별한 두려움이 보였다. 외국에서 교육받은 피에르에게는 안나 파블로브나의 이 야회가 러시아에서 본 첫 야회였다.


3


안나 파블로브나의 야회에 시동이 걸렸다. 물렛가락은 사방에서 규칙적으로 쉴 새 없이 소란을 떨었다. 모인 사람들은 세 패로 나뉘어 있었다. 남자들이 더 많은 부류에서는 모리오 수도원장이 중심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어울린 또 다른 부류에서는 바실리 공작의 딸인 미모의 엘렌과 예쁘장하고 뺨이 발그레하며 젊은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포동포동하고 작은 볼콘스카야 공작 부인이 중심이었다. 세 번째 무리의 중심은 모르테마르 자작과 안나 파블로브나였다.


자작은 벌써부터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어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리 와요, 사랑하는 엘렌.” 안나 파블로브나가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다른 무리의 중심을 이루고 있던 미모의 공작 영애에게 말했다. 공작 영애 엘렌은 생긋 웃었다. 그녀는 응접실에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완벽하게 아름다운 여인의 한결같은 미소를 머금고 일어났다.



“얼마나 아름다운 여인인가!” 그녀를 본 사람은 누구나 이렇게 말했다. 그녀가 자작 앞에 자리를 잡으며 여전히 변함없는 미소로 그를 비추자 자작은 예사롭지 않은 무언가에 충격을 받은 것처럼 어깨를 움츠리고 눈길을 떨구었다.

“마담, 나는 이런 청중 앞에서 제 솜씨가 정말 걱정스럽습니다.” 그가 미소와 함께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모르테마르 무리는 곧 앙기앵 공작의 피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작은 앙기앵 공작이 자신의 아량 때문에 죽었다고, 보나파르트의 적의에는 특별한 이유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모르테마르 자작은 앙기앵 공작이 마드무아젤 조르주를 만나려고 남몰래 파리에 갔던 일, 그곳에서 유명 여배우의 은총을 또한 향유하던 보나파르트와 마주쳤던 일, 공작과 마주친 나폴레옹이 공교롭게도 걸핏하면 일어나던 가사 상태에 빠져 공작의 손아귀에 놓였는데도 공작이 그 상황을 이용하지 않은 일, 그러나 보나파르트가 나중에 공작의 그런 아량을 죽음으로 되갚았던 일 등, 당시 떠돌던 일화를 아주 근사하게 이야기했다.


그때 응접실로 새로운 얼굴이 들어왔다. 작은 공작 부인의 남편인 젊은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작이었다. 볼콘스키 공작은 크지 않은 키에, 뚜렷하고 마른 이목구비를 지닌 아주 잘생긴 청년이었다. 권태에 젖은 지친 눈동자에서 조용한 규칙적인 걸음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풍모가 그의 생기 넘치는 작은 아내와 현격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는 응접실의 손님들 모두를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미 너무 염증이 나서 그들 쪽을 보는 것도, 그들의 말을 듣는 것도 진저리가 나는 것 같았다. 그 지긋지긋한 얼굴들 중에서 예쁘장한 아내의 얼굴에 가장 싫증이 난 듯했다. 그는 잘생긴 얼굴을 망치는 찌푸린 표정으로 이폴리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아내를 외면했다.


“공작, 전쟁에 나가려 한다고요?” 안나 파블로브나가 말했다.

“쿠투조프 장군이…….” 볼콘스키는 프랑스인처럼 마지막 음절인 조프에 악센트를 넣으며 말했다. “나를 부관으로 원합니다…….”

“리즈는, 당신 아내는요?”

“아내는 시골로 갈 겁니다.”

“당신의 매혹적인 아내를 우리에게서 앗아 가다니 미안하지도 않아요?”



안드레이 공작이 응접실에 들어올 때부터 기쁨과 우정에 찬 눈길을 떼지 못하던 피에르가 그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아니, 이런! 자네도 사교계에 나타났군!” 그가 피에르에게 말했다.

“당신이 올 줄 알았거든요.” 피에르가 대답했다. “당신 집으로 밤참 들러 가겠습니다.” 자기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던 자작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그가 조용히 덧붙였다. “괜찮죠?”"아니, 안 돼.” 안드레이 공작은 그런 것은 물어볼 필요도 없다는 듯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야회에서 먼저 일어나려고 옆을 지나가던 바실리 공작이 피에르의 손을 덥석 잡고 안나 파블로브나에게 얼굴을 돌렸다. “날 위해서 이 곰을 잘 가르쳐 주세요.” 그가 말했다. “여기 이 사람이 내 집에서 지낸 지가 한 달인데 사교계에서 처음 봅니다. 지적인 여성들과의 교제만큼 젊은이에게 필요한 건 아무것도 없지요.”


4


안나 파블로브나는 싱긋 웃으며 피에르를 맡아 보겠다고 약속했다. 그녀는 피에르가 아버지 쪽으로 바실리 공작과 친척 관계인 것을 알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나의 아주머니와 함께 앉아 있던 중년 부인이 서둘러 일어나 현관방으로 바실리 공작을 쫓아갔다.


"공작, 우리 보리스에 대해 뭐라고 말 좀 해 주셔야지요.” 그를 현관방에서 따라잡으며 그녀가 말했다.

"폐하께 한마디 해 주는 것쯤은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면 그 아이는 곧장 근위대로 전속될 거예요.” 그녀가 부탁했다. 그녀의 이름은 드루베츠카야 공작 부인으로, 러시아 명문가 중 하나인 드루베츠코이 가문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난했고, 오래전에 사교계에서도 물러나 옛 인맥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내 말 좀 들어주세요, 공작.” 그녀가 말했다. “난 지금까지 한 번도 당신에게 부탁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에 대한 내 아버지의 우정을 언급한 적도 없었어요. 하지만 이번만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렇게 애원할게요. 제발 내 아들을 위해 이 일을 해 주세요. 그러면 당신을 은인으로 여길 거예요.” 그녀는 두 눈에 눈물이 글썽였지만 미소를 지으려고 애쓰며 말했다.


“친애하는 안나 미하일로브나.” 그는 친근함과 권태가 어린 평소의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바라는 바는 내 능력으론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고인이 되신 당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당신에게 증명하기 위해 그 일을 해내겠습니다. 당신 아들은 근위대로 전속될 겁니다. 내가 돕지요. 됐지요?”


“고마워요, 당신은 내 은인이에요! 당신이 선한 분이란 걸 알고 있었답니다.”

그가 나가자마자 그녀의 얼굴은 전과 똑같이 차갑고 위선적인 표정을 띠었다. 그녀는 자작이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던 무리로 돌아와, 볼일이 끝났으므로 떠날 때가 되기만 기다리며 다시 듣는 척했다.


“당신은 최근에 밀라노의 대관에서 벌어진 이 모든 희극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안나 파블로브나가 말했다.“그리고 새로운 희극은요? 제네바와 루카 사람들이 무슈 보나파르트에게 자기들의 소망을 밝힙니다. 그러면 무슈 보나파르트는 옥좌에 앉아서 사람들의 소망을 이루어 줘요. 오! 정말 황홀하네요! 아니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미칠 지경이에요. 생각해 봐요, 온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어요.”


안드레이 공작은 안나 파블로브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빙긋 웃었다.

‘하느님이 내게 왕관을 주셨도다. 이것을 건드리는 자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그가 말했다. (보나파르트가 왕위에 오를 때 한 말이다.) “사람들 얘기로는 그가 이 말을 할 때 참 훌륭했다더군요.” 그는 이렇게 덧붙이더니 이탈리아어로 한 번 더 되풀이했다. “Dio mi la dona, guai a chi la tocca.”


image.png [밀리노 대성당 출처 구글 이미지]


“결국에는…….” 안나 파블로브나가 말을 이었다. “그 말이 잔을 넘치게 하는 한 방울이기를 바라요. 군주들은 모든 것을 위협하는 이 사람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거예요.”

“군주들이오? 러시아에 대해 말하는 건 아닙니다만…….” 자작이 정중하고도 희망 없이 말했다.

"군주들이오? 그들은 왕위를 찬탈한 자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러 사절들을 보내고 있어요.”

그러고 나서 경멸에 찬 한숨을 쉬고는 다시 자세를 바꾸었다.


“보나파르트가 1년 더 권좌에 머물러 있게 된다면…….” 다른 사람들의 말은 듣지 않고 다른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아는 일 속에서 자기 생각의 행보만 좇는 사람의 태도로 자작은 이야기를 계속했다.“사태는 너무 멀리 나아가게 될 겁니다. 음모와 강압과 추방과 처형으로 프랑스 사회는, 물론 상류 사회라는 의미입니다만, 영원히 말살되어 버릴 겁니다. 그때는…….” 그는 어깨를 움츠리고 두 손을 벌렸다.


“귀족 계급이 거의 다 보나파르트 편으로 넘어갔다던데요.” 피에르가 얼굴을 붉히면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건 보나파르트파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자작이 말했다. “지금은 프랑스의 여론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건 보나파르트가 한 말입니다.” 안드레이 공작이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 (그는 자작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고, 그가 자작을 바라보지 않았다 해도 말은 자작을 겨냥하는 것 같았다.)


자작이 반박했다. "(앙기앵) 공작을 살해한 후로는 가장 열성적이었던 사람들조차 더 이상 그를 영웅으로 보지 않습니다. 몇몇 사람들에게는 영웅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모르테마르 자작은 안나 파블로브나를 향해 말했다. “공작이 살해되면서 하늘에는 순교자가 한 명 늘고 땅에는 영웅이 한 명 줄었지요.”


안나 파블로브나와 다른 사람들이 자작의 말에 미소로 경의를 표할 새도 없이 피에르가 다시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안나 파블로브나는 그가 무례한 말을 하리라 예감했지만 그를 멈출 수가 없었다.

“앙기앵 공작의 처형은…….” 피에르가 말했다. “국가적인 불가피성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을 혼자 떠맡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바로 그 점에서 나는 영혼의 위대함을 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그는 필사적으로 말을 이었다. “부르봉 왕가가 민중을 무정부 상태에 내버려 둔 채 혁명을 피해 달아났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옹 한 사람만이 혁명을 이해하고 이겨 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공익을 위해 한 사람의 목숨 앞에서 멈출 수 없었던 겁니다. 나폴레옹은 위대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혁명보다 높이 서서 모든 좋은 것을, 시민의 평등은 물론 말과 언론의 자유도 보존한 채 혁명의 악용을 진압했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 때문에 그는 권력을 쟁취한 것입니다.”



“혁명과 국왕 시해가 위대한 일이라고요……? 이 말 다음에는……. 정말 저쪽 탁자로 자리를 옮기지 않겠어요?” 안나 파블로브나가 거듭 말했다.

“사회 계약설이지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자작이 말했다.

“나는 국왕 시해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사상에 관해 말하는 겁니다.”

“그래요, 강탈과 살인과 국왕 시해의 사상이지요.” 냉소적인 목소리가 다시 말을 끊었다.


"자유와 평등이란…….” 자작이 경멸 조로 말했다. 그는 마침내 이 젊은이에게 그가 하는 말의 모든 어리석음을 진지하게 증명해 주어야겠다고 결심한 모양이었다.“이미 오래전에 더럽혀진 요란한 말에 불과합니다. 자유와 평등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구세주도 자유와 평등을 설교했지요. 하지만 혁명 후에 사람들이 더 행복해졌습니까? 그 반댑니다. 우리는 자유를 원했는데 나폴레옹이 짓밟아 버렸습니다.”


"묻고 싶군요…….” 자작이 말했다. “무슈께선 브뤼메르 18일*을 어떻게 해석합니까? 그것은 기만 아닌가요? 위대한 인간의 행동 방식과 비슷한 데라곤 전혀 없는 협잡이에요.” “아프리카에서 그가 죽인 포로들은요?”작은 공작 부인이 말했다. “끔찍해요!” 그녀는 어깨를 움츠렸다.
“당신이 뭐라고 하든 그는 벼락출세한 인간일 뿐입니다.” 이폴리트 공작이 말했다.


*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 혹은 브뤼메르 쿠데타는 1799년 11월 9일, 프랑스 제1공화국에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주도 하에 실행된 쿠데타다. 프랑스 공화력으로 이 날이 브뤼메르(안개의 달, 무월) 18일에 일어난 정변이었기 때문에 보통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라는 명칭으로 잘 알려져있다. 이 쿠데타를 통하여 5인 총재정부가 전복되고 나폴레옹이 통령 자리에 오른데 이어 프랑스 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오르게 된다. 사학계에서 일반적으로 프랑스 혁명을 실질적으로 종결시킨 쿠데타라고 평가받는 사건이기도 하다.


무슈 피에르는 누구에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모두를 둘러보다가 빙그레 웃었다.

"당신들은 이 사람이 모두에게 한꺼번에 대답하기를 원하는 겁니까?” 안드레이 공작이 끼어들며 말했다. “게다가 국가적 인간의 행위들 속에서도 사적인 인간의 행위와 사령관이나 황제의 행위를 구분해야 합니다.”

“네, 그래요, 물론입니다.” 자기 앞에 나타난 도움이 기쁜 피에르가 맞장구를 쳤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요.” 안드레이 공작이 말을 이었다. “인간 나폴레옹은 아르콜레 다리* 위에서, 그가 페스트 환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야파의 병원에서 위대합니다. 하지만 정당화하기 힘든 다른 행동들이 있지요.”

* 북이탈리아 베로나 근처 아르콜레 소택지 주변에서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이 오스트리아(신성로마제국)군을 격파한 전투


image.png [이르콜레 다리 전투에서 깃발을 들고 서 있는 나폴레옹, 오라스 베르네 작품]

5 [안드레이의 서재]


손님들이 안나 파블로브나에게 그녀의 멋진 야회에 대한 감사 인사를 하고서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폴리트 공작은 옷자락이 뒤꿈치보다 긴 새로운 스타일의 르댕고트를 부랴부랴 걸치고 옷자락에 걸려 휘청거리면서 공작 부인을 뒤쫓아 현관 계단으로 달려갔다. 공작 부인은 하인의 부축을 받으며 카레타(마차)에 오르고 있었다.

“공작 부인,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가 두 다리처럼 혀도 꼬인 채로 외쳤다.


이폴리트 공작은 현관 계단에 서서 자기가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약속한 모르테마르 자작을 기다렸다.

“음, 친구, 당신의 작은 공작 부인은 정말 사랑스럽네요. 아주 사랑스러워요.” 자작이 이폴리트와 함께 카레타에 앉으며 말했다. “완전히, 완전히 프랑스 여자예요.” 이폴리트는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거 아십니까? 그런 순진한 표정을 하고, 당신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자작이 말을 계속했다. “저 불쌍한 남편이 안쓰럽네요. 세도가인 척하던 그 장교 말입니다.” 이폴리트가 또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지껄였다.

“당신은 러시아 귀부인이 프랑스 귀부인만 못하다고 했지요. 다루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도착한 피에르는 한집안 식구처럼 안드레이 공작의 서재로 들어갔고, 습관대로 소파에 누워 책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책을 (그것은 카이사르의 수기였다) 뽑은 뒤 팔꿈치를 괴고 중간부터 읽기 시작했다."마드무아젤 셰레르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지금 완전히 앓아누웠을 거야.” 서재로 들어오던 안드레이 공작이 두 손을 비비며 말했다. "친구, 가는 곳마다 자네만의 생각을 다 말하고 다녀서는 안 되네. 그건 그렇고, 드디어 결심한 건가? 근위 기병이 되려고? 아니면 외교관?” 잠시 침묵한 뒤에 안드레이 공작이 물었다.



피에르는 열 살 때부터 가톨릭 신부인 가정 교사와 함께 외국에 보내져서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그가 모스크바로 돌아오자 아버지는 신부를 내보내고 청년에게 말했다. “이제 너는 페테르부르크로 가서 둘러보고 선택해라. 나는 네가 무엇을 하든 찬성이다. 자, 이건 바실리 공작에게 보내는 편지고, 이건 돈이다. 무엇이든 도와주마.” 피에르는 벌써 세 달째 직업을 고르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자네 근위 기병대에 가 본 적 있나?”

“아뇨, 없습니다. 그런데 실은 이런 생각이 떠올라서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나폴레옹과 전쟁 중입니다. 이게 자유를 위한 전쟁이라면 나는 납득했을 테고 첫 번째로 군에 입대했을 겁니다. 하지만 영국과 오스트리아를 도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과 맞서는 것은…… 그건 좋지 않아요…….”

안드레이 공작은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어리석은 말에는 대꾸할 수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럼 당신은 무엇을 위해 전쟁에 나가는 겁니까?” 피에르가 물었다.

“무엇을 위해서? 나도 몰라. 그래야 하니까. 그리고 또 내가 전쟁에 나가는 것은…….” 그는 말을 멈추었다. “여기서 내가 보내고 있는 삶, 이 삶이 나한테 맞지 않기 때문이야!”


6


옆방에서 여자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났다. 안드레이 공작은 꿈에서 깬 듯 몸을 흠칫 떨었다. 공작 부인이 들어왔다. 그녀는 어느새 평상복으로 갈아입었지만 그 옷 역시 우아하고 산뜻했다. 안드레이 공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정중히 안락의자를 내밀었다. 그녀가 말했다. “모르겠어요. 정말 이해가 안 돼요. 왜 남자들은 전쟁 없이는 못 살까요? 왜 우리 여자들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까요?......" 그녀는 남편을 향해 의미심장하게 눈을 깜박였다. “난 무서워요, 무서워!” 그녀는 몸서리를 치며 속삭였다.



“어쨌든 나는 당신이 뭘 겁내는지 이해가 안 돼.” 안드레이 공작은 아내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느릿느릿 말했다. 공작 부인은 얼굴을 빨갛게 붉히면서 절망적으로 두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앙드레, 당신 너무 변했어요, 너무 변했어…….”

“의사가 당신한테 일찍 잠자리에 들라고 하지 않았소.”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하느님, 아이고 하느님!” 공작 부인은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남편에게 다가가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가 떠나고 둘은 밤참을 먹으러 새로 꾸민 식당으로 들어갔다. "내 아내는…….” 안드레이 공작이 말을 이었다. “멋진 여자야. 명예에 대해 안심하고 같이 살 수 있는 드문 여자들 중 하나야. 하지만, 오, 하느님, 독신이 될 수만 있다면 지금 무엇인들 내놓지 못하겠나! 자네를 좋아하기 때문에, 자네한테만 처음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거야.”


안드레이 공작은 선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우정 어린 다정한 눈길에는 그럼에도 자신의 우월함에 대한 인식이 담겨 있었다.

“난 자네가 소중해. 특히 우리 사교계 전체에서 자네만이 유일하게 살아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야. 자네는 괜찮아. 원하는 걸 선택하게. 무엇이든 상관없어. 자네는 어디서든 잘할 거야. 다만 한 가지, 그 쿠라긴 집안에 드나들며 그런 생활을 하는 건 그만두게. 그건 정말 자네에게 어울리지 않아. 떠들썩한 술판이며 정신 나간 경기병 짓거리며, 또 그 모든…….”



피에르가 친구의 집을 나섰을 때는 이미 밤 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6월의 페테르부르크의 밤, 땅거미 지지 않는 밤이었다. 도중에 피에르는 오늘 밤에도 아나톨 쿠라긴의 집에서 여느 때처럼 카드 모임이 열린다는 것을 떠올렸다. 모임 후에는 보통 피에르가 좋아하는 여흥거리들 중 하나로 끝나던 술판이 벌어지곤 했다.


아나톨이 사는 근위 기병대 숙사 옆 커다란 집의 현관 계단에 다다른 피에르는 불 밝힌 계단을 올라가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빈 병과 망토와 덧신이 널브러져 있고, 술 냄새가 나고, 말소리와 고함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맑고 푸른 눈에 키가 크지 않은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그 모든 취한 목소리들 틈에서 취하지 않은 말투로 유난히 깊은 인상을 던지며 창에서 외쳤다. “이리 와서 손을 떼어 놔!” 그는 유명한 도박꾼이자 결투광으로, 아나톨과 함께 살고 있던 세묘놉스키의 장교 '돌로호프'였다.


아나톨이 그에게 술을 따라 주고는 돌로호프가 3층 창가에 두 다리를 밖으로 내놓고 앉아서 럼주 한 병을 다 마실 수 있는가를 두고 그 자리에 온 영국인 수병 스티븐스와 내기를 하는 중이라고 이야기했다. 돌로호프는 모든 도박에 끼었고 거의 언제나 돈을 땄다.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그는 결코 두뇌의 명석함을 잃지 않았다. 쿠라긴도 돌로호프도 당시 페테르부르크의 방탕한 술꾼 패거리에서 유명 인사들이었다.


"자!”라고 말한 후 그는 다시 몸을 돌려 두 손을 내리고 병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균형을 잡기 위해 자유로운 한 손을 위로 쳐들었다. 그는 술병 든 손을 부들부들 떨며 안간힘을 다해 점점 더 높이, 높이 들어 올렸다."비었다!” 돌로호프가 영국인에게 병을 던지자 그가 능숙하게 받았다. 돌로호프는 창에서 뛰어내렸다. 그의 몸에서 럼주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영국인이 지갑을 꺼내 돈을 셌다.



7 [모스크바, 로스토프 백작의 저택]


바실리 공작은 안나 파블로브나의 야회에서 외아들 보리스를 부탁한 드루베츠카야 공작 부인과의 약속을 지켰다. 보리스에 대한 보고가 군주에게 상달되었고, 그는 이례적으로 세묘놉스키 근위 연대에 준위로 전속되었다. 안나 파블로브나의 야회에 참석하고 나서 안나 미하일로브나(드루베츠카야 공작 부인)는 모스크바에 사는 부유한 친척 로스토프의 집으로 곧장 돌아왔다. 모스크바에서 그녀는 그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로스토프가에서는 두 나탈리야, 어머니와 작은딸의 명명일이었다. 포바르스카야 거리에 있는, 온 모스크바에 유명한 로스토바 백작 부인의 대저택으로 축하객들을 실어 나르는 마차가 아침부터 끊임없이 도착하고 떠났다. "마리야 리보브나 카라기나가 따님과 함께 오셨습니다!” 백작 부인의 덩치 큰 수행 하인이 응접실 안으로 들어오며 저음의 목소리로 보고했다.


대화는 곧 예카테리나 여제 시대에 부와 잘생긴 외모로 유명했던 노백작 베주호프와, 안나 파블로브나 셰레르의 야회에서 그토록 무례하게 처신한 그의 사생아 아들 피에르에 대한 것으로 접어들었다.

"그 젊은이는 제멋대로 살게 방치되어 있더니, 이제는 페테르부르크에서도 아주 끔찍한 일을 저질러 경찰의 호송을 받으며 그곳에서 쫓겨났대요.”


"사람들 말이 바실리 공작의 아들(아나톨)과 그 사람과 돌로호프라는 청년, 이 셋이 하느님만 아실 그런 짓을 저질렀답니다. 그들이 어디서 곰을 구해서는 카레타에 함께 태워 여배우들한테 데려간 거예요. 경찰이 진정시키려고 달려갔죠. 그런데 그들이 경찰서장을 붙잡아 곰과 등이 맞닿도록 꽁꽁 묶은 뒤 곰을 모이카 운하에다 풀어놨대요. 곰은 헤엄치고, 경찰서장은 그 위에 매여 있었죠."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베주호프 백작의 아들이 그렇게 영악스럽게 놀고 있다니까요!” 그녀는 덧붙였다. “사람들 말로는 아주 교양 있고 똑똑한 청년이래요. 모든 유학의 말로가 그런 건가 봐요. 아무리 부자라지만 이곳 사람들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한테 그 사람을 소개시키고 싶어 했지요. 난 단호하게 거절했어요. 난 딸들이 있잖아요.”


“어째서 그 젊은이가 대단한 부자라는 거예요?” 백작 부인이 아가씨들을 피해 몸을 숙이며 물었다. 아가씨들은 즉시 듣지 않는 척했다. “그분 자식은 사생아들뿐이잖아요. 피에르도 그중 하나인 것 같은데…….”

안나 미하일로브나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자신의 인맥과 사교계 사정에 대한 지식을 과시하고 싶은 듯했다.

“문제는 이거예요.” 그녀가 반쯤 속삭이는 투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백작의 명성은 자자하잖아요……. 그분은 자식이 몇인지도 잊어버렸어요. 하지만 피에르는 가장 아끼는 아들이에요.”


“부인 쪽으로 바실리 공작이 전 재산의 직접적인 상속자이지만, 아버지가 피에르를 몹시 사랑해서 그의 교육에 열을 올리고 폐하께 서한까지 올렸으니……. 만약 그분이 돌아가시면 (그분의 상태가 아주 안 좋아서 언제라도 그 일이 일어날 거라며 기다리고들 있어요. 페테르부르크에서 로랭도 왔어요) 그 막대한 재산이 누구에게 갈지 아무도 몰라요." 그녀는 이런 상황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 듯한 어조로 덧붙였다.


8


그때 갑자기 옆방에서 몇몇 남자들과 여자들이 뛰는 발소리와 의자가 걸려 넘어지는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열세 살 소녀가 짧은 모슬린 치마에 뭔가를 감추고 뛰어 들어와 방 한가운데에 멈춰 섰다. 백작이 벌떡 일어나더니 뛰어 들어온 소녀에게 몸을 뒤뚱거리면서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아, 바로 얩니다!” 그가 껄껄 웃으며 외쳤다. “명명일의 주인공! 명명일을 맞은 나의 사랑하는 딸이랍니다!”



그사이에 안나 미하일로브나의 아들로 장교인 보리스, 대학생인 백작의 맏아들 니콜라이, 백작의 열다섯 살 된 조카딸 소냐, 그리고 막내아들인 어린 페트루샤, 그 젊은 세대가 다 응접실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여전히 넘쳐 나던 생기와 즐거움을 예의범절의 경계 안에 억누르려고 애쓰는 듯 보였다. 분명 그들이 그토록 맹렬하게 달려 나온 저 뒷방에서 그들이 나눈 대화는 도시의 소문들과 날씨와 아프락시나 백작 부인에 관한 이곳의 대화보다 더 유쾌했을 것이다.


대학생과 장교인 두 청년은 어릴 적부터 친구로 나이도 같았다. 두 사람 다 잘생겼지만 서로 닮은 데는 없었다. 보리스는 훤칠한 금발의 청년으로, 차분하고 아름다운 얼굴의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섬세했다. 키가 크지 않고 곱슬머리인 니콜라이는 얼굴 표정이 솔직한 젊은이였다. 윗입술 위로 벌써 거뭇하게 수염이 보였고, 얼굴 전체에 저돌적이고 열광적인 성격이 나타나 있었다.


보리스는 나타샤를 힐끔 쳐다 보았고, 나타샤는 그를 외면하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온몸을 들썩이며 소리 죽여 웃고 있던 남동생을 쳐다보고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벌떡 일어나더니 방을 뛰쳐나갔다.

“어머니도 외출하시고 싶은 것 같은데요? 카레타가 필요하세요?” 그가 미소 띤 얼굴로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래, 가렴. 어서 가서 준비하라고 일러 줘.” 그녀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보리스는 조용히 문을 나간 뒤 나타샤를 뒤쫓았다. 통통한 사내아이는 자기가 하던 일에 끼어든 훼방에 화난 듯 뾰로통한 표정으로 그들을 뒤쫓아 달려갔다.


9


응접실에는 젊은이들 중에서 백작 부인의 맏딸과 (그녀는 동생보다 네 살 위였고 어른처럼 처신하고 있었다) 손님으로 온 아가씨 외에 니콜라이와 조카딸 소냐가 남았다. 소냐는 날씬하고 앙증스러운 갈색 눈의 소녀였다. 긴 속눈썹이 부드러운 눈빛에 그늘을 드리웠고, 검은 머리칼은 땋은 머리채가 머리를 두 번 휘감을 만큼 풍성했다. 예쁘지만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언젠가 매혹적인 암고양이가 될 새끼 고양이를 떠올리게 했다.


그녀는 미소로 공통의 대화에 관심을 보여 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나 의지에 반해서 그녀의 눈은 길고 짙은 속눈썹 밑에서 소녀의 열렬한 사랑이 담긴 시선으로 군대로 떠날 사촌을 바라보고 있어서, 그녀의 미소는 단 한 순간도 어느 누구도 속일 수 없었다. 이 작은 새끼 고양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은 자기들도 이 응접실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곧장 더 힘차게 뛰놀며 사촌과 장난을 치기 위해서인 듯싶었다.


“맞습니다, 마 셰르.” 노백작이 자기 아들 니콜라이를 가리키며 손님을 향해 말했다. “여기 이 아이의 친구인 보리스가 장교로 임관되었고, 이 아이도 우정 때문에 친구에게 뒤처지고 싶어 하지 않아요. 대학도, 늙은 나도 다 내팽개치고 군대에 간답니다, 이런 게 우정이란 말이지요?” 백작이 묻는 투로 말했다.

“네, 정말 전쟁이 선포되었다고 하네요.”* 손님이 말했다.

“오래된 얘깁니다.” 백작이 말했다. “다시 말만 되풀이되다가 쑥 들어가겠지요.


“우정 때문이 아닙니다.” 니콜라이가 자신을 향한 수치스러운 비방에 변명이라도 하듯 얼굴을 확 붉히고 말했다. “결코 우정 때문이 아니에요. 그저 군 복무에 대한 소명을 느낄 뿐입니다.”

그는 사촌 누이와 손님으로 온 아가씨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 모두 격려의 미소를 띠고 그를 바라보았다.


카라기나의 딸 줄리가 젊은 로스토프를 돌아보았다.

“지난 목요일에는 당신이 아르하로프 댁에 오지 않아서 정말 아쉬웠어요. 당신이 없어서 따분했어요.” 그녀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우쭐해진 청년은 젊음의 교태 어린 미소를 지으며 그녀 가까이 옮겨 앉아 생글거리는 줄리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는 자시의 무의식적인 미소가 얼굴을 붉힌 채 억지로 미소 짓고 있던 소냐의 가슴에 질투의 칼날이 되어 꽂힌 것을 전혀 알아채리지 못했다. 대화 중간에 그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소냐는 노여움에 찬 격정적인 눈및으로 그를 쳐다보고는 눈물을 가까스로 참고 일어나 방을 나가 버렸다. 니콜라이의 생기가 싹 가셨다. 그는 대화가 끊기는 첫 순간을 기다렸다가 낙심한 얼굴로 소냐를 찾으로 방을 나섰다.


10


응접실에서 나온 나타샤는 겨우 온실까지 뛰어갔을 뿐이다. 그녀는 그 방에서 걸음을 멈추고 응접실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보리스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니콜라이와 소냐가 나타났다.“소냐! 나는 온 세상을 다 준다 해도 필요 없어! 나한테는 네가 전부야.” 니콜라이가 말했다.

“나는 오빠가 그렇게 말하는 거 싫어.”

“그럼 그렇게 말하지 않을게. 용서해 줘, 소냐!” 그는 그녀를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아, 너무 멋있어!’ 나타샤는 생각했고, 소냐와 니콜라이가 방에서 나가자 그들을 뒤따라가서 보리스를 자기 쪽으로 불렀다. 그녀가 갑자기 나무통 위로 팔짝 뛰어올랐다. 키가 보리스보다 더 커졌다. 그를 두 팔로 안자 맨살이 드러난 가냘픈 팔이 그의 목보다 더 높은 데서 구부러졌다. 그녀는 머리를 움직여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는 바로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



"나타샤……." 그가 말했다. "난 당신을 사랑해요, 하지만……. 하지만 지금 같은 그런, 음, 그런 행동은 하지 말기로 해요……. 4년만 더 있으면…… 그때는 내가 당신에게 청혼할게요."

"열셋, 열넷, 열다섯, 열여섯……." 그녀는 가느다란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결정된 거죠?"

"결정됐어요!" 보리스가 말했다.

"영원히요? 죽을 때까지요?" 그녀는 손을 잡고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소파가 있는 방으로 사뿐히 걸어갔다.


11


백작 부인은 방문객 때문에 몹시 지쳐서 더 이상 아무도 맞이하지 않겠다고 이른 뒤, 문지기에게는 앞으로 오는 축하객들은 모두 곧장 만찬에 오도록 청하라고만 지시를 내려놓았다. 백작 부인은 어린 시절의 친구인 안나 미하일로브나 공작 부인과 얼굴을 맞대고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녀가 페테르부르크에서 온 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다.


안나 미하일로브나는 울다 지친 듯하면서도 즐거워 보이는 얼굴로 백작 부인 곁으로 더 바짝 다가앉았다.

“너한테 솔직히 다 말할게.” 안나 미하일로브나가 말했다. “벌써 우리 옛 친구들 중에 남은 사람이 별로 없구나! 그래서도 나는 네 우정이 무척 소중해.”

안나 미하일로브나는 베라를 바라보고 말을 멈췄다. 백작 부인이 친구의 손을 꼭 쥐었다.


"베라……." 백작 부인이 사랑스럽지 않은 맏딸을 향해 말했다. "넌 무슨 일에나 어쩜 그렇게 생각이 없어? 네가 이 자리에 필요 없다는 걸 정말 못 느끼니? 동생들한테 가든지, 아니면……."

아름다운 베라는 전혀 모욕을 느끼지 않는다는 듯 경멸 어린 미소를 지었다.

"엄마, 진작 말씀해 주셨으면 바로 나갔을 텐데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자기 방으로 갔다.


그녀는 소파가 있는 방을 지나가다가 방 안 두 작은 창가에 두 쌍의 남녀가 대칭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추고 경멸에 찬 미소를 지었다. 소냐는 니콜라이 곁에 가까이 앉아 있었고, 니콜라이는 자신이 쓴 첫 시를 그녀에게 베껴 써 주고 있었다. 보리스와 나타샤는 다른 창가에 앉아 있다가 베라가 들어오자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모습은 분명 베라에게 유쾌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너희들 나이에 나타샤하고 보리스, 너희 둘 사이에 무슨 비밀이 있을 수 있어. 다들 멍청해 가지고!"

"그래서, 베라, 그게 언니하고 무슨 상관이야?" 나타샤가 변호하듯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마다 자기 비밀이 있는 거야. 우리는 언니하고 베르크를 건드리지 않잖아." 나타샤가 발끈하며 말했다.

"내 행동에는 문제 될 만한 게 결코 있을 수 없으니까. 네가 보리스를 어떻게 대하는지 엄마한테 말해야겠다."


"나탈리야는 나와 아주 잘 처신하고 있습니다." 보리스가 말했다. “나로서는 불평할 만한 게 전혀 없어요.”

"왜 베라가 나한테 귀찮게 굴겠어요? 언니 넌 이걸 결코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녀가 베라를 향해 말했다. "넌 누구도 사랑한 적이 없으니까. 너한테는 심장이 없어. 넌 마담 드 장리스일 뿐이야. (매우 모욕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이 별명은 니콜라이가 베라에게 붙인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게 언니의 가장 큰 만족이지. 넌 베르크한테 마음껏 아양이나 떨어." 그녀는 빠르게 말했다.


"나한테 불쾌한 말을 잔뜩 퍼부어 댔지만 나는 아무한테도 그런 말 하나도 안 했어." 베라가 말했다.

"마담 드 장리스! 마담 드 장리스!" 문밖에서 깔깔대며 웃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아름다운 베라는 모두에게 그런 짜증 나게 하는 불쾌한 인상을 주고도 생긋 웃고는, 자신이 들은 말에 전혀 기분이 상하지 않은 듯 거울로 다가가 숄과 머리를 매만졌다.

그녀는 자신의 예쁜 얼굴을 보며 더 냉정해지고 더 침착해진 것 같았다.


응접실에서는 대화가 계속되고 있었다.

"아! 친구야……." 백작 부인이 말했다.“내 인생도 늘 장밋빛은 아니야. 이런 식으로 살다가는 우리 재산도 오 래 못 갈 거라는 걸 설마 내가 모를까! 이게 다 클럽과 그 사람의 착한 성품 때문이야. 시골에 산다고 우리가 쉴 것 같아? 극장이니, 사냥이니, 하느님만 아실 뭐도 있어. 내 얘길 해 봐야 뭐 하겠어!"


"그런데 넌 어떻게 그 모든 걸 다 해냈어? 난 자주 너한테 놀라, 아네트. 너는 어떻게 그 나이에 혼자서 포보즈카를 타고 모스크바로, 페테르부르크로, 모든 대신들과 모든 귀족들을 찾아다니며 그 모든 일들을 처리하니? 놀라워!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어? 나라면 절대로 못해."


"그런데 보렌카 일은 도대체 누구한테 부탁한 거야?" 백작 부인이 물었다. "지금 네 아들은 벌써 근위대 장교인데, 니콜루시카는 사관후보생으로 가잖니. 애써줄 만한 사람이 없어. 넌 누구한테 부탁했어?"

"바실리 공작. 그는 매우 친절했어. 바로 다 응낙하고 폐하께 아뢰어 주었지." 안나 미하일로브나 공작 부인은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녀가 견뎌야 했던 모든 굴욕을 깡그리 잊고 환희에 차서 말했다.


"바실리 공작은 어때? 늙었니? 백작 부인이 물었다.

"여전해." 안나 미하일로브나가 대답했다. "친절하고 아첨 잘하고. 높은 지위도 사람을 바꿔 놓지는 못했어." "하지만 나탈리, 넌 아들에 대한 내 사랑을 알잖아. 그 애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내가 못할 게 뭐가 있을까 싶어. 그런데 내 상황이 어찌나 안 좋은 지……." 안나 미하일로브나가 목소리를 낮추며 서글프게 말을 이었다.


"너무 안 좋아. 뭘로 보리스한테 군복을 지어 줘야 할지 모르겠어."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 훌쩍이기 시작했다. "5백 루블이 필요한데 나한테는 25루 블짜리 지폐 한 장밖에 없어. 내 처지가 이렇단다……. 이제 내 유일한 희망은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베주호프 백작이야. 만약 그분이 자기 대자를, 그분이 보랴 대부잖니, 후원해 줄 생각이 없으면, 내 수고는 다 허사가 되고 말 거야." 백작 부인은 눈물을 지으며 말없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그분이 분명 보리스한테 뭔가 남겨 주실 거야." 백작 부인이 말했다.

"하느님만 아실 일이지, 친구야! 이런 부자들이나 고관들은 아주 이기적이거든. 하지만 어쨌든 나는 지금 보리스하고 그분한테 가서 솔직하게 사정을 말할 거야. 나에 대해서는 마음대로 생각들 하라고 해. 아들의 운명이 이 일에 달렸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공작 부인은 일어섰다.


12 [베주호프 백작의 저택]


"얘야, 보리스.” 두 사람을 태운 로스토바 백작 부인의 카레타가 짚을 깔아 둔 거리를 지나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베주호프 백작의 넓은 마당에 들어서자 안나 미하일로브나 공작 부인이 아들에게 말했다. "공손하고 신중하게 처신해라.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백작은 어쨌든 네 대부이시고, 네 미래의 운명이 그분한테 달렸어. 그걸 꼭 기억해라, 얘야, 최대한 사랑스럽게 굴어야 해.”


문지기는 어머니와 아들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낡은 부인용 외투를 의미심장하게 쳐다보더니 누구를 만나러 왔는지 물었다. 그리고 백작을 만나러 왔다는 것을 확인하자 각하의 병세가 악화되어 오늘은 아무도 맞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나 미하일로브나가 문지기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보게. 백작이 위중하다는 걸 아네. 내가 온 것도 그 때문이야……. 나는 친척 되는 사람이네. 걱정 끼치진 않을거야……. 나는 그저 바실리 세르게예비치 공작을 보기만 하면 되네. 부탁이나 그 분에게 알려 주게."


문지기가 무뚝뚝하게 2층의 벨과 이어진 끈을 잡아당긴 뒤 고개를 돌렸다.

"드루베츠카야 공작 부인이 바실리 세르게예비치 공작을 찾으십니다."

어머니는 뒤축이 닳은 단화로 계단에 딸린 양탄자를 밟으며 활기차게 올라갔다.


어머니와 아들이 홀 한가운데로 나와서 그들을 보고 벌떡 일어난 늙은 하인에게 막 길을 물어보려 했을 때, 문들 가운데 하나의 청동 손잡이가 돌아가더니 간소하게 벨벳 외투를 입고 별 모양 훈장 하나를 단 바실리 공작이 잘생긴 검은 머리의 남자를 배웅하며 나왔다. 페테르부르크의 저명한 의사 로랭이었다.


안나 미하일로브나는 장갑을 벗고 점령한 진지의 안락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바실리 공작에게 옆에 앉도록 권했다. “보리스!” 그녀는 아들을 부르면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백작 아저씨께 갈 테니, 얘야, 넌 잠시 피에르한테 가 있어라. 로스토프가의 초대 전하는 거 잊지 말고. 그들이 만찬에 그를 초대했답니다. 내 생각에, 그는 가지 않겠죠?” 그녀는 공작을 돌아보며 말했다.

"천만예요. 당신이 그 젊은이한테서 나를 벗어나게 해 준다면 난 무척 기쁠 겁니다……. 여기 머물고 있어요. 백작은 한 번도 그에 대해 묻지 않으셨습니다." 하인이 청년을 표트르 키릴로비치에게 안내했다.


13


그렇게 해서 피에르는 페테르부르크에서 진로를 선택할 겨를이 없었고, 실제로 난동 때문에 모스크바로 추방되었다. 그는 며칠 전에 도착하여 여느 때처럼 아버지의 집에 머물렀다. 그는 도착한 날 응접실에 들어가 공작 영애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피에르를 시체나 페스크 환자처럼 맞았다.


"안녕하세요, 사촌 누님." 피에르가 말문을 열었다.

"백작님의 건강은 어떠신가요? 뵈어도 될까요?" 피에르가 겸연쩍게, 그러나 당황하는 기색 없이 물었다.

"백작님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통받고 계세요. 그런데 당신은 백작님께 정신적 고통을 드리려고 특별히 신경 쓴 것 같더군요."

“그럼 난 내 방으로 가겠습니다. 만나 뵈어도 괜찮을 때 내게 말해 주세요.”


다음 날 바실리 공작이 와서 백작의 집에서 묵었다. 그는 피에르를 방으로 불러 이렇게 말했다.

"이보게, 여기서도 페테르부르크에서처럼 처신하면 아주 나쁜 결말을 맞게 될 거야. 틀림없어. 백작은 매우, 매우 위중하시네. 자네는 절대로 그분을 뵈어서는 안 돼.' "

그 후로 피에르는 성가시게 하는 사람 없이 온종일 2층 자기 방에서 혼자 지냈다.


보리스가 그의 방에 들어갔을 때 피에르는 방 안을 돌아다니다 구석에 멈춰 서서 마치 보이지 않는 적을 칼로 찌르듯 벽을 향해 위협하는 몸짓을 하기도 하고 있었다."영국은 끝이야." 그는 얼굴을 찌푸리고 누군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중얼거렸다."국가와 국민의 권리를 배신한 피트(당시 영국 수상)에게 다음과 같은 선고를......."그는 자기를 나폴레옹으로 상상하며 이미 칼레 해협을 건너 런던을 함락하고 피트에게 선고를 내리고 있었다.


그가 선고를 언도하려는 순간, 늘씬하고 잘생긴 젊은 장교가 자기 방으로 들어서는 것이 눈에 띄었다. 피에르는 보리스가 열네 살 소년일 때 떠나서 그를 분명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특유의 민첩하고 따뜻한 태도로 보리스의 손을 잡고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날 기억합니까?” 보리스가 쾌활한 미소를 지으며 차분하게 말했다. “어머니와 함께 백작을 뵈러 왔습니다. 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으신 것 같군요.”

보리스는 피에르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느꼈지만 이름을 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로스토프 백작께서 오늘 그분 댁에서 열리는 만찬에 와 달라고 청하셨습니다." 피에르에게는 꽤 긴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에 보리스가 말했다.

"아! 로스토프 백작! 그럼 당신은 그분의 아드님인 일리야군요?"

"잘못 보셨습니다. 나는 안나 미하일로브나 드루베츠카야 공작 부인의 아들의 보리스입니다. 그리고 아들 로스토프는 니콜라이입니다."


"아, 이런 참! 내가 혼동했네요. 그렇군요. 그럽 당신은 불로뉴 원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보리스는 불로뉴 원정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여기 모스크바에서 우리는 정치보다 만찬과 험담으로 더 바쁩니다." 그는 특유의 차분한 어투로 말했다.

"모스크바에는 남을 헐뜯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없습니다.” 그는 말을 이었다.“다들 백작이 자기 재산을 누구에게 남길 것인지에 정신이 팔려 있어요. 하지만 그분이 우리 모두보다 더 오래 사실지도 모르죠. 난 진심으로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네, 다 아주 괴로운 이야깁니다." 피에르가 말을 받았다. "아주 괴로워요."피에르는 이 장교가 그 자신이 거북해하는 대화로 빠져들지 않을까 계속 걱정하고 있었다."당신 눈엔 틀림없이 그렇게 보이겠지요." 보리스는 살짝 얼굴을 붉혔으나 목소리와 자세를 바꾸지 않고 말했다. "당신에게는 틀림없이 다들 부자에게서 뭐라도 받을 생각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고 보일 겁니다."

'그렇지' 피에르는 생각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당신에게 이 말을 해 두고 싶습니다. 만약 당신이 나와 내 어머니를 그런 부류의 사람으로 본다면 큰 실수를 하는 거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매우 가난합니다. 하지만 최소한 나 자신을 위해 말합니다. 바로 당신 아버지가 부자이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을 그분의 친척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나도 어머니도 그분에게 결코 아무것도 청하지 않을 것이고, 아무것도 받지 않을 것입니다."


피에르는 오랫동안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말이 이해된 순간, 그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특유의 민첩하고도 어색한 태도로 보리스의 팔꿈치 아래쪽을 덥석 잡았다.

"당신은 놀라운 사람입니다. 당신이 지금 한 말은 아주 훌륭합니다. 참으로 훌륭해요. 난 당신을 아주 잘 이해해요. 나라면 그렇게 못합니다. 나한테는 그럴 만한 기개가 없어요. 당신을 알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다 털어놓고 나니 기쁘네요. 아마 당신은 기분 나빴을 겁니다. 용서하세요. 그런데 로스토프 백작께는 어떻게 전할까요? 만찬에 오실건가요?"

피에르는 보리스와 더 가까워지기 위해 만찬에 가겠노라 약속하고 안경 너머로 그의 눈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그의 손을 굳게 쥐었다.


보리스를 공작 부인에게 데려가려고 하인이 왔다. 공작 부인은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피에르는 보리스와 더 가까워지기 위해 만찬에 가겠노라 약속하고 안경 너머로 그의 눈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그의 손을 굳게 쥐었다. 그가 떠난 후 피에르는 다시 오랫동안 방 안을 거닐었다. 이제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적을 검으로 찌르는 행동을 하지 않고 사랑스럽고 총명하고 의연한 청년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아, 그분은 끔찍한 상황에 놓이셨단다.” 카레타에 자리를 잡고 앉자 어머니가 아들에게 말했다.

"난 모르겠어요, 엄마. 피에르에 대한 그분의 태도는 어떤가요?" 아들이 물었다.

"얘야, 유언이 모든 것을 말해 주겠지. 우리의 운명도 거기에 달렸단다……."

"하지만 엄마는 어째서 그분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남기실 거라고 생각하시죠?"

"아, 얘야! 그분은 그렇게 부유하고 우리는 이렇게 가난하잖니!"

"휴, 그것만 가지고는 충분한 이유가 못 돼요, 엄마."


14~15 [로스토프 백작의 만찬]


안나 미하일로브나가 베주호프의 집에서 돌아왔을 때 백작 부인의 탁자 위에는 전부 새 지폐인 돈이 손수건에 덮인 채 놓여 있었다. “아네트, 제발 거절하지 마.” 백작 부인이 얼굴을 붉힌 채 손수건 밑에서 돈을 꺼내며 불쑥 말했다. 내가 보리스에게 주는 거야. 군복 지어 입게…….”

안나 미하일로브나는 이미 그녀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로스토바 백작 부인은 딸들과 이미 자리를 차지한 많은 손님들과 함께 응접실에 앉아 있었다. 백작은 남자 손님들을 서재로 안내해 자신이 즐겨 모으는 튀르크산 파이프 수집품을 구경하도록 권했다. 그는 이따금 서재에서 나와 아직 오시지 않았는지 묻곤 했다. 사교계에서 무서운 용이라는 별명을 가진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 아흐로시모바'를 기다리고들 있었다. 부나 명예가 아니라, 올곧은 지성과 솔직하고 담백한 태도로 유명한 부인이었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서재에서는 성명서로 선포된 전쟁과 징집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성명서를 읽은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었으나 그 출현에 대해서는 다들 알고 있었다. 백작은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는 두 이웃 사이의 작은 오토만에 앉아 있었다.


말하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은 문관으로, 옷은 최신 유행을 좇는 젊은이처럼 입었지만 이미 노령에 가까웠다. 그는 백작 부인의 사촌인 늙은 독신자 신신으로, 모스크바의 살롱들에서 떠도는 소문대로 독설가였다. 또 다른 사람은 생기 있는 장밋빛 얼굴의 근위대 장교로, 흠잡을 데 없이 깨끗하게 씻고 단추를 빈틈없이 잠그고 깔끔하게 머리를 빗어 넘긴 모습이었다. 이 사람은 세묘놉스키 연대 장교인 베르크 중위로 보리스와 함께 연대로 갈 예정이었다.


피에르는 만찬 직전에 도착해서 맨 먼저 맞닥뜨린 응접실 한가운데의 안락의자에 어색하게 앉아 사람들의 길을 막고 있었다. 백작 부인은 그에게 말을 시키고 싶었지만, 그는 누군가를 찾는 듯 안경 너머로 주위를 순박하게 둘러보면서 백작 부인의 질문에 간단하게 답할 뿐이었다. 그는 부끄러운 처지에 놓여 있으면서도 혼자만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신가요?” 홀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여자 맞네.” 투박한 여자 목소리가 대답으로 들렸다. 뒤이어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래, 어찌 지냈느냐, 나의 카자크?”(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는 나타샤를 카자크라고 불렀다.)


그녀는 두려움 없이 명랑하게 자신의 손에 입을 맞추러 다가온 나타샤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가 못된 아가씨라는 것은 안다만, 그래도 사랑한다.”

그녀는 커다란 손가방에서 배 모양의 루비 귀걸이 한 쌍을 꺼내 명명일의 기쁨으로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뺨이 발그레 물든 나타샤에게 주고는 이내 피에르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 오! 얘야! 이리 좀 와 보렴.” 그녀는 일부러 나지막하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와 보라니까, 얘야……. 난 네 아버지가 기회를 잡았을 때, 네 아버지에게도 혼자 진실을 말했어. 너한테도 그러라고 하느님이 명하시는구나.”

“잘했다. 할 말이 없어! 훌륭한 아이야! 아버지가 병상에 누워 있는데 아들은 경찰서장을 곰 등에 태우고 놀다니. 부끄럽구나, 얘야, 부끄러워! 차라리 전쟁에 나가는 게 낫겠어.”


16


남자들이 앉은 식탁 한쪽 끝에서는 대화가 점점 활기를 띠었다. 연대장은 전쟁을 선포하는 성명서가 이미 페테르부르크에서 발표되었으며, 오늘 특사가 총사령관에게 전한 성명서 한 통을 자기가 직접 보았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왜 쓸데없이 보나파르트와 싸우는 걸까요?” 신신이 말했다. “그는 이미 오스트리아의 오만한 콧대를 꺾어 놓았어요.* 이제 우리 차례가 아닐까 걱정이군요.”


연대장은 키가 크고 건장한 다혈질의 독일인인데, 노련한 군인이자 애국자로 보였다. 그는 신신의 말에 모욕을 느꼈다. “군주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목적, 즉 견고한 토대 위에 유럽의 평화를 확립하려는 갈망은 오늘날 군대 일부를 국경 밖으로 움직여 이 의도를 성취하기 위한 새로운 노력을 기울이도록 군주를 결심시켰도다.”

“바로 이런 까닭입니다. 친애하는 선생.” 연대장은 술잔을 비우면서 격려를 구하는 눈길로 백작을 바라보곤 교훈적으로 말을 맺었다.


“우리는 마지막 한 방울의 피를 흘릴 때까지 싸워야 합니다.” 연대장이 식탁을 치며 말했다. “황제를 위해 주욱느은 겁니다. 그럼 다 잘될 겁니다. 그리고 생각은 가아느응하안(그는 ‘가능한’이란 말을 특히 늘였다), 가아느응하안 적게.” 그러고는 다시 백작 쪽을 바라보며 말을 맺었다.



17


식사를 마치고 손님들은 똑같은 순서로, 다만 더 붉어진 얼굴로 응접실과 백작의 서재로 되돌아갔다. 보스턴 게임을 위한 탁자들이 배치되고 카드를 치는 조(組)가 만들어졌다. 백작의 손님들은 응접실 두 개와 소파가 있는 방과 도서실에 자리를 잡았다. 신신은 외국에서 돌아온 사람에게 으레 그러듯 피에르를 상대로 그가 지루해하는 정치 이야기를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도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연주가 시작되자 나타샤가 응접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곧장 피에르에게 다가가 얼굴을 붉히고 웃으며 말했다.

“엄마가 당신에게 춤을 청하라고 하셨어요.”

나타샤는 더없이 행복했다. 어른과, 그것도 외국에서 돌아온 남자와 춤을 추는 것이었다. 그녀는 모든 사람의 눈앞에 앉아서 어른처럼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와 백작이 맨 앞에서 걸었다. 두 사람 다 유쾌한 얼굴이었다. 백작은 발레 동작 같은 장난스러운 태도로 정중하게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에게 둥글게 구부린 팔을 내밀었다. 그는 에코세즈의 마지막 바퀴가 끝나자마자 악사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제1바이올린을 바라보며 악단을 향해 외쳤다.

"세묜! 다닐라 쿠포르(본래 앙글레즈의 한 스텝) 아나?”

그것은 백작이 젊은 시절부터 추던, 그가 좋아하는 춤이었다.



18 [베주호프 백작의 저택]



그 시각, 베주호프 백작에게 여섯 번째 발작이 찾아왔다. 의사들은 회복될 가망이 없다고 선언했다. 병자에게 무언 참회식과 성찬식이 베풀어졌다. 총사령관을 배웅하고 나서 바실리 공작은 평소와 다른 조급한 걸음으로 긴 복도를 지나 저택 뒤쪽에 자리 잡은 첫째 공작 영애의 방으로 갔다.


"카티시, 너도 알다시피 마몬토프가의 세 자매인 너희들 그리고 또 내 아내, 이렇게 우리만 백작의 직계 상속인이야. ...... 내가 피에르를 데려오라고 사람을 보냈고, 백작이 피에르의 초상화를 똑바로 가리키면서 그 애를 불러오라고 하신 건 너도 알지?” "지난겨울 백작이 직계 상속인들과 우리를 제쳐 두고 피에르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유언장을 쓰셨다는 거야.” "백작의 서류가 개봉되고, 편지와 유언장이 폐하께 전해지겠지. 그럼 그분의 청원은 틀림없이 받아들여질 거야. 그리고 피에르가 합법적인 아들로서 모든 것을 받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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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 유언장이 어디 있는지 아니, 모르니?” 바실리 공작이 카티시에게 물었다.

"지난겨울 그 여자(안나 미하일로브나)가 이곳에 비비고 들어와서는 백작께 우리 모두에 대해 어찌나 추악하고 혐오스러운 말을 잔뜩 지껄였는지, 백작이 병이 드셨고 2주 동안 우리를 보려고도 않으셨어요. 내가 알아요. 그때 그 분이 그 추하고 역겨운 서류를 작성하신 계예요. 하지만 나는 그 서류가 아무 의미 없는 거라고 생각했죠. 백작이 베개 밑에 두신 모자이크 들어간 서류 가방에 들어 있어요. 이제 알겠어요.”


19


응접실과 공작 영애의 방에서 그런 대화가 이루어지던 시각, 피에르와 (그를 데리러 사람을 보냈다) 안나 미하일로브나를 (그녀는 그와 함께 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태운 카레타가 베주호프 백작가의 뜰로 들어섰다. 잠에서 깬 피에르는 안나 미하일로브나를 뒤따라 카레타에서 내린 뒤에야 죽어 가는 아버지와의 대면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는 자신들을 태운 마차가 정면 현관이 아닌 뒤쪽 현관에 댄 것을 알아차렸다.


피에르는 이런 식으로 되어야 하나 보다, 라고 혼자 결론을 내리고는 안나 미하일로브나를 뒤따라갔다. 불빛이 희미한 좁은 석조 계단을 따라 종종걸음으로 올라가면서 안나 미하일로브나는 뒤처진 피에르를 손짓해 부르곤 했다. 피에르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백작에게 가야 하는지, 더욱이 왜 뒤쪽 계단으로 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안나 미하일로브나가 확신에 차서 서두르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해야만 하나 보다, 라고 속으로 결론을 내렸다.


"아마 백작은 나를 부르지 않으셨을 겁니다. 내가 정말 가야 합니까?" 피에르가 물었다.

"아, 친구, 당신이 겪은 부당한 일들은 잊어요. 그분이 당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생각하세요……. 죽음의 고통을 겪고 계실 거예요." 그녀는 탄식했다.

피에르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이런 식으로 되 어야 하나 보다, 라는 생각이 한층 더 강해졌다. 그래서 그는 이미 문을 열고 있던 안나 미하일로브나를 순순히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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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병을 든 하녀가 급히 서두르느라 문을 닫지 않은 탓에 피에르와 안나 미하일로브나는 첫째 공작 영애와 바실리 공작이 가까이 붙어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방을 지나가다 무심코 엿보게 되었다. 지나가는 두 사람을 본 바실리 공작은 짜증 난다는 듯 몸을 뒤로 젖혔다. 공작 영애는 벌떡 일어나 필사적으로 온 힘을 다해 문을 쾅 닫았다. 두 사람은 피에르에게 낯익은 응접실로 들어갔다.


"다행히 우리가 제때 왔군요." 그녀가 사제에게 말했다.

"저희 일가 친척들 모두 몹시 걱정하고 있었답니다. 바로 이 청년이 백작의 아드님이에요. 그러고는 더 나직이 덧붙였다. "무서운 순간이네요!" 이 말을 하고 그녀는 의사에게 다가갔다.

"친애하는 의사 선생님……." 그녀가 의사에게 말했다. "이 청년은 백작의 아드님입니다. 가망이 있을까요?" 의사는 말없이 빠른 몸짓으로 두 눈을 치뜨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는 피에르에게 자기를 기다리라고 소파를 가리킨 뒤, 모두가 바라보고 있던 문 너머로 자취를 감추었다.


2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바실리 공작이 별 모양의 훈장을 세개 단 카프탄 차림으로 고개를 높이 쳐들고 당당하게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아침보다 수척해 보였다. 그가 방을 둘러보다 피에르를 보았을 때 그의 눈은 평소보다 더 커졌다. 그는 피에르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전에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손이 잘 붙어 있는지 시험하고 싶기라도 한 듯 아래쪽으로 잡아당겼다.


"친구, 용기를 내요, 용기를 내. 그분이 당신을 부르라고 분부하셨어요. 좋은 일이에요……."

"병세가 어떠신지……?" 피에르는 죽어 가는 사람을 백작이라고 부르는 것이 온당한지 아닌지 몰라 말끝을 흐렸다. 그렇다고 아버지라 부르려니 무안했다.

"30분 전에 또 발작이 있었어요. 또 한 차례 발작이 있었지. 용기를 내요, 친구……."


마침내 여전히 창백하긴 하지만 의무 수행에 충실한 얼굴로 안나 미하일로브나가 달려 나와서 피에르의 손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하느님의 자비는 끝이 없답니다. 지금 성유식이 시작돼요. 어서 가요."

피에르는 부드러운 양탄자를 밟으며 문으로 들어갔다. 그는 모두가 자기를 뒤따르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치 이제는 그 방에 들어가기 위해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는 듯했다.


20


피에르는 원주 기둥과 아치로 나뉘고 온통 페르시아 양탄자로 덮인 그 큰 방을 잘 알았다. 한쪽에는 실크 커튼이 드리운 높다란 마호가니 침대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커다란 이콘 보관함이 있는, 방의 기둥 뒤쪽은 저녁 예배 시간의 교회처럼 붉은빛이 환하게 비치고 있었다. 빛이 드리운 이콘 보관함의 금장식 아래 안락의자에는 아버지 베주호프 백작의 위풍당당한 형체가 선명한 녹색 이불을 허리까지 덮은 채 누워 있었다.


장엄하고 찬란한 옷 위로 긴 머리칼을 늘어뜨린 사제들이 불붙인 초를 손에 들고 안락의자를 굽어보며 서서 느리고 엄숙하게 의식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들 뒤로 조금 떨어져서 손아래 공작 영애 둘이 손수건을 손에 쥐고 또 눈가에 댄 채 서 있었고, 그들 앞에는 맏언니 카티시가 표독스럽고 단호한 표정으로 단 한 순간도 이콘에서 눈을 떼지 않고 서 있었다.



예배 도중에 피에르는 바실리 공작이 의자 등받이 뒤에서 나와서 병 자에게 다가가는 대신 그 옆을 지나 첫째 공작 영애와 한패가 되어 침실 깊숙한 곳으로, 실크 커튼이 드리운 높은 침대로 향한 것을 알아차렸다. 공작과 공작 영애는 둘 다 침대에서 떨어져 뒷문으로 자취를 감추었다가 예배가 끝나기 전에 차례로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왔다. 피에르는 그 상황에 더 이상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찬송이 그치고, 병자에게 성례받은 것을 정중히 축하하는 사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병자는 여전히 죽은 듯 꼼짝 않고 누워 있었다. 그의 주위 에서 모두가 바스락대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발걸음과 속삭임이 들렸다. 그 가운데 안나 미하일로브나의 소곤거림이 가장 도드라졌다.

"침대로 옮겨야 해요. 여기서는 도저히 안 될 거예요……."


피에르는 안락의자를 에워싼 사람들이 죽어 가는 사람을 들어 옮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팔을 잡아. 그러다 떨어뜨려." 한 하인의 겁에 질린 속삭임이 들 렸다.“아래쪽에서……. 한 명 더.”

높다란 침대 주위에서 벌어진 소동의 몇 분이 흘렀다. 병자를 운반한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안나 미하일로브나가 피에르의 손을 가볍게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가요." 피에르는 그녀와 함께 침대로 다가갔다.


침대 위에는 막 끝난 성례와 관련이 있는 듯 병자가 장엄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그는 베개에 머리를 높이 괴고 누워 있었다. 두 손은 손바닥을 아래로 하여 녹색 비단 이불 위 대칭으로 놓여 있었다. 피에르가 다가가자 백작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피에르는 어찌할 바를 몰라 가만히 서서 묻는 듯이 자신의 인도자인 안나 미하일로브나를 돌아보았다. 안나 미하일로브나가 다급한 눈짓으로 병자의 손을 가리키며 입술로 그 손에 입 맞추는 시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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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는 이불에 걸리지 않도록 목을 쑥 빼고 그녀의 충고에 따라 뼈마디가 굵고 살진 손에 입을 맞추었다. 백작의 손도, 얼굴 근육 한 가닥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백작을 바라보았다. 백작은 피에르가 서 있었을 때 그의 얼굴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나 미하 일로브나는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는 이 마지막 순간의 감동적인 의의에 대한 자각을 표정으로 드러냈다. 2분 동안 이어진 그 순간이 피에르에게는 한 시간 같았다.


갑자기 백작의 굵직한 안면 근육과 주름에 경련이 일어났다. 경련은 점점 심해졌고, 아름다운 입이 일그러졌다. (그제야 피에르는 아버지가 어느 정도로 죽음에 가까이 갔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일그러진 입에서 알아듣기 힘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나 미하일로브나는 병자의 눈을 열심히 쳐다보며 피에르를 가리키고, 마실 것을 가리키고, 묻는 듯한 눈초리로 바실리 공작의 이름을 속삭이고, 이불을 가리키기도 하면서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애썼다.


병자의 눈과 얼굴이 초조한 빛을 띠었다. 그는 침대 머리맡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고 서 있던 하인에게 눈길을 돌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반대편으로 돌아눕고 싶어 하십니다." 하인이 속삭이더니 얼굴이 벽 쪽으로 향하게 백작의 무거운 몸을 돌리려고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백작을 돌려 눕히는 동안 그의 한 손이 힘없이 뒤로 툭 떨어졌다.


아무튼 그는 말을 듣지 않는 손과 피에르의 얼굴에 떠오른 공포의 표정을 보고 다시 손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자 그의 얼굴에 그 용모에 어울리지 않는, 마치 자신의 무기력을 조롱하는 듯한 힘없고 고통에 찬 미소가 떠올랐다. 병자가 벽을 볼 수 있게 옆으로 눕혔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잠드셨어요." 안나 미하일로브나가 교대하러 온 공작 영애를 보고 말했다. “가요." 피에르는 방을 나왔다.


21


응접실에는 바실리 공작과 첫째 공작 영애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두 사람은 예카테리나 여제의 초상화 밑에 앉아 무언가에 대해 활발히 말을 주고받다가 피에르와 그의 인도자를 보자 입을 다물었다. 피에르는 묻는 듯이 자기 인도자를 돌아보고 그녀가 바실리 공작과 첫째 공작 영애가 남아 있는 응접실로 다시 발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나가는 것을 보았다.


안나 미하일로브나는 공작 영애 옆에 서 있었고, 두 사람 모두 흥분한 목소리로 동시에 말하고 있었다.

“공작 부인, 뭐가 필요하고 뭐가 불필요한지 내게 가르쳐 주시죠.” 공작 영애가 말했다.

"나도 이 서류에 뭐가 있는지 몰라요.” 공작 영애는 바실리 공작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자기 손에 들린 모자이크 들어간 서류 가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아는 건 진짜 유언장은 그분 책상 안에 있고, 이건 잊힌 서류라는 것뿐이에요…….” 그녀는 안나 미하일로브나를 피해 지나가려 했지만, 안나 미하일로브나가 다시 그녀의 길을 막았다.


그 순간 문이, 피에르가 그토록 오랫동안 바라보던, 그리고 그토록 조용히 열리곤 하던 무시무시한 문이 벽에 쾅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확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둘째 공작 영애가 뛰쳐나와 두 손을 꼭 쥐었다.

“지금 뭣들 하는 거예요?” 그녀가 절망적으로 말했다. “그분이 돌아가시려 하는데, 나 혼자 내버려 두고 말이에요.” 첫째 공작 영애가 서류 가방을 툭 떨어뜨렸다. 안나 미하일로브나는 재빨리 허리를 숙여 분쟁거리가 된 물건을 움켜쥐고 침실로 달려갔다.



몇 분 후 첫째 공작 영애가 해쓱하고 초췌한 얼굴에 아랫입술을 꼭 깨물며 제일 먼저 그곳에서 나왔다. 피에르를 보자 그녀의 얼굴은 억누를 수 없는 분노의 빛을 띠었다.

“네, 이제 맘껏 기뻐해요.” 그녀가 말했다. “이렇게 되길 기다렸잖아요.”

공작 영애에 이어 바실리 공작이 나왔다. 그는 비틀거리며 피에르가 앉은 소파로 오더니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그 위에 쓰러졌다.


안나 미하일로브나가 맨 마지막에 나왔다. 그녀는 조용하고 느린 걸음으로 피에르에게 다가갔다.

“이제 그분은 더 이상 안 계세요…….”

피에르는 안경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 같이 가요. 내가 당신을 안내할게요. 울려고 해 봐요. 눈물만큼 슬픔을 덜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녀는 그를 어두운 응접실로 이끌었다. 피에르는 거기 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그의 얼굴을 보지 않아 기뻤다. 안나 미하일로브나는 그를 남겨 둔 채 자리를 떴다.



다음 날 아침, 안나 미하일로브나는 피에르에게 말했다.

“자, 친구, 이 일은 당신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크나큰 손실이에요. 하지만 하느님께서 당신을 붙잡아 주실 거예요. 당신은 젊어요. 이제 당신은 막대한 재산의 주인이 될 거예요. 부디 그렇게 되길 바라요."

"아마 나중에 당신에게 말하겠지만, 내가 거기 없었더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몰라요. 당신도 알다시피 그저께 아저씨께서는 보리스를 잊지 않겠다고 내게 약속하셨어요. 하지만 끝내 약속을 지키지는 못하셨지요. 나의 친구, 난 당신이 아버지의 소망을 이뤄 주길 바라요.”


22 [볼콘스키 공작의 영지 리시예 고리]



니콜라이 안드레예비치 볼콘스키 공작의 영지인 리시예 고리에서는 젊은 안드레이 공작 부부의 도착을 매일같이 고대하고 있었다. 사교계에서 프로이센 왕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육군 대장 니콜라이 안드레예비치 공작은 파벨(직전 황제) 시대에 시골로 추방된 이후, 딸 마리야 공작 영애와 그녀의 말벗 마드무아젤 부리엔과 함께 자신의 리시예 고리에서 칩거했다.


그는 인간의 악덕의 근원은 오직 두 가지, 나태와 미신이며, 두 가지 미덕은 오직 활동과 지성이라고 말했다. 그는 몸소 딸을 양육하며 두 중요한 덕성 모두를 그녀의 내부에서 발달시키기 위해 그녀에게 대수와 기하를 가르치고 그녀의 삶을 끊임없는 과제로 채웠다. 그 자신은 회상록 저술로, 고등 수학 풀이로, 갈이 판에 담뱃갑을 깎는 일로, 정원을 가꾸는 일로, 그의 영지에서 끊이지 않던 건축 공사 감독으로 늘 바빴다.



마리야에게 친구인 줄리 카라기나에게서 편지가 온다. 그녀는 조그만 초상화 여러 점이 놓이고 공책들과 책들이 널린 자기 책상 앞에 앉았다. 공작 영애는 아버지가 질서 정연한 만큼이나 무질서했다. 그녀는 기하학 공책을 내려놓고 조바심을 내며 편지를 뜯었다.


사랑하는 한없이 소중한 친구, (중략)

모스크바는 온통 전쟁 이야기뿐이에요. 나의 두 오빠 가운데 한 명은 이미 국경 너머에 있고, 다른 오빠는 곧 국경으로 출정할 근위대에 있어요. (......) 이 전쟁은 내게서 오빠들은 물론이고 내가 마음으로 가장 가깝게 여기는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을 앗아 갔어요. 내가 말하는 사람은 니콜라이 로스토프랍니다. 그는 열정이 넘치는 사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견디지 못해 군대에 들어 가려고 대학을 그만두었어요. 그가 그토록 젊은 나이에 군대로 떠나는 것은 내게 큰 슬픔이었어요. (......)

온 모스크바를 사로잡은 중요한 소식은 노백작 베주호프의 죽음과 그분의 유산 상속이에요. 상상해 봐요. 세 명의 공작 영애는 조그만 뭔가를 받았고, 바실리 공작은 아무 것도 받지 못했어요. 피에르가 전 재산을 상속받았고 게다가 합법적인 아들로, 그러니까 베주호프 백작으로 인정받아 러시아에서 가장 막대한 재산의 소유자가 되었어요. 바실리 공작은 이 모든 사건에서 아주 비열한 역할을 했고 몹시 부끄러운 모습으로 페테르부르크로 떠났다고 해요. 솔직히 난 유언장에 관련된 이 모든 일을 거의 이해하지 못해요.

당신이 아는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 모든 이들의 아주머니인 안나 미하일로브나가 아주 비밀리에 당신의 혼사에 대한 계획을 내게 털어놓 았답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바실리 공작의 아들 아나톨이에요. 그를 부유한 명문가의 아가씨와 결혼시켜 안정을 찾게 하려고 해요. 그의 부모님이 당신을 선택한 거예요. 당신이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미리 알려 주는 게 나의 의무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 말이, 그는 아주 잘생겼는데 굉장한 난봉꾼이라고 해요. 내가 그에 대해 알아낼 수 있었던 건 이게 전부예요....
줄리


공작 영애는 생각에 잠겼다가 상념이 묻어나는 미소를 지었다. (찬란한 눈동자가 환하게 밝힌 그녀의 얼굴도 완전히 변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몸을 일으켜 책상 쪽으로 무겁게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종이를 꺼냈고, 그녀의 손이 종이 위에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렇게 답장을 썼다.


사랑하는 한없이 소중한 친구. 13일 자 당신의 편지는 내게 큰 기쁨을 주었어요.당신이 그처럼 불평하는 이별은 당신에게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은 것 같아요. 당신은 이별을 한탄하네요. 지나친 말일 수도 있지만 소중한 사람을 모두 잃은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아, 우리에게 종교의 위로가 없다면 삶은 너무나 슬플 거예요. (......)

베주호프 백작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당신의 편지보다 먼저 우리에게 당도했습니다. 내 아버지는 그 소식에 매우 큰 충격을 받으셨어요. 아버지는 그분이 위대한 시대를 대표하는 끝에서 두 번째 인물이었다고, 이제 아버지의 차례지만 그 차례가 최대한 늦게 오도록 당신 스스로에게 달린 일은 다하겠다고 말씀하세요. 주여, 우리를 그 불행에서 구해 주소서!

피에르의 상속과 그 일에서 바실리 공작이 한 역할에 대해 말하자면, 그건 두 사람 모두에게 매우 슬픈 일이에요. 아, 사랑하는 친구, 부자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신 우리 구세주의 말씀, 이 말씀은 무섭도록 옳아요. (......) 만약 누군가가 내게 세상에서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 하겠어요. 거지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자보다 더 가난해지는 것이라고요.

사랑하는 한없이 소중한 친구, 나와 관련된 결혼 계획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결혼이 우리가 복종해야 할 신성한 제도라고 생각해요. 내게 아무리 힘겨운 일이 될지라도 전능자께서 내게 아내와 어머니의 의무를 지우고자 하신다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신실하게 그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하느님이 내게 남편으로 주시려는 사람에 대한 내 감정을 곰곰이 생각하는 일엔 마음 쓰지 않겠어요.
마리


23


카레타와 브리치카가 현관 계단으로 다가왔다. 카레타에서 안드레이 공작이 내리더니 자그마한 아내를 부축하여 내려 주고 앞장서게 했다. 머리가 하얗게 센 티혼이 가발을 쓴 채 하인 방 밖으로 몸을 쑥 내밀면서 공작이 주무신다고 속삭이는 소리로 고한 후 황급히 문을 닫았다. 안드레이 공작이 시계를 쳐다보고 말했다.

"아버지는 20분 뒤에 일어나실 거여. 마리야 공작 영애에게 갑시다."


클라비코드 소리가 들려오던 방 앞에 이르자 옆문에서 옅은 금발의 예쁘장한 프랑스 여자가 뛰어나왔다. 마드무아젤 부리엔은 너무 기뻐서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아, 공작 영애가 얼마나 기뻐할까요! 드디어 오셨군요! 공작 영애에게 알려야겠어요."

"아니, 아니요, 제발……. 당신이 마드무아젤 부리엔이군요. 그녀는 우리가 오리라고는 기대도 않고 있겠죠!"


공작 부인이 방에 들어갔다. 악절이 중간에서 끊기고 비명 소리와 마리야 공작 영애의 묵직한 발소리와 입맞춤 소리가 들렸다. 마리야 공작 영애가 오빠를 돌아보았다. 순간 아름다운, 그녀의 크고 찬란한 눈동자의 애정 어린 따뜻하고 온화한 눈길이 눈물을 내비치며 안드레이 공작의 얼굴에 머물렀다.


20분이 지나고 노공작이 일어날 시각이 되자 티혼이 젊은 공작에게 아버지의 부름을 전하러 왔다. 노인은 아들의 도착을 기념하여 자신의 생활 방식에 예외를 허용했다. 점심 전에 옷을 갈아입는 시간에 아들을 자기 거처에 들이도록 지시한 것이다. 아버지의 거처에 들어가니 노인은 단장실에서 넓은 안락의자에 앉아 티혼의 손에 머리를 맡기고 있었다.


“아! 용사로구나! 보나파르트를 무찌르고 싶은 게냐?” 노인은 이렇게 말하고는 티혼이 두 손으로 땋고 있는 머리채가 허용하는 한도에서 분 바른 머리를 흔들었다. “최소한 너라도 그 녀석을 응징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곧 우리까지 자기 백성으로 삼을 거다. 잘 왔다!” 그러고는 한쪽 뺨을 내밀었다.


노인은 머리가 단단히 땋였는지 점검하기 위해 머리채를 흔들면서 아들의 손을 잡고 외쳤다.

"앉아서 얘기해 봐. 미헬손의 군대는 이해가 돼. 톨스토이의 군대도……. 동시 상륙은……. 남쪽 군대는 어떻게 할까? 프로이센은 중립이고……. 그건 나도 안다. 오스트리아는 어떠냐?” 그는 안락의자에서 일어나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옷가지를 건네는 티혼과 함께 방 안을 거닐며 말했다. “스웨덴은 어때? 포메라니아는 어떻게 횡단할까?”


안드레이 공작은 아버지의 완강한 요구에 처음에는 내키지 않아 하다가 조금씩 활기를 띠며, 그리고 이야기를 하던 중에 자기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러시아어에서 프랑스어로 말을 바꾸며 예상되는 전쟁의 작전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프로이센을 중립에서 끌어내 전쟁에 끌어들이려면 9만 군대가 위협해야 한다는 것, 이 병사들 중 일부는 슈트랄준트에서 스웨덴군과 합류해야 한다는 것, 오스트리아군 22만 명은 러시아군 10만 명과 합류해 이탈리아와 라인 지역에서 행동해야 한다는 것, 러시아군 5 만 명과 영국군 5만 명은 나폴리에 상륙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총 50만 군대가 사방에서 프랑스군을 공격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말했다.


노공작은 마치 듣고 있지 않는 듯 아들의 이야기에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고 계속 돌아다니며 옷을 입다가 세 번에 걸쳐 아들의 말을 갑자기 끊었다. "좋지 않아! 계속해라, 계속해."

아들은 그저 빙그레 웃었다. "이것이 제가 찬성하는 계획이라고 말씀드리는 건 아닙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나폴레옹도 이미 그에 못지않은 계획을 세웠습니다."

“음, 네가 말한 것은 아무것도 새로운 게 없잖느냐.” 노인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빠르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말버러는 전장으로 떠나고 언제 돌아올지는 신만이 아시네. 식당으로 가거라.”


24


정해진 시각이 되자 머리에 분을 바르고 깨끗이 면도를 한 공작이 식당으로 나왔다. 며느리와 마리야 공작 영애, 마드무아젤 부리엔 그리고 공작의 건축 기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분이 변변치 않은 건축 기사는 그런 영광을 결코 기대할 수 없었는데 공작의 기묘한 변덕으로 식탁에 함께 자리하게 된 것이었다. 공작이 그를 내세워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증명하려 들었고, 딸에게 미하일 이바노비치는 너나 나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는 생각을 빈번히 불어넣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그에게는 새로운, 볼콘스키 공작 가문의 나무 모양 가계도가 끼워진 거대한 금빛 액자를 바라보았다. 맞은편에도 똑같이 거대한 액자가 걸려 있었다. 류리크 가문 출신으로 볼콘스키 가문의 선조임에 틀림없는 왕관 쓴 대공을 그린 조야한 그림이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여기에 오면 아버지의 모든 것을 알게 되는구나!" 그는 가까이 다가 온 마리야 공작 영애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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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은 여느 때처럼 유쾌한 표정으로 빠르게 걸어 들어와 공작 부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쁘구나, 기뻐!" 그는 이렇게 말하고 빠르게 걸음을 옮겨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며느리에게 자기 옆자리를 가리켰다. 하인이 그녀를 위해 의자를 빼 주었다.

"호, 호!" 노인이 며느리의 둥그스름한 허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걸어야 한다. 되도록 많이, 되도록 많이 걸어야 해." 노인이 말했다.


대화는 다시 전쟁과 보나파르트와 현재의 장군들과 각료들에 관한 것으로 접어들었다. 노공작은 요즘 활동하는 사람들은 전부 군무와 국정의 기본도 모르는 풋내기들일 뿐이라고, 보나파르트는 그와 맞설 포툠킨과 수보로프 같은 인물들이 없어서 성공한 하찮은 프랑스 놈에 불과 하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게다가 그는 심지어 유럽에는 어떠한 정치적 난관도 전쟁도 없다고, 오늘날의 인간들이 일하는 척하며 연기하는 우스꽝스러운 인형극 같은 것만 있을 뿐이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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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공작은 새로운 인물들에 대한 아버지의 조롱을 쾌활하게 참아 내면서 즐거운 기색으로 아버지를 대화에 끌어들이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예전 일은 다 좋아 보이지요." 그가 말했다.

"모든 명령이 훌륭했다고 말하는 건 전혀 아닙니다."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 "다만 저는 어째서 아버지가 보나파르트를 그렇게 판단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마음껏 조롱하세요. 그래도 보나파르트는 위대한 사령관입니다!"


"보나파르트는 루바시카를 입고 태어났어.(* 행운을 타고 태어났다는 뜻) 그의 병사들은 훌륭하지. 게다가 그놈은 독일인들을 가장 먼저 공격했다. 독일인들을 치지 않는 건 게으름뱅이들뿐이다. 세상이 존재한 이래 모두가 독일인들을 쳤지. 그들은 아무도 치지 못하고 그저 자기들끼리 치고받았어. 그 녀석은 그놈들 위에서 자기 영광을 이룩했고."


그리고 공작은 자신이 이해하기에 보나파르트가 전쟁뿐 아니라 국무에서 저지른 실수까지 모두 분석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반박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논거가 제시되든 그도 노공작만큼이나 자신의 견해를 바꾸는 데 소질이 거의 없어 보였다. 안드레이 공작은 이 노인이 오랜 세월 시골에 혼자 칩거하고 있으면서도 최근 몇 년에 걸친 유럽의 모든 군사적, 정치적 상황을 어떻게 그처럼 상세하고 그처럼 예리하게 알고 판단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라고 있었다.


"너는 나 같은 늙은이는 정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게냐?" 그는 말을 맺었다. "그건 바로 여기 내 머릿속에 있다! 나는 밤에 잠도 자지 않는다. 음, 그런데 너의 그 위대한 장군은 어디에서, 도대체 어디에서 자신의 역량을 드러내고 있는 거냐?"

"그건 긴 이야기가 될 겁니다." 아들이 대답했다.


25


이튿날 저녁, 안드레이 공작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식사 후에 노공작은 자신의 질서를 양보하지 않고 자기 방으로 가 버렸다. 작은 공작 부인은 시누이 방에 있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견장을 달지 않은 여행용 프록코트 차림으로 자신에게 제공된 방에서 시종과 함께 짐을 꾸렸다.


현관방에서 발소리가 들리자 그는 황급히 팔을 풀고 탁자 곁에 멈춰 서서 소지품 상자를 싼 주머니의 끈을 묶는 척하며 언제나처럼 속을 알 수 없는 차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공작 영애 마리야의 무거운 발소리였다.

"오빠한테 큰 부탁이 있어. 이콘으로 오빠를 축복해 줄게. 그러니까 약속해. 절대 몸에서 떼지 않겠다고…….”

“그게 2푸드쯤 나가서 목을 잡아당기지만 않으면……. 널 만족시키기 위해서…….” 안드레이 공작은 이렇게 말했지만, 이 농담에 누이의 얼굴이 슬픈 표정을 띠는 것을 보고 덧붙였다. “무척 기뻐, 정말이야, 진짜 기뻐.”



안드레이 공작이 서재에 들어갔을 때 노공작은 돋보기안경을 쓰고 하얀 할라트를 걸친 채 탁자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다. 그는 아들 외에는 누구도 할라트 차림으로 맞이하지 않았다. 그가 돌아보았다.

“가는 거냐?” 그러고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작별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여기에 입을 맞춰 다오.” 노공작이 뺨을 내밀었다. “고맙다, 고마워!”

"왜 제게 고마워하십니까?"

"꾸물거리지 않고 여자 치맛자락에 매달리지 않아서다. 직무가 최우선이지. 고맙다, 고마워!" 그러고는 사각거리는 펜족에서 잉크 방울이 튀도록 글을 써 나갔다. "할 말이 있으면 해라. 난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있다." 그가 덧붙였다.


"아내가 해산할 때쯤 모스크바에서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 주시면……. 의사가 여기 있게 해 주십시오."

노공작은 손을 멈추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엄한 눈길로 아들을 응시했다.

"불행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1백만분의 1이라는 것을 저도 인정합니다. 다만 그것은 아내와 저의 망상입니다. 사람들한테 계속 그런 말을 듣고 자신도 그런 꿈을 꾸곤 해서 아 내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흠…… 흠……." 노공작은 글을 마저 쓰며 혼잣말을 했다. "그렇게 하지."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들에게 편지 한 통을 건넸다.

"편지를 미하일 일라리오노비치에게 전해라. 널 좋은 자리에 활용하고 오랫동안 부관으로 붙들어 두지 말라고 썼다. 그건 비루한 직무다! 그에게 말해라. 내가 그를 기억하고 또 사랑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가 널 어떻게 대하는지 편지해라. 대우가 좋으면 계속 복무해라. 니콜라이 안드레예비치 볼콘스키의 아들이 동정에 기대어 누구 밑에서 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 이리 와라."


그는 책상 쪽으로 아들을 데리고 가서 뚜껑을 열고 서랍을 빼더니 촘촘한 필체로 가득 채워진 공책을 꺼냈다.

"틀림없이 내가 너보다 먼저 죽을 게다. 여기에 나의 기록이 있다는 것을 알아 두어라. 내가 죽은 후에 이것을 폐하께 전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롬바르드 채권과 편지다. 이것은 수보로프 전쟁사를 저술하는 사람에게 줄 상금이다. 학술원에 보내라. 이것은 나의 비망록이니 내가 죽은 후에 너 자신을 위해 읽어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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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작별이다!" 그는 아들에게 자신의 손에 입을 맞추게 하고 그를 안았다.“한 가지만 기억해라, 안드레이 공작. 네가 죽는다면 나는, 이 늙은이는 고통스러울 것이다……."“그러나 네가 니콜라이 볼 콘스키의 아들로서 제대로 처신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날에는 나는…… 수치스러울 것이다!" 그가 날카롭게 외쳤다.

"제게 그런 말씀은 하실 수 없을 텐데요, 아버지." 아들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버지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또 있습니다.” 안드레이 공작이 말을 이었다. “만일 제가 죽고, 제게 아들이 생기면 그 아이를 아버지 곁에서 떼어 놓지 말아 주십시오. 어제 말씀드렸다시피 그 아이가 아버지 밑에서 자랄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아내에게 맡기지 말라고?” 노인이 말하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작별 인사는 끝났다……. 가거라!” 갑자기 그가 말했다. “가거라!” 그는 서재 문을 열며 성난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앙드레, 벌써요?" 작은 공작 부인이 하얗게 질려서 두려움 어린 눈길로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가 그녀를 안았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고 정신을 잃으며 그의 어깨로 쓰러졌다.

그는 아내가 기댄 어깨를 조심스럽게 뺀 후 그녀를 안락의자에 조심스럽게 앉혔다.

"안녕, 마리."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누이에게 말하고 서로 손에 입을 맞춘 후 빠른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공작 부인은 안락의자에 누워 있고, 마드무아젤 부리엔이 그녀의 관자 놀이를 문지르고 있었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올케를 부축한 채 눈물에 젖은 눈으로 안드레이 공작이 나간 문을 바라보며 그를 위해 성호를 그었다.


<제1권 제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