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제2부
제2부
1 (신역사학의 등장)
역사의 대상은 여러 민족과 인류의 삶이다. 그러나 인류뿐 아니라 한 민족의 삶도 이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언어로 포괄하는 것, 즉 서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옛날 역사가들은 모두 표현하기 어려워 보이는 민족의 삶을 포착하기 위해 하나의 단순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것은 민족의 삶을 포착하기 위해 '민족을 다스리는 개별 인간의 활동'을 서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 활동은 민족 전체의 활동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개별 인간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민족을 움직였는가', '무엇이 이 개별 인간의 의지를 지배했는가'라는 질문에 고대인들은, 선택받은 한 인간의 의지에 민족들을 종속시키는 신의 의지를 인정하고, 선택받은 인간의 이 의지를 예정된 목적으로 이끄는 동일한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답했다. 즉, 신이 선택받은 자를 통하여 인간사에 직접 개입한다고 믿음으로써 이 질문들을 해결했다.
새로운 역사학은 그 이론에 있어서 이러한 명제를 부정했다. 그렇다면 이제 새 역사학은 권력의 현상이 아니라 '권력을 형성하는 원인'을 연구해야 했다. 그러나 새 역사학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신 대신 비범한 초인적 능력을 부여받은 영웅 또는 군주부터 언론인에 이르기까지 대중을 이끄는 온갖 다양한 자질의 인간들을 내세웠고, 신의 뜻 대신 자신의 목적(국가의 안녕 내지 인간 문명의 안녕)을 제시했으며, 이때 모든 인간은 대륙 북서쪽의 한구석을 차지한 몇몇 나라의 민족들을 가리켰다.
기번(Edward Gibbon, '로마 제국 쇠망사'의 저자)을 비롯해 버클(Henry Thomas Buckle, '영국 문명사'의 저자)에 이르기까지 최근 역사가들이 저술한 저작에는 비록 그들간에도 의견이 엇갈리고 견해가 참신해 보일지라도 다음의 두 가지 오래되고 불가피한 명제가 깔려 있다.
첫째, 역사가는 그들의 견해에 의하면 인류를 이끄는 개별 인물들(어떤 역사가는 이런 인물들이 군주, 사령관, 대신이라 생각하고 또 다른 역사가는 군주와 웅변가를 빼고 학자, 개혁가, 철학자, 시인을 포함시킨다)의 활동을 기술한다.
둘째, 역사가에게는 인류가 인도되어 가는 목적이 분명한 것으로 되어 있다. 어떤 역사가에게 이 목적은 로마, 스페인, 프랑스 왕국의 위대함이고, 또 다른 역사가에게 그것은 유럽이라 불리는 세계의 한구석에서 일어난 자유와 평등과 어떤 종류의 문명이다.
1789년 파리에서 소요가 일어난다. 이 소요는 확대, 확산되어 서쪽에서 동쪽으로의 민족 이동으로 나타난다. 그 운동은 몇 차례 동쪽으로 향했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는 반대 방향의 운동과 충돌하다가 1812년에 자신의 극한인 모스크바에 이른다. 한편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는 반대 방향의 운동은 첫 번째 운동과 마찬가지로 중부의 여러 민족들을 끌어들이면서 눈에 띄는 대칭을 이루며 발생하여 첫 운동의 출발점이었던 곳, 즉 파리에 이르러서야 멈추었다.
이 20년 동안 거대한 면적의 밭은 경작되지 못했고 집들은 불탔으며 상업의 방향은 바뀌었고 수백만 명이 가난해지거나 부유해지거나 이주했다. 그리고 이웃 사랑의 계율을 따르던 수백만 명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서로를 죽였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집에 불을 지르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죽이게 만들었는가? 이 사건들의 원인은 무엇인가? 어떤 힘이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행동하게 만들었는가?라는 것들은 인류에게는 지극히 소박하고 당연한 의문들이다.
새로운 역사학은 이 질문들에 답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은 이러한 이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일어났는지, 그 사건들을 일으킨 힘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들어라.
루이 14세는 매우 오만하고 자신을 과신한 인간이었다. 그에게는 이런저런 정부(情婦)들과 이런저런 대신들이 있었고 그는 악정을 일삼았다. 루이의 후계자들은 나약했고 역시 프랑스에 악정을 펼쳤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이런저런 총신들과 이런저런 정부들이 있었다. 당시 몇몇 사람들은 책을 쓰기까지 했다. 18세기 말 파리에 스무 명가량의 사람들이 모여 만인은 평등하며 자유롭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파리 전역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베고 죽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왕을 비롯하여 그 밖의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그 무렵 프랑스에 천재적인 인간이 있었는데, 바로 나폴레옹이었다. 그는 매우 천재적이었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승리했다. 즉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그리고 무언가를 위해 아프리카인들을 죽이러 가서 그들 또한 훌륭히 해치웠고, 매우 교활하고 똑똑했기에 프랑스에 돌아와서는 모든 이들에게 자기를 따르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모두가 그에게 복종했다. 황제가 된 그는 다시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국민을 죽이러 가서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그런데 러시아에 알렉산드르 황제가 있었다. 그는 유럽의 질서를 회복하기로 결심하고 나폴레옹과 전쟁을 벌였으나 1807년에 갑자기 화친을 맺었고, 1811년에는 전쟁을 재개하여 또다시 많은 국민을 죽이기 시작했다. 나폴레옹은 60만 군대를 이끌고 러시아에 침입하여 모스크바를 점령하지만 느닷없이 그 도시를 버리고 도주했다. 그때 알렉산드르 황제는 슈타인과 여러 사람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유럽의 평화를 파괴한 자에 맞서 무장하도록 유럽을 규합했다.
나폴레옹의 동맹자들 전부가 갑자기 그의 적이 되었고 무장한 군대는 새롭게 힘을 모은 나폴레옹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동맹자들은 나폴레옹을 물리쳐 파리에 입성한 후 나폴레옹을 퇴위시켰다. 5년 전만 해도, 그리고 그 후 1년 뒤에는 모든 이들이 그를 무법의 도적으로 간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에게서 황제의 칭호를 박탈하지 않고 여전히 그에게 모든 경의를 표하면서 그를 엘바섬으로 유배 보냈다.
그때까지 프랑스인들과 동맹자들로부터 비웃음만 샀던 루이 18세가 왕위에 올라 그의 치세가 시작되었다. 나폴레옹은 옛 근위대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퇴위하고 유배를 떠났다. 그 후 노련한 정치가들과 외교관들이 (특히 가장 먼저 자리를 성공적으로 차지하여 프랑스의 국경을 확장한 탈레랑) 빈에서 회담을 열었고 그 회담은 여러 민족들을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외교관들과 군주들이 거의 논쟁을 벌이다시피 했고 이미 그들은 자국 군대에 서로를 죽이라고 또다시 명령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때 나폴레옹이 1개 대대를 이끌고 프랑스에 돌아왔고, 그를 증오하던 모든 프랑스인들은 바로 그에게 복종했다. 하지만 동맹국의 군주들은 이에 분노하여 다시 프랑스인들과 전쟁을 벌였고 그들은 천재적인 나폴레옹을 격퇴한 후 그를 약탈자 취급하며 세인트헬레나섬으로 유배를 보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프랑스로부터 분리된 유형자는 그 섬의 바위 절벽에서 천천히 죽어 갔고, 자신의 위업을 후세에 전했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반동이 일어나 모든 군주들이 다시 자신의 국민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것을 역사적인 서술에 대한 우롱이나 희화화로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오히려 이것은 각종 회고록과 온갖 역사서가 주는 모순 투성이의 대답으로서는 그나마 가장 온화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대답들이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운 이유는, 새 역사학이 누구도 제기하지 않은 질문에 대답하는 어리석은 사람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만약 역사학의 목적이 인류와 여러 민족들의 움직임을 기술하는 것이라면,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질문, '어떠한 힘이 여러 민족을 움직이는가?'에 대해 새 역사학은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나폴레옹의 천재성과 루이 황제의 오만함, 저술가 같은 이들을 언급하기 전에 '이러한 인물들과 여러 민족들의 움직임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보여 주어야 한다. 만약 신의 권력 대신 '새로운 다른 힘'이 있다면 그 힘이 무엇인지 설명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역사의 모든 관심은 바로 이 힘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2 (어떤 힘이 민족들을 움직이는가)
어떤 힘이 민족들을 움직이는가? 전기(傳記)를 다루는 일부 역사가들과 각 민족을 연구하는 역사가들은 이 힘을 영웅과 군주만이 가진 권력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한 명의 역사가가 단 하나의 사건을 연구하는 경우에만 그렇다. 다양한 국적과 견해를 가진 역사가들이 동일한 사건을 기술하는 순간, 그들이 내놓는 대답은 그 즉시 모든 의미를 상실하는데 왜냐하면 그 힘에 대한 역사가들의 이해가 다양할 뿐 아니라 때로는 전혀 상반되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부류의 역사가들은 동일 인물의 권력의 토대가 되는 힘을 설명할 때조차 서로 모순되는 주장을 펼친다. 나폴레옹 옹호자인 티에르는 나폴레옹 권력의 토대가 '미덕과 천재성'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화주의자 랑프레에 따르면, 그 힘의 토대는 국민을 상대로 한 나폴레옹의 '사기와 기만'이다. 이처럼 이런 부류의 역사가들은 상대방의 명제를 파괴하는 동시에 사건을 일으키는 힘에 대한 개념을 깨뜨리므로 역사의 본질적 의문에 대한 아무런 대답도 주지 않는다.
모든 민족을 다루는 일반 역사가들은 사건을 발생시키는 힘에 대한 개별 역사가의 관점이 옳지 않음을 인정하는 듯하다. 그들은 이 힘을 영웅과 군주의 고유 권력이 아니라 '다양한 방향으로 뻗은 많은 힘들의 결과'로 인정한다. 전쟁이나 국민의 정복을 기술할 때 사건과 결부된 많은 인물들의 상호 작용에서 사건의 원인을 찾는다. 이 견해에 따르면, 역사 속 인물들의 권력은 많은 힘들의 산물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미 그 자체로는 사건을 일으키는 힘으로서 고찰될 수 없을 듯싶다.
그런데 일반 역사가들은 대부분 권력의 개념을 '자체적으로 사건을 일으키거나 사건의 원인이 되는 힘'으로 파악한다. 그들의 저술에 따르면, 역사 속 인물은 시대의 산물이고 그 권력은 다양한 힘들의 산물일 뿐이다. 또 그의 권력은 사건을 일으키는 힘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게르비누스(Georg Gottfried Gervinus, 독일 역사가)와 슐로서(Friedrich Christoph Schlosser, 독일 역사가)를 비롯한 여러 역사가들은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과 1789년 이념 등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다가, 1812년의 원정과 그 밖에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여러 사건들은 모두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 나폴레옹의 의지의 산물이며, 1789년 이념들은 그의 전횡 때문에 중단되었다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이런 기이한 모순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단계에서 발견될 뿐 아니라 일반 역사가들이 남긴 기록들 역시 모순의 연속이다. 이 모순은 일반 역사가들이 분석의 토대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도중에 멈추기 때문에 생긴다. 합력 또는 합력을 구성하는 분력들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분력의 총합이 합력과 같아야 한다. 일반 역사가들은 이 조건을 결코 준수하지 않았고, 따라서 합력을 설명하기 위해 그들은 불충분한 분력들 외에도 합력에 따라 작용하는 해명되지 않은 힘의 존재를 가정할 수밖에 없다.
특정 사건을 다루는 개별 역사가들은 1813년의 원정이나 부르봉 왕가의 복고를 기술하면서 이 사건들이 알렉산드르 1세의 의지에 의해 일어났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게르비누스 같은 일반 역사가는 1813년의 원정이나 부르봉 왕가의 복고가 알렉산드르 1세의 의지 외에도 슈타인, 메테르니히, 마담 스탈, 탈레랑,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독일 국민에게 고함(Reden an die deutsche Nation)》으로 유명), 샤토브리앙(François-René, vicomte de Chateaubriand) 등의 활동 때문이라는 점을 보여 주려고 애쓴다.
이 역사가는 알렉산드르 1세의 권력을 탈레랑, 샤토브리앙 같은 구성 요소들로 분해한 것이지만 구성 요소들의 총합, 즉 샤토브리앙과 탈레랑과 마담 스탈 등의 상호 작용은 합력 전체, 즉 수백만 명의 프랑스인들이 부르봉 왕가에 굴복한 현상과 동등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샤토브리앙과 마담 스탈과 그 밖의 여러 사람들이 이런 저런 말을 서로 주고받은 것에서 도출되는 것은 수백만 명의 복종이 아니라 그들의 상호 관계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A 와 동등한 구성 요소들로부터 어떻게 1천 개의 A와 같은 합력이 나왔는지 해명하기 위해 역사가는 불가피하게 자신이 부정했던 권력의 힘을 다시 인정하고 그것을 여러 힘의 결과로 인정해야 한다.
시골 주민들은 비의 원인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므로 자신들이 비를 바라느냐 맑은 날씨를 바라느냐에 따라 바람이 비구름을 쫓거나 비구름을 몰고 왔다는 식으로 말한다. 일반 역사가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은 때로 자신들이 바라는 것이 자기 이론에 부합할 때에는 권력이 사건들의 결과라고 말하지만 때로 자신들이 다른 것을 입증해야 할 때에는 권력이 사건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문화사가'라 불리는 세 번째 부류의 역사가들은 때로 작가들과 귀부인들을 사건을 일으키는 힘으로 인정하는 일반 역사가들이 만든 길을 따라가면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 힘을 이해한다. 그들은 이른바 문화 속에서, 지적 활동 속에서 그 힘을 본다. 이런 역사가들은 살아 있는 모든 현상에 수반되는 모든 무수한 징후들 속에서 지적 활동의 징후를 뽑아내어 이것이 원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를 증명하려는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적 활동과 여러 민족들의 움직임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려면 많은 양보가 필요하며 또한 어떤 경우에도 지적 활동이 인간 활동을 이끈다고 결코 가정할 수는 없다. 인간 평등에 대한 설교에서 비롯된 프랑스 혁명의 더 없이 잔인한 처형들과, 사랑을 주장하며 일으킨 무자비한 전쟁 같은 현상들은 그 가정을 뒷받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령 역사를 가득 채운 이 복잡한 논의들이 전부 옳다고, 또한 이념이라 불리는 어떤 모호한 힘이 여러 민족들을 지배 한다고 가정할지라도 역사의 본질적인 의문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또는 군주들의 이전 권력에, 일반 역사가들이 도입한 고문들과 여러 인물들의 영향력에 이념이라는 새로운 힘이 더 부가 되어 이 힘과 대중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
나폴레옹이 권력을 잡았고 그로 인해 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좀 더 양보해서 나폴레옹이 다른 영향력과 함께 사건의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계약론』 이라는 저작이 어떻게 프랑스인들이 서로를 침몰시켰는가에 대한 의문은 그 '새로운 힘과 사건의 인과 관계'에 대한 설명 없이는 이해될 수 없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는 의심할 여지 없이 연관성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인류의 움직임과 상업, 수공업, 원예업 등 어떤 것이든 그 사이에서 이런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듯이, 인간들의 지적 활동과 그들의 역사적 행위 사이에서도 어떤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문화사가들이 왜 인간들의 지적 활동을 모든 역사적 움직임의 원인이나 표현으로 제시하는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점점 모든 일반 역사를 흡수하기 시작한 문화사의 주목할 만한 점은 여러 종교적, 철학적, 정치적 학설을 사건의 원인으로 진지하게 분석하면서 일단 1812년 원정과 같은 현실의 역사 사건을 기술할 때에는 자기도 모르게 그 원정은 나폴레옹의 의지의 산물이라고 단언하며 권력의 산물로 기술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기술함으로써 그들은 무의식중에 자신과 모순 되거나 자신들이 생각해 낸 새로운 힘은 역사 사건들을 표현하지 않으며 역사를 이해하는 유일한 수단은 그들은 아마 인정하지 않는 듯 보이는 권력이라고 주장하게 된다.
3 (눈에 보이는 운동과 동등한 '힘')
기관차가 달린다. 기관차는 어떻게 움직이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농부는 악마가 그것을 움직인다고 말한다. 다른 이는 바퀴가 움직이므로 기관차가 달린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바람에 날리는 연기가 움직임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악마가 움직인다는 농부의 말을 반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의 말을 반박하려면 누군가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든지, 혹은 다른 농부가 그에게 악마는 없고, 어느 독일인이 기관차를 움직인 것이라고 설명해 주어야 비로소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퀴의 움직임이 원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반박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분석에 발을 디딘 이상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바퀴가 움직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기관차의 운동을 바람에 날리는 연기로 설명한 사람은 바퀴에 대한 설명이 원인을 재시하지 못하는 것을 깨닫고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특징을 취해 그것을 원인으로 제시한 것이다.
기관차의 운동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개념은 눈에 보이는 운동과 동등한 '힘'이라는 개념이다. 역사가 사건에 참여한 모든 사람의, 한 사람도 배제하지 않고 모든 사람의 역사로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카이사르, 알렉산드르 1세, 루터, 볼테르와 같은 개별 인물의 역사가 기록되는 한, '인간이 자신의 활동을 하나의 목적으로 향하게 만드는 힘'에 대한 개념 없이는 결코 인류의 움직임을 기술할 수 없다. 그리고 역사가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그 개념이 바로 '권력'이다.
오늘날의 역사 서술에서 사료(史料)를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손잡이가 바로 이 개념이고, 버클처럼 이 손잡이를 부러뜨린 자는 사료를 다루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한 채 그것을 다룰 마지막 가능성을 잃어버린 것이나 같다. 역사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권력이라는 개념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가장 잘 증명하는 이들은 권력이라는 개념을 부정하는 듯하지만 그것을 계속 이용할 수밖에 없는 일반 역사가들과 문화사가들이다.
인류의 여러 문제와 관련하여 역사학은 지금까지 통화, 즉 지폐와 주화 같은 것이었다. 전기적 역사와 개개 민족의 역사는 지폐와 비슷하다. 그것들이 무엇으로 보증되는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할 때까지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고 오히려 이익을 가져 다주며 자기 임무를 다해 통용되고 유통될 수 있다.
그러나 제작의 용이성으로 인해 사람들이 지폐를 대량으로 만들거나 그것을 황금과 교환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지폐의 실제 가치에 대한 의심이 발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누군가 단순한 생각으로 '나폴레옹은 도대체 무슨 힘으로 그런 일을 해냈을까?' 하고 질문한다면, 즉 통용되는 지폐를 실제 개념인 황금으로 교환하려 할 때, 이런 종류의 역사가 지니는 실질적 의미에 대한 의심이 발생한다.
일반 역사가들과 문화사가들은 지폐의 불편함을 인정하고 지폐 대신 금과 같은 밀도는 갖지 않지만 금속으로 된 주화를 만들기로 결심한 사람들과 유사하다. 그래서 화폐는 확실히 금속 화폐가 되지만 단지 주화일 뿐이다. 지폐는 여전히 잘 모르는 사람들을 속일 수 있지만 가치를 지니지 않은 주화는 아무도 속일 수 없다.
금은 교환에서뿐 아니라 실무에도 사용될 때에야 비로소 금이듯, 일반 역사가들도 '권력이란 무엇인가?' 라는 역사의 본질적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금이 될 것이다.
4 (권력이라는 힘의 의미)
민족의 의지가 신이 선택한 한 사람에게 종속되고 선택받은 자의 의지는 신에게 종속된다는 고대인들의 견해를 거부하는 한, 역사는 다음의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고는 모순 없이 단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다. 인간사에 신이 직접 개입한다는 이전의 믿음으로 되돌아갈 것인가, 혹은 역사적 사건을 일으키는 이른바 권력이라는 힘의 의미를 명확히 설명할 것인가.
이 권력은 약한 존재에 대한 강한 존재의 육체적 우위를 토대로 한 직접적인 권력일 수 없다. 또한 일부 역사가들이 단순한 생각 가운데 역사 속 인물은 영웅이고 천재성이라는 비범한 정신과 지력의 우위에 토대한 것일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그 누구보다 정신적으로 나약했음을 역사가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권력은 근원은 인물의 외부, 즉 권력을 가진 인물과 대중의 관계에 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권력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순금으로 교환해 주겠다고 약속하는, '역사의 환전상'이라 할 수 있는 법학도 이와 같이 권력을 이해한다. 권력이란 대중 의지의 총합으로, 이것은 대중에 의해 선출된 통치자들에게 명시적 혹은 암묵적 동의에 의해 이양된 것이다.
국가와 권력은 만약 그것이 수립될 수 있다면 어떻게 수립되어야 하는 가에 대한 논의로 이루어진 법학 분야에서는 이 모든 것이 매우 분명하지만 이러한 정의를 역사에 적용할 경우에는 여러 설명이 필요하다. 고대인들은 불을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무언가로 생각했듯이 법학도 국가와 권력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현대 물리학에서 불이 자연 요소가 아닌 현상인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에서 국가와 권력은 단지 현상일 뿐이다.
역사와 법학의 이러한 근본적인 견해 차이의 결과, 법학은 권력이 어떻게 수립되어야 하고 시간을 초월하여 부동으로 존재하는 권력이 무엇인지 상세히 말할 수 있으나 시간 속에서 변하는 권력의 의미에 대한 역사적 질문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다.
만약 권력이 지배자에게 이양된 대중 의지의 총합이라면 푸가초프(러시아 농민반란의 주동자)는 과연 대중 의지의 대표자인가?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나폴레옹 1세는 대표자인가? 나폴레옹 3세가 볼로뉴에서 체포되었을 때는 그를 죄인으로 여기다가 이후 그가 체포한 사람들이 죄인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국제 관계의 경우에도 대중의 의지는 침략자에게 이양되었는가? 1808년 라인 동맹의 의지는 나폴레옹에게 이양되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해서는 다음의 세 답변이 가능하다.
1) 대중의 의지는 '언제나 그들이 선택한 한 사람 혹은 몇 사람의 지배자들에게 무조건 이양'되므로 새롭게 출현한 권력, 즉 일단 이양된 권력에 맞서는 모든 투쟁은 현 정권에 대한 침해로 간주될 뿐임을 인정한다.
2) 대중의 의지는 '어떤 일정한 조건에서 조건부로' 통치자에게 이양된다는 점을 인정하고, 권력에 대한 모든 제약과 충돌, 나아가 붕괴까지도 통치자가 그 조건을 준수하지 않아 발생함을 제시한다.
3) 대중의 의지는 불명확한 미지의 조건에서 조건부로 지배자들에게 이양되며, 많은 권력의 출현과 그 투쟁과 파멸은 대중의 의지가 어떤 인물들에게서 다른 인물들로 이양되기 위한 '미지의 조건들을 통치자들이 어느 정도 준수할 경우'에만 발생함을 인정한다.
역사가들은 대중과 통치자의 관계를 위의 세 가지로 설명한다. 단순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권력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일부 역사가들은 마치 대중 의지의 총합이 역사 속 인물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이양되는 것처럼 이를 인정한다. 그들의 이론은 태고의 평화로운 시기에는 적합하지만 다양한 권력이 동시에 발생하여 투쟁하는 시기에 적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정통주의 역사가는 국민 공회와 총재 정부와 보나파르트가 단지 권력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며, 공화주의자와 보나파르트주의자의 경우에 전자는 국민 공회가, 후자는 제정이 진정한 권력이며 다른 나머지는 모두 권력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이 역사가들의 권력에 대한 설명은 이렇게 서로를 부정하기 때문에 아주 나이 어린 아이들에게나 적합할 것임에 틀림없다.
다른 부류의 역사가들은 역사에 대한 이런 시각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권력이란 대중 의지의 총합을 통치자에게 조건부로 이양하는 것을 바탕으로 하며 역사 속 인물은 오직 국민의 의지가 암묵적인 동의로 그에게 지시한 강령을 수행하는 조건에서만 비로소 권력을 가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역사가들은 그 조건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말해 주지 않고, 설령 말한다 해도 그들의 주장은 항상 서로 모순된다.
역사가들은 국민 운동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견해에 의거하여 이러한 조건을 프랑스 국민이나 다른 나라 국민들의 번영과 부, 자유, 계몽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들에 대한 역사가들 사이의 의견 충돌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조건들과 관련된 만인 공통의 유일한 강령이 존재한다고 인정할지라도 우리는 역사적 사실들이 거의 언제나 이 이론과 모순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만약 권력이 이양되는 조건이 국민의 부와 자유와 계몽에 있다면, 루이 14세와 이반 4세는 평온한 죽음을 맞이 할 때까지 통치한 반면, 루이 16세와 찰스 1세가 민중에게 처형 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 이 역사학자들은 강령에 위배된 루이 14세의 활동이 루이 16세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답한다.
그렇다면 왜 그 활동이 루이 14세와 루이 15세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루이 16세에게 영향을 미쳐야 했는가? 그리고 어느 기간 동안 영향을 미쳤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존재할 수도 없다.이런 시각으로는 왜 의지의 총합이 수 세기 동안 통치자와 그 후계자들로부터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그 후에 갑자기 50년 사이에 국민 공회와 총재 정부로, 나폴레옹, 알렉산드르 1세, 루이 18세, 다시 나폴레옹, 샤를 10세, 루이 필리프, 공화정, 나폴레옹 3세로 이양되었는지 거의 설명되지 않는다.
이처럼 한 인물에서 다른 인물로 급격히 대중 의지가 이양된 경우를 설명할 때, 특히 국제 관계와 침략과 동맹이 수반될 때 이 역사가들은 현상들 중 일부가 이미 의지의 올바른 이양이 아니라 외교관, 군주, 정당 지도자의 모략, 실책, 간계, 약점에 따른 우연이라고 본의 아니게 인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내란, 혁명, 침략 등 역사 현상의 대부분은 이 역사가들에게 더 이상 자유 의지가 이양된 산물이 아니라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 한 사람 혹은 몇몇 사람들의 의지의 산물, 즉 권력에 대한 침해로 보인다. 따라서 이런 부류의 역사가들에게도 역사적 사건은 이론에서 벗어난 현상으로 간주된다.
세 번째 역사가들은 대중의 의지가 역사 속 인물들에게 조건부로 이양되지만 그 조건들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다고 인정한다. 그들은 역사 속 인물들이 권력을 갖는 것은 단지 그들이 자신에게 이양된 대중의 의지를 실현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역사가들은 역사 속 인물들이 스스로를 통해 대중의 의지를 표현하고, 역사 속 인물들의 활동은 대중의 활동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때는 다음의 의문이 생긴다. 역사 속 인물들의 모든 활동이 대중의 의지를 표현하는가, 아니면 그 활동의 어떤 일면만 그러한가? 이러한 난관에 부딪힌 이 부류의 역사가들은 최대한 많은 사건을 포괄 할 수 있는 매우 막연하고 포착하기 어렵고 일반적인 추상 개념을 고안해 내고는 이 추상 개념 속에 인류 운동의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 거의 모든 역사가들이 취하는 가장 일반적인 개념은 자유, 평등, 계몽, 진보, 문명, 문화다.
그러나 인류의 목적이 자유, 평등, 계몽, 문명이라는 것은 어떤 식으로도 증명할 수 없고 대중과 통치자 혹은 대중과 인류의 계몽자의 관계는 오직 대중 의지의 총합이 언제나 우리 눈에 잘 띄는 인물에게 이양 된다는 자의적인 추측에만 기초할 뿐이이므로, 주거를 옮기고 집을 불태우고 농사일을 버리고 서로를 죽인 수백만 명의 행동은 집을 불태우지도 않고, 농업에 종사하지도 않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죽이지도 않은 수십 명의 행동을 묘사한 기술 속에서 결코 표현되지 않는다.
역사는 끊임없이 이를 증명한다. 지난 세기말에 서쪽 나라들의 민족들의 동요와 그들의 동쪽으로의 돌진이 과연 루이 14세, 15세, 16세, 그들의 정부들과 대신들의 행동으로 혹은 나폴레옹, 루소, 디드로(Denis Diderot,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보마르세(Pierre Augustin Caron de Beaumarchais. 프랑스의 극작가로 『피가로의 결혼』, 『세비야의 이발사』 등을 썼다) 등의 생애로 설명될까? 러시아 민족이 동쪽의 카잔과 시베리아를 향해 이동한 것이 과연 이반 4세의 병적인 성격과, 그와 쿠릅스키(Andrei Mikhailovich Kurbskii)가 주고받은 서신을 상세히 기술하는 것으로 드러날까?
고드프루아(Godefroy de Bouillon, 제1차 십자군 원정의 주요 지도자. 성묘의 수호자라고 불리던 예루살렘 왕국의 최초의 통치자)와 미네징거(Minnesinger. 12~13세기 독일의 음유 시인들)의 역사는 여러 나라 민중의 생활을 포용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리하여 고드프루아와 미네징거의 역사는 고드프루아와 미네징거의 역사로만 그쳤고, 민중의 생활과 그들의 동기에 대한 역사는 알려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작가들과 개혁가들의 역사가 국민 생활에 대해 우리에게 설명해 준 것은 더더욱 적다. 문화사는 우리에게 작가나 개혁가의 동기와 생활 조건, 사상을 설명한다. 우리는 루터가 흥분하기 쉬운 성격을 지녔고 그가 이런저런 연설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루소가 의심이 많았으며 이런저런 책을 썼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무슨 이유로 종교 개혁 후 여러 민족들이 서로를 살육했는지, 프랑스 혁명기에는 왜 서로를 처형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만약 이 두 역사를 결합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민족들의 삶의 역사는 아니다.
5 (권력은 대중 의지의 총합이 이양된 것인가)
여러 민족들의 삶이 몇몇 인물들의 삶 속에 수용될 수는 없는데, 왜냐하면 이 몇몇 인물들과 국민들 사이에 연관성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수의 의지의 총합이 역사 속 인물에게 이양된다는 것에 기초한다는 이 이론은 역사의 경험에 의해 확인되지 않은 가설에 불과하다. 그러한 이론은 법학 분야에서라면 매우 많은 것을 설명하고 또한 목적을 위해 꼭 필요할 수도 있으나 이를 역사에 적용할 경우 혁명과 침략과 내란이 발생하는 순간, 즉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 이 이론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이 이론이 반박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이유는 민중의 의지를 이양하는 행위가 존재한 적이 없는 까닭에 이를 검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의 질문에 제시하는 답변은 움직이는 가축 떼를 보면서 들판의 여러 곳에 있는 목초의 다양한 질이나 목동의 몰이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무리의 선두에 있는 것이 어느 가축인가만 보고 가축 떼가 이리저리 향하는 원인을 판단하는 사람의 답변과 비슷하다.
"가축 떼가 이 방향으로 움직이는 이유는 선두에 있는 동물이 그 방향으로 가축 떼를 이끄는 데다 나머지 모든 동물의 의지의 총합이 이 가축 떼의 우두머리에게 이양되었기 때문이다." 권력이 통치자에게 무조건적 으로 이양됨을 인정하는 첫 번째 부류의 역사가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만약 선두에 선 동물이 바뀐다면, 그것은 그 동물이 가축 떼 전체가 선택한 방향으로 무리를 이끄는가에 따라 모든 동물의 의지의 총합이 한 통치자에게서 다른 통치자에게로 이양되기 때문에 발생한다." 대중 의지의 총합이 이미 알려진 일정한 조건 속에서 통치자에게 이양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역사가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이러한 관찰 방법을 적용할 경우 관찰자는 자신이 선택한 방향에 부합하여 대중의 방향이 바뀔 경우 이제는 앞쪽이 아닌 옆쪽에, 때로는 뒤쪽에 있는 것을 우두머리로 인정하는 일이 매우 잦다.)
"만약 선두에 선 동물이 계속해서 교체되고 무리 전체의 방향이 끊임 없이 바뀐다면,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방향에 이르기 위해 동물들이 자신의 의지를 우리 눈에 띄는 어떤 동물들에게 이양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축 무리의 이동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우리 눈에 띄는, 사방에서 움직이는 가축 떼 안의 모든 동물들을 관찰해야 한다." 군주부터 언론인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의 모든 인물들을 시대의 표현으로 인정하는 세 번째 부류의 역사가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대중의 의지가 역사적 인물에게 이양된다는 이론은 단지 말 바꾸기, 즉 질문의 문구를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역사적 사건들의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권력이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한 인물에게 이양된 대중 의지의 총합이다. 대중의 의지는 어떤 조건에서 한 인물에게 이양되는가? 그 인물이 모든 사람들의 의지를 표현한다는 조건에서다. 즉 권력은 권력이다. 권력이라는 말은 우리가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사건이 일어날 때는 언제나 한 명 혹은 여러 명의 사람들이 나타나고 그의 의지에 따라 사건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나폴레옹 3세가 명령하자 프랑스군이 멕시코로 향한다. 프로이센 왕과 비스마르크가 명령하자 군대가 보헤미아로 향한다. 나폴레옹 1세가 명령하자 군대가 러시아로 향한다. 경험은 어떤 사건이 발생하든 간에 그 사건이 그것을 지시한 한 명 혹은 여러 명의 의지와 항상 결부되어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한편으로 추론은 한 인간의 의지의 표현인 그의 말이 단지 전쟁이나 혁명 같은 사건으로 표현되는 전체 활동의 일부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 주므로 불가해한 초자연적 힘인 기적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그의 말이 수백만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든 직접적인 원인일 수 있다고는 인정할 수 없다.
인간사에 신이 개입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권력을 사건의 원인으로 인정할 수 없다. 경험의 관점에서 볼 때 권력은 한 인간의 의지 표현과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일어나는 의지 수행 사이에 존재하는 의존 관계일 뿐이다. 이러한 의존 관계의 조건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 의지의 표현이라는 개념을 신이 아닌 인간과 연관시켜 그 개념을 복구해야 한다.
우리는 명령과 사건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것들을 복구해야 한다.1) 발생하고 있는 일 전체의 조건, 즉 사건과 명령하는 인물 모두의 시간 속 운동의 연속성.2) 명령하는 인물과 명령을 수행하는 사람들 사이의 필수적인 관계의 조건.
6 (명령과 사건의 관계)
시간에 의존하지 않는 신의 의지 표현만이 몇 년 혹은 몇 세기 후에 일어날 일련의 모든 사건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고, 그 무엇에 의해서도 소환할 수 없는 신만이 자신의 의지로 인류의 운동 방향을 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시간 속에서 움직이고, 사건에 직접 참여한다.
간과된 첫 번째 조건인 시간이라는 조건을 복구하면 우리는 그 어떤 명령도 후속 명령의 수행을 가능하게 하는 선행 명령 없이는 수행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어느 하나의 명령도 자연 발생적으로 출현하여 일련의 사건들 전체를 포괄하지 않는다. 개개 명령은 다른 명령으로부터 나타나고 그 명령은 일련의 전체 사건이 아니라 언제나 사건의 한 가지 계기와 연관될 뿐이다.
명령이 확실히 수행되려면 인간은 실현 가능한 명령을 표현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이 실현되고 실현될 수 없는지를 아는 것은 수백만 명이 참여한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뿐 아니라 지극히 단순한 사건에서도 불가능한데, 왜냐하면 이런저런 것을 수행하다 보면 언제나 수많은 장애와 만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단지 가능한 명령들만 일련의 사건에 부합하는 일련의 명령들과 결합되어 실행될 뿐이다.
사건에 선행하는 명령을 사건의 원인으로 여기는 우리의 잘못된 생각은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고 사건들과 연관된 수천 가지 명령들 가운데 하나가 실행됐을 때 실행이 불가능하여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우리가 잊기 때문에 생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착각하는 주요 이유는 역사 기술에서 일련의 무의미하고 사소한 온갖 사건들, 예를 들어 프랑스 군대를 러시아로 이끈 모든 사건들이 그 일련의 사건들이 일으킨 결과에 따라 한 가지 사건으로 통합되고, 그 일반화에 따라 일련의 모든 명령들도 의지의 한 표현으로서 통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명령과 사건의 관계를 시간 속에서 고찰할 때, 어떠한 경우에도 명령이 사건의 원인일 수 없으며 이 둘 사이에 의존 관계가 존재함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이 아닌 인간에게서 나온 모든 명령에서 우리가 놓친 또 다른 조건, 즉 명령하는 인간도 사건에 참여하고 있다는 조건을 복구해야 한다. 명령하는 자와 받은 자의 이런 관계를 권력이라고 부른다. 그 관계는 다음에서 성립한다.
인간은 공동 행동을 위해 언제나 일정한 결합을 형성하고, 이러한 결합을 형성하면서 사람들은 항상 어떤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데, 그것은 그들이 함께한 공동 행동에서 가장 다수의 사람들이 가장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가장 소수의 사람들이 가장 덜 직접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공동 행동을 수행하기 위해 사람들이 형성하는 결합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고 명확한 형태 중 하나가 군대다.
명령하는 자와 명령받는 자의 이런 관계가 권력이라 불리는 개념의 본질을 형성한다. 모든 사건이 행해지는 시간이라는 조건을 복구했을 때 우리는 명령이 실행되는 것은 일련의 상응하는 사건들에 관련될 때에만 가능함을 발견했다. 명령하는 자와 실행하는 자 사이의 연관성이라는 필수 조건을 복구했을 때, 우리는 사건 자체에 가장 덜 참여하는 것이 명령하는 자의 특성이며 그들의 활동은 오직 명령에만 집중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7 (실현된 명령의 정당화)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그에 대한 견해와 희망을 표명하고,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단체 행동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표명된 견해나 희망들 가운데 하나는 대략적이긴 하지만 반드시 실현된다. 표명된 견해들 가운데 하나가 실현될 때 그 견해는 사건에 선행하는 명령으로서 사건과 결부된다.
사람들이 통나무를 끌고 있다. 통나무를 어디로 어떻게 끌어야 할지 나름대로 자신의 견해를 표명한다. 그러고 나서 통나무를 끌다 보니, 그 작업이 그들 중 한 사람의 말대로 되었음이 밝혀진다. 그 사람이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것이 원시 형태의 명령과 권력이다.
남들보다 손을 더 많이 움직여 일한 사람은 자기가 한 일을 숙고하고 전체 활동에서 생길 결과를 판단하고 명령을 내릴 가능성이 더 적다. 남들보다 더 많이 명령하는 사람은 말로 활동하느라 손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더 적다. 하나의 목적에 활동을 집중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큰 경우, 명령에 활동을 집중할수록 전체 활동에 직접 관여하는 일이 적은 사람들의 부류가 더욱더 눈에 띄게 드러난다.
인간은 혼자서 행동할 때, 언제나 자기 내면에 어떤 일련의 판단을 갖고 있는데, 그는 이 판단이 자신의 과거 활동을 이끌었고 현재 활동을 정당화하고 미래 행위를 예측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집단 또한 행동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공동 행동을 판단하고 정당화하고 앞으로의 일을 예측하게 한다.
우리가 알거나 혹은 알지 못하는 이유 때문에 프랑스인들이 서로를 쓰러뜨리고 베어 죽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사건에 상응하여 프랑스의 안녕과 자유, 평등을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는, 사건에 대한 정당화가 사람들의 의지 표명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사람들이 서로 베어 죽이는 것을 중단하자, 이는 권력의 통일과 유럽에 대한 저항 등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정당화가 뒤따른다.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이들을 죽이며 서쪽에서 동쪽으로 나아갔을 때에는 프랑스의 영광이니 영국의 비열함이니 하는 정당화가 수반된다. 역사가 말해 주듯 사건에 대한 이런 정당화는 어떤 보편적 의미도 갖지 않고, 인간의 권리를 인정하기 때문에 인간을 죽인다든지 영국을 모욕하기 위해 러시아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다든지 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이런 정당화는 동시대의 의미에 있어 필연적 의의를 지닌다.
이런 정당화는 사건을 일으킨 자들의 도덕적 책임을 면제해 준다. 이런 일시적인 목적은 열차 앞에서 선로를 청소하는 솔과 비슷한데,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의 도덕적 책임이라는 길을 청소해 주기 때문이다. 이런 정당 화 없이는 어떤 사건을 검토할 때 떠오르는 매우 단순한 질문, 수많은 인간들이 공동으로 범죄, 전쟁, 살인 등을 저지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해명할 수 없다.
오늘날 유럽의 복잡한 정치 및 사회 생활 형태에서 군주, 대신, 의회, 신문에 의해 규정되고 지시되고 명령되지 않았을 어떤 사건을 생각해 내는 게 가능할까? 국가의 통일, 국민성, 유럽의 균형, 문명에서 정당화를 발견할 수 없는 공동 행동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어떤 일이 발생할지라도 그 일은 항상 예견되고 명령된 것으로 판명될 것이다. 선박이 어느 쪽으로 향하든 간에 멀리서 보면 파도의 흐름은 자의적으로 제멋대로 움직일 뿐 아니라 선박의 움직임까지 이끄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역사가들은 사건과 관계를 맺는 명령으로서의 역사 속 인물들의 의지 표현만을 검토하기 때문에 사건이 명령에 의존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사건 자체와 역사 속 인물과 대중의 관계를 검토하면서 역사 속 인물들과 그 명령들이 사건에 의존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결론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수많은 명령들이 있다 해도 다른 원인이 없으면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에서 우리는 역사에 관한 두 개의 본질적인 질문, 즉 1) 권력이란 무엇인가? 2) 어떤 힘이 여러 민족의 움직임을 일으키는가?에 대해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다.
1) '권력'이란 어떤 인물이 다른 인물들과 맺는 관계로, 이 인물은 현재 발생하고 있는 공동 행동에 대한 견해와 예측과 명분을 많이 표명할수록 사건에는 덜 참여한다.
2) 여러 민족의 움직임을 일으키는 것은 역사가들이 생각하듯 권력도, 지적 활동도, 심지어 두 가지의 결합도 아닌, 사건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활동, 사건에 가장 직접적으로 참여할수록 가장 덜 책임을 지고 그 반대도 성립하는 형태로 언제나 서로 연결된 모든 사람의 활동이다.
정신적 측면에서는 사건의 원인이 권력인 것처럼 보이고, 육체적 측면에서는 권력에 복종하는 사람들이 원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육체 활동을 수반하지 않는 정신 활동은 생각할 수 없으므로 사건의 원인은 그 두 가지의 결합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고찰하는 현상에는 원인이라는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 마지막 분석에서 우리는 인간의 이성이 사유의 모든 영역에서 도달하게 될 한계인 영원이라는 원에 다다를 것이다.
전기는 열을 발생시키고, 열은 전기를 발생시킨다. 원자들은 서로를 끌어당기기도 하고 밀어내기도 한다. 우리는 열과 전기의 상호 작용과 원자에 대해 이것이 왜 발생하는지 말하지 못하고 달리 생각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그래야만 하니까, 그것이 법칙이니까 그렇다고 말한다.
역사 현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전쟁이나 혁명은 왜 일어날까? 우리는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곤 단지 이런저런 행위를 실현하기 위해 사람들이 어떤 결합을 형성하여 모두가 참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달리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그런 것이다, 그것이 법칙이다, 라고 말한다.
8 (역사의 법칙은 인간에 관한 것-자유 의지)
만약 역사가 외적 현상에 관한 것이라면 단순하고 명백한 법칙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역사의 법칙은 인간에 관한 것이다. 물질의 분자는 서로 당기고 밀고 할 요구를 전혀 느끼지 않으며 따라서 그 법칙은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역사의 대상인 인간은, 나는 자유로운 존재이고, 따라서 법칙에 종속되지 않는다고 직접 말한다.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문제는 역사가 내딛는 매 걸음에서 느낄 수 있다. 역사의 모순과 불명료함, 그리고 역사라는 학문이 가고 있는 잘못된 길은 이 질문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거한다. 만약 개개인의 의지가 자유롭게 발현된다면, 즉 사람이 나름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다면 역사 전체는 서로 아무 연관이 없는 일련의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1천 년의 시간에 걸쳐 수백만 명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자유롭게 행동할 가능성을, 즉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가능성을 지녔다면 모든 인류에 적용될 법칙의 존재 가능성을 모두 파괴할 것이다. 만약 인류의 행위를 지배하는 법칙이 단 하나라도 존재한다면 자유 의지란 있을 수 없는데, 왜냐하면 인간의 의지는 그 법칙에 종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신학적・역사적・윤리적・철학적 시각 등 어떤 시각에서 인간을 관찰 대상으로 바라볼 때,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러하듯 인간 역시 종속되어 있는 필연이라는 공통의 법칙을 발견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것들을 인식할 때와 마찬가지로 인간을 내부로부터 바라보면 우리는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낀다.
이성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고, 그와 무관한 이 의식은 '자기 인식을 위한 근원'이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 스스로를 관찰한다. 그러나 오직 '의식'을 통해서만 자신을 알게 된다. 자기를 인식하지 않고는 그 어떤 관찰이나 이성의 응용도 생각할 수 없다.
이해하고 관찰하고 추론하기 위해 인간은 먼저 자신을 살아 있는 존재로 의식해야 한다. 자신이 살아 숨 쉬는 존재임을 알고 있는 인간은 자신이 욕망하고 있는 존재임을 아는 것과 같고, 이는 곧 자신의 의지를 의식하는 것이다. 인간은 생의 본질을 이루는 자신의 의지를 자유로운 것으로 의식하며, 그와 달리 의식할 수는 없다.
일련의 경험과 판단이 각 사람에게 제시하는 것은 관찰 대상으로서의 인간이 일정한 법칙에 속해 있어 그것에 복종하며, 일단 인력의 법칙이나 비침투성의 법칙을 인식한다면 그는 이 법칙들과 투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바로 그 일련의 경험과 판단이 제시하는 또 다른 사실은 인간이 자기 내면에서 완전한 자유를 의식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인간의 모든 행위는 그 육체와 성격에, 그리고 그에게 작용하는 여러 요인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그 경험과 판단의 결론에 복종하지 않는다.
동일한 성격을 지닌, 동일한 조건에 처한 인간은 예전과 동일한 행동을 하기 마련이라고 경험과 판단이 제아무리 인간에게 가르쳐 주어도, 인간은 동일한 성격을 지니고 동일한 조건에서 항상 동일하게 끝나기 마련인 행위를 1천 번째 할 때에도 자신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경험 이전의 행동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인간이 동일한 조건에서 두 가지 행위를 상상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판단과 경험이 아무리 명백히 증명한다 하더라도 인간은 이런 자유의 본질을 형성하고 있는 무의미한 개념 없이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자유라는 개념이 없으면 인간은 삶을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가 없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잃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만약 이성에 있어 자유라는 개념이 동일한 순간에 두 가지 행위를 할 가능성 혹은 원인 없는 행위 같은 무의미한 모순으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의식이 이성에 속하지 않음을 증명할 뿐이다.
모든 사상가들이 인정하고 모든 이들이 예외 없이 감지하는 이 의식, 그것 없이는 인간에 대한 어떤 개념도 고안해 낼 수 없는 이 의식은 문제의 다른 측면을 이루기도 한다.
인간은 전지전능하고 지고지선한 하느님의 창조물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에 대한 의식에서 비롯된 개념인 죄란 무엇인가? 이것은 신학의 문제다.
인간의 행위는 통계로 표현되는 일반적인 불변의 법칙에 종속된다. 그렇다면 자유에 대한 의식에서 비롯된 개념인 사회에 대한 인간의 책임은 무엇일까? 이것은 법학의 문제다.
인간의 행위는 타고난 성격과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동기에 의해 일어난다. 그렇다면 자유에 대한 의식에서 비롯되는 행동들의 선악에 대한 의식과 양심은 무엇일까? 이것은 윤리학의 문제다.
일반적인 인류의 삶과 결부되었을 때, 인간은 그 삶을 규정하는 법칙에 종속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관계에서 독립했을 때는 자유로운 존재로 여겨진다. 여러 민족과 인류의 과거 삶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인간의 자유로운 활동의 산물로 보아야 하는가, 자유롭지 못한 활동의 산물로 보아야 하는가? 이것은 역사의 문제다.
지식이 대중화되었다고 자부하는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무지의 강력한 무기인 출판이 널리 보급된 덕분에 '의지의 자유'라는 문제는 문제 자체가 존재할 수도 없는 수준으로 국한되었다. 오늘날 이른바 진보적인 사람들의 대다수, 즉 무지한 무리는 문제의 한 가지 측면에만 몰두하는 자연 과학자의 연구를 문제 전체를 해결하는 것으로 여겼다.
인간의 삶은 근육 운동으로 표현되고, 근육 운동은 신경 활동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영혼과 자유는 없다.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시기에 원숭이로부터 발생했기 때문에 영혼과 자유는 없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쓰고 인쇄하지만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생리학과 비교 동물학을 통해 그토록 열정적으로 증명하려고 애쓰는 그 필연의 법칙이 수천 년 동안 모든 종교와 모든 사상가에 의해 인정되었을 뿐 아니라 단 한 번도 부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상상해 보지도 않는다.
인간이 우리가 모르는 시기에 원숭이로부터 발생했다면 그것은 인간이 우리가 아는 시기에 한 줌의 흙에서 발생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납득할 만하다. (전자의 경우에 X는 시간이고, 후자의 경우에 X는 발생의 방법이라는 데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인간의 자유에 대한 의식이 인간을 지배하는 필연 법칙과 어떻게 관계 맺는가의 문제를 비교 생리학과 동물학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에게서는 근육-신경 활동과 함께 의식 또한 관찰하기 때문이다.
9 (자유와 필연)
역사학은 자유와 필연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그 문제를 제기하는 다른 지식 분야와 비교할 때 장점을 갖고 있는데, 그 장점은 '역사학의 경우 이 문제가 인간 의지의 본질 자체와 관련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일정한 조건에서 발현한 의지에 대한 표상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사학은 추상적 학문을 대하는 경험적 학문의 입장으로 다른 학문들을 대한다.
역사학의 대상은 인간의 의지 자체가 아니라 의지에 대한 우리의 표상이다. 그러므로 역사학에는 신학, 윤리학, 철학과 마찬가지로 자유와 필연이라는 모순된 두 개념의 결합에 대한 해결할 수 없는 비밀이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각 사건이 어느 부분은 자유롭게, 어느 부분은 필연적으로 보일지라도 실제 생활에서 개별 역사 사건과 개별 인간 행위는 미세한 모순을 느끼지 않고 분명하고 명확하게 이해된다.
역사학은 자기 안에서 자유와 필연에 대한 개념을 정의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정의에 삶의 현상들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속하는 수많은 현상들, 항상 자유와 필연에 지배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 현상들로부터 자유와 필연에 관한 개념 자체의 정의를 도출해야 한다.
우리가 현상을 고찰할 때 그 관점의 차이에 따라 자유의 크고 작음에 대한 표상이 달라지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그러나 항상 동일한 것은 인간의 모든 행위가 우리에게 자유와 필연의 어떤 결합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어떤 행위를 고찰하든 우리는 그 안에서 일정량의 자유와 일정량의 필연을 발견한다. 그리고 필연에 대한 자유의 비율은 행위를 고찰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작아지거나 커지기도 하지만, 그 비율은 항상 반비례한다.
물에 빠져 다른 사람을 붙잡으려다 그 사람마저 빠뜨리는 사람, 또는 아기에게 젖을 먹이느라 지치고 굶주려 먹을 것을 훔친 어머니, 또는 규율에 익숙해져서 명령에 따라 대오를 이루고 무방비 상태의 인간을 죽인 사람. 이런 사람들의 상황을 아는 이에게 이들의 죄는 덜한 듯 여겨진다. 즉 이들이 덜 자유롭고 필연의 법칙에 더 종속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사람이 물에 빠 진 상태였고 어머니는 굶주려 있었으며 병사가 대오에 속해 있 었음을 알지 못하는 이에게는 이들이 보다 더 자유로워 보인다.
종교, 인류의 상식, 법학 그리고 역사학 역시 필연과 자유의 이러한 관계를 동일하게 이해한다. 자유와 필연에 대한 우리의 표상이 확대되고 축소되는 모든 경우는 예외 없이 오직 다음의 세 가지 근거를 갖는다.
1) 행위를 한 인간과 외부 세계의 관계,
2) 인간과 시간의 관계,
3) 인간과 행위를 유발한 원인의 관계.
1) 첫 번째 근거는 크거나 작은 정도의 차이가 있는 인간과 외부 세계의 관계, 즉 인간이 자신과 동시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점하는 일정한 위치에 대한, 명료성의 측면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는 개념이다. 바로 이것이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살아가는 사람의 행위, 가족이나 직무, 사업에 매인 사람의 행위가 고독하게 홀로 지내는 사람의 행위보다 명백히 덜 자유롭고 필연에 더 종속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근거이다.
2) 두 번째 근거는, 정도의 차이가 있는 인간과 세계의 시간적 관계로, 이는 인간의 행위가 시간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개념으로 명료함의 정도에서 차이가 있다. 인류의 출현을 야기한 최초의 인간이 저지른 타락이 현대 인간의 결혼보다 분명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여기에 근거한다. 그리고 수 세기 전에 살았던, 시간 속에서 나와 이어진 사람들의 생활과 활동을 아직은 그 결과를 모르는 현대의 생활보다 내가 자유롭게 보지 않는 것도 바로 여기에 근거한다.
이 점에서 자유와 필연의 정도에 대한 표상의 점진적 변화는 행위의 수행부터 그에 대한 판단까지의 시간 간격에 달려 있다. 만약 내가 현재 처해 있는 조건과 거의 동일한 조건에서 한 1분 전의 내 행동을 고찰한다면 나의 행위는 나에게 명백히 자유로워 보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10년 이상의 먼 과거의 행위를 회상한다면 내 행위의 결과는 나에게 훨씬 더 분명하게 보일 것이고 그 행위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는 일도 힘들 것이다.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전쟁은 우리에게 의심할 여지 없이 교활한 비스마르크와 그 외 인물들의 행위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나폴레옹 전쟁은 이미 의심스럽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영웅들의 의지의 산물로 보인다. 그러나 십자군 원정에서 우리는 이미 시간 속에 분명히 자리를 차지한 사건을 보게 되고, 그것 없이는 유럽의 새로운 역사를 생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십자군 원정의 연대기 필자들에게는 그 사건 역시 몇몇 인물의 의지의 산물로 보였을 뿐이다. 민족 이동에 대해서는 오늘날 그 누구도 유럽 세계의 부흥이 아틸라의 독단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역사에서 더 먼 과거에서 관찰 대상을 찾을수록 사건을 일으키는 인간의 자유는 더욱 의심스러워지고 필연 법칙은 더욱 분명해진다.
3) 세 번째 근거는 인과의 끝없는 사슬에 우리가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성은 인과의 사슬을 필연적으로 요구하므로, 우리가 이해한 각각의 현상, 즉 인간의 각 행위는 그 사슬 내에서 앞서 행한 일의 결과로, 또한 뒤에 행할 일의 원인으로 자신의 분명한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이 세 번째 근거로 인해 한편으로는 관찰에 의해 도출된, 인간이 종속된 생리학적・심리학적・역사적 법칙을 더 많이 알수록, 행위의 생리학적・심리학적・역사적 원인을 충실히 관찰할수록, 다른 한편으로는 관찰된 행위가 더 단순할수록, 관찰 대상인 사람의 성격과 지능이 덜 복잡할수록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행위는 우리에게 더 자유롭고 덜 필연적인 것처럼 보인다.
악행이든 선행이든 혹은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없는 경우이든 간에 우리는 어떤 행위의 원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 그 행위에서 최대의 자유를 인정한다. 범죄자가 악인들 사이에서 자랐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죄는 경감된다. 부모의 자기희생, 보상받을 가능성이 있는 자기희생은 이유 없는 자기희생보다 더 잘 이해되기에 공감을 덜 불러일으키고 덜 자유로워 보인다.
만약 관찰 대상인 인간이 어린아이나 미치광이나 바보처럼 지적 발달의 가장 낮은 단계에 있을 경우, 우리는 행위의 원인이나 성격과 두뇌의 단순함을 알기 때문에 이미 너무 많은 필연과 너무 적은 자유가 우리에게 보이고, 따라서 행위를 유발하는 명백한 원인 하나를 알게 되면 즉시 그 행위를 예언할 정도가 된다.
오직 이 세 가지 근거를 토대로 모든 법률에 존재하는 죄에 대한 책임 능력 면제와 죄를 감면해 주는 상황이 성립된다. 그 행위를 논의 대상으로 하는 인간 조건에 대한 앎의 정도에 따라, 행위의 수행부터 그에 대한 판단에 이르는 시간 간격의 정도에 따라, 행위의 원인에 대한 이해 정도에 따라 책임 능력은 크게 보이거나 작게 보인다.
10 (완전한 자유도 완전한 필연도 없다)
이처럼 자유와 필연에 대한 우리의 표상은, 외부 세계와의 관계가 가장 잘 알려지고, 사건 발생 이후부터 판단하는 시기까지의 기간이 가장 길고, 행동의 원인이 가장 잘 이해되는 상황에서 인간을 관찰할 때 최대의 필연과 최소의 자유에 대한 표상을 얻게 된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든 간에 우리는 결코 완전한 자유도 완전한 필연도 상상할 수 없다.
1) 우리가 외부 세계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인간을 아무리 상상 한다 해도 공간 속에서의 자유에 대한 개념을 결코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손을 올렸다가 내린다. 나의 행위는 나에게 자유로운 행위로 보인다. 그러나 모든 방향으로 손을 올릴 수 있는지에 대해 자문할 때 나는 주위의 물체들과 내 육체 구조상 행위에 대한 장애물이 적은 방향으로 손을 올렸음을 알게 된다. 인간을 자유로운 존재로 상상하려면 우리는 공간 밖에 있는 인간을 상상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불가능하다.
2) 우리가 아무리 판단의 시간을 행위의 시간에 근접시킨다 해도 우리는 결코 시간 속에서의 자유에 대한 표상을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1초 전에 한 행동을 관찰하더라도 그 행동은 그것이 실행되는 그 순간에 구속되므로 나는 여전히 행동의 부자유를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첫 번째 행동이 이루어진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그 순간 나는 오직 한 가지 행동만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어떤 행동을 했다면 그 행동은 오직 한 가지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다음 순간에 손을 올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내가 손을 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않았다. 그 행동을 자유로운 것으로 상상하기 위해서는 현재 안에서, 과거와 미래의 경계에서, 즉 시간 밖에서 상상해야 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하다.
3) 원인을 이해하기가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는 결코 완전한 자유의 표상, 즉 원인이 부재한다는 생각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 혹은 타인의 행동에서 의지 표현의 이유가 우리에게 아무리 이해되지 않더라도 이성의 첫 번째 요구는 원인을 가정하고 그것을 탐구하는 것이다. 원인이 없으면 그 어떤 현상도 생각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원인에도 좌우되지 않는 행위를 하기 위해 손을 올리지만 원인 없는 행위를 원한 것 자체가 내 행위의 원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일말의 자유 없이 오직 필연의 법칙에만 종속되는 인간 행위를 결코 상상할 수 없다. 자유 없이 필연의 법칙에만 종속된 인간 행위를 상상하려면 우리는 무한한 수의 공간 조건들, 무한한 시간적 기간과 일련의 무한한 원인들을 알고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
필연의 법칙에 종속되지 않는,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인간을 상상하려면 우리는 공간, 시간, 인과 밖에 있는 인간을 상상해야 한다. 우리는 대체로 인간의 세계관 전체를 형성하는 두 가지 근거, 즉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본질과 그 본질을 규정하는 법칙에 이를 것이다.
이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그것에 가시성을 부여하는 모든 형태들을 소유하고 있는 공간, 즉 물질은 무한하며 다른 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다. 2) 시간은 한순간의 쉼도 없는 무한한 운동이며 그 밖에 다른 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다. 3) 인과 관계는 시작도, 끝도 가질 수 없다.
의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나는 나 하나이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뿐이고 따라서 나는 공간을 포함한다. 2) 나는 흐르는 시간을 현재라는 정지된 시간으로 측정하고, 현재 안에서만 스스로를 살아 있는 존재로 인식한다. 따라서 나는 시간의 외부에 있다. 3) 나는 스스로를 나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의 원인으로 느끼기 때문에 인과 관계의 외부에 있다.
이성은 필연의 법칙을, 의식은 자유의 본질을 표현한다. 자유는 고찰되는 것이고, 필연은 고찰하는 것이다. 자유는 내용이고, 필연은 형식이다. 형식과 내용으로 서로 관계를 맺는 인식의 두 근원을 분리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상호 배타적이고 불가해한 자유와 필연이라는 개별적 개념들을 얻게 된다. 두 근원이 결합할 때 비로소 인간의 삶에 대한 명확한 표상이 생긴다.
자연의 생명력은 우리의 외부에 있고 우리는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 우리는 그 힘을 인력, 관성, 전기, 축력 등으로 부른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생명력을 인식하여 그것을 자유라고 부른다. 그러나 인력이 우리가 아는 한에서만 이해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각 사람이 느끼지만 그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자유의 힘은 우리가 그것을 지배하는 죽음과 같은 필연 법칙을 아는 한에서만 이해 가능하다.
경험 과학에서는 우리에게 알려진 것을 필연 법칙이라 부르고, 알려지지 않은 것을 생명력이라 부른다. 생명력은 우리가 삶의 본질에 관해 아는 것 이외의,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나머지 부분을 표현한 것일 뿐이다.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알려진 것을 필연 법칙이라 부르고, 자유는 우리가 인간 삶의 법칙에 관해 알고 있는 것 이외의, 아직 우리가 모르고 있는 나머지 부분에 대한 표현일 뿐이다.
11 (역사는 이성의 법칙으로 자유를 규정할 때 과학이 된다)
역사는 시간 속에 존재하는 외부 세계와의 관계 및 인과의 종속 관계 안에서 인간의 자유가 발현하는 현상을 고찰하면서 이성의 법칙으로 자유를 규정한다. 따라서 역사는 자유가 이성의 법칙에 의해 규정되는 한에서만 과학이 된다. 역사가 인간의 자유를 역사적 사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힘, 즉 법칙에 종속되지 않는 힘으로 인정하는 것은 천문학이 천체를 움직이는 자유로운 힘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인정하는 것은 법칙, 즉 모든 지식의 존재 가능성을 파괴한다. 만약 자유롭게 운동하는 천체가 단 하나라도 있다면 케플러와 뉴턴의 법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천체의 운동에 대한 어떤 표상도 종재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인간의 자유로운 행위가 단 하나라도 존재한다면 어떤 역사 법칙도, 역사 사건에 대한 어떤 표상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에는 인간의 의지가 운동하는 선(線)들이 존재한다. 선의 한쪽 끝은 미지 속에 감춰져 있고, 다른 한쪽 끝에서는 현재에 속한 인간의 자유에 대한 의식이 시공간과 인과의 종속 관계 안에서 움직인다. 우리 눈앞에서 이 운동 범위가 확장될수록 운동의 법칙은 더욱 분명해진다. 역사의 과제는 이 법칙을 포착하여 규정하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를 아무리 제한해도 우리가 자유를 법칙에 종속되지 않는 힘으로 인정하는 순간, 법칙은 존재할 수 없다. 이 자유의 경계를 무한으로 설정할 때, 즉 자유를 무한소로 고찰할 때에만 우리는 우리가 원인에 도달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될 것이고 그때가 되어서야 역사의 원인을 고찰하는 대신에 법칙을 고찰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을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 법칙들에 대한 고찰이 시작되었다. 옛 역사학이 현상의 원인을 끊임없이 세분화하며 자기 파멸로 가는 것과 함께 역사학이 습득해야 할 새로운 사고방식이 형성되고 있다. 이 길을 따라 인간의 모든 학문이 걸어갔다. 학문 중에서도 가장 정밀한 수학은 무한소에 도달하자 미분의 과정을 버리고 그 미지의 무한소들을 모두 합하여 또 다른 법칙, 즉 미지의 무한소의 모든 요소에 공통적인 특징을 탐구한다.
자연 과학도 이와 마찬가지로 원인에 대한 물음은 제쳐 두고 법칙을 탐구한다. 역사학도 같은 노선에 있다. 만약 역사학이 사람들의 생활 속 일화들을 기술하는 대신 여러 민족과 인류의 움직임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면, 원인이라는 개념을 제쳐 두고, 서로 동등하며 굳건히 결합된 자유의 모든 무한소 요소들에 공통적인 법칙을 탐구해야 한다.
12 (자유를 부정하고 종속성을 인정하는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여야 한다)
코페르니쿠스의 법칙이 발견되고 증명된 이후, 태양이 아닌 지구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하나가 고대인들의 우주론 전체를 붕괴시켰다. 이 법칙을 뒤엎을 수 있었다면 천체의 운동에 대한 옛 견해를 유지할 수 있었겠지만, 이 법칙을 뒤집지 않는 한 프톨레마이오스적 우주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프톨레마이오스적 우주는 여전히 오랫동안 연구되었다.
출산이나 범죄 발생의 수가 수학적 법칙에 종속되고, 어떤 지리적・정치 경제적 조건들이 이런저런 통치 형태를 결정하고, 주민과 토지의 관계가 민족의 이동을 가져온다는 사실이 표명되고 증명된 이후, 그 이후로 본질적으로 역사가 토대를 둔 기반들, 역사는 개인의 자유 의지의 소산이라는 명제가 붕괴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종래의 역사학은 그와 상반되는 통계, 지리, 경제 등의 여러 과학의 법칙과 나란히 여전히 연구되고 있다.
물리 철학에서는 신구 시각의 투쟁이 오랫동안 그리고 끈질기게 진행되어 왔다. 신학은 구시각을 옹호하고 나서며 신시각이 계시를 파괴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진리가 승리를 거두자 신학도 새로운 토대 위에 견고하게 구축되었다. 현대에도 역사에 대한 신시각과 구시각의 투쟁이 오랫동안, 그리고 끈질기게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똑같이 신학은 구시각을 옹호하고 나서며 신시각이 계시를 파괴한다고 비난한다.
이 경우든 저 경우든 투쟁은 양쪽 모두의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진리를 억누른다. 새로운 이론과 투쟁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그 진리를 인정하면 하느님과 우주 창조와 눈의 아들 여호수아의 기적에 대한 믿음이 무너질 것 같았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필연 법칙을 인정하면 영혼, 선악 그리고 이 개념 위에 세워진 모든 국가 제도와 교회 제도가 붕괴할 것처럼 보인다.
볼테르가 자기 시대에 그했던 것처럼 지금도 똑같이 필연 법칙을 수호하려는 소명받지 않은 옹호자들이 종교에 맞서는 무기로 필연 법칙을 이용한다. 그 당시 그랬던 것처럼, 즉 천문학에서 코페르니쿠스의 법칙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학에서 필연 법칙도 국가 제도와 교회 제도의 토대를 파괴하기는커녕 오히려 확고하게 하고 있다.
천문학에서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운 것은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직접적인 감각을 부인하고, 또 마찬가지로 행성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그와 같은 감각을 부인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그와 같이 역사에서도 개인이 공간과 시간과 인과 관계의 법칙에 종속된다고 인정하기 어려운 것은 자신의 개인적 독립성과 자유에 대한 직접적인 감각을 부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천문학의 새로운 시각이 “사실 우리는 지구의 움직임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지구의 부동성을 가정할 경우에 터무니없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반면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그 운동을 가정하면 우리는 법칙에 이르게 된다”라고 말했듯이, 역사학의 새로운 시각도 이렇게 말한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종속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자유를 가정하면 터무니없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반면 외부 세계, 시간, 인과 관계에 대한 자신의 종속성을 인정하면 우리는 법칙에 이르게 된다.”
즉, 인식되는 자유를 부정하고 우리에게 감지되지 않는 종속성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에필로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