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16)

에필로그 제1부

by Andy강성

[에필로그]

제1부

1


1812년 이후 7년이 지났다. 유럽의 역사라는 격동의 바다는 해안가에서 잠잠해졌다. 그것은 조용해진 것처럼 보였지만 인류를 움직이는 신비한 (그 운동을 결정하는 법칙들이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신비한 것이다) 그 힘은 계속해서 활동하고 있었다. 인간들의 결합인 다양한 집단이 만들어지고 해체되었다. 국가 형성과 붕괴의 동기들, 민족 이동의 원인들이 준비되고 있었다.


역사 속 인물들은 예전처럼 한 해안에서 다른 해안으로 파도에 실려 옮겨 가지 않았다. 이제 그들은 한 장소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군 수뇌로서 전쟁과 원정, 전투를 지시함으로써 대중의 움직임을 반영하던 역사 속 인물들이 이제는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견해, 법률, 조약으로 격렬하게 들끓는 움직임을 반영하고 있었다……. 역사 속 인물들의 이런 활동을 역사가들은 '반동'이라고 부른다.


나폴레옹부터 마담 스탈(프랑스 낭만주의 작가, 비평가), 포티우스(러시아 수도원장), 셸링, 피히테(독일의 관념론 철학자들), 샤토브리앙(프랑스 작가이자 외교 정치가) 등에 이르기까지 당시 모든 유명한 인물들은 역사가들의 엄격한 판정 앞에서 진보에 협력했는가 또는 반동에 협력했는가에 따라 무죄나 유죄를 선고받는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러시아에서도 이 시기에 반동이 일어났는데 그 주범은 알렉산드르 1세, 즉 그들의 기술(記述)에 의하면 자유주의적으로 통치를 시작하고 러시아를 구원한 그 알렉산드르 1세였다.


도대체 이 비난들의 본질은 무엇인가? 알렉산드르 1세처럼 인간이 오를 수 있는 권력의 최정상에 서 있던, 모든 역사적 광선이 집중되어 눈을 멀게 할 정도의 빛의 초점에 있는 듯한 그런 역사적 인물이 50년 전에는 고상한 덕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들도 이에 대해서는 비난하지 않는다) 젊은 시절부터 학문에 종사한 교수, 즉 자신이 한 강의와 자신이 읽은 책을 공책 한 권에 베끼는 오늘날의 교수가 지닌 것과 같은 '인류의 행복에 대한 시각'을 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욱이 우리는 역사 속에서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선인가에 대한 정반대의 시각들을 동시에 발견하기도 한다. 알렉산드르 1세와 나폴레옹의 활동에 대해서는 유익했는지 유해했는지 말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이 무엇에 유익하고 무엇에 유해한지 말할 수 없어서다. 만약 그 활동이 누군가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의 제한적인 이해와 일치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알렉산드르 1세가 모든 것을 다르게 할 수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가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 인류가 움직이는 궁극적인 목적을 안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의 지시에 따라, 민족성, 자유, 평등, 진보의 강령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정부의 노선에 반대했던 이들의 활동, 역사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선하고 유익은 그 활동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 활동은 없었을 것이고, 삶도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삶이 이성에 의해 지배될 수 있다면 삶의 가능성은 사라질 것이다.


2


만약 역사가들이 그러듯 위대한 러시아나 프랑스의 위대함, 혹은 유럽의 균형이나 혁명 이념의 전파, 혹은 공통의 진보, 혹은 그 밖의 무엇이든 간에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류를 이끄는 것이 위대한 인물들이라고 가정할 경우, 우연이니 천재니 하는 개념 없이는 역사의 현상을 설명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금세기 초 유럽에서 일어난 몇몇 전쟁들의 목적은 그게 아니어도 달성될 수 있었으며 다른 평화적인 방법으로 훨씬 더 잘 수행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왜 다른 방법이 아닌 그런 방법으로 일어났을까? 그것이 그런 방법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우연이 상황을 만들었다. 천재는 그것을 이용했다”고 역사가들은 말한다.


그러나 우연과 천재라는 단어는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것을 의미하지 않으므로 정의를 내릴 수 없다. 그 단어들은 단지 현상을 이해하는 어떤 수준을 의미할 뿐이다. 나는 어떤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모른다. 나는 내가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알기를 원치도 않고 '우연'이라 말한다. 나는 보편적인 인간의 속성과 일치하지 않는 행위를 일으키는 힘을 본다. 나는 그것이 왜 일어나는지 모르고 그것을 '천재'라 말한다.


친숙하고 이해되는 목적을 알려고 하는 것에서 벗어나 최종 목적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 우리는 역사 속 인물들의 생애에서 일관성과 합목적성을 보게 될 것이다. 또한 그들이 야기한, 보편적 인간의 속성과 일치하지 않는 행동의 원인이 밝혀질 것이고, 따라서 우리에게 우연과 천재라는 단어가 불필요해질 것이다.


유럽의 민중들이 일으킨 소요의 목적을 우리가 알 수 없다는 것, 다만 처음에는 프랑스, 그다음에는 이탈리아, 아프리카,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스페인, 러시아에서 벌어진 살인이라는 사실만을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 서에서 동으로의 이동과 동에서 서로의 이동이 이 사건들의 본질과 목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우리는 나폴레옹과 알렉산드르 1세의 성격에서 특수성과 천재성을 볼 필요가 없을뿐더러 그들이 나머지 전체 인간들과 똑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들을 그런 인물들로 만들어 버린 사소한 사건들의 우연성을 해명할 필요도 없을 뿐 아니라 모든 사소한 사건들이 필연적이었다는 점도 명백해질 것이다.


3


금세기 초 유럽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의 본질적인 의의는 그것이 유럽 대중의 서에서 동으로, 그 후 동에서 서로의 군사 행동이었다는 점이다. 이 운동의 발단은 서에서 동으로의 운동이었다. 서쪽의 여러 국민들이 모스크바까지의 군사 행동을 완수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들은 이를 완수했다) 다음과 같은 것들이 꼭 필요했다.

1) 동쪽 전투 집단과 충돌할 때 그것을 견딜 수 있는 규모의 전투 집단을 조직하는 것,
2) 기존의 모든 전통과 습관을 버리는 것,
3) 군사 행동을 할 때 그 운동에 수반될 기만과 약탈과 살인을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정당화할 수 있는 사람을 수장으로 삼는 것.


그리고 프랑스 혁명을 시작으로 그다지 크지 않은 낡은 집단이 붕괴한다. 옛 관습과 전통이 붕괴한다. 그에 따라 새로운 규모의 집단, 새로운 관습과 전통이 하나씩 하나씩 서서히 생겨나고, 장래 운동의 선두에 서서 향후 일어날 일에 대해 모두 책임질 사람이 준비되어 간다. 신념도 습관도 전통도 이름도 없고 심지어 프랑스인도 아닌 한 인간이 굉장히 기묘하게 보이는 우연으로 프랑스를 뒤흔드는 모든 당파들 사이를 움직이며 어느 편에도 붙지 않고 눈에 띄는 지위에 오른다. 셀 수 없이 많은 이른바 우연이라는 것이 그가 가는 곳마다 동행한다.


이탈리아와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자신의 영광과 위대함이라는 이상, 자기 숭배의 광기, 범죄의 대담성을 갖고 있으며, 거짓들이 진정성을 띠는 그 한 사람, 오직 그 한 사람만이 장차 일어날 일을 정당화할 수 있다. 그는 그를 기다리는 자리에 필요하다. 그는 권력 쟁취를 목적으로 하는 음모에 연루되고, 그 음모는 성공을 거둔다.


우연, 수백만 가지의 우연들이 그에게 권력을 부여하고, 마치 모든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그 권력의 확립에 협력한다. 우연들은 당시 프랑스 통치자들을 그에게 복종하도록 만든다. 우연들은 파벨 1세에게 그의 권력을 인정하도록 만든다. 우연은 그에게 맞서는 음모를, 그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의 권력을 견고하게 할 음모로 만든다.


서쪽의 힘은 1805년, 1806년, 1807년, 1809년 몇 차례에 걸쳐 점차 더 강해지고 커지면서 동쪽으로 돌진한다. 1811년 프랑스에서 형성된 사람들의 그룹이 중부의 여러 나라 국민들과 하나의 거대한 그룹으로 합해진다. 정체가 폭로된 세상의 모든 권력자들은 아무 의미도 없는 영예와 위대함이라는 나폴레옹의 이상에 맞서 어떤 이성적인 이상도 내세우지 못한다. 그들은 앞다투어 자신들의 하찮음을 그에게 보여 주려고 애쓴다.


모든 것이 그의 이성의 마지막 힘까지 빼앗기 위해, 그리고 그의 무시무시한 역할을 준비하도록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그가 준비될 때 힘도 준비된다. 침략은 동쪽으로 향하고, 궁극적인 목표인 모스크바에 이른다. 수도는 점령된다. 러시아 군대는 언젠가 아우스터리츠부터 바그람에 이르는 예전의 전쟁들에서 적군이 격파되었을 때보다 더 심하게 파멸된다.


그러나 갑자기 지금까지 예정된 목표를 향해 일련의 끊임없는 성공으로 그를 연속적으로 이끌어 온 우연들과 천재성 대신, 보로디노에서의 코감기부터 혹한, 모스크바를 태운 불꽃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정반대의 우연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천재성 대신 전례에 없는 어리석음과 비열함이 나타난다. 침공은 달려가다 되돌아오고, 또다시 달려간다. 그리고 모든 우연은 이제 계속해서 그를 거스르기 위한 것이 된다.


그전에 일어났던 서에서 동으로의 운동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게 동에서 서로의 역(逆)운동이 일어난다. 동에서 서로의 운동과 같은 시도들은 1805년, 1807년, 1809년에 대(大)운동에 앞서 있었다. 마찬가지로 거대한 규모의 그룹이 결성된다. 마찬가지로 중간에 동요가 발생하고, 마찬가지로 목표에 가까워짐에 따라 속도가 빨라진다. 파리, 즉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한다. 나폴레옹의 정부와 군대가 붕괴된다. 나폴레옹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러나 또다시 설명할 수 없는 우연이 일어난다. 즉 동맹자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재앙의 원인으로 보는 나폴레옹을 증오한다. 힘과 권력을 빼앗기고 악행과 교활함이 폭로된 그는 10년 전이나 1년 뒤에 보였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무법의 강도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상한 우연으로 아무도 이것을 보지 않는다. 그의 역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무법의 강도로 여겼고, 여기게 될 인간을 프랑스로부터 이틀이 걸리는 (무언가에 대한 대가로 그에게 지불된 수백만의 돈과 근위대와 함께 영지로 받은) 섬으로 보낸다.


4


여러 국민들의 운동은 자신들의 해안에 정착하기 시작한다. 대(大)운동의 파도들이 물러났다. 그리고 잠잠해진 바다에 사회들이 형성되고, 외교관들은 바로 자신들이 운동을 잠잠하게 한 사람들이라고 상상하며 그것들을 따라 질주한다. 하지만 잠잠해진 바다가 갑자기 일렁인다. 외교관들에게는 자신들이, 자신들의 비타협이 이 새로운 압력의 원인처럼 보인다.


그들은 군주들 사이의 전쟁을 기다린다. 그러나 파도, 그들이 감지한 파도의 너울은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곳으로부터 오지 않는다. 동일한 파도가 운동의 동일한 출발점, 즉 파리에서 솟아오른다. 서쪽으로부터 운동의 마지막 역류가 일어난다. 해결될 수 없을 것 처럼 보이던 외교상의 난맥들을 해결하고, 이 시기 군사 운동의 종료를 가져올 수 있는 역류가…….


프랑스를 황폐하게 만든 사람이 단독으로 어떤 모의도 없이, 병사도 거느리지 않고 프랑스에 도착한다. 어떤 파수꾼이든 그를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이상한 우연으로 아무도 그를 잡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루 전만 해도 저주했고 한 달 후에도 저주하게 될 그를 모든 사람들이 환호하며 맞이한다. 그는 최후의 연합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아직 필요하다. 막은 끝났다. 마지막 연기도 끝났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된다.


그리고 그가 자기 섬에서 고독하게 스스로를 관객 삼아 보기딱한 희극을 연기하고, 음모를 꾸미고, 이미 더 이상 정당화가 필요 없는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또 보이지 않는 손이 그를 이끌고 있을 때 사람들이 힘으로 간주했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온 세상에 드러내는 데 몇 년이 지나간다.


알렉산드르 1세의 생애, 즉 동에서 서로 진행된 역운동의 선두에서 있던 그 인물의 생애는 훨씬 더 큰 일관성과 필연성을 보여 준다. 다른 사람들을 가로막은 채 동에서 서로 향한 그 운동의 선두에 서게 될 그 사람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정의감, 유럽 정세에 대한 참여, 그것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사소한 이해 때문에 아둔해지지 않는 참여가 필요하다. 또한 동료들, 즉 그 시대의 군주들을 능가하는 도덕적 우월성이 필요하다. 온화하고 매력적인 품성도 필요하고, 나폴레옹에 대항하는 개인적인 모욕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알렉산드르 1세에게 있다. 이 모든 것이 그의 지난 생애 전체에 걸쳐 이루어진 이른바 모든 우연들, 예를 들어 교육, 자유주의적 시책, 주위의 조언가들, 아우스터리츠, 틸지트, 에르푸르트 등을 통해 준비된다.


그런데 국민 전쟁 기간 동안 이 인물은 아무런 활약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인물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 유럽의 전쟁이 불가피해지자 곧 이 인물은 자기 자리에 나타나 유럽 국민들을 연합시켜 그들을 목표한 바로 이끈다. 목표는 달성된다. 1815년의 마지막 전쟁 이후 알렉산드르는 인간이 오를 수 있는 권력의 정상에 선다. 과연 그는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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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1세의 기마 초상화, 1814년 러시아군의 파리 입성(작자 미상) 출처 구글 이미지]


알렉산드르 1세, 유럽의 중재자이자 젊은 시절부터 국민의 행복만 지향했으며 조국에서 자유주의 개혁의 첫 주창자였던 사람이 이제, 자신의 소명을 완수한 후 자신에게 놓인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자 문득 이 가상의 권력이 하찮은 것임을 인정하고, 그것으로부터 돌아서서, 그것을 자신이 경멸하던, 또 경멸할 만한 사람들의 손에 이양하고 다만 이렇게 말한다.*

"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다만 당신의 이름을 영광되게 하소서.' (시편의 구절) 나도 그대들과 같은 인간이오. 내가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나의 영혼과 하느님에 대해 사색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시오."


알렉산드르 1세는 젊을 적 시기의 자유주의와 계몽주의에 크나큰 실망을 하게 되었고, 이후 대표적인 반동 군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초기엔 계몽주의 성향이었던 스페란스키를 중용하고 정부를 체계화하는데 주력했지만, 이후 보수적인 아렉쳬예프를 중용하여 정책을 180도 돌린다. 거기에 미신 같은 것에 빠져들었다고 하니, 안 그래도 상대적으로 막장이었던 기존의 절대군주 체제와 러시아 사회 구조에 불만이 쌓인 것도 당연했다. [출처 나무위키]


마치 태양과 에테르의 각 원자가 그 자체로 완결된 구(球)인 동시에, 그 거대한 크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이해 불가능한 전체의 한 원자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그와 같이 각 개인도 자기 안에 나름의 목적을 지니지만, 사실 그는 그것을 인간에게는 이해 불가능한 전체의 목적에 기여하기 위해 지니는 것이다.


꽃에 앉아 있던 벌이 어린아이에게 침을 쏘았다. 그러자 아이는 벌을 무서워하며 벌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침을 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인은 꽃송이 안에 착 달라붙은 벌을 감상하며 벌의 목적은 꽃의 향기를 자기 안에 빨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양봉가는 벌이 꽃가루와 당즙을 모아 벌통으로 운반하는 것을 보며 벌의 목적은 꿀을 모으는 것이라고 말한다. 식물학자는 식물들의 이주를 관찰하다가 벌이 그 이주에 협력하는 것을 본다. 그 새로운 관찰자는 바로 이것이 벌의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벌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이성이 밝혀낼 수 있는 제1, 제2, 제3의 목적으로 소진되지 않는다. 이러한 목적들을 발견하는 데에서 인간의 이성이 더욱 고양되면 될수록 인간의 이성으로는 궁극적인 목적이 이해될 수 없음이 더욱 분명해진다. 인간은 오직 벌의 생태와 삶의 다른 현상들 사이에 존재하는 상응의 관찰만 가능할 뿐이다. 역사적인 인물들과 여러 국민들의 목적에 대해서도 동일한 것을 말할 필요가 있다.


5


1813년, 베주호프와 나타샤의 결혼식은 오래된 로스토프가에 마지막으로 기쁜 사건이었다. 그해 일리야 안드레예비치 백작이 죽었고, 항상 그렇듯 오래된 가문은 그의 죽음과 함께 몰락했다. 지난해의 사건들, 즉 모스크바 화재와 그로 인한 탈주, 안드레이 공작의 죽음과 나타샤의 절망, 페탸의 죽음, 백작 부인의 슬픔, 이 모든 것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노백작의 머리를 강타했다.


피에르와 나타샤가 떠난 후, 그는 말이 없어졌고 우울함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며칠 뒤에는 병이 나 자리에 드러누웠다. 발병 초기부터 그는 의사들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일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백작 부인은 2주 동안 옷도 갈아입지 않고 안락의자에 앉아 남편의 머리맡을 지켰다.


백작의 재정 상태가 너무 엉망이어서 만약 그런 상태가 1년만 더 지속되면 그 모든 게 어떤 식으로 끝날지 상상도 할 수 없는 바로 그 순간 그는 갑자기 죽었다. 니콜라이가 아버지의 부고를 받았을 때 그는 파리에 주둔한 러시아군 부대에 있었다. 그는 곧 퇴역을 신청했으나 허가를 기다리지 않고 휴가를 받아 모스크바로 왔다.


백작이 죽고 나서 한 달이 지나 재정 상태가 완전히 드러난바 누구도 짐작지 않은 온갖 자잘한 빚이 쌓여 만든 엄청난 총액에 모두 깜짝 놀랐다. 부채는 자산의 두 배였다. 친척들과 친구들이 니콜라이에게 상속을 포기하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니콜라이는 상속 포기라는 말에서 아버지에 대한 신성한 기억을 비난하는 표현을 보았기 때문에 그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부채를 갚을 의무와 함께 유산을 상속받았다.


백작 생전에는 그 한없는 선량함이 지닌 막연하지만 강력한 영향에 얽매여 오랫동안 잠잠해 있던 채권자들이 갑자기 상환을 요구했다. 항상 그렇듯 먼저 받기 위해 경쟁했고, 미텐카와 다른 사람들처럼 무담보 약속 어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이 이제 가장 위압적인 채권자가 되었다.


니콜라이가 생각한 자금 회전 방법들은 어느 것 하나 성공하지 못했다. 영지는 경매에 넘어가 반값에 팔렸으나 부채의 절반은 여전히 미지불 상태였다. 니콜라이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금전상의 진짜 부채라고 인정되는 부채를 갚기 위해 매제인 베주호프가 건넨 3만 루블을 받았다. 그리고 나머지 부채의 채권자들이 상환을 못하면 감옥에 집어넣겠다고 위협하여 다시 근무를 시작했다.


니콜라이의 처지가 특히 안 좋았던 이유는 1천2백 루블의 봉급으로 자신과 어머니와 소냐를 먹여 살려야 했을 뿐 아니라 그들이 가난하다는 것을 어머니가 눈치채지 못하게 하면서 어머니를 부양해야 했기 때문이다. 백작 부인은 어린 시절부터 사치스러운 환경에 익숙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을 위한 값비싼 요리와 아들을 위한 와인을 요구하고, 나타샤와 소냐, 심지어 니콜라이에게까지 깜짝 선물을 하기 위해 돈을 요구했다.


소냐는 집안 살림을 맡아 하고, 친척 아주머니를 돌보며 그녀에게 소리 내어 책을 읽어 주고, 그녀의 변덕과 마음속의 혐오를 견디고, 니콜라이가 자신들의 궁핍한 처지를 노백작 부인에게 숨길 수 있도록 도왔다. 니콜라이는 소냐가 어머니를 위해 행한 모든 것에 갚을 수 없는 감사의 빚을 졌다고 느끼며 그 인내와 헌신에 감탄했으나 그녀와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


니콜라이의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다. 봉급 일부를 저축하겠다는 생각은 헛된 꿈으로 드러났다. 저축은커녕 어머니의 요구를 들어주느라 조금씩 빚까지 졌다. 이러한 처지에서 벗어날 방법을 도무지 생각해 낼 수 없었다. 그는 그 어떤 기분 전환이나 여흥도 피했으며, 말없이 방 안을 서성이거나 연달아 파이프 담배를 피울 뿐이었다. 자신의 처지를 견딜 수 있게 해 준다고 느끼는 유일한 기분인 우울함을 자기 안에 담아 두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6


겨울 초입에 마리야 공작 영애가 모스크바에 왔다. 그녀는 시중에 떠도는 소문을 통해 로스토프가의 처지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아들이 어머니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그 사람이라면 분명 그렇게 할 거라 예상했어.’ 마리야 공작 영애는 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기쁘게 확신하며 혼잣말을 했다. 자신과 로스토프 일가의 거의 친척과도 같은 친밀한 관계를 떠올리면서 그녀는 그들에게 가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로네시에서의 자신과 니콜라이의 관계를 떠올리자 방문이 두려워졌다. 가기 싫은 마음을 힘들게 억누르고 나서 모스크바에 도착하고 몇 주 후 로스토프가를 방문했다. 그녀는 니콜라이가 자신을 보고 기뻐할 거라 기대했지만 니콜라이는 마리야 공작 영애를 처음 본 순간 차갑고 무뚝뚝하고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녀의 건강에 대해 묻고는 그녀를 어머니 방으로 데려간 후 5분 정도 앉아 있다가 방에서 나가 버렸다.


그녀의 방문 이후 노백작 부인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녀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머니가 마리야 공작 영애 이야기를 할 때 니콜라이는 조용히 있으려고 노력했으나 그 침묵이 백작 부인을 되레 성나게 했다.

“그녀는 정말 훌륭하고 좋은 아가씨야.” 백작 부인이 말했다. “너도 그 아가씨를 방문해야 해. 어쨌든 너도 누군가를 만나야 하고. 안 그러면 우리와 함께 있느라 지루할 거야.”

“네, 갈게요. 어머니가 원하신다면.” 니콜라이는 콧수염을 씹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로스토프가를 방문했다가 니콜라이로부터 뜻밖의 차가운 응대를 받은 후 로스토프가에 가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인정했다.

‘난 다른 것을 기대한 게 아니었어.’ 그녀는 자존심을 세우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사람에게는 볼일도 없었고, 난 다만 나에게 늘 친절하셨고 많은 은혜를 베푸신 노부인을 만나고 싶었을 뿐이야.’

그러나 이러한 이유들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자신의 방문을 떠올릴 때마다 후회 비슷한 감정이 그녀를 괴롭혔다.


한겨울 무렵 그녀가 조카의 공부를 봐주면서 공부방에 앉아 있을 때 하인이 로스토프가 방문했음을 알렸다. 그녀는 자신의 비밀과 동요를 드러내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하고는 마드무아젤 부리엔을 불러 함께 응접실로 갔다. 니콜라이의 얼굴을 처음 보자마자 그녀는 그가 단지 예의상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방문했다는 것을 알아챘고, 자기 역시 그가 그녀를 대했던 것과 똑같은 태도를 취하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공작 영애는 마드무아젤 부리엔의 도움으로 이야기를 잘 이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그녀는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이야기를 하느라 지친 데다 자기 인생에는 이다지도 기쁨이 별로 없을까, 라는 생각에 몰두하여 멍한 상태가 되어 그녀 특유의 반짝이는 눈을 정면에 고정한 채 그가 일어나는 것도 모르고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그녀를 본 니콜라이는 그녀의 멍한 모습을 눈치채지 못한 척하기 위해 마드무아젤 부리엔에게 몇 마디 하고 나서 다시 공작 영애를 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꼼짝 않고 앉아 있었는데, 그 상냥한 얼굴에는 고통이 어려 있었다. 불현듯 그는 그녀가 불쌍하게 느껴졌고, 그녀의 얼굴에 어린 슬픔이 어쩌면 자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마드무아젤 부리엔이 백작 부인께 드릴 베개를 가질러 간 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침묵을 지켰다.

“저기요, 공작 영애.” 마침내 니콜라이가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가 보구차로보에서 처음 만난 후로 정말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그때는 우리 모두 참 불행하게 생각되었죠.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아무리 귀중한 것이라도 주겠어요…… 물론 돌이킬 수는 없지만요.”


“내가 이런 말 하는 것을 당신이 허락해 주리라 생각해요.” 그녀가 말했다. “저는 당신과 매우 가까웠고…… 당신 가족과도 가까워서 당신이 제가 관여하는 것을 부적절하게 여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 실수였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떨렸다.“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예전의 당신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는데…….”


‘바로 그것 때문이었어! 그것 때문이야!’ 마리야 공작 영애의 마음속에서 내면의 목소리가 말했다. ‘유쾌하고 선하고 개방적인 눈빛 하나만으로, 잘생긴 외모 하나만으로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한 게 아니었어. 난 이 사람의 고결하고 굳건하고 자기희생적인 정신을 사랑했던 거야.’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이 사람은 이제 가난한데 나는 부유해……. 그래, 단지 그것 때문이었어…….’ 그녀는 그가 냉정해진 이유를 깨달았다.


“왜죠, 백작. 왜 그런데요?” 갑자기 그녀가 그에게 다가서며 자기도 모르게 소리 지르듯 말했다. “백작, 난 괴로워요, 난……. 솔직히 털어놓을게요. 당신은 나에게서 예전의 우정을 빼앗으려 해요. 그 때문에 난 아파요.” 그녀의 눈과 목소리에 눈물이 묻어 나왔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행복해 본 적이 너무 적어서 그 무엇이든 상실하면 마음이 괴로워요……. 용서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그녀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더니 방에서 나갔다.


“공작 영애! 잠깐만요, 제발.” 그는 그녀를 멈춰 세우려고 소리쳤다. “공작 영애!”

그녀가 돌아보았다. 몇 초 동안 그들은 말없이 서로의 눈을 응시했고, 그러자 멀고 불가능해 보이던 것이 갑자기 가깝고 가능하고 불가피한 것이 되었다…………………………………….


7


1814년 가을에 니콜라이는 마리야 공작 영애와 결혼하여 아내, 어머니, 소냐와 함께 리시예 고리로 거처를 옮겼다. 3년 만에 그는 아내의 영지를 팔지 않고도 남은 빚을 갚았고, 사촌 누이의 사망 후 그녀로부터 약간의 유산을 상속받아 피에르에게 빌린 돈도 갚았다. 그리고 다시 3년이 흐른 1820년 무렵 니콜라이는 리시예 고리 부근의 작은 영지를 구입하고 그가 염원했던 오트라드노예를 되사기 위해 교섭 중이었다.


자신에게 필요해서 영지 경영을 시작한 그는 곧 그 일에 빠져들어 영지 경영은 그가 사랑하는 거의 유일한 일이 되었다. 니콜라이가 영지 경영을 시작하여 그 경영의 다양한 부분에 깊이 파고들게 되었을 때 특히 농민이 그의 관심을 끌었다. 농민은 그에게 도구일 뿐 아니라 목적이자 심판관으로도 보였다. 영지 관리에 착수하면서 니콜라이는 어떤 재능과도 같은 통찰력으로 만약 농민들이 선출권을 갖고 있었다면 그들이 뽑았을 만한 사람들을 영지 관리인이나 촌장, 농민 대표로 실수 없이 임명했고 그 책임자들을 절대 교체하지 않았다.


마리야 백작 부인은 남편의 일 사랑에 질투를 느끼며, 자신이 그 사랑에 함께하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과 상관없는 낯선 세계가 그에게 주는 기쁨과 슬픔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새벽에 일어나 오전 내내 밭이나 탈곡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파종이나 풀베기나 추수를 하다가 그녀와 차를 마시기 위해 올 때 왜 그리 생기 있고 행복해 보이는지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항상 그녀의 바람을 먼저 알아채는 선량한 마음의 남편이, 일을 면제해 달라고 부탁하는 아낙과 농부들의 간청을 그녀가 전했을 때 어째서 그렇게 낙담한 상태에 빠져 버리는지, 그 착한 니콜라가 어째서 완강하게 그 청을 거절하고 화를 내며 자기 일에 간섭하지 말라고 부탁하는지 하는 것이었다.


때로 그녀가 그를 이해하려 애쓰며 그가 농민들에게 베푼 공로와 선에 대해 말하면 그는 화를 내며 대답했다.“전혀 그렇지 않아. 난 그들의 행복을 위해 이런 일을 하는 게 아냐. 이웃의 행복이라는 건 전부 시(詩) 혹은 아낙들의 동화 같은 얘기야. 난 내 아이들이 길거리에 나앉지 않도록 해야 해.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재산을 형성해야 해. 그게 전부야. 그러기 위해서는 질서가 필요하고 엄격함이 필요하지……. 바로 그거야! 물론 공정함도 필요하고."


그의 재산은 급속히 불어났다. 그래서 인근의 농민들이 자기들을 사 달라고 부탁하러 왔고, 그가 죽은 후에도 민중은 오래도록 그의 영지 경영에 대해 경건한 기억을 간직했다.“주인님은…… 농민들의 일이 먼저였고, 자신의 일은 나중이었어. 우리를 봐주지도 않았지. 한마디로 주인님이었어!”


8


영지를 경영하는 니콜라이를 괴롭힌 한 가지는 툭하면 주먹을 휘두르던 경기병 시절의 오랜 습관과 결부된 불같은 성미였다. 처음에는 그것이 비난받을 만한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지만 결혼 2년째 되는 해 그런 처벌에 대한 그의 시각이 돌연 바뀌었다.


어느 여름날, 죽은 드론에 이어 촌장으로 선출된 보구차로보의 촌장이 여러 건의 사기와 태만으로 고발을 당해 호출되었다. 니콜라이는 현관 계단에 있는 그에게로 갔고 촌장이 처음으로 몇 마디 대답을 하자마자 현관에서 비명과 구타 소리가 들렸다. 아침 식사를 하러 집에 들어온 니콜라이는 아내에게 다가가 평소처럼 이야기를 하다가 보구로차로 촌장 이야기가 나왔다. 마리야 백작 부인의 얼굴이 붉어졌다 창백해졌고 남편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뻔뻔한 놈이야." 그는 생각만으로도 열이 오르는지 이렇게 말했다. “뭐 취해서 몰랐다고 내게 말하면……. 무슨 일 있어, 마리?" 돌연 그가 물었다."왜 그래? 무슨 일이지, 여보?” 니콜라이가 손을 잡자 그녀는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니콜라, 나는 봤어요…… 그 사람이 잘못한 거지만 당신이, 왜 당신은! 니콜라!” 그러더니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니콜라이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잠시 침묵하더니 묵묵히 방 안을 걸어 다녔다.


니콜라이는 어릴 때부터 익숙한 것이라 처음에는 내심 동의할 수 없었지만, 그녀의 고통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얼굴을 보고 갑자기 그녀가 옳았으며, 자신은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죄짓고 있음을 깨달았다.“마리.”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며 나직이 말했다. “이런 일은 더 이상 없을 거야. 당신에게 약속할게. 절대 없을 거야.” 마치 용서를 구하는 소년처럼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반복하여 말했다.

백작 부인의 눈에서 더 많은 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남편의 손을 잡고 입을 맞추었다.


니콜라이가 결혼한 후에도 소냐는 그의 집에서 살았다. 결혼 전 니콜라이는 자책과 동시에 그녀를 칭찬하며 약혼녀에게 자신과 소냐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부 이야기했다. 그러고는 마리야 공작 영애에게 사촌 누이를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해 달라고 부탁했다. 마리야 백작 부인은 남편의 잘못에 충분히 공감했고 그녀 역시 소냐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자신의 재산이 니콜라이의 선택을 미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어떤 것에서도 소냐를 비난할 수 없었다.


소냐는 자신의 처지를 괴로워하지 않고 '헛꽃'이라는 나타냐의 자신에 대한 규정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그녀는 사람들이라기보다 가족 전체를 소중히 여기는 듯했다. 고양이처럼 사람이 아닌 집에 애착을 갖는 듯 보였다. 그녀는 노백작 부인을 돌보고, 아이들을 귀여워하며 응석을 받아 주고, 그녀가 잘하는 작은 헌신을 쏟을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그 모든 것에 미약하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리시예 고리의 대저택은 새로 재건되었으나 고인이 된 공작의 생전과 같지는 않았다. 궁핍한 시기에 건축되기 시작한 건물들은 소박함 그 이하였다. 때로 로스토프가와 볼콘스키가의 친척들이 하인들과 온 가족이 함께 리시예 고리에 와서 몇 달 동안 지내곤 했다. 그 외 나머지 시간에는 평범한 일들과 차와 가정식 아침과 점심, 저녁이 있는 깨지지 않는 규칙적인 생황이 계속되었다.


9


1820년 12월 5일, 겨울의 니콜라이 축일 전야였다. 그해 나타샤는 아이들, 남편과 함께 가을 초부터 오빠네 집에서 머물렀다. 피에르는 페테르부르크에 있었다. 특별한 일 때문에 3주 예정으로 다녀오겠다고 말했는데 벌써 7주나 체류하고 있었다. 모두들 그가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했다. 로스토프가에는 베주호프 가족 말고도 니콜라이의 옛 친구인 퇴역 장군 바실리 표도로비치 데니소프도 손님으로 머물고 있었다.


니콜라이는 평소처럼 일을 하고 식사 시간 무렵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내와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눌 틈도 없이 20인분의 식사가 준비된 긴 테이블 앞에 앉았다. 마리야 백작 부인은 테이블 맞은편 끝에 앉아 있었다. 자기 자리에 앉자마자 냅킨을 치우고 앞에 놓인 컵과 술잔의 위치를 재빨리 바꾸는 남편의 모습을 본 백작 부인은 그의 기분이 좋지 않음을 눈치챘는데, 그런 일은 종종 있는 것으로, 특히 수프를 들기 전이나 농사일을 하다 곧바로 식사하러 올 때가 그랬다.


지금 그녀는 남편이 이유없이 자기에게 화를 내서 괴로웠으며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꼈다. 사람들이 테이블에서 떠나 노백작 부인에게 감사를 전하러 갔을 때 마리야 백작 부인은 남편에게 입을 맞추고 한 손을 내민 채 자기에게 화내는 이유를 물었다.

"당신은 항상 이상한 생각을 하는군. 화를 내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그가 말했다. 그러나 항상이라는 말은 그녀에게 이런 대답으로 들였다. 그래 화가 나서 말하고 싶지 않아.


니콜라이는 아내와 매우 화목하게 지냈기 때문에 둘을 질투하여 그들의 불화를 바라던 소냐와 노백작 부인조차 비난거리를 찾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도 적의를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 이따금 굉장히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나면 갑자기 고독과 적대감이 그들을 덮치곤 했는데, 그러한 감정은 특히 마리야 백작 부인이 임신 중일 때 가장 자주 나타났다. 지금 그녀는 그 시기에 있었다.


마리야 백작 부인은 손님들과 잠시 앉아 있었지만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어서 조용히 물러 나와 아이들 방으로 갔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잠시 아이들과 놀아 주었지만 남편과 그의 이유 없는 짜증이 쉬지 않고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는 일어나 소파가 있는 작은 방을 향해 뒤꿈치를 들고 힘겹게 걸어갔다.

‘어쩌면 아직 안 자고 있을지도 몰라. 이야기를 해 봐야겠어.’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니콜라이가 잠든 방에서는 그녀에겐 그 미묘한 차이까지도 익숙한, 그의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그 숨소리를 들으며 그가 자는 동안 고요한 밤의 정적 속에서 그녀가 꽤 자주 오랫동안 바라보았던 그 얼굴을, 그의 매끈하고 아름다운 이마와 콧수염과 얼굴 전체를 보았다. 니콜라이가 갑자기 몸을 뒤척이며 소리를 냈다. 그 순간 몰래 따라온 장남 안드류샤가 문 뒤에서 소리쳤다.

“아빠, 엄마가 여기 있어요.”


“난 모르겠어. 왜 당신은 내 기분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거지?” 아내의 마음속 질문을 알고 있던 니콜라이는 그 질문에 답하며 되물었다.

“당신이 그럴 때면 내가 얼마나 불행하고 외로운지 당신은 상상도 못할 거예요. 언제나 그렇게 느껴져요.”

“마리, 그만해. 바보 같은 소리야. 부끄럽지도 않아?” 그는 유쾌하게 말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난 너무 못생기고…… 그리고 언제나, 그런데 지금은 이런 상태라.”

“아, 정말 웃기는군! 예뻐서 좋은 게 아니라 좋아서 예쁜 거야. 예뻐서 사랑받는 여자는 말비나 같은 여자들뿐이야. 그런데 내가 정말로 아내를 사랑하는 걸까? 난 사랑하지 않아. 그냥…… 당신이 없으면, 마치 내가 파멸한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야. 그럼 난 나의 손가락을 사랑할까? 하지만 이 손가락을 자르면…….”


그때 현관방과 대기실에서 누군가의 도착을 알리는 듯한 문고리 소리와 발소리가 들렸다.

“누가 왔나 보군.”

“분명 피에르일 거예요. 내가 가서 볼게요.” 마리야 백작 부인이 말하고 방에서 나갔다.

“그가 맞아요, 그예요. 니콜라.” 몇 분 후 마리야 백작 부인이 방으로 돌아와 말했다.

니콜라이는 딸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마리야 백작 부인은 소파가 있는 방에 남았다.


“절대, 절대로 믿지 않았을 거야.” 그녀는 중얼거렸다. “이렇게 행복해질 거라곤…….” 그녀의 얼굴이 미소로 빛나는 순간 그녀는 한숨을 쉬었고, 그녀의 깊은 시선에는 고요한 슬픔이 어렸다. 이 생에서는 자신이 느끼는 이 행복 말고 다다를 수 없는 또 다른 행복이 있는 것 같다고, 이 순간 문득 그 행복을 떠올렸다.


10


나타샤는 1813년 이른 봄에 결혼해서 1820년에는 이미 세 딸과 간절히 바라던 아들이 있었고, 이 아들에게 요즘 모유 수유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살이 찌고 펑퍼짐해져서 예전의 가녀리고 발랄한 나타샤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얼굴의 윤곽은 또렷했고 차분하고 부드럽고 명확한 표정을 지었다. 예전에 그녀의 매력이었던 끊임없이 타오르는 생기의 불꽃이 이제 그 얼굴에는 없었다. 오직 강하고 아름다운 다산의 암컷만 보일 뿐이었다.


결혼 후 나타샤는 남편과 함께 모스크바, 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근교의 마을, 어머니의 집, 즉 니콜라이의 집에서 살았다. 사교계에서 젊은 베주호바 백작 부인을 보는 일은 거의 없었고, 그녀를 본 사람들은 불만스러워했다. 그녀는 사랑스럽지도 상냥하지도 않았다.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여 아이를 키우고 매 순간 남편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사교계를 단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혼 전의 나타샤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변화를 보면서 마치 이상한 무언가를 본 것처럼 매우 놀랐다. 노백작 부인만 어머니의 직감으로 자신은 나타샤가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하곤 했다.

“그 애는 단지 남편과 자식들에 대한 사랑을 극단까지 밀어붙였을 뿐이야.” 백작 부인은 말했다.“심지어 어리석을 정도로 말이야.”


나타샤는 똑똑한 사람들, 특히 프랑스인들이 전파하는 황금률, 즉 여자는 결혼한 후에도 방심해선 안 되고 재능을 버려도 안 되고 처녀 때보다 더 외모에 신경 써야 하며 결혼 전에 남편이 아닌 사람을 유혹했던 것처럼 남편을 유혹해야 한다는 원칙을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모든 매력을 곧바로 버렸는데, 그 매력들 중 하나인 노래는 특히나 강렬했다.


남편과 자신의 관계는 그를 그녀에게 끌어당긴 그런 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다른 것, 모호하지만 견고한 어떤 것에 의해 마치 자신의 몸과 영혼의 관계처럼 유지된다고 느꼈다. 나타샤가 완전히 몰입한 대상은 가족, 즉 그녀와 집에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속하도록 붙들어야 할 남편과 임신하고 출산하고 젖을 먹이고 양육해야 할 자식들이었다.


나타샤는 자신을 너무도 풀어 버려서 그녀의 의상, 머리 모양, 때에 맞지 않게 내뱉는 말, 질투가 (그녀는 소냐와 가정 교사를 비롯하여 예쁘든 예쁘지 않든 모든 여자를 질투했다) 그녀와 가까운 많은 사람들의 평범한 농담거리가 될 정도였다. 사람들의 공통된 견해에 의하면, 피에르는 아내 밑에서 살았고 실제로도 그랬다.


피에르가 아내에게 복종한 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그는 감히 다른 여자의 환심을 살 수 없을뿐더러 다른 여자와 웃으며 이야기할 수도 없었고, 그저 시간을 때우려고 클럽에 식사하러 갈 수 없었고, 감히 충동적으로 돈을 쓸 수도 없었고, 용무 외에는 (그 용무에는 아내가 아무것도 몰랐지만 큰 중요성을 부여한 학문 연구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장기간 집을 비울 수도 없었다.


그 대신 피에르는 집에서 자신뿐 아니라 가족 전체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그리고 그녀는 피에르가 원하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채고, 일단 본질을 파악하면 일단 자신이 선택한 것을 확고하게 지키려 했다. 피에르가 그 자신이 원한 것으로 바꾸려 하면 그녀는 피에르의 무기로 맞서 싸웠다.


몸이 약한 첫아기를 낳은 후 어느 날 피에르는 그녀에게 자신이 전적으로 동감하는 루소의 사상을, 즉 유모를 쓰는 것이 부자연스럽고 해롭다는 사상을 전했다. 다음 아이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와 의사들 그리고 남편까지도 그녀의 모유 수유에 대해 마치 전례 없는 해로운 일인 양 반대했지만, 나타샤는 자신의 견해를 고수하여 그 후로 모든 아이들에게 자기 젖을 물렸다.


7년의 결혼 생활 후 피에르는 자신이 나쁜 인간이 아님을 기쁘게 자각했는데, 아내에게 반영된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안에서 선한 것과 악한 것이 온통 뒤섞여 하나가 다른 하나를 탁하게 만드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아내에게는 진실로 선한 것만 반영되어 있었다. 전혀 선하지 않은 것은 전부 다 버려졌다. 그리고 그러한 반영은 논리적 사유가 아닌 다른 것, 즉 신비하고 직접적인 반영에 의해 생겨났다.


11


두 달 전부터 로스토프가에 손님으로 와 있던 피에르는 표도르 공작으로부터 페테르부르크로 와서 피에르가 주요 설립자들 중 하나로 있는 어느 협회 회원들이 몰두하고 있는 문제를 함께 논의하자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나타샤는 이제까지 남편에게 온 모든 편지를 읽었듯 그 편지도 읽었고, 남편의 부재로 인해 자신이 겪게 될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페테르부르크로 가라며 직접 권유했다.


2주 전, 피에르의 휴가가 끝난 후부터 나타샤는 끊임없는 두려움과 슬픔, 초조함에 휩싸였다. 이 지난 2주 동안 현 정세에 불만을 느끼는 퇴역 장군 데니소프가 방문했는데, 그는 한때 사랑했던 사람의 전혀 다른 초상화를 보듯 놀라움과 슬픔이 어린 눈길로 나타샤를 바라보았다. 우울하고 무료한 시선, 엉뚱한 대답, 아이 방에 대한 이야기가 예전의 매혹적인 마법사 아가씨에게서 그가 보고 들은 전부였다.


나타샤는 이 시기 내내 침울하고 초조해했는데, 특히 어머니와 오빠 또는 마리야 백작 부인이 그녀를 위로하면서 피에르를 감싸기 위해 그가 늦는 이유를 찾아내려고 애쓸 때 더욱 그랬다.

“전부 바보 같은 말이에요. 다 쓸데없다고요.” 나타샤가 말했다. “그가 하는 생각들은 아무 쓸모도 없고, 그 협회들도 바보 같아요.” 그녀는 자신이 매우 중요하다고 굳게 믿었던 것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런 다음에는 외아들 페탸에게 젖을 먹이러 아이 방으로 가 버리곤 했다.


마차 승강장에서 피에르의 썰매 소리가 들렸을 때 나타샤는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고, 주인마님을 기쁘게 하는 법을 잘 아는 보모가 환한 얼굴로 소리 없이 빠르게 방으로 들어왔다.

“왔어요?” 잠든 아이를 깨울까 봐 조심조심 움직이며 나타샤가 재빨리 속삭였다.

“오셨어요, 마님.” 보모가 속삭였다.


‘그야! 그! 정말이야! 여기 그가 있어!’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쏜살같이 뛰어가 그의 가슴에 머리를 묻은 다음 살짝 떨어져서 성에에 덮여 빨갛게 언 피에르의 행복한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래, 이 사람이 그이야.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그 순간 갑자기 지난 2주 동안 그를 기다리며 겪은 온갖 괴로움이 떠올랐다. 그녀의 얼굴에서 빛나던 기쁨이 사라졌다. 그녀는 얼굴을 찡그렸고, 비난과 독설이 피에르를 향해 쏟아졌다.


“정말로 일찍 올 수가 없었어. 페탸는 어때?”

“이제 괜찮아요. 가 봐요. 당신은 부끄럽지도 않은가 봐요! 당신이 없는 동안 내가 어땠는지, 얼마나 괴로웠는지 당신이 봤어야 했는데…….”

“당신은 건강해?”

“가요, 가.” 그녀는 그의 두 손을 놓지 않고 말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방으로 갔다.


“표도르 공작과는 잘 얘기했어요?” 나타샤가 말했다.

“응, 잘됐어.”

“봐요, 지탱하고 있어요. (나타샤가 아들의 머리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이 아이가 저를 너무 놀라게 해요!”

“공작 부인은 만나 봤어요? 그분이 정말로 남자와 사랑에 빠졌나요?”

“응. 상상할 수 있겠어……?”


그때 니콜라이와 마리야 백작 부인이 들어왔다. 피에르는 손에서 아들을 내려놓지 않고 몸을 숙여 그들 부부와 입맞춤을 나누고는 이런저런 질문에 대답했다. 그러나 재미있는 화제가 많은데도 피에르는 실내모를 쓰고 머리를 흔드는 아기에게 온통 주의를 빼앗긴 듯했다.“피에르는 아이들을 잘 돌봐. 자기 손이 아이들 엉덩이에 맞춰 만들어졌다고 말해. 봐 봐.” 나타샤가 말했다.

“뭐, 그것만은 아냐.”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피에르는 말했고, 아기를 고쳐 안아 보모에게 건넸다.


12


현실의 가정들이 저마다 그러하듯 리시예 고리의 집에도 전혀 다른 몇 개의 세계가 공존했고, 각 세계는 나름의 개별성을 유지하고 서로 양보하며 조화로운 하나의 전체 속으로 들어갔다. 즐겁든 슬프든 간에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모든 세계에 동일하게 중요했다. 그러나 개개의 세계에는 다른 세계와 별도로 어떤 사건에 기뻐하거나 슬퍼할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주인을 말이나 감정 표현이 아닌 행위와 생활 방식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주인에 대해 가장 믿을 만한 판단을 내리는 하인들은 피에르가 돌아온 것을 기뻐했는데, 피에르가 있을 때에는 백작 역시 날마다의 농사일을 그만두고 더 유쾌하고 친절해지며 모두가 축일에 비싼 선물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가정 교사들도 베주호프가 돌아온 것을 기뻐했는데, 왜냐하면 피에르만큼 그들을 공동생활 속으로 이끌어 주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바, 모든 종류의 춤에 어울리는 에코세즈를 클라비코드로 연주할 수 있는 사람도 피에르뿐이었고, 게다가 틀림없이 모두를 위해 선물을 가져왔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열다섯 살이 된, 아마빛 고수머리와 아름다운 눈동자를 지닌 야위고 병약하고 영리한 소년 니콜렌카도 기뻐했는데 자신이 아저씨라 부르는 피에르를 열광적으로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니콜렌카의 마음에 피에르를 향한 특별한 애정을 불어넣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니콜렌카가 그를 볼 기회는 매우 드물었다.


마리야 백작 부인은 자신이 그를 사랑하듯 니콜렌카가 자기 남편을 사랑하게 하려고 온 힘을 쏟았고, 니콜렌카도 고모부를 사랑했다. 그러나 보일 듯 말 듯한 경멸을 품고 사랑했다. 니콜라이는 피에르를 숭배했다. 그는 니콜라이 고모부처럼 경기병이나 게오르기 훈장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피에르처럼 지혜롭고 선량한 학자가 되고 싶었다.


피에르의 과거 삶, 1812년까지의 불행(니콜렌카는 피에르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그것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시적인 상을 그려 냈다), 모스크바에서의 모험, 포로 생활, 플라톤 카라타예프(니콜렌카는 피에르에게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타샤에 대한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는 피에르와 아버지의 우정, 이 모든 것들이 니콜렌카로 하여금 피에르를 영웅이자 성자로 만들게 했다.


아버지와 나타샤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 고인을 말할 때 피에르가 보여 주는 흥분, 아버지에 관해 말할 때 나타샤의 신중하면서 경건하고 부드러운 태도에서 이제 막 사랑에 눈뜨기 시작한 소년은 아버지가 나타샤를 사랑했고 죽어 가면서 그녀를 친구에게 유언으로 맡겼다고 상상했다.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가 소년에겐 상상할 수도 없는 존재, 가슴을 두근거리지 않고, 슬픔과 환희의 눈물 없이는 떠올릴 수 없는 신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소년은 피에르가 돌아온 것에 행복해했다.


노부인들은 피에르가 가져올 선물에 기뻐했고, 무엇보다 다시 활기를 찾게 될 나타샤 때문에 기뻐했다. 백작 부인은 이미 예순이 넘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완전히 하얗게 세서 그녀는 리본으로 얼굴 전체를 감싸는 실내용 모자를 쓰고 생활했다. 얼굴은 주름투성이였고 윗입술은 처졌으며 눈은 흐릿했다. 너무도 빨리 아들과 남편을 연달아 잃은 후 그녀는 자신을 뜻하지 않게 잊힌 채 아무 목적도 의미도 없이 이 세상에 남게 된 존재로 여겼다. 삶은 그녀에게 아무런 인상도 주지 않았다.


집안의 모든 시선들은 그녀가 이미 삶에서 자기 할 일을 끝냈다는 것, 지금 그녀에게서 보이는 것이 그녀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우리도 모두 똑같이 되리라는 것, 한때는 소중했고 한때는 우리와 똑같이 생명력이 넘쳤지만 이제 불쌍하게 된 이 존재를 위해 자제하고 그녀에게 기쁜 마음으로 순종해야 함을 그 시선들은 말하고 있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 그들의 시선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13


피에르가 아내와 응접실로 왔을 때 백작 부인은 습관적으로 하는 '그랑 파시앙스'(둘 이상이 하는 카드게임)라는 정신노동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피에르나 아들이 집에 올 때마다 늘 하는 “때가 됐네. 때가 됐어, 이보게. 기다리다 지쳤어. 이런, 고마우이”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고 선물을 받은 후에도 습관적으로 “귀중한 건 선물이 아니야. 나 같은 늙은이에게도 선물하려는 그 마음이 고맙지”라고 말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그랑 파시앙스에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인지 피에르의 귀가를 불쾌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랑 파시앙스를 끝내고 나서야 선물을 집어 들었다. 선물은 아름답게 세공한 카드 상자, 양치기 여자들이 그려진 뚜껑 달린 밝은 파란색의 세브르산 찻잔, 피에르가 페테르부르크의 세밀화가에게 주문한 죽은 백작의 초상화가 붙은 금제 담뱃갑이었다(백작 부인은 오래전부터 그것을 갖고 싶어 했다). 그녀는 지금은 울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초상화를 무심히 쳐다만 보고 카드 상자에 더 관심을 가졌다.


“고맙네, 이보게, 날 위로해 줘서.” 그녀는 평상시와 똑같이 말했다. “하지만 자네가 무사히 돌아와 가장 기쁘다네. 그런데 별일이 다 있더군, 자네, 아내를 혼 좀 내야겠어. 무슨 일이냐고? 자네가 없으니 완전히 미친 여자 같았어. 아무것도 못 보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 그녀는 습관적인 말들을 했다.


피에르, 나타샤, 니콜라이, 마리야, 데니소프는 백작 부인 앞에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많은 것들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백작 부인이 많은 것에서 너무도 뒤떨어져서 무슨 이야기를 시작했다가는 그녀가 엉뚱하게 던지는 질문들에 대답을 하고 그녀에게 이미 수차례 되풀이한 이야기를, 예컨대 누가 죽었고 누가 결혼했다는, 그녀가 다시 기억하지 못할 일들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체된 듯한 슬픈 침묵이 흐르는 동안 옆방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됐어, 다 됐어!” 어린 나타샤의 즐거운 외침이 다른 아이들의 목소리들 가운데에서 또렷이 들렸다. 피에르는 마리야 백작 부인과 니콜라이와 (그는 항상 나타샤를 보고 있었다) 눈짓을 주고받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안나 마카로브나가 긴 양말을 다 떴어요.” 마리야 백작 부인이 말했다.

“오, 보러 가야겠네.” 피에르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14


그 후 곧바로 아이들이 밤 인사를 하러 왔다. 가정교사들은 인사하고 나가고 데살과 그의 학생만 남았다. 가정 교사는 학생에게 아래층으로 내려가자고 소곤거렸다.“아니요, 무슈 데살, 저는 고모에게 이곳에 남게 해 달라고 부탁할래요.” 니콜렌카도 소곤거리며 대답했다. “고모, 저도 남게 해 주세요.” 니콜렌카가 고모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애원과 흥분과 환희가 어려 있었다. 마리야 백작 부인은 그를 바라보고 피에르를 돌아보았다.“당신이 여기 있으면 이 아이가 떠나질 못해요…….” 그녀가 그에게 말했다.


대화는 정계 최고위층 사이의 소문에서 계속 맴돌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통 이런 소문에서 국내 정치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바를 본다. 공직 생활에서 실패하여 정부에 불만을 갖게 된 데니소프가 생각하기에 지금 페테르부르크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모두가 어리석은 것들로, 그는 이 일에 대한 이야기를 기쁘게 들으면서 강하고 신랄한 표현으로 피에르의 말에 자신의 의견을 표명했다.


“예전에는 독일인이 되어야 했는데 이제 타타리노바와 마담 크뤼드너와 춤을 춰야 하고, 또 읽어야 할 것은…… 에카르트샤우젠과 그 일당의 책들이군. 아, 우리의 훌륭한 보나파르트를 다시 풀어 주고 싶네. 그자라면 이런 바보같은 짓을 다 때려 부술 텐데. 슈바르츠* 같은 병졸에게 세묘놉스키 연대를 넘기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그는 소리쳤다.


니콜라이 역시 정부를 비판하는 것을 매우 가치 있고 중요한 일로 여겼고 A가 어느 부서의 대신에 임명되었다느니 B 장군이 어디의 현 지사로 임명되었다느니 군주가 무슨 말을 하고 대신이 무슨 말을 했다는 등의 이 모든 일들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피에르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하는 질문 때문에 대화는 정부 고위층에 대한 소문이 지니는 평범한 성격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피에르가 페테르부르크에 다녀 온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남자들은 서재로 갔고, 니콜렌카 볼콘스키는 고모부의 눈에 띄지 않게 서재로 따라가 창가의 책상 옆 그늘진 곳에 앉았다.

“그럼 자네는 어떻게 할 건가?” 데니소프가 물었다.

“영원한 환상이야.” 니콜라이가 말했다.

“그건 바로…….” 피에르가 말문을 열었다. 그는 자리에 앉지 않고 방을 걸어 다니다 멈췄다 하면서 손으로 빠른 동작을 취하며 이야기했다.


“이런 거야. 페테르부르크가 처한 상황은 이래. 군주가 아무것에도 개입하지 않고 계시네. 신비주의에 푹 빠지셨지. (피에르는 이제 누구든 간에 신비주의를 용인하지 않았다.) 군주는 오직 평온만 찾으시는데 그분께 평온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베고 압살하는 양심도 명예도 없는 자들이야. 마그니츠키, 아락체예프 같은 인간들……. 만일 자네가 직접 영지 경영에 전념하지 않고 평온만을 바란다면 자네의 관리인이 잔인할수록 자네의 목적은 더 빨리 달성될 거라는 데 자네는 동의하나?” 그는 니콜라이에게 얼굴을 돌렸다.


“흠, 자네는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니콜라이가 말했다.

“음, 모든 게 망해 가고 있어. 재판소에서는 사기만 치고, 군대에는 훈련이다 둔전이다 하면서 몽둥이만 있어. 민중을 괴롭히고 계몽을 억압해. 젊고 정직한 것은 무엇이든 파괴해! 이런 상태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어. 모든 것이 잔뜩 긴장되고 있고, 그러면 반드시 끊어질거야. 내가 페테르부르크에서 그들에게 말한 건 딱 하나야.” 피에르가 말했다.


“누구에게?” 데니소프가 물었다.

“누군지 자네들도 알아.” 피에르는 의미심장하게 눈을 힐끗 치켜뜨고 말했다. “표도르 공작과 그들 모두에게. 계몽과 자선을 위해 경쟁하는 것은 다 좋다 이거야. 목적도 훌륭하고 다 훌륭하지.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다른 것이 필요해.”


“대체 활동의 목적이 뭐야?” 그가 외쳤다. “자네들은 정부에 대해 어떤 관계를 가질 거지?”

“어떤 관계냐니! 조력자 관계지. 정부가 허용하면 모임이 비밀 결사가 될 필요는 없어. 이 모임은 정부에 적대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의 모임이야. 말 그대로 신사들의 모임이지. 내일 푸가초프가 내 아이들과 자네 아이들을 죽이러 오지 않도록, 아락체예프가 나를 둔전병으로 보내지 않도록, 우리는 오직 이것을 위해, 오직 공동의 복지와 공동의 안전이라는 목적을 위해 서로 손을 잡는 거야.”


“그래, 하지만 비밀 결사잖아. 이런 모임은 악을 낳을 수도 있어.” 니콜라이가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어째서지? 유럽을 구한 투겐트분트(Tugendbund, 1808년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프로이센을 점령한 프랑스인들과 투쟁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밀 정치 결사)가 해로운 걸 가져왔나? 투겐트분트는 선을 위한 동맹이고 사랑이고 상호 부조야. 이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설교하신 거야.”


대화 도중 방에 들어온 나타샤는 기쁘게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기뻐한 것은 남편의 생기 있고 열광적인 모습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보다 더 기쁘고 감격적으로 피에르를 보고 있던 이는 모두에게 잊힌, 더블칼라 위로 가느다란 목을 드러낸 소년이었다. 피에르의 모든 말이 그의 심장을 불태웠고, 그는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여 자신도 모르게 고모부의 책상에 있는 봉랍과 펜의 깃털을 손에 잡히는 대로 부러뜨리고 있었다.


니콜라이는 더욱 눈썹을 찡그리면서 혁명을 전혀 예견할 수 없고, 피에르가 말하는 모든 위험은 그의 상상에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피에르가 반론을 폈는데, 피에르의 지적 능력이 더 뛰어나고 기민했기 때문에 니콜라이는 자신이 궁지에 몰린 것을 느꼈다. 그것이 그를 더욱 화나게 했는데 왜냐하면 그는 마음속으로 논증 이 아니라 그보다 더 강력한 무언가에 의해 자신의 견해가 정당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일어나 신경질적인 동작으로 파이프를 구석에 세워 놓으려 다 결국 집어 던졌다."난 자네에게 증명할 수 없어. 자네는 우리 나라의 모든 것이 추악하고, 조만간 대변혁이 일어날 거라고 말해. 그러나 난 그렇게 보지 않아. 하지만 자네는 서약이 조건적인 거라고 말하는데, 자네가 비밀 결사를 만들어 정부에 저항한다면, 만약 아락체예프가 당장 기병 중대를 이끌고 자네를 공격하여 베어 버리라 명령하면 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갈 거야. 그다음에는 원하는 대로 판단해." 그 말 이후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저녁 식사를 하러 사람들이 일어났을 때 창백한 얼굴의 니콜렌카 볼콘스키가 피에르에게 다가왔다.

"피에르 아저씨, 만약 아빠가 살아 계셨다면…… 아저씨의 의견에 동의하셨을까요?" 그가 물었다.

피에르는 문득 자신이 이야기하는 동안 이 소년에게서 어떤 특별하고 독립적이고 복잡하고 강렬한 감정과 사고의 작용이 일어 났음을 깨달았고, 자신이 한 말을 떠올린 후에는 소년이 그것을 들었다는 것에 화가 났다.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마지못해 말하고는 서재에서 나갔다.


15


저녁 식사 때 대화는 더 이상 정치와 사회에 관한 것이 아니라 니콜라이가 매우 좋아하는 1812년의 추억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다. 이를 먼저 꺼낸 사람은 데니소프였고, 피에르는 그 얘기만 나오면 특히 쾌활하고 익살스러워졌다. 그래서 친척들은 상당히 친밀한 관계가 되어 헤어졌다.


저녁 식사 후에 니콜라이는 서재에서 옷을 벗고 오랫동안 기다린 관리인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린 뒤 할라트 차림으로 침실에 들었다. 그는 아내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뭘 쓰고 있어, 마리?” 니콜라이가 물었다. 마리야 백작 부인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자기가 쓰고 있는 것을 남편이 이해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그녀는 자기가 쓴 것을 숨기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그가 발견함으로써 그것을 털어놓게 된 것에 기뻐했다.

“일기예요, 니콜라.” 그녀는 단정하고 커다란 글씨가 가득 쓰여 있는 파란색의 작은 공책을 내밀며 말했다.

“일기?” 니콜라이는 조롱 조로 말하고는 공책을 받았다.


니콜라이는 일기를 몇 개 읽은 뒤 공책을 내려놓고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내의 빛나는 눈동자가 무언가를, 즉 그가 자신의 일기를 인정할 것인지 아닌지를 묻고 싶은 듯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니콜라이가 일기를 인정했을 뿐 아니라 아내에게 감동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영적 세계에 있는 그녀 앞에서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의식하며 그는 그녀가 지적이고 선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고, 독립된 영혼을 가진 그녀가 그에게 속해 있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의 일부라는 사실에 더욱 기뻐했다.


그는 잠시 침묵했다가 덧붙였다. “그런데 난 오늘 추악하게 처신했어. 당신은 서재에 없었지. 피에르와 논쟁을 시작했는데 나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졌어. 어쩔 수가 없었어. 그는 진짜 어린아이 같아. 나타샤가 그의 고삐를 잡지 않았다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나도 모르겠어. 당신은 무엇 때문에 피에르가 페테르부르크에 갔다 왔는지 상상할 수 있겠어? 그자들이 거기서 조직한…….”

“네, 알고 있어요.” 마리야 백작 부인이 말했다. “나타샤에게 들었어요.”


"피에르는 정부에 맞서는 것이 모든 정직한 사람의 의무라면서 날 설득하려 하는데 그러면 서약과 의무가……. 당신이 그 자리에 없어서 유감이야. 모두가 나를 공격했어. 데니소프도, 나타샤도……. 나타샤는 웃기더라고. 사실 남편을 꽉 잡고 살면서 논쟁이라도 벌어지면 그 애는 자신의 언어도 없어서 그냥 남편 말을 그대로 따라 해."


"내가 의무와 서약이 가장 최상의 것이라고 피에르에게 말했더니, 그는 아무도 모르는 것을 주장하기 시작했어. 당신이 그 자리에 없었던 게 유감이야. 당신이라면 뭐라고 했을까?"

"난 당신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해요. 난 나타샤에게도 그렇게 말했어요. 피에르의 말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괴로워하고 타락해 가고 있고, 이웃을 돕는 것이 우리의 의무죠. 물론 그의 말은 옳아요." 마리야 백작 부인이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잊고 있어요. 우리에게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명령한 다른 의무, 즉 보다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의무가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그리고 우리는 위험을 무릅쓸 수 있지만 아이들을 위험에 내맡길 수는 없어요."

"그래, 그거야, 그거. 내가 그에게 말한 것도 바로 그거야." 니콜라이는 그 말을 지지했는데 마치 그는 실제로 자신이 그 말을 한 것처럼 느꼈다.


"그래, 피에르는 언제나 몽상가였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그곳에서의 그 모든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이야? 아락체예프가 선하지 않은 게 나와 무슨 상관이지? 난 결혼했고, 어머니와 당신과 아이들과 일이 있지. 내가 내 만족을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사무실에 있거나 일 때문에 돌아다니는 건가? 아니야, 난 알아. 예전의 내가 그랬던 가난한 상황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나는 일해야 한다는 걸 말야."


마리야 백작 부인은 인간이 빵만으로 배가 부른 게 아니라고, 그가 이런 일들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필요도 없고 말해 봤자 무익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입을 맞추었다. 그는 아내의 이러한 몸짓을 자기 생각에 대한 찬성과 인정으로 받아들였고, 잠시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자신이 생각한 바를 소리 내어 말했다.


"당신도 알 거야, 마리." 그가 말했다. "오늘 탐보프 마을에서 일리야 미트로파니치가 (관리인이었다) 와서 말하기를, 숲이 8만 루블에 팔렸대."니콜라이는 생기 넘치는 얼굴로 빠른 시일 내에 오트라드노예를 되찾을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10년만 더 있으면 훌륭한 재정 상태에서 난 아이들에게 1만 루블을 남길 수 있을 거야."


그녀는 자신이 이해하는 것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이 남자에게 순종적인 부드러운 애정을 느꼈고, 바로 이것 때문에 더 강렬하고 부드럽게 그를 사랑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조카에 대해 생각했고 (피에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카가 흥분했다는 남편의 말에 그녀는 강한 충격을 받았다) 조카의 부드럽고 예민한 여러 성격상 특징들을 떠올렸다. 그녀는 조카와 자기 아이들을 비교하지 않았지만 그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비교해 보고 니콜렌카에 대한 감정에 무언가가 부족함을 발견해 슬퍼졌다.


마리야 백작 부인의 영혼은 언제나 무한하고 영원하고 완전한 것을 갈망 했으므로 결코 평온한 상태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속에 감춰지고 육체에 억눌린 영혼의 숭고한 고통이 엄숙하게 떠올랐다.니콜라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 하느님! 아내가 죽으면 우리에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마리가 저런 얼굴을 하고 있을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어.'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콘 앞에 서서 저녁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16


나타샤 역시 남편과 단둘이 있게 되자 부부 사이에서만 할 수 있는 대화를 남편과 나누었다. 즉 판단과 추론과 결론을 거치지 않고 논리학의 모든 규칙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완전히 독특한 방식으로 매우 명료하고 빠르게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전달했다. 그녀는 남편과 그런 방식으로 대화하는 데 익숙했기 때문에 피에르가 논리적으로 사고할 때면 그것은 그녀에게 두 사람 사이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신호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들이 둘만 남은 바로 그 순간부터, 나타샤가 행복한 눈을 크게 뜨고 조용히 다가가 갑자기 빠르게 남편을 꽉 끌어안으며, "이제 당신은 완전히, 완전히 나의 것이에요, 당신은 떠날 수 없어요!"라고 말한 그때부터 논리학의 모든 규칙에 어긋나는 그 대화가 시작되었다. 많은 화제를 이렇듯 동시에 이야기하는 것은 명료한 이해를 방해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두 사람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신호가 되었다.


나타샤는 오빠의 일상에 대해, 남편 없이 그녀가 살 수 없을 만큼 괴로웠던 것에 대해, 자신이 마리를 더 사랑하게 된 것에 대해, 마리가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낫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 말을 하면서 나타샤는 자신이 마리의 우월함을 알고 있다고 진심으로 인정했지만 한편으로는 피에르에게 마리는 물론 다른 여자들보다 자신을 더 좋아한다고, 특히 그가 페테르부르크에서 많은 여자들을 보고 난 후인 지금 자신에게 그 말을 다시 해 주기를 요구했다.


그는 처남과의 논쟁을 떠올리곤 불쾌해져서 그것에 대해 나타샤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니콜렌카에게는 이런 약점이 있어요.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오빠는 그 무엇도 절대 찬성하지 않아요. 하지만 난 이해해요. 당신은 활동 분야를 새로 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녀는 언젠가 피에르가 한 말을 되풀이하며 말했다.


"아냐." 피에르가 말했다. "중요한 건 니콜라이에게 사유와 판단은 그저 시간을 때우는 식의 오락에 불과하다는 거야. 서고를 만들고는 있지만 구입한 책을 다 읽기 전에는 새 책을 사지 않는 것을 규칙으로 했잖아. 시스몽디도 루소도 몽테스키 외도 말이야." 피에르는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니콜라이는 우리가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 해. 그러나 난 그럴 수 없어. 이미 난 페테르부르크에서 그걸 느꼈는데 (당신에게 단언할 수 있어) 내가 없으면 이 모든 것이 붕괴되고 다들 각각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려 할 거야. 하지만 난 모두를 하나로 결합시키는 데 성공했고, 내 생각은 아주 단순하고 명료해. 내 말은 우리가 이런저런 것에 대항해야 한다는 게 아니야. 우리는 실수할 수도 있어. 내가 말하는 것은 바로 이거야. 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손을 잡으라, 오직 실천적인 선(善)을 유일한 기치로 삼자. 세르게이 공작은 훌륭하고 지적인 사람이야."


나타샤는 피에르의 생각이 위대한 사상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한 가지가 그녀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것은 그가 그녀의 남편이라는 사실이었다. '사회를 위해 이렇게 중요하고 필요한 사람. 이 사람이 나의 남편이란 말인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 그녀는 그에게 이런 의심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 사람이 정말로 가장 똑똑한 사람인지 아닌지 누가, 어떤 사람들이 판단할 수 있을까?' 그녀는 자문하면서 피에르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선별해 보았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가 플라톤 카라타예프만큼 존경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요? 플라톤 카라타예프를 생각했어요. 그는 지금 당신의 말에 찬성할까요?"


"플라톤 카라타예프?" 그는 이렇게 말하고 생각에 잠겼는데 마치 이 화제에 대한 카라타예프의 판단을 상상해 보려고 애쓰는 듯 보였다. "그는 이해하지 못했을 거야. 하지만 찬성했을 거라고 난 생각해."

"당신을 너무도 사랑해요!" 나타샤가 갑자기 말했다. "너무너무요."

"아냐, 반대했을지도 몰라." 잠시 생각하고 나서 피에르가 말했다. "그가 찬성하는 건 아마도 우리의 가정생활이었을 거야. 그는 모든 것에서 단정함과 행복과 평안을 보기를 간절히 바랐고, 난 그에게 자랑스럽게 우리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데……."


"얼마나 바보 같아요!" 돌연 나타샤가 말했다. "밀월, 결혼 초가 가장 행복하다는 등의 말들이오. 난 지금이 가장 행복해요. 당신이 떠나지만 않으면 말이에요. 우리가 어떻게 싸웠는지 기억해요? 언제나 내가 잘못했어요. 언제나 나였어요. 그런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싸웠죠? 이제는 기억도 안 나요."

"언제나 똑같은 것에 대해서였지." 피에르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질투……."

"말하지 말아요. 참을 수 없어요." 나타샤가 소리 질렀다. 그녀의 눈이 적의에 찬 차가운 빛으로 반짝였다.


그녀는 잠시 침묵하고 나서 덧붙였다. "그 여자를 봤어요?"

"아니, 설령 보았다 해도 알아보지 못했을 거야."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아, 알아요? 당신이 서재에서 말할 때 난 당신을 보고 있었어요." 밀려오는 구름을 몰아내려고 애쓰는 것처럼 나타샤가 말했다. "당신과 그 애, 그 소년은 (그녀는 아들을 그렇게 불렀다) 완전히 닮았어요. 아, 그 아이에게 가 봐야겠어요……."


바로 그때 니콜렌카 볼콘스키의 방인 아래층 침실에서는 평상시처럼 이콘 앞의 램프가 밝게 타오르고 있었다. (소년은 어둠을 두려워했고 이러한 결점을 고칠 수 없었다.) 데살은 베개 네 개를 높이 포개어 놓고 자고 있었다. 로마인 같은 매부리코가 고르게 코 고는 소리를 냈다. 니콜렌카는 식은땀을 흘리며 막 잠에서 깨어나 침대에 앉아 눈을 크게 뜨고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악몽이 그를 깨웠다.


그는 꿈에서 자신과 피에르가 투구를 쓰고 있는 것을 보았다. 플루타르코스의 책에 묘사된 그런 투구였다. 니콜렌카와 피에르는 큰 규모의 군대 선두에 서서 나아갔다. 그 군대는 가을에 주위를 날아다니는, 데살이 '성모의 실'이라 부르는 거미집과 같은 하얀 사선들, 대기를 가득 채우는 하얀 사선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앞에는 영광이 있었고, 그것은 똑같은 실이었지만 다만 좀 더 튼튼했다. 그들(그와 피에르)은 경쾌하고 즐겁게 목표를 향해 점점 더 가까이 전진 했다. 갑자기 두 사람을 움직이던 실이 약해지면서 엉키기 시작했다. 힘들어졌다.


그런데 니콜라이 일리이치 고모부가 무섭고 엄한 자세로 그들 앞에 서 있었다.

"이건 당신들이 한 짓입니까?" 그가 부러진 봉랍과 깃털 펜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 당신들을 사랑했지만 아락체예프가 나에게 명령을 내렸으므로 난 제일 먼저 앞으로 나오는 자를 죽이겠습니다.” 니콜렌카는 피에르에게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피에르는 없었다. 피에르는 아버지, 즉 안드레이 공작이었고, 아버지는 형상과 형체를 지니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있었다.


니콜렌카는 그를 보면서 사랑으로 약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자신이 무력해지고 뼈가 없어져 액체가 되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그를 어루만지며 불쌍하게 여겼다. 그러나 니콜라이 일리이치 고모부가 그들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니콜렌카는 공포에 사로잡혔고 잠에서 깼다.


'아버지, (집에는 두 점의 비슷한 초상화가 있었지만 니콜렌카는 안드레이 공작을 인간의 형상으로 상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는 나와 함께 계셨고 날 어루만져 주셨어. 아버지는 나를 인정하셨고 피에르 아저씨의 생각도 인정하셨어. 그분이 무슨 말을 하든 간에 난 그것을 해낼 거야. 무치 스체볼라는 자기 손을 태웠어. 내 인생에 그런 일이 없을까 보냐? 어른들은 내가 공부하기를 원한다는 걸 알고 있어. 따라서 난 공부할 거야. 하지만 언젠가는 공부를 그만둘 거야. 그리고 그때 그것을 할 거야. 난 하느님께 오직 한 가지만 구할 거야. 플루타르코스의 인간들에게 일어난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게 해 달라고. 그리고 난 똑같이 해내겠어. 더 잘 해낼 거야. 모든 사람들이 날 알고 모두가 날 사랑하고 모두가 나에게 감탄할 거야.'


문득 니콜렌카는 가슴이 죄어 오면서 울음이 복받치는 것을 느꼈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파요?” 데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뇨.” 이렇게 대답하고 니콜렌카는 베개를 베고 누웠다.‘그는 선하고 좋은 분이야. 난 그분이 좋아.’ 그는 데살에 대해 생각했다.‘그런데 피에르 아저씨! 아, 정말 훌륭한 사람이야! 그럼 아버지는? 아버지! 아버지! 그래, 난 심지어 그분도 만족해하실 그런 일을 해낼 거야…….’



<에필로그 제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