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2-3)

김연경 옮김 민음사

by Andy강성

10. 변호사의 변론. 양날의 칼


저명한 연사의 첫마디가 울려 퍼지자 사위가 잠잠해졌다. 법정의 시선은 온통 그에게로 쏠렸다. 그는 굉장히 직설적이고 간단명료하게, 확신에 차 있긴 하되 거만을 떠는 구석이라곤 조금도 없는 어조로 변론을 시작했다. 화려한 웅변이나 비장한 어조, 감정에 호소하는 말을 늘어놓으려는 시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공감대가 형성된 내밀한 무리의 사람들 사이에서 말을 꺼낸 사람 같았다.


변론을 시작할 때는 마땅한 체계도 없이 왠지 산만하게 이런저런 사실들을 무작위로 끌어오는 식으로 말을 이어 갔지만, 끝에 가서는 하나의 전체가 나왔다. 그의 변론은 대략 두 부분으로 나뉠 성싶었다. 전반부 ─ 그것은 기소 내용에 대한 비판이자 논박으로서 이따금씩 악의에 차 있고 신랄하기도 했다. 하지만 변론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왠지 갑자기 어조를, 심지어 자신의 논법마저도 바꾸고 단번에 비장한 쪽으로 고양됐는데, 법정 전체가 그것을 기다려 온 양 다들 환희에 차 전율하기 시작했다.


그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첫마디부터, 자신이 러시아의 지방 도시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그런 경우 그 피고인들의 무죄를 확신하거나 아니면 미리부터 무죄일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경우도 맨 처음에 나온 어떤 신문 보도들을 접하자마자 이미 제 머릿속에서 뭔가 떠올랐는데, 그것은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저로선 굉장히 충격적인 어떤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제 생각으로 본 사건처럼 완전하고 도드라지게 부각된 경우는 드문 어떤 사실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겁니다.

저로선 이 사실을 제 변론이 끝날 피날레 부분에 가서 피력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그래도 서두에서부터 제 생각을 표명하도록 하겠는데, 이러는 것이 제 입장에서 보자면 이해타산에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신 진실한 것이긴 합니다.

해서, 저의 생각, 저의 공식이란 바로 다음과 같은데 ─ 즉, 피고인에게 불리한 사실들이 사람을 짓누를 만큼 산더미처럼 누적되어 있지만 동시에 그것들을 각기 그 자체로 살펴본다면 어느 것 하나 비판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기소 내용을 이루는 사실들이 각각 떼 놓고 보면 증거 불충분에 환상적이기까지 하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 이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됐습니다."


이렇게 변론을 시작한 변호사는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배심원 여러분, 우리는 모두 탁월한 재능을 자랑하는 검사의 논고를 통해 피고인의 성격과 행동에 대한 엄격한 분석을 듣고 사건에 대한 엄격한 비판적 태도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사건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심리적인 심연들을 파헤쳐 주었는데, 이와 같은 경우에는 사건에 대한 의도적이고 악의 섞인 태도보다도 더 나쁘고 심지어 더 파괴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소간의 예술적 유희, 예술적 창작이 생겨날 경우, 특히 우리의 능력에 천부적으로 풍부한 심리적 재능이 부여된 상태에서 말하자면 소설 창작과 같은 욕구가 생겨날 경우입니다. 심리학이란 심오한 것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양날의 칼과 비슷한 것입니다.


왜 정원으로 다시 뛰어내렸을까


오, 여러분, 물론 저의 이 시시한 비유를 용서해 주십시오. 좀 멋지게 말하는 데는 영 재주가 없어서요. 하지만 검사의 논고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피고인이 밤에 정원에서 담장을 넘어 도망치다가 자신의 한쪽 다리에 들러붙은 하인을 놋쇠 공이로 때려눕힙니다. 그다음엔 즉시 다시금 정원으로 뛰어내려 꼬박 오 분 동안 이렇게 쓰러진 자를 붙들고 씨름하는데, 그것은 이 자가 자기 손에 죽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자, 여기서 검사는 피고인이 그리고리 노인한테로 뛰어내린 것이 동정심의 발로였다는 피고인의 진술이 옳다는 것을 절대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런 순간에 그런 여린 감정이 생겨날 수 있는가, 그건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가 뛰어내린 건 바로 자기가 저지른 악행의 유일한 증인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무슨 다른 동기나 충동, 감정으로 인해 정원으로 뛰어내렸을 리 만무한 만큼 바로 이로써 그가 이 악행을 저질렀음을 증명한 셈이다.'라는 식이죠. 바로 이게 심리 분석이죠.


하지만 바로 이 심리 분석을 취하여 사건에 적용하긴 하되 다만 다른 각도에서 그렇게 한다고 해도, 그 못지않게 그럴듯한 결과가 나올 겁니다. 살인자가 아래로 뛰어내린 것이 증인이 살아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고자 하는 경계심에서였는데, 그런데도 지금 막 자기가 살해한 아버지의 방에 검사 자신의 증언에 의할 때 피고 자신에게 그토록 불리한 중대한 증거인 찢어진 돈 봉투를, 그 안에 3000루블이 들어 있었다고 쓰인 봉투를 그대로 내버려 뒀습니다.


'만약 그가 이 봉투를 가져갔다면, 이 세상의 누구도 그 봉투가 있었고 존재했으며 그 안에 돈이 들어 있었음을, 따라서 그 돈이 피고인에 의해 강탈당했음을 몰랐을 것이다.' 이것은 검사 자신의 말씀이올시다. 자 이렇듯, 보시다시피, 어떤 한 가지 일엔 경계심이 부족했던 사람이 앞뒤를 잃고 경악한 나머지 마룻바닥에 증거물을 내버려 둔 채 도망쳤는데, 고작 이 분쯤 뒤에 다른 사람을 때려죽이자 이제는 즉시 경계심이라는 가장 무정하고 이해타산적인 감정이 얼씨구나, 하고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칩시다, 정말로 그랬다고 치죠. 바로 이것이 심리학의 미묘한 지점일 테니, 즉 이런 상황에선 방금까지만 해도 캅카스의 독수리처럼 피에 굶주려 명민함을 발휘하다가 한순간만 지나면 시시껄렁한 두더지처럼 눈먼 겁쟁이가 되어 버린다는 거죠. 하지만 만약 내가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 그저 나를 음해할 증인이 살아 있는지 아닌지를 살펴보기 위해 뛰어내릴 정도로 피에 굶주려 있고 잔혹할 정도의 이해타산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무엇하러 나의 이 새로운 희생 양을 붙든 채 꼬박 오 분씩이나 씨름하고 더욱이 새로운 증인을 양산할 짓을 했을까요? 나중에 이 손수건이 나에게 불리한 증거가 될 수도 있건만, 무엇하러 쓰러진 자의 머리의 피를 닦느라 손수건을 적셨을까요?


천만에요, 만약 우리가 그렇게까지 이해타산에 사로잡혀 몰인정했더라면, 오히려 아래로 뛰어내린 뒤 바로 그 놋쇠 공이로 쓰러진 하인의 머리를 그냥 한 번만 더 내리쳐 완전히 죽여 놓음으로써 증인을 박멸하고 마음속에서 온갖 불안을 훌훌 떨쳐 버리는 편이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또 다른 증거인 이 놋쇠 공이를 바로 거기 길바닥에 던져두는데, 그것은 두 여성의 집에서 가져온 것인지라 나중에 그 두 여성이 언제든 '이건 자기들 것이다, 이건 자기들 집에서 가져간 것이다.'하고 증언할 게 뻔한 노릇인데,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런 짓을 했을까?'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바로 사람을, 늙은 하인을 죽였다는 생각에 마음이 쓰라렸기 때문에 신경질이 나서 저주를 퍼부으며 살인 흉기인 공이를 내던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힘껏 휘둘러 내던졌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만약 사람을 죽여 놓고서 고통과 동정을 느낄 수 있었다면, 그건 물론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는 소리입니다. 아버지를 죽였다면 동정심 때문에 저렇게 쓰러진 다른 사람한테로 뛰어내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경우에는 이미 다른 감정이 작용했을 것이고, 그땐 동정심이 아니라 자기 몸을 지키는 것이 문제였을 테지요.


자, 고로 이젠 완전히 다른 심리 분석이 나옵니다. 배심원 여러분, 제가 지금 일부러 심리 분석에 의지한 것은 그런 식으로 하면 아무 결론이나 되는대로 도출해 낼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그 심리 분석이 누구의 수중에 들어가 있느냐, 하는 것이죠. 심리 분석을 하다 보면 아주 진지한 사람들조차도 소설을 쓸 위험에 놓이며, 이건 참으로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지금 도가 지나친 심리 분석에 대해, 배심원 여러분, 그것의 다소간의 오용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겁니다.”


11 돈은 없었다. 강도질도 없었다


변호사의 변론 중 심지어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 준 대목이 있었으니, 바로 그 숙명적인 3000루블의 존재를, 따라서 그것의 강탈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한 것이었다.


"배심원 여러분." 하고 변호사가 변론을 시작했다. "본 사건에 대해 어떤 선입견도 지니지 않은 초심자라면 누구나 충격을 받을 만한 아주 두드러지는 특성이 하나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강탈 혐의를 논하고 있는데, 정확히 무엇이 강탈되었는가를 지시할 만한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는 점입니다. 돈이, 그것도 정확히 3000이 강탈되었다고 하지만 - 그것이 정말로 존재했는지, 이 점을 아무도 모른다는 거죠.


3000루블이 정말 있었나


한번 판단해 보십시오. 첫째, 3000루블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게 됐으며 누가 그것을 보았습니까? 그 돈을 직접 봤고 그것이 메모가 쓰인 봉투 속에 들어 있다고 일러 준 사람은 오직 하인 스메르쟈코프 하나뿐입니다. 그가 참극이 일어나기 전에 이 정보를 피고인과 그의 동생인 이반 표도로비치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스베틀로바 양도 들어서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 세 인물 모두 이 돈을 직접 본 적은 없고, 직접 본 자는 역시나 오직 스메르쟈코프뿐인데, 그렇다면 저절로 질문이 생깁니다.


만약 주인 나리가 이 돈을 침대에서 꺼내 그에겐 말하지 않고 다시 보석함에 넣어 두었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스메르쟈코프의 말에 따르면 돈은 침대 밑, 그러니까 이부자리 밑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피고인은 그것을 이부자리 밑에서 꺼냈어야 되지만, 사실 침대는 조금도 구겨져 있지 않았으며 이 점에 대해서는 조서에도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피고인은 침대를 조금도 구기지 않을 수 있었으며 더욱이 이번 기회에 일부러 말끔하게 새로 깔아 놓은 얇은 침대보를 피범벅이 된 손으로 더럽히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마룻바닥의 봉투는?


'하지만, 마룻바닥에 떨어진 봉투는 어쩔 거냐?'하고 말할 사람도 있을 테죠. 바로 이 봉투야말로 일별을 요하는 것입니다. 사실, 전 아까 탁월한 재능을 자랑하는 검사가 이 봉투 얘기를 꺼냈을 때 다소 놀라기까지 했습니다. 검사는 자기 입으로 '이 봉투가 없었더라면, 즉 강도가 그것을 마룻바닥에 증거물로 남겨 두지 않고 그냥 가져가 버렸다면,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봉투가 존재했고 그 안에 돈이 있었다는 것을, 고로 돈이 피고인에 의해 강탈당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라고 선언하지 않았습니까.


이렇듯, 글귀가 적힌 이 찢어진 종잇조각이, 심지어 검사도 인정하는바, 피고인의 강도 혐의를 입증하는 유일무이한 증거가 되며 '이것이 없었다면 강도질이 있었음을, 어쩌면 돈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아무도 몰랐을 것'이 되는 겁니다. 하지만 정녕, 이 종잇조각들이 마룻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안에 돈이 들어 있었고 이 돈이 강탈당했다는 것이 입증됩니까?


봉투가 그 안에 돈이 들어있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나?


'하지만 봉투 안에 돈이 들어 있는 걸 스메르쟈코프가 보았다.'라고 대답할 테지만, 저도 스메르쟈코프와 얘기를 나눠 봤지만, 그는 저한테 그 돈을 본 것이 참극이 발발하기 이틀 전이었다고 말하더군요! 그렇다면 제 입장에선 응당 다음과 같은 정황을 가정해 볼 수 있겠죠. 즉, 예를 들어 표도르 파블로비치 노인이 초조한 심정으로 연인을 기다리다가 갑자기 돈 봉투를 꺼내 뜯어봤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봉투 따위론 믿음이 가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서른 장의 무지갯빛 지폐 한 다발을 통째로 그녀에게 보여 주자, 아마 이게 더 큰 효과를 발휘할 거야, 침을 질질 흘릴 테지.' 자, 그러곤 봉투를 찢어 돈을 꺼낸 뒤 자기가 주인이니까 여봐란듯이 힘차게 봉투를 마룻바닥으로 내던지는데 물론, 증거가 남을까 봐 신경 쓸 이유는 하나도 없죠.


들어 보십시오, 배심원 여러분, 이런 가정, 이런 사실이야말로 정말 가능성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것이 왜 불가능하단 말입니까? 만약 이와 같은 일이 뭐라도 일어날 수 있었다면, 강탈 혐의는 저절로 없어지게 됩니다. 돈은 없었고, 따라서 강도질도 없었던 것이죠. 만약 봉투가 마룻바닥에 있었던 것이 그 안에 돈이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면, 그 반대의 경우를, 즉 봉투가 마룻바닥에서 뒹군 것은 바로 그 안엔 진작부터 돈이 없었기 때문이고 그건 주인이 미리 꺼냈기 때문이다, 하고 주장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건 그렇다고 쳐도 그런 경우라면, 즉 '표도르 파블로비치가 직접 봉투에서 돈을 꺼냈다면 대체 그 돈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그 집을 수색했을 때 왜 발견되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겠죠. 첫째, 그의 보석함에서 돈의 일부가 발견되었으며, 둘째, 그가 아침이나 심지어 그 전날 밤에 돈을 꺼내서 어디다 지불하거나 송금을 하는 등 다른 식으로 처리했을 수도 있고, 끝으로, 스메르쟈코프에겐 미리 알릴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서 자기 나름의 근거에 기대어 자신의 생각이 나 자신의 행동 계획을 바꿨을 수도 있잖습니까?


아니, 이런 가정을 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그렇게 집요하고도 확고하게 피고인을 범인으로 몰면서 돈을 훔치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고 진짜로 돈도 훔쳐 갔노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이런 식으로 소설의 영역에 들어서는 겁니다. 어떤 물건을 강탈당했다고 주장하려면, 그 물건을 제시하든지 최소한 그것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입증해야 되는 법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본 사람이 숫제 아무도 없잖습니까. 본 사건의 경우는 그나저나 정말이지 이건 인간의 운명, 생사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그럼 1500루블은 어디서 난 건가?


'그렇다고 치더라도, 바로 그날 밤 그가 술판을 벌여 돈을 왕창 써 버렸건만 그에게서 1500루블이 발견되었다 ─ 그럼 이 돈은 어디서 난 것인가?'라고 하겠지요.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즉 겨우 1500루블만 나오고 나머지 절반의 금액은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도, 발각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 돈은 전혀 다른 돈, 그러니까 그 어떤 돈 봉투에도 들어간 적이 없는 돈일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상으로(그리고 매우 엄밀히 따져 서 말이죠.) 예심에서도 확인되고 증명된바, 피고인은 하녀들한테 갔다가 달려 나와 관리 페르호친을 찾아갔다가 자기 집은 물론이고 아무 데도 들르지 않고 이후부터 줄곧 사람들과 함께 있었고, 고로 3000 중 절반을 떼 내어 시내 어딘가에 숨겼을 리는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생각 때문에 검사는 돈이 모크로예 마을 어딘가에서 틈바구니에 숨겨졌을 것이라고 가정했던 겁니다.


말하자면 이런 가정은 상당히 환상적이고 낭만적이라는 거죠. 해서, 유념해 두십시오, 이 한 가지 가정 ─ 즉, 모크로예에서 돈을 숨겼다는 가정만 사라져도 강탈 혐의 자체가 완전히 공중에 분해됩니다. 그러니까 그 경우엔 대체 어디서, 대체 어느 곳에 이 1500을 숨겼단 말입니까? 피고인이 아무 데도 들르지 않았음이 증명되었다면, 대체 무슨 기적이 일어나 그 돈들이 사라져 버렸단 말입니까? 이런 소설들을 남발해서 우리는 한 인간의 생명을 파멸시킬 준비를 하는 셈이 아닙니까!


'어쨌거나 그는 자기 수중에 있던 이 1500이 어디서 난 것인지 설명하지 못했고, 그 밖에도 그날 밤까지 그에겐 돈이 없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요. 그런데 대체 누가 이걸 알았다는 거죠? 어쨌거나 피고인은 돈이 어디서 났는지를 분명하고 확고하게 진술했고 ─ 이 진술보다 더 신빙성 있는 건 결코 있지도 않았고 또 있을 수도 없으며, 이거야말로 피고인의 성격과 영혼에 가장 잘 부합되는 겁니다.


의지력이 약한 피고인이 1500루블을 계속 가지고 있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검사 측으로선 자신의 소설이 마음에 들었던 것입니다. 가뜩이나 의지력이 약한 데다가 약혼녀가 제안한 3000을 그런 치욕을 무릅쓰고 착복하기로 결심한 사람이라면 절반을 떼어 내서 부적 주머니 속에 기워 넣었을 리 없다, 오히려, 설령 그렇게 기워 넣었다고 할지라도 이틀마다 한 번씩 뜯어 100루블씩 야금야금 꺼냈을 테고 이런 식으로 한 달 안에 죄다 써 버렸을 것이다, 하는 거죠. 이 모든 얘기가 어떤 반박도 허용하지 않는 어조로 진술되었음을 기억해 주십시오.


하지만 상황이 여러분이 창조한 소설과 전혀 달랐다면, 그 소설 속 인물이 전혀 딴판이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문제는 전혀 엉뚱한 인물을 창조했다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어쩌면 '그가 사건이 일어나기 한 달 전 베르호프체바 양에게서 착복한 이 3000을 모크로예 마을에서 죄다 한꺼번에 1코페이카 다루듯 탕진했다고 말하는 증인들이 있는 만큼, 거기서 절반을 떼어 놓았을 리는 없다.'라는 반박이 쏟아져 나올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 증인들이란 도대체 누구입니까? 이 증인들의 신빙성이 어느 정도인가는 이 법정에서 이미 드러났습니다. 그 밖에도, 남의 떡은 언제나 커 보이는 법입니다. 끝으로, 이 증인들 중 이 돈을 직접 세 본 사람은 아무도 없고 다들 그저 눈짐작으로 판단했을 뿐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증인 막시모프는 피고의 수중에 있던 돈이 2만이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심리 분석이란 양날의 칼과 같은 것인 만큼 이제 제가 그걸 다른 각도에서 적용해 볼 테니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어디 한번 봅시다.


3000루블 송금 부탁


참극이 있기 한 달 전, 피고인은 베르호프체바 양에게서 3000루블을 송금해 달라고 부탁받았는데, 의문이 생깁니다. 즉, 조금 전에 선언된 것처럼 그와 같은 치욕과 굴욕 속에서 돈이 위임된 것이 과연 옳은 일입니까? 이 문제에 관한 베르호프체바 양의 첫 번째 증언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한편 두 번째 증언에서 우리가 들은 것은 그저 분함과 복수의 외침, 오랫동안 숨어 있던 증오의 외침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증인이 일단 첫 번째 증언에서 불확실한 증언을 했다 함은 곧 우리로 하여금 두 번째 증언 역시도 불확실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권리를 주는 셈입니다. 검사는 이 로맨스는 건드리고 싶지도 않고 감히 그러지 못하겠다.'(이건 그 자신의 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건 그렇다 치고 저 역시도 건드리지 않겠습니다만, 그래도 꼭 지적하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즉, 베르호프체바 양처럼 순결하고 덕망이 높으신 여성이,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저 여성이 대놓고 피고인을 파멸시킬 목적으로 갑자기 자신의 첫 법정 증언을 번복했다면, 그 증언이 공평하고 냉철한 것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정녕 복수심에 불타는 여성이 자칫 많은 걸 과장했을 수 있다고 단정 지을 권리마저도 우리에겐 없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녀는 돈이 제안되었을 때의 그 수치와 치욕을 과장했던 겁니다. 실은 그와 정반대로, 그 돈은 정확히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특히 우리의 피고인처럼 경솔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제안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무렵 그는 자신의 계산에 의하면 3000은 족히 되는 빚을 아버지한테서 곧 받을 수 있을 걸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경솔함 때문에 그는 '아버지가 자기한테 돈을 줄 테고 그걸 받기만 하면 곧 언제든지 돈을 송금하고 이로써 빚도 청산할 수 있다.'하고 굳게 믿었던 겁니다.


카라마조프의 두 개의 극단적인 심연


하지만 검사는 그가 그날, 즉 혐의가 짙은 그날 자기가 받은 돈 중 절반을 떼 내어 부적 주머니 속에 꿰매 넣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절대 인정하려 들질 않습니다. '그런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다, 그런 감정을 가졌을 리 만무하다.'라는 것이죠. 하지만 카라마조프는 넓다고 외쳤으며 또 카라마조프는 두 개의 극단적인 심연을 관조할 수 있노라고 외친 건 다름 아닌 검사였습니다. 카라마조프는 정말로 천성상 두 측면, 두 심연을 아우르기 때문에, 거나하게 술판을 벌이고 싶은 욕망이 자제할 수 없을 만큼 치밀어 오를 때조차도 뭔가가 다른 측면에서 그에게 충격을 준다면 즉각 발길을 멈출 수 있습니다.


그 다른 측면이란 - 바로 사랑, 그 당시 화약처럼 불타오른 새로운 사랑인 것이며 이 사랑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합니다. 오, 필요하다마다요! 만약 그녀가 난 당신 거야,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싫어.라고 말하면 그는 그녀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야 할 텐데 - 그러려면 데려갈 돈이 있어야 될 거 아닙니까. 카라마조프가 이걸 몰랐을 리가 있겠습니까? 바로 이 때문에, 이 근심 때문에 가슴앓이를 했던 것인데 - 그렇다면 그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이 돈을 따로 떼 내어 숨겨 둔 것이 왜 그럴듯하지 않다는 겁니까?


그나저나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피고에게 3000을 내주기는커녕 오히려 바로 그 돈을 자기 연인을 유혹하는 데 쓰기로 결정했다는 소문이 들려옵니다. 그는 '표도르 파블로비치가 돈을 주지 않으면 나는 카체리나 앞에서 도둑놈이 되고 만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그의 머릿속에서는 자기가 계속 이 부적 주머니에 담고 다닌 이 1500을 베르호프체바 앞에 가서 내놓고 '나는 비열한 놈이긴 하지만 도둑놈은 아니다.'라고 말하자, 하는 생각이 꿈틀거립니다.


자, 그리하여 바로 여기서 이미 부적을 뜯어 100루블씩 꺼내기는커녕 오히려 이 1500을 눈동자처럼 소중히 간직해야 하는 이중의 이유가 생깁니다. 무엇 때문에 여러분은 피고가 명예심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천만에요, 그는 명예심을 갖고 있습니다. 설사 옳지 못한 것일지라도, 설사 몹시 자주 잘못을 범할 수 있 는 것일지라도 분명히 명예심을, 그것도 열정적일 정도로 강렬한 명예심을 갖고 있으며, 그는 이것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그럼에도 사태가 더 복잡해지고 질투의 고통이 극에 달하자, 이전의 두 가지 문제가 가뜩이나 열에 들뜬 피고의 뇌 속에서 점점 더 고통스럽게 부각됩니다. '이 돈을 카체리나 이바노브나한테 줘 버리면, 무슨 돈으로 그루셴카를 데려간단 말인가?' 만약 그가 요 한 달 내내 정신을 잃을 만큼 폭음을 하고 온 술집을 돌며 난동을 부렸다면, 그건 바로 스스로가 너무 괴로워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이 두 가지 문제가 마침내 너무나 첨예하게 부각되자 마침내 그는 절망에 빠져 버렸습니다. 작은동생을 아버지한테 보내 마지막으로 이 3000을 부탁해 보았지만 대답을 채 듣기도 전에 직접 집으로 달려 들어가 가족이 빤히 보는 앞에서 노인을 구타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된 마당엔 이미 아무한테서도 돈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구타까지 당한 아버지가 돈을 줄 리 만무하니까요.


바로 그날 저녁 그는 자기 가슴을, 정확히 그 부적 주머니가 달려 있던 가슴의 윗부분을 두드리면서 자기는 비열한 놈이 되지 않을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다, 하지만 결국엔 어쨌거나 비열한 놈으로 남을 것이다, 왜냐면 '정신력도 부족하고 강단도 부족하여 어차피 그 수단을 사용하지 않으리라는 걸 자기가 훤히 알기 때문이다.'하고 동생에게 단단히 못 박아 두는 거죠. 왜, 왜 검사 측은 알렉세이 카라마조프가 그토록 순수하고 진실하게, 그토록 즉흥적이고도 그럴듯하게 제시한 증언을 믿지 않는 겁니까?


숙명적인 편지가 살인 프로그램인가?


그날 저녁, 동생과 대화를 나눈 뒤 피고인은 이 숙명적인 편지를 쓰고, 바로 이 편지가 피고인의 강도 혐의를 입증할 가장 중요하고도 가장 어마어마한 증거가 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한테 부탁해 보겠지만 아무도 주지 않을 경우엔, 이반이 떠나 주기만 한다면 아버지를 죽이고 이부자리 밑, 장밋빛 리본으로 묶은 봉투에 든 걸 가져가겠다.' 그야말로 완벽한 살인 프로그램입니다, 정말 그가 아니면 달리 누구겠습니까? '쓰인 대로 행해졌습니다!' 검사 측은 이렇게 외칩니다.


하지만 첫째, 이 편지는 취중에 신경이 끔찍할 정도로 날카로워진 상태에서 쓰인 것입니다. 둘째, 이번에도 그가 봉투를 직접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봉투 얘기는 스메르쟈코프의 말을 듣고 썼을 뿐입니다. 셋째, 쓴 건 그렇게 썼다고 치더라도, 쓰인 대로 행해졌다는 건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피고가 정말로 베개 밑에서 봉투를 꺼내긴 했습니까, 돈을 발견하긴 했습니까, 심지어 그것이 정말로 존재하긴 했던 겁니까? 더욱이, 피고인이 과연 돈을 훔치러 그렇게 달려갔던 겁니까,


제발 상기해 주십시오! 그가 쏜살같이 달려갔던 것은 돈을 훔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 여성이, 그를 괴롭혀 온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고로, 프로그램에 따라, 쓰인 것에 따라, 다시 말해 미리 계획한 강도질을 위해서 달려간 것이 아니라 느닷없이, 돌발적으로 질투에 휩싸여 앞뒤를 잃고 달려갔던 것입니다!


그렇다 치더라도 '어쨌거나 달려가서 살인을 하고 돈도 가로챘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끝으로, 그리하여 정말로 그가 죽인 겁니까, 예? 강도 혐의에 대해서라면 저는 분노를 느끼며 거부하는 바입니다. 무엇이 강탈되었는지를 정확히 명시할 수 없다면 강도 혐의를 씌울 수 없습니다, 이건 공리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가 죽인 겁니까, 돈은 훔치지 않고 죽인 겁니까? 이것은 증명되었습니까? 이것마저도 소설에 불과한 건 아닐까요?"


12 게다가 살인도 없었다


"그런데 배심원 여러분, 이것은 사람의 목숨과 관련된 문제이니만큼 보다 더 신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듣기론, 검사 측도 마지막 날까지, 재판이 열리는 오늘까지도 피고가 미리부터 작정을 하고 꼼꼼하게 살인을 계획했다는 단정을 내릴 수 없어 주저했노라고, 바로 이 치명적인 '취중' 편지가 오늘 법정에 제시되기 전까지도 주저했노라고 증언했습니다.


'쓰인 대로 행해졌습니다!' 하지만 다시금 반복하건대, 그가 달려간 건 그녀를 보기 위해, 그녀를 찾기 위해, 오로지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정말이지 이건 확고부동한 사실이 아닙니까. 그녀가 집에 있었더라면 그는 아무 데도 안 가고 그녀가 있는 곳에 머물렀을 것이며 편지에서 약속한 것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을 겁니다.


공이를 왜 집어 들었나?


그는 느닷없이 뛰어갔으며 자신의 '취중' 편지에 대해선 그 당시 숫제 기억도 못 했습니다. '공이를 집어 들었다.'라고 하는데, 이 공이 하나에서 그야말로 한 편의 완벽한 심리 분석이 도출된 것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겁니다. 여기서 제 머릿속으로 아주 평범한 생각 하나가 떠오릅니다. 만약 이 공이가 눈에 잘 뜨이는 장소, 즉 피고인이 손쉽게 집어 들 수 있었던 선반이 아니라 장롱 속에 곱게 보관되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요? ─ 그는 흉기 없이 빈손으로 달려 나갔을 것이고, 자, 그렇다면 아마 아무도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 대체 어떻게 제가 이 공이를 놓고 피고인이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흉기를 마련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왜 술집에서 떠들어 댔을까?


그건 그렇지만, 그는 술집을 돌며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외쳤고 범행 이틀 전 저녁, 즉 자신의 편지를 쓴 날 저녁엔 술집에서 조용하게 있다가 그저 어느 상인의 점원과 말다툼을 했을 뿐이라고 하셨죠. '왜냐면 카라마조프는 말다툼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것에 대해, 그가 이렇게 살인을 저지를 생각이었다면, 더욱이 계획대로, 쓰인 대로 실행에 옮길 생각이었다면 분명히 그 점원과도 말다툼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숫제 술집에 들어가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원래 속으로 그런 일을 계획한 사람은 남들이 자기를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하기 위해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고 아예 자취를 감출 궁리를 하는 법이니까요. '가능하다면 나를 잊어 주시오.'라는 식으로 나오는 건 무슨 계산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능에 따른 것입니다.


배심원 여러분, 심리 분석은 양날의 칼과 같기 때문에 우리도 심리 분석을 이해할 능력쯤은 있습니다. 피고가 요 한 달 내내 그렇게 술집을 돌며 떠들어 댄 것은 어린아이들이나 술에 취한 사람들이 술집을 나와 서로들 싸우며 '내 네놈을 죽일 테다.'를 비롯하여 별별 소리를 다 외치는 것과 다를 바 없는데, 그렇게 해 놓고서 실제로 죽이는 일은 없잖습니까. 게다가 바로 이 치명적인 편지 말인데 - 이 역시도 취중에 신경질이 나서 쓴 것에 지나지 않으니, 술집에서 흘러나오는 외침, 즉 죽일 테다, 네놈 들을 죄다 죽일 테다! 등과 뭐가 다릅니까. 왜 이것이 치명적인 편지가 되는 겁니까, 왜, 정반대로, 이것이 웃기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까?


정원에 있었던 이상, 곧 그가 죽인 것이다?


그건 정확히 살해된 아버지의 시체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며, 피고인이 무장한 채 정원에서 도망치는 것을 한 증인이 보았기 때문이며, 그 증인 자신이 피고인에 의해 쓰러졌기 때문이며, 따라서 모든 것이 쓰인 대로 행해진 것이 되고 바로 이 때문에 이 편지는 웃기는 것이 아니라 치명적인 것이 된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정원에 있었던 이상, 곧 그가 죽인 것이다.'라는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있었던 이상, 반드시 곧이라는 이 두 마디에 의해 모든 것이 해소되는데 - 즉, 모든 기소 내용이 있었던 이상, 곧 그렇고 그런 것이다.'라는 식이죠. 하지만, 설사 정원에 있었다고 할지라도 곧이 되는 게 아니라면 어쩌겠습니까? 오, 저도 동의하지만, 여러 사실들의 총합과 그 일치가 정말로 상당히 휘황찬란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 모든 사실들, 그것들의 총합에 압도되지 말고 하나씩 따로따로 살펴보십시오.


경건한 감정이 있었다면?


검사 측은 왜, 예컨대 아버지의 창문 앞에서 달아났다는 피고의 진술이 옳다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까. 갑자기 살인자에게 깃든 공손함과 '경건한' 감정에 관해 검사 측이 신랄한 공격을 가한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하지만 여기에 정말로 그와 같은 뭔가가 있었다면, 즉 공손한 감정은 아닐지라도 경건한 감정이 있었다면 어쩌겠습니까?


피고인은 예심에서 '필경 그 순간 어머니가 저를 위해 기도를 해 주셨던 겁니다.'라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래서 그는 스베틀로바가 아버지 집에 없다는 확신이 서자마자 도망친 것입니다. 하지만 창문 너머로 봐서는 제대로 확신할 수 없었다.'라고 검사 측은 반박합니다. 하지만 왜 그럴 수 없었다는 거죠? 어쨌거나 피고인이 신호를 보내자, 창문이 열리지 않았습니까. 그러고서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뭐라고 말을 한마디 하든지 뭐라고 외치든지 해서 스베틀로바가 거기 없다는 걸 피고인이 갑자기 확인할 수 있도록 해 주었을 겁니다.


그리고리가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왜 우리는 꼭 자기가 상상하는 대로, 자기가 상상하고 싶은 대로만 모든 걸 가정하는 겁니까? 실제 현실 속에는 가장 섬세한 소설가가 관찰을 하더라도 놓칠 수 있는 것들이 1000개는 족히 될 겁니다. '그건 그렇다고 해도, 그리고리는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고, 고로 피고인은 분명히 집 안으로 들어갔을 것이며, 고로 살인을 저질렀다.'


이 문제에 관한 한, 배심원 여러분…… 보시다시피, 이 열린 문에 대해서 증언하는 사람은 오로지 한 사람밖에 없으며, 그나마도 그 당시 그 사람의 상태가 그렇고 그런 지경이 아니었습니까…… 하지만 설령, 설령 문이 열려 있었다고 할지라도, 피고가 직접 문을 열어 놓고서 그의 처지를 고려할 때 충분히 이해할 만한 자기 보호 본능에서 거짓말을 했다고 할지라도, 설령, 설령 그가 집 안으로 잠입했고 집 안에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어쨌다는 겁니까 - 아니 왜, 거기 있었다면 반드시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입니까?


잠입해 놓고선 이 방 저 방을 뛰어다녔을 수도 있고 아버지를 떠밀었을 수도 있고 심지어 아버지를 때렸을 수도 있지만, 스베틀로바가 아버지 집에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는 그녀가 없다는 사실에, 즉 아버지를 죽이지 않고 갈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러니까 순수한 감정, 즉 연민과 동정심을 느낄 수 있었고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고 뛰쳐나왔고 자신의 내부에서 순수한 마음과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는 기쁨을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잠시 후에 자기가 흥분한 나머지 때려눕힌 그리고리를 향해 담장에서 뛰어내렸던 겁니다.


모크로예 마을에서의 행동 분석


검사는 모크로예 마을에서의 피고인의 무서운 상태를 끔찍할 정도로 화려하게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즉, 피고 앞에 새로이 사랑이 열려서 그를 새로운 인생으로 초대하지만, 피고인의 뒤엔 피범벅이 된 아버지의 시체가 놓여 있고 또 그 시체 뒤엔 형벌이 도사리고 있기에 그는 더 이상 사랑을 할 수 없는 몸이었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검사는 어쨌거나 사랑의 존재를 인정했으며 그것을 예의 그 심리 분석에 따라 설명했습니다. '취중이었다느니, 죄수가 형장으로 이송될 때 그 형장은 아직 멀고도 멀다느니 등등.' 하지만 검사님께 다시금 묻겠는데, 검사님께서 영 다른 인물을 창조한 것은 아닐까요?


아니, 만약 피고인의 몸에 정말로 아버지의 피가 묻어 있었다면 그런 순간에 사랑을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법관 앞에서 어떻게 말을 돌려 댈까를 생각할 수 있을 만큼, 그 정도로까지 피고인이 잔인하고 몰인정하게 굴 수 있었을까요? 아니, 아니올시다, 절대 아니올시다! 그녀가 피고를 사랑한다는 것이 밝혀지자마자, 그녀가 자기와 함께하자며 피고인을 불러 새로운 행복을 약속하자마자 - 오, 맹세코, 그의 뒤에 시체가 놓여 있었다면 그때 그는 분명히 자살하고 싶은 욕구를 두 배, 세 배로 더 강하게 느꼈을 것이며 또 반드시 자살했을 겁니다!


오 천만에요, 그가 자신의 권총이 어디에 있는지 잊었을 리 없습니다! 저는 피고인을 잘 알고 있습니다. 검사 측은 그가 야만스럽고 목석같이 무정하다고 했지만 그건 그의 성격과 맞지 않습니다. 그는 자살했을 겁니다, 이건 분명합니다. 그가 자살하지 않은 건 다름 아니라 '어머니가 그를 위해 기도를 해 주었기' 때문이며 그의 마음이 아버지의 피에 관한 한 아무 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 그가 모크로예에서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한 건 오로지 그리고리 노인을 때려눕혔기 때문이었으며, 노인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길, 자신이 가한 일격이 치명적인 것이 아니어서 그로 인해 자신이 형벌을 받지 않아도 되길 마음속으로 하느님께 기도했던 겁니다. 사건을 이렇게 해석한들, 왜 이걸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겁니까?


피고인이 우리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무슨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까? 그럼, '당장에 여기 아버지의 시신이 있지 않으냐, 하고 또다시 우리에게 말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는 살인을 저지르진 않고 그냥 도망을 쳤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노인을 죽였단 말인가?'하고 말입니다.


그가 아니라면 누가 죽였단 말인가?


반복하건대, 바로 여기에 검사 측의 논리가 오롯이 들어 있습니다. 즉, '그가 아니라면 누가 죽였단 말인가? 그 대신에 내세울 사람이 아무도 없지 않은가,' 하는 식이죠. 배심원 여러분, 정말 그런 겁니까? 그야말로, 정말로 달리 내세울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겁니까? 우리는 검사 측에서 그날 밤 이 집에 있었거나 드나들었던 사람들을 모두 일일이 손가락으로 세는 것을 들었습니다. 총 다섯 명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들 중 세 사람은, 저도 동의하는바, 혐의를 받을 건수가 전혀 없습니다. 그건 피살자 자신, 그리고리 노인, 그의 아내입니다.


남는 자는, 고로, 피고인과 스메르쟈코프인데, 자 여기서 검사는 비장한 어조로 외칩니다. 피고인이 스메르코프를 지목한 건 달리 지목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여기에 아무나 여섯 번째 사람이 있었다면, 하다못해 여섯 번째 사람의 무슨 유령이라도 있었다면, 피고인은 스스로 부끄러워하면서 얼른 스메르쟈코프에게 혐의를 씌우는 짓은 그만두고 이 여섯 번째 사람을 지목했을 것이다,하고요.


하지만, 배심원 여러분, 제가 완전히 정반대되는 결론을 내리지 못할 이유가 또 어디 있습니까? 두 사람, 피고인과 스메르쟈코프가 서 있는데 - 제 입장에서, 여러분이 저의 고객에게 혐의를 돌리는 것은 오로지 달리 그럴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하고 말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스메르쟈코프는 아닐까?


그런데 달리 아무도 없다고 하는 것은 그저 여러분이 미리부터 선입관에 사로잡혀 스메르쟈코프를 온갖 혐의에서 배제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스메르쟈코를 범인으로 지목한 사람은 피고 자신과 그의 두 동생, 스베틀로바 등 이들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증언하는 사람이 좀 더 있습니다. 그것은 모호하긴 하지만 여하튼 사교계를 떠도는 어떤 의문과 어떤 의혹의 냄새로서, 어떤 모호한 소문이 들려오고 어떤 기대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끝으로, 여러 사실들을 어느 정도 비교해 봐도, 불명료하다는 건 저도 인정하지만, 여하튼 극히 특징적인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첫째, 바로 사건 당 일에 일어난 간질 발작인데, 검사는 무엇 때문인지 무척이나 열심히 이 발작의 진정성을 변호하고 옹호해야만 했습니다. 그다음, 공판 전날 스메르쟈코프의 느닷없는 자살이 문제입니다. 그다음, 피고인 큰동생의 그 못지않게 느닷없는 증언인데, 그는 지금까지 형의 유죄를 믿었다가 오늘 갑자기 법정으로 돈을 갖고 와서 역시나 스메르 쟈코프를 살인범으로 거명했습니다!


오, 저는 재판진 및 검사 측과 마찬가지로 이반 카라마조프가 열병을 앓는 환자이며 그의 증언은 정말로 이미 죽어 버린 자에게 죄를 덮어씌우고 형을 구하고자 하는, 더욱이 미망에 들뜬 상태에서 생각해 낸 절망적인 시도일지도 모른다고 전적으로 확신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메르쟈코프의 이름이 거명되었으니, 이번에도 꼭 뭔가 수수께끼 같은 것이 들리는 듯합니다. 아무래도 여기선 꼭 뭔가가 채 다 말해지지 않은 것 같고, 배심원 여러분, 아직 다 끝나지 않은 것 같단 말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뒤에 가서야 마저 다 말해질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건 일단 미뤄 둡시다, 앞으로 때가 오겠죠.


법정은 조금 전에 심의를 계속하기로 결정했지만, 지금 이렇게 기다리는 동안에 어쨌거나 저는 뭔가를, 예컨대 검사가 그토록 섬세하고 탁월하게 묘사한 고 스메르쟈코프의 성격과 관련하여 두어 마디 해 둘까 합니다. 검사의 재능에 경탄해 마지않지만, 그럼에도 저는 그의 성격 묘사에는 극히 본질적으로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도 스메르쟈코프를 찾아가서 그를 만났고 대화도 나눴지만, 그가 저에게 불러일으킨 인상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몸이 허약하다는 건 사실이었지만, 성격이나 마음에 있어서는, 오 아니올시다, 이자는 절대로 검사 측이 단정 지은 것처럼 그렇게 허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저는 그에게서 겁이라는 것을, 검사가 우리에게 그토록 특징적으로 묘사해 준 그런 겁쟁이 같은 면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한편, 순진무구한 측면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제가 발견한 것은 순진함 밑에 감춰진 무서울 정도로 의심이 많은 성격, 그리고 극히 많은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적 능력이었습니다. 오! 검사 측이 그를 정신이 박약한 자로 간주한 것은 너무도 순진무구한 일이었습니다. 그가 저에게 남긴 인상은 완전히 결정적인 것이었습니다. 그의 집을 떠날 때 저는 이 존재가 그야말로 표독스러운 데다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강한 야심을 갖고 있고 불같은 복수심과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한 결과, 그는 자신의 출생을 증오하고 수치스러워했기 때문에 '스메르쟈쉬야의 몸에서 태어났다.'라는 사실을 회상할 때마다 이를 갈았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에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하인 그리고리와 그의 아내에게도 공손하지 않았습니다. 러시아를 저주했고 또 비웃었습니다. 그러면서 프랑스인이 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날 꿈을 꾸었습니다. 그 비용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이전부터도 많이, 자주 해 왔고요.


제 생각에 그는 자기 자신을 제외하곤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으며 자존심이라면 이상할 정도로까지 강했습니다. 좋은 옷, 깨끗한 와이셔츠, 잘 손질한 구두를 계몽의 징표로 생각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사생아라고 생각했던 만큼(그런 증거가 있습니다.) 자기 주인 나리의 정식 자식들과 비교하여 자신의 처지를 증오했을 수도 있습니다.


'저들에겐 모든 것이 돌아가겠지만 자기에겐 아무것도 없다, 저들에겐 모든 권리와 유산이 떨어지겠지만 자기는 한낱 요리사에 지나지 않는다,'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는 저에게 자기가 직접 표도르 파블로비치와 함께 봉투에 돈을 집어넣었다고 알렸습니다. 이 금액을 - 그의 출세 가도에 초석이 될 수도 있는 돈인데 말이죠 - 저런 식으로 쓰려는 것에 대해, 물론, 그는 증오를 느꼈을 겁니다.


게다가 그는 반짝반짝 빛이 나는 무지갯빛 지폐를, 3000루블을 직접 보았습니다.(저는 이 점을 일부러 그에게 물어봤습니다.) 오, 질투심과 자존심이 강한 사람에겐 큰돈을 한꺼번에 보여 주지 말았어야 했건만, 그는 난생처음으로 그만한 금액이 한 손에 들려 있는 걸 보고야 말았습니다. 무지갯빛 지폐 뭉치는 처음에는 일단 어떤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 인상만은 그의 상상 속에 병적으로 반영되었을 수 있는 노릇입니다.


왜 스메르쟈코프는 간질 발작 연기를 했나


탁월한 재능을 자랑하는 검사는 스메르쟈코프를 살인범으로 몰 수 있는 가정들에 대해 온갖 찬(pro)과 반(contra)을 이례적일 만큼 섬세하게 우리에게 묘사해 준 뒤, 특히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럼, 무엇을 위해서 그가 간질 발작을 연기했단 말인가?하고요.


이건 그렇습니다만, 아닌 게 아니라 그가 발작이 난 척 연기를 하기는커녕 완전히 자연스럽게 발작이 일어났을 수도 있지만, 역시나 그렇게 완전히 자연스럽게 발작이 멎을 수도 있었고 그리하여 환자가 정신을 차렸을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완전히 회복은 안 되더라도 간질 발작에서 흔히 발견되듯 여하튼 언젠가는 의식이 돌아와서 정신을 차릴 수도 있잖습니까.


스메르쟈코프가 언제 살인을 저질렀나


검사 측은 스메르쟈코프가 살인을 저지른 순간이 대체 언제인가? 하고 묻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짚어 내는 것은 굉장히 쉽습니다. 그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간질병 발작 이후엔 언제나 깊은 잠에 빠져드니까 그는 그냥 잠이 든 상태였죠.)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을 법한 순간은 그리고리 노인이 담장을 넘어 도망치는 피고인의 발을 붙잡고서 온 동네가 떠나갈세라 '아비 죽인 놈!'이라고 울부짖었던 그 순간입니다.


적막한 어둠 속에서 이렇게 예사롭지 않은 비명 소리가 들려서 스메르쟈코프를 깨웠을 수 있는데, 그 무렵엔 이미 그다지 잠이 깊지도 않았을 겁니다. 아니, 당연히 이미 한 시간쯤 전부터 잠이 깨기 시작했을 테죠. 침대에서 일어난 뒤 그는 어떤 의도도 없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대체 슨 일인가 살펴보려고 비명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합니다. 그의 머릿속은 병의 여운 탓에 몽롱하고 생각도 아직은 잘 돌아가지 않지만, 이렇게 정원으로 나와 불 켜진 창문 쪽으로 다가가서, 응당 그를 보고 기뻐했을 주인 나리로부터 무서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러자 일시에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서 불타오르기 시작합니다. 경악한 주인 나리로부터 그는 모든 것을 상세하게 알게 됩니다. 바로 그때 병적으로 멍멍해진 그의 뇌 속에선 한 가지 생각이 - 무섭지만 유혹적이고 격퇴할 수 없을 만큼 논리적인 생각이 점점 무르익어 갑니다. 즉, 살인을 저지르고 3000의 돈을 가져간 뒤 나중에 모든 것을 도련님한테 덮어씌우자. 이제 와서 도련님이 아니라면 누굴 범인으로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가 여기에 왔다는 증거가 얼마든지 있는데 달리 누구에게 혐의를 둘 수 있겠는가? 혐의를 피해 갈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자 돈을, 저 노획물을 손에 넣고 싶은 무서운 갈망에 그는 숨이 탁 막혔을 겁니다.


오, 이렇게 느닷없고 격퇴할 수 없는 격정들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엇보다도 일 분 전만 해도 자신이 살인을 하고 싶어 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살인자들한테도 이토록 자주, 또 느닷없이 생겨나곤 하는 법입니다! 자, 그리하여 스메르쟈코프는 주인 나리의 방으로 들어가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을 텐데 무엇으로, 어떤 무기로 그랬을까 - 생각해 보면 정원에서 맨 처음 집어 든 돌멩이로 그랬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왜 스메르쟈코프는 살인을 했을까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대체 어떤 목적으로 그랬을까요? 바로 3000입니다, 정말이지 이것은 출세 그 자체입니다. 오! 이것은 제가 한 말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돈은 있었을 수도, 정말 존재했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심지어, 어쩌면 스메르쟈코프 한 사람만이 그것을 어디서 찾을지, 그것이 주인 나리의 방에서도 정확히 어느 곳에 있는지를 알았을 겁니다.


스메르쟈코프는 왜 마룻바닥에 봉투를 버렸을까


그렇다면 '돈이 들어 있던 봉투, 마룻바닥에 있던 찢어진 봉투는?'이라고 하실 테죠. 아까 검사는 이 돈 봉투 얘기를 하면서 그것을 마룻바닥에 던져 놓고 간 걸 보면 정확히 서투른 도둑, 정확히 카라마조프와 같은 자의 소행이다, 스메르쟈코프라면 절대로 자기에게 불리한 증거를 남기진 않았을 것이다, 하며 자신의 굉장히 섬세한 생각을 진술했는데 - 배심원 여러분, 저는 아까 이 말을 들으면서 갑자기 뭔가 굉장히 익숙한 얘기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정확히 바로 이러한 생각을, 카라마조프라면 이 돈 봉투를 두고 어떻게 행동했을 것인가에 대한 이러한 추측을 저는 정확히 일이 있기 이틀 전에 이미 스메르쟈코프에게서 들었습니다. 더욱이 그는 심지어 다음과 같은 수작을 부려 저에게 충격을 안겨 주더군요.


다름 아니라 괜히 순진한 척 굴며 미리 선수를 쳐서 저한테 이 생각을 불어넣고선 흡사 저 스스로 이런 생각을 끌어내도록 하는 것 같았고, 꼭 저한테 그것을 넌지시 암시해 주는 것 같았던 말입니다. 혹시 예심에서도 그가 이런 생각을 넌지시 암시하지 않던가요? 탁월한 재능을 자랑하는 검사님께도 이런 식으로 생각을 불어넣지 않던가요?


그리고리의 아내는 정말 밤새도록 신음소리를 들었나


'그럼 노파, 그리고리의 아내는 어떻게 된 거냐?' 하실지도 모르겠군요. '그녀는 자기 곁에서 환자가 밤새도록 신음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지 않는가,'하고요. 예, 물론 들었지요, 하지만 이 생각 자체가 굉장히 불안정한 것입니다. 저는 한 부인이 마당에서 스피츠 한 마리가 밤새도록 짖어 대는 바람에 잠을 통 못 잤다고 쓴소리를 하며 투덜대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저 가엾은 강아지는 밤새껏 겨우 두세 번밖에 짖지 않았다더군요. 이건 당연한 일입니다.


원래 사람이 잠을 자다가 갑자기 신음 소리가 들리면, 그는 잠에서 깨어나 잠을 설쳤다는 생각에 신경질을 내지만 또다시 금방 잠이 듭니다. 두 시간쯤 후에 다시 신음 소리가 들리고 다시 잠에서 깨어나고 다시 잠이 들고, 끝으로 다시 두 시간쯤 뒤에 한 번 더 신음 소리에 잠을 설쳐도 밤새껏 겨우 세 번 정도입니다. 이런 식으로 잠을 자다가 아침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면 누군가가 밤새도록 신음을 하는 바람에 계속 잠을 설쳤노라고 투덜댑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여기는 것도 아주 당연합니다. 즉, 두 시간씩 잠을 잤는데 잠을 잔 순간들은 기억을 못 하고 오직 잠에서 깬 순간들만 기억하기 때문에 자기가 밤새껏 잠을 설쳤다고 여기는 거죠.


왜 스메르쟈코프는 유서에서 자백을 하지 않았나


하지만 검사 측은 그렇다면 '왜, 대체 왜 스메르쟈코프가 유서에서 자백을 하지 않았는가?'하고 외칩니다. '어떤 일에선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또 다른 일에선 그렇지 않았단 말입니까.'라는 식으로요. 하지만 말입니다, 양심이란 이미 뉘우침을 뜻하는 것인데, 자살 자에겐 뉘우침이 있었을 리 없으며 오직 절망만이 있었습니다. 절망과 뉘우침 - 이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절망은 일체의 타협을 거부할 만큼 악의로 가득 찬 것일 수 있으며, 따라서 자살자는 자기 목숨을 끊으려는 그 순간 자기가 평생 동안 질투해 온 자들을 두 배로 증오했을지도 모릅니다.


배심원 여러분, 오심(誤審)을 범하 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제시하고 묘사한 것 중 무엇 하나라도 그럴듯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까? 저의 진술에 오류가 있습니까, 불가능한 것이나 부조리한 것이 있습니까? 하지만 만약 저의 가정들 속에 가능성의 그림자라도, 개연성의 그림자라도 있다면 - 부디 선고를 보류해 주십시오.


그런데 과연 여기에 한낱 그림자밖에 없는 것일까요? 성스러운 모든 것에 맹세하건대, 저는 지금 여러분에게 제시한, 살인에 대한 저의 해석을 전적으로 믿습니다. 제가 무엇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당혹스러워하고 또 격분하는 것은 아니나 다를까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즉, 검사 측이 피고인을 고발하기 위해 제시한, 산더미처럼 누적된 이 모든 사실들 중에 조금이라도 정확하고 확실한 사실은 단 하나도 없건만 그럼에도 이 불운한 피고는 오로지 이 사실들의 총합에 눌려서 파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단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총합은 실로 끔찍합니다. 이 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이 피, 피투성이가 된 와이셔츠, '아비 죽인 놈!'이라고 울부짖는 소리가 진동하는 이 어두운 밤, 그리고 머리가 깨진 채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자, 그다음엔 이 산더미 같은 발언과 증언과 몸짓과 비명, 그럼에도, 배심원 여러분, 이것이 여러분의 신념마저도 매수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에겐 무한한 권력이, 매고 풀 수 있는 권력이 주어져 있음을 상기해 주십시오. 하지만 권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것의 행사는 더욱더 무서운 것입니다! 저는 지금 제가 한 말을 단 한마디도 철회하지 않는 바이지만, 설령 그렇다고 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저의 불행한 고객이 자신의 손을 아버지의 피로 붉게 물들였다는 검사 측 주장에 잠깐이나마 동의한다고 칩시다.


이것은 그저 가정에 불과할 뿐이며, 반복하건대, 저는 단 한순간도 피고인의 결백을 의심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저의 피고가 친부 살해죄를 범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제가 이러한 가정을 허용한다 할지라도 그래도 여러분은 제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십시오. 저의 마음속에는 여러분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아직도 더 있습니다. 왜냐면 여러분의 마음 속, 머릿속에서 커다란 투쟁이 일어날 거라는 예감이 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과 머릿속을 두고 이런 말까지 하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배심원 여러분. 하지만 저는 끝까지 정의롭고 진실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진실한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이 대목에서 상당히 열렬한 박수갈채가 울려 퍼져서 변호사의 말이 중단되었다. 정말로 그의 마지막 말에선 너무나 진실한 음조가 울려 나왔기 때문에 다들, 그가 진짜로 무슨 말을 하려나 보다, 그가 지금 말할 것이야말로 가장 중대한 것이다, 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재판장은 박수갈채를 듣고는 한 번만 더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될 시에는 법정에서 '퇴정' 시키겠노라고 큰 소리로 으름장을 놓았다. 사위는 곧 잠잠해졌고 페츄코비치는 지금까지 말을 하며 보여 준 것과는 전혀 다른, 왠지 새롭고도 감동적인 목소리로 변론을 이어 갔다.


13 사상의 간음자


"비단 여러 사실들의 총합만이 저의 의뢰인을 파멸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배심원 여러분." 그가 소리 높여 말했다. "천만에요, 저의 의뢰인을 정말로 파멸시키는 것은 오로지 한 가지 사실 뿐입니다. 그건 바로 늙은 아버지의 시신입니다! 보통 살인 사건이었다면 여러분은 사실들을 총합으로서가 아니라 그 사실 하나하나를 따로따로 살펴본 다음 ─ 그것들이 하찮고 증거도 불충분하고 환상적이라고 여겨질 경우엔 고소를 기각했을 것이며 최소한 부정적인 선입견 하나만으로 인간의 운명을 파멸시키는 일에 회의라도 느꼈을 겁니다.


오, 슬프게도 그는 이런 선입견을 심어 줄 만한 짓을 톡톡히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보통 살인 사건이 아니라, 친부 살해 사건이 아닙니까! 이것은 너무나 경악스러운 일인지라, 혐의를 입증해 주는 사실들이 아무리 하찮고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할지라도 이미 그다지 하찮지도, 그다지 증거가 불충분하지도 않은 것으로 변모되고, 이건 선입견을 전혀 갖지 않은 사람의 머릿속에서도 마찬가지로 인식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지경에 처한 피고의 무죄를 증명해 줄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 나를 낳아 준 자의 피, 나를 사랑해 준 자의 피, 나를 위해 자기 목숨도 아끼지 않고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나의 병 때문에 아파하고 평생 동안 나의 행복을 바라며 마음 졸이고 오로지 나의 기쁨과 나의 성공을 빌며 살아온 자의 피를 흘리게 하다니요! 오, 그런 아버지를 죽인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본 사건의 경우 ─ 지금 우리 모두에게 지대한 관심거리이며 또 우리의 영혼에 고통을 안겨 주는 본 사건의 경우, 고(故)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는 지금 우리의 마음속에 떠오른 아버지의 개념과는 조금도 닮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재앙입니다. 그렇습니다, 정말로 어떤 아버지는 재앙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럼, 이 재앙을 좀 더 가까이서 살펴봅시다.


그는 걷잡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야만적이고 난폭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지금 우리는 그를 심판하고 있는 것이지만, 하지만 그의 운명이 이렇게 된 건 누구 탓입니까, 피고인이 아직 어릴 때 아버지의 집에 있을 무렵 유일하게 자기를 귀여워해 준 사람에게서 고작 1푼트의 호두를 받은 일이 있었고 그 고마움을 이십삼 년 내내 간직하고 있었던 그런 좋은 심성을 지녔고 고결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마음을 타고난 그가 이토록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양육된 건 과연 누구 탓입니까?


게다가 그를 맞이한 것은 오로지 냉소적인 비웃음, 가뜩이나 싸움거리였던 돈 문제에서 비롯된 의심과 책략뿐이었습니다. 그의 귀로 들려오는 소리라곤 하루가 멀다 하고 ‘코냑을 마시면서’ 늘어놓는, 정이 똑 떨어질 것 같은 잡담과 처세술뿐이었고, 끝으로 그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아들한테서 바로 그 아들의 돈을 미끼로 하여 아들의 애인을 빼앗으려 하는 자였으니 ─ 오 배심원 여러분, 이 얼마나 혐오스럽고 잔인한 일입니까! 그러고서도 이 노인은 아들을 감옥에 처넣기 위해 아들의 차용 증서를 사 모으기까지 했습니다!


겉으로는 정열적이고 잔인해 보이지만 그들은 뭐든, 예컨대 여자의 경우에도 고통스러울 정도로까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그 사랑은 반드시 정신적이고 드높은 사랑인 것입니다. 이번에도 저를 비웃지 말아 주십시오. 바로 이런 천성을 타고난 자들이야말로 정말 자주 그렇단 말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열정을, 때때로 몹시 거친 열정을 도저히 숨길 수가 없는데 ─ 사람들은 바로 이것에 충격을 받은 나머지, 이것만을 인지하고 그 사람의 내면은 보질 않는 겁니다.


조금 전에 저는 저의 고객과 베르호프체바 양의 로맨스에 대해서는 감히 건드리지 않겠노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마디 정도는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아까 들은 것은 증언이 아니라 그저 광적인 복수심에 불타는 한 여성의 비명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녀는 연인의 배반을 나무랄 자격이 없습니다, 없다마다요. 왜냐하면 그녀 자신이 배반을 했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고쳐먹을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녀는 그와 같은 증언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 그녀의 말을 믿지 마십시오, 저의 고객은 그녀가 말한 것 같은 ‘불한당’이 아닙니다, 아니다마다요!


피살된 카라마조프 노인과 같은 아버지는 아버지라 부를 수도 없고 또 그렇게 불릴 자격도 없는 위인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그것이 아버지에 의해 화답받지 못하는 한, 터무니없는 것이요, 불가능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무(無)에서 사랑을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무에서 창조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신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곳의 아버지들만을 위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아버지들을 향해 외치는 바입니다. ‘아버지들이여, 자신의 아이들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우리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의 성약(聖約)을 이행한 후, 그다음에 비로소 우리 아이들에게 감히 뭔가를 요구하든지 합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원수이며, 그들 또한 우리의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의 원수가 되고 마는 것이니, 그것도 우리 자신이 제 손으로 그들을 원수로 만든 것입니다!


최근의 진보가 우리의 발달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증명하는 차원에서라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합시다. 즉, 자식을 낳았다고 해서 다 아버지가 되는 건 아니다, 아버지란 자식을 낳고서 아버지 구실을 똑바로 한 사람을 말한다, 하고. 오, 물론 ‘아버지’라는 말에는 다른 뜻, 다른 해석도 있기 때문에 비록 나의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있어 불한당이나 다름없는 악당이라 할지라도 나를 낳아 주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어쨌거나 나의 아버지다, 하고 주장하는 측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이성으론 이해할 수 없지만 종교에 의해 믿도록 강요받는 다른 많은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거죠.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 삶의 영역 바깥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배심원 여러분, 이런 물음들을 우리들의 아이들, 예컨대 이미 청년이 되었고 예컨대 이미 판단력을 갖기 시작한 아이들이 간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그럴 수가 없지요, 아이들에게 불가능한 절제를 요구하지 맙시다! ‘천성이란 문밖으로 쫓아내면 창문으로 날아 들어온다.’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무엇보다도, 무엇보다도 ‘금속’과 ‘유황불’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신비주의적인 개념이 아니라 이성과 박애가 일러 주는 것에 따라 물음을 해결합시다.


“배심원 여러분, 오늘도 참으로 많은 얘기가 오갔지만, 아들이 담장을 넘어 아버지의 집으로 침입한 뒤 마침내 자기를 낳아 준 원수, 줄곧 자기를 모욕해 온 자와 얼굴을 맞대고 선 그 무서운 밤을 여러분은 기억하시겠지요. 온 힘을 다 바쳐 주장하건대 ─ 그 순간 그가 그렇게 달려간 건 돈을 노려서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앞서 이미 진술했듯, 강도 혐의는 터무니없는 것입니다. 또, 아버지 집으로 들어간 것도 살해하기 위해서가, 오, 절대 아닙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형벌을 통해 피고를 무섭고 위협적으로 벌하시렵니까, 이런 식으로 그의 영혼을 영원토록 구원하고 갱생시킬 작정이십니까? 만약 그러시다면, 차라리 여러분의 자비를 통해 피고를 압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그의 영혼이 경외감에 차서 전율하는 것을 보고 또 듣게 될 겁니다. ‘내가 이와 같은 자비를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이와 같은 사랑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이런 것을 받을 자격이 과연 있는가.’ ─ 피고인은 바로 이렇게 외칠 겁니다!


오, 여러분은 이렇게 하기란, 이런 자비로운 행위를 행하기란 정말로 쉽습니다. 조금이라도 그럴듯해 보이는 증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그렇다, 유죄다.’라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힘겨울 테죠.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벌하느니 차라리 열 명의 죄인을 풀어 주십시오 ─ 들리십니까, 지난 세기 우리의 훌륭한 역사에서 나온 이 웅장한 목소리가 들리시냐고요? 저같이 하찮은 자가 러시아의 재판은 비단 징벌일 뿐만 아니라 파멸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여러분에게 상기시켜야겠습니까!


오, 모든 민족들이 욕지기를 느끼며 물러서게 될 여러분의 저 광포한 트로이카를 들먹이며 우리에게 겁을 주지 마십시오! 광포한 트로이카가 아니라 웅장한 러시아의 바퀴가 장엄하고도 고요하게 목표를 향해 달려갈 것입니다. 저의 고객의 운명은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으며, 우리 러시아의 진실도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구원할 것이며 여러분이 그것을 지킬 것이며 여러분이 누가 그것을 지켜야 하는지를, 또 그것이 훌륭한 손에 쥐어져 있다는 것을 증명할 것입니다!”


14 촌놈들이 자기 고집을 부리다


이로써 페츄코비치가 변론을 끝내자, 방청객들 사이에선 폭풍우처럼 걷잡을 수 없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미 억누른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여성들은 울었고, 남성들도 제법 많이 울었으며, 심지어 두 명의 고관마저도 눈물을 흘렸다. 재판장도 압도된 나머지 종을 치는 데도 늑장을 부렸다. “그런 열광을 빼앗으려 하는 것은 성물 모독이나 다름없는 일이죠.” 훗날 우리네 부인들은 이렇게 외치곤 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 우리의 이폴리트 키릴로비치가 ‘이견을 나누고자’ 다시 한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그를 바라보곤 증오심을 드러냈다. “뭐예요, 또? 대체 저건 뭐예요? 감히 또다시 이의를 제기하려나 보죠?” 부인들은 이렇게 수군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온 세상의 부인들이 전부 수군댔을지라도, 그리고 이 일에 검사 부인이, 즉 이폴리트 키릴로비치의 부인이 제일 먼저 앞장을 섰을지라도, 그 순간 그를 말릴 수는 없었을 터이다.


그는 창백했으며 또 너무 흥분한 나머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래도 곧 정상을 되찾았다. 그의 이 두 번째 논고 중에서는 몇몇 어구만을 인용하도록 하겠다.


"……우리가 수많은 소설을 만들어 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변호사 측이야말로 소설 위의 소설이 아니고 또 뭡니까? 그저 시(詩)가 좀 부족할 따름이죠. 표도르 파블로비치가 애인을 기다리다가 돈 봉투를 찢어서 마룻바닥으로 내던집니다. 심지어 그가 이렇게 놀랄 만한 짓을 하면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인용되고 있습니다. 아니, 이게 서사시가 아니고 또 뭡니까? 그가 돈을 꺼냈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으며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누가 들었습니까?

정신이 박약한 백치 스메르쟈코프는 사생아로 태어났다는 것 때문에 사회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는 무슨 바이런적인 주인공으로 돌변해 버렸는데 - 정녕 이것이 바이런적 취향의 서사시가 아니란 말입니까? 아들이 아버지의 방에 침입해서 아버지를 죽였지만 또 동시에 죽이지 않았다니, 이건 숫제 소설도, 서사시도 아닙니다. 이건 물론 자기도 풀지 못할 수수께끼를 던지는 스핑크스가 아닙니까. 죽였다면 죽인 것이지, 아니 어떻게 죽였으면서도 안 죽였다니 - 누가 이걸 이해하겠습니까?

그다음, 우리의 연단이 진리와 상식의 연단이라고 우리에게 선언해 놓고선 바로 이 '상식'의 연단에서 아버지를 죽인 것을 친부 살해라 부르는 것은 그저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소리가 맹세와 더불어 공리처럼 울려 퍼지게 하다니요! 하지만 친부 살해가 편견이고 모든 아이가 자기 아버지에게 '아버지, 내가 왜 아버지를 사랑해야 되죠?'라고 캐묻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회의 기반들은 또 어떻게 되겠으며 가족은 어디로 사라져 버리겠습니까?

'오, 그를 자비로 압도하십시오.'라고 변호사는 외치지만, 범죄자에게 필요한 건 오직 이뿐이어서, 당장 내일이면 다들 그가 얼마나 압도되었는지를 보게 될 겁니다! 게다가 그저 피고인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자는 요구만 하다니, 변호사가 너무 소박하게 나오는 게 아닐까요? 아니 왜, 친부 살해범의 이름을 기리는 장학 재단이라도 세워 후손과 젊은 세대에게 그의 위업을 영원토록 남기자고 요구하지 않는 겁니까?

복음서와 종교도 교정됩니다. 이건 전부 신비주의에 지나지 않고, 지금 우리한테는 이미 이성과 상식의 분석으로 검증된 진정한 기독교가 있을 뿐이다, 하는 식이죠. 자, 이런 식으로 우리 앞에 가짜 그리스도를 내세우고 있는 겁니다! 변호사는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너희도 되어서 받을 것이다.'라고 외치면서도 동시에, 그리스도가 너희가 되어서 받는 만큼 너희도 남에게 되어서 주라고 가르쳤다는 식의 결론을 도출하고 있으니 - 진리와 상식의 연단에서 이런 말이 울려 퍼지다니요!

우리의 하느님은 우리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셨지, 아이들에게 아버지를 죽이지 말라고 하는 것이 편견이라고 가르치시진 않았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이 진리와 상식의 연단에서 우리 하느님의 복음서를 수정하지 맙시다. 변호사는 그분을 기껏해야 '십자가에 못 박힌 박애주의자' 정도로만 부르지만, 이는 그분을 향해 '그대는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라고 호소하는 러시아 정교의 온 국민들의 생각과 상치되는 것이니까요!"


여기서 재판장이 개입하여, 이런 경우에 재판장들이 흔히 하는 말이지만, 너무 과장하지 말라, 정해진 한계를 넘지 말라, 등등 부탁의 말을 늘어놓으며 열광에 빠진 검사에게 일침을 가했다. 그런데도 법정 안은 불안했다. 청중은 술렁거렸고 심지어 분노에 찬 외침 소리마저 나왔다.


페츄코비치는 굳이 반박을 하지도 않고, 그저 연단으로 올라와서 한 손을 가슴에 얹은 채 언짢은 목소리로 위엄이 넘쳐 나는 말을 몇 마디 했을 뿐이다. 그는 그저, 또다시 '소설들'과 '심리 분석'을 살짝 조롱한 뒤 어느 대목에서 "주피터여, 그대가 화를 낸다 함은 곧 그대가 옳지 않다는 뜻이로다."라는 말을 삽입했다. 이 말에 방청객들은 수많은 공감의 웃음을 보냈는데, 왜냐면 이폴리트 키릴로비치는 주피터와 닮은 구석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폴리트 키릴로비치는, 우리 부인들의 견해론, '영원토록 찌그러져' 버렸다.


이어, 피고인에게 발언권이 주어졌다. 미챠는 일어나긴 했으나 말은 많이 하지 않았다. 그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끔찍할 정도로 지쳐 있었다. 그는 이날, 앞으로 평생 남을 뭔가를 경험한 것 같았으며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아주 중대한 것을 배웠고 깨달은 것 같았다. 목소리에도 힘이 빠져서, 아까처럼 소리를 지르는 일도 더 이상 없었다. 그의 말에서는 뭔가 새로운 것이, 체념과 패배와 굴복 같은 것이 배어 나왔다.


"배심원 여러분! 저에게 심판의 날이 왔으며, 제 몸에 하느님의 손길이 닿는 소리가 들립니다. 방탕한 사람에게 끝이 온 겁니다! 하지만 하느님 앞에서 고해하는 심정으로 여러분에게 말하는 바입니다. 아버지의 피에 관한 한 - 저는 절대로 죄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반복하건대, 제가 죽인 게 아닙니다. 방탕하게 살았지만 선을 사랑했습니다. 매 순간 개과천선하고자 노력했지만 금수처럼 살았습니다. 검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도 몰랐던 저에 대한 많은 얘기를 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검사님은 실수하신 겁니다! 변호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변론을 들으면서 울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건 사실도 아닐뿐더러, 그런 가정조차도 해선 안 됐던 겁니다! 의사들의 말을 믿어서도 안 됩니다, 저는 완전히 제정신인데 다만 마음이 무거울 따름입니다. 만약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면, 저를 풀어 주신다면 -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정말입니다, 하느님 앞에 약속합니다. 유죄 판결을 내리신다고 해도 - 제 손으로 제 머리 위의 검을 부수고 그렇게 부서진 파편에 입을 맞추겠습니다! 그럼에도,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저에게 저의 하느님을 빼앗지 말아 주십시오, 저란 놈은 분명히, 원망을 하게 될 겁니다! 제 마음이 무겁습니다, 여러분……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는 거의 쓰러지다시피 자리에 앉았는데, 목소리가 탁 끊기는 바람에 마지막 어구는 간신히 내뱉었다.


이어, 재판장은 질문들을 정리하여 양측에 결론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자세한 묘사는 하지 않겠다. 마침내, 배심원들이 퇴정해 회의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을 떠나보내면서 재판장은 몹시 지쳐 있었기 때문에 아주 힘없는 목소리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공정을 기하십시오, 변호인 측의 미사여구에 현혹 돼서는 안 되지만 어쨌거나 잘 헤아려 주시고 여러분에게 위대한 의무가 주어져 있음을 상기해 주십시오." 등등.


배심원들이 퇴정하자 법정은 휴정에 들어갔다. 부인들은 너무 초조해서 히스테리라도 일으킬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틀림없이 무죄 판결을 내릴 것이다.'라는 생각에 마음만은 평온해 보였다. 그들은 누구나 다 함께 열광할 극적인 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고백하건대, 남성의 방청석 쪽에서도 무죄 판결이 내려지리라고 확신하는 자들이 굉장히 많았다. 더러 기뻐하는 사람들도 있고 인상을 쓰는 사람들도 있고, 또 마냥 시무룩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무죄 판결이 내려지는 게 싫었던 것이다!


페츄코비치 자신은 성공을 굳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한테 에워싸여 축하 인사를 받았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아첨을 떨어 댔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훗날 전해진 바에 따르면 어느 무리에서 그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변호사와 배심원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실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변론이 진행되는 동안부터 연결되고, 또 예감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존재합니다. 승리는 우리 것이니까 안심하십시오."


"그럼 우리 촌놈들이 이제 무슨 말을 할까요?" 어느 뚱뚱한 곰보 신사가 대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신사들의 무리로 다가와 인상을 잔뜩 쓴 채 이렇게 말했는데, 그는 이 근방의 지주였다
"무식쟁이 촌놈들만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저기엔 관리도 네 명이나 있습니다."
"그나저나 나자리예프, 저기 메달을 단 상인으로 배심원인데, 여간 똑똑한 사람이 아닙니다."
"계속 입을 다물고 있는걸요."
"그러긴 한데, 사실 그럴수록 더 좋은 겁니다. 페테르부르크 양반이 저 사람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이 직접 페테르부르크 전체를 가르칠걸요. 자식이 열두 명이나 되는 사람인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무슨 당치도 않은 말씀을, 정말로 무죄 판결을 내리지 않을까요?" 다른 무리에서 관리 하나가 소리쳤다.
"분명히 무죄 판결을 내릴 겁니다."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죄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면 수치스럽고 치욕스러운 일이 될 겁니다!" 관리가 소리쳤다.
"설사 그가 죽였다고 하더라도 그 아버지가 어떤 아버지입니까! 그리고 끝으로, 그는 반쯤 미친 거나 다름없는 상태였으니까……. 정말로 그냥 공이를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상대방이 나가떨어졌을 수도 있죠. 고약한 건 그저 여기서 하인을 끌어들인 겁니다. 이건 한낱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아요. 내가 변호사였다면 그냥 직설적으로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죽였다, 하지만 무죄이다, 에잇, 제기랄!"

"무슨 말씀을, 우리 도시에서는 정부(情夫)의 본처의 목을 싹둑 자른 여배우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는걸요."
"하지만 다 자른 건 아니잖습니까."
"어쨌거나, 어쨌거나 일단 자르기 시작했잖습니까!"
"그나저나 아이들에 대한 그의 변론은 어땠습니까? 대단하더군요!"
"그럼, 신비주의, 신비주의 대목은요, 예?"
"신비주의 나부랭이는 그만두시고."라며 누군가가 또 소리쳤다. "이폴리트, 그의 앞날에 펼쳐질 운명에나 관심을 가지시죠! 당장 내일만 돼도 검사 부인이 미첸카 일로 트집을 잡아 그의 눈을 할퀼걸요."

세 번째 무리에서는 이랬다.
"어쨌거나 미첸카에게 무죄 판결을 내릴 것 같습니다."
"글쎄, 아마도 내일이면 '수도' 전체가 들썩거릴걸요, 한 열흘은 족히 술판을 벌일 테니까요."
"당연한 노릇 아닙니까, 저 친구가 거기가 아니면 어디 갈 데가 있어야죠."
"여러분, 웅변이야 뭐 멋졌다고 칩시다. 하지만 아버지들의 머리를 용수철 저울로 깨부수는 건 안 될 일이죠. 그랬다간 세상이 대체 어떤 지경이 되겠습니까?"
"전차, 전차 말입니다, 기억나시죠?"
"기억나다마다요, 달구지에서 마차를 만든 거죠."
"하지만 내일이 되면 마차에서 달구지를 만들걸요, '필요할 때에는, 어쨌거나 필요에 따라서.'"
"약삭빠른 족속들이 생겨났어요. 대체 우리 루시엔 진리라는 것이 있는 겁니까, 아니면 전혀 없는 겁니까?"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배심원들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정확히 한 시간 동안 회의를 한 것이었다. 방청객들이 다시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깊은 침묵이 드리웠다. 배심원들이 법정으로 들어오던 장면이 기억난다. 드디어! 내가 기억하는 것은 오로지 재판장의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질문, 즉 '강도를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는가?'에 대한 대답뿐이다. 다들 숨을 죽였다. 수석 배심원은 아까 그 관리로서 그중에서 제일 젊었는데, 그가 법정 안에 죽음과 같은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큰 소리로 분명하게 선언했다.

"그렇습니다, 유죄입니다!"


그다음엔 모든 조목에 대해 한결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유죄이다, 유죄이다,' 그러니까 정상 참작이란 손톱만큼도 없었던 것이다! 이건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으니, 최소한 정상 참작쯤은 해 주리라고 거의 다들 확신했던 것이다. 법정은 여전히 죽음과 같은 정적에 휩싸인 가운데, 다들 돌이 된 듯했다. 하지만 오직 처음 몇 분만 그랬을 뿐이다. 곧이어 무서운 혼돈이 시작됐다. 남성 방청객들 중에서는 많은 이들이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하지만, 맙소사, 우리 부인네들은 어떻게 됐겠는가! 나는 그들이 폭동이라도 일으키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니, 이게 뭐예요? 무슨 이런 일이 다 있어요?" 그들은 연달아 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순간 갑자기 미챠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두 손을 앞으로 뻗으면서 어쩐지 갈기갈기 찢어지는 목소리로 울부짖듯 외쳤다.

"하느님과 그 최후의 심판에 맹세하건대, 아버지에 피에 관한 한 저는 아무 죄도 없습니다! 카챠, 당신을 용서한다! 형제들, 친구들이여, 또 다른 여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는 말을 다 끝내지도 못하고 온 법정이 떠나갈세라 목청껏, 무섭도록 흐느껴 울었는데, 그건 어쩐지 원래 그의 목소리가 아니라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통 알 수 없는 어쩐지 느닷없고 새로운 목소리였다. 위쪽의 높은 자리, 가장 뒤쪽 구석 자리에서 날카로운 여자의 통곡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건 그루셴카였다. 그녀는 아까 누군가에게 간청을 해서 법정 공방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다시금 법정 안으로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미챠는 데리고 나갔다.


판결문 낭독은 내일로 연기되었다. 법정은 온통 아수라장으로 변했지만, 나는 더 이상 뭘 기다리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오직, 이미 현관 출구에서 들은 몇몇 외침들뿐이다.

"이십 년은 광산 냄새를 맡겠군."

“그보다 적진 않을 거야.”

“맞아, 우리네 촌놈들이 자기 고집을 부린 거야.”

“그래, 그놈들이 우리 미첸카를 작살내 버렸어!”


<12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