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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1)

리처드 도킨스, 제1장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by Andy강성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는 영국의 유명한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쓴 진화생물학의 베스트셀러이다. 이 책은 1976년에 출판되어 진화의 주체가 인간 개체나 종이 아니라 '유전자'이며 인간은 유전자 보존을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하여 당시 생물학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도킨스는 '유전자'를 진화에 있어 '자연선택의 기본 단위'라는 개념으로서 대중화시켰으며, 나아가 다윈주의 원리가 유전자의 영역 너머로 확장될 수 있을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유전자(gene)의 행동적 등가물‘밈(meme)’의 개념을 창안해 내기도 하였다.

[리처드 도킨스와 ‘이기적 유전자’ 초판 표지 출처 구글 이미지]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는 1941년 3월 26일 케냐 나이로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클린턴 존 도킨스는 2차 대전 중 연합군으로 영국에서 케냐로 이주하였으며 도킨스가 8세가 되던 1949년에 영국으로 돌아왔다.

도킨스는 1954년부터 1959년까지 온들 스쿨(Oundle School)을 다녔다. 그리고 옥스퍼드 대학교의 베일리얼 칼리지에서 동물학을 수학했는데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자인 동물행태학자 니콜라스 틴버겐(Nikolaas Tinbergen) 교수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1962년에 옥스퍼드를 졸업했다. 그 후 1966년 틴버겐의 지도하에 옥스퍼드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게 된다.

1967년부터 1969년까지 도킨스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동물학 조교수로 재직하다가 1970년에 다시 옥스퍼드 대학교로 동물학을 강의하러 돌아왔고, 1995년부터 2009년까지 동 대학교에서 "대중의 과학이해를 위한 찰스 시모니 석좌교수"직과 옥스퍼드 대학교 뉴 칼리지의 교수직을 맡았으며 2009년에 정년 퇴임하였다. [출처: 위키백과]


도킨스는 1967년 동료 학자 매리언 스탬프(Marian Stamp)와 결혼했다가 1984년에 이혼했다. 그 해 이브 버햄(Eve Barham)과 재혼했다가 역시 이혼했으며, 1992년에 여배우 랄라 워드(Lalla Ward)와 결혼했다.

[매리언 스탬프 사진과 랄라 워드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저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의 논리를 더욱 발전시켜, 1982년에는 '표현형'(phenotype, 유기체 밖으로 드러나는 유전자의 발현)의 효과가 유기체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유기체들의 신체를 포함한 넓은 환경으로 확장된다는 이론을 설명한 《확장된 표현형》을 저술하였고, 이어 1986년 《눈먼 시계공》, 2005년 《에덴의 강》, 2006년 《만들어진 신》 등 여러 권의 책을 발표하였다.

[도킨스의 저서들 출처 구글 이미지]

비평


그는 다윈을 워낙 찬양해서 미디어에서 ‘다윈의 로트바일러’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의 자연선택을 지지하던 영국의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Thomas Henry Huxley, 1825~1895)가 ‘다윈의 불독’으로 불린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찰스 다윈과 토마스 헉슬리 출처 구글 이미지]

또한 이 책에 대해서는, 도킨스 개인의 연구에 의한 학문적 성과라기 보다는 이미 발표됐던 다른 진화 생물학자들, 특히 조지 크리스토퍼 윌리엄스(George Christopher Williams, 1926~2010), 존 메이너드 스미스(John Maynard Smith, 1920~2004), 윌리엄 D. 해밀턴(William D. Hamilton, 1936~2000), 로버트 트리버스(Robert Ludlow “Bob” Trivers, 1943~)의 이론을 종합하고 쉽게 정리한 대중 과학교양서 수준의 책이라는 비평도 있다.

[존 메이너드 스미스, 윌리엄 D. 해밀턴, 로버트 트리버스 출처 구글 이미지]

한편 도킨스가 대중적인 명성을 얻은 후, '진화의 해석'을 두고 도킨스의 지지자들 소위 도킨스파와 ‘다윈 이후 가장 유명한 생물학자’로 인정받던 미국 하버드 대학 교수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1941~2002)로 대표되는 반대파 간에 일련의 논쟁이 이어졌다.


학계에서의 대립에도 불구하고 도킨스와 굴드의 개인적 관계는 적대적이지 않았다고 하며, 도킨스는 2003년 출판한 《악마의 사도》를 그 전년도에 사망한 굴드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출처: 위키백과]

[굴드의 사진과 그의 저서 ‘판다의 엄지’ 표지 출처 구글 이미지]

이 책은 10년 전쯤 30주년 기념판이 국내에서 과학 분야 판매 1위를 기록할 즈음에 교보문고에서 독특한 제목에 끌려 집어 들게 되었다. 처음에는 좀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꽤 있었지만 너무 신박하고 재미있는 표현들이 많아 엄청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최근에 《총•균•쇠》와 《사피엔스》를 같이 연속해서 읽어보니 도킨스의 인간에 대한 분석과 표현들이 너무 진화 생물학적 관점에 치우쳐 있고 지나치게 반대 입장(집단 선택설 등)에 대해 일방적이고 단정적으로 비판하는 것 같아 약간의 불편함도 느껴졌다(너무 호기롭던 젊은 시절에 썼기 때문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킨스로 하여금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게 할 정도로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를만한 명저이니 다시 한번 차분하게 도킨스의 주장과 생각을 정리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코스모스》 제2장 '우주 생명의 푸가'를 읽고 나서 '생명의 진화'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져 다시 이 책을 읽게 되었고, 또한 《미래에서 온 남자 폰 노이만》제6장 '게임이론이라는 혁명' 부분을 읽고 다시 이 책을 보니 제5장의 'ESS 이론'과 제12장의 '게임 이론' 관련 내용이 좀 더 이해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제1장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Why are people?


어떤 지적 생물이 ‘성숙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생물이 자기의 존재 이유를 처음으로 알아냈을 때다. 지구의 생물체는 자신들 중 하나가 진실을 밝혀내기 전까지 30억 년 동안 자기가 왜 존재하는지 모르고 살았다.


진실을 밝힌 그의 이름은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었다. 몇몇 다른 사람들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하여 일관성 있고 조리 있게 설명을 종합한 사람은 다윈이 처음이었다.


저명한 동물학자 심슨(G. Simpson) 역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1859년 이전에 이 문제에 답하고자 했던 시도들은 모두 가치없는 것이며, 오히려 그것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오늘날 진화론이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다는 사실과 같이 의심의 여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다윈 혁명의 함의'는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철학과 인문학 분야에서는 아직도 다윈이 존재한 적조차 없었던 것처럼 가르친다. 이런 상황은 틀림없이 언젠가 달라질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의 목적은 다윈주의(Darwinism)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논점에 대하여 진화론이 초래하는 결과를 두루 살펴보기 위함이다. 나의 목적은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생물학’을 탐구하는 것이다.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학문상의 흥미는 차치하고라도 이 주제가 인간에게 중요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 주제는 우리 생활의 모든 면, 즉 사랑과 미움, 싸움과 협력, 주는 것과 훔치는 것, 탐욕과 관대함 등에 모두 관련된다.


콘라트 로렌츠*(konrad Lorenz, 오스트리아 동물학자)《공격에 관하여(on Aggression)》, 로버트 아드리(Robert Ardrey, 미국 극작가)의 《사회 계약》, 그리고 아이블-아이베스펠트(Eibl-Eibesfeldt, 오스트리아 동물학자)《사랑과 미움(Love and Hate)》도 이와 같은 문제를 다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들의 문제점은 그 저자들이 전적으로, 완전히 틀렸다는 데 있다. 이들이 틀린 이유는 진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진화에서 중요한 것은 개체(또는 유전자)의 이익이 아닌 종(또는 집단)의 이익이라는 잘못된 가정을 하고 있다.

[로버트 아드리 사진과 '사회 계약' 표지 출처 구글 이미지]

저명한 인류학자인 애슐리 몬터규(Ashley Montagu)콘라트 로렌츠를 “이빨도 발톱도 피범벅이 된 자연’*을 상상한 19세기 사상가들의 직계 자손이다”라고 비판한 것은 역설적이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진화에 관한 로렌츠의 견해는 테니슨Tennyson의 이 유명한 어구가 의미하는 것을 배척한다는 점에서 몬터규와 같다. 몬터규나 로렌츠와는 달리, 나는 몬터규나 로렌츠와 달리 ‘이빨도 발톱도 피범벅이 된 자연’이라는 표현이 자연 선택의 현대적 의미를 아주 잘 요약했다고 본다.


[참고] 콘라트 로렌츠는 ‘비교행동학’(동물들의 본능적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계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린다.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 아이블-아이베스펠트는 그의 제자이다.
[애슐리 몬터규와 콘라트 로렌츠, 출처 구글 이미지]
*영국의 유명한 계관시인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 1809~1892)은 "In Memoriam A.H.H."(1849)에서 '자연, 이빨과 발톱에 피가 묻어 있는 곳(Nature, red in tooth and claw)'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알프레드 테니슨 사진, 출처 위키백과]

논의하려는 것과 논의하지 않는 것


논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 이 논의가 어떤 종류인지, 그리고 어떤 종류가 아닌지 간단히 설명하겠다. 만약 어떤 남자가 시카고 갱단에서 오랫동안 별 탈 없이 살아왔다고 할 때, 우리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그가 굉장히 빠른 총잡이이고 의리 있는 친구를 여러 명 거느린 능력 좋은 사나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물론 이 추론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그가 생존해 온 조건, 성공해 온 조건에 관해서 무엇인가를 알게 되면 그 사람의 성격에 관해서 어느 정도 추론이 가능하다.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이 유전자가 만들어 낸 기계라는 것이다. 성공한 시카고의 갱단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유전자는 치열한 세상에서 때로는 수백만 년 동안이나 생존해 왔다. 이 사실로부터 우리는 우리의 유전자에 어떤 성질이 있음을 기대할 수 있다.


이제부터 논의하려는 것은, 성공한 유전자에 대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성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정한 이기주의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기주의는 보통 개체 행동에서도 이기성이 나타나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개체 수준에 한정된 이타주의를 보임으로써 자신의 이기적 목표를 가장 잘 달성하는 특별한 유전자들도 있다.


여기서 우선 이 책에서 다루지 않을 첫 번째 사항을 말하고자 한다. "나는 진화에 근거하여 도덕성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물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가를 말할 따름이다."라는 것이다. 비정한 이기주의라는 유전자의 보편적 법칙에만 기초를 둔 인간 사회는 매우 험악한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개탄스러운 일이라 해도 그것이 사실임에는 변함없다. 개개인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관대하게 이타적으로 협력하는 사회를 만들기를 원한다면 생물학적 본성으로부터 기대할 것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관대함과 이타주의를 가르쳐 보자. 그리고 우리 자신의 이기적 유전자가 무엇을 하려는 녀석인지 이해해 보자.


그렇다고 유전 형질이 고정되어 변경이 불가능하다고 가정하는 것은 오류다. 유전자는 우리에게 이기적 행동을 하도록 지시할지 모르나, 우리가 전 생애 동안 반드시 그 유전자에 복종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타주의를 학습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이다. 동물 중에서 인간만이 학습되고 전승되어 온 문화에 지배된다.


두 번째는, 이 책은 '천성이냐 교육이냐'라는 논쟁에서 어느 한쪽을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다. 만약 유전자가 현대인의 행동 결정에 무관하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동물계에서 유일한 존재임을 알았다고 할지라도 최근에야 비로소 인간이 예외가 된 그 규칙에 대해 아는 것은 여전히 흥미로운 일이다.


그리고 세 번째 사항은, “인간 또는 기타 동물의 상세한 행동에 관한 서술을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개코원숭이의 행동을 보면 그 행동이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의 행동도 이기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시카고 갱단’의 논리는 전혀 다르다. 인간도 개코원숭이도 자연선택을 거쳐 진화해 왔다. 자연선택의 과정을 보면 자연선택을 거쳐 진화해 온 것은 무엇이든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생물의 행동을 보면 그 행동이 무엇이든 이기적일 것이라고 예상해야 한다.


용어의 정의


어떤 생물체가 자기를 희생하여 다른 생물체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행동을 했다면 그 생물체의 행동은 ‘이타적’이라고 할 수 있고 이기적 행동은 이것과 정반대다. ‘행복’은 ‘생존의 기회’로 정의된다. 비록 생사의 갈림길에 미치는 영향이 극히 적고 무시해도 될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다.


또한 이러한 정의는 주관이 아닌 ‘행동’, ‘겉보기에’ 근거한 것이라다. 행동의 심리적 동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또한 자세히 들여다보면, 겉보기에 이타적인 행위는 실제로는 이기주의가 둔갑한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생존 가능성에 미치는 실제 영향이 우리가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라는 뜻이다.


이기적인 행동의 예


겉보기에 이기적인 행동과 이타적인 행동의 예를 몇 가지 들어 보자. 우리가 우리 자신을 취급할 때는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다른 종의 동물을 예로 들겠다. 우선 개체의 이기적인 행동의 예를 몇 가지 살펴보자.


검은머리갈매기는 군락을 지어 둥지를 짓는데, 둥지 사이 간격은 불과 수 미터밖에 안 된다. 이웃이 먹이를 찾으러 집을 떠날 때 그 둥지를 습격하여 어린 새끼를 삼켜 버리는 갈매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 갈매기는 먹이를 잡으러 나가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이 자기 둥지를 지키는 동시에 풍부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것이다.


더 잘 알려진 예로, 암사마귀는 동족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습성이 있다. 사마귀는 몸집이 큰 육식성 곤충으로 보통 파리와 같은 작은 곤충을 먹지만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든 공격한다. 암컷은 기회가 되면 수컷을 잡아먹는다. 수컷이 접근할 때나 자신의 몸에 올라탄 직후, 혹은 떨어진 후에 머리부터 잘라 먹는다.

[검은머리갈매기, 수놈을 잡아먹은 암사마귀 출처 구글 이미지]

남극의 황제펭귄은 바다표범에게 잡아먹힐까봐 물가에 서서 물에 뛰어들기를 주저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당연히 어느 펭귄도 자기가 먼저 희생물이 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저 누군가 뛰어들기만 기다리거나 무리 중의 하나를 떠밀어 버리려고까지 한다.

[황제펭귄 출처 구글 이미지]

이타적인 행동의 예


일벌이 꿀 도둑에 대하여 침을 쏘게 되면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내장이 침과 함께 빠져 버리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죽게 되는데 이를 이타적인 행동의 예로 든다.


또한 대부분의 작은 새는 매와 같은 포식자가 날아가는 것을 보면 독특한 경계음(alarm call)을 내는데 경계음을 내는 새는 포식자의 주의를 자신에게 쏠리게 하므로 역시 이타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들의 가장 뚜렷한 이타적인 행동은 새끼에 대한 어미의 행동이다. 지상에 둥지를 트는 대부분의 새는 여우와 같은 포식자가 접근할 때 이른바 ‘혼란 과시(distraction dislay)’ 행동을 하는데 자기 새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위험한 상태에 노출시키는 것이다.


도킨스는 이 책에서는 이러한 개체 수준의 이기주의 행동과 이타주의 행동 모두 ‘유전자의 이기성(gene selfishness)’이라는 기본법칙으로 설명하겠다고 한다.


집단 선택설


도킨스는 “생물은 ‘종의 이익을 위하여’ 또는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도록 진화한다”'집단 선택설(Theory of group selection)'은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집단 선택설은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개체들로 구성된 종 내지는 종내 개체군과 같은 집단은, 각 개체가 자기 자신의 이기적 이익을 우선으로 추구하는 다른 경쟁자 집단보다 절멸의 위험이 적을지도 모른다”는 윈-에드워즈(V. C. Wynne-Edwards, FRS, 1906~1997)의 이론이다.


'집단 선택설'은 로버트 아드리의 《사회 계약》을 통해 널리 알려졌는데 이는 진화론의 상세한 내용을 모르는 생물학자들에게 오랫동안 진실이라고 생각되어 온 학설이다.

[윈-에드워즈 초상과 그의 저서 출처 구글 이미지]

개체 선택설


이에 반대로 정통 학설은 ‘개체 선택설(Theory of individual selection)’이라고 불린다. 도킨스는 개인적으로는 ‘유전자 선택설(Theory of gene selection)’이라 부르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개체 선택론자’에 의하면 이타주의자의 집단 내에 희생을 눈곱만치도 하지 않으려는 소수파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고 그 개체는 아마도 다른 개체보다 더 잘 살아남고 자손도 더 많이 낳으며 그 자손은 그의 이기적인 특성을 이어받아 결국 이기적인 개체가 만연하게 된다는 것이다.


'집단 선택설'이 직관에 호소하는 면이 있어서인지 정통 견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러 곳에서 많이 언급될 정도로 뿌리 깊다. 심지어 영국의 고등학교 생물학 교사를 위한 《너필드 생물학 지도서》에서도 “고등 동물에서는 개체가 종의 생존을 위해 자살이라는 행동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라고 잘못된 이론이 적혀 있다.


그리고 ‘집단 선택설’이 큰 매력을 갖는 이유는 아마 우리가 갖고 있는 도덕적 이상이나 정치적 이상과 조화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개인으로서 우리는 이상적으로는 타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사람을 존경하고 칭찬한다. 그러나 우리가 '타인'이라는 말을 어느 범위까지 설정해야 하는가에 관해서는 혼란이 있다고 하면서 오히려 이것이 집단 간의 이기주의를 동반할 때가 많다고 비판한다. 그 예로 노동조합의 경우나 국가가 전시에 호소하는 애국주의를 든다.


종의 이익


최근에는 인종차별주의나 애국심에 반대하여 동지 의식(또는 이타주의)의 대상을 인류라는 종 전체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데, 진화에서 ‘종의 이익’이 중요하다는 사고방식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종의 일원이 다른 종의 일원에 비해 특별한 도의적 배려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것이라고 한다.


도킨스는 리처드 라이더(Richard Ryder, 영국의 심리학자, 동물 권익 옹호자)가 말하는 ’종 차별주의’(speciesism, 동물을 착취하듯 대우하는 인간 우월 주의)의 윤리가 ‘인종 차별주의’(racisim)의 윤리보다 확실한 논리적 근거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한 논리(동종을 더 배려해야 한다는 논리)는 진화 생물학적으로 적절한 근거가 없다고 한다.

[리처드 라이더 사진 출처 위키백과]

나아가 도킨스는 ‘집단 선택설’의 경우 어느 수준에서 이타주의를 기대할 수 있는가라는 생물학적인 문제에 있어서 귀류법적으로 난점이 있다고 한다.


즉 만약 선택이 같은 종 내의 집단 간이나 다른 종 간에서 일어난다면, 왜 더 큰 집단 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사자는 포유동물의 이익을 위해’ 영양을 죽이지 않으리라고 예측할 수는 없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답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진화를 바라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낮은 수준에서 일어나는 선택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라는 신념을 이야기한다. 이 신념은 조지 크리스토퍼 윌리엄스(George. C. Williams)의 명저 《적응과 자연 선택(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조지 윌리엄스와 그의 저서 출처 구글 이미지]

아울러 도킨스는 선택의 기본 단위, 즉 이기성의 기본 단위가 종도 집단도 개체도 아닌, 유전의 단위인 '유전자'라는 것을 주장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그것이 정통 이론이라는 것에 동의해 주리라 희망한다. 이러한 논의 전개에는 시간이 걸리므로 우선 생명 그 자체의 기원에서부터 시작한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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