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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강성 Mar 21. 2024

이기적 유전자 (6)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지음

Chapter 10
내 등을 긁어줘, 나는 네 등에 올라탈 테니
(You scratch my back, I'l ride on yours)


집단 형성이 주는 이익


동물의 상호 관계 중에는 많은 동물이 보여 주는 집단생활의 경향이 있다. 이들 집단은 보통 같은 종의 개체만으로 구성되지만, 얼룩말은 종종 누와 무리를 짓고 여러 종의 새들도 혼합된 무리를 지을 때가 있다.

[얼룩말과 누 무리 출처 구글 이미지]

만일 동물이 무리를 지어 함께 산다면 그들 유전자는 그들이 투입한 것보다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다. 하이에나가 무리를 지어 사냥하거나 황제펭귄이 서로 몸을 맞대어 열을 보존하는 것, 새가 V자형 편대로 비행하는 것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무리를 짓는 동물들 출처 구글 이미지]

집단생활의 이점으로 가장 많이 제안되는 것은 포식자에게 먹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해밀턴은 '이기적 무리의 기하학(Geometry for the selfish herd)'이라는 논문에서 이 이론에 대해 훌륭하게 설명한다. 해밀턴이 말하는 '이기적 무리'란 '이기적 개체들의 무리'를 뜻한다.

[해밀턴과 논문 출처 구글 이미지]

위험 지대


현명한 개체라면 분명히 자기의 위험 지대를 최소한으로 좁히려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무리의 가장자리에 위치하지 않으려고 애쓸 것이다.


만일 자기가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알아차리면 그는 즉시 중심 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누군가는 가장자리에 위치할 수밖에 없지만, 개체 각각에 관해서 말하면 누구도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모델의 초기 조건으로서 피식 동물의 집단화 성향을 가정하지 않고 또 피식 동물들이 무작위적으로 퍼져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개개의 개체는 이기적 충동에 이끌려 다른 개체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자기의 위험 지대를 좁히려 할 것이다. 그 결과 무리가 형성되고 무리는 점점 밀집될 것이다.


경계음-이기적 이익


무리가 혈연자를 포함할 경우, 경계음을 내도록 하는 유전자는 유전자 풀 속에서 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경계음에 의해 구조되는 개체 중 몇몇의 체내에 이 유전자가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포식자의 주의를 자기에게 집중시켜 비록 그 발신자가 이 이타적 행위에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해도 말이다.


동료에게 경고를 보내 발신자 자신이 이기적인 이익을 얻을 가능성도 여러 가지 있다. 트리버스는 이에 대해 다섯 가지 아이디어를 풀어내고 있으나, 도킨스는 다음 두 이론이 오히려 더 설득력 있다고 이야기한다.


케이비 이론


첫 번째는 케이비(cave) 이론이다. 케이비라는 말은 '조심하라'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온 말로, 이 이론은 덤불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위장 색의 깃털을 가진 새들의 행동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적을 가장 먼저 발견한 개체는 적의 표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무릅쓰고 경계음을 낸다. 순전히 이기적인 견지에서 보더라도 개체의 최선의 방책은 동료에게 빨리 경고 신호를 보내 동료들이 부지불식간에 매를 불러들일 가능성을 될 수 있는 한 줄이는 것이다.


‘대열을 이탈하지 마라’ 이론


두 번째로 소개하는 '대열을 이탈하지 마라' 이론은 포식자가 접근하면 나무 위로 날아가버리는 새에게 적합하다.


그의 최선책은 나무 위로 날아오르되 다른 동료들도 함께 날아오르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무리를 이탈한 못난이가 되어 군집의 일부라는 이점을 상실하지 않고서도 몸을 피하는 이점을 얻을 것이다.


이 경우에도 역시 경계음을 내는 행위는 순전히 이기적인 이익을 가져올 것으로 생각된다. 차르노프(L. Charnov)와 크렙스도 비슷한 이론을 제안하였는데, 이들은 경계음을 내는 개체가 무리의 다른 개체에 대해 취하는 행위를 '조종'이라는 말로 표현하기까지 했다.

[차르노프와 저서 출처 구글 이미지]

가젤의 높이뛰기


많은 포식성 포유류는 늙은 개체와 건강치 못한 개체를 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높이 뛰는 개체는 자신이 늙지도 않고 또 건강하다는 사실을 과장된 방법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가젤의 높이뛰기 출처 구글 이미지]

이 이론에 의하면 높이뛰기 행동은 이타주의와 관계가 멀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기적 행위다. 포식자가 다른 개체를 쫓도록 하는 것이 주목적이기 때문이다.


사회성 곤충


사회성 곤충의 공적, 특히 협동과 이타주의는 전설적이다. 꿀단지개미 중에는 괴이하게 배가 부풀어 꿀을 잔뜩 꾸려 넣을 수 있는 일개미계급이 있다. 이들이 평생 하는 일이란 전구처럼 천장에 매달려 다른 일개미들의 먹이 저장소로 이용되는 것이다.

[꿀단지개미 출처 구글 이미지]

개미나 벌이나 흰개미의 사회는 더 높은 수준에서의 개체성을 달성하고 있다. 먹이는 개체들 사이에 공유되기 때문에 ‘공동체의 위’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외부로부터의 침입자는 몸의 면역 반응계가 나타내는 것과 같은 정확도로 식별되고 제거된다.

[개미의 종류 출처 123RF]

번식 분업


사회성 곤충의 개체들은 낳는 자(출산, 여왕벌과 수컷)와 키우는 자(양육, 일벌)의 두 주요 계급으로 분업이 확실하다. 일벌은 자식을 만들지 않는다. 일벌의 모든 노력은 자기 자식이 아닌 혈연자를 돌봄으로써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하는 데에 투자된다.


해밀턴의 벌목 곤충(개미, 벌, 말벌 등) 근연도 계산에 의하면 일꾼-새끼에 대한 근연도가 여왕-새끼에 대한 근연도보다 높다고 한다. 이는 벌의 암컷은 염색체가 두 세트인 반면 수컷의 염색체는 어미에게서 받은 한 세트라는 차이에서 비롯한다.


[꿀벌의 종류 출처 브리태니커]

벌목의 성 결정 시스템


벌목의 집에는 일반적으로 성숙한 여왕이 한 마리밖에 없다. 여왕은 젊어서 결혼 비행을 한 번 하고, 그때 10년 또는 그 이상의 여생 동안 쓸 정자를 저장한다. 이 기간에 암놈은 정자를 일정량씩 방출하여 수란관을 통과하는 난자를 수정시킨다. 미수정란은 수놈이 된다.


그렇다면 암수 성비 비율은 어떠할까? 개미를 연구했던 트리버스와 헤어는 최적 성비에 대한 피셔의 계산법을 이용하여 여왕의 입장에서는 안정된 투자 비율은 1:1임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일꾼의 입장에서는 수컷 형제보다는 자매가 많은 3:1이었다.


여왕과 일꾼의 차이


여왕과 일꾼의 차이는 유전적인 것이 아니다. 유전자에 관한 한 배(embryo)의 상태에 있는 암놈은 3대 1의 성비를 바라는 일꾼이 되든지 아니면 1대 1의 성비를 바라는 여왕이 될 운명이다.


이는 일꾼의 사육 농장 내에 이해 대립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왕은 암수에게 동등한 투자를 행하려고 한다. 일꾼은 성비를 암컷 3에 수컷 1의 방향으로 치우치게 하려고 한다.


문제의 성비는 번식할 수 있는 개체 중 수놈 대 암놈의 비율이다. 피셔의 최적 성비 계산법은 엄밀하게 말하면 암수의 수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암수 각각에 대한 투자량에 적용된다.


이 점을 배려하기 위해 트리버스와 헤어는 번식 개체의 무게를 참조하고 20종의 개미를 조사하여 번식 개체에 대한 투자량의 비로 표현되는 성비를 추정하였다.


그 결과 이들은 실제 암수 비율이 일개미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이론으로부터 예측할 수 있는 3대 1에 근접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노예 사역종


개미 무리 중에 다른 종류의 개미를 노예로 삼는 종이 있다. 노예 사역종(slave-making species)의 일개미는 일반적인 일을 전혀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솜씨가 좋지 않다.


이들이 잘할 수 있는 것은 노예를 사냥하는 일이다. 물론 노예들은 자기들이 시중들고 있는 여왕이나 새끼가 생판 남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트리버스와 헤어는 노예 사역종의 여왕은 자신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성비를 기울게 할 수 있는 입장에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즉 노예 사역종의 암수성비는 1대 1에 가까우리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즉 여왕이 암호를 바꾸었을 때 노예 개미에서 이 암호를 해독하는 능력이 진화할 가능성이 없고 여왕의 바람대로 된다는 것이다.

[노예사냥개미 출처 위키백과]

농장과 가축


버섯 농장을 만들거나 진딧물을 가축으로 이용하는 개미들도 있다. 개미는 버섯과 진딧물로부터 양식을 얻고, 버섯과 진딧물은 개미의 노동을 이용하여 증식하고 천적으로부터 보호받는다.


잎꾼개미 사회는 개미-버섯(균류)과의 공생관계로 유지된다. 버섯은 잎꾼개미의 주 먹이원이다. 일개미가 나뭇잎을 잘라 굴속으로 운반해 오면 또 다른 작은 일개미들이 톱날 같은 이빨로 잘게 썬 다음, 잎 조각들을 씹어 잎반죽을 만든 뒤 효소가 들어 있는 배설물과 잘 섞어 버섯을 키운다.

[개미의 버섯 농장 출처 구글 이미지]

상리공생


다른 종의 개체와 상호 이익을 주고받는 관계를 '상리 공생' 또는 '공생`이라고 한다. 다른 종의 개체는 서로 다른 '기능'을 제공할 수 있으므로 때로는 서로 큰 이익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은 근본적 비대칭성으로 인해 진화적으로 안정한 상호 협력 전략이 얻어질 수도 있다. 진딧물은 식물의 즙을 빨아내기에 적합한 구기를 가지고 있으나 이와 같은 구기가 자기 방어에는 별로 적합하지 못하다.


한편 개미는 식물의 즙을 빨아내기에는 서툴지만 싸움에는 유리하다. 따라서 진딧물을 사육하고 돌보는 유전자는 개미의 유전자 풀 내에서 퍼지게 됐고, 개미와 협력하는 유전자는 진딧물의 유전자 풀 내에서 퍼지게 되었을 것이다.

[개미와 진딧물의 공생 출처 구글 이미지]

협력의 진화


호혜적 이타주의


서로 다른 종끼리 상호이익을 주고받는다면 이론적으로 이런 식의 협력이 진화할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익의 제공과 이에 대한 보답 사이에 시간적 차이가 있을 때에 발생한다. 이익을 먼저 받은 개체가 상대를 속이고 자기가 보답할 차례가 와도 보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봉과 사기꾼, 원한자


어떤 개체군이 두 개의 전략 중 하나를 채택하는 개체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자.


메이너드 스미스의 분석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의 전략은 의식적인 전략이 아닌,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무의식적인 행동 프로그램을 말한다.


이 두 전략을 '봉(Sucker)' 전략과 '사기꾼(Cheat)' 전략이라고 부르자. '봉'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대라면 누구에게나 털 손질을 해 준다. '사기꾼'은 봉의 이타적 행동을 받아들이지만 누구한테라도, 심지어 상대가 이전에 자기의 털을 골라 주었던 개체일지라도 일절 털 손질을 해 주지 않는다.

[털 골라주는 개코원숭이 출처 구글 이미지]

이제 '원한자(Grudger)'라는 제3의 전략을 생각해 보자. 원한자는 처음 대하는 상대와 이전에 자신의 털을 손질해 준 개체에 대해서 털 손질을 해 준다. 그러나 그를 속인 적 있는 상대라면 그것을 잊지 않고 원한을 품는다. 즉 향후에는 그 개체의 털 손질을 거부한다.


경쟁의 결과


이상 세 가지 전략에 관해서 도킨스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직관이 옳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원한자 전략은 봉 전략이나 사기꾼 전략에 대해 실제로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ESS)이다. 대부분이 원한자로 된 개체군에는 사기꾼도, 봉도 침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기꾼도 ESS이다. 대부분이 사기꾼인 개체군 역시 원한자나 봉 누구도 침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체군은 이 두 ESS 중 한쪽에 안주하게 된다. 장기적으로 보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의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각각의 이득에 실제로 어떤 수치를 주느냐에 따라 하나의 ‘유인 지대’가 커져 그쪽에 안주하는 것이 좀 더 가능할 것이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처음에는 봉이 압도적 다수였다가 사기꾼이 폭증하여 봉은 완전히 사라진다. 이후 원한자가 급증하면서 사기꾼이 절멸 직전까지 격감했다가 양쪽이 평형을 이루고 다시 사기꾼은 서서히 말살되어 결국 원한자만 개체군에 남게 된다고 한다.


청소어


트리버스는 청소어(cleaner-fish, 작은 어류나 새우류 포함 50여 종)의 상리 공생에 관해서도 논한다. 청소어는 특유의 줄무늬를 지니고 있고 특별한 춤으로 과시 행동도 한다. 이것이 바로 청소어라는 표지다. 대형 어류는 청소어를 먹지 않는다.

[청소어와 청소새우 출처 구글 이미지]

이 기회를 이용하는 냉혹한 사기꾼이 있다. 이들은 청소어와 똑같은 외양을 가지고 게다가 똑같은 춤을 추는 소형 어류이다. 이 사기꾼은 대형어의 기생충을 떼어 내 주기는커녕 그 지느러미에서 살점을 뜯어 물고 줄행랑을 친다.


이런 사기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소어와 그 손님들의 관계는 대체로 우호적이고 안정적이다. 청소부란 직업은 산호초 생물 공동체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청소어는 각각 자기의 영역을 가지고 있으며 대형 어류들은 마치 이발소의 손님처럼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이 사례에서 지연된 호혜적 이타주의가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와 같은 지역 고착성이라는 성질 때문일 것이다.


대형 어류가 매번 새로운 청소어를 찾는 대신 같은 '이발소'에 계속 들러서 얻는 이익은 이 청소어를 잡아먹지 않는 대가보다 클 것임에 틀림없다.


인간의 개체 식별 능력


인간에게는 오래도록 기억하는 능력과 개체 식별 능력이 잘 발달되어 있다. 따라서 호혜적 이타주의는 인간의 진화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으리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교활한 사기꾼'이란 존재다. 언뜻 보기에는 이들이 보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받은 것보다 조금 부족하게 깊는다.


인간의 비대한 대뇌와 수학적으로 사고하는 성향이 더 교활하게 사기를 치거나 남의 사기를 좀 더 잘 간파하기 위한 메커니즘으로 진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돈은 지연된 호혜적 이타주의의 공식적인 징표다.


Chapter 11 밈-새로운 복제자
(Memes: the new replicators)


문화, 문화적 돌연변이


인간을 특수한 종으로 보는 근거는 ‘문화’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문화적 전달은 일종의 진화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유전적 전달과 유사하다.


그러나 언어의 경우처럼 유전자가 아닌 수단(non-genetic means)으로 '진화'하며 그 속도는 유전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문화적 전달이 인간 이외의 동물에게서 볼 수 있었던 가장 좋은 사례는 젠킨스(P. F. Jenkins)가 기록한 뉴질랜드 앞바다 섬에 사는 안장새(saddleback)의 노랫소리다.


젠킨스는 그들의 아비와 아들의 노래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노래의 패턴이 유전적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혔다.

[뉴질랜드 안장새 출처 구글 이미지]

젊은 수컷은 근처에 영역을 갖는 다른 개체의 노래를 모방하거나 '노래풀'에서 몇 가지 노래를 선택한다. 인간의 언어와 비슷한 방법으로 말이다. 젠킨스는 운 좋게도 젊은 수컷이 옛 노래를 모방하다가 실수로 새로운 노래를 '창작'하게 되는 과정을 몇 번 목격했다.


그는 새로운 노래의 출현을 '문화적 돌연변이(cultural mutation)'라고 표현한다. 안장새의 노래는 분명히 유전자가 아닌 수단을 거쳐 진화한다. 또한 조류와 원숭이에서도 문화적 진화의 예가 알려져 있다.


* 안장새 노래의 진화(Evolution of Saddleback Songs) - 출처 RNZ


문화적 진화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은 우리 인간이라는 종이다. 문화적 변화는 유전적 진화에서와 같이 진보적이다.


현대 과학은 실제로 고대과학보다 우수하며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시대와 더불어 변화할 뿐 아니라 실제로 개선되어 가고 있다. 중세기의 정체가가 있었던 것처럼, 유전자도 안정된 정체 기간 사이사이 갑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나면서 진행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학의 진보와 자연선택에 의한 유전적 진화의 유사성에 관해서는 특히 칼 포퍼(Karl Popper) 경이 밝혀 주었다.

[칼 포퍼 경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여기서 도킨스는 포퍼 경의 견지에서 더 나아가 유전학자 카발리 스포르차(L. L. Cavalli-Sforza), 인류학자 클로크(F. T. Cloak), 그리고 동물행동학자 컬렌(M. Cullen) 등이 탐색하고 있는 연구 방향으로 논의를 더 진전시키고자 한다.

[카발리 스포르자와 클로크의 논문 출처 구글 이미지]

열렬한 다윈주의자인 도킨스는 다른 열렬한 다윈주의자들이 인간 행동에 대해 제기한 설명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인간의 문명이 지니는 여러 가지 특성의 '생물학적 이점'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다는 것이다.


가령 부족 종교는 집단으로서의 일체감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메커니즘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크고 몸놀림이 빠른 먹이를 협동하여 사냥하는 종의 경우 가치가 있다. 이러한 이론의 뼈대가 되는 진화론적 전제는 은연중에 집단 선택설을 따른다.


그러나 부족 종교는 정통적인 유전자선택 이론으로 다시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은 과거 수백만 년을 소규모 혈연 집단 단위로 생활해 왔다. 따라서 우리의 기본적인 심리적 특성이나 경향은 대개 혈연선택과 호혜적 이타주의를 촉진하는 선택이 우리의 유전자에 작용한 결과이다.


이제부터 전개하려는 논의는 현대인의 진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전자만이 진화의 기초라는 입장을 버려야만 된다는 사실에 관한 것이다.


도킨스는 확실히 열렬한 다윈주의자다. 그러나 그는 다윈주의는 유전자라는 좁은 문맥에 국한되기에는 너무나 큰 이론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그의 주장에서 유전자는 하나의 유추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고 한다.


또 다른 자기 복제자


도대체 유전자는 무엇이 그리 특별할까? 그 해답은 이들이 복제자라는 데 있다. 생물학에서 전 우주에 적용되는 보편타당한 원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모든 생명체가 자기 복제를 하는 실체의 생존율 차이에 의해 진화한다는 법칙이다. 


우리의 행성 지구에서 자기 복제를 하는 실체로 가장 그 수가 많은 것은 유전자, 즉 DNA 분자다. 그리고 여기 지구에서 신종의 자기 복제자가 등장했다.


우리는 현재 그것과 코를 맞대고 있다. 그것은 아직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이며 자신의 원시 수프 속에 꼴사납게 둥둥 떠 있다. 그러나 이미 그것은 오래된 유전자를 일찌감치 제쳤을 만큼 빠른 속도로 진화적 변화를 달성하고 있다.


'밈'과 그 진화


새로이 등장한 수프는 인간의 ‘문화’라는 수프다. 새로이 등장한 자기 복제자에게도 이름이 필요한데, 그 이름으로는 문화 전달의 단위 또는 모방의 단위라는 개념을 담고 있는 명사가 적당할 것이다.


이에 알맞은 그리스어 어근으로부터 '미멤mimeme'이라는 말을 만들 수 있는데, 여기서 '진gene(유전자)'이라는 단어와 발음이 유사한 단음절의 단어를 위해 이를 밈(meme)으로 줄인다고 한다.


이 단어는 '기억memory', 또는 프랑스어 'même'라는 단어와 관련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며, 이 단어의 모음은 '크림cream'의 모음과 같이 발음해야 한다고 한다.


밈의 예에는 곡조, 사상, 표어, 의복의 유행, 단지 만드는 법, 아치 건조법 등이 있다. 유전자가 유전자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 정자나 난자를 운반자로 하여 이 몸에서 저 몸으로 뛰어다니는 것과 같이, 밈도 밈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에는 넓은 의미로 모방이라 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뇌에서 뇌로 건너 다닌다.


어떤 과학자가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대해 듣거나 읽거나 하면 그는 이를 동료나 학생에게 전달할 것이다. 그는 논문이나 강연에서도 그것을 언급할 것이다. 이 아이디어가 인기를 얻게 되면 이 뇌에서 저 뇌로 퍼져 가면서 그 수가 늘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


도킨스의 동료인 험프리(N. K. Humphrey)는 이 장의 초고를 깔끔하게 요약하여 다음과 같이 적었다.

"(..) 밈은 비유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살아 있는 구조로 간주해야 한다. 당신이 내 머리에 번식력 있는 밈을 심어 놓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당신이 내 뇌에 기생하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 기생하면서 그 유전 기구를 이용하는 것과 같이 나의 뇌는 그 밈의 번식을 위한 운반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예컨대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이라는 밈은 수백만 전 세계 사람들의 신경계 속에 하나의 구조로서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험프리와 저서 출처 구글 이미지]

신이라는 밈


신이라는 관념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것이 어떻게 밈 풀 속에 생겨났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마 독립된 '돌연변이'를 여러 번 거쳐 발생했을지 모른다. 어쨌든 아주 오래된 것만은 사실이다.


이것은 어떻게 해서 자기 복제를 하는 것일까? 위대한 음악과 예술의 도움을 받은 말과 글을 통해서다. 그러면 그 밈은 왜 이와 같이 높은 생존 가치를 나타내는가?


밈 풀 속에서 신의 밈이 나타내는 생존 가치는 심리적 매력의 강력함이다. 실존을 둘러싼 질문에 신은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한 해답을 준다. 이는 마치 의사가 처방하는 가짜 약과 같이 상상을 통해 그 효력을 갖기 마련이다. 심리적 이끌림은 신의 관념이 세대를 거쳐 사람의 뇌에 그렇게 쉽게 복사되는 이유 중 하나다.


30억 년 전부터 이 지상에서 언급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자기 복제자는 DNA였다. 그러나 DNA가 그 독점권을 영원히 가지리란 법은 없다. 새로운 종류의 복제자가 자기의 사본을 만들 조건이 마련되기만 하면, 그 수가 늘어나면서 나름대로 새로운 종류의 진화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유전자를 선택의 단위로 하는 남은 유형의 진화는 뇌를 만들어 냄으로써 최초의 밈이 발생할 수 있는 '수프'를 마련해 주었다. 자기 복제 능력이 있는 밈이 등장하면서 이들은 낡은 유형의 진화보다 훨씬 빠른 독자적 진화를 시작했다.


밈의 특성


밈 풀에서 어떤 밈이 자기 복제에 성공하려면 2장 자기 복제자에 대해 이미 논한 것처럼 장수, 다산성, 그리고 복제의 정확성이 전제된다.


밈 사본의 수명은 유전자 사본에 비하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내 머릿속에 있는 '올드랭사인 Auld Rang Syne' 악보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만 존재할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그 악보 인쇄본도 언제가는 낡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 악보의 사본들은 계속 인쇄되고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수백 년이라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유전자의 경우와 같이, 밈에서도 특정한 사본의 다산성이 수명보다 훨씬 중요하다. 과학적인 아이디어일 경우 과학자들이 얼마나 그 아이디어를 인용하는지 그 수에 따라 대략적인 생존 가치를 추산할 수 있다.


언뜻 보기에 밈은 복제의 정확도가 높은 자기 복제자는 아닌 것 같다. 예를 들어 이 책의 내용은 트리버스의 아이디어에 의지하고 있지만, 다른 아이디어를 혼합하거나 강조점을 바꾸는 등 나의 목적에 맞게 바꾸어 제시한다. 그 밈이 변형되어 독자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밈의 단위


하나의 노래를 하나의 밈이라고 얘기했지만, 밈의 구성단위는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유전자 복합체처럼 하나의 밈은 밀접하게 연관된 밈들과 결합하여 복합체를 구성한다.


다윈이론을 예로 들자면, 다원이론은 그 이론을 알고 있는 모든 뇌가 공유하는 다윈이론의 본질적인 바탕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이론을 표현하는 방법은 각기 다르다. 따라서 표현 방법의 차이는 정의상 다윈이론의 밈의 일부가 아닌 셈이다.


경쟁하는 밈


유성생식의 경우, 개개의 유전자는 염색체상에서 같은 장소를 차지하려는 대립 유전자와 경쟁한다. 밈에는 염색체에 상응하는 것이 없으며, 대립 유전자에 상응할 만한 것도 없는 듯 보인다. 다수의 아이디어에는 그에 '대립하는 아이디어'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해도 그다지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밈이 서로 경쟁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대립하는 밈이 없는데도 밈이 '이기적'이라거나 '잔인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마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나의 견해다. 어면 의미에서 보면 밈들이 서로 일종의 경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밈이 살고 있는 컴퓨터다. 뇌에서는 아마도 저장 용량보다 시간이 중요한 제한 요인이며, 심한 경쟁의 대상일 것이다. 인간의 뇌와 그 제어를 받는 몸이 동시에 하나 또는 몇 종류 이상의 일을 해치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 밈이 어떤 사람의 뇌의 집중력을 독점하고 있다면 '경쟁자'의 밈이 희생되는 것은 틀림없다. 밈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방송 시간, 광고 게시판의 공간, 신문 기사의 길이, 그리고 도서관의 서가 공간 등과 같은 상품에서도 경쟁하고 있다.


밈 복합체의 예-종교, 맹신, 독신주의


유전자의 경우, 유전자 풀 속에 공적응된 유전자 복합체(co-adapted gene complexes)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3장에서 이야기했다.


예컨대 나비의 의태에 관여하는 다수의 유전자는 동일 염색체상에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이들 모두를 하나로 묶어 하나의 유전자로 다룰 수 있었다.


5장에서는 진화적으로 안정한 유전자 세트라는 좀 더 복잡한 개념을 소개했다. 육식 동물의 유전자 풀에서는 이, 발톱, 소화관, 감각 기관이 서로 적합한 형태로 진화하는 한편, 초식 동물의 유전자 풀에서는 이와 다른 종류의 안정한 세트가 형성되었다.


밈 풀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생길 것인가? 예컨대 신의 밈이 다른 특정 밈과 결합되고, 또 이 결합이 밈 각각의 생존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아마도 우리는 건축, 의식, 율법, 음악, 예술, 문서화된 전통이 조직화된 교회를 서로 돕는 밈의 공적응된 안정한 세트(co-adapted stable set of mutually-assisting memes)의 일례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밈과 유전자는 종종 서로를 보강하지만 때로는 서로 대립하기도 한다. 예컨대 독신주의 같은 것은 유전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성 곤충과 같이 매우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독신주의를 발현시키는 유전자는 유전자 풀 속에서 실패하게 돼 있다. 그러나 여전히 독신주의의 밈은 밈 풀 속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밈의 긍정적인 면


우리가 사후에 남길 수 있는 것은 유전자와 밈 두 가지다. 우리는 유전자를 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전자 기계다. 그러나 한 세대 두 세대 지날수록 우리 유전자의 기여도는 반감된다. 그 기여도는 머지않아 미미해질 것이다. 유전자 자체는 불멸일지 몰라도 우리 각자의 유전자의 집합은 사라질 운명에 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정복자 윌리엄 1세 대왕의 직계 자손이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2세가 윌리엄 대왕의 유전자를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을 가능성은 다분히 있다. 번식이라는 과정 속에서 불멸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세계 문화에 무언가 기여할 수 있다면, 예컨대 좋은 아이디어를 내거나, 음악을 작곡하거나, 점화 플러그를 발명하거나, 시를 쓰거나 하면, 그것들은 우리의 유전자가 공통의 유전자 풀 속에 용해되어 버린 후에도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른다.


윌리엄스의 말마따나 소크라테스의 유전자 중에서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이 과연 하나라도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누가 그런 것에 관심이나 있는가. 하지만 소크라테스, 레오나르도 다빈치, 코페르니쿠스, 마르코니의 밈 복합체는 아직도 건재하다.


인간의 선견지명


밈에 의해 진화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인간에게는 의식적인 선견지명이라는 독특한 특성이 있다. 이기적 존재인 유전자는(그리고 여러분이 이 장의 사변을 인정한다면 밈에게도) 선견 능력이 없다.


이들은 의식이 없는, 맹목적인 자기 복제자이다. 이들이 자기 복제를 한다는 사실은, 몇 가지 부가적인 조건 등을 조합하여 생각해 볼 때 이들이 진화를 거쳐 이기적(이 책에서 쓴 특수한 의미로)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성질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전자든 밈이든, 단순한 자기 복제자는 당장 눈앞의 이기적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결국에는 이롭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보다는 '비둘기파의 공동 행위' 전략을 택하는 것이 모두에게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자연선택은 ESS를 선호하게 된다.


우리가 비록 어두운 쪽을 보고 인간이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우리의 의식적인 선견지명, 즉 상상력을 통해 장래의 일을 모의 실험하는 능력이 맹목적인 자기 복제자들의 이기성으로 인한 최악의 상황에서 우리를 구해 줄 것이다.


적어도 우리에게 당장 눈앞의 이기적 이익보다 장기적인 이기적 이익을 따질 정도의 지적 능력은 있다. 우리는 '비둘기파의 공동 행위'에 가담하는 것이 장기적 이익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할 능력이 있으며, 이 공동 행위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서로 논의할 능력이 있다.


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의 기계로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


<7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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