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지음
Chapter 8 세대 간의 전쟁
(Battle of the generations)
8장과 9장은 생물학의 '사회적 행동' 분야에서 아래 표시 영역(Attachment는 애착 내지 애정을, mating은 짝짓기에 대해 연구하는 분야)과 관련된 내용으로 보인다.
이 장에서는 “어머니는 아이를 편애할 것인가, 아니면 모든 아이를 동등하게 이타적으로 대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먼저 던진다.
도킨스는 “어머니 역시 하나의 생존 기계이며 이 기계의 내부에는 유전자가 들어앉아 있고 이 기계는 그 유전자의 사본을 퍼뜨릴 수 있는 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라고 전제한다.
편애
어미가 새끼를 편애한다고 할 때 이것은 ‘어미가 이용할 수 있는 여러 자원’ 즉, 먹이, 포식자로부터의 위험, 둥지를 짓고 유지하는 에너지와 시간 등을 새끼들에게 불균등하게 투자한다는 의미이다.
이 논의를 위해서는 이러한 자원 모두를 측정하는 공통의 통화가 필요한데, 칼로리와 같은 에너지의 척도는 적절하지 않다고 한다. 진화의 ‘금 본위 제도’인 유전자의 생존으로 변환할 때 그 척도의 일부만이 변환 가능하기 때문이다.
부모의 투자
로버트 트리버스(R. L. Trivers)는 1972년에 ‘부모의 투자(parental investment, P.I.)’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이 문제를 해결했다(로널드 피셔도 1930년에 ‘부모의 경비(parental expenditure)’라는 비슷한 표현을 했다고 한다).
부모의 투자는 '자손 하나에 대한 투자로서, 다른 자손에 대한 양육 투자 능력을 희생시키면서 그 자손의 생존 확률(그리고 그로 인한 번식 성공도)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정의된다.
즉 한 아이가 모유를 마신다고 할 때 이로 인해 다른 형제가 입는 손해의 단위, 즉 그 모유를 먹지 못한 아이의 사망률의 증가 내지 앞으로 출생할 다른 아이들의 기대 수명의 감소치로 측정된다고 한다.
모든 어른 개체는 자신의 생애를 통틀어 자식(자식뿐만 아니라 다른 혈연자와 자신도 고려해야 하지만 여기에서는 간단하게 자식만 고려하자)에게 투자할 수 있는 일정한 총량의 P.I.를 갖고 있다.
이는 개체가 일생 동안 노동을 통하여 획득 또는 생산할 수 있는 먹이,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위험, 그 밖에 자식의 복지를 위해 투여할 수 있는 모든 에너지와 노력의 총합을 의미한다.
랙의 이론에 의하면, 많은 새끼에게 골고루 투자하는 경우 충분한 수의 손자를 확보할 수 없어 너무 많은 유전자를 잃게 될 수 있고, 아주 소수의 새끼에게 모든 자원을 투자하여 응석받이로 만들어서도 안 될 것이다. 결국 최적 수의 새끼에게 투자한 경쟁자가 최종적으로 보다 많은 손자를 얻게 될 것이다.
편애에는 유전적 근거가 없다
어미가 편애할 만한 유전적 근거는 없다. 앞서 근연도에서 살펴보았듯이 어미의 자식에 대한 유전적 근연도는 모든 자식에게 1/2로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미의 최적 전략은 자식이 번식할 때까지 양육할 수 있는 가장 많은 수의 자식에게 공평한 투자를 하는 것이다.
어미의 투자 경향은 새끼의 연령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예측 가능한데, 새끼 중에 생명이 급박하게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면 나이 많은 새끼를 구하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정도로 급박하지 않다면 어린 새끼를 편애하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른다. 큰 새끼는 자력으로 먹이를 구할 가능성이 높아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미가 새끼에 대한 투자를 장래의 새끼에 대한 투자로 전환하는 편이 유리해지는 시기가 온다. 그때는 어미는 젖을 떼려고 할 곳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새끼가 마지막 자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미는 여생 동안 심지어 그 새끼가 성체가 될 때까지 젖을 먹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미는 손자나 조카에게 투자하는 것이 더 득이 되지 않을까 ‘저울질’할 것이다.
폐경기
여성이 중년기에 갑자기 생식 능력을 잃어버리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남성의 생식 능력의 ‘점차적인 감퇴’와의 차이점을 고려할 때 폐경에 유전적으로 어떤 ‘의도된 것’이 있지 않을까, 즉 폐경이 ‘적응’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즉, 여성이 나이를 먹음에 따라 육아의 효율성이 떨어져 노령의 산모가 낳는 아기의 기대 수명이 젊은 산모가 낳은 아기의 수명에 비해 짧아져 동갑내기 손자의 어른이 될 확률의 1/2보다 낮아지게 되면, 자기 아이보다 오히려 손자 쪽으로 투자하게 하는 유전자가 유리하게 되어 번창할 것이다.
그러므로 중년기에 이른 여성이 번식 능력을 상실하도록 작용하는 유전자가 점점 증가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수컷의 경우에는 아마도 자손에 대해 암컷만큼 투자하지 않기 때문에 번식 능력이 갑자기 소실되지 않고 점차 쇠퇴해 가는 이유일 것이다.
이기적인 새끼
각각의 아이가 다른 형제자매에 비해 부모로부터 얼마나 많은 투자를 받는가에 스스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트리버스가 1974년 ‘부모-자식 간 갈등(Parent-offspring conflict)’이라는 논문에서 잘 분석했다.
편애에 대한 자식의 관점은 어떠할까? 형제자매의 근연도는 부모-자식의 근연도와 마찬가지로 1/2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한 근연도가 형제자매에 대한 근연도의 두 배이므로 자식은 어미가 자기에게 투자해 주기를 바랄 것이다.
따라서, 어미의 주의를 자신에게로 돌리고, 더 많은 이득을 얻기 위해 자식은 부모를 속일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실제 이상으로 배고픈 척하거나, 어리광을 부리거나, 훨씬 더 큰 위험에 처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들은 혈연자가 받는 불이익이 유전적 근연도가 허용하는 한도를 넘는 선까지 거짓말, 사기, 속임수, 착취 등 자유로이 쓸 수 있는 심리적인 무기를 적극적으로 구사한다.
한편 부모는 자식의 사기나 속임수에 속지 않도록 노력하게 된다. 만일 부모가 먹이에 대한 자식의 거짓말을 알게 되면 더 이상의 먹이를 주지 않는 등의 방책을 강구할 수 있다.
새끼의 거짓말
‘핸디캡 이론’을 제안한 자하비(A. Zahavi)는 새끼가 지독한 공갈 협박을 할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즉 어떤 새끼는 포식자를 집으로 불러들일 정도로 시끄럽게 운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울음소리를 그치게 하기 위해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새끼에게 먹이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킨스는 이 이론은 그 새끼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포식자가 둥지의 새끼 중 가장 큰 것만 먹는 습성을 가졌다 하더라도 이는 형제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대는 방법과 유사해서 실제로 진화 과정에서 선택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한다.
뻐꾸기 새끼의 울음소리(거짓말 유전자)
이러한 공갈 협박은 탁란 하는 뻐꾸기 새끼의 경우는 유효할 수 있다. 뻐꾸기 새끼가 포식자를 유인할 정도로 큰 소리를 지르면 양모는 더욱 큰 희생을 치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큰 소리로 울게 하지 않는 유전자는 여분의 먹이를 받지 못해 더 큰 손해를 입기 때문에 큰 소리로 울게 하는 유전자가 뻐꾸기의 유전자 풀 속에 퍼질 수 있었던 것이다.
탁란 습성을 가진 새가 실제로 공갈 협박 전술을 사용한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그들이 잔인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꿀잡이새(honeyguide)도 탁란을 하는데 그 새끼는 부화하자마자 다른 수양 형제를 마구 베고 쪼아서 죽여 버린다고 한다;;;
영국 뻐꾸기 새끼는 다른 수양 형제들보다 빨리 부화하는데 부화하자마자 놀랄 만큼 효과적으로 다른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고 한다.
형제 살해 유전자
랙의 한배 알 수 이론은 부모의 입장에서 본 최적 알 수를 문제 삼고 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새끼라면 최적 알 수는 나를 포함해서 그것보다 작을 수밖에 없다.
개체의 몸속에서 형제 살해를 촉구하는 유전자가 존재할 확률은 100퍼센트이지만 희생되는 형제의 몸속에 있을 확률은 5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형제 살해를 촉구하는 유전자가 유전자 풀 속에 퍼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도킨스는, 물론 이런 무자비한 행동은 극단적인 경우이겠지만 한 아이가 얻는 이익이 형제자매가 입는 피해의 두 배 이상이 되는 조건에서라면 틀림없이 형제 살해보다 정도가 약한 예들은 많이 관찰될 수 있다고 한다.
갈등의 승자
세대 간의 갈등에서는 누가 이길 것인가?
도킨스는 항상 부모가 이긴다는 입장을 내세운 리차드 알렉산더(R. D. Alexander)에 대해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으로 반박한다.
알렉산더의 논리는, 어린 시기에 공평한 분배량 이상을 투자받아 부모의 번식 성공도의 총량을 감소시키는 유전자는 결국 그가 부모가 되면 죗값을 치러야만 하고 결국 그 이기적 유전자는 다시 그 아이들에게 전해져 전반적으로 그의 번식 성공도 역시 전반적으로 감소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도킨스는 이는 너무 단순하고 일방적인 입장에서의 논리라고 반박한다. 진화에서 실제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실체는 이기적 유전자밖에 없다.
자식의 몸 안의 유전자는 부모를 압도하는 능력을 갖도록 선택될 것이고, 부모의 몸속 유전자는 자식을 압도하는 능력을 갖도록 선택될 것이다. 유전자는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선택되며, 쓸 수 있는 기회를 죄다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세대 간의 전쟁에서 어느 쪽의 승산이 높은가"라는 질문에는 일반적인 답이 없다. 최종적으로는 부모와 자식이 서로에게 기대하는 이상적 상태 사이에서 어떤 타협이 이루어질 것이다.
세대 간의 전쟁은 뻐꾸기와 그 양부모 사이의 전쟁에 필적하지만, 양자가 서로 어느 정도의 유전적 이익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뻐꾸기와 양부모의 경우만큼 대립이 심하지 않음은 확실하다.
아무도 자식들이 자기 몸속에 있는 이기적 유전자 때문에 '의도적이고 의식적으로' 부모를 속인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단순히 그와 같이 행동하는 자식이 자연선택에서 유리한 경향이 있으며, 그 때문에 야생 동물을 관찰할 때 가족 내에서 사기 행위와 이기적 행위가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하는 것뿐이다.
이 논의에서 인간의 윤리에 대한 교훈을 도출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자식들에게 이타주의를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식들의 생물학적 본성에 이타주의가 심어져 있다고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Chapter 9 암수의 전쟁
(Battle of the sexes)
리처드 도킨스는 부부 갈등의 전제 조건을 "같은 자식에게 각자의 유전자를 50%씩 똑같이 투자한다"는 사실에서 시작한다.
아비와 어미가 자식에게 투자한 50퍼센트의 유전자는 서로 다르고 둘은 모두 자기 투자분의 복지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서로 협력해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어느 정도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한쪽이 자식들 각각에 대해 공평한 할당량보다 적게 주고 도망칠 수 있다면 그(도킨스는 이를 남성으로 지칭하고 있다 - 옮긴이)는 유리할 것이다. 왜냐하면 남는 자원으로 다른 짝을 얻어 새로운 새끼를 낳음으로써 자기 유전자를 보다 많이 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짝은 상대에게 더 많은 투자를 강요하면서 서로를 착취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상적으로 개체가 '바라는' 것은 가능한 한 많은 이성과 교미하고 자식 양육은 상대에게 전적으로 떠맡기는 것이다.
암수의 근본적인 차이
암수 갈등의 또 다른 전제는 동식물의 암컷과 수컷의 정의에서 찾을 수 있다. 동식물을 통틀어 수컷을 수컷, 암컷을 암컷이라고 명명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한 가지 기본적인 특징은, 수컷의 생식 세포(즉 배우자(gamete))는 암컷에 비해 매우 작고 그 수가 많다는 것이다.
이는 동식물 어느 것을 취급할 때도 마찬가지다. 큰 생식 세포를 가지고 있는 개체의 무리를 편의상 암컷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다른 무리는 편의상 수컷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이들은 생식 세포가 작다.
이 둘의 차이는 파충류와 조류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이들 동물에서는 난세포 하나가 발육하는 새끼에게 몇 주 동안에 걸쳐 충분한 먹이를 공급할 만큼 크며, 난자는 정자보다 훨씬 크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다른 성 간 차이는 모두 이 기본적 차이 하나에서 파생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동형 배우자의 접합
곰팡이와 같은 몇몇 원시적인 생물에서는 일종의 유성 생식을 볼 수는 있지만 암수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동형 배우자 접합(isogamy)으로 알려진 이 체계에서는 개체를 암수로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느 개체도 다른 개체와 교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생식 세포는 같으며 동형 배우자(isogamete)라고 불린다. 그리고 감수 분열로 만들어진 동형 배우자의 융합에 의해 새로운 개체가 만들어진다.
동형 배우자가 융합할 경우, 새로운 개체에 기여하는 두 배우자의 유전자 수가 같으면 물론 두 배우자가 기여하는 양분의 양도 같다.
정자와 난자가 유전적으로 기여하는 하는 정도는 동일하지만, 양분의 면에서는 난자의 기여도가 정자를 훨씬 능가한다. 저자는 이 점에 주목하여 다른 성간 차이는 모두 생식 세포 크기의 차이에서 파생된다고 해석한다.
정자와 난자의 경우도 유전자에 대한 기여도는 같다. 그러나 양분의 양에서는 난자의 기여도가 정자를 훨씬 능가한다. 실제로 정자의 기여는 전혀 없고 정자는 유전자를 가급적 빨리 난자로 운반하는 데 주력한다.
따라서 임신 시점에서 수컷이 자식에 대해 투자한 자원량은 공평한 분량, 즉 50퍼센트보다 훨씬 적다. 개개의 정자는 아주 작으므로 수컷은 매일 수백만 개의 정자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수컷이 잠재적으로 여러 마리의 암컷을 이용하여 단기간 내에 많은 수의 새끼를 만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개개의 배가 어미로부터 충분한 양분을 받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 때문에 암컷이 만들 수 있는 자식의 수에는 한계가 있는 반면에 수컷이 만들 수 있는 자식의 수에는 사실상 한계가 없다. 수컷의 암컷 착취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파커 등은 원래 동형 배우자의 상태에서 이러한 비대칭성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였다.
모든 생식 세포가 쉽게 융합할 수 있었고 또한 크기가 거의 같았던 시대에 우연히 크기가 큰 생식세포를 가진 배우자가 등장했고 이 배우자는 크기가 점점 커지는 경향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한편 양분을 많이 가진 큰 배우자를 '이기적으로 이용하려는' 개체들은 전략적으로 운동성을 길러 적극적으로 큰 배우자를 찾아내는 경향으로 진화가 이루어졌다.
작고 활발히 움직이는 배우자를 만드는 개체는 더 많은 배우자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것이고, 이에 따라 더 많은 자손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즉 대형의 배우자를 상대로 활발하게 찾아다니는 소형의 배우자가 자연 선택에서 유리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성 '전략'이 두 갈래로 진화했음을 상상할 수 있다. 우선 대투자 전략 또는 '정직한' 전략이 있었다. 이 전략은 소투자 착취 전략의 진화에 문을 열었을 것이다.
일단 성 전략이 두 갈래로 갈라지기 시작한 이후에는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됐을 것이다. 중간 크기의 배우자를 만드는 전략은 큰 배우자 또는 작은 배우자의 유리함을 갖지 못하므로 불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착취하는 배우자는 점점 더 작고 민첩해졌을 것이다. 정직한 전략의 배우자는 착취하는 배우자의 투자량이 점점 축소되어 가는 것을 메우기 위해서 계속 커지는 방향으로 진화했을 것이고, 착취하는 배우자가 늘 적극적으로 이들을 찾아 나서므로 운동성도 잃게 되었을 것이다.
개개의 정직한 배우자는 다른 정직한 배우자와의 융합을 '선호할' 것이다. 그러나 착취하는 배우자를 배척하는 선택압이 착취하는 배우자가 그 장애물 아래로 비집고 들어오도록 하는 선택압보다 더 약했을 것이다.
즉 착취하는 배우자가 잃을 것이 훨씬 크므로, 착취하는 배우자는 이 진화의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정직한 배우자는 난자가 되고 착취하는 배우자는 정자가 되었다.
부모의 성비 전략
암수를 각각 얼마나 많이 낳느냐 하는 것은 부모의 전략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귀중한 유전자를 아들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딸에 맡기는 것이 좋을까?
피셔에 의하면 정상 조건에서의 최적 성비는 50대 50이 된다고 한다. 우리가 찾는 것은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 ESS와 같은 것이다. 개체가 아이의 성별을 선택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유전자가 한쪽 성별의 아이를 가지는 경향을 나타내도록 작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다면 불균등한 성비를 선호하는 유전자가 존재한다고 할 때 이런 유전자가 유전자 풀 속에서 균등한 성비를 선호하는 대립 유전자보다 더 많아질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도킨스는 이에 관해 시계추 운동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바다코끼리의 경우 암컷이 많아져도 당분간은 소수의 수컷으로 감당이 가능하겠지만 성비가 지나치면 몇 안 되는 수컷은 녹초가 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또한 아들에게 투자하는 개체는 수백 마리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즉 엄청난 유전적 이익을 누리기 때문에 결국 아들을 낳게 하는 유전자는 점차 증가하여 시계추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이렇게 성비가 불균등해지는 순간 적은 성의 생산에 대한 압력이 시계추를 반대로 밀어내기 시작하기 때문에 아들딸을 같은 수로 낳는 전략은, 이 전략에서 벗어나는 유전자는 손해를 입게 된다는 의미에서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이라고 한다.
아울러 일반적으로 부모는 먹이와 그 밖에 부모가 줄 수 있는 모든 자원을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아들과 딸에게 같은 양을 투자할 것이라고 한다. 대개의 경우 이는 수적으로 아들딸이 같게 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평균적인 유전자는 수많은 세대를 거쳐 오면서 그 시간의 약 반을 수컷의 몸, 나머지 반을 암컷의 몸으로 지낸 셈이 된다.
유전자 효과 중에는 한쪽의 성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있는데, 이를 ‘성에 제한된(sex limited) 유전자 효과‘라고 한다. 페니스의 길이를 조절하는 유전자는 수컷의 몸에서만 효과가 나타난다.
유전자가 암수 중 어느 몸속에 들어 있든지 간에 그 몸에 따라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그 기회는 그 몸이 암수 중 누구의 몸인지에 따라 당연히 다를 것이다.
편의상 다시 한번 개개의 몸은 이기적 기계이고 몸속의 모든 유전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가정하자. 이러한 이기적 기계의 최선책은 수컷인가 암컷인가에 따라 아주 달라질 수 있다.
보다 간결한 설명을 위해 개체에 의식적인 목표가 있는 것처럼 상정하는 방법을 여기서도 사용하기로 한다. 전과 같이 이 또한 그저 비유에 지나지 않음을 분명히 염두에 두기 바란다. 실제로 하나의 몸은 이기적 유전자들에 의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기계다.
어느 개체든지 가능한 한 많은 수의 자식이 생존하기를 바란다. 앞서 8장의 양육투자 개념에서 살펴보았듯 이 자식에 대한 투자량이 줄어들수록 그만큼 자기가 가질 수 있는 자식의 수는 증가한다.
이 바람직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분명한 방법 한 가지는, 파트너에게 자식 각각에게 공평한 배분량 이상을 투자하도록 유도하고 자기는 다른 파트너와 새로운 자식을 얻는 것이다.
이 전략은 암수 누구한테나 바람직한 것이지만 암컷이 이를 구사하기는 수컷에 비해 어렵다. 왜냐하면 암컷은 크고 영양소가 풍부한 난자의 형태로 처음부터 수컷보다 많은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에, 수태할 때부터 이미 어느 자식에 대해서건 아비보다 더 깊은 '정성'을 쏟는다.
자식이 죽을 경우 어미는 아비보다 더 많은 것을 잃는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장래에 새로운 자식을 죽은 자식과 같은 단계까지 키우려면 어미는 아비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어미가 자식을 아비에게 맡기고 다른 수컷을 찾아 나서는 전술을 취하면 아비도 별 부담 없이 자식을 버릴 것이다. 따라서 부모가 아직 어린 자식을 내버릴 경우, 버리는 것은 어미가 아니라 아비일 확률이 높다.
이와 같이 암컷은 처음뿐만 아니라 자식의 생장 전 기간에 걸쳐서 수컷 이상의 투자를 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예컨대 포유류의 경우 자기 체내에서 태아를 키우는 것도 암컷이고, 태어난 자식에게 젖을 만들어 먹이는 것도 암컷이며, 자식의 양육과 보호의 부담을 지는 것도 암컷이다. 암컷이란 착취당하는 성이며, 착취의 근본적인 진화적 근거는 난자가 정자보다 크다는 데 있다;;;
버려진 암컷과 선수 치는 암컷
양육을 떠맡은 암컷이 취할 수 있는 최선책은 다른 수컷을 속여서 그에게 자기 자식을 친자라고 ‘여기도록’ 하여 입양시키는 것이다. 자연선택은 쉽게 속는 수컷에게 매우 불리하다.
실제로 자연 선택은 새로운 암컷을 취한 직후 잠재적인 의붓자식을 모두 죽여 버리는 수컷을 선호할 것이다. 이것은 소위 브루스 효과(Bruce effect)에 대한 설명이다. 이 효과는 쥐에서 알려진 것을, 이전 배우자의 것과는 다른 수컷이 분비하는 어떤 화학 물질을 임신 중의 암컷이 맡으면 유산하게 된다는 것이다.
암컷의 다른 선택은, 혼자 자식을 키우거나 수컷보다 먼저 양육을 포기하고 떠나는 것일 것이다. 혹은 착취당하기 전에, 즉 교미 전에 '성실한' 배우자를 식별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수컷의 긴 구애행동(혹은 약혼기간)이 그러한 예가 될 것이다.
가장 단순한 예는 암컷이 수컷을 훑어보며 성실함과 가정적인 성격을 미리 따져 보는 것이다. 암컷이 이를 달성하는 하나의 방법은 오랫동안 접촉을 거부하고 수줍어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걸 기다리지 못하는 수컷은 성실한 남편이 될 가망이 없다.
긴 구애 행동 또는 약혼 기간은 수컷이 속아서 다른 수컷의 자식을 양육하게 될 위험이 있는 경우 수컷에게도 유리하다.
구애 의식
구애 의식에서 수컷이 적지 않은 혼전 투자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수컷이 집을 완성할 때까지 암컷이 교미를 거절하는 경우도 있고, 수컷이 암컷에게 충분히 먹이를 줘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는 교미 후에 수컷이 암컷을 버리지 못하게 하는 효과는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암컷 대부분이 같은 전략을 구사한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이러한 공동 행위는 비둘기파의 공동 행위와 마찬가지로 진화하기 어렵다.
암수의 ESS
유전자의 생존을 획득하기 위한 암수 모두에게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SS)은 가능할까? 저자는 메이너스 스미스의 가설을 다시 소환하여 가설을 세우는데, 여기서도 '전략'이란 말은 맹목적이고 무의식적인 행동 프로그램을 가리킨다.
암컷의 두 전략은 조신형과 경솔형으로, 수컷의 두 전략은 성실형과 바람둥이형이라 부르기로 하자. 이들 네 유형의 행동 규율은 다음과 같다.
조신형 암컷은 수컷이 수 주간에 걸친 길고 힘든 구애를 거치지 않으면 수컷과 교미하지 않는다. 경솔형 암컷은 누구와도 즉시 교미한다. 성실형 수컷은 장기간 구애를 지속할 인내력이 있고 교미 후에도 암컷 곁에 머물러 양육을 돕는다.
바람둥이형 수컷은 암컷이 즉시 교미에 응하지 않으면 곧바로 다른 암컷을 찾아갈뿐더러, 교미가 끝나면 암컷 곁에 머물러 좋은 아비 역할을 하지 않고 새로운 암컷을 찾아 사라진다.
도킨스의 수리적 계산에 따르면, 조신형 암컷과 성실형 수컷이 대부분인 개체군이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얻는다.
가정의 행복을 위한 암컷의 방법
교미 전에 수컷이 둥지를 짓거나 양육 기간에 수컷이 먹이를 조달하는 것은 수컷의 양육투자를 늘리는 전략들이다. 수컷의 값싼 정자를 상쇄하는 투자를 자식들에게 하는 것이다. 사마귀 같은 수컷은 자신의 몸을 자식들의 양분으로 바치기도 한다.
유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기보다 크기가 큰 다른 암컷의 먹이가 되는 것보다 자식들의 양분이 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가정의 행복 전략을 구사하는 암컷이 수컷의 성실 정도를 사전에 대충 훑어보고 판단하려면 반대로 속기 쉽다. 자연 선택은 수컷의 기만을 잘 알아차리는 암컷을 선호할 것이다.
어류의 이기적 행동
암컷보다도 수컷이 자식을 돌보는 데 더 많은 노력을 쏟는 동물도 있다. 이와 같이 아비가 자식에게 헌신하는 예는 새와 포유류에서는 극히 드물지만 어류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도대체 왜일까? 이것은 이기적 유전자론으로서는 하나의 난제였는데, 도킨스는 오랫동안 이 문제로 고심해 왔다가 칼라일(T. R. Carlisle)의 연구에서 해답을 찾았다고 한다(트라버스의 ‘가혹한 구속(cruel bind)’ 아이디어를 이용하였다).
어류 대부분은 교미를 하지 않고 생식 세포를 그냥 물속에 방출한다(유성생식이 처음 출현했을 때에도 아마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컷이 암컷의 체내에 정자를 주입하지 않기 때문에 암컷이 자식을 품은 채 혼자 남을 필요가 없다.
수정이 막 끝난 알을 상대에게 맡기고 재빨리 도망치는 것이 암수 모두에게 가능하다. 그러나 이때 누가 먼저 생식 세포를 방출하는가 하는 문제로 진화적인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먼저 생식 세포를 방출한 개체는 수정된 배아를 상대에게 떠맡길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지만, 그와 동시에 상대방이 뒤따라 주지 않을지 모른다는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이 점에서 정자가 난자보다 가벼워 확산되기 쉽다는 사실만으로도 수컷이 취약하다. 암컷은 수컷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난자를 빨리 방출했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다.
난자는 비교적 크고 무거워서 잠시 동안 한 덩어리가 되어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고기의 암컷은 먼저 산란하는 '위험'을 감수할 여유가 있다.
반면 물고기의 수컷은 이런 위험을 감수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수컷이 서둘러 정자를 방출해 버리면 암컷이 준비되기 전에 정자가 흩어져 버릴 것이고, 그러면 암컷은 난자를 방출할 가치가 없으므로 산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확산 문제 때문에 수컷은 우선 암컷이 난자를 방출하기를 기다렸다가 정자를 뿌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덕분에 암컷은 실로 귀중한 몇 초를 얻을 수 있다. 그사이에 사라짐으로써 난자를 수컷에게 떠맡겨 버리는 것이다.
이 경우 암컷은 자기 자식이 아비에게 원조받는 것을 실질적으로 포기하고 그 대신 좋은 유전자를 얻는 데에 전력을 쏟는다. 여기서도 암컷의 무기는 아무에게나 쉽게 교미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암컷은 모든 수컷이 열망하는 이상적인 이기적 착취 전략의 행사를 소수의 수컷에게만 허락하고 있으나, 이러한 호사는 반드시 가장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수컷에게만 허용된다.
암컷이 찾는 것-좋은 유전자의 증거
암컷이 자신의 유전자를 세대를 거쳐 남기기 위해서는 수컷의 좋은 유전자가 필요하다. 좋은 유전자를 식별하기 위해서는 외견상의 특징이 있어야 할 것이고, 저자는 그것을 성적 매력이라고 해석한다(예- 풍조(극락새) 수컷의 화려한 꼬리).
암컷의 눈으로 볼 때 수컷이 갖춰야 할 가장 바람직한 성질의 하나는 간단하게도 성적 매력 그 자체가 된다. 특히 매력적이고 남성다운 수컷과 교미한 암컷이 낳은 아들은 다음 세대의 암컷들에게도 매력적인 수컷이 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이 아들은 어미에게 많은 손자를 안겨 줄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암컷이 육중한 근육과 같은 명백히 유익한 성질을 기준으로 하여 수컷을 선별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일단 그 종이 암컷들 사이에서 매력적인 것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면 그 성질은 단순히 매력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연 선택에서 유리함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풍조(극락조)에 대한 유럽인들의 반응>
세상에 이렇게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새가 있다니! 유럽 각국이 신대륙 탐험에 나서기 시작하던 16세기, 유럽인들이 처음 본 새가 있었다. 저 먼 세상으로 나간 선원들이 가지고 온 새는 박제가 되었음에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날개와 다리가 없었다. 어찌 이런 새가 있을 수 있을까. 선원들은 자신들도 들었던 이야기를 전했다. 천국에서 살다가 죽으면 지상으로 떨어지는 새라고. 이른바 ‘천국의 새(Bird of paradise)’라는 이름은 그렇게 생겨났다(우리에게는 극락조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새다).
기독교 세상에 살던 유럽인들에게 그건 천국이 있다는 또 다른 증거였다. 화가들은 이 날개 없고 다리 없는 새를 앞다퉈 그렸고 네덜란드의 유명한 화가 렘브란트도 마찬가지였다. 1640년경 그가 그린, 현재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천국의 새 습작 2점’에 나오는 새에는 다리가 없다. 어딘가에 용과 인어가 있다고 생각했던 시절이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핸디캡 원리
자하비는 다윈의 '성 선택(sexual selecton)' 이론에 대해 불신하며 그 대신 '핸디캡 원리(handicap principle)'라는 정반대의 설명을 제안한다.
자하비는 풍조와 공작새의 꼬리, 사슴의 거대한 뿔 등 성적으로 선택된 형질은 그 소유자에게 핸디캡이 되는 듯 보이는데, 이들 형질이 바로 핸디캡이기 때문에 진화됐다고 주장한다.
즉 그런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살아남을 정도로 완강하고 남성다운 수컷이라고 암컷에게 선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킨스는, 지금까지 핸디캡 원리를 타당한 모델로 만들려는 수리 유전학자들의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고 이는 핸디캡 원리가 타당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어떤 수컷이 일부러 핸디캡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다른 수컷에 대한 우위를 과시할 수 있다면, 의문의 여지없이 그 수컷은 자기의 유전적 성공을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색채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암수의 차이 첫 번째는 수컷의 화려함이다. 포식자에게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깃털 유전자는 유전자 풀에서 살아남았다.
유전자에 대해 말하자면, 칙칙한 색채를 나타내는 유전자보다 밝고 선명한 색채를 나타내는 유전자가 포식자의 뱃속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한편 다음 세대에 전해질 가능성이라면 아마도 칙칙한 색채를 띠게 하는 유전자보다 선명한 색채를 띠게 하는 유전자가 더 높을지 모른다. 색이 칙칙한 개체는 배우자를 유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두 가지의 서로 대립하는 선택압이 존재한다. 즉 포식자는 유전자 풀에서 선명한 색채의 유전자를 제거하는 경향이 있고, 성적 파트너는 칙칙한 색채를 띠게 하는 유전자를 제거하는 경향이 있다.
암컷이 만드는 난자 한 개에 대해 수컷은 수백만 개의 정자를 만들어 내므로 개체군 내에서 정자의 수는 난자를 훨씬 웃돈다. 따라서 임의의 난자 한 개가 수정될 가능성은 정자보다 훨씬 높다.
난자는 상대적으로 귀중한 자원이기 때문에 암컷은 수컷만큼 성적 매력이 철철 넘치지 않더라도 난자의 수정을 확실히 보증할 수 있다. 수컷 한 마리가 수많은 암컷에게 자식을 낳게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화려한 꼬리가 포식자를 유인하거나 덤불에 걸리거나 해서 단명하더라도 그 수컷이 죽기 전에 이미 막대한 수의 자식의 아비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성적 매력이 없는 칙칙한 색채의 수컷은 암컷만큼 오래 살 수는 있어도 자식을 거의 갖지 못하고 자기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온 세상을 손에 넣을지언정 불멸의 유전자를 잃는다면 수컷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배우자 선택 시의 행동
일반적인 암수 차이의 두 번째는 암컷의 신중함이다. 수컷에 비해 월등히 적은 수의 생식세포를 가진 암컷은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 수컷보다 신중할 수밖에 없다.
양육 투자에 입각하여 보면, 다른 종과의 교미는 암컷의 입장에서는 자식에게 주는 양분의 손실이자 시간적 낭비이다. 근친상간의 경우에는 열성 유전자가 유전되기 때문에 암컷의 입장에서는 손해이다.
암컷은 한정된 수의 난자를 비교적 느린 속도로 만들어 내기 때문에, 여러 수컷과 교미를 많이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별다른 이익이 없다. 한편 수컷은 매일 막대한 수의 정자를 만들 수 있으므로 상대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많은 교미를 해서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암컷이 지나친 교미로 인해 입게 되는 손실은 시간과 에너지의 손실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크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득도 없다
도킨스는 이 장에서 거론한 여러 진화론적 논의(생식 세포의 크기와 수에 따른 진화과정, 정직한 배우자와 성실한 배우자라는 진화적 경향성, 암수의 양육 투자의 차이, 좋은 유전자를 찾기 위한 암수 양쪽의 전략 등)는 인간에게서도 관찰된다고 본다.
다만, 수컷의 화려함만큼은 현대 사회의 인간에게는 적용하기 어려운데, 도킨스는 이에 대해 "실제로 현대 남성은 상대가 애써 찾는 성, 수요의 대상인 성, 신중하게 배우자를 선택하는 성이 되고 만 걸까? 만일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호기심을 드러내며 이 장을 마친다.
<6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