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나게 사는 일

페더러의 호주오픈 우승을 바라보며

by 박학대식


민족의 대명절 설 연휴를 떠들썩하게 한 그 사건

테니스의 황제 Roger Federer의 호주오픈 우승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한 편의 드라마 일지 모르나

내게는 조금 다른 의미의 사건이었다.


Form:사물의 형태나 모양 등을 뜻하는 명사 겸 동사


테니스를 비롯한 여타의 모든 스포츠를 배울 때 제일 처음 하는 것은 "폼"을 배우는 것이다.

3자가 보기에 운동을 하는 일련의 과정과 모든 행위는 일종의 형태나 모양의 모습을 취하는 것이기에

"폼"이란 단어가 그리 어색하지 않아 보이지만 기실 이 표현은 우리나라 사람들만이 즐겨 쓰는

일종의 콩글리쉬 라는 걸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영어권에서 "좋은 스윙을 가졌다, 팔로우 쓰루가 좋다" 등의 표현 대신 우리는 "폼이 좋다"라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폼"이 좋게 운동하는 것(?)은 무엇이며 과연 이것이 중요할까?


모든 스포츠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기준으로 삼는 어떤 로직이 있다.

팔은 어디까지 올려야 하며 공은 몸의 어떤 부위에 놓고 쳐야 하는지,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하며 허리는 구부려야 할지 펴야 할지 등등등

이 모든 로직들이 하나의 바른 집합체를 이룰때, 좋은 폼이 된다.

부단한 연습과 노력들로 이 모든 요구사항(?)들을 하나둘씩 천천히 내 몸안에 또 머릿속에 습득하도록

노력하고 연습하여 그것이 오롯이 내 습관이 되었을 때 나만의 폼이 나온다.

인간의 생김새는 각기 다르므로 폼이란 수천수만 가지 다른 모양과 습관으로 나타나며

이것이 좋은 폼인지 아닌지는 기실 아무도 판단해 줄 수 없다.

하지만 이 여러가지의 "나만의 폼"들이 모두 최고의 폼은 아닐 수 도 있으며 또 누가 봐도 절대적으로 좋고,

옳은(?)폼이 하나쯤은 있다는것,이것이 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강사가 얘기해주는 폼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은 정말로 어렵고 엄청난 인내가 필요하다.

이 쉽지 않은 과정으로 인해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배움을 포기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리라.


페더러의 올해 나이 만36살

보통의 남자들에게 30대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직장 내에서 성공을 위해 가장 열정적으로 일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려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한마디로 인생의 가장 정력적인 기간이다.

하지만 페더러와 같은 프로 운동선수에게는 조금 다르다는 것,

이제는 최고의 위치에서 내려와야만 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고 슬픈 일이다.

아무리 운동으로 다져지고 훈련되었다고는하나 절대적인 신체의 노화를 부정할 수 없다.

머리는 계속 이 싸움을 이어갈 수 있다고, 잘 할수 있다고 외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호주오픈에서 페더러는 20대의 자신보다 상위랭커들을 이기고 올라와 결승에서

최대의 라이벌이었던 나달을 물리쳤다(그것도 5살이나 아래다...).

이 멋있는 사건(?)을 나는 이 네 글자로 정리할 수 있을것 같다.


유능제강(柔能制剛):부드러움이 능히 강함을 제압한다.


페더러가 나달을 이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 절대적인 신체능력의 저하를 딛고 일어날 수 있었던

제1의 힘은 페더러의 좋은 폼이었다. 페더러는 기실 제일 재미없게 테니스를 치는 선수다.

200킬로를 훌쩍 상회하는 강서브도, 그라운드를 완벽히 커버하는 엄청난 풋워크도,

면도칼 같은 발리도, 그 어느 것도 특출 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의 폼은 누가 보더라도 완벽하다.어느구석하나 무리 없고 물 흐르듯 편하다.

부드럽고 자연스러우며 관중에게 힘듦을 노출하지 않는다.

재미없게 테니스를 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부드러운 페더러가 승리한다.

세계 테니스 팬들이 동의하는 가장 좋은 폼을 가진 선수와 세계 테니스 역사에

가장 많은 메이저대회 우승자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좋은 폼은 누구나 가질 수 없고 시간에 흐름에 따라 누구나가

자연스럽게 습득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더더욱 아니다.

무리 없고 자연스러운 폼의 중요성을 인지했기에 페더러는 남들보다 조금 느리지만

정도(正道)를 고집하과정에 집중하여 혹독히 훈련했으리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명한 테니스 스타 피트 샘프라스, 안드레 아가시 역시 어느 하나 특출 나지 않았지만

좋은 폼으로 승리를 가져갔고 그로 인해 운동선수로는 늦은 나이까지 프로선수생활을 영위했다는 사실은

좋은 폼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방증한다.


우리는 결과를 중요시하는 세상에 살아간다.

과정을 중시하고 인정해 주는 그런 여유가 없는 세상이다.

투자자에게 빨리 결과물을 보여줘야 하고 오직 좋은 결과만을 위해 과정 따위 생략하고

정도를 무시하며 일을 진행한다.

일의 진행을 빠르게 할 수 있는 다른 길이 보이면 주저없이 그 길을 택한다.

옳은 길 ,바른 길을 고집하는 일은 때론 엄청난 무시와 갈굼(?)을 의연히 대처해야 하는 고된 일이며 결정이다.

이번 호주오픈은 단지 페더러의 드라마틱한 승리만을 환호하는 것이 아닌 좋은 폼에 대한 고집과

그것을 얻기위한 노력과 시간을 동시에 바라봐야 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얻지 못하지만

좋은 폼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을 아까워하지 않으려는 결정을 존경하며

이를 따라 해보려 하는 결심이 이끄는 우리네의 삶.그것이 폼나는 것이 아닐까.


남들보다 조금 섹시하게 쿨한척 사는 가짜 폼 말고 진짜 폼 나는 나의 삶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