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부스트 지브라 구매(대행)기

순수한 매니아 분들에게 존경을 보내며

by 박학대식

무엇을 사기 위해, 먹기 위해 또는 하기 위해 얼마 동안 기다릴 수 있는가?

살면서 위의 목적을 가지고 가장 오래 기다린 경험을 얼마 전 본의 아니게 하게 되었다.

평소 그다지 참을성이 많지 않은 성격의 본인이라 기다리는 것에 매우 예민하고

기실 기다림이라는 큰 싸움(?)을 결정할 만큼의 임팩트를 주는 그 어떤 재화도 발견하지 못했기에

지난 40여 년의 세월 동안 추위에 떨며, 내지는 더위에 땀 흘리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을

해본 적도 없었고 앞으로도 할 일은 없는 듯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얼마 전, 평소 많은 도움을 많이 받고 지낸 후배의 간곡한 부탁에 무려 3시간의 기다림 끝에

아디다스에서 재발매한 이지 부스트 지브라를 사고 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마니아라는 사람들, 흔히 자신이 어떤 어떤 마니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대부분

엄청난 인내심을 소유한 사람들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있었다.

본인이 일하는 코워킹 스페이스 바로 옆이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플래그쉽 스토어이다

이곳뿐만 아니라 압구정동 주위에는 여러 편집매장들이 산재해 있어

한정판 상품의 판매 행사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지난 1년 여간 수차례 사람들이 어떠한 상품의 구매를 위해 건물을 둘러쌓아 대기줄을 만들고,

심지어 전날부터 노숙을 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목격했는데, 사실 내게는 참으로 한심한 모습이었다.

그네들에게 정말 미안했지만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미안한 느낌이다 라는 게 더 솔직하겠다)

물론 티비에서 언듯 접한 한정품의 엄청난 부가가치는 1박 2일의 노숙을 값이 싼

투자처럼 보이게 만들기는 했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줄을 지어 서있는 모습은 참 괴이했다 말할 수 있겠다.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자 , 재화를 사고자 줄을 서는 노고를 작정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기회의 한정 때문이 아닐까.

내가 원하는 상품이 유한하고 내가 먹고자 하는 음식 역시 무한대로 조리되는 것이 아니기에

(음식 역시 정해진 장소에 따라. 재료의 수급에 따라 또는 레스토랑의 영업시간에 의해 한정적이다)

우리는 기다린다 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지 싶다.

그리고 주어진 그 기회의 값어치가 내 안의 다른 무엇보다 높게 산정되었을 때

만사를 제쳐두고 그 기회를 잡고자 소중한 시간을 들여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신발 한 켤레를 사기 위해 기다린 3시간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솔직히 내것이 아닌 것을 구매하기 위해 긴줄을 서있는 내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앞에는 대략 150여 명의 대기자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다리고 있었고

이들의 구매에 걸리는 시간은 대략 1시간 정도일 것이라 생각했기에 시작한 일이었다.

구매모델도 한 가지, 한 사람이 한족씩만 구매할 수 있는 까다로운 구매조건이 감사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는 같은자리에 머물렀고 , 내 뒤로는 앞과 비슷한 대기줄이 이어졌다.

사실 이날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났던 것 같다.

이 추위에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추위에 익숙해지게 되고

그렇게 한시간 정도를 보내고나니 슬슬 사람들의 얼굴과 그들이 신은 신발들을 보게 되었다.

내가 신발에 대해 아무리 문외한이라도, 범상치 않은 신발들이 여럿 보였다.

(티비에서 보았던 그 비싼 한정판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그들의 얼굴이 빛나보였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신발을 신은 사람들은 전혀 짜증 내는 얼굴이 아니었다.

마니아 들이었다. 그들이 좋아하는 무엇을 위해 희생하는 지금의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그런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이 기다림의 시간은 인내심의 발현이 아닌 더 큰 행복을 위한 작은 투자인 셈이었다.

(솔직히 그날 제일 놀랬던 것은 식사시간이 되자 심부름 서비스로 햄버거를 받아먹었던

무리들의 기발한 아이디어였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내게 구매를 부탁한 동생 역시 마찬가지였다.마니아 였다.

채팅 중 우연히 화면에 비친 나의 운동화를 보고는 뉴발란스 모델명을 들이밀던 날,

이 친구 마니아구나 생각했고, 그렇기에 이번 구매가 어떤 경제적 이득을 위해 부탁하는 것이 아님을,

그 친국의 순수한 스니커에 대한 사랑에 도움을 준다 믿으며 기꺼이(?) 상품 구매에 도움을 주겠다

맘먹었던 것이다.


흔히들 "무엇을 좋아하세요?" 라고 묻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 무엇들에 이들 마니아들만큼 열정적이지 않다

와인을 좋아하지만, 날짜를 세어 보졸레 누보의 출시를 기다리지 않고

테니스와 농구관람을 좋아하지만 직접 경기장까지 찾아가는 수고는 하지 않는다.

왜 나는 아무것에도 저들 마니아 같은 열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에 물어보는 시간이었다.

처음부터 내게는 주어지지 않은 것인지, 시간에 쓸려 살다 보니 잃어버리게 된 것인지.

아무 보상 없이 무엇을 그저 좋아할 순수함이 내게는 다 사라져 버린 것인지 의심하게 되는 그런 경험을 마주한

2018년 11월09일

시간에 하루를 살다보니 이렇게 된 거라 스스로를 위안하는 멋없는 내 모습이 더 한심스러웠던

2018년 11월09일 이었다




*P.S:마지막으로 그날 그곳에서 저와 같이 줄 서 계셨던 마니아분들(아닌 분들도 계시겠지요)

여러분들의 순수한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삐뚤어진 시선으로, 제 맘대로 재단하고 바라보아 죄송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부탁으로 그 자리에 있었을 저 같은 분들 역시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각자의 이유는 다르지만 어찌됐던 품절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지는 않았으니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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