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장거리 달리기 하위 10%의 10킬로 도전기

by 박학대식

참 못했다.

대부분의 운동들을 어지간히 했는데 정말 장거리 달리기 만큼은 안되더라.


학창 시절 믿거나 말거나 13초대 비공식 100미터 기록을 가지고 있는 본인이

(스스로를 운동 좀 한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가지고 있을 법한)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운동이 두 가지 있는데 턱걸이와 장거리 달리기가 그것이다.

원래는 윗몸일으키기도 푸시업도 잘 못했다. 근데 그건 노력을 하니 조금씩 좋아지더라.

하루에 하나씩 숫자를 늘려 연습하니 6개월이 지나자 눈에 띄게 가속이 붙는 것을 경험했다.

(물론, 정확한 자세로의 푸쉬업은 수준이 다른것임을 뒤늦게 알긴했지만)

지난 5월 갑자기 올해안에 마라톤을 뛰겠다는 결심을 했다. 어떠한 이유로, 무엇을 보고 그리 결심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아무튼 10킬로 완주를 결심했다.


이미 윗몸일으키기와 푸시업에서 기 경험해 본 바,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5킬로에서 시작, 한 달에 1킬로씩 늘려 뛰기(때는 5월이었다. 깔맞춤을 좋아하는지라)

아직도 첫 번째 러닝이 기억난다. 토할 것 같은 호흡과 터져버릴 듯 뛰는 심장,

그리고 끊어질 것 같던 내 허벅지와 아킬레스 건.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마라톤과의 만남은 그렇게 온몸에 쓰라린 고통을 안겼다.

신체의 고통이야 참을만했다. 어차피 그 정도의 고통은 각오를 하고 시작한 일이기에.

하지 더 힘들었던 것은 역시나 정신적인 부분이었다.

이따위로 달리는데 과연 10킬로가 가능이나 한 것인지 덜컥 겁이 났다.

(대략 40분의 기록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바로 다음날 새벽, 밤새 앓은 근육통 덕분에 아침 일찍 잠이 깨어 몽롱한 정신 탓인지

아님 평소의 내게 보지 못했던 불굴의 의지 덕분인지 다시 주섬 주섬 옷을 입고 뛰기 시작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참 놀랄 일이다.(불굴의 의지라는 것은 내게 지난 40여 년 동안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5월이 지나가고 6월에는 6킬로, 7월에는 7킬로를 달렸다.


다행히 주위에 달리기를 즐기는 친구가 아니 정확히는 선배님들이 몇 있었다.

그들의 기록을 SNS를 통해보니(내게 큰 좌절을 주는 기록이었지만) 창피함을 무릅쓰고

도움을 청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아니 도움을 청했다기 보단 그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말이 듣고 싶어 뜬금없이 물었다.

사람은 도움을 구하는 것보다 동의를 구하려 타인에게 묻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이미 익숙하다.

그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내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줬고(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울러 *몇 가지의 마라톤 관련 책과 동영상 링크를 보내주었는데

가장 마음에 끌렸던 것은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그리 너그러운 편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싫다. 아무도 신경 안 쓰겠지만)

그러니 일본 소설 역시 몇 권 읽은 게 전부다. 하지만 이상하게 하루키의 글은 끌린다.

왜 그러는지 정말로 모르겠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에 대한 약간의 동경심 같은 게 생긴 듯한데,

그런 하루키가 매일매일 달린다는 사실, 또 그것에 관한 에세이가 출판되었다는 것에

더더욱 흥분했는지 모르겠다.


매력적으로 느끼는 작가가 매일 달리기를 그것도 장거리 마라톤을 한다는 사실

심지어 마라톤에 관련한 칼럼을 하나 쓰기 위에 직접 그리스에 날아가,

마라톤 전투의 승전보를 전했을 아테네의 전령이 진력으로 달린 그 길을 달렸다는 내용들은

내게 달리기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다고 얘기할 수 있겠다.

(책에 나오는 내용이지만 실제 전령이 달린 거리와 마라톤 풀코스의 거리는 다르다)

혹, 이 글을 읽고 달리기를 결심한다면 이 책은 꼭 읽어보길 바란다!


응당 7킬로를 달렸어야 할 7월이 되었다. 가만히 서있어도 온몸에 땀이 흥건했던 지난여름 어느 날

마라톤 선배님 사진작가 김울프님의 문자 메시지를 따라 몇 번의 클릭을 하니,

나도 모르는 새(라고 말하고 싶다) jtbc 마라톤 10킬로를 덜컥 신청하게 되었다.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 이른다.

사실 이때에는 하루를 7킬로를 달리면 다음날에는 꼭 5킬로에서 퍼지던 때

심리적으로 가장 힘들었다.

몸이 아픈 것 (종아리가 불편하다던가 무릎이 아프던가 하는 정도)이 퍼지는 이유가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단지 너무 더운 날씨와 앙상한 나의 다리 근육만큼이나 약했던 의지 때문일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그렇다. 40년 만에 온 불굴의 의지는 어느새 나에게서 떠난 것이다)

또다시, 10킬로 완주에 덜컥 겁이 났다. 나름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찾아온 두려움은

처음의 몇 배의 충격이었고, 선배님들의 말대로 진짜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닐 것 같은

두려움에 혹시나 포기를 할까 스스로를 얽매고자 커다란(?) 결정을 한 것 같다.

나 스스로에게 "뒤돌아 건너갈 다리는 이미 불태웠다고" 주지 시킨 것 같다.

(써놓고 보니 꼴랑 10킬로 달리기에 너무 비장한 표현인 것 같다... 부끄러워...)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걱정이나 염려는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못 미친다고 한다.

어찌 보면 다가올 결과를 모른 채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과정이 훨씬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속이 편하지 싶다.(물론 그것을 알기까지 오래 걸린다. 이 글을 쓰는 본인은 아직도 그리 생각하지 못한다)

최선을 다 해 준비했다고는 말 못 하겠다.

최선을 다 해 걱정하고 고민했다고는 말할 수 있겠지만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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