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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학대식 Sep 09. 2019

눈에 띄는 뉴스

NO-JAPAN 운동에 동참하며

[중앙일보]라는 객관성이 없는 언론이라도 이런 뉴스에는 늘 눈이 간다. 재벌과 기득권의 앞잡이가 되어 진실을 덮고, 거짓된 뉴스로 진실의 탐구에 여력이 없는 현대인들을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조정하는 언론매체들, 특히나 조, 중, 동 의 세 가지 채널과 한겨레의 뉴스들을 그다지 믿지 않는 것은 지극이 개인적 취향임을 인정하지만 오늘 아침의 이 뉴스는 현재 대한민국의 국민 모두의 공공의 적이 된 한 나라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행보를 보이기에 더더욱 눈에 띄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지난 주말에는 일본의 한 극우 정치인이 독도를 두고 '전쟁을 해서라도 다시 되찾아야 할 그네들의 영토'라는 취지의 발언이 보도되는 바람에 약간은 사그라져 들어가던 NO-JAPAN 운동에 생기(?)를 넣어준 형국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와 그네들의 역사적인 암울했던 얽힘, 그 악연은 이미 한국인들 모두가 알고 있다. 문제는 우리의 상대방은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에 있겠다. 작금의 현상 역시 그런 식으로 바라보는 것이 옳다. 감정적으로 무조건 밉고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구조가 나타나게 된 이유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이다.


한쪽은 사건을 제대로 교육받았고 다른 한쪽은 왜곡된 사실을 기반으로 교육을 받아온 것에서 오는 구조적인 갈등으로 말이다. 게다가 그들은 숨기고 싶은 역사이기에 더더욱 대충 넘어갔으리라 짐작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겠다. 한쪽은 그 사건으로 가슴 깊숙이 한이 맺히고 다른 한쪽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도, 또 설사 교육을 받았을지언정 대수롭지 않게 여김이 당연하도록 만든 일본이라는 나라의 교육과 역사의식에 대한 한국인들의 저주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20여 년 전 본인이 독일에서 공부할 때 같은 학교를 다니던 일본인 친구들과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생긴) 장동건 형님이 주연한 [ 2009 로스트 메모리즈]라는 영화를 한국인 친구 집에서 떼로 본 기억이 있다.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한국에서는 장동건 형님이 일본에서는 나카무라 토오루라는 배우가 나름 열연을 펼친 당시의 명작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최고의 캐스팅은 천호진 아저씨였다.) 영화의 내용은 시간이 지나 기억이 불분명하지만 장동건 형님의 일어 때문에 일본 친구들이 많이 웃었던 기억만은 또렷하다.


친구들과 웃고 맥주를 마시다가 이 영화의 가설(세계 2차 대전에서 일본이 승전국이 되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없는 상황)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본인이 그동안 궁금했던 위안부 문제에 대해 물었다. (어찌 보면 유학생활의 기억에 가장 기분이 나빴던 사건으로 기억되는 이날의 사건은 본인이 지금까지도 가지고 있는 일본에 대한 강한 거부감의 원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생각보다 힘들게 물었던 본인의 물음에 이 일본 친구들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그런 사실을(위안부의 존재에 대해) 모른다]라고 답을 하길래 기분이 너무 상해 이 사건에 대해 매우 직설적으로(본인의 독일어가 돌려서 얘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에) 사실을 토해냈고 이런 무거운 사실을 듣고도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듯 보였던 친구들에게 결국은 꽤나 심하게 []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실 생각해보면 그네들의 잘못만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덕분에 이후의 독일생활 동안 대부분의 일본인들과는 서먹하게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다시 시간을 돌이켜도 같은 행동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들 대부분이 적어도 하나 이상은 가입되어 있을 인터넷 카페에는 하루에도 수 십 개씩 NO-JAPAN 운동에 관련한 글이 올라온다. 일일이 읽어보고 대응하는 것도 지칠만 할 정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댓글러들의 전투는 여전하다. 보통의 인터넷 댓글 전쟁들과는 달리 생각보다 논리 정연한 공격과 대응이 주를 이루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겠다. 댓글을 읽다 보면 "아 우리나라에 숨은 애국자가 이리도 많았던가" 생각이 되는 경우도 있고, 단순히 현 정권을 옹호하거나 반대로 까내려는 양극의 반응, 그리고 나름의 이유를 바탕으로 현재의 분위기에 동참하지 않는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하려는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만날 수 있어 여러 가지 인풋을 한 번에 경제적으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할 수도 있겠다.


한 개인의 선택에 타인이 그 가치를 판단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일부 한국인들이 여전히 일본으로 여행을 가고 일본 자동차를 구매하는 것에 우리 누구도 그들의 인격을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본인은 그런 결정을 내린 사람들을 본인을 비롯한 불매운동을 실천하는 사람들과 상식의 선이 다르다 느낀다. 그들의 이유가 얼마나 합리적이고 논리 정연하더라도 나와는 결이 다른 사람이나 생각한다. 그리고 이 정도까지가 각자에게 주어진 판단의 범위가 아닐까 싶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보다 더 깊은 판단은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았다.


NO-JAPAN운동과 같은 시민 운동에 한국인으로 동참하는 것은 멋있는 일이다. 공동의 가치를 위해 작지만 소중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 별 것 아닌 결정이지만 나라를 위해 기꺼이 차선책을 선택하는 이 자발적인 의사결정은 분명 빛나는 결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라 확신한다. 단지 이러한 행동으로 우리 사회가 이분화되는 것은 지양해야겠다. 행동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두 분류로 나누어 서로를 상종하지 말아야 할 누군가로 몰아가는 일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번 불매운동을 말미암아 타인을 그저 있는 그 모습으로 인정하는 여유를 배우게 될지 모르겠다. 우리들 내면에 여전히 살아있는 인간에의 사랑을 다시 느끼는 소중한 경험의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번 행동으로 단순한 일본으로의 경제보복을 넘어 더 크고 선한 결과를 얻어내고자 한다면 일본인 전부를 혐오하는 일은 분명히 없어야겠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혐오하고 그것이 집단안에서 상식이 되면 스스로를 우등하다 느끼는 것이 인간의 본능임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보고 배웠다. 우리가 모든 인간을 평등하고 사랑할 만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면 인류는 세 번째 세계대전을 치를 각오를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의 뉴스는 과거를 인정하고 과거의 잘못을 지속적으로 사죄하는 후대가 있는 나라 독일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독일의 끊임없는 사죄를 기자는 "멈추지 않는 사과"라 표현했다. 선조들의 잘못을 후세가 인정하는 것. "내가 저지르지 않은 일에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에 공감한다면, 실제 독일 국민들의 정서와 진정성은 차처하더라도 이런 정치적 행보에 우리는 박수를 보내야 한다. 늘 귀 기울어야 한다. 그리고 끝없이 생각해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왜 일본은 그들과는 다른지,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지, 왜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않는지 말이다. 물론 절대 그 답을 얻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이라 한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패배한 자들의 시간은 절대로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는 엄연히 패자의 처지였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로도 우리는 승전국이 아니었다. 그러니 우리의 역사는 자연히 기록되지도 당연스레 후대에 교육되지도 않는다. 당사자가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르는 수고가 없이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목이 쉬어라 소리 지르는] 고귀한 국민행동의 연장선상에 작금의 NO_JAPAN 운동이 위치하고 있다 확신한다. 이러한 국민들의 노력과 지고한 의식으로 하나로 뭉쳐진 대한민국을 기대하며 가슴 깊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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