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리는 재판: 12 Angry Men

다시 볼 영화 만 10

by 앤드류

12 *Angry Men (1957)


감독: 시드니 루멧 (Sidney Lumet)

각본: 레저널드 로즈 (Reginald Rose)

출연: 헨리 폰다 (Henry Fonda), 리 제이 콥 (Lee J. Cobb), 마틴 발삼 (Martin Balsam)



-다른 사람의 죄를 판단하는 일


이 영화는 지금까지 제작된 재판 영화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미국 영화 연구소 (American Film Institute) 선정 100대 영화에도 수록되어 있다. 영화의 배경은 배심원 회의실에서 12명 배심원들의 열띤 토론이 내용의 전부다. 그러나 96분의 상영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논리적이고 때로는 격정적인 토론과 대화만으로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영화는 드물다.


자기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푸에르토리코 (Puerto Rico) 출신 소년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다. 경찰이 제출한 증거와 증언이 워낙 확고해 소년의 유죄는 거의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소년은 가난한 우범 지역에 거주하면 어릴 적부터 소년원을 들락거렸고, 아버지와 사이도 좋지 않아 빠른 시간에 유죄가 결정될 것으로 보였다.


미국 법원은 원칙적으로 12명으로 구성된 배심원 (jury) 들이 유 무죄를 결정하는 배심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배심원들이 유죄를 결정되면 형량은 판사가 내린다. 배심원들은 일반 시민 중에서 임의로 선정된다. 두 진영 (피고인과 기소인)의 논의를 거쳐 12명 배심원과 예비 후보를 결정한다.


배심원들은 자신들이 참여하는 재판 (형사, 민사) 내용에 대한 전문가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이 제도를 계속 유지하는 이유는 무죄추정 원칙 (presumption of innocence) 내에서 기소인과 피고인이 기소된 사람의 유무죄를 증명할 책임이 있고 피고인과 기소인을 대리하는 법률 전문가들이 법률 지식이 없는 일반인을 증거와 논리로 설득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유무죄 판단 과정이 공정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유무죄는 배심원 전원 합의하여 만장일치로 결정되어야 한다. 한 명이라도 반대가 있어서는 안 된다. 끝까지 합의가 되지 않으면 배심원 불일치 (hung jury)가 되고 이 경우 배심원을 다시 선정하여 재판을 진행한다.


-미국 배심원 제도의 기원과 민주주의


미국 배심원 제도의 뿌리는 1215년 국왕의 권력을 법으로 제한하고 정당한 법적 절차와 개인의 자유를 명시함으로써 현대 민주주의와 헌법주의의 초석이 된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에서 시작된 관습법이다. "자유민은 동등한 신분을 가진 자들의 적법한 판결에 의해서만 처벌받는다 (No free man shall be seized or imprisoned... except by the lawful judgment of his equals or by the law of the land.)."는 원칙은 이후 미국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권력의 압제에 저항하는 시민의 보호막과 무기가 되었다.


이러한 유산은 미국 수정헌법 제6조(형사)와 제7조(민사)에 반영되어, 시민은 배심 재판을 받을 수 있는 핵심적 권리로 정착되었다. 배심원 제도는 법률 전문가인 판사에게 사법 독점권을 부여하지 않고, 일반 시민의 상식과 도덕적 가치를 재판 과정에 직접 투영하려는 민주적 견제 장치다.


-배심제 논란의 정점: 오 제이 심슨 (O. J. Simpson) 사건


그러나 하늘 아래 완벽한 제도는 없다. 배심원 제도의 한계와 정체성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 1995년 'O.J. 심슨 재판'이다. 유명한 풋볼 선수이며 흑인인 O.J. 심슨의 부인이 살해된다. 그리고 심슨이 용의자로 체포된다.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확신한 검사가 유죄를 확신하고 몰아붙였지만, O.J. 심슨이 고용한 변호인들이 이 증거들의 신뢰성을 하나씩 깨트렸다.


결국 흑인 비중이 높았던 배심원단은 '합리적 의심'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 평결을 내렸다. 그 후 민사 재판에서는 O.J. 심슨의 민사적 책임(wrongful death liability)이 인정되어 거액의 배상금이 부과되었지만, 형사재판에서 이미 무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일사부재리(double jeopardy)의 원칙에 따라 동일 범죄로 다시 형사 기소될 수 없었고, 따라서 형사적 처벌은 받지 않았다.


-결국 사람이 문제다


이 결정은 배심원의 정서와 사회적 맥락이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더불어 비전문가에 의한 감정적 판결이라는 비판이 광범위하게 제기되었으나, 배심원들은 합리적 의심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법적 논리를 일관되게 제시했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국가 권력의 부당한 수사에 대한 시민의 견제로 해석하며 '배심원 무효화'의 사례로 평가하는 반면, 다른 학자들은 검찰의 입증 실패와 증거 오염 문제로 인한 정당한 법적 판단이었다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O.J. 심슨 사건은 사법 정의가 단순히 범인을 처벌하는 것을 넘어, 그 과정이 시민의 눈높이에서 얼마나 공정하게 증명되어야 하는지를 일깨워준 역사적 기록으로 남았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심판할 수 있는가: 톨스토이 부활


레프 톨스토이의 마지막 장편 소설 『부활』은 인간이 만든 법적·제도적 심판이 지닌 근본적인 모순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주인공 귀족 네흘류도프가 배심원석에서 과거 자신이 상처 입혔던 여인 카튜샤를 피고인으로 마주하며 시작되는 이 여정은, "과연 죄인인 인간이 누구를 단죄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심각한 질문을 던진다. 톨스토이는 사회 구조적 악이 만든 결과물을 오직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무책임한 사회를 비판하며, 심판하는 자들 역시 피고인을 타락하게 만든 공범임을 역설한다.


작품의 결말에서 네흘류도프가 깨달음을 얻는 핵심 근거는 성경의 가르침에 맞닿아 있다. 그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한복음 8:7)"는 말씀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태복음 7:3)"라는 구절을 통해 인간 심판의 부당성을 확신한다.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며 각자의 내면에 허물을 지닌 존재이기에, 인간이 인간을 벌하는 행위는 자신의 잘못은 외면한 채 타인의 허물만을 처벌하려는 오만이자 기만이라는 논리다.


인간의 이런 약점과 허물, 사람이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모순과 어려움을 염두에 두면 이 영화가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영화에서 배심원들은 서로 이름도 모른 채 번호로만 통한다. 12명의 배심원 중 11명은 유죄를 확신하고 그중 한 명 배심원 8번 (헨리 폰다)만이 이 사건에 대한 합리적 의심 (reasonable doubt)를 가지고 다른 배심원들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소년의 출신 등의 성장 배경과 그간 소년이 저지른 작은 사건 등을 이유로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다.


Juror #10: Six to six... I'm telling you, some of you people in here must be out of your minds. A kid like that... 10번 배심원: 6대 6이라...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 정신이 나간 사람들이 있네요. 이런 애는 말이죠...
Juror #9: I don't think the kind of boy he is has anything to do with it. The facts are supposed to determine the case. 9번 배심원: 피고가 어떤 아이인지는 우리 결정과 상관이 없어요. 사실만 가지고 사건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지요.
Juror #10: Don't give me that. I'm sick and tired of facts! You can twist 'em anyway you like, you know what I mean? 10번 배심원: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사실을 가지고 따지는 일 이제 지긋지긋하오. 사실이야 얼마든지 비틀고 왜곡할 수 있는 것 아니요?
Juror #9: That's exactly the point this gentleman has been making. [indicates Juror #8] 9번 배심원: 바로 그 점을 이 양반이 계속 말하지 않았나요? [8번 배심원을 가리키며]


8번 배심원은 계속 설득해 12명 중 9명에게서 소년이 유죄라고 결정하기에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확신을 이끌어낸다.


Juror #8: It's always difficult to keep personal prejudice out of a thing like this. And wherever you run into it, prejudice always obscures the truth. I don't really know what the truth is. I don't suppose anybody will ever really know. Nine of us now seem to feel that the defendant is innocent, but we're just gambling on probabilities - we may be wrong. We may be trying to let a guilty man go free, I don't know. Nobody really can. But we have a reasonable doubt, and that's something that's very valuable in our system. No jury can declare a man guilty unless it's sure. 8번 배심원: 이런 사건에 개인의 생각이 전혀 개입되지 않게 하는 일은 항상 어렵지요. 어느 곳에서나 편견 때문에 진실이 흐려지게 돼요. 진실이 뭔지 나도 모릅니다. 누구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이제 우리 중에 아홉은 피고가 무죄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확률 싸움을 벌이고 있어요. 우리가 틀릴 수도 있지요. 죄 있는 사람을 석방할 수도 있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누구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고 있고, 우리 사법 체계에서 정말 중요한 점이지요. 누구도 확신이 없는 한 어떤 사람을 죄인이라고 선언할 수는 없지요.


논쟁은 계속된다. 가장 중요한 증인으로 나왔던 이웃 여성의 시력에 대한 논쟁이 전개된다.


Juror #8: I only know the woman's eyesight is in question now! 배심원 8번: 그 여성의 시력이 문제라는 점은 알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Juror #11: She had to be able to identify a person sixty feet away, at night, without glasses. 배심원 11번: 60피트 (18미터) 떨어진 거리에 있는 사람을 밤중에 안경도 착용하지 않고 알아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Juror #2: You can't send someone off to die on evidence like that! 배심원 2번: 이런 정도의 증거를 가지고 사람을 사형장에 보내서는 안 됩니다.
Juror #3: Oh, don't give me that. 배심원 3번: 세상에. 그런 소리 하지 말아요.
Juror #8: Don't you think the woman might have made a mistake? 배심원 8번: 그 여자가 잘 못 보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Juror #3: [stubbornly] No! 배심원 3번: [고집스럽게] 아니요!
Juror #8: It's not possible? 배심원 8번: 가능성은 있지 않나요?
Juror #3: No, it's not possible! 배심원 3번: 가능성 없소.
Juror #8: [gets up and speaks to Juror #12] Is it possible?
배심원 8번: [일어나서 배심원 12번에게 말한다] 가능성이 있나요?
Juror #12: [nods] Not guilty. 배심원 12번 [고개를 끄덕이며] 무죄요.
Juror #8: [goes to #10] You think he's guilty? 배심원 8번: [10번 에게] 유죄라고 생각하나요?
[#10 shakes his head "no"] [10번은 아니라고 고개를 흔든다]
Juror #3: I think he's guilty! 배심원 3번: 유죄라고 생각하오.
Juror #8: [ignores #3; goes to #4] How about you? 배심원 8번: [3번을 무시하고 4번에게 향한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Juror #4: [looks at #8, pauses, then shakes head] No... I'm convinced. Not guilty. 배심원 4번: [8번을 바라보고, 잠시 생각에 잠긴 후에 고개를 흔든다] 아니요. 이제 확신이 드네요. 무죄요.
Juror #3: [shocked, having just lost all support] What's the matter with ya? 배심원 3번: [자신의 생각과 동조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들자 충격에 빠진다] 도대체 뭐가 문제요?
Juror #4: I have a reasonable doubt now. 배심원 4번: 이제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했소.
Juror #9: Eleven to one! 배심원 9번: 11대 1이네!


유죄를 확신하는 마지막 한 사람, 배심원 3번도 설득할 수 있을까? 오래전에 제작된 영화지만 빛나는 연기와 탄탄한 연출이 심각한 주제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멋진 법정 영화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영화처럼 편견과 차별 없이 심판하고 죄 없는 사람 한 사람이라도 끝까지 구해낼 수 있는 '공정한' 정의를 정착하기 위한 사법부의 각성과 노력을 기대한다. 마태복음의 다음 구절이 생각난다.


"What do you think? If any man has a hundred sheep, and one of them has gone astray, does he not leave the ninety-nine on the mountains and go and search for the one that is straying? If it turns out that he finds it, truly I say to you, he rejoices over it more than over the ninety-nine which have not gone astray. "So it is not the will of your Father who is in heaven that one of these little ones perish. (Matthew 18:12-14)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마태복음 18장 12-14)


*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왜 영화 제목에 angry라는 말이 들어갔는지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재판 당일은 무척 더웠고, 회의실에는 낡은 선풍기 한 대뿐이다. 모두 덥고 짜증 난 상태다.


둘째, 제목의 'Angry'는 배심원들이 가진 개인적인 결핍과 편견을 상징한다. 이 결핍과 편견이 피고인의 목숨이 걸린 재판에 큰 영향을 준다.


셋째 그러나 그중에는 8번 배심원처럼 정의를 향한 '의로운 분노' (Righteous Indignation)를 가진 사람이 있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을 가볍게 여기는 다른 배심원들의 무관심과 냉소주의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있음이 영화 곳곳에 드러난다.


https://www.youtube.com/watch?v=46kWbFAMHoc&t=1s

Kids these days


https://www.youtube.com/watch?v=EqDd06GW76o&t=1s

Who changed their vote?


https://www.youtube.com/watch?v=RGF6Qyvz2no&t=3s

Nose ma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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