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구하는 한 생명: 쉰들러 리스트

다시 볼 영화만 11

by 앤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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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들러 리스트 (Schindler's List, 1993)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출연: 리암 니슨(Liam Neeson), 레이프 파인즈(Ralph Fiennes), 벤 킹슬리(Ben Kingsley)


*Face the music (어려워도 해야 하는 일)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는 흥행 성공 보장 천재 감독이자 대중성이 강한 히트 영화(E. T., 죠스, 인디아나 존스 등)를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가 1993년에 감독한 영화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 나치 정권이 자행한 끔찍한 범죄인 유대인 학살(600만 명 추산)이라는 가슴 아픈 주제를 다루고 있다. 자신도 유대인인 스필버그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드는 일에 엄청난 부담을 느꼈으며, 다른 감독 (영화 '피아니스트'를 만든 로만 폴스키 등)에게 영화를 대신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고심 끝에 결국 스필버그 자신이 감독하기로 결정했지만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너무나 정신적으로 어려웠음을 밝히고 있다. 스필버그는 이 영화로 1994년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는데 수상 소감에서 수많은 유태인이 학살당했던 현장인 폴란드 현지에서의 촬영이 너무 힘들었음을 밝히고 있다.


I want to thank my wife, who's here with me tonight, for rescuing me 92 days in a row in Krakow, Poland, last winter when things got just too unbearable.
오늘 밤 이 자리에 함께한 제 아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난겨울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상황이 정말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을 때, 92일 내내 저를 구해준 사람입니다.


90일이 넘는 촬영 기간 동안 아내와 자녀 온 가족이 함께 머물면서 스필버그를 도왔다고 한다. 힘든 과정을 가족의 도움으로 모두 이겨내고 나온 작품이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명작이 되었다.


이 영화는 토마스 케닐리(Thomas Keneally)가 쓴 《쉰들러의 방주(Schindler’s Ark)》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도 실제 쉰들러 리스트에 이름이 실려 살아난 레오폴드 페퍼버그(Leopold Pfefferberg)의 증언을 토대로 한다.


오스카 쉰들러는 폴란드에서 사업하는 독일인이다. 폴란드 크라쿠프(Kraków) 유대인 수용소장 아몬 고트(레이프 파인즈 역, Ralph Fiennes)에게 뇌물을 주고 유대인 수용자들을 거의 무임금으로 고용해 많은 돈을 번다. 하지만 나치 독일의 조직적이고 잔인한 유대인들의 학살을 경험한 후에는 마음을 바꾸어 자기 재산을 모두 쓰면서 1,200명의 유대인을 살려낸다. ‘쉰들러 리스트’는 빼내 달라고 뇌물과 함께 수용소장에게 준 명단이다.


쉰들러의 묘소는 현재 이스라엘에 있다. 영화 뒤에 실제로 쉰들러 때문에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참배하는 장면이 나온다.


“Whoever saves a Life Saves the World entire.”
“사람을 구한 사람은 온 세상을 구한 바와 진배없다.”


이 말은 영화의 거의 마지막에 나온다. 쉰들러가 유대인들을 두고 몸을 피할 때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그에게 선물한 작은 반지에 새겨 있는 말이다. 출처는 유대인 정신의 뿌리인 탈무드다. 쉰들러가 구한 1,200명의 후손은 수천 명이 되어 온 세상에 흩어져 있다.


사람은 왜 바뀌지 않을까?


수용소장 아몬 고트는 철저한 나치 추종자이며, 힘이 있으면 그 힘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 사이코패스(psychopath)다. 유능하지만 잔인하며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 못 하는 사람이 힘을 가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쉰들러와 고트는 상당히 가까운 사이가 되어 함께 술을 마시며 힘의 속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Goeth: We have the f***ing power to kill, that’s why they fear us.
아몬 고트(수용소장): 우리가 누구든지 죽여 버릴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 그들이 우리를 두려워하지.
Schindler: They fear us because we have the power to kill arbitrarily. A man commits a crime, he should know better. We have him killed and we feel pretty good about it. Or we kill him ourselves and we feel even better. That’s not power, though, that’s justice. That’s different than power. Power is when we have every justification to kill - and we don’t.
쉰들러: 맞아 사람들이 우리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우리가 아무나 마음대로 죽여 버릴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어. 그 사람도 잘 알고 있고. 그 자를 사형에 처하고 기분이 풀릴 수도 있겠지. 아니면 우리 손으로 그 사람을 죽여 버리고 기분이 더 좋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건 힘이 아니야. 정의라고 할 수는 있겠지. 힘과는 다른 이야기야. 힘은 우리가 어떤 이를 죽일 수 있는 모든 정당한 이유가 있어도 그렇게 하지 않을 때 나오는 거야.
Goeth: You think that’s power.
아몬 괴트: 그게 힘이라고?
Schindler: That’s what the emperors had. A man stole something, he’s brought in before the emperor, he throws himself down on the ground, he begs for mercy, he knows he’s going to die. And the emperor pardons him. This worthless man, he lets him go.
쉰들러: 황제가 하는 일이 그런 거라고. 어떤 사람이 도둑질하다 걸려서 황제 앞에 잡혀 왔어. 범인은 죽을 목숨인 것을 알고 있었지. 그런데 황제는 그를 용서한 거야. 보잘것없는 사람이지만 그냥 풀어준 것이지.
Goeth: I think you are drunk.
아몬 고트: 너 취한 것 같은데.
Schindler: That’s power, Amon. That is power. [gestures toward Goeth as a merciful emperor] Amon, the Good.
쉰들러: 그게 힘이라고 아몬. 그게 힘이야. (아몬에게 손짓하며) 아몬, 선한 사람.
Goeth: [He smiles and laughs] I pardon you.
아몬 고트: (소리 내어 웃으며) 내가 너를 용서하노라.


그러나 고트는 바뀌지 않는다. 자신의 지위 때문에 부여받은 힘을 겸손히 신중하게 사용하는 대신 마음대로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데 사용한다.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이 절대자의 가르침도 따르지 않고 도덕적인 규범도 없는 상태에서 잔인한 인종주의, 반자유주의 전체주의 이념(나치즘)에 빠지면 어떤 짓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인물이다.


크라쿠프 유대인 집단 거주지 게토에서 유대인 학살을 자행해 가면서 고트가 부하들에게 한 연설을 보면 그가 역사적 사실까지 조작하는 얼마나 사악한 인물인지 잘 알 수 있다.


Amon Goeth: Today is history. Today will be remembered. Years from now the young will ask with wonder about this day. Today is history and you are part of it. Six hundred years ago, when elsewhere they were footing the blame for the Black Death, Casimir the Great - so called - told the Jews they could come to Krakow. They came. They trundled their belongings into the city. They settled. They took hold. They prospered in business, science, education, the arts. They came with nothing. And they flourished. For six centuries there has been a Jewish Krakow. By this evening those six centuries will be a rumor. They never happened. Today is history.
아몬 고트: 오늘은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날로 기억될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나면 젊은이들은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우리에게 물어볼 것이다. 귀관들과 함께 오늘 역사를 쓸 것이다. 6백 년 전에 다른 곳에서는 흑사병이 유대인 때문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었는데 소위 말하는 폴란드의 카시미에 3세 대왕은 유대인들을 크라쿠프에 불러들였고 유대인들은 몰려왔지. 유대인들은 이곳에 모든 재산을 쏟아부어 정착했고 자리 잡았어. 사업과 과학, 교육, 예술 모든 분야에서 크게 성장했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이곳에 왔다가 큰 성공을 거둔 거야. 6백 년간 유대인들이 지배하는 크라쿠프가 된 셈이지. 오늘 저녁을 기해 지난 6백 년은 소문이 될 거야. 그런 일은 아예 없었던 거야. 오늘이야말로 진짜 역사가 되는 것이지.


그리고 아몬 고트는 유대인을 철저히 미워한다. 자라면서 받은 교육 때문일까, 아니면 유대인에게 당한 경험에 대한 보복 때문일까. 아마도 진짜 이유는 나치 독일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정권의 존립을 위해 선택한, 특정 인종이나 집단에 대한 미움이 유대인에게 집중된 것 때문일 수도 있다.


Amon Goeth: They cast a spell on you, you know, the Jews. When you work closely with them, like I do, you see this. They have this power. It’s like a virus. Some of my men are infected with this virus. They should be pitied, not punished. They should receive treatment because this is as real as typhus. I see it all the time. It’s a matter of money? Hmm?
아몬 고트: 유대인들은 너희들에게 마법을 건다고. 나처럼 그놈들하고 가까운 곳에서 지내다 보면 다 알게 된다고. 게네들은 힘이 있어. 바이러스 같다고. 우리 동포 중에도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있어. 불쌍한 사람들이지. 처벌 대상은 아니야. 치료받아야 할 대상이야. 이 병은 정말 티푸스 같은 병이거든. 항상 어디에나 있어. 돈 때문에 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그러나 개인적인 신념이나 특정 인종에 대한 미움 만으로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까?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에서 이런 무모하고 인간성 결여된 행동을 어떻게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르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찾아냈다.


1961년 남미에서 이스라엘 특수 요원에게 끌려온 유태인 학살 작전의 지휘자였던 아이히만의 예루살렘 재판에서 그녀가 마주한 유대인 학살 주도자는 광기 어린 악마가 아니라, 상부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하며 자신의 직무에만 몰두하는 지극히 평범한 관료의 모습이었다. 아렌트는 타인의 입장에서 고통을 상상하지 못하고 스스로 판단하기를 포기한 '무사유(thoughtlessness)'가 수백만 명을 학살하는 거대한 악의 핵심 동력이 되었음을 분석했다. 이는 개인이 시스템 속에서 비판적 사고를 멈추는 순간, 누구라도 거대한 범죄의 부속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나타낸다.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선의 용기'를 묘사한다. 쉰들러는 효율적인 수용소 운영이라는 국가적 명분 뒤에 가려진 개별 인간의 고통을 직시하기 시작했고, 이는 곧 시스템에 저항하여 생명을 구하는 실천적 행동으로 이어졌다. 비판적 사유가 인간을 체제의 도구에서 존엄한 주체로 회복시킬 수 있다.


그럼에도 희망이 있으면 살 수 있다


쉰들러는 쉰들러 리스트를 작성하기 전에도 함께 일하는 유대인들을 음으로 양으로 돕는다. 아몬 고트는 쉰들러를 비웃는다.


Amon Goeth: This is very cruel, Oskar. You’re giving them hope. You shouldn’t do that. That’s cruel!
아몬 고트: 오스카 당신, 정말 잔인한 사람이네. 유대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잖아. 그러면 안 돼. 너무 잔인해.


어차피 죽을 목숨인 유대인들에게 선의를 베풀어 희망을 주는 일이 무슨 소용이냐는 비웃음이다. 그러나 희망은 위대하다. 희망이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희망은 혁명적인 인내이다(Hope is a revolutionary patience)라는 말을 한 작가 앤 라모트(Anne Lamott)의 통찰에 따르면 희망은 단순히 막연한 낙관이나 기다림이 아닌,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동적인 저항의 도구다. 희망이란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냉소주의에 굴복하지 않고, 변화가 일어날 때까지 견뎌내는 끈기다.


이러한 인내가 '혁명적'인 이유는 불의와 절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무너지지 않고 인간성을 유지하며 끝까지 선한 변화를 믿는 것 자체가 기존 체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오스카 쉰들러가 한 일의 핵심은 극심한 어려움에 부닥친 유대인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인도한 일이다. 그 일이 하나하나 쌓여서 1,200여 유대인의 목숨을 구하는 일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쉰들러와 함께 밤을 새우며 쉰들러 리스트를 작성한 유대인 이작 스턴은 완성된 리스트를 손에 들고 다음과 같이 독백한다.


Itzhak Stern: This list… is an absolute good. The list is life. All around its margins lies the gulf.
이작 스턴: 이 리스트는 완벽해. 이 리스트가 생명이야. 이 리스트에 들어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도저히 메꿀 수 없는 틈이 있어요.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유대인을 멸절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여 다른 사람을 구하려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하든지 한 사람을 구하면 세상을 다 구하는 것과 진배없다.


이 영화에서 많은 사람을 울리는 장면은 유대인 게토 학살 장면에 등장하는 붉은 코트를 입은 소녀다. (The Girl in Red)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리다. 사람의 잔혹함과 조직의 횡포, 폭력에 희생되는 사람들을 기억하라는 의도로 스필버그가 이 가슴 아픈 장면을 넣은 것 같다.


역사에 기록될 명화다. 그러나 이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은 마음 단단히 먹기 바란다. 영화를 끝까지 침착하게 보기 쉽지 않다.



*Face the music

이 관용구의 유래는 크게 두 가지다.


1. 군대 유래설: "피할 수 없는 심판의 자리“

과거 군대에서 불명예제대를 하는 군인은 동료들이 지켜보는 연병장에서 계급장을 뜯긴 채 쫓겨났다. 이때 군악대는 그 수치스러운 행렬에 맞춰 북을 쳤는데, 죄를 지은 이는 그 북소리(Music)를 정면으로 마주하며(Face) 부대를 떠나야 했다.


2. 연극/공연 유래설: "관객의 냉혹한 시선 앞에 서다 “

배우가 무대 공포증이나 관객의 야유가 두려워도, 오케스트라 박스에서 흘러나오는 연주(Music)를 마주하며(Face) 무대 정면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스필버그는 '흥행 감독'이라는 자신의 명성이 이 엄중한 주제 앞에서 오히려 독이 될까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는 대중과 평단의 냉혹한 평가라는 무대 위로 스스로 걸어 나갔다. 또 스필버그는 유대인으로서 이 비극을 기록할 '역사적 부채'를 느끼고 있었고 힘들고 절말로 하기 싫었지만 역사의 의무감을 등에 업고 이 영화를 만들었다.


'Face'라는 동사는 눈을 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스필버그가 폴란드 현지(실제 아우슈비츠 인근)에서 촬영하며 겪은 정신적 고통은, 그가 역사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했음을 보여준다.


Filming in Poland was a process of facing the music for Spielberg, as he had to confront the haunting shadows of his people's history."

(폴란드에서의 촬영은 스필버그에게 피하고 싶은 진실을 마주하는 과정이었다. 그는 자기 민족 역사의 끔찍한 악몽과 정면으로 맞서야 했기 때문이다.)



스필버그는 쉰들러 리스트로 1994년 오스카 감독상을 수상했다.



Whoever saves a Life Saves the World entire


The Girl in Red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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