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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마을 Apr 14. 2024

수영장 오픈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이번 주말에 뒷마당에 있는 수영장을 오픈했다.


플로리다나 애리조나같이 더운 지역이야 1년 내내 수영장을 이용하겠지만 영하로 내려가는 추운 날이 많고 눈이 많이 오는 북동부에서는 겨울동안 수영장을 이용할수 없다. 그리고 이 시기를 넘기기 위한 작업이 좀 필요하다. 아주 작은, 애기들 노는 above ground 수영장이야 그냥 마음 편히 물을 다 빼버리면 깔끔하지만 그렇지 않은 in ground 수영장의 경우 다시 물을 채우는 값이 너무 비싸기도 하지만 수영장 물은 여러 케미컬이 들어가기 때문에 하수구나 빗물 drain 에 그냥 부어 버릴수 없다. 원칙대로면 물차를 불러서 옮겨 담아야 하는데 비용적으로 부담이 많이 된다. 우리집 수영장은 inground 치고는 작은편에 속하는데도 6천갤런이나 되기에 물차를 부르려면 큰 탱크를 가진 물차를 불러야 하는데, 많이 비싸다.

Above ground pool. 좀 더 크고 튼튼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공기 넣어 만드는, 애기들이 물장난 하는 임시 풀과 같은 개념이다.


그러다보니 물을 버리지 않고 겨울을 나기 위해 조금 복잡한 절차가 필요한데, 수영장 물이 지나는 파이프들을 모두 비운뒤 마개로 막아 겨울에 물이 얼어 파이프가 터지는 걸 방지하고 수영장에 나뭇잎이나 이런 것들이 들어가서 썩는걸 막기 위해 커버를 덮어 씌운다. 겨울 동안 수질이 지나치게 나빠지는 걸 방지하기 위한 케미컬도 물에 섞어야 한다. 이걸 winterize 한다고 한다.


이런식으로 커버를 덮어 씌워놓은 상태를 Winterized pool 이라고 한다.
지난 가을, 우리집 수영장도 winterize 를 끝내고 커버를 덮었다.


Winterize 를 끝내면 당연히 수영장을 쓸 수 없으니 이걸 Pool closing 이라고 한다. 그리고 겨울이 지나 늦봄 무렵 커버를 걷고 수영장을 다시 쓸 수 있게 만드는걸 Pool opening 이라고 하고.


그러니까 내가 수영장을 오픈했다고 하는 말은, winterize 되어 있는 수영장을 정리해서 다시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는 뜻이다. 아무리 winterize 를 잘 해도 수질은 나빠지기 마련인데 이걸 다시 들어가서 놀 수 있을 정도로 수질을 좋게 만드는데 제법 시간이 걸리기 때문.

왼쪽이 정상 수질의 수영장. 오른쪽이 이번 주말 막 오픈한 수영장. 수영장 바닥을 청소하는 로봇 청소기가 바로 위에서도 잘 안보일 만큼 물이 더럽다.


수영장 바닥에 있는, 눈에 보이는 크기의 오물들을을 1차적으로 로봇 청소기를 이용해서 건저내고 동시에 필터를 며칠간 계속 돌려서 물에 떠다니는 미세한 찌꺼기들을 걸러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물이 깨끗해지면 그때부터 각종 케미컬을 이용해서 성분을 맞추는 작업이 시작되는데 이 모든 작업이 끝나기까지 며칠 혹은 느긋함에 따라 몇주가 걸리기도 한다.


수영장 전용 로봇 청소기. 바닥도 청소하고 벽면도 붙어서 청소한다.
수영장 메인 필터. 왼쪽이 지저분한 상태고 오른쪽이 세척한 상태. 전기값 아끼지 않고 필터를 열심히 돌리기 때문에 한철 사용하고 나면 왼쪽과 같은 상태가 된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준비를 끝냈다고 해도 아직 날이 추워서 수영장을 이용할 수는 없다. 6월은 되어야 물에 들어가도 견딜만한 수온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일찍 수영장을 오픈하는 까닭은 그때까지 수영장을 오픈하지 않고 기다리다간 녹조 라떼가 수영장을 가득 채우는 상황이 되기 때문.


우리집 수영장은 아니지만, 기온이 오르기 전에 Pool opening 을 마치고 관리를 시작하지 않으면 이런 수영장을 opening해야 한다. 당연히 훨씬 노력이 많이 든다.


수영장 청소를 하는 동안 막내가 나와서 옆에서 한 손 거들었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물과 수영을 좋아하는 이 아이는 벌써부터 기대에 부풀어 있다. 하지만 수영장에 들어가서 제대로 놀기 시작하는건 5월 중순은 훌쩍 넘겨야 가능하다. 사실 5월도 아직 물이 차다. 작년에는 도저히 더는 못기다리겠다며 5월 중순부터 둘째와 셋째가 이를 사려물고 들어가서 놀기는 했는데 긴 시간 놀지는 못했다. 매번 한시간 정도 놀다 집으로 뛰어 들어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뒤 엄마가 해주는 핫쵸코를 즐기고는 했으니까. (생각해보니 어쩌면 핫쵸코가 목적이었을수도.)


어쨌든 당분간 수영장은 주로 나와 아내의 불멍/물멍 전용 장소로 사용될 예정. 아이들만큼 수영을 하지 않는 우리 부부에게 이 자리는 매일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고난 뒤 수영장 펌프가 만들어 내는 물소리를 배경으로 따뜻한 모닥불을 쬐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로써의 가치가 훨씬 크다.


수영장 옆에 불피울 자리를 만들어 놓고 즐기는 불멍/물멍.


특히 미국 북동부의 5월 밤은 비교 대상이 드물만큼 매혹적이다.




어린 시절 유난히 물에서 노는걸 좋아했던 난 커서 수영장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다. 미국에 온지 4년째가 되던 해, 집을 사고자 여러 집을 둘러보면서 수영장이 있는 이 집에 마음속으로 많은 가산점을 준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당시 몰랐던, 그리고 신경쓰지 못했던 문제 두가지는 (1) 아이들이 크면 이 수영장은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과 (2) 수영장 관리에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이 든다는 사실.


아이들이 아직 집에서 학교를 다니는 어린 나이에야 친구들을 불러서 놀거나 형제들끼리 놀면 되니 수영장 활용도가 높지만 그 시기가 지나면 이제 이런 뒷마당 수영장의 활용도는 거의 무시할 수준이 될 게 뻔하다. 첫째만 해도 서핑과 카약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는데 그 아이에게 수영장 물놀이는 말그대로 시시한 물장난에 불과하다. 지금도 동생들하고 수영장에서 노는걸 내켜하지 않으니, 한두해만 더 지나면 말 할 것도 없겠지. 차라리 제대로 수영할 수 있는 25m 길이의 수영장이었다면 나나 아내가 여름동안 운동삼아 수영을 즐기겠지만 우리집 수영장은 딱 아이들이 놀기 좋은 크기와 형태, 깊이를 가진 수영장이라 진짜 수영을 하기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렇게 제한된 활용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리에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부분이다. 아이들이 수영장을 이용하는 동안이야 얼마의 노력이 들든, 비용이 들든 아깝지 않지만 이제 활용도가 떨어지고 나면 말 그대로 애물단지가 될게 뻔한게 뒷마당 수영장이다.


두개의 펌프와 하나의 대형 필터, 케미컬 투입 조절기까지 수영장 옆 filter room 은 복잡한 파이프와 기기로 한가득이다.


돈이 많다면 사람을 불러서 쉽게 관리할수 있지만 인건비 비싼 미국에서 어지간한 부자가 아닌 다음에야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고 결국 직접 해야 한다. 작년에는 cleaning pump 가 문제를 일으켜서 분리한 뒤 부품을 주문해서 직접 교체하는 난리를 쳤는데 이번에 메인 펌프의 sealing 이 깨져서 펌프의 결합 부위로 물이 미세하게 세는걸 발견했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중인데, 가을까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pool closing 후 펌프를 교체하거나 수리를 할 예정이다. (부디 그때까지 잘 버텨주기를)


매일같이 수영장에 떨어지는 낙엽과 잔가지들을 뜰채로 건져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그렇지 않으면 결국 가라앉아서 썩으면서 수질에 영향을 주니), 밤에 찾아오는 작은 불청객들과도 싸워야 한다. 수영장이 있다 보니 온갖 동물들이 찾아 오는데 집 담장 덕분에 사슴은 못들어 오지만 작년에는 계속 찾아오는 라쿤과 씨름을 해야 했고 어떤날은 뱀이 수영장 안에 들어가서 나오지 못하고 있기도 했다.(아이들은 신나 했지만 아내는 질겁을 했다) 다람쥐들도 물 마시러 찾아오는데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다. 결국 혹시라도 빠지면 알아서 기어 나가라고 일종의 동물 탈출용 경사로를 수영장에 설치해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준비를 했어도 라쿤이 어디선가 훔쳐와서 우리집 수영장에서 씻어 먹으려다 놓친 바게뜨 빵 덩어리를 몇차례나 발견했고 그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래 흔들었다. 수영장의 케미컬은 완벽하게 맞추고 있고 필터도 매일밤 열심히 돌리고 있기 때문에 오염이 되거나 이런 걱정은 없지만 그래도 찝찝한건 어쩔수 없는 기분.


다음에 이사를 가게 되면 수영장이 있는 집을 살까? 아마 높은 확률로 그러지 않을것 같다. 내 어린 시절의 로망을 이룬 것에, 그리고 아이들에게 뒷마당 수영장에서 신나게 놀았던 추억을 남겨준 것으로 수영장에 대한 내 모든 바램은 충족이 되었으니까.


막내가 성인이 되기까지 10년이 남았는데, 지금 집에서 10년 거주 예상하고 있다. 어쩔수 없이 그동안은 수영장 관리인으로써의 삶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지. 정말,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UPDATE:

이틀간의 청소를 기점으로 before & after. 아직 케미컬은 맞추지 않았지만... 어쨌든 맑아진 수영장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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