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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마을 10시간전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

요즘 가족이라는 단어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그 고민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정의하면 자녀들이 가족으로부터 혹은 부모로부터 어떤 것들을 얻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테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어떤 직접적인 삶의 지혜를 '들어서' 배웠는지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나는 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고 함께 여행을 다녔다는 것. 아버지는 제법 긴 시간 병으로 고생을 하셨고 어머니는 그 시대 여성답지않게 활동적이고 운동을 좋아하셨다는 것 정도. 두 분은 가끔 다투셨고 다툼의 원인은 다양했다. 경제적인 것도 있고 생활 방식에 대한 것도 있고. 하지만 전반적으로 내가 우리 가족에 대해 불만을 가졌던 기억은 없는데 모든게 행복하고 만족했다기 보다, 또는 우리 가족이 이렇다 저렇다 판단을 하기 보다는 그냥 그 모든걸 내가 속한 환경으로 인식했던것 같다. (물론 자라고 나서 그렇게 판단할 필요 없는 가족을 가질수 있었다는게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 깨닫기는 했지만.) 


그분들이 내게 조언이나 가르침을 안주셨다는게 아니라, 분명 어머니나 아버지로부터 듣고 배운 것들이 있기는 한데 시간이 지나 내가 나이가 들고 나서 스스로 비슷한 깨달음을 얻은 뒤 '아 그때 해주셨던 이야기가 이런 거였구나' 하고 인지했을뿐 여러 조언을 들었던 그 당시에는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었다. 조언을 듣고 바뀌었다기 보다 그 조언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혼나거나, 최소한 귀찮아 지기라도 하니 따랐던 기억이 대부분. 그래서 직접적인 조언을 들어서 내가 무언가를 얻었다기 보다 환경 그 자체에서 형성된 내 심성이나 성격등을 얻었다고 보는 편이다. 예를 들면, 나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면 안된다는 부모님의 이야기보다 책을 사는데는 항상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셨던 어머니 도움으로 중학생때 사서 읽은 조셉 콘라드의 '어둠의 속' 에 나오는 한 문장이 더 강렬했다. "인간의 물리적 강함은 상대의 약함에서 오는 우연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 아이를 키우다 보니 매 순간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이 참 많은데 그때마다 이게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지금 이런 조언을 해준다고 아이가 '아!' 하고 깨달음을 얻을리 없다는걸 잘 아니까. 그런 일을 반복해서 경험하다보니 그렇다면 아이에게 가족이 주는 의미란 무엇일까 하는 고민이 뒤따르는 것.


성인이 되기 전에 의식주를 해결하는 장소이자 부모로부터 보호를 받는 장소? 그리고 성격이나 행동의 근간을 이루게될 내적 토대를 다지는 환경? 좀 더 다양하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뒷받침?


일면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런 환경에서 아이가 어떤것을 얻어갈지, 그래서 어떤 사람으로 성장해 갈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에 자꾸 직접적인 방향타 간섭을 하게 된다는 점에 있다. 지금 이 말을 해봐야 아이가 한귀로 흘릴 거라는 걸 잘 알지만, 어쩌면 그 간섭 자체에 짜증이 나서 역효과를 낼 가능성도 매우 높다는걸 알지만.... 그래서 열번중 아홉번은 참는것 같은데 그것도 아이 입장에서는 부족한것 같다. 더구나 이민 가정답게 부모는 한국인으로 늙어가고 아이들은 미국인으로 자라는 상황에서 가정 울타리 안에서의 문화와 학교나 친구 관계등 울타리 밖에서의 문화가 달라서 생기는 아이들의 고민도 무시할 수 없고. 경험해보지 않은 내 입장에서는 미루어 짐작하는 것 조차 불가능한 문제다. 당연히 조언은 언감생신. 


머리로는 방향타를 아이에게 내줘야 하고 가끔은 폭풍도 경험하게 해줘야 하는걸 잘 알지만 참 쉽지 않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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