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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추수 감사절 아침

by 봄마을

처음으로 보내는 조용한 추수감사절 아침.


매년 추수감사절은 여러 이웃들을 초대해서 큰 파티를 했기 때문에 칠면조 구이를 준비하느라 며칠전부터 바쁘고 당일 아침은 정말 부산스러웠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다. 아내와 올해는 온전히 휴식의 시간으로 갖자는데 의견이 일치해서 이웃들을 초대하지도, 초대 받지도 않고 그렇게 보내기로 했다.


이른 아침, 밖에는 비가 오고 있고 막둥이하고 나만 일어나서 식탁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다. 오늘은 다들 늦잠 자기로 약속했는데 새벽같이 일어난 막내가 배고프다고 하는 바람에 일어나서 거실로 내려왔다. 아침으로 소고기 스테이크 먹고 싶다고 하는 막내 입맛 맞추느라 아침부터 소고기 냄새가 거실에 진동한다. 고기테리언이라고 자부하는 둘째도 일어나면 먹겠다고 할지도.


어제 저녁에는 마트에 가서 미국 와서 처음으로 햄을 샀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가공육 햄이 아니라 진짜 햄. 저녁 식사에서 먹으려고 잘랐는데 가운데에 뼈가 있어서 생각했던것 만큼 예쁘게 잘리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잘라내서 오븐에서 20분정도 데운 다음 서빙했는데 내가 알던 가공육 햄과는 식감이 많이 다르다. 먹고 남은 햄은 냉장고행. 이번 연휴동안 다 먹을수 있을지. 크기가 축구공 만했는데 그래도 어제 세 아이들이 제법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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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냉장고에 들어가 있는 햄. 어제 꺼냈을때 사진 찍었어야 모양이 예쁘게 찍혔을텐데 그때는 커다란 햄 덩어리를 다루느라 아내도 나도 우왕좌왕 했다. 사진에는 돼지고기가 같이 찍혔는데 생각해보니 돼지고기, 소고기, 햄, 닭고기 등등 고기가 종류별로 잔뜩 있다. 추수감사절 답지 않게 칠면조는 없는데 아이들이 칠면조 질렸다고 해서 그냥 이번엔 생닭을 통으로 사왔다. 저녁즈음에 꺼내서 굽기 시작할 예정.


아침을 잘 먹은 막내는 한국에 계신 할머니와 영상통화 하겠다고 해서 연결해주고 나는 앉아서 키보드 두드리는중. 막내가 무슨 이야기 하나 봤더니 얼마전 클래스가 한단계 위로 올라간 수영팀에서 얼마나 재미있는지 자랑을 하고 있다.


원래 막내는 다니고 있던 YMCA의 swim team 에 들어가자마자 너무 힘들다고 눈물 콧물 쏟아가며 울었었다. 나는 그만 두게 하고 싶었는데 아내가 힘들더라도 이겨내는 법을 아이가 배웠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냥 뒀었다. 맞는 말이니까. 하루는 내가 데리고 수영장에 가는 길이었는데 아이가 이날도 힘들까봐 너무 무섭다면서 내게 하소연 했다. 그때 무심코 아이에게 조언을 했다. 다른 아이들 속도를 따라가려 하지 말고 가장 뒤에서 네가 편안한 속도에 맞춰서 수영을 하라고. 수영 선수를 할게 아닌데 굳이 속도를 높여 잘하는 아이들을 따라가려 애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한 조언이었다. 그런데 이게 정말 효과가 컸다. 아이는 내 말대로 전체 팀을 이끄는 그러니까 잘 하는 아이들의 속도를 따라가려 하지 않고 레인을 가장 늦게.. 한참 뒤떨어져서 돌더라도 자기 페이스를 지켰고 그 순간 (아이 말에 따르면) 모든게 바뀌었다. 수영도 너무 재미있고 힘들지도 않고 다른 아이들과 즐겁게 대화해 가면서 클래스를 마칠수 있었다나.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그런 재미를 할머니에게 자랑하고 있다.


아이가 그렇게 재미를 느끼는 쪽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며 나도 비슷한 생각이 든다. 나도 속도 조절을 좀 하며 살아야 하는것 아닌가.. 하는.


칠면조를 오븐에 굽느라 바빴던 다른 추수감사절 아침과 달리 여유가 있다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래를 편다. 어쨌든 오후에는 첫째가 새로 구성한 매직더게더링 카드덱을 테스트 하자고 할 것 같으니 카드 게임을 하느라 바쁜 시간이 될 듯 싶다.


이렇게 미국에 온 이후 처음으로 경험하는 조용한 가족만의 추수 감사절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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