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마을 Jul 30. 2021

둘째가 받은 밸런타인데이 선물

*2020.2.17.


초등 2학년인 둘째 아이가 학교에서 밸런타인데이 선물로 받아온 온갖 물건들 중 유난히 커다란 하트 모양 카드가 있었습니다.


아내가 읽어보라고 해서 읽어 봤더니 또박또박 정성 들여 쓴 글씨로 정말 빡빡하게 편지가 적혀 있더군요. 공간이 더 있으면 더 글을 적었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름을 보니 전에 한번 둘째가 play date 초대를 했던 반 여학생이었습니다. 무슨 내용을 이리도 열심히 적었나 봤는데, 뜻밖의 내용이 적혀 있더군요. 언젠가 그 여학생을 다른 친구가 괴롭힌 적이 있는데 우리 집 둘째가 그러지 말라고 하며 도와준 모양이었습니다. 말로만 한 번 한 게 아니라 괴롭히던 아이가 다른 곳으로 갈 때까지 옆에서 지켜줬더군요. 그날의 행동이 너무 고마웠다면서 정성 들여 편지로 고맙다는 인사를 한 거였습니다.


다 읽고 제가 눈을 크게 뜨고 '오...' 하고 감탄하며 아내를 쳐다보니 아내도 기특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ABC도 모르는 상태로 미국에 왔고, 오자마자 1학년 입학을 했던 탓에 정말 별라별 해프닝이 많이 있었던 아이였습니다. 정말 다 적기 힘들 만큼 많은 일이 있었네요. 그랬던 둘째가, 2학년이 된 지금 어느덧 어려움을 겪는 친구를 나서서 도와줄 정도로 멋진 마음을 지닌 아이가 되었습니다. 주로 장난치는 쪽이었던 아빠보다 백배는 더 멋지네요.


학교 퍼런스 때 담임이 모두와 친하고 참 스윗한 아이라고 했을 때만 해도 그냥 적당한 인사치레려니.. 했는데 이 정도면 스윗한 아이라는 이야기를 들을만한 것 같습니다.


항상 느끼지만 아이들은 의외의 지점에서 부모를 놀라게 합니다. 그 의외성이 갖는 의미는 부모가 캐치하지 못한 아이의 시간이 겉으로 드러날 만큼 숙성되었다는 것이 되겠지요. 그런 숙성된 시간 앞에서, 일상을 함께 하는 부모를 놀라게 할 만큼 깊이를 알 수 없는 아이의 속을 접하면서  '나는 우리 아이를 이렇게 키워서 성공시켰다 ' 하는 말이 얼마나 교만하고 아이의 시간을 무시하는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아이는 부모가 바라는 방향대로 그렇게 자라는 콩나물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물론 부모가 아이를 망칠 수는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 쉽죠. 그러나 아이를 올곧고 바르게 키우는 것을 부모의 의지로 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여건을 만들 수는 있으나 그 길을 걷는 것은 오로지 아이의 몫인 듯합니다.


어려움을 겪는 친구를 도와주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해준 적 없는 아빠에게 자신이 얼마나 멋진 모습으로 자라고 있는지를 정말 뜻밖의 지점에서 보여준 둘째가 너무 대견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