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 전부터 수영장 필터를 가동시키면 펌프와 필터에 공기가 찼다. 필터를 거쳐 수영장으로 물이 나오는 출수구에서도 종종 공기 방울이 뿜어져 나왔고. 아무리 봐도 어디에선가 물이 새는 것 같았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늘 그런건 아니고, 아주 가끔 그런 일이 생기는 상황이라 일단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는 그 현상이 지속됐다. 아내와 상의를 해봤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물이 새는 곳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일단 가장 의심이 가는 건 수영장에서 필터룸으로 오는 파이프.. 땅 속에 묻혀 있는 그 파이프에 실금이 간게 아닐까 하는 상황. 수영장 물이 빠르게 줄어드는 건 아니지만 만일 어딘가 파이프에 실금이 가서 계속 상황이 악화되는 중이라면 지금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해결하지 못하니 어쩔수 없이 서비스를 불렀다. 두 업체를 비교했는데 한곳은 정밀 기기를 들고와서 하는 전문 업체로 점검 비용만 $750 이지만 거의 모든 leaking 을 찾아낼 수 있고(보증하고) 다른 업체는 $170 으로 훨씬 저렴하지만 장비를 이용하기 전 먼저 눈과 손으로 할 수 있는 점검을 하는 곳. 두 업체 모두 만일 pool leaking 이 확인되고 간단한 조치로 해결이 안되는 상황이면 그건 다른 전문 업체를 불러야 하는 조건. 만일 정말로 땅을 파야 하면 비용이 얼마나 나올지는 알기 어려웠다. 어쨌든 심각한 leaking 까지는 아닐거라는 생각이 있어서(수영장 물이 빠르게 줄어드는건 아니었으니까) $170 을 부른 업체를 선택하고 전화로 예약을 잡았다.
업체에서 방문한 당일. 두명이 방문했는데 와서 보더니 '지극히 정상' 이라면서 필터로 연결된 연결 커넥터를 렌치로 한두번 조였다. 그리고는 정말로 문제 해결. 펌프 진동에 의해 조금씩 커넥터가 느슨해 졌고, 물이 샐 정도는 아니지만 펌프가 동작해서 압력이 가해지면 공기가 새어 들어 왔던 것. 진단후 조치까지 1분 정도 걸렸다.
끝났으니 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나도 모르게 "그래서 내가 얼마 줘야 해?" 라고 물었다. 날 잠시 의아한듯 보더니 점검 기사가 "$170 이잖아?" 라고 대답했다. 잠시 서로 멀뚱히 쳐다보다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아니, 뭐 한게 있다고 돈을 다 달라고 해' 라는 생각을 한 것. 다르게 표현하면 계약 조건과 결과물의 가치가 아닌 작업 시간과 들인 노동력을 기준으로 돈을 계산했다. 점검을 의뢰할 때만 해도 $170 이 저렴하다고 생각했으면서 이들이 쉽게 문제를 해결하자마자 들인 시간이 적다는 이유로 비싸다는 생각을 한거다.
귓볼에서 열감이 느껴질 정도로 그 상황이 창피했다. 두번 생각 안하고 바로 "아, 미안. $170 이지? 잠시만." 하고는 집으로 들어와 현금을 챙겨 나가서 줬다.
고치려 애를 쓰고 있는데도, 오래된 이 습관은 아직도 나를 따라 다닌다. 결과물의 가치 보다 일한 시간과 들인 노력에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인건비를 계산하는 이 습관. 그 기사는 계약서에 명시된 결과물을 보여줬으니 당연히 계약서에 명시된 대가를 지불 받아야 했다. 1분 만에 해결 했든, 1시간 만에 해결 했든 상관 없이. 이틀이 지난 오늘까지도 이 생각을 하면 부끄러워진다.
계약서에 명시된 결과물을 보여줬으니 당연히 계약서에 명시된 대가를 지불 받아야 했다. 1분 만에 해결 했든, 1시간 만에 해결 했든 상관 없이.
어쨌든 그 $170 덕분에 아이들은 다시 수영장을 마음껏 이용하고 있고, 어제는 오후 내내 수영장에서 놀고 녹초가 된 아이들에게 수영장 옆 바베큐 그릴에서 돼지고기를 구워 주며 저녁 식사를 했다. 지난 두달 계속 뿜어져 나오는 공기 방울에 신경을 곤두세웠고, 혹시나 물이 새는 파이프에 무리를 줄까봐 며칠동안 아이들이 수영장을 이용하지 못하게 했던 걸 생각하면 좀 더 줬어도 됐을걸 하는 생각도 든다.
들인 시간보다 결과물의 가치에 대해 지불하는 습관. 죽기 전에 완전히 체화할 수 있을까? 아니, 해야겠지. 어디 적어서 붙여 놓기라도 해야겠다.
Image by Dean Moriarty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