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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전 석현 Jan 11. 2021

생일맞은 아들과의 대화

나에게 와줘서 고마워! 

이 녀석은 출산 진통을 10시간 가까이해서 엄마를 힘들게 했던 제 누이와는 달리 새벽녘에 병원에 도착한 후 3시간 여만에 얼굴을 보여 준다. 태어 난 직후 각종 검사를 통해 발견된 수신증(콩팥이 부불어 있는 상태)은 8살이 되는 최근까지도 병원을 다니면 추적 관찰하고 있다. 


내가 장거리 출장 시에는 어김없이 병치레를 해서 온 가족이 불안에 떨게 했던 녀석.

2016년에는 영국 출장으로 아빠가 집을 비운 사이 응급실과 대학 병원 입원 신세를 져 홀로 남은 엄마를 곤욕 치르게 했던 녀석. 2019년 말에서 2020년 초로 넘어가는 시점에 급성 폐렴에 걸려 새해맞이를 병원에서 하는 경험을 선사했던 녀석. 엄마 아빠는 잔병치레 한번 한 적 없는데 누굴 닮았는지...  

병원생활은 아이나 어른에게나 답답하기 마찬가지이다.


두 살 터울인 누나의 욕심과 성화를 이기지 못할 바에는 일찍이 지는 쪽을 택한 슬기로운(?) 녀석.

옆에서 보면 항상 양보하고 지는 쪽을 택함에도 누나의 말에 고분고분하는 원만한 성격의 소유자. 

자다가 소변 실수를 했다고 무릎 꿇고 미안해하는 녀석

엄마의 재주를 닮았는지 그림을 곧잘 그려 유치원 동갑내기들은 녀석의 그림을 하나씩 받으려고 인기다.(미술학원을 다닌 아이들과는 비교 불가) 곧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녀석이 또래들보다 한글을 늦게 깨치는 것이 걱정인 엄마는 얼마 전부터 저녁상을 물린 후 한글 공부시키기에 여념이 없다. 


6살 되던 해에는 달리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논의 사일리지(벼 베기 후 남은 볏짚을 둘둘 말아 놓은 것.)를 보고 "아빠! 왜 논에 휴지가 있어?"라고 해서 큰 웃음을 줬고, 유치원에서 각 나라의 명소를 배운 직후에는 전기 송전탑을 보고 "아빠! 저거 에벨탑이지?"라고 씩씩하게 말하던 녀석이다. 엘리베이터 문 앞에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설치 해 놓은 노란색 점자 블럭을 보고는 "칫솔 모양이네?"라고 다채로운 해석을 남긴 녀석이다. 


녀석이 지난 7일 유치원은 졸업을 했지만 맞벌이 부부를 위해 제공되는 온종일 돌봄 교실 프로그램으로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사실상 유치원에 다녀야 하는 형편이다.  

누나는 일찍이 학교에 등원을 했고, 돌봄 교실도 방학인지라 유치원에 가지 않는 것을 아는지 늦잠을 자고 일어난 녀석이 소파 앞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시려는 찰나에 내 품으로 들어와 푹 안긴다. 


오늘은 녀석의 8번째 생일이다.

보통의 아빠와 아들이 관계가 그렇듯, 평소 같으면 이런 징글징글맞은 말은 입 밖으로 꺼낼 염두 조차 내지 않는데 큰 용기를 내 마음을 전했다. 


"오늘 생일이네, 아들 생일 축하해", "엄마, 아빠한테 와 줘서 고마워!' 


그런데 녀석은 이런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 


예상치 못한 답변에 더 이상 해 줄 말을 찾지 못해 "누룽지 먹으래? 자장밥 먹으래?" 


이렇게 아들과의 생일날 아침 대화는 싱겁게 끝이났다.


그런데 그 어떤 대화, 재롱보다 오늘 아침 나의 품으로 달려와 콩닥콩닥 뛰는 심장 소리를 전해 준 녀석. 

더 이상 그 어떤 대답도 필요 없었다.


그저 나와 함께 숨 쉬고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 

아빠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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