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은 '실패' 3부작을 통해 소설가로서 우뚝 섰다. 그 역시 자신이 쓴 소설의 주인공처럼, 말 그대로 영화판에서 굴러먹고 늘어붙으며 오랜 실패를 잔인하게 경험해왔다. 그 경험들은 그가 극적으로 전개하는 서사와 남성미 물씬 풍기는 문장 속에 마치 절여지듯 배어 있다. 등단작인 '고래' 가 역동적이고 초현실적인 서사를 자랑하고, '나의 삼촌 브루스 리' 가 유하 시인을 방불케 하는 애잔한 남성미를 풍긴다면, 실패 3부작의 가운데 작품이자 비교적 대중적인 '고령화 가족' 은 정말이지 어떻게 이렇게 실패한 인생들만 모아 놓았을까 싶다. 설정만 보면 꼭 표지가 알록달록 예뻐 오히려 손이 안 가는,가벼운 일본 현대 소설을 보는 듯하기도 하다.
나는 고령화 가족, 을 두 번째 백수 시절에 보았다. 당시 나는 조그마한 보드게임 공간을 운영하고 있었고, 그를 병행하며 대학에 남아 공부를 계속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물론 학식도 얕았지만, 가게를 넘기고 나면서부터 공부는커녕 생활부터 어려워져버리었다. 늘 그렇듯 학교 주변 술자리의 어렴풋한 기억에, '공대 박사면 태권V라도 만들지.. 우리 아들이 가정환경조사서에 아빠 무슨 박사님이냐고 적냐는데, 민망하더라고. 아내 고생시키면서 처가 돈으로 공부하는데, 참 ' 하던 젊은 선생님이 떠오른다. 가게를 병행하며 늘 술 마시고 몇 수 주워 배운 얕은 무공을 뽐내던, 졸렬하고 천박한 내가, 겉멋이든 뭐든 간에 책을 끼고 다닌다며 참 이뻐하시던 박 선생님께서는, 장학금 지원은 해줄테니 생활비만 어찌 해보라고 권하셨지만, 사실 그 때 내 생활은 공부 이전에 더이상 유지가 불가능했었다. 나는 거만하고 몰상식했으며 천박했던 청춘의 끝에서 큰 실패를 겪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당시 나는 부모님과도 거의 절연한 상태였으므로, 누구에게도 핑계를 돌릴 수 없었고, 또 반드시 성공해야한다는 일념으로 내 어줍잖은 역량을 모두 퍼부었지만, 세상은 절대로 내게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아내의 도움으로 번듯한 가정도 일구고, 나를 꼭 닮은 딸까지 얻었으나, 그 때의 나는 새벽마다 대학(大學)의 구절들을 읽으면서 왜 내가 진작 이렇게 못 살았을까, 내가 너무 건방졌구나, 내가 너무 어리석었구나, 매일 울면서 가슴을 치고 술에 절어 잠들었었다. 못난 자식에게 결국 손을 내미신 어머니와 아버지를 비롯하여, 신앙, 목사님, 좋은 벗들과 스승들, 내 몸과 마음을 다잡는 체계적인 ITF태권도 훈련 등이 겨우 나를 살리고 다듬고 눌러 예까지나마 왔다.
실패 3부작이라고 하지만 고래, 는 사실 실패와는 다소 거리가 있고, 나의 삼촌 브루스 리 는 지나치게 낭만적인 결말을 위해 중반부터 종반까지 급하게 내달리는 경향이 있다. 하기사 항시 끝맺음이 어려워, 아예 결말부터 쓰고 소설을 시작하는 작가들도 더러 있다 들었다. 고령화가족, 은 지금 다시 읽어보면 다른 작품들에 비해 문장이 다소 지지부진하며 인물들이 평면적이지만, 대신 사람은 실패해도 그 삶은 끊임없이 이어지며, 무엇보다 영웅처럼 재기하기보다 실패한 사람들끼리 모여 위안하고 타협하며 살아간다는 내용을 어색하지 않게 전달해냈다. 만약 이들 중 누구 하나라도 다시 번듯하게 재기하여 떵떵거리고 살면, 보기에 통쾌할지는 몰라도 읽는 맛은 떨어질 터이다. 오히려 이들은 결국 어느 정도 포기하고 타협하며, 실패한 삶 속에서 의미와 행복을 찾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누군가는 이러한 서사를 보고 패배한 자들의 자기 위안에 지나지 않는다 쓴소리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 역시 어렸을 때 꿈꾸던 30대와는 전혀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으나 충분히 만족하며 살고 있다. 늘, 별 같던 너와 곽군이 놀리기 바쁜, 내 20대의 끝은, 지금 같은 삶은 꿈꿀 수조차 없었다.
나는 두 번째 백수 시절 때 이 고령화가족, 을 정말이지 이백 번도 넘게 읽었다. 원래 간격을 두어가며 좋은 책을 반복하여 읽는 습관이 있긴 했지만, 이 책만큼은 그 당시에 위편삼절이 무색토록 하루에도 수십번씩 펼쳐들었다. 얼마나 읽어댔는지 정말로 책장마다 누렇게 손때가 묻고, 책등이 구겨져 풀어질 정도였다. 한때 잘나가던 주먹패였으나 지금은 퇴물이 된 큰형 오함마-오한모, 주인공이자 실패한 영화감독으로 무일푼이 된 둘째 오감독, 역시 이혼과 외도를 반복하는 여동생 미연은, 나이 오십이 가까워 살 곳이 막막해지자 결국 어머니에게 기댄다. 어머니는 칠순의 나이에도 화장품을 팔면서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중늙은이 세 남매를 먹이고 재운다. 극중에서도, 노인들이 이 늙은 세 남매를 흉보듯이, 현실에서라면 한심하다며 입방아에 오르내릴 이들에게 나는 푹 빠져서, 나는 읽고 또 읽으며, 실패한 나를 확인했다. 나는 두 번째 백수 시절에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내 스스로가 대단한 이가 아님을, 오히려 한없이 모자라고 나태하고 멍청하고 소심한, 필부이자 장삼이사에 지나지 않음을, 뼈저리게 새겼다. 덕분에 나는 뒤늦게 철이 들어 아내와 딸과 함께 아주 조용히 살고 있다. 지금은 먼 남쪽 도시에서 고깃집을 하시는 김 사장님 역시 내 불민한 청춘을 알고 계시는 분 중 하나인데, 가끔 전화하여 안부를 묻는 끝에도, 이젠 정신차렸지? 당신 그 때처럼 지금도 살면 진짜 칼 맞아죽어, 가족들 생각해서 이제 조용히 살어, 농담 삼아 다짐을 두시곤 한다. 나는 지금도 가끔, 옛날 생각을 하며 몸서리친다.
고령화가족은 송해성 감독의 연출과 배우 박해일의 주연으로 영화화되었다. 소설가 임성순과 마찬가지로 천명관 역시 영화판에서 실패를 맛보고 문학으로 옮겨온 사람이다. 마치 자신의 전신과도 같았을 오 감독이 박해인의 호연으로 극장에서 펼쳐졌을 때, 그는 과연 어떤 기분이었을까. 안타깝게도 원작을 많이 편집했기 때문인지, 영화에는 원작만큼의 살가운 매력은 없었다. 그러나 천명관 선생은 분명히 시사회 의자에서 온갖 복잡한 심정으로 화면을 보고 있었을 터이다. 나는 이제 혼자 조용히 책을 읽다 가끔 너와 얘기 나누고(아내는 안타깝게도 내 취향의 책은 "너무 어려워가" 싫다 하신다.), 늘 얻어터질지언정 도장에서 글러브를 끼고 악착같이 덤벼들곤 한다. 나는 이제 그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사내가 되었다. 다른 말로는 포기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 포기야말로 평범하게 못난 사람이 세상이 살아가는 미덕임을 알려준 소설이었다. 오랜만에, 너와 곽군을 기다리면서, 까페에서 다시 발견하여 읽어 못났던 옛 생각에 이리 말이 길다.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