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독서감평)

데즈카 오사무, 도로로, 학산문화사 정발판, 2007. 원작 1967.

by Aner병문

우리 나라에 만화의 신- 만신 김성모가 있다면 일본에는 데즈카 오사무가 있다. 농담조로 말했지만, 사실 진지하게 말하자면 '김화백' 김성모조차 당연히 손사래를 치며 어림도 없다 할 정도로, 데즈카 오사무는 근현대 일본 만화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전후 혼란했더 시절, 오사카제대 의대에서 수학할 정도로의 엘리뜨였으나 끝내 만화라는 예술의 길을 포기하지 못하고 만화가로 전업하여 일세를 풍미한다. 덧붙여 의대에서 배운 숱한 지식은 1억엔만 주면 무엇이든 고쳐주는 의사- 그 유명한 블랙잭의 기반이 된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그의 만화에는 인종차별적인 내용도 종종 있고, 디즈니의 영향을 깊이 받은만큼 미국-유럽 등지의 서구 문화를 필요 이상으로 우상화하기도 하며, 무엇보다 미야자키 하야오, 다카하타 이사오 등에게 깊이 비판받는 이른바 '공장제 만화 시스템' 의 착취자로도 악명이 높다. 그러나 '만화로 그려내지 못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라는 기치 아래 지금 소개할 도로로 이외에도 정글대제(밀림의 왕자 레오), 철완 아톰, 블랙 잭 등의 대중적인 작품 이외에도 불새, 붓다 등 뎃생만으로도 넋이 나갈 철학적, 종교적 걸작들도 많이 발표했다. 특히 도로로 에서 아주 간편하게 선을 쓰는 듯하면서도 역동적으로 사람을 학살하는 햣키마루의 모습은 눈을 잡아끌어 놓을 수가 없게 한다.




마치 신필 김용을 연상케 하는 그의 박진감 넘치는 서사 또한 일품이다. 주인공 햣키마루는, 헤이안 시대의 지방 소영주인 아버지가 천하를 거머쥘 힘을 얻는 대가로 48마리의 마물에게 태어나기도 전에 몸을 뺴앗기게 된다. 그러므로 마흔 여덟 마리의 마물들이 각자 부위를 하나씩 가져가버리는 바람에, 갓 태어난 햣키마루는 눈도 코도 귀도 혀도, 손발도 없이, 그리고 몸 속 장기들조차 군데군데 결손된 상태로 태어난다. 이러한 괴물 꼴로 태어났음에도 어머니는 어린 아이를 어떻게든 보호하려 하지만, 아비의 입장에서는 마물과 거래한 증거가 되는 아이를 이름도 주지 않고 내다버린다. 몸에 무엇 하나 달린것 없어도 텔레파시로 사람과 교감하고, 본능으로 밥을 찾아 먹는 아이의 의지에 놀란 의원 겸 대장장이 쥬카이는 이 아이를 구출하여 성년이 될 때까지 키우며, 남은 몸을 먹어치우기 위해 숱한 요마들이 달려들자, 아이의 온 몸에, 무기를 장착한 인공 장기를 달아주면서 요마들을 퇴치하고(베르세르크?!!), 몸을 하나씩 되찾게 한다. 햣키마루(百鬼丸)라는 이름처럼, 이 청년 무사는 자신의 몸을 빼앗은 마물 하나를 죽일 때마다 몸 한 군데씩을 되찾는다.




온 몸에 칼, 폭약, 염산, 심지어 독가스까지 장착하고 자신의 몸을 빼앗아간 마물을 퇴치하러 다니는 이 신산한 고생을 겪는 햣키마루는 어쨰서 주인공이 아닐까? 햣키마루와 조우하게 되는 도로로는 큰 도둑을 꿈꾸는 맹랑한 꼬마다. 그러나 단순히 좀도둑이라고 여기기엔 늘 배포가 크고 의협심이 있다. 햣키마루는 요마를 베어넘기는 자신의 칼을 탐내는 도로로를 귀찮아 하면서도 어딘가 비범함을 느껴 늘 그를 데리고 다닌다. 시원시원한 서사, 역동적인 뎃생, 염세적인 배경에서도 세심하게 드러나는 인간애까지, 무엇 하나 빠질 것 없는 만화인데도 정발판 4권에서 너무나 빠르게 완결된다.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걸작인 셈이다. 블랙 잭도 아톰도 모두 훌륭한 만화지만, 데즈카 오사무 라는, 강철의 의지를 지닌 만화인의 모습을 보기엔 오히려 이 작품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온 몸에 칼처럼 펜을 장착한, 만화계의 햣키마루. 죽기 3주 전까지 여전히 만화를 그리고 아이디어를 짜냈다는 그의 마지막 유언은, '좀 더 일하게 해줘.' 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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