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병子뎐)

병子뎐 偕老 편...

by Aner병문

옛부터 중원에 공부자(孔夫子)께서 삼천의 제자와 함께 수신(修身)에 정진하시어 맹자, 순자에게 그 도를 전하셨고, 해동(海東)의 이부자(李夫子 : 퇴계 이황), 송자(宋子 : 송시열)가 그 뜻을 좇으니, 훗날 오척단구(五尺短軀) 에 독두소안(禿頭小眼) 소인배 총각이 몇 마디 주워들은 말뽄새 그럴듯이 후려치고 돌려쳐 고운 처 맞이하고 자식 낳아 일가를 이루매, 성인의 가르침이여, 어찌 훌륭하지 않은가. 하여 뭇 사람들이 그를 일컬어 병子라 하더라.





* * *




때는 文통 치세 3년, 2대를 대물림한 대통령이 허물많아 백성이 스스로 들고 일어나 대통령을 갈아치우고 그 뒷배를 감옥에 넣으니, 다시금 선거로 새 인물을 뽑아 자리에 앉혔으니 어 어찌 민주주의라 아니할손가. 그러나 여전히 나라 안으로는 취업과 출산이 곤두박질치며 밖으로는 경제가 혼란할 새, 안팎으로 역병이 횡행하여 백성들이 여전히 두려워하는지라, 병子 가로되 '내 비록 허생은 아니외다만 어찌 이토록 나라가 혼란할 새 장부가 집안에 틀어박혀 책만 외고 있겠는가. 자고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 하였으니 제 가정을 건사하는 이치와 나라를 다스리는 이치가 어찌 다를꼬.' 하며 분연히 한 푼이라도 벌어오겠다 자리를 박차고 나서니 부인 안씨가 장해하며 기꺼이 그 날의 육아를 도맡더라.




이에 병子가 한산한 저잣거리에 나가 물건 하나 없이 타령을 부르며 사람을 끌어오는데, 막상 팔 것이 없으니 사람들이 여상케 여겨 묻기를, '그대, 목청 돋워 사람을 부르기로, 팔 물건이 없으니 무엇하려는가? 혹시 그대는 14만 4천명을 모아야 하는 협잡의 무리인가, 아니면 오늘 하루 술로 때워 구락부(俱樂部)*1 놀음이나 하려는 한량인가?' 병子 가 정색하며 답하기를 '그대는 어찌 나를 그리 작게 보는가? 내 비록 술은 못 끊었으나 정당한 장로교의 권찰*2이요, 술을 좋아한다 한들 마땅히 글을 읽고 몸을 다스리는 자로 나이 서른 넘어 어찌 모르는 외간여자와 방종하게 몸을 흔들어 댄단 말인가? 내 다만 이 나라 앞날을 살피기로, 땅은 좁고 그나마도 바다로 둘러싸여 삼면이 막혔는데, 일하고자 하는 이는 많으나 쓸만한 직업은 적고, 밖으로 나가련들 역병이 참람하여 예처럼 들고 남이 쉽지 않음이요, 이러한 판국에 젊은이들이 제 맘 속 감정까지 숨기어 누구 하나 좋은들 좋다 말조차 못하고, 괜시리 누구 하나 스치우면 행여나 범죄 될까 저어하여 몸을 사리기 일쑤니. 과연 바다 건너 영길리(英吉利)*3 에서 이르기를 대저 향후 100년 새에 총포 한 번 놓지 아니하고 절로 사라져갈 나라는 한국인가 하노라 하니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잡설이 길었쇠다만 내 재주 없어도 주변에 출중한 미혼남녀 많으니, 이 판에 월하노인(月下老人)*4 행세나 하여 냉면값이나 벌어보리라.'



그러자 행색이 단정하고 흰 피부에 묵빛 눈썹, 삼단 머리 늘어뜨린 고운 소녀 하나 나와 가로되 '그대가 그러하면 내 짝을 찾아줄 수 있는가?' 하니 병子 신이 나 가락넣어 외치기를,



'암만암만, 내 주변 사내로 말할 것 같으면, 키 큰 놈, 작은 놈, 수염 빽빽헌 놈, 없어서 매끄러운 놈, 머리 길어 잡아묶은 놈, 없어서 주변머리 가리운 놈, 돈 많아 세다 밤 샌 놈, 돈 없어서 자다가도 일어나는 놈, 여자 많아 시끄러운 놈, 여자 없어 괴로운 놈, 곧 갈 놈, 가야할 놈, 갔어야할 놈, 가다 돌아온 놈, 가다가 취소된 놈, 하여간 많고 많으니 처자는 원하는 남정네 있으면 마음 편히 말해 보소.'



소녀가 눈썹을 튕기며 대답하기를 '어째 하나같이 후보가 좋지 않으나 믿고 말해보리라. 나는 이제 혼기가 찼고, 서울 북쪽에 살며, 책 읽기를 즐겨하고 가배 달이기가 특기인지라, 밑으로는 여동생이 하나 있으니, 모친이 말씀하시기를, 나이가 찼거든 어서 가서 아우에게 본을 뵈라 말씀하시니, 내 답답하여 산책 중에 그대 만나 사람이나 소개 받으리라.'



병子 신이 나서 가로되 '아이고, 잘 오셨소, 그렇다면 어찌 한 명 없으리이까. 내 지인 중에 얼굴은 원빈이요, 목소리는 한석규라, 성정은 차분하게 타고나 벌통에 빠져도 지분치 아니하고 벌이도 그만하면 제 한 몸 먹고 사는데는 문제 없는지라, 그대 딱 보아하니 널찍한 집, 좋은 거마, 펑펑 쓸 돈 둘째치고 그저 혼인하여 일생을 조용히 절간처럼 살 사람 구하니, 그러하면 맞춤이다 딱이로다 내 어서 이를 소개하고자 하오.'



소녀 놀라 가로되 '벗겨진 머리에 눈이 작아 신통치 않게 여겼더니 대번에 내 이상형을 맞추었도다. 참으로 유부(有婦) 는 유부로다. 그래, 그 남자는 어데 사는 뉘며, 나이는 얼마나 되았는고.' '서울 사는 내 직장 형님이고 나이가 내년에 오십....' '이 새끼가?!' 소녀가 크게 대노하며 뺨을 치고 가더라.




여인에게 남자 소개시켜주기는 글렀으나 병子 심기일전하여 다시금 목청을 돋우는구나. '자, 오시오, 오시오. 대한에 장부 많으나 여성상위 여권신장 좋은 말에 오해많아 남녀갈등 심화되니 어찌 함부로 정을 보일 수 있으랴. 마음은 비단결이요, 인물은 항아 같은 여인네들 소개시켜주려하니, 오시오, 오시오, 어서들 오시오!' 이에 또 병子 그럴듯한 타령에 한 청년 슬그머니 나타나 미심쩍게 묻기를 '내 방금 보기로 뺨 맞는 꼴을 보았는데, 여인 소개는 믿어봄직 하려는가?'



'암만암만, 내 비록 겉보기에는 볼품없으나 내 안사람은 나랏밥 먹는 이요, 키가 6척에 조금 모자란데다 수영 재간에 일품이니, 여식 하나에 단란하게 사는 내 모습, 이만하면 충분히 증좌가 되지 않으려는가?'



어깨는 산맥이요, 두 팔이 기둥처럼 굵어 다리와 구별되지 아니하는 듬직한 청년 기뻐하며 가로되 '나는 경기도 깊은 곳에 사는 곽가요, 우리 고을은 갈비와 막걸리로 이름났으니, 나 역시 나랏밥 먹는 훈장이라, 심성이 곧아 여인에게 상처주지 않으며, 요리가 취미인지라, 내게 오는 여인은 주지육림으로 몸과 마음을 호사스럽게 하리라.'



병子 더욱 기뻐하며 가로되 '나왔구나 나왔구나 어데 갔다 여기 오셨는가, 하늘로 솟았는가 땅으로 꺼졌는가, 배필이 여기 있으니 한번 보시외다. 나이는 혼기에 꽉 찼고, 아이를 돌보는 일에 십년 종사하여 통장이 무려 아홉 개요, 집 한 칸도 마련해왔으니, 그저 들어올 듬직한 신랑감만 찾는 여인 여기로세. 곽 훈장 둘도 없이 이 여인 만나면 인생이 쫙 펴리라. 여기 초상을 그려왔으니 한번 보시우다.' 하고 초상을 그려 주니 곽 훈장 소개를 듣고 흡족하여 입이 벌어지다 초상을 보고 다시 되묻기를,



'다 좋은데 생김이 심히 여상스럽도다. 그대와 꼭 닮지 않았는가?' '암만암만, 올해로 서른둘되는 이 몸의 아우입지, 우리 부모님도 어찌 걱정이 없겠는가, 제 오라비처럼 가정 꾸려 어서 살라 성화시니, 한 번 보고 어서 데려가소, 나랏밥 먹는 훈장이면 우리 집에서도 기꺼워하실제라.' '... 마음은 고마우나 감히 키가 내 허리춤에 오는 병子가 곽 서방 곽 서방 하며 명절마다 술잔 받을 생각하니 속이 뒤틀리구나. 다른 여인은 없는가?' 하니 병子 정색하며 '없는데요.' '이 ㅅ발놈이 지 동생 시집보낼라고.' 하며 곽 훈장 반대돌려차기로 병子를 후려패니 병子 탄식하기를 '앗차, 이 새끼가 WT 4단에 권투 5년한 놈임을 내 깜빡했도다.' 하며 빌고 또 빌더라. 소문을 듣고 안씨가 아이를 둘러메고 찾아와 탄식하며 병子를 끌고 가니, 과연 중매란 잘 해야 술 석 잔이요, 못 하면 뺨 석 대라는 조상님 말씀이 틀리지 아니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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