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독서감평)

천승세, 포대령, '세대' 에서 발표, 1962

by Aner병문

예나 지금이나 취업은 쉽지 않았던지 소설 속 화자 청년도 제대 후 취업이 잘 되지 않아 결국 낮밤으로 채석장 폭약 소리가 뻥뻥 터지는, 지저분한 산꼭대기 판잣촌으로 굴러들어온다. 그나마 지인이 하나 있어 비비고 들어온 것인데, 그 지인이란 작자도 대단한 위인은 아니다. 못생긴 얼굴에 포탄을 연상케 하는 땅딸막한 몸집, 늘상 술을 입에 달고 사는데다 걸쭉한 욕지거리는 기본이고, 수틀리면 제가 무슨 시라소니라고 이북 사투리 써가며 박치기 한 방 진하게 먹여주기 일쑤다. 이 중년 사내의 이름은 김달봉, 지금이야 변변히 먹을 것도 없는 주제에 취준생 청년까지 냄새나는 홀아비 단칸방에 들이는 배포만 큰 동네 아재지만, 사실은 포대령이라는 별명으로 신병을 휘어잡고 전선에서 용맹을 떨치던 포병 장교였었다. 소설의 화자를 맡고 있던 청년 역시 포병 하사로서 포대령 덕에 꽤 굴렀지만, 그래도 그의 의리를 믿고 취직될때까지 밥은 먹여주겠거니 하고 기어들어온 셈이다.



입이 걸고 주먹이 앞서긴 했어도 청빈하고 용맹한 연대장으로 이름났던 포대령. 그런 그가 어째서 민간인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직 포병 취준생 청년과 포대령과의 동거는, 영화 광고문구처럼 험난하기만 하다. 몇 푼 받는 연금으로 근근히 생활하는 덕에 금호동 산꼭대기 셋방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고, 앞서 말했듯 산 아래 채석장에서 돌을 쪼개느라 폭약 소리 요란한데, 그나마 조용할 때는 그저 까탈스러운 장교 출신 추레한 민간인에 불과하던 그가 폭음 소리 터지자마자, 장난감 야포를 손에 들고 전선에 나온 듯 고함치고 지휘하니 누가 봐도 제정신은 아니다. 심지어 이 궁벽한 삶을 함께 사는 청년에게도 군인처럼 짧은 머리칼에 거수경례, 귀대 시 시간 엄수, 심지어 장난감 야포에 기름칠을 안했다고 원산폭격에 구타까지 시키니 람보 못지 않은 PTSD 전후증상 환자임이 분명하다. 속된말로 여기가 싸제인지 군대인지 구분도 못하는 주제에 기개 하나는 여전히 펄펄 살았다. "가이새끼들! 보라우! 내가 시시하게 죽어 넘어디나 말야! 쫓기구서라므니 밀리구서라므니 해개지구 시시하게 뻗나 보라우! 젊어 요절도 없구 늙어 자연사도 없어! 이 김달봉이에겐 오직 전사만 있을 뿐이야! 하사! 내 말 알가서?”





그나마 군대에서는 사람 구실을 했으니, 그 좋은 군대에서 계속 있으면 차라리 좋지 않았겠냐는 의문이 들법도 하다. 마침내 술 한 잔 먹고 대거리를 하는 화자 청년 주인공 앞에서, 포대령은 눈물을 흘리며 주정을 하기 시작한다. 단순히 아부도 못하고 비위맞출 깜냥도 없는 질박한 무인이라 승진 출세에서 밀려나 과대망상 환자처럼 사는 줄 알았더니 그에게도 가슴 아픈 속내가 있었다. "그때.. 그때.. 다부동엔.. 다부동엔.. 다부동엔.. 만삭이 다 된 에미나이가 있었대서! 끝이었디... 김달봉이는 포병이 먼저였디, 한 에미나이의 사나이보다는 분명 포병이 먼저였디!" 그렇다. 남쪽으로 밀려 들어오는 인민군을 막아내기 위해 '동양의 베르됭 전투' 라 불릴 정도로 처절했던 바로 그 다부동 전투에서, 포병 대령이었던 포대령은 자신의 아내가 있던 거처에 손수 장절한 포격을 감행했던 터이다. 그러므로 그는 사실상 그 전투에서 사회적으로 죽었지만, 자신을 가장 크게 지탱하는 것 또한 포병으로서의 정체성이므로 끝내 그 것을 버리지 못한다. 그는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속세로 스며들었으며, 누구도 인정하지 못하는 전투를 힘겹게 감내하며 최전선에 살다 '전사한다.'




조국(그 분 말고..)을 위해 마땅히 처자의 목숨까지 내버린 이 장절한 무인에게는 뜻밖에도 본보기가 되는 실존 인물이 있다. 실제 별명조차 포대령이었던 이기련 대령이다. 경성제국대를 졸업하여 6개 국어에 통달하고, 포술에도 능하여 문무를 겸비한 용장이었으며, 술은 오로지 소주 아니면 막걸리- 즉 대포만 들던 진짜배기 포병을 자처하던 인물이었다. 그는 비록 소국의 장교였지만 적에게 물러서지 않았고, 그렇다고 무조건 외세에 허리를 굽히지도 않았기에, '간첩과 민간인을 구분해낼 수 없으니 피난민에게 포를 쏘라' 는 군사고문관에게 반발하여 총질을 하고, 값도 안 치르고 콩나물을 가져가려는 미군 장교를 권총 자루로 후려쳐버렸다고 했다. 그는 이 사건 이외에도 전투 중 망실품과 전사자를 지나치게 많이 보고했다는 이유로 군사재판에 기소되었는데, 그때에도 시종일관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전사자야 죽은대로 보고했으니 마땅히 잘 세어서 장례를 치러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피해가 적었다고 상부가 우기니까 오히려 부풀린 게 아닌 것이고, 망실품을 허위 보고한 이유는 물품을 많이 지원받아 미망인들이며 유복자녀들을 돌봐야 하기에 그랬소.' 두 번이나 타의로 제대한 그는, 당시 보기 드문 엘리뜨였음에도 불구하고 남 밑에서 빌붙어 살지 않겠다며 수박장사를 하다 생을 마감했는데, 그 때 그는 국민재건운동을 참여코자 기분이 좋아 폭음하다 안타깝게도 동사하시었다. 평소 생활이 검소하고 청빈하여 돌아가시는 그때까지 누구도 그가 그 유명한 포대령임을 몰랐다고 했다.




해방공간 이후 미소 중심의 세계 정세에서 비극의 내전을 겪어야 했던 남북한. 비록 안팎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다지만 그래도 어엿하게 선진국 반열에 드는 이 나라가 있기까지 많은 세대의 희생이 있어왔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나 '국제시장' 혹은 성석제 선생의 '투명인간' 처럼 주제의식이 명확한 소설 혹은 영화를 통해서도 능히 알 수 있듯 전쟁에 초개처럼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이 모두 위대한 시대의식을 지니지는 않았다. 그들은 대부분 단지 자기 땅과 가족들을 지키고 싶었으며, 심지어 끌려온 사람도 있었을 터이다. 그러므로 내전은 본디 이웃이던 이들에게, 또한 전쟁의 주체가 아닌 이들에게 희생과 선택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훨씬 비극이다. 오늘은 바로 그런 날이었다.






덧붙여 물계자의 고사로 마무리를 짓기로 하자. 고대 신라 내해 이사금 시절, 한반도 남부의 이른바 포상팔국 이라 불리는 여덟 개의 부족국가가 난을 일으키니 이를 포상팔국의 난이라고 한다. 일찍부터 불교를 받아들이고 철기문화를 완성하여 북쪽으로는 중국과 맞싸웠던 고구려나, 거대한 해상왕국의 포부를 지녔던 백제에 비해 신라는 태생적으로 내부 변란이 많아 나라의 기틀을 잡기 어려웠다. 신라가 본격적인 중앙집권체제의 국가로 번듯이 서게 되는 때는 역시 불교를 받아들인 법흥왕 때부터이다. 포상팔국의 난이 일어나자 내해 이사금은 대장 석우로를 파견하여 이를 진압케 하는데, 물계자(勿稽子)는 늘 앞장서서 싸워 큰 공을 세웠다. 팔국 중에 세 나라가 다시 반란을 일으켜 쳐들어오자 내해 이사금은 이번에는 손수 출진하는데, 물계자는 이번에도 선봉에서 크게 싸워 이겼다. 그러나 첫 전쟁에서 태자 내음에게 밉보인 탓에 선봉에서 늘상 적을 수십 명 이상 베었는데도 공을 인정받지 못해 그의 살림은 늘 궁핍하였다. 이에 아내가 남편의 미련함을 탓하자 물계자는 오히려 거문고 하나 들고 대나무 소리를 본따 음악을 만들여 숨어버린다. '자고로 나라가 어지러울 때, 목숨을 잊고 몸을 버려 왕을 모시는 것이 곧 충이거늘, 이 한 몸 살아돌아왔으니 어찌 충을 다했다 하겠소? 또 충성스럽지 못한 자가 어찌 효를 다할 수 있겠소? 내 이토록 허물 많은 인간인데 어찌 공을 바랄 수 있겠소?' 동서고금에는 정말 이런 협객들이 수도 없이 많았으니 6.25를 기려 몇 자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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