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고부(姑婦).. 그거 진짜 쉬운 관계 아니다..ㅋㅋ

by Aner병문

지금이야 결혼해서 번듯이 가정 꾸리고 인자한 아내, 귀여운 딸 두고 세상을 다 가진듯이 행복하게 살지만, 아내를 만나기 전날까지 밥벌레 소리 듣고 살았다는 사실은 남쪽으로는 사장님(!! 잘 사십니까? 언제 한번 고기 먹으러 가야 하는데 ㅋㅋ)이 아시고, 북쪽으로는 너와 곽선생이 안다. 나와 아내는 9월 첫날에 만났는데, 그러므로 8월 31일 마지막 날까지 나는 욕을 '처먹고' 있었다. 눈에 뜨이면 나가서 여자 데려오라고 혼나고, 안 보이면 여자도 없는 것이 뭐 한다고 안 보이냐고 혼나고, 저 놈의 책이며 태권도복 다 보기 싫으니 불지르라 말씀하시기도 예사고, 주말에 혹시나 아버지께서 결혼식이라도 다녀오시면 그 날 하루 분위기는 완전히 초상집이었다. 정장을 벗으시며 아버지 한숨 푹푹, 봉투 돌려받는건 둘째치고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거 저거 어데 사람 구실이라도 하겠나. 그 날따라 저녁에는 왜 꼭 TV에서 고부갈등 주제로 예능은 많이 하는지, 농촌에서 청춘을 바친 시어머니와 바다 건너 온 어린 며느리 관계가 쉽게 좋아질리 없을텐데, 아버지는 수저를 딱 내려놓으시며 아니, 저것도 며느리나 있어야 하는 일 아니냔 말이야, 하시고 어머니는 뒤이어 한숨 받으시며 야, 너 여자가 그렇게 없냐? 아이고, 주여, 다시 쓰려니 징글징글하다. 하여간 가게 하나 말아먹고 백수시절은 두 번이나 겪었으며, 뭐 하나 내세운 거 없이 부모님 가슴에 대못이나 박는 20대였으니 어쩔 수 없는 업보라고 설움받고 살다가 우리 아내 만난 그 순간부터 내 인생 활짝 폈더랬다. (로또냐?!) 지금은 아버지와 2주에 한번씩 건너가며 술잔 나누며, 그땐 그랬지~ 하고 감정의 앙금을 조금씩 풀게 되었으니 가족이란 또 이렇게 마법 같은 것이다. 남이라면 이렇게까지 갈등을 풀려 고뇌하겠는가, 나 역시 자신없어 꼭 가족처럼 친한 벗 두셋만 곁에 두었다.




하여간 9월 1일에 만나 12월 1일에 결혼하고, 신혼여행 5일쯤 다녀온 다음, 바로 2단 승단 심사를 본 다음에 다시 한 해의 주말부부를 거쳐 딸이 찾아오기까지, 아내는 우리 집에 정말 많은 긍정을 가져다주었다. 누가 봐도 우리 집에 맞춤한 며느리라 할 정도로, 아내는 서글서글하고 무던하며 웃음이 많고 구김이 없다. 가끔 마음 아픈 일이 있어도 길게 가지 아니하고, 고민이 있어도 금방 지워버린다. 큰일을 나누기에는 아쉬운 점도 있었으나 그거야 내가 좀 더 신경쓰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크게 허물치 아니한다. 아내도 예민하면서도 덜렁대는 내 복잡한 성격 때문에 늘 내가 모르는 뒤에서 골머리를 앓을 터이고, 무엇보다 나는 운전이 서툴다는 점에서 아내에게 그닥 할 말이 없다. 아버지는 무엇보다 우리 부부가 서로 키나 성장 환경은 달라도, 서로 눈빛 맞춰가며 존중하고 양보하는 모습에 크게 흡족해하시고 더이상 바랄게 없다셨다. 아니, 솔직히는 여동생만 그렇게 시집 가면 좋다셨다.




아내와 햇수로는 3년, 실제로는 한 해하고도 열 달 정도 삶을 꾸려보니 무엇보다 어머니의 변화가 놀라웠다. 어머니는 하여간 강하고 용맹한 분이시었다. 내 비록 감히 율곡 선생 발끝의 먼지 한 톨만큼도 못 하지만, 처녀적부터 모 소설가 밑에서 수행하시어 한학에 대한 조예와 뛰어난 글씨, 목공 실력, 그림에 이르기까지 어머니는 안양의 신사임당으로 불리기 부족함이 없는 분이었다. 늘 남편을 뒷받침하며 실제로 가정을 건사해온 성정도 똑같았다. 아버지께서도 대기업 근속을 하시며 인덕을 많이 쌓으셔서, 오죽하면 도장 사형제자매들이며 회사 동료 형님누나들이 '야, 나 살다살다 봉투 하려고 줄 이렇게 길게 서는 식장은 처음 봐' 라고 하였을까마는, 어머니는 그렇게 아버지가 늘 성실히 가져오신 급여를 훌륭하게 불려내셨다. 나는 어머니의 많은 미덕을 물려받지 못했으나, 치재(置財)하는 재주만큼은 정말 없다. 아내도 역시 어데서 주식 투자하거나 땅 보는 재주는 없다 하므로 우리는 버는 돈이나 잘 모아두기로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 부부는 정말 어머니와 성격이 다르다. 나는 그나마 아들이므로 어찌 견디겠으나, 한편으로는 아들로서도 힘들었던 성정을 아내가 버텨낼 수 있을까, 하물며 시댁/처가와 화장실은 멀수록 좋다는데, 제아무리 어머니께 집 비밀번호도 훤히 알려드리고 늘 어른들께 곰살맞게 살가운 우리 아내도 늘 여유가 있지는 아니할텐데, 마음이 쓰였다.




과연 솔직한 말로, 아내와 어머니는 쓰는 말조차 다른만큼 성격도 달랐다. 여보야, 어머이가 자꾸 새잽이로 궁글리라카는데 그게 뭡니까? ...아.. 새로 둥글게 말라고요. 아하! 야야, 느 처가 두개두개하느라 바쁘다 허는디 그게 새꼽빠지게 뭔 소리여? 두개두개가 뭐여? ...이불 빨래해서 정리한다 그소리여요.. 아아, 참으로 남편이란 두 가정 새의 통역사요 외교관이며 또한 평화사절단이다. 한쪽은 지나치게 물러 솜털같고, 한쪽은 지나치게 날카로워 쇠칼 같으니 나는 늘 두 여인의 선의(善意)가 행여나 잘못 부딪혀 오해사지 않을까 두려워 조심해왔다. 어머니도 내가 놀랄만큼 며느리에게 부드럽고, 아내도 어머니에게 늘 긴장하며 최선을 다함에도, 때때로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오히려 상처를 줄 수 있는지라, 나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물론 사람 관계 다 그렇듯 아무리 애쓴다 해도 다른 것은 다른 것이요, 부딪힐 것은 부딪히기 마련이다. 우리 가족도 다른 가족 하는만큼 다 있을건 있다고 하겠다. 그래도 어머니는 늘 어른이셨고, 아내도 늘 웃으며 마음을 털었다. 감사한 일이었다. 아버지와 나는 그저 술 몇 잔으로 아쉬운 마음 털면 그만인, 무덤덤한 사내들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갑자기 어제 아내가 느닷없이 서울 본가에 있다고 하기에 놀랐다. 말이 서울 본가지, 버스로 고작해야 네 정거장이요, 서울과 안양의 경계는 걸어서 10분이면 족히 넘나든다. 내 어렸을 때는 석수역 부근에 검문소가 있어서 늘 서울로 넘어오는 차들을 단속하고 했었다. 아니, 거긴 어쩐 일이랴? 하고 물으니 아내의 말이 걸작이다. 아이, 내 오늘 교회 갔다오는데, 갑자기 어머이한테 놀러가고 싶었지러, 그래가가 어머니께 전화드리니까네 그래 좋아하실 수가 없었습니도, 내 과메기도 마이 사주시고, 소은이도 봐주시고, 아버지 어머니 지금 다 신나셨지러, 퇴근하고 언넝 건너오이소, 저녁에 어머이가 또 맛있는거 사주신대~ 아내의 속마음이야 어떨지 몰라도 어머니가 보고 싶어 스스럼없이 본가로 건너가주는 며느리로서의 태도가 참 고마웠다. 아닌게 아니라 요즘 여기저기 공사 문제로 시끄러운 어머니는 모처럼 아이를 돌보시느라 몸의 열을 식히시고 즐거워보였다. 아버지와 나는 또 그렇듯 알배기 참게와 메기를 잔뜩 넣은 민물매운탕에 소주를 나누고 공원을 실컷 걷다가 왔다. 어딜 가나 가족들이 아이 자랑을 하며 공원을 메웠다. 그러므로 항상 아내는 존경한다. 내 삼십대의 평화는 아내에게서 왔다. 아내는 늦은 밤에 나와 함께 빨래를 접으면서, 엣헴, 내가 아주 잘한다구, 의기양양하길래 그렇다고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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