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거면 법치 국가라고 하질 말든가...
상앙의 이목지신(移木之信)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했다. 나뭇가지 몇 개를 옮겨준 이에게 실제로 황금 50근을 내리며 호령하기를, 아무리 작은 법이라도 지키면 상을 받고, 아무리 큰 법이라도 피하려 들면 벌을 받는 것이 곧 법의 생리라고 했다. 상앙의 말로는 그리스의 드라콘 못지 않게 비참하였다. 그는 결국 제 법에 제가 걸려 죽었다. 제아무리 엄밀한 법을 지엄하게 펼쳤어도 사람의 마음을 살 수는 없었다.
그로부터 약 2400년 후, 법치국가를 표방하는 한국은 무엇이 다른가? 어린 아이들이 법의 이름에 기대어 어른을 놀리고자 차에 뛰어드는 장난이야 그렇다고 치자. 물건이 그렇고, 상황이 그러하여 그렇지 천지분간 잘되면 그것이 아이인가, 어른이지. 사실 알고보면 우리들도 어렸을때 다 건방지고 못나게 놀았다. 문제는 나이 먹고도 추하게 노는 사람들이 있어 그렇다. 세월호, 천안함, 두 번이나 바다에 묻어야 했던 가슴 아픈 이야기들은 차치하더라도, 저 버닝썬과 결탁한 연예인과 경찰이며, 제 이름 걸어 그림 팔아먹는 인간까지 모조리 대법원에서 무죄를 내었다. 법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고, 증거가 없다니 어쩔 수 없단다. 그렇다면 법이라는게 똑같이 지엄해야할텐데, 없이 사는 이들에게만 유독 더 차갑고 잔인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정말 나만 느끼는 것일까.
어느 틈엔가 이야기가 쏙 들어가는가 싶더니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과 이용수 할머니가 다시금 손을 맞잡고 어깨를 기대었다. 이게 이렇게 끝날 일이라고? 백종원 사장 말 안 듣는 식당 아주머니 말로 후려패거나, 강형욱 훈련사 말 안듣는 견주 아가씨 집 주소 들추는 일에는 성화인데, 저 생각해서 체온 재자는 경비원 자르거나, 마스크 쓰라고 말하는 버스기사 물어뜯는 일에는 열심인데, 이 일이 세월호, 천안함, 버닝썬, 전직 대통령 사건처럼, 또 이렇게 '조선놈들 냄비 근성 운운' 하는 일로 묻힐 일이라고? 그 많은 기자들은 어느 드라마에 누가 벗어서 성차별이고, 누가 벗어서 눈이 호강했다, 이런 말은 잘 쓰면서 어째서 누구도 공분할 이야기는 하지 않는가? 법의 지엄함을 말하던 검찰과 판검사는 왜 법의 이름을 빌어 무죄를 선언하는가? 모두가 나설 수 없는 일이니까 기자는 리영희 선생님의 말처럼 남들을 대신해 펜을 칼처럼 쓰고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법을 섬기는 이는 나라 최고의 엘리뜨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수사하고 판결해야 한다. 글을 쓰는 이, 법을 만드는 이, 나라를 다스리는 이 모두가 입버릇처럼 국민을 말하지만, 국민을 위하기는커녕 법조차 지키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멕시코나 러시아 대통령처럼 법을 제 입맛에 바꿀 궁리만 한다. 이 정부에 정말 실망한지 오래 되었다.
내 개인적으로 볼 때 정의연 사건에서 가장 끔찍했던 것은 누군가의 자살이었다. 그 것은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과 노회잔 의원의 자살만큼이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나라는, 마치 일본 식의 '정치적-사회적 자살' 이 그대로 옮아온 듯 싶다. 누군가 자살해버리면 그 순간 진실을 알고자 파헤치는 쪽이 마치 무정한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듯하다. 그들은 스스로 말했다. 돌아가신 분은, 억울한 수사에 희생되었다고. 그러나 검찰은 아직 수사는 시작도 하지 아니했으며, 나눔의 집 이사장에게 어떤 연락조차 취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윤미향 의원과 이나영 이사장의 행보는 객관적으로 수상하다. 그런데도 그들은 누군가의 죽음을 계기로 억울함을 부르짖으며 희생당한 이를 추모하고 폭력 수사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며칠이나 지났다고, 그들은 '화해'했다고 이용수 할머니의 손과 어깨를 맞잡았다. 나는 할머니의 표정이 자포자기 처연하다고 느낀다. 그 손과 어깨에 얹혀진 또다른 누군가의 손과 어깨가족쇄처럼 느껴져 무섭다. 보란듯이 사진을 정면으로 보고 웃는 미소가 더할나위 없이 끔찍하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누군가의 죽음을 비분하게 말하던 이들이 '화해' 라는 싸구려 말 한 마디로 모든 의혹을 정리하려고 있다. 이러고도 이 나라 법치주의인가, 이러고도 법을 섬긴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성균관에는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학문의 성지에서는 왕조차 말에서 내려야 했다. 셔틀버스가 그 앞을 들락거린다고 할때, 그를 반대하던 이들이 있었다. 지금은 내가 그러고 싶은 심정이다. 법 앞에 평등할 것을 강요하며, 정작 법 위에 올라탄 이들을 보니 속이 뒤틀린다.
맹상군의 어릴 적 고사로 마무리 짓자. 전국사공자 중 가장 인지도가 높고 출중했던 맹상군의 성은 전(田), 이름은 문(文)으로, 제나라 왕손이었으나 어머니의 출신이 좋지 못해 서자로 났다. 그는 하필 5월 5일 어린이날에 태어났는데, 아직 소파 방정환 선생이 나오시려면 근 1900년은 기다려야 하는지라, 억울하게도 숨어 자랐다. 단순히 서자라서 그런게 아니라, 당시 5월 5일에 태어난 아이는 제 키가 삽짝 문에 닿을 정도로 자라면 아비를 죽인다는 미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나라의 막내 왕자였던 아비 전영 역시 어린 전문이 총명해보이기까지 하니 일찍 죽이라고 명하고 더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데, 그 어미는 끝내 죽이지 못하고 결국 아들이 클때쯤 되어 아비 곁으로 데려간다. 부정(父情)에 호소해볼 생각이었으리라. 그러나 노발대발하는 아비 전영 앞에서 전문은 오히려 차분하게 되묻는다. 제가 이 어린 나이에 죽어야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네 키가 문에 닿으면 나를 죽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어린 전문은 맹랑하게 웃는다. 사람 목숨이 문에 달렸습니까, 아니면 하늘에 달렸습니까? 하늘에 달렸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문에 달렸다면 해마다 문을 높이면 될 일입니다, 간단하지 않습니까? 그 총명함에 놀라 전영은 아들을 기꺼이 거두어 키웠는데, 비록 전문은 문에 닿을 정도로 키가 크지 못하고, 오히려 생김새는 작고 못났으나, 중국 대륙의 절반 이상을 호령하는 대 권세가로 성장한다. 괜히 맹상군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고, 이 나라 백성들의 목숨은 어디에 달렸는지 궁금해서 몇 자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