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번외편 - 책을 읽듯, 시간이 없으면 마땅히 나눠서
연말에 3단 승단을 보겠노라며 말씀하시던 내용은 익히 전해들었으나, 막상 칠판에 적혀 있는 이름을 보니 오랜만에 가슴이 떨리고 두렵기까지 했다. 스무살 때부터 택견을 비롯하여 각종 무공을 익혀왔던 이력들을 자랑처럼 주워섬기지만, 마땅한 단을 받은 적은 많이 없고 그저 잡기술만 익혀왔던 시절이 길어서 나는 이제 겨우 검은 띠를 두 번 받았다. 울며 받은 첫 승급에 이어 초단 승단도 늦은 편이었고, 신혼 여행을 다녀온 직후 겨우 2단을 받았는데, 그 때 아내는 '태권도가 직업도 아니라면서 호텔에서도 낮에는 꼬박꼬박 연습하고, 또 돌아오자마자 바로 심사를 하네. 이기 뭐꼬' 하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아이가 어느 틈에 제법 크고 뛰어다니는 동안 4년이 걸렸고, 나는 이제 3단 띠를 준비해야 했다.
근 2주 만에 찾아간 저녁반은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수려한 용모와 화려한 언변을 지니신 사범님의 인기는 여전하여, 새로 찾아오신 근골 좋은 큰삼촌뻘 입문자 형님을 봐드리느라 내 훈련을 많이 하지 못했다. 결국 퇴근 후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밥 잘하는 유진이와 겨우 어울려서 하루 훈련을 마쳤던 날이 959일차 어제의 일이다. 사범님을 모시고 ITF태권도에 입문한지 8년, 신혼을 맞고 아이를 키우느라 잠시 쉬던 1년여를 제외해도 7년간 도장에서 정식으로 사사받은 날이 고작해야 959일밖에 안된다는 것은 몹시 아쉬운 일이다. 가능한 집이건 밖이건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누군가의 눈밖에서 혼자 훈련을 하는 일은 결국 훈련보다는 '운동' 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므로 늘 번외편 이라고, 마치 일본 출판만화마냥 따로 제목을 붙여두었다.
이 일기를 겨우 쓰는 동안 또 아이가 깨어버렸다. 아침에 아내에게 겨우 한 시간 여유를 받아 광개 틀까지 연습했고, 아이와 근처 계곡으로 물놀이를 가서 기운을 실컷 빼고 와서야 다시 포은 틀부터 고당 틀까지 이어 연습하고, 보 맞서기 30개를 마쳤다. 책과 영화를 나눠 보듯, 훈련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하루 양을 채울 수 없다. 아비이자 남편이란, 아내이자 어미와 마찬가지로 늘 쫓기면서 산다. 오후 볕이 따가워서 정말 온 몸을 벗기는듯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