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 계절 산문, 달, 2021.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 로 유명한 박준 시인의 산문집을 뒤늦게 봤다. 아스팔트 위로 햇볕 같은 열기가 끓어오르던 용인의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을 들렀다 오는 길이었다. 언젠가 말했던, 낡고 퇴락하여 정리할 준비를 하는 서점의 서가 한 켠에 책은 지친 듯 어깨를 기댄채 누워 있었다. 산문을 쓰는 이가 시를 쓴다는 예에 대해서는 내 얕은 소견에 보고 들은 적이 적으나, 시를 쓰는 이가 산문을 쓰는 일은 종종 있으며, 보아 왓는데, 교과서에 실린 오영수 시인의 요람기 가 그렇고, 함민복 시인의 눈물은 왜 짠가, 도 그렇고 류근 시인의 싸나희 순정 도 그렇고, 여하튼 단적으로 이리 비교하자면 단순무식하기 이를데 없겠으나, 뭔가 알 수 없는 언어의 다른 각도가 보이는 듯한 기분이다. 질주하는 산문의 허리께나 발끝 사이에 알 수 없는 미려함이 살포시 남는 것이다.
응우옌김빈 선생의 베트남 한 접시, 가 생각보다 피곤했고, 또한 자끄 랑씨에르의 정치 에쎄이를 어서 읽어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어서 일단 박준 선생의 산문집을 먼저 펼쳐들었다. 회사에서 지나가던 뉜가가 '헤어디자이너가 산문집을 냈어?' 라고 물어봐서 웃었다. 콧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남성 1호 미용사로 이름을 날렸다던 그 분의 미용실이 한때 한 집 건너 하나씩 있던 시절도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단군교 전 교주이자 지금은 목사님이신 김해경 선생도 본인이 남성 1호 미용사였다고 하는데 누구 말씀이 맞는지 모르겠다. 두 분은 연배도 엇비슷하다. 좌우지간 박준 시인은 그 미용사와 성함만 같은 젊은 문인이다.
나는 너에게 박준 시인을 '부드러운 김훈' 과도 같다고 말했다. 때마침 '하얼빈' 으로 김훈 선생의 신작이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요즘이었다. 김훈 선생의 언어는 명료하고 간명하지만, 그만큼 예리하고 무게가 살아 있어 사실 가끔 현대적인 배경에는 지나치게 과하지 않을까 느낄 때가 있다. 반면 역사소설에서는 마치 그 시대를 살다 온 사람인양 생생한 고민이 폐부를 깊숙하게 찌르는 기분이다. 나는 아직 하얼빈 을 읽지 못했지만, 박준 시인의 글은 김훈 선생을 생각하게 했다. '젊은 시인들이 고민 없이 언어를 희롱하며 글을 쓴다' 고 비판했던 신달자 시인처럼, 자기가 겪고 아는 것만 쓴다고 했던 노동자 소설가 유용주 선생처럼, 그는 일상의 언어들을 자신이 직접 겪고 풀어서 다시 써냈다. 가능한 매일 일기를 써오려 노력했다는 그의 말처럼, 그의 눈으로 보는 일상은 마치 풍경화를 보는듯이 걸러져 보는 맛이 있었다. 똑같은 틀을 하더라도 사람마다 그 태권도의 모습이 다르고, 똑같은 풍경이라도 화가마다 그려내는 그림이 다 다르듯이, 언어 또한 그와 마찬가지일 터이다. 박준 시인의 글은, 김훈 선생의 향취가 풍겼지만, 지나치게 사람을 빨아들이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둘 수 있어 좋았다. 생각해보면, 남편이자 아비로서 살아가는 일상이 물론 행복하지만, 가끔은 다른 틈이 필요할때, 나는 책을 읽거나 태권도를 읽거나 술을 마셨다. 박준 시인의 글 또한 그런 틈을 여는데 부족함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