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暴雨) - 무심하게 터질듯이 내리는 비
그러므로 세상에 단 하나 남은 의인인 노아가 뭇 사람들의 비웃음을 무릅쓰고, 저 아라랏트 산꼭대기에서 커다란 배를 만들고, 모든 짐승들의 짝을 맞춰 가족들과 함께 실어 살아남은 뒤,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이 세상을 물로 징벌치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탈무드에 의하면, 이 때 선(善)이 노아에게 자신도 태워달라고 간청했지만, 짝을 맞춰오면 태워주겠다는 노아의 말에 데려온 짝이 악(惡)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이 세상은 선과 악이 공존한다고 한다. 하기사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사랑하는 아담과 하와가 구태여 먹지 말아야할 선악과를 기어이 에덴 동산에 두셨는데, 선과 악 또한 이 세상에는 꼭 있어야 하는 모양이다. 불교와 힌두교에서는 카르마Karma 라는 이름으로 내가 한 행동에 반드시 따라오는 결과값의 무서움을 가르치며, 인도네시아의 신화에서는 마녀 란다와 성스러운 사자 바론이 영원히 이기지도, 지지도 않을 싸움을 하기 때문에 선과 악이 유지된다고 말한다. 홍수 얘기를 하려다가 너무 멀리 왔지만, 여하튼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엔 역시 자연재해였고, 자연재해로 넘기기엔 아까운 목숨이 허망하게 많이 졌다. 요즘처럼 사람들의 숫자만큼 휴대전화가 있어 언제 어디서든 세상의 곳곳을 볼 수 있는 시대에, 눈 깜빡할 새에 사람이 휩쓸려 죽어가는 모습을 보다니, 과연 어른들께서 불보다 물이 무섭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대학 시절에 겪었던 폭설보다도, 폭우가 더욱 무섭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학교만 다니면 되었던 학생과, 이제는 한 가정을 책임져야할 가장으로서의 차이였을까? 비는 쉼없이 와서 나는 지하철에서 2시간 30분 동안 갇힌 적도 있었고, 사거리마다 신호등이 전부 꺼져버린 컴컴한 거리에서 버스를 낑겨타면서 출입문 바로 아래로 호수처럼 출렁거리는 흙탕물을 보면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수도권에만 98%가 있다는 반지하는 곳곳이 물이 들어찼고, 우리 집 주변 역시 나라의 지원을 받아 집을 철거하거나 물을 빼준다며, 맑은 날에는 흙과 물에 절은 가재도구를 바깥으로 내놓고, 커다란 관을 연결하여 물을 뽑아내느라 온 동네에 퀴퀴한 악취가 진동했다. 자연재해는 공평하게 비싼 땅과 싼 땅을 가리지 않고 휩쓸고 지나갔고, 바뀐 정권의 대통령과 여당은 하릴없이 늘어지는 말과 정권다툼으로 여전히 사람들을 힘들게 하셨다. 나는 이번 반지하 논란을 보면서, 원래 계급이라는 것이 상하로 구별되기는 하지만, 이번 수해처럼 물리적 높이 자체가 빈부 격차를 상징하는 기준임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는 없는듯하여 마음이 아팠다. 어쩌다 운이 좋아 목숨을 건진 것 같아 새삼 속세의 무정함과 매정함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나 노숙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세상이다.
다행히도 수도권은 기상예보처럼 비가 많이 오지는 않았다. 예견되었던 장마전선은 한반도 남부에 여전히 머물러 있었다. 물이 빠져나간 안양천 주변은, 곳곳마다 나무가 뽑히고 풀이 누웠으며, 흙과 모래와 자갈이 물결에 따라 다른 곳으로 쌓여 물길까지 바뀌어 있었다. 제주도와 호남, 영남, 충청권은 연일 폭우에 두들겨 맞는 모양이었다. 옛날과 달라 이제는 침대에서 손바닥만한 전화기로 세상 어디든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오래 전 레마르크는 전쟁의 참혹한 실상에 대한 소설을 쓰면서, 그러나 어느 통신병의 이름을 빌려 그 유명한 문장을 썼다. '서부 전선 이상없다.' 장마전선은 남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나는 장마전선이 남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수도권은 이상없다. (그래서 다행이다.)' 라는 식의 말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내는 나와 결혼하기 전에는 경상도 토박이로서, 홍수 물난리를 한번 겪은 적이 있었는데, 공영방송에서 '오늘도 화창한 날씨입니다.' 라는 일기예보를 듣고 몹시 화가 난 적이 있다고 했다. 아니, 뭐, 서울만 대한민국인교, 서울만 날씨 좋으모 다 된다고 생각하는거 같아가 열이 확 뻗치데, 고마! 아닌게 아니라 나는 오래 전 영화 기생충 에서 보던 물난리가 동네 곳곳에서 가까이 벌어지는 것을 보며 참말 무서웠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지구의 상태를 되돌리는데는 이제 30개월 정도 남짓 남았다고 한다. 그 여유마저 놓치면, 더는 지구의 아픔을 막을 수 없다고 하는데,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또 내 자녀 세대는 이 지구에서 무사히 살 수 있을지, 벌써 마스크를 몇년째 써오는 이 '미래사회' 에서, 늙어가는 아비는 알 수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