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로, 파한집(破閑集), 1260년 아들 세황이 발간.
하여간 세상 좋아졌다. 근 천 년 전의 책들도 인터넷 조금만 디벼보면 다 볼 수 있다. 글자만 알고 있다면, 조금만 신경쓴다면 누구나 저 무한한 정보의 바다에 들어가 마음껏 글을 읽을 수 있다. 맑스 역시 이러한 거대한 정보의 바다를 예견하지는 못했지만 공산주의 사상이 널리 퍼지도록 공산당선언의 저작권을 일부러 주장하지 않았으며 그러므로 '거대한 유령이 유럽 대륙을 떠돌고 있다' 는 명문으로 시작하는 위대한 선언은 지금도 세상의 바닥에서 신음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또 하나의 길을 제시하곤 한다. 좌우간 이러한 고전을 읽을 때마다, 정말이지 세상살이 때와 물건만 다를 뿐이지 사람은 변한게 없구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포송령의 요재지이(聊齋志異)를 읽을 때도 그랬고,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을 읽을 때도 그랬다. 적게 잡아도 천년씩은 족히 차이날 때의 이야기인데도, 요즘처럼 쓰는 물건만 없다 뿐이지 생각하는 것은 다 도토리 키 재기, 거기서 거기, 고사성어로는 또이또이... 아니 오십보백보 되겠다. 하기사 오래 된 아테네의 도자기에도 뉜가가 '요즘 젊은 것들 버릇없어 큰일이다' 낙서해놓았다고 하니, 정말이지 사람의 역사란 어찌 보면 문명의 역사에 편승하는 시류에 지나지 않는가 생각될 때도 많다.
파한집은, '한가함을 깨뜨린다' 는 그 제목에서도 알수 있듯이 고려 중기의 학자이던 이인로가 죽기 전,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이야기들을 모아 시화와 곁들여 내놓은 잡록집이다. 요즘으로 치면 '나 이인로다, 죽기 전에 썰 푼다. 한가한 사람 들어와보삼' 정도가 되겠다. '정 심심하면 보라고 써놓은 책' 치고는 고려 무렵 중세국어와 문학, 특히 고전시화에 대한 중요한 자료로 손꼽히며, 무엇보다 '말목 자른 김유신' (발목이 아니다!) 노래 가사로도 유명한, 젊은 화랑 시절의 김유신 장군과 천관녀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가 적혀 있는 최초의 책으로도 의미가 있다. 따라서 시덥잖은 만담부터 제법 뼛속깊이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까지 다양한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어 정말이지 심심파적 삼아 읽기 좋다.
요즘 세태에도 새겨둘만한 이야기를 하나 적어보자. 당시 고려 남쪽에 가무에 능하고 얼굴도 아름다운 한 관기가 살았다. '이름을 잊어버린' 한 군수가 이 관기를 아끼다가 임기가 다하여 떠날 적에, 다른 수령이 부임하여 이 관기와 '썸탈' 생각을 하니 분통이 터져서 그만 집착 끝에 뜨거운 밀랍으로 두 볼을 지져버리고 말았다. 요즘으로 치면 아이돌의 얼굴을 망가뜨려 버린 셈이다. 얼굴과 웃음으로 먹고 사는 관기의 용모를 망쳐놨으니 생업이 될 턱이 없다. 게다가 군수는 막상 저질러놓고보니 저가 얼굴을 망쳐놓은 기생을 거두기는 싫었던지 그대로 떠나버리기까지 한다. 이대로 청년실업자가 되어버린 기생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당대의 시인이자 영일 정씨의 시조가 된다는 영양 정습명이다. 습명은 두 장의 비단지에 그녀의 안타까움과 한을 대신하여 한 편의 시를 적어주었고, 언덕에 서 있다가 지나가는 벼슬아치가 있거든 이 시를 보이며 자신의 억울함을 한탄하라 말하였다. 아마도 당시에 유행하던 고려가요를 적어주지 않았나 싶은데, 여하튼 이 홍보 전략을 제대로 먹혀들어가 관기는 고려의 송가인 못지 않은 인지도와 재력을 얻어 잘 먹고 잘 살았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의 때와 장소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지만, 정습명이 죽은 연도는 1151년, 즉 12세기 중반이고 이인로 역시 1220년에 죽었으니 고작해야 70년 사이, 한 세대 전의 일이다. 더군다나 '이름을 잊어버렸다' 고 일부러 적었을 정도니, 요즘으로 치면 데이트 폭력을 저지른 그 군수 역시 제아무리 이인로라고 해도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었던 권세가였음이 분명하다. 예나 지금이나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함부로 저지르는 폭력이란 이렇게 결이 비슷한가 싶다.
한 발짝만 더 나아가자. 우리는 왜 고전을 읽을까? 침착맨 이말년은, 놀랍게도 삼국지를 자신의 취향대로 풀어 재미있게 설명하면서 역사란 인류의 오답노트이므로 꼭 보고 기억해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표현이 요즘 세대에 정말 잘 들어맞는지라 나는 종종 그의 유튜브를 보며 배꼽을 잡는다. 그 유명한 장대호가 자신에게 시비를 건 조선족을 토막내어 강변에 버리고, 제 신변을 정리하여 스스로 자수했을 때, 그는 이름처럼 뼈대가 굵었고 눈이 부리부리했으며, 다른 범죄자들과 달리 얼굴을 가리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 사건은 흉악범이 양아치를 죽인 사건입니다. 김돈중이 정중부의 수염을 태웠을 때, 누군가에게는 그저 수염을 태운 장난이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문신들을 모두 죽일만한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절대로 후회하지 않습니다. 다른 세상에서 또 그런 짓을 한다면, 저는 똑같이 또 죽일 겁니다.' 장대호는 비록 여관을 전전하며 오랫동안 숙박업에 종사했지만, 오랫동안 같은 일에 종사하여 일머리가 트였고, 눈썰미가 있었으며, '무신정변' 을 입에 담는 것으로 보아 문식도 있듯이 보였다. 나와 곽선생, 너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그런 끔찍한 사람이 정중부 이야기를 할 줄은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가끔 고전을 읽으며 나는 그 사람 장대호를 떠올린다. 그가 정중부의 무신정변에서 읽어낸 것은, 끔찍한 복수였다. 내 수염을 태웠으니 너도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는, 불꽃 같은 증오였다. 그러므로 정중부는 자신의 권력을 확고하 하고자 했고, 또다시 자신의 경호원으로 가까이 둔 경대승에게 죽었다. 경대승도 오래 가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정신착란으로 죽었다. 장대호는 복수가 복수로 얽혀들며 끊임없이 연결되는 고리를 읽지 않았다. 읽지 못했는지 모른다. 오로지 복수의 통쾌함과 후련함에 머물렀으므로, 그에게 고전은 독이 되었다. 그러므로 아함경은 다시 한 번 말한다. 같은 물을 마셔도 소가 마시면 젖이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고. 나는 어떤 이가 될지 아직도 알 수 없어 불안해서 고전을 읽는다. 그냥 하루 종일 책만 읽고 태권도만 하고 술 마시는데 잘 먹고 잘 살았다 같은 그런 얘긴 없나....ㅋㅋㅋ